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가지 않고 미뤄두었던 둘레길을 걸었다. 걸은 코스는 두 코스 13구간과 14구간이지만 우선 13구간에 대한 이야기를 적고 14구간의 이야기는 며칠 후로 남겨둔다. 둘레길 걷기가 중반을 넘어서 종반에 이를 수록 뭔가 마음속에 아쉬움이 밀려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물론 나중에라도 다시 걸을 수 있겠지만 지금처럼 전 구간은 하나씩 차례로 걷지는 않을테니 이번 걸음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서인지도 모르겠다.


13구간 송추마을길은 북한산국립공원의 안내에 따르면 난이도는 '하'이고 전체 거리는 5.3km, 소요시간은 약 2시간 40분이 걸리는 것으로 소개되어 있다.위의 기록을 보면 실제보다 거리가 약간 줄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길의 중간지점에 대규모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내가 걸은 길이 지정된 경로가 아닌 조금 구간을 단축하는 길이 몇 군데 있었지 않았나 싶다. 전체적으로 고도도 낮은 편이고 평지가 더 많은 구간이라 걷기 수월한 구간이다.


송추마을길은 이전 글에서도 적었지만 충의길에서 그대로 이어진다. -아니 이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난 번에 걷다가 중지한 지점에서 다시 걷기를 시작했다. 아침에 짐을 꾸리며 아이젠을 넣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참을 고민하다가 일단 넣기로 했는데 나중에 14구간을 걸을 때 제법 도움을 받았다. 겨울산에는 아이젠, 스틱은 필수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장갑 두 벌 정도와 바람막이 하나, 귀마개, 게이터, 바라클라바, 양말, 약간의 음식과 패딩 정도는 가져 가야 하니 배낭이 클 수밖에 없다. 겨울을 제외한 계절에는 여간해서는 배낭을 들고 다니지 않는데 겨울에는 어쩔 수가 없다. 그래도 크기는 딸랑 22리터다. 본격 산행이 아닌 둘레길 걷기인 까닭도 있다. 물론 오늘 저런 것들을 다 들고 간 것은 아니다.


역시나 시작은 밋밋한 도로인지라 이 도로길을 얼마나 더 걸어야 하나 생각도 들었지만 그리 오래 가지 않아 산쪽으로 방향을 잡게 된다. 13구간을 걷는 분들은 구파발 역에서 내린 다음 34번이나 704번을 타고 석굴암 입구에서 하차하면 된다. 전체적으로 바람은 불지 않는 날씨여서 가벼운 복장이었지만 그리 춥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겨울 산행은 땀과의 싸움이고 옷갈아입기의 부지런함 정도에 따라 버티느냐 아니냐가 정해지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손이 많이 가는 편이다.


어느 정도 걷다 보면 위의 이정표를 만나게 되는데 이제 도로를 따라 걷는 일은 별로 없다. 의정부 방향이라고 적혀 있는 표지판을 보니 내가 멀리 오기는 꽤 멀리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둘레길 안내 이정표의 맨 아래에 오봉탐방지원센터가 보인다. 오늘의 하이라이트이기도 한 그곳의 이야기는 한참 아래에 나온다. -하지만 뭔가 기대를 할만한 것은 아니다.-


전형적인 시골의 어느 마을길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겨울에 접어 들면서 둘레길 사진이 전체적으로 우중충해보이는데 역시 계절이 계절이다보니 눈이라도 없다면 어딜 가나 뭔가 화사한 모습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그나마 볼 수 있다면 등산객들의 옷이 색깔 정도일까. 하지만 겨울은 다른 계절이 줄 수 없는 나름의 매력이 있다. 


