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오늘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내일도 또 눈소식이 있군요. 일전에 말씀 드렸지만 전 겨울 사진이 무척 많은 편인데..아마 3분의 2이상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원래 계획은 오늘 인왕산 기차바위를 구경가는 거였는데 이런 날씨에 어디 가냐는 어머니 호령에 포기하고 말았네요. 인왕산은 그리 높지도 않고 풍광도 좋은 편이라 조만간 올라가볼 생각입니다. 


제목에 적은 이야기는 특별한 것은 아니고 "조금 있으면 결혼하는 애가 '이 사람과 함께라면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하는 건 쉽지만, 이 사람과 함께라면 불행해져도 열심히 살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결혼할 결심을 한거야.'" 라는 이야기였습니다. 행복을 함께 나누는 것이 어려울까 불행을 함께 나누는 것이 어려울까 생각을 해 봅니다. 사실 쉽지는 않은 일이지요. 

제가 저 이야기에서 본 것은 "불행해져도 열심히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부분이었습니다. 사실 살다보면 온갖 일을 겪기 마련인데 불행이 닥쳤을 때 그래도 이 사람과 함께라면..이라고 생각하고 삶에 집중하고 열심히 할 수 있다면 그 불행마저 행복으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예전에도 그랬겠지만 요즘은 결혼을 하려면 집도 있어야 하고 차도 있어야 하고 혼수는 얼마에 등등 복잡한 것들이 참 많지요.. 온전히 사람만을 보고 맺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이런 생각은 비현실적이고 세상을 모르는 어리석음으로 치부되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제가 아는 분들 중에는 정말 "없이" 시작한 분들이 많습니다. 결혼할 때 통장 잔고가 100만원이었던 분도 있고 남편이 직업도 없이 공부만 하는 학생인 분도 있고(몇 달 전에 취직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분들의 선택에는 온전히 사람만이 있었을 뿐이었지요. 사람이 아닌 외적인 부분을 보고 만나게 되는 관계는 그 외적인 부분이 사라지게 되면 금방 식기 마련입니다. 아니 애초에 따스한 온기 자체가 없었겠지요. 아무튼 참 큰 용기를 가진 아가씨라는 생각이 들면서 앞으로 참 잘 살아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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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라이카R로 찍은 것인데 아마 R의 사진은 올라온 적이 없지 않나 싶네요. 지금은 R시리즈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유물이 되었는데(물론 렌즈는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지만요) 라이카가 그렇게 우수하다는 렌즈 성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SLR에서 참패를 한 것은 꽤나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물론 디지털로 넘어오면서는 S라는 괴물을 만들어냈지만요.. 사견으로는 라이카는 역시 M이 나은 것 같습니다. 

Leica R6.2, Summicron-R 50mm F2 , Kodak Supra, LS-40 


12월의 시작이라는 것은 나름대로의 여러가지 의미를 스스로에게 부여한다. 본격적인 겨울의 시작이 내게 주는 의미 중 가장 큰 것은 역시 '정리'라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이제는 희미하게 사라져 가는 지난 시간들의 수많았던 순간들을 고이 접어 과거라는 이름으로 봉인하는 일과 막연하게 혹은 혹시나..라는 미련과 기대를 남겨 두었던 미래를 좀 더 멀리 미뤄두는 것이랄까. 사실 겨울을 기다렸으면서도 한편에서는 내심 조금은 늦게 와 주었으면 바란 것도 이 정리를 해야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달력을 보고 지난 시간들을 하나 둘 돌아보며 조금은 아쉬운 웃음으로 넘겨 버릴 수 있게 되었고 모아 두었던 기억의 단편들을 보이는 것이던 혹은 보이지 않는 것이던 하나 둘 내 기억과 시야에서 지워나간다. 겨울의 기억이 유난히 많은 내게 이 계절은 생각만큼 쉬이 지나칠 수 없는 시기인 것은 분명하지만 오히려 이 계절이 아니면 머릿속 어딘가에서 방황하고 있을 기억의 조각들과 방안 곳곳에서 떠돌고 있는 과거의 흔적들을 온전히 찾아 떠나보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 본다. 


방 구석에 먼지가 수북이 쌓인채 잠들어 있는 커다란 여행 가방에서 오랜 기억의 흔적들을 끄집어 내고 이제는 다시 그것들을 마주 하지 않으련다는 생각을 하며 가방을 텅 비워가는 작업도 내가 겨울에 해야하는 일이다. 수많은 약속과 다짐들, 다정한 말과 글들이 이제는 부질없는 한숨의 이유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씁쓸하기는 하지만 그것들을 더 이상 내 주변에 놓아둘 이유도 없어졌고 오히려 이런 것들을 나 홀로 보관하고 있는 것이 나 자신뿐 아니라 이전의 기억들에게도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몇번을 망설이다 치워나간다.


