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벗의 무따기(무작정 따라하기) 시리즈는 특히 일본어 편으로 많은 인기를 모았었다. 이번에 새로 출간된 책은 프랑스어다. 과연 이전의 일본어 편에서 쌓은 명성만큼 이번에도 따라만 하면 충분할까? 프랑스어는 영어의 어원이 되는 데다가 유럽은 물론 세계 여러 곳에서 사용되는 언어다. 하지만 특히 한국 남성들에게는 어색한 언어가 또 프랑스어다. 보통 고등학교에서 남학생들은 독일어를 제2외국어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 탓인데 요즘은 어떤가 모르겠다.


책을 펼치면 학습 진도표가 보인다. 2개월 과정이다. 언어를 배우는 책에는 이렇게 계획표를 저자가 만들어 주는 것이 좋다. 특히나 초보자들은 하루에 어느 정도 공부를 하면 좋을지 도무지 감을 잡기가 어렵기 때문인데 그래서인지 보통 책을 보면 앞부분은 지저분하고 뒤로 갈 수록 책이 깨끗해지곤 한다. 프랑스어는 특히나 초기 진입이 어려운 언어로 꼽힌다. 그렇기 때문에 별 거 아닌 것 같은 이런 시간표는 처음 공부할 때 많은 도움이 된다.


이 책에서 약간 놀란 것은 흔히 어렵게 생각하고 있는 프랑스어 문법에 대한 설명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문법이 어려운데 왜 문법에 대한 설명은 적을까? 무작정 따라하기 시리즈의 특징이 아닐까 싶은데 처음 외국어를 접할 때 복잡한 수식과 암기 사항들을 만나게 되면 쉽게 지루해지고 거부감마저 생긴다. 우리가 우리말을 배울 때 문법책을 먼저 펼쳐놓고 배우지 않았듯이 외국어를 배울 때도 문법은 일단 기초적인 수준만 가볍게 아는 것이 좋다. 그런 면에서 이런 편집 방식은 여전히 마음에 든다.


그리고 이책의 나머지 부분은 모두 의사소통 즉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바로 실전이라는 말이다. 인생이 실전인 것처럼 언어도 실전이다. 문법 이론 따져가며 머릿속에서 번역하지 말고 바로 말을 하자는 의미다. 다만 조금 아쉬운 것은 대화 주제가 기존의 외국어 학습 서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일본어 무작정 따라하기와 조금 다른 부분인데 좀 더 일상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주제들을 잡아 주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전체적으로 내용이 거의 다 일상의 대화다. 좀 더 많은 사례들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여전하지만 책의 분량 문제도 있으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가능하다면 프랑스어편도 시리즈로 출간이 된다면 좀 더 많은 그리고 현실적인 주제들을 다룰 수 있을텐데 그러려면 이책이 많이 팔려야겠지.


미리보는 프랑스라는 미니 코너를 통해 프랑스의 관광지를 소개하고 있는데 공부하다가 잠깐잠깐 쉴 때 읽어보면 좋다. 이제까지 몰랐던 이야기들도 제법 많이 나온다. 좀 더 바란다면 이런 코너에서도 생활 프랑스어를 배울 수 있도록 박스 기사를 넣었으면 어떨까 싶다. (물론 문법만 아예 밖으로 빼내서 소개하는 코너도 있긴 하지만 여행과 직접 연결되는 어휘나 표현은 좀 더 실감이 난다)


본문은 이런 식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는데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는 mp3로 같이 공부하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외국어는 발음이 중요한데 프랑스어는 아무래도 좀 더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든다. 처음 프랑스어를 배우는 경우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아 듣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책의 내용과 음성 파일을 대조해가며 공부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부록으로는 어렵다고 소문난 프랑스어 동사 변화를 짬짬이 공부할 수 있도록 만든 소책자가 들어있다. 프랑스어는 처음에는 참 다가서기가 어렵지만 공부를 할 수록 익히기가 편해진다고 한다. 길벗의 무따기 시리즈의 막내가 된 프랑스어 무작정 따라하기와 함께 프랑스어에 도전해보면 어떨까?



프랑스어 무작정 따라하기


아침 6시에 집을 나섰다. 아직 해 뜨기 전이라 사방이 어둑어둑하다. 의정부까지는 제법 먼 거리다. 이동 시간만 2시간은 잡아야 한다.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나오기는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지하철은 한산하다. 한 1-2시간후면 사람들로 발 딛을 틈이 없을 정도로 붐비겠지. 같은 장소도 시간에 따라 이렇게 다르다. 


2013년의 시작은 둘레길이다. 산행을 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작년부터 시작한 내 나름대로의 일정을 일단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나선 길이지만 벌써 15구간이다. 오늘 2구간을 걸었으니 이제 5구간 남아있다. 멀게만 느껴지던 완주도 이제 종반에 접어들고 나니 무언가 해내고 있다라는 기쁨보다 아쉬움이 더 많다. 둘레길은 내겐 그런 기억을 남기고 있다.