송추마을길에는 제법 많은 군부대들이 있는데.. 생각보다 주변에 묘지가 많아 군부대에 나름 여러 괴담(?)들이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근무했던 부대에도 별별 괴담이 다 있는데 지금 생각나는 건 빨간 부츠 신은 여자아이 이야기 정도다. 아무튼 이 주변의 묘역들은 제법 관리가 잘 되고 있었다. 어느 묘소 근처에는 바로 위에 초소가 있던데 그 초소에 근무하는 병사들에게는 뭔가 이야기들이 제법 많으리라.

이제야 볼 수 있는 것이 송추마을길 진입문이다. 이제까지 송추마을길이라고 알고 걸어왔던 것은 충의길도 송추마을길도 아닌 애매한 구간이었던 셈이다. 이런 부분은 좀 아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워낙 광범위한 지역을 둘레길이라는 하나의 틀로 묶으려다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중간중간의 안내가 좀 더 치밀하다면 어떨까 싶은 생각도 든다. 


본격적인 송추마을길의 시작이다. 제법 산다운 느낌이 들지만 이 구간은 전체적으로 무난한 구간이다. 딱히 힘들다거나 곤란한 지점도 없고 산책하듯이 천천히 걸어나가면 된다. 오늘은 날씨마저 워낙 흐린 탓에 우중충한 겨울의 분위기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느낌이다. 게다가 오고 가는 사람도 하나 없어 오후에라도 왔었다면 조금은 음산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제대하신 분들은 이것이 무엇인지 아시지 싶은데 이 구간 내내 이런 표지들이나 진지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주변이 거의 다 군부대기 때문이다. 크레모아는 저렇게 글만 보면 사실 별게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격발이 되면 참 잔인하기 이를데 없는 무기다. 신교대 교관 시절 저 녀석을 한 번 터뜨려본 적이 있는데 참.. 전쟁이 정말 일어나면 안 되겠다는 생각만 들었었다.


길은 이런 오솔길과 몇 군데의 계단으로 이어져 있다. 여름이나 가을날이었으면 제법 화려한 색상들과 마주치며 정겨운 느낌을 듬뿍 받을 수 있는 그런 길이 아닐까 싶지만 역시 겨울에 만나는 산길이란 지난 시절의 흔적들이 바닥에 짙게 깔린 무언가 다른 시간을 준비하는 잊혀져 가는 시간의 느낌을 간직하고 있어서 쓸쓸한 느낌을 걷는 내내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 역시 겨울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다.

 

왜 나무는 하늘을 보고 자라는 것일까? 라는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다. 하지만 어디서도 그 답을 얻을 수는 없었는데 굳이 답을 찾으려 하기보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면 차라리 편하지 않았을까?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에도 그런 풀리지 않는 질문들을 수 없이 마주 하는데 그 모든 것들에 대해 다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지나친 과욕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때로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필요도 있다.


이 사진을 보시면 분노(?)할 예비역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아니 진지공사를 어떻게 했길래?"라며 말이다. 군인들에게 봄가을 진지공사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닌데 그래도 저 정도면 꽤나 열심히 잘 만든거다. 쓸 데도 사실 없는 것을 왜 힘들여 작업을 하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이런 것들은 소위 FM 즉 Field Manual이다. 원칙이 있어야 그 원칙에 따른 융통성이 생기는 법이다. 당장은 무익한 듯 해보이지만 결정적일 때 필요한 것이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만나게 되는 곳이 오봉탐방지원센터다. 내가 오늘 이곳을 벼르고 온 것은 다름 아닌 둘레길 열쇠고리를 받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남은 구간을 올해 안에 완주하기는 일단 어려운데다가 탐방센터들이 어쩐 일인지 내가 가는 날마다 문을 닫고 있어서 이곳은 열었을까?라는 호기심도 한몫 했다. 다행히 이곳은 오늘 영업(?)을 하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 서니 인상 좋아 보이는 아저씨 한 분과 묘령의 미모의 처자가 한 분 계셨다. 

나: "스탬프 투어 확인 받으러 왔는데요"

처자: "네~ 다 도셨나요?"