생각해보면 지난 추억의 흔적들 특히나 물리적인 흔적들을 보관한다는 것은 꽤나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이 결혼까지 이르러 한 집에 살게 된다면 그 흔적들은 미래의 어느날에 다시 들춰보아도 즐거운 서로의 공감대가 되겠지만 이미 다른 사랑을 찾아 다니는 사람 혹은 다른 이의 아내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사람과 나눈 기억들을 나 혼자 보관한다는 것은 객관적인 시각에서 보면 찌질하거나 비참한 일이 아닐까. 남자의 기억의 방이란 그런 것이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남자의 사랑이란 원래 그렇게 유치하고 어리석은 모양이다.


혹시나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라며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 알게된 첫 소식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더라..라는 이야기일 때는 내심 섭섭하기도 하지만 한편에서는 시원하기도 한 그런 감정이 교차하게 되는데 그런 이야기를 듣고 '우리가 사귄 게 얼마나 오래인데.. 둘이 아니면 못 산다며..'라는 말을 되새기며 한탄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보편적으로 여자의 사랑은 그렇게 대상이 옮겨가면 지난 시간은 새로운 시간으로 덮어 버리는데 이것을 남자들은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다. 아마도 생물학적인 특성이 큰 이유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니 그런 이야기를 들었더라도 마음에 담아둘 필요는 전혀 없다.


아무튼 지난 기억들을 하나 둘 끄집어 내어 눈 앞에 놓고 그때의 감정과 지금의 감정을 찬찬히 바라본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고 여러 장면들이 눈앞에 스치지만 그래도 예전처럼 마음이 쓰리지는 않는 것을 보면 이제는 이런 물건들이나 기록들을 보관해둘 필요가 없어졌다는 나름의 확신이 서는 모양이다. 텅빈 가방을 보니 뭔가 휑한 마음이 들기는 하지만 오늘따라 바람이 많이 불어서..라고 위안을 해 본다.

요즘에는 사랑이라는 감정조차 내게는 사치스러운 것이 아닐까라는 조금은 회의적인 생각마저 드는 상황인데 나이가 하나 둘 더 들어갈 수록 뭐랄까 '사람'자체가 좋아 사랑이 시작되고 이어지는 확률은 극히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경험에서 비롯된) 생각때문인지도 모르겠다.


Nikon F3hp, Ai Nikkor 105mm f/1.8S, Ilford XP2. LS40

펭귄클래식 리뷰단에서 이번에 보내온 책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입니다. 한 번 정도는 들어보셨을 듯한 제목이지요. 아마 줄거리도 막연하게나마 알고 계신 분들이 계시리라 생각이 됩니다. 제 서평에 줄거리는 적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막연하게나마 알고들 계신 줄거리는 한 남자가 유부녀를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을 이루지 못 하게 됨을 아쉬워하며 자살한다는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그게 이 소설의 줄거리만 끌어내자면 전부입니다. 어쩌면 큰 이슈가 될만한 것도 아닌 이책이 거의 30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여전히 읽히고 있다는 것은 단순히 줄거리만 보고 읽을 책은 아니라는 의미도 됩니다.

이책의 내용은 괴테의 경험에서 끌어낸 것입니다. 흔히 고백 문학의 시초로 이책을 꼽는 것도 그런 이유지요. 여주인공 로테(혹은 롯데)는 괴테가 실제로 사랑한 로테의 이름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입니다. 소설에서처럼 괴테가 자살을 하지는 않은 것이 차이라면 차이일까요. 자, 이제 한번 생각을 해보도록 하지요. '사랑을 위해 죽다.' 그것이 가능하리라 생각하시나요? 여러 상황이 있겠지만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한 사람만을 살려야할 때 사랑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는 일은 최근에도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루지 못한 사랑때문에 생명을 끊는다는 것은 요즘의 사고방식에서 본다면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에 남자가 혹은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훌훌 털고 다른 사람을 만나면 돼" 아마도 요즘 사람들이 내리는 결론은 대부분 이렇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베르테르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을 어리석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오히려 사랑하는 이의 마음에 상처를 준 것이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비난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멀리서 사랑하는 이의 행복을 빌어줄 수 있을까요? 다른 이와 결혼한 사람의 미래가 행복하기를 바라며 축복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쉬운 질문은 아니라 생각됩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각자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책의 대부분은 편지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주인공 베르테르가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속에서 모든 이야기들이 펼쳐 집니다. 초반부만 해도 베르테르의 냉철함과 확고한 철학이 빛납니다.  