안골길은 말 그대로 안골 계곡을 거쳐 지나가는 길이다. 사패산 자락을 먼 발치에서 보면서 아주 느긋하게 걸을 수 있는 산책로 정도의 구간이다. 하지만 지난 눈이 여전히 덮혀 있어 아이젠이 없다면 여간해서 지나기 힘든 구간이 제법 많다. 집 주변을 걷다가도 넘어지기 쉬운데 하물며 산자락이야 오죽할까. 들고 다니기는 번거롭지만 신발에 붙어 있는 그 쇳조각에 그날 산행의 안전을 모두 맡겨야 한다.


오늘은 날씨가 그리 춥지 않았고 바람도 거의 불지 않아 겉옷을 벗고 걸어야할 정도였다. 패딩을 배낭에 넣고 자켓 하나를 또 넣으니 배낭이 무슨 원정대처럼 빵빵해졌다. 겨울 산행에는 배낭이 일단 큰 것이 좋다. 리터수로 이야기들을 많이 하지만 그건 사람마다 많이 다른데 혼자 다니는 내 경우라면 35리터 정도면 당일 산행에 빠지는 것 없이 다 챙겨 넣을 수 있다.


조금 올라가니 약수터가 하나 있다. 요즘은 약수터 보기도 쉽지 않고 또 찾더라도 여간 해서 그 물을 마시기가 쉽지 않다. 예전에는 약수터에서 나온 물이라면 벌컥벌컥 아무 걱정없이 마셨었는데 이제 와서는 이것저것 따져야 하는 시대가 됐다. 그러고보면 내 지난 기억에서 이제는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것들이 하나둘 늘어감을 느낀다. 이것이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 싶다. 가까이 가서 보니 수질부적합 판정을 받아 마실 수 없다고 한다. 수질 부적합이라..그 원인은 다름 아닌 사람일텐데 우리 스스로의 추억은 물론 후세에 전해 줄 미래까지 사람들은 이렇게 하나 둘 없애가고 있다.


아이젠을 장착하면 눈 밟는 소리가 한결 커진다. 제법 걷는 느낌이 든다. 양손에 든 스틱을 앞발처럼 움직이며 걷는다. 스틱을 사용하면 네발이 된다던데 요즘 그말이 이해가 간다. 예전에는 오히려 번거롭고 불편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외면했었는데 막상 사용해보고나니 이젠 없으면 허전하다. 습관이란 이렇게 강한 법이다. 습관을 잘 이용하면 자기 스스로를 조련(?)하는 일도 그리 어렵지는 않으리라.


저 멀리 보이는 산이 도봉산인지 북한산인지 알 길이 없다. 거리로 보면 아마도 북한산이 아닐까 싶은데... 산 아래로 짙은 안개가 좍 깔린 것이 제법 멋드러져 한참 바라봤는데 사진으로 담아보니 안개가 어디있는지도 잘 보이질 않는다. 언젠가는 운해가 짙게 깔린 산 정상에 앉아 사발면이라도 먹어볼 생각이다. 둘레길에 오는 날은 흐린 날이 더 많았다. 오늘도 날이 흐린 편인데 내심 파란 하늘을 찍어오려던 계획은 좌절됐지만 흐린 날은 또 흐린 날대로의 운치가 있다.


이 구간을 걷다 보면 이런 군사시설(이라고 하기도 뭐한)들을 제법 보게 된다. 관리는 사실 거의 포기한 듯 하고 오래된 폼이나 생김새를 보면 지난 한국전쟁의 흔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전쟁은 가장 잔인하면서도 가장 인간적인 현상이라 생각한다. 요즘도 전쟁은 1초를 다투며 일어난다. 총칼을 들었건 아니건 한 존재와 외부 세계, 한 존재와 내부 세계와의 전쟁은 한 순간도 그칠 날이 없다. 


막아선 철조망에 이름 모를 꽃이 피어 있다. 참 묘한 기분이 들었는데 줄기가 철조망을 타고 올라가며 꽃을 피우고 있다는 게 뭐랄까 굉장한 모순같아 한동안 그 앞을 서성였다. 너무나 반대되는 이미지를 가진 것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모습이다. 어울린다는 것은 무엇일까? 비슷한 존재가 만나야 잘 어울리는 것만은 아니다. 전혀 다른 존재가 만나도 충분히 조화를 이룰 수 있다. 그럴 수 없다는 선입견을 없앤다면...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참 단단하게 엮여 있다. 철조망은 줄기를 받아 들였고 줄기는 그 받아들임을 그대로 이용해 생명을 이어간다. 관계란 이렇게 되지 않으면 좀처럼 지속되기 어렵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관계의 유지에는 희생이 필요한데 서로 상대에게만 그 희생을 기대하거나 요구하다보니 문제가 일어난다. 스스로 희생을 할 생각은 애초에 접어둔채 "왜 너는 나에게 맞춰주지 않냐"고 울분을 토한다. "네게 맞추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고 묻지 않는다. 자신에게 누가 어울릴까는 묻지만 내가 누구에게 어울릴까는 묻지 않는다.