나: "아뇨, 13구간까지만요. 올해 안에 다 못 돌 것 같아서 열쇠고리라도 받으려고요"

아저씨: "에이 하루에 3구간씩 돌면 금방 다 돌텐데 아깝네" 라며 인상 좋은 아저씨는 밖으로 나가셨고 처자와 둘만 남은 상황..

처자: "네~ 사진 보여주세요. 어머! 알아보기 쉽게 정리를 잘 해두셨네요"

나: '제가 정리 하나는 잘 하는지라'라고 생각만...

여기까지는 화기애애하고 괜찮았는데 처자분이 스탬프를 찍다가 잉크가 터져 왼손이 푸른색으로 온통 변색이 된 다음에는 좁디 좁은 그 사무실 안에는 적만만 감돌았다. 

나: "저런, 제가 괜히 많이 가져와서 이런 일이"

처자: ...................

이후 괜히 농담도 꺼냈봤지만 대답 없던 처자분... 잉크라 좀 오래 가겠지만 언젠간 지워지니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그리고 받아온 열쇠고리다. 별로 대단한 것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어느 날 갑자기 북한산둘레길을 걸어야겠다고 생각을 했었고 온전히 내 걸음으로 얻은 것이기에 그 소중함은 남다르지 싶다. 한 구간만 더 걸으면 탁상시계와도 바꿔준다지만 내게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앞으로 남은 구간은 완주할 생각이고 그럴 거라면 완주 기념품이 낫지 않겠냐고 할 수도 있지만 애초에 시작을 그렇게 내 스스로에게 부담을 줄 생각도 없었고 그렇게 되면 주객이 전도되는 셈이어서 열쇠고리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다행이었다. 배낭에 걸어두면 그럭저럭 어울리지 싶은데 아직 앞 부분의 칠이 마르지 않아 끈적끈적하다. 며칠 숙성시켜두면 나아지겠지.


오봉탐방지원센터 주변으로는 뭔가 큰 공사가 진행 중이다. 주변이 온통 어수선한 느낌인데 무슨 이주단지라 하던데 이곳에 새로 아파트나 그런 것이 들어서는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산 주변으로 자꾸 사람들이 모여 드는 것은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갈 수록 산이 산으로 조용히 서 있기도 힘들어진다.


다시 만나게 되는 도로. 여기는 국립공원 주차장이 있는 곳인데 이곳에서 등산로가 시작되기 때문에 제법 큼지막하게 만들어 두었다. 역시 평일이어서 한산한 모습이다. 겨울 산행은 확실히 손이 많이 간다. 양손에 든 스틱에 카메라에 장갑까지... 카톡이라도 오면 멈춰서 장갑 벗고 확인하고 해야 하니 부산스럽다. 게다가 옷도 땀이 나면 벗고 추워지면 입고를 꾸준히 반복해야 하니 가장 부지런히 움직여야하는 산행이 겨울산행이 아닐까.


군부대 앞에 저렇게 둘레길이라고 표시를 해 둔 것이 왠지 귀여운 느낌도 든다. 이 지점까지 오면 선택을 해야 한다. 더 진행을 해서 다음 14구간에 진입할 것인지 아니면 왼쪽으로 가 버스를 탈 것인지 말이다. 14구간은 난이도가 '상'이다. 북한산둘레길에서 난이도가 '상'인 구간은 단 세 곳뿐이다. 그곳 중의 한 곳이 바로 다음 구간이니 생각을 잘 해야 한다. 특히 겨울산에 과욕은 금물이다. 


멀리 사패산을 바라보면서 걷다 보면 13구간도 어느새 막바지에 접어 든다. 교통표지판에 의정부, 구리가 보이는 것을 보니 서울의 오른쪽으로 제법 많이 이동한 모양이다. 처음 서울의 동쪽 끄트머리에서 시작한 둘레길 걷기가 다시 원점으로 서서히 돌아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문득 마지막 구간인 우이령길은 어디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 생각도 해 본다.


