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가 주최한 매그넘코리아 전은 결국 가볼 수가 없어서 아쉽지만 인터넷 상에 올라오는 글이나 사진 그리고 기자들의 취재기록으로 만족해야 했다. 오늘은 토마스 휩커에 대한 글이 올라왔는데, 공감하는 점이 많아 그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토마스 휩커(Thomas Hoepker)는 역사와 고고학을 전공한 인물로 1964년에 매그넘에 합류하였고 1989년에 매그넘의 풀타임 멤버가 된 사람이다. '프레임 안의 프레임'으로 잘 알려진 그는 무하마드 알리와 911테러 사진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휩커의 이력과 사진에 대해서는 매그넘 사이트를 참조하자.

매그넘 코리아 강연회에서 그는  “좋은 사진에는 어떤 카메라, 어떤 인화지가 필요하냐고들 묻는다. 나는 좋은 신발을 사라고 대답한다. 실상 사진작업은 대부분 절망의 연속이다. 종일 희망을 가지고 쏘다녀도 헛일하는 일이 태반이다. 5, 6일을 그렇게 보낼 수도 있다. 7일째 좋은 사진을 건질지 누가 아는가. 기회는 선물처럼 온다. 예상치 못한 상황을 항상 대비해야 한다.”라고 이야기 했다고 한다. 원본 글

사진에 있어서 여전히 초보인 내가 생각하기에도 이 말은 틀리지 않는다. 내 경우도 보통 사진 촬영을 위해 장비를 들고나가면 슬라이드 1롤(36장)을 찍는다고 했을 때 1장을 건지면 그날은 성공한 날로 생각되었으니 말이다. 파인더를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맨눈으로 보는 세상과는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좋은 사진을 건지려면 한시도 파인더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하지만 파인더로 한 곳에만 집중하고 있으면 다른 어디에선가 있을지도 모르는 '결정적인 순간'을 잡을 수 없어서 흔히 손가락으로 사각형을 그려서 주위를 돌아보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손가락으로 절묘한 순간을 잡아냈더라도 다시 파인더로 그 구도를 잡아보면 영 마음에 들지 않기도 하고 그런 일이 수차례 반복되다 보면 제법 피로해지곤 한다. 슬라이드 한롤을 찍는다는 것은 사진가의 입장에서는 모든 정력을 집중해야 하는 고도의 정신적인 작업이고 한롤을 제대로 찍었다면 그날의 피로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촬영에서 돌아와 현상된 원판을 보고 또 다시 좌절을 해야 한다. 그나마 한 컷이라도 건진다면 하루의 피로가 보상을 받지만 36컷 모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어쩌겠는가 다시 카메라를 들고 나갈 수밖에 없다. 휩커가 이야기한 '기회는 선물처럼 온다'는 말은 그래서 사진을 찍는 이라면 제법 공감할만한 내용이다.

아무튼 휩커는 내가 늘 생각하고 있는 아주 중요한 말을 한 마디 던졌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모두 손가락으로 브이 사인을 해 좋은 사진을 망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내가 모델 촬영을 좋아하는 것도 모델들은 V사인을 그리지 않아서이고 스냅을 좋아하는 것도 피사체가 사진을 찍힌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왜들 카메라만 보이면 V사인을 하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 누가 설명 좀 해줬으면 좋겠다.

"제발 카메라 앞에서 V사인 좀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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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사진에 푹 빠져 있을 때에는 오로지 사진을 찍고 현상하고 스캔 작업을 하는 것만이 인생의 전부였을 정도였다. 오늘 문득 지난 스캔 파일 폴더를 뒤적이다 보니 올해 들어서는 한 장의 사진다운 사진을 찍지 못했다. 2008이라고 적힌 폴더는 텅 비어 있고...한참을 보관함에 넣어 둔 카메라는 오히려 낯설기까지 하다.