조금 더 걷다보니 특이한 지점에 이른다. 분명 산길인데 제설작업이 되어 있다. 산의 눈을 치울 정도의 능력을 가진 것은 "의무복무를 하는 군인이나 경찰"이 유일할텐데 이 근처에서 군 부대를 본 적은 없는데 어쩐 일인가 싶다. 설마 306보충대에서 인원을 가져다가 이곳의 눈을 치운 것은 아닐텐데 뭔가 희한한 산길이다.


이 정도면 사실 군인이 한 거라고 보는 게 맞지 않나 싶다. 상당한 거리를 질서정연하게 눈을 싹 치워놓았다. 둘레길의 경우 제설작업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니 국립공원에서 한 것은 분명히 아니고 대체 누가 이런 만행(?)을 저질렀을까 궁금해진다. 걷는 이의 안전을 위해 충분히 눈을 치우는 것을 정당화할 수는 있겠지만 여긴 애초에 산길이고 이곳을 오는 이라면 눈 덮힌 길을 당연히 기대하고 올텐데 이것은 좀 아니지 싶다.


추측이지만 이 제설작업을 주도한 곳은 의정부시가 아닐까 싶다. 15구간 안골길은 국립공원 소속이기도 하지만 의정부시에도 속해 있다. 그리고 이 구간은 의정부시에서 소풍길이라는 이름으로 대대적인 정비를 해 놓은 곳이다. 걷다 보면 곳곳에서 국립공원과 경쟁이라도 하는 듯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처음에는 그냥 별 생각이 없지만 걸으면 걸을수록 그리 좋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물론 내 오해일 수도 있겠지만


소풍길이라는 이름이 지어지게 된 유래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에서 인용한 거라 한다. 이 시는 읽을 수록 참 마음이 짠해지는데 나이가 들어갈 수록 점점 더 그 느낌이 진해진다. 세상살이...인생이라는 것이 얼마나 한 순간인지 이제는 조금은 알 것도 같다. 그래도 소풍처럼 끝나는 날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랄 뿐...


예전에 적어 두었던 귀천이다. 둘레길에서 이 시를 만나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시인들의 언어란 확실히 우리네 소시민의 언어와는 사뭇 다르다. 짧은 문장에 그토록 많은 이야기들을 그리고 의미들을 담아낸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여기저기 이런 흔적들이 널려 있는데 둘레길을 걷는 입장에서만 보면 썩 유쾌해보이지는 않지만 소풍길을 걷는 입장에서 보면 둘레길 표지가 또 눈에 거슬릴 수도 있겠다 싶다. 조금전까지 '뭐지? 경쟁이라도 하려는 건가?'라고 생각했었던 내가 참 부끄러워진다. 길이라는 것은 애초에 누구의 것도 아니건만 이런 이름이면 어떻고 저런 이름이면 또 어떠랴. 그저 사람들이 그 위를 걸어갈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멀리 사패산이 보인다. 지난 번 걸음에서는 올라가보고 싶은 충동을 꾹꾹 눌러 담았는데 오늘은 왠일인지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산이 부르는 날이 있다는 것은 맞는 말같다. 오늘은 사패산이 나를 부르는 날은 아니었던 게다. 오늘은 북한산이 손을 길게 내민 그 자락을 돌아보는 것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전부를 하는 셈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욕심은 화를 부른다. 특히 자연 앞에서는 말이다.


15구간의 종착점은 16구간 보루길의 시작이다. 보루길은 북한산둘레길의 구간 난이도 '상'인 마지막 구간이다. 이곳을 기점으로 약간 더 올라가면 본격적으로 보루길과 마주하게 된다. 이곳 역시 길이 제설작업이 말끔하게 잘 되어 있다. 아이젠을 벗었다가 신었다가 하는 작업을 오늘은 제법 여러 군데에서 해야했다. 물론 흙길을 아이젠을 신고 못 갈 것은 아니지만 걸어본 사람이라면 선뜻 그런 모험을 하지는 않을게다.