계절은 겨울이지만 날이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은 맑고 투명하기만 하다. 여기까지 오면 전체적인 기온이 조금 내려가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점점 산의 품으로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오르막을 따라 조금 걸으면 14구간 산너미길의 시작이다. 두 구간을 모두 걸었지만 이번 포스팅은 13구간만으로 마무리한다.

오늘 걷기는 전반적으로 겨울 산행을 위한 예행연습 같은 느낌으로 준비도 했고 그렇게 움직여보는데 의미를 두었다. 평소 들지 않던 스틱도 들고 교과서대로 사용도 해보고(덕분에 손목이..;) 아이젠도 수시로 채웠다 풀었다 해 주고 배낭도 동계용으로 꾸려서 다녀봤는데 역시 다른 계절에 비해 정말 손이 많이 간다. 가장 문제는 몸에서 흐르는 땀과 바깥의 기온과의 차이인데 이 부분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동계 산행에서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무리하지 말 것이다.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으니 오늘 오르지 못 하면 내일 오르면 그만이다. 죽기 살기로 매달리다가 정말 죽을 수도 있는 것이 겨울산이다.


Panasonic LX5


겨울 바다는 마치 산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수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다녀간다. 각각의 사연들로 가득 메워진 겨울 바다는 사람들이 떠난 후에도 그 사연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이곳저곳에 새겨 놓고 다시 돌아올 그들을 기다린다. 세월이 지나 다시 바다를 찾는 이들은 때로는 처음 그 바다를 함께 찾은 사람과 함께 일 수도 있고 때로는 둘이 아닌 혼자가 된 이일 수도 있지만 바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그네들을 혹은 그를 바라볼 뿐.

지날 것같지 않던 시간들이 벌써 이렇게 흐르고 있다. 잊힐 것같지 않은 기억도 서서히 옅어져 간다. 그 시간 속에서 누군가는 다른 인연을 만나 새로운 미래를 꿈꾸고 누군가는 과거의 인연을 간직한채 고독한 걸음을 걷고 누군가는 인연이라는 끈조차 놓아버린채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바다 앞에 서면 그 모든 복잡하고 가슴 아프기만 한 일들이 모래 사장에 부딪혀 부서지는 물방울처럼 순간의 기억으로 터져 나가버린다. 순간 나는 모든 감정을 잊게 된다.

살 속으로 파고드는 겨울 바닷바람과 부서지는 파도 속에서 우리네 삶의 혹은 인연에서 겪는 희로애락애오욕이라는 것이 결국은 찰라의 감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지만 막상 그 각각의 감정들을 온전히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순간에는 그것이 마치 삶의 전부인양 그 순간에 몰입할 수밖에 없다. 또 그것이 사람의 솔직한 모습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 몰입이 미래의 긴 시간을 담보로 한 것이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고 결국 시간이 많은 것을 해결해준다는 아주 흔한 문장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것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구태여 부정하려들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또한 삶을 순리대로 살아가는 방법 중의 하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겨울은 늘 이렇게 차가움 속에서 머리를 맑게 해 주는 매력이 있다. 여름날의 뜨거움 속에서는 잠시의 판단조차 흐려지지만 겨울의 차가움 속에서는 조금은 냉정하지만 스스로 납득할만한 판단을 할 수가 있다. 그것이 겨울이 내게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12월도 어느덧 중반...곧 새해다. 언제나 그렇듯이 한 해 한 해 그 해가 가장 격변의 한해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매해 겪다보니 내년엔 올해보다 더 대단한 변화가 있을 거라는 기대반 걱정반의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요 며칠 새 아니 몇달 사이 평생 아팠던 것보다 더 많이 그리고 자주 몸에 이상이 생기다보니 마음만 조급해진 모양이다. 시간이란 것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것이라면 그 시간을 앓아 누워서 보낸다는 것은 그만큼 나아갈 길을 가지 못 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압박을 한 탓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역시나 좋은 점이 없다. 반성과 질책은 분명 다른 것이니까...