"인생이 꿈이라는 사실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 바이지만, 나 역시 어딜 가나 그런 느낌을 받는다네. 인간이 지닌 활동적인 탐구력 역시 한계에 갇혀 있음을 볼 때, 그리고 인간의 모든 노력이 궁극적으로는 욕망을 채우는 쪽에 머물며 이 욕망이라는 것도 사실은 우리의 불쌍한 생을 연장하는 데 봉사할 뿐..."

이라는 문장을 읽게 되면 베르테르가 감정적이라기보다는 이성적인 인물이고 나름의 확고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적어도 로테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죠. 베르테르는 욕망에 의해 흔들리는 인간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 역시 한편에서는 욕망의 일종인데 다른 편지에서는 남자가 여자에게 끊임없는 헌신을 바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까지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던 그가 로테를 만나고 기존의 생각이 무너지게 됩니다.

"사랑이 없는 세상이 우리의 가슴에 무엇일까! 빛이 없는 마법의 등잔이 다 무슨 소용인가!"

사람이 변해도 이렇게 변하나 싶습니다. 첫눈에 반하는 사랑을 해 본 분들이라면 공감이 되실텐데 저는 그런 사랑은 해 본 적이 없어서 누군가를 한번 만나고 이렇게까지 변하게 되는 것이 잘 이해는 가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기는 하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꼭 겪어보고 싶은 감정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베르테르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이루어진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사랑의 완성은 무엇일까요? 결혼일까요? 적어도 베르테르에게 있어서는 그런 것처럼 보입니다. 어떠신가요? 사랑을 한다면 최종적으로는 결혼을 해야 그 사랑이 온전해 지는 것인가요? 저는 이 질문에 선뜻 대답하기는 어렵습니다.

베르테르는 말합니다. "꼭 이래야만 하는가? 인간의 행복의 원천이 그의 불행의 근원이 되다니" 라고 부르짖습니다. 사랑으로 인해 행복하지 못하고 오히려 괴로워해야 하는 것이 그에게는 커다란 무게로 다가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로테의 남편에게서 총을 빌려 그 총으로 자살을 합니다. 물론 로테에게 장문의 편지를 남기고 말이죠. 어쩌면 굉장히 치졸하고 비겁한 행동처럼 보입니다. 이 모든 것을 겪는 로테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감정에만 도취된 모습을 보입니다. 

"나는 이 옷을 입은 채로 묻히고 싶습니다. 로테, 당신이 만져서 성스러워진 이 옷을 입은 채로 말입니다. 당신의 아버지에게 그것도 부탁해 놓았습니다."

여기까지 읽으면 마음이 답답해 집니다. 황순원의 소나기의 마지막 부분과도 비슷한 느낌이 드는데 정녕 로테를 사랑한다면 이렇게까지 잔인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편지의 마지막은 클라이맥스를 보여줍니다.

"권총은 장전되었습니다. 시계가 12시를 치네요! 자 이제! 로테! 로테, 잘 있어요! 잘 있어요!"

이 정도면 상대방에 대한 만행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남아 있는 이에게 모든 짐을 떠안겨 버립니다. '너를 사랑하지만 맺어질 수 없으니 내가 죽겠다'는 것인데 죽으면 조용히 죽지 사방팔방 다 이야기를 하고 당사자에게 편지까지 남깁니다. 요새말로 찌질해도 이렇게 찌질한 인간상이 있을까 싶습니다. 물론 이책에 대한 해석은 독자마다 차이가 큰 편인데 적어도 제가 읽기에는 이렇습니다. 베르테르는 사랑을 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내던진 것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책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일꾼들이 유해를 운반했습니다. 성직자는 한 사람도 따르지 않았습니다."

결국 괴테는 베르테르의 모든 행동이 옳지 않음을 스스로 밝히고 있는 셈입니다. 가톨릭이 지배하던 사회 안에서 성직자의 축복도 받지 못한 장례식이란 말 그대로 버려진 죽음일 뿐입니다. 여기까지 읽고나서야 앞부분을 읽으면서 느꼈던 베르테르의 비겁함과 찌질함이 해소됩니다. 마치 술에 취한 듯 자신의 감정에 도취되어 타인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편한 대로 생각하고 행동한 베르테르라는 인간에 대해 괴테는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 의도와는 반대로 이책의 출간 이후 수많은 자살자들이 양산되었는데 아마도 마지막 문장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까닭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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