회룡탐방지원센터다. 다소곳한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이곳을 기점으로 북한산둘레길을 이어갈 수도 있고 도봉산 등산을 시작할 수도 있고 사패산으로 오를 수도 있다. 도봉산 쪽으로 이동한다면 그대로 북한산으로 이어갈 수도 있는 요충지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오늘도 제법 많은 이들이 이곳을 오고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저 탐방객수 조사하는 개찰구를 반대로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입구로 들어가자마자 바로 나오는 식으로 빙글빙글 돌면 숫자가 올라갈까? 별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길게 난 도로를 걷는다. 멀리 사패산이 보이고 아버지와 딸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걸어오는 게 먼발치로 보인다. 여자아이가 어찌나 즐거워하는지 보는 내가 다 웃음이 났다. 가족이란 참 좋은 것이구나. 내게는 저런 아빠가 될 기회는 없겠지만...


난이도 '상'구간 답게 입구에서부터 겁을 준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둘레길의 '상'코스는 산행에 비하면 크게 어려운 편은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 구간은 계단과 오르막이 주를 이루기때문에 눈이 녹기 전까지 아이젠은 필수로 가져 가야 한다. 오른쪽으로 사패능선으로 향하는 길이 보인다. 저 능선에 일단 오르면 북한산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다.


눈이 하얀 물감을 튕겨 놓은 것처럼 군데군데 번져 있는 모습이 제법 멋드러졌다. 조선 어느 화가의 그림첩에 나올만한 풍경이 아닐까 싶다. 물론 사진보다 더 멋지다. 오늘은 어쩐 일인지(아니면 원래 그런지) 사진이 잘 안 받는 날이다. 


길게 이어진 계단들. 둘레길을 걸으면서 최근 몇년간 가장 많은 계단을 오르내렸다. 아직은 무릎이 큰 이상없이 버텨주어서 다행인데 발바닥 통증은 어느 정도 거리를 걸으면 금세 재발하기 때문에 여기쯤 와서는 꽤 속도가 느려졌다. 대략 5km이상을 걸으면 발바닥에 통증이 시작되는 것같은데 최대한 통증을 줄여주는 걸음법으로 천천히 걸어본다. 역시나 오늘도 화면 비율 버튼이 돌아가서 여기서부터 사진이 또 4:3이다.


멀리 보이는 의정부 시내의 모습이다. 가장 오른쪽에 보이는 산은 수락산이라 한다. 그러고보면 서울 주변에 참 산이 많기도 많다. 그만큼 가볼 수 있는 곳이 많다는 말이니 행복한 일이다. 이 사진은 파노라마로 만든 사진이니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다.


보루길이라는 이름에는 이런 유래가 있다. 좀처럼 현장에서 그 흔적을 찾기는 어려워서 아쉬웠다. 설명하는 글을 읽다보면 참 어렵게도 썼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말이나 글은 쉽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쓰는 것이 가장 좋은데 어쩐 일인지 우리는 어려운 단어나 복잡한 문장을 쓰는 것을 더 알아준다.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들어도 감탄의 박수를 보내기도 한다. 지적 허영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내 글도 가만히 읽어보면 그리 쉬운 편은 아니어서 한 번 더 반성을 해 본다.


안골길에 비해 다닌 사람의 수가 적어서 그런지 눈이 아직 온전한 곳들이 제법 많은 구간이다. 저렇게 쌓인 눈을 보면 안으로 들어가 꾹꾹 밟고 싶은 충동이 드는데 나이가 드니 나 자신에게 눈치가 보인다. 오가는 사람도 없으니 들어가서 눈장난이라도 쳐도 좋으련만 괜한 눈치만 늘었나보다. 대신 쪼그리고 앉아 한참 눈을 들여다본다. 참 신기한 존재다. 눈이라는 것은...


어떻게 바람이 불고 빗물이 흘러내리면 바위가 저런 모양이 될까? 산에 있는 바위들은 생긴 것도 특이한 것들이 꽤나 많고 이름도 희한한 것들이 많다. 이 바위는 이름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해골바위 정도면 어울리려나? 그러고보면 산에 있는 온갖 이름들은 참 원초적인 것들이 많다. 생긴대로 보이는대로 이름을 턱 붙여놓는데 그 이름을 생각하고 바라보면 정말 그렇게 느껴지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속세에서는 쓰지 않는 표현들을 산에 오면 만날 수 있는 것도 산행의 잔재미 중의 하나다.


계단을 걷고 오르막을 올라 다리를 건너고 또 오르막을 오르고... 이번 구간은 그런 느낌이 내내 이어지는데 그리 긴 편은 아니기 때문에 지루하지는 않다. 게다가 눈까지 쌓여 있어 발걸음이 조심스럽기 때문에 잔뜩 긴장을 하고 걸어야 하니 잠시 쉬는 틈에 보면 온몸이 뻐근하다. 운동부족이 맞긴 맞는 모양이다. 좀 더 자주 산행을 해야 하나 싶지만 과욕은 늘 화를 부르는 법.