아무튼 시간이 갈 수록 나를 지탱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내가 나일 수 있도록 해 주는 것... 그것이 사람이고 내 반려자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지금의 내게는 무엇이 나를 온전한 나로 버틸 수 있게 만드는 것일까...

그래도 아직은 산에 오를 수 있고 바다를 볼 수 있고 사진을 찍을 수 있고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된다. 

홀로 산에 오르고 홀로 바다를 보고 홀로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것에 적응만 하면 될 일이다. 

글은 애초에 혼자 쓸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O형은 생각보다 적응을 잘 하는 편이다.


Nikon F5, Ai Nikkor 105mm f/1.8S, Kodak 100SW, LS-40 film scan






나는 손글씨를 즐기는 편인데 아마 어려서 어머니께서 억지로(?) 글씨 연습을 시킨 것의 영향이 크지 않나 싶기도 하다. 아무튼 그런 이유인지는 몰라도 손으로 글을 쓰는 것에 별다른 거부감은 없고 오히려 가능하면 손으로 무언가 쓰는 경향이 있다. 얼마 전에 연필 관련 글을 쓰기도 했지만 사실 내가 가장 오래 써온 필기구는 만년필이다. 한때는 만년필 동호회에서 맹활약(?)을 하며 온갖 종류의 만년필을 두루 섭렵했었는데 결과적으로 내 손에 남아있는 만년필은 현재 2자루다. 몽블랑의 P146과 펠리칸의 M250 이 두 펜은 일기나 뭔가 심각한 글을 쓸 때 사용한다. 라미의 비스타도 있지만 이 펜은 일상용이랄까 그런 용도로 사용한다. 덧붙여 플래티넘의 1회용 만년필인 프레피도 있는데 이 만년필은 워낙 소모성이 강해서 별도로 분류하기는 애매하지 싶다.


펠리칸의 만년필은 참 종류가 많은데 역시 숫자로 등급을 정하고 있다. 250이라는 말은 쉽게 말하면 200시리즈 중 하나라는 의미다. 이전에 M205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배럴(만년필의 몸통)과 캡 등에 크롬이나 백금(또는 은) 도금이 되어 있을 때 5을 뒤에 붙인다. M250은 펠리컨의 표준형 만년필로 생각하면 된다. 100시리즈도 있지만 성인 남성이 쓰기에는 조금 작은 편이고 200급으로 올라가면 길이가 어느 정도 적당하다 싶은 느낌이 든다. M200과 이 녀석의 차이는 촉이 금도금이냐의 여부이고 나머지는 동일하다고 보면 된다. 아쉽게도 M250은 이제 단종이 되었다고 한다.


펠리컨이란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고 이 만년필을 만든 독일의 회사 이름이자 로고다. 시대에 따라 캡과 촉에 새겨지는 아기새의 모양과 숫자가 달라지는데 오래 전 모델의 경우 아기새가 두 마리고 요즘 모델은 한 마리다. M250의 경우 현재 단종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도 비교적 현대 모델인지라 한 마리의 아기새가 보인다. 이전에 꽤 오래 사용했던 M150은 새가 두 마리였다. 가끔 내 손에 익을대로 익은 그 녀석이 그리울 때가 있지만 요즘은 이 녀석에 정을 붙여보려고 노력 중이다. 아래 촉 사진을 자세히 보면 아기새가 두 마리 있는 게 보인다.


