글쎄..그걸 알려고 지금까지 살아왔지만 아직 뭔지 모르겠어..

그러는 자네는 뭐라고 생각하나?


Contax T3, Fuji Reala, LS-40



오래된 컴퓨터는 온갖 잡소리들로 윙윙거린다. 본체를 뜯어 이리저리 위치를 바꾸어도 보고 몇몇 부품은 갈아도 보지만 그 소음은 여전하다. '처음에 살 때는 안 이랬는데.. 왜 이럴까..' 차츰 그 소음이 귀찮고 거슬리기 시작한다. 손에 익어 편하기는 하지만 이제껏 잘 지내오다가 갑자기 삐걱대니 언짢아진다. 그래도 큰 마음 먹고 장만할 때는 평생을 이 녀석들과 함께 하자는 의욕도 높았는데 이제는 바라보기만 해도 어쩐지 정이 떨어진다. 

실상 문제가 있는 것은 아마도 어느 장치 한 두개일 텐데 그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하다보니 곁에 있는 키보드도 마음에 들지 않고 모니터도 화질이 안 좋은 것만 같다. 어느 날인가는 집에 들어와 컴퓨터를 켜려고 하는 순간 케이스 디자인이 너무 오래되어 답답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성능과는 별 상관도 없는 디자인이나 색상도 이젠 불만이 되어 버린다.

결국 스스로 할 수 있는 노력들을 다 했다고 생각하고 다른 제품으로 바꿔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슬슬 새로 나온 컴퓨터를 알아본다. 내가 가지고 있는 녀석에 비해 값도 저렴하면서 성능은 더 좋아 보인다. 지금 가지고 있는 녀석은 오래 같이 지냈을 뿐이지 장점은 도통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새것을 들이게 된다. 이왕 바꾸는 거 모니터며 키보드며 쓸만한 것들도 죄다 바꾼다. 새술은 새부대에..라지 않느냐며..

이전의 것에 대한 기억은 가끔 새것이 손에 익숙지 않을 때 잠깐잠깐 든다. '그래도 이전 것은 편하게 다룰 수 있었는데...' 하지만 이미 어디론가 처분해 고철이 되어 버린 녀석을 다시 찾아올 수는 없다. 그냥 새로 들인 녀석에 최대한 정을 붙이는 수밖에 없다. 새것이 완전히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전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고 여기저기 좋다는 소문도 내본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의 선택이 틀렸다는 것이니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영 내키지는 않은 탓이다.

그 소음만 참고 아니 그 소음조차 나와 함께 하면서 생긴 관계의 연속으로 생각하고 자연스레 받아들였으면 됐을텐데 시간이 지나면서 함께 해 온 장점은 묻혀버리고 단점만 보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새로 들인 컴퓨터도 낡게 된다. 그러면 앞서 겪었던 고민을 다시 하게된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방법을 스스로 찾을 수 없었기에 또 다시 교체를 해야 하는 상황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것이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하는 방법이니까..

우리는 살아가는동안 위와 같은 과정을 무수히 반복한다. 어떤 것이 정답이냐.. 그에 대한 해답은 물론 어디에도 없다..


길상사에 다녀온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다시 그곳을 찾았습니다. 이번에는 어머니께서 한 번 가보고 싶으시다하셔서 아침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길상사는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6번 출구로 나가면 셔틀버스를 타고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일전에는 걸어서 다녀왔지만 이번에는 버스를 탔습니다.


입구에서부터 화려한 연등들이 방문객들을 반깁니다. 사찰에 연등이 걸린 것을 본 것은 참 오랜만인데 곧 부처님오신날이니 이미 준비를 하는 분주한 모습이었습니다. 이날은 날도 꽤나 좋은 편이어서 다른 때보다 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전에 방문했을 때 찍지 못 했던 관음상입니다. 천주교와 불교가 묘하게 어울린 모습으로 서 있는 관음상을 보면 종교라는 것이 끝끝내 추구하는 바는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불교나 천주교나 그런 면에서는 이전부터 잘 어울려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 크지 않은 절이기에 연등만으로 절 전체가 가득 찬 느낌이었습니다. 다시 찾아가 보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길상사에 들르기 전 이전 포스팅에서 적었던 소인형을 발견한 것도 큰 수확이랄까요. 

길상사를 다시 찾으면서 인연이라는 주제에 대해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단 사람간의 인연 뿐 아니라 세상의 어떤 것과도 인연은 맺어질 수 있는 것이고 그 마주치는 인연들을 하나하나 소중하고 간직하고 가꿔가다보면 삶 자체가 윤택해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20여일만에 꼭 같은 장소가 참 많이도 달라지더군요. 물론 장소 자체, 건물들 자체는 달라진 것이 없지만 그 장소와 건물을 둘러싼 분위기랄까..그런 변화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제법 빠른 것 같습니다. 사람도 별반 다르지 않아 한 사람 자체는 언제나 같지만 그 사람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는 매시간시간 본인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빠른 것이 인생사가 아닌가 합니다.

법정스님의 흔적 그리고 백석과 그의 연인 자야의 흔적이 어디엔가 여전히 남아있겠지만 오늘 이 순간만큼은 이곳을 방문한 이들의 흔적이 사찰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항상 마음이 평안하기를

세상의 힘겨움과 유혹과 번잡함과 고통 속에서도 스스로를 지켜갈 수 있기를

삶이라는 건 어쩌면 행복한 날들보다 힘겨운 날들이 더 많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지금 오감으로 세상을 느낄 수 있다는 그 자체가 큰 행복이며 축복이라는 것을 잊지 말기를

이제 우리 비록 다른 길에 서서 다시 마주할 수 없는 길을 걷겠지만

함께 한 시간들

그 시간들 속에서 그래도 행복했었던 

서로에게 힘이 되었던 기억들만 온전히 남아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미약하나마 힘이 되어 주기를

그래서 언젠가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에

그래도 다행이었어 라며

작은 미소 띄울 수 있기를


'사진 이야기 >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빨래집게에 대한 짧은 고찰  (2) 2012.04.08
가지 않은 길 혹은 가지 못한 길  (4) 2012.04.06
일상 그리고 한가함  (0) 2012.03.24
세종대왕 그리고 광화문  (0) 2012.03.22
봄, 인사동 거리  (0) 2012.03.18


어느 주말 오후. 삶에 대한 부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 순간처럼 여유로울 때는 없을 것 같다.

삶은 언제나 인간이라는 존재를 끊임없이 움직이도록 재촉하기 때문에 그 재촉에 하루하루 정신없이

지내다보면 그것이 마치 스스로의 삶의 전체인양 인식해버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럴 때는 주변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장 고개만 조금 숙여봐도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 것같은

어떤 존재가 나를 지켜보고 있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삶을 스스로의 의지대로 살아갈 수 있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겠지만

문득 자신의 일상을 돌아봤을 때 자신의 삶이 스스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수동태처럼 여겨진다면

그때는 잠시 하던 일을 멈추는 것이 낫다.


2001년 호수공원에서, Sony F505V
 

'사진 이야기 > 사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다림은 대상을 의미하지 않아도 좋다  (0) 2012.04.12
어느 봄날, 어수선한 포트레이트  (2) 2012.04.10
연인, 2011년 여름  (0) 2011.06.06
소통  (2) 2011.03.18
이외수 선생님  (6) 2011.02.19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