계곡을 타고 흐르는 물은 이 추위에도 얼지 않았다. 손이라도 담가볼까 어디로 내려가야 하나 생각할 무렵에 앞쪽에서 여러 명이 몰려오는 바람에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어 아쉬웠던 계곡물. 삼각대를 가져올 생각을 못했기에 흐르는 물의 느낌을 살리지 못한 게 아쉽기도 했다. 사진이란 보통 한 순간을 멈추어버리기 때문에 기억들 역시 하나의 조각으로 존재한다. 저속 셔터는 그런 조각을 조금 늘여주는 역할을 한다. 


이제 보루길도 막바지다. 구간 난이도는 높지만 상대적으로 거리가 짧아 큰 어려움없이 걸을 수 있다. 여기쯤 오니 시간이 11시가 조금 넘었다. 일어난 지 5시간만에 여기까지 이른 셈이다. 집에서 의정부까지 오는 시간이 2시간이 넘게 걸렸으니 2구간을 모두 걷는 데 대략 3시간 조금 넘게 걸린 셈이다. 3시간 정도의 걷기는 비록 산길이기는 해도 크게 무리없는 걸음이다. 발바닥 통증은 이젠 치료보다는 덜 아프게 라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기에 걷기나 산행을 멈추는 일은 없지 않을까 싶다.


포대능선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이곳에 적멸보궁이 있다니 조금 놀랐다. 그리고 이제 둘레길이 다시 서울로 접어든다. 서울의 동쪽 가장자리에서 출발해 한바퀴 빙돌아 경기도를 거쳐 다시 서울로 들어가게 되는 것. 새삼 멀리 돌아돌아 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둘레길 전체가 71.8km니 이제 50km 조금 넘는 거리를 걸어왔다.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은 거리다. 걸어온 거리보다 걸어온 마음이 더 크다. 그리고 그 마음을 고이 접어 담아 둔다.


17구간 다락원길을 알리는 팻말을 보며 오늘 걸음을 마무리짓는다. 오늘은 다른 날에 비해 기분이 조금은 가라 앉은 그런 날이었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은 탓이다. 나 혼자만 열심히 하고 힘을 낸다고 해서 바뀌지 않는 현실에 자꾸 부딪히다보니 다소 지쳤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대로 주저 앉을 수 없는 것도 현실인지라 그것이 요즘 나를 더 답답하게 만들고 있다.

새벽같이 집을 나서 둘레길을 걸은 것은 그런 현재의 모습에 대한 반성 그리고 짧은 시간과 거리지만 무언가 이루어낼 수 있고 이루어냈다는 성취감을 나 자신에게 일러 주고 싶어서였다. 하루하루 크게 변하지 않는 일상을 보내다보면 쉽게 마음이 지쳐버린다. 어디까지 가야하지? 얼마나 더 가야하지? 알 수 없는 막연함에 기운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길게 보면 지금의 이 순간들은 둘레길의 한 구간만큼이나 짧다. 한 구간을 내 발로 힘을 내 걸을 수 있다면 지금 이 순간도 내 힘으로 이겨낼 수 있다.

내가 산행을 시작한 이유. 아마도 가장 큰 것은 이것이지 싶다. 그리고 그에 덧붙여 자연을 바라보며 느끼는 겸손. 이 두 가지가 나를 계속 산으로 이끈다. 앞으로는 일주일에 한 번은 어디든 걸어야겠다고 생각을 해 본다. 둘레길은 아마도 2월 정도면 전 구간을 마치게 될 것 같다. 전체 걸음을 마치더라도 몇몇 구간은 다시 걸어볼 생각이다. 그 구간을 걸었던 계절과는 다른 계절에 다시 한 번 만나보고 싶은 그런 구간들이 몇곳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한 번 끝을 냈다고 해서 다시 돌아보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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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를 마감하는 날. 어디를 올라가볼까 생각을 했다. 원래는 북한산을 오를까 했는데 왠지 마음이 남쪽으로 향해 청계산으로 발길을 돌렸다. 

청계산은 높이 618 m이며 주봉인 망경대(望景臺)를 비롯하여 옥녀봉(玉女峰) ·청계봉(582 m)·이수봉(二壽峰) 등의 여러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이수봉은 무오사화(戊午士禍)에 연루된 정여창이 이곳에 숨어 위기를 두번이나 모면하였다고 지어진 이름이다. 서쪽에 관악산(冠岳山), 남쪽에 국사봉(國思峰)이 솟아 있으며, 이들 연봉과 더불어 서울의 남쪽 방벽을 이룬다. 남북방향으로 뻗어 있는 능선은 비탈면이 비교적 완만하며 산세도 수려하다. 서울 근교에 위치한데다 서쪽 기슭에 서울대공원을 안고 있어 하이킹 코스로 찾고 있다. 정상인 망경대는 출입이 통제되어 있어 북쪽의 청계봉이 정상을 대신하고 있다. 남서쪽 중턱에는 신라 때에 창건된 청계사가 있고, 동쪽 기슭에는 경부고속도로가 동남방향으로 지난다. -출처 두산대백과 사전