생각해보면 사진을 가장 열심히 찍던 시절이 일도 가장 열심히 했고 마음도 가장 편안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사진이라는 것은 사진가 본인의 감정이 그대로 이미지에 나타나기 때문에 정신이 멀쩡하지 않으면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직업 사진가들의 고뇌가 얼마나 클지 짐작이 간다. 후배 녀석이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여행을 가자는 제안을 해왔다. 어쩌면 다시 사진을 내 인생의 중심으로 끌어올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 선뜻 응했다.

보관함에 고이 모셔져 있는 카메라를 들어본다. 전원을 넣어보니 여전하다. 그동안 얼마나 쓸쓸했을까... 
어윗에 대해 잘 쓰여진 글이 있어 링크를 걸어본다. 한겨레 구본준 기자의 글인데 전반부는 읽어볼만하다..

마지막 부분은 기자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인 홍보가 들어가 있으니 윗부분만 죽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물론 매그넘 전시회는 그 자체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사진에 있어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다시금 생각하게 해 주는 멋진 작가다.

"개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엘리엇 어윗"

어윗의 홈페이지는

이곳

은염식 그러니까 필름 카메라를 버리고 디지털로 넘어 온지도 2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디지털로 넘어온 후 변한 것이라면 편리함을 얻은 대신에 감정이 담긴 사진이 적어졌다는 점이다. 예전 필름 카메라를 사용할 때는 촬영 장소와 노출에 따라 필름을 바꾸고 촬영을 하고 (슬라이드의 경우 필름값이 아까워 한 장 한 장 꽤나 신중했다) 충무로로 나가 현상을 맡기고 근처 샵에 들어가 구경도 하고 잡담도 하곤 했다. 몇 시간 후 현상된 필름을 찾아와 스캐너에 물리고 화면에 나타는 이미지를 골라내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필름값의 부담에서 벗어나 일단 많이 찍는다. 슬라이드 36장 기준으로 보통 한 롤에 마음에 드는 컷은 많아야 한 두컷, 디지털로 넘어온 이후에는 마음에 드는 컷이 꽤나 안 나온다. 신중한 노출 계산도 거리와 구도 측정도 적어졌고 신중하게 찍어야 할 장면도 스냅성이 되어 버렸다.

디지털 촬영을 할 때도 필름 촬영을 하는 마음가짐으로 하면 되지 않냐고 할 분들도 있지만 왠지 마음처럼 손이 따라주지 않는다. 이 점은 참 많은 반성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장비 자체에 대한 애정이 적어진 듯하다. 아날로그 카메라에서 느껴졌던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공감대가 디지털 카메라에서는 여간해서는 느껴지지 않는다. 이것이 내 개인적인 소양의 문제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디지털로 넘어온 이후 무언가 빠져 버린 공백이 있다.

특히나 흑백 사진을 즐겼던 내게는 디지털은 참 치명적인데... 다시 이전의 필름 카메라로 선뜻 건너가지 못하는 것은 또 무슨 미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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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의 결정적 순간

눈을 닮은 마법의 상자 "사진기"

그리고 순간을 위한 손의 투쟁

진화하는 인간의 욕심

아름다운 순간을 멈추고픈 욕망

끊임없이 발전해 가는 기술

사진 기술

그리고 결정적 순간을 원했던 한 남자

촬영을 위한 만반의 준비

소형 라이카 카메라, 35미리 표준렌즈

자연광

그리고

떨림이 없는 손

나는 삶을 포착하겠다고 살아가는 행위 속에서

삶을 간직하겠다고 마음먹고

숨막히는 느낌을 맛보며

언제라도 뛰어들 수 있는 채비를 갖추고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그가 포착한 순간

화려한 빛도

활기찬 움직임도 없는

단조로운 일상

그 속의 사람들

그렇게 얻은

결정적 순간의 개념

끊임없이 바뀌는 상(象)이 시간을 초월한 형태와

표정과 내용의 조화에 도달한 절정의 순간"

그리고 눈앞의 상황 모두를

한 장의 테두리 속에 가뒀다.

70여 년의 촬영

그러나 때와 장소만 밝힌 채

제목이 없는 그의 사진

단 250여 점

그리고 그가 찾아낸 마지막 결정적 순간

난 평생

결정적 순간을

카메라로

포착하길 바랐다.

하지만

인생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1908-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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