M250은 14K금도금이 되어 있는데 금도금 촉(닙)의 경우 부드러운 것이 장점이라 하지만 이것도 제품마다 워낙 편차가 커서 딱 어떻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부분이다. 촉 아래 적혀 있는 EF란 Extra Fine의 약자로 아주 얇다는 의미지만 유럽 제품들이 그렇듯이 아주 가늘지는 않다. 그래도 펠리컨 제품은 비교적 가는 편이고 한글이나 한자를 적기에 크게 어려움은 없다. 더 얇은 촉은 일본 제품인 세일러나 플래티넘 것이 있다. 금촉의 특징이라면 스테인리스 촉에 비해 서걱거리는 느낌이 적고 대신 미끄러지는 느낌이 강하다는 점이다. 사람마다 이 느낌에 대한 평가는 다르지만 종이에 펜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더 좋은 내게 금촉은 조금 아쉬운 감이 있다.


펠리컨의 만년필은 배럴 안에 잉크를 넣는 방식이다. 플런저 방식이라고 하는데 사람에 따라 편리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촉 채로 잉크병에 담근 다음 잉크를 빨아들이는 방식으로 남아 있는 잉크의 양은 위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약간 투명한 창을 통해 알 수 있다. 펠리컨 제품은 통상 다른 제품에 비해 잉크가 많이 들어가 고시용 만년필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러고보니 지금 내게 남은 만년필은 모두 이런 방식이다. 잉크를 넣기 위해 어느 정도 수고를 해야 하는 번거로운 녀석들인데 내게는 그것이 더 정겹다.

펠리컨이라는 이름은 클립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저 클립을 자세히 보면 눈도 달려 있다. 펠리컨의 머리 모양을 표현한 것인데 제조사별로 자신들이 내놓은 제품의 고유한 특징을 나타내는 방식이다. 몽블랑의 하얀별처럼 펠리컨은 저 클립을 통해 쉽게 구별할 수 있다. 하지만 뭐랄까 저 모양이 그리 근사해보인다고는 말하기 어렵겠다. 이것도 사람 취향이기는 하지만...


내게 남은 두 개의 만년필이다. 왼쪽의 몽블랑은 촉이 화려하고 펠리컨은 수수하다. 두 펜 모두 이리듐(펜촉 끝부분을 구성하는 금속)도 쌩쌩하고 아마 죽기 전까지 써도 저 두 펜 모두 닳게 만들기는 어려울 것 같다. 두 펜 모두 소장용이 아닌 순수한 필기용이다. 만년필을 소장하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하지만 나는 글을 쓰는 재미가 더 쏠쏠하다. 두 촉 모두 EF지만 글을 써 보면 몽블랑이 펠리컨의 두 배 정도는 굵다. 

요즘은 전자문서가 보편화되어 만년필을 들고 결재란에 서명을 할 일도 없어졌다. 그런 면에서 만년필이 그나마 대중적으로 쓸모가 있던 시대도 지나가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필름 카메라가 이제는 골동품이 되어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가듯이 만년필도 이제는 필기구가 아닌 소장용 수집품 대열에 끼는 것 같아 아쉬운 느낌이다. 이 녀석들을 한참 보다가 방 구석에 놓여 있는 작은 박스를 열어본다. 작은 상자 하나를 가득 메우고 있는 잉크들과 노트들... 역시 난 어쩔 수 없는 아날로그인가보다.

어찌 되었건 이 두 펜은 남은 내 인생을 함께 할 펜들이다. 내 손에 온 지 이제 3년이 조금 지났으니 이전에 사용하던 M150의 세월을 채우려면 10년도 더 넘는 시간을 글을 써야 한다. 이 녀석들이 적어 나갈 앞으로의 나의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그리고 세월이 지나 빛바랜 잉크로 적혀 있는 그 글들을 다시 읽게 되는 날의 내 마음은 어떨까...

내년 정도에는 필름 카메라를 다시 들여볼까 생각을 해 본다. 사진에 가장 푹 빠져 지내던 시절 항상 내 손을 떠나지 않던 니콘의 F3와 F5를 다시 내곁에 두고 싶은 마음이다. 이젠 흑백필름이나 슬라이드를 현상해 주는 곳도 거의 없어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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