청계산도 오르는 코스가 제법 많은데 보통 매봉까지 많이 가는 편이다. 오늘은 옥녀봉에 들러 매봉까지만 가보기로 했다. 만경대와 이수봉은 미뤄두어도 괜찮다. 흔히 산에 오를 때 봉우리를 많이 정복한다던가 얼마나 빨리 올랐다던가 하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는데 그렇게 한번에 다 올라가 버리거나 마치 달리기를 하듯이 산을 오르는 것은 어쩐지 나와는 어울리지 않다 싶다. 산이 줄 수 있는 것들은 가능한 많이 받아오려면 천천히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며 걸어야하지 않을까...

북한산둘레길에 대한 글을 쓸 때도 그렇고 이전의 산에 대한 글을 쓸 때도 거리와 시간이 적힌 도표를 올리곤 했는데 이제사 생각해보니 그런 숫자에 얽매어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이 된다. 물론 그 자료들이 후에 비슷한 곳을 가는 이들이나 나 자신에게 참고자료가 될 수는 있겠지만 자칫 그 수치에 연연하며 정작 보고 듣고 느껴야할 것들을 잃고 있지는 않았었는지 아쉬운 마음이다. 일단 이번 글에서는 거리, 시간이 적힌 도표는 한번 빼보기로 한다.


등산로 입구에서 간단하게 정비를 하고 길게 난 길을 천천히 걷는 것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역시 산은 눈에 덮혀 있을 때 제맛이 난다. 발 아래로 들려오는 뽀드득 소리, 스틱이 눈에 미끄러지는 소리...그렇게 눈이 만들어내는 소리와 겨울이 주는 차가운 바람의 향기에 취해 천천히 길을 가 본다. 오늘은 오랜만에 메인 카메라를 들고 나왔다. 겨울에 이 녀석을 들고 다니는 것은 꽤나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서울 날씨가 올해 들어 가장 추운 상황에서 믿을 것은 역시 이 녀석뿐이다.


사람들이 주로 가는 매봉으로 가는 길도 제법 많다. 하지만 일단은 옥녀봉에 갈 생각이다. 왠지 하얀 소복을 입은 처자가 '서방님 어서 옵소서'라고 부르는 것같은 느낌이 들어서인데 정말 그런 처자를 만나게 되면 이미 이 세상 사람은 아닐테니...


청계산은 서울에서 접근성이 워낙 좋고 연예인들이 자주 출몰한다하여 남녀노소가 자주 찾는 산이다. 산세가 그리 험한 편도 아니고 길도 잘 나 있어서 그렇겠지만 역시 간밤의 눈은 이미 여러 등산객들의 발자국을 따라 잘 다녀진 후였다. 겨울 산행이 매력적인 이유는 역시 눈이다. 눈 내린 산을 걷는 느낌은 참 무엇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가 막히달까


청계산에도 진달래 능선이 있다. 조금 더 위로 올라가면 개나리 능선도 있는데 주변에 그 꽃들이 많이 피기때문에 그런 이름을 지어주었지 싶다. 물론 겨울이니 진달래꽃 만발한 풍경은 볼 수 없지만 대신 눈꽃이 핀 것을 볼 수 있으니 나무 위에 쌓인 눈꽃들을 때로는 진달래로 때로는 개나리로 생각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사람들이 많이 다녔다고는 하지만 계단들은 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눈에 푹 파묻혀 있다. 겨울 산행에는 스틱(콩글리쉬라 한다)을 꼭 가져가는 것이 좋은데 눈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눈으로만 봐서는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스틱은 미끄러짐을 예방하는데 아주 중요한 수단이다. 오늘도 여러 번 넘어질뻔 했는데 스틱을 부여잡고 버텼다. 물론 대신 손에 가해지는 무리는 어쩔 수 없지만...


진달래의 어원은 이렇다. 피맺힌 슬픔이 꽃잎에 닿아 붉은 색이 되었다는 것. 이별의 한이 어느 정도이면 피눈물이 날 수 있을지 상상하기도 어렵다. 그러고보면 우리 설화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참 많이 있다. 망부석 설화도 그렇고 대부분 이별을 겪은 여인들의 한이다. 왜 우리 여인들은 그리도 한이 많았을까.


능선길은 역시 바람이 차다. 안경을 쓴 탓에 뭔가 얼굴에 쓰면 안경이 온통 뿌옇게 되는 까닭에 그냥 귀만 가리고 걷는다. 두툼한 겨울용 잠바는 이미 배낭 안에 들어있기 때문에 얼굴을 바람으로부터 막을 대책이 없다. 마스크를 쓰고 고글을 끼면 된다고도 하는데 안경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겨울 산행의 특색이기도 하다. 


진달래능선을 타고 옥녀봉으로 이르는 길은 아주 무난하다. 게다가 천천히 걸으면 땀이 날 틈도 없다. 오히려 찬바람을 어찌 피할까 고민을 하다보면 어느새 정상에 이르게 된다. 산행이 부담스럽거나 처음 가보는 경우라면 옥녀봉만 간단히 둘러 보고 내려오는 것도 괜찮다. 무난한 길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아주 짧은 길은 아니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거나 산책을 하기에 적당하다.


능선에서 바라본 양재쪽 전망. 35mm렌즈는 참 편하기도 하면서 어떤 때는 애매하기도 한 화각인데 보통 사람이 두 눈을 뜨고 바라보는 각도가 대충 35mm렌즈와 비슷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렇게 넓게 펼쳐진 풍경을 접하게 되면 뭔가 부족해보인다. 실제로 보이는 것은 사진보다는 가깝고 넓기 때문인데 그런 화각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어떤 렌즈도 사람 눈보다 나을 수는 없으니까..


나 다시 진달래로 피어 그대 가슴으로 스몄으면, 나 다시 진달래로 피어 그대 타는 가슴으로 스몄으면... 작사가들은 시인들 못지 않다. 거기에 음악까지 어우러지면 감정의 전달은 몇배가 된다. 겨울산에서 빨갛게 물든 진달래를 떠올릴 수 있게 만든 그런 가사였다. 


산에 오르는 목적이 정상에 다다르기 위함은 분명 아니지만 정상이란 한번 숨을 고를 수 있는 그런 여유를 주는 곳이다. 오를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다는 표현으로 인생을 등산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살아간다는 것이 그렇게 정상이 있고 바닥이 있고 하는 식으로 구분지어지지는 않는다고 생각된다. 굳이 산행을 인생에 비유하기보다는 걸음걸음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어느 소원들이 쌓여 저렇게 돌탑이 되었나. 아니면 다른 무엇을 기리기 위한 것일까. 오늘 돌아본 코스 중에 유일하게 만난 돌탑이었는데 쌓인 폼이 예사롭지 않다. 저 돌을 쌓은 사람은 이미 이곳에 없지만 그 사람이 남긴 감정이랄까 그런 느낌은 여전히 이곳을 맴돌고 있었다. 그 바람은 이루어졌을까? 아니면 영원한 꿈으로 남아 있을까?


다른 나무들과 떨어져 눈밭에 나무 하나가 던져진 듯이 자라고 있다. 조금 더 가까이서 사진에 담았다면 큰 나무라 해도 손색이 없겠지만 실제로 이 녀석은 아주 작아 눈에 잘 띄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줄기며 가지며 무엇 하나 큰 나무들에 비해 손색이 없다. 이 추운 겨울날을 온전히 몸으로 받아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존재일지라도


옥녀봉 정상에서 보이는 과천 방향. 저 멀리 관악산이 보인다. 이렇게 보니 꽤 웅장하다. 오늘 관악산에 오른 분들도 제법 많겠지 싶다. 사진에는 잘 안 보이는데 아래 쪽으로 경마장이 보인다. 경마장은 전에 연애할 때 한번 가봤는데 돈을 쓰지 않을 생각이라면 꽤 괜찮은 데이트 코스다. 물론 지독한 담배연기는 감수해야 하는데... 경마장도 금연이 추진될까?


온길을 되돌아 이제 매봉으로 향한다. 옥녀봉 쪽에서 매봉으로 가려면 가장 빠른 길은 역시 이길인데 지도에서 깔딱고개라고 부르는 곳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깔딱고개와는 아주 다르게 생겼다. 계단이 전체적으로 한 1,500개 정도 되는 것같다. 올라갈 때는 괜찮은데 하산길로는 이길은 택하지 않는 편이 좋다. 무릎에 무리가 많이 가고 저렇게 눈이 쌓인 계단은 아이젠이 없으면 넘어지기 십상이다.


계단마다 번호를 적어두었다. 이렇게 번호가 적혀 있으면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사람들은 기운이 나기보다는 힘이 더 든다. 게다가 위를 올려다봐도 계속 계단만 있다면 약간 막막한 느낌도 든다. 하지만 청계산의 이 구간은 그리 길지 않기 때문에 숨이 넘어갈 정도의 깔딱고개라고 하기는 약간 어색하다. 설악산 오색약수쪽 계단 정도 되면 '아, 이거 보통 일은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지만...


길은 계단과 약간의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서초구에서는 인체공학적 설계를 한 계단이라고 강조를 하고 있는데 내 몸이 이상한 건지 그렇게 강조가 된 계단은 오르기가 더 어려웠다. 오르는 계단은 다리 힘보다는 팔 힘으로 올라가야 피로가 덜 하다. 오늘은 SLR을 가져와서 목에 매고 다녔던지라 양손이 비교적 자유로워 스틱을 제대로 활용했다.


이 정도 오면 거의 다 와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청계산의 정기를 준다는 바위인데 누구 생각인지 참 기가 막히게 이름을 붙여놨다. 덕분에 저기 조금 서 있으면 사람들이 저 틈 사이로 부지런히 빙빙 도는 것을 볼 수 있다. 많이 돌 수록 정기를 많이 받는 모양인지 4-5번 도는 처자분도 있었다. 기가 많이 부족해 보이는 얼굴이긴 했지만...


매봉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이른 아침에도 제법 많은 이들이 이쪽 코스로 오르고 있었다. 겨울 산행의 잔재 중의 하나는 다른 분들이 입고 온 옷이나 신고 온 신발 메고 온 배낭 등을 관찰하는 것. 청계산은 다른 산에 비해 오르기가 어렵지 않아 등산화를 신지 않고 운동화만으로 오르는 분들도 제법 많다. 다른 계절에는 괜찮겠지만 겨울 특히 눈 내린 날이라면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이제 거의 막바지다. 이곳을 오르면 매바위를 만날 수 있다. 사실 매봉보다 매바위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더 좋다. 오늘은 비교적 맑은 날이어서 제법 멀리 보이지 않을까 생각을 하면서 오른다. 사람들이 없는 틈을 노려 사진을 찍으려다 보니 제법 멈추는 시간이 많아서인지 그렇게 힘이 들지는 않았던 산행이었다. 나와 비슷하게 가던 오리털 패딩으로 무장한 어느 분은 결국 쉼터에서 얼굴이 시뻘개져서 숨을 몰아쉬고 있었는데 땀이 죽죽 흘러내리는 상황에서 패딩을 입고 걸어가는 것은 정말이지 말리고 싶다.


청계산 매바위. 해발 578미터다. 이 바위는 제법 위가 널찍해서 여러 명이 올라가도 넉넉하다. 정면으로 뻥 뚫려있어서 아주 경치가 좋은데 생각보다 시야가 아주 멀리까지 보이지는 않아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속이 시원해질 정도로 멋진 경치를 볼 수 있는 장소다. 매봉은 이곳에서 100미터만 더 이동하면 되는데 매봉에 도착하면 사람들로 북적이기 때문에 정비할 것이 있다면 이곳에서 하는 것이 좋다.


매바위에서 바라본 전망이다. 이 사진은 파노라마로 붙여서 만든 사진이니 눌러서 크게 보면 된다. 아무래도 여러 장을 붙여서 만들다보니 이미지 정보의 손실이 큰 것이 아쉬운데 원본 파노라마는 제법 웅장하고 세밀한 맛도 있지만 이곳에 올리기에는 20메가나 되어 아무래도 무리다. 1280 해상도로 변경해봤다. 


그리고 청계산 매봉이다. 이곳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역시 산 정상에서 볼 수 있는 음주 문화가 여지 없이 벌어지고 있어 아쉬운 생각이다. 왜 산과 술이 연결이 되는지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지만 그것이 그 사람들의 산을 즐기는 방식이라면 달리 뭐라 할 여지는 없다. 다만 음주로 인해 다른 이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매봉에는 사람들이 많아 표지석만 따로 찍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몇몇 분 얼굴은 모자이크를 해서 올려본다.

이렇게 올 한해를 마무리했다. 잃은 것이 있는만큼 얻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인생은 제로섬이고 올 한해만으로 봐도 역시 그렇다. 잃고 얻은 것을 정확하게 하나하나 그 가치를 비교할 수는 물론 없는 일이지만 1년이라는 하나의 틀에서 보면 모든 것은 마치 아무 것도 없었던 것과 같은 상태로 돌아간 것이다. 그러니 서운해할 이유도 없고 기뻐할 이유도 없다. 냉정하게 생각될 수도 있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인생 역시 무수한 얻음과 잃음 속에서 결국은 시작하던 때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다음 산행은 어디로 할까 생각을 한다. 같은 자연이지만 산마다 주는 기운은 정말 다르기에 가능한 많은 곳을 그리고 여러 방법으로 다녀보고 싶다. 

그나저나 3년 전에 구입한 등산화가 슬슬 기능(고어텍스)이 다 했나 보다. 산에 간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던 시절에 메이커만 보고 덥썩 집어온 녀석인데 어느 새 정이 들어 구석에 놓여 있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짠하기도 하다. 기능성은 비록 점점 사라져 가지만 발에는 점점 더 익숙해져 간다. 어찌 보면 모순같은 일인데  물에 빠지지 않게만 조심하면 몇 년은 더 내 발이 되어주지 않을까 싶다.


Nikon D700, AF Nikkor 35mm f2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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