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오늘 길을 나선 것은 북한산둘레길 기념품을 받으러 수유쪽에 있는 둘레길지원센터에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보니 지난 19일부터 내부 정비에 들어가면서 쉬고 있더군요. (제가 늘 이럽니다) 이달 말까지는 계속 정비라하는데 미리 전화라도 해볼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처럼 시간내서 멀리 갔는데 그냥 돌아가기는 또 애매해 북한산에 올라가볼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준비를 뭔가 해간 것이 아니고 몸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아  그나마 쉬운 코스는 어디일까 북한산 홈페이지를 보니 바로 제가 있는 지점에서 대동문까지 가는 코스가 있더군요. 난이도는 '하'라니 가볼만하다 싶었습니다. 


위의 사진에서 S로 되어 있는 곳이 백련공원지킴터로 전체 이동 코스는 '백련공원지킴터 - 백련사 - 진달래능선 - 대동문'에 이르는 편도 2.7Km구간입니다. 정식 코스로는 6번째 코스로 이름이 붙여져 있는데 편도 1시간 10분이 걸린다 하니 왕복 2시간 정도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위의 지도를 보시면 올라간 길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다른 길로 내려온 것을 보실 수 있으실텐데 그 사정은 아래에 나옵니다. 아무튼 출발지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지하철 4호선 수유역에 내린 다음 1번 출구로 나가 마을버스 1번을 타고 백련사까지 가시면 됩니다.


오늘은 날이 무척 흐려서 전체적으로 사진이 어둡게 나오더군요. 이 코스의 시작은 이렇게 완만한 도로에서부터입니다. 둘레길을 여러 번 다녔지만 마음 먹고 북한산을 올라가기는 제법 오랜만이라 조금 긴장도 되더군요. 장비는 특별한 것은 없고 집티 한 장입고 혹시나 해서 목장갑 비슷한 거 하나 가져갔는데 이 장갑이 오늘 제대로 역할을 했습니다.


대동문까지는 2.7Km라고 알려줍니다. 아직 초입이어서 운동기구도 있고 산에 오른다는 느낌보다는 이전의 둘레길 같은 느낌이 더 나더군요. 날이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이 흐렸지만 하산할 때까지 눈은 내리지 않아 조금 아쉽기도 했습니다. 북한산둘레길하고 어느 정도 구간을 공유하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이정표에도 둘레길 정보가 함께 나와 있네요.


슬슬 진달래능선에 진입합니다. 이름이 꽤 귀여운 맛이 있습니다. 실제로 이쪽 코스는 그렇게 어려운 지점도 없어서 천천히 걸으면 산책하는 느낌으로 올라갈 수 있는 그런 구간이 대부분입니다. 바람도 불지 않아 제법 땀이 많이 났는데 집티 한 장만 입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오르내리는 분들의 복장을 유심히 봤는데 고어텍스 자켓을 입은 분들은 덥지 않을까 싶더군요. 실제로 저랑 비슷하게 같이 가던 젊은 분 한 분은 정말 땀을 육수처럼 흘리더군요. '겉옷 벗으세요'라는 말이 나올 뻔 했지만 왠지 오지랖 같아서 입안에 담아 두었습니다. 


대충 오르막길은 이런 모양새를 하고 있습니다. 북한산의 많은 코스들이 나름대로 특색이 있겠지만 이 코스는 잔돌과 약간 큰돌들이 섞여있는 형태랄까요. 간간히 큰 바위들도 나오지만 바위보다는 잔돌들이 더 많은 편입니다. 만약 이 코스로 올라가 그대로 내려온다면 보통 신는 일반적인 등산화로도 큰 무리는 없어 보입니다. 문제는 제가 내려온 구간이죠.


초겨울이지만 산의 푸름은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스산한 계절인 겨울을 잔뜩 입고 있는 그런 느낌이 더 들었는데 그 스산함 위로 눈이 쌓이면 그래도 조금은 밝은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이쯤오면 몸에 열이 펄펄 납니다. 몸에는 열이 나고 얼굴이나 손은 찬 묘한 상태가 되는데 이럴 때 체온 관리를 잘 해야 합니다. 여름에는 잘 느끼지 못했던 기능성 의류의 성능을 체험하는 순간이기도 하지요.


멀리 만경대와 백운대 그리고 인수봉이 보입니다. 이 세 봉우리를 합해서 삼각산이라는 이름이 나온 것이지요. 북한산이라는 이름 대신 원래의 이름을 되찾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기까지 오르는 분들도 제법 많을텐데 욕심은 나지만 오늘의 목표는 대동문이니 얌전하게 거기까지만 가기로 합니다. 사실 저렇게 보니 저기까지 오른다는게 만만한 일은 아니구나 싶더군요. 예전에는 어떻게 잘도 다녔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상상이 안 갈 일입니다. 


좌우로 문처럼 되어 있는 바위가 재미있습니다. 저곳을 지난 이들의 숫자가 얼마나 될까요. 문득 산에 다시 가게된 것이 참 다행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에 갈 수 있다는 것은 몸이 건강하다는 이야기이고 그래도 비교적 큰 돈 들이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취미니까요. 그렇긴해도 막상 정상을 향해 오르다보면 '내가 지금 무슨 고생을 사서 하나'라는 생각도 들곤 합니다. 그 푸념을 날려버리는 것은 정상에 올랐을 때의 성취감이겠죠.


거의 막바지에 접어들 무렵이 되면 인내력 테스트가 시작됩니다. 난이도가 '하'라더니 이게 뭐냐 싶습니다. 둘레길 열쇠고리 받으러 왔기 때문에 가방 안에 들어있는 것은 게토레이 한 병, 점심도 안 먹고 허기진 배를 붙잡고 올라가려니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드는 장소입니다. 그래도 꾸역꾸역 올라가면 됩니다. 벌써부터 내려가면 뭐 먹을까 생각을 하게 됩니다. 


대동문에 다다르기 전의 좁은 골목 같은 오르막인데 며칠 전 내린 비인지는 몰라도 계단이 얼음계단이 되어 있습니다.  엇. 아이젠도 없는데 어쩌나 싶었지만 그래도 얼지 않은 곳 유심히 찾아서 또 올라갑니다. 이제는 북한산에 올 때는 가방 빈 자리에 아이젠을 꼭 넣어서 와야할 시기인 것 같습니다. 다른 계절에는 잘 느끼지 못했는데 겨울에는 카메라도 제법 신경이 쓰입니다. 사진보다는 걷기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계절이지요.


대동문은 북한산성의 남쪽 성문입니다. 북한산성은 조선 숙종 37년 그러니까 1711년에 지어진 것으로 왜란과 호란 이후 한양 외곽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쌓은 것이라 합니다. 그러고보면 당시 사람들은 참 체력도 좋았다 싶습니다. 이 꼭대기에 이런 성을 쌓고 또 성벽을 이어 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텐데요. 북한산성은 아울러 사적 162호기도 합니다. 유물 답사편에 나중에 정리를 해야할텐데 조금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왜 이리 높은 곳에...

이곳을 들러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성벽 둘레로 죽 돗자리가 깔려 있고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아 밥을 먹고 있습니다. 꽤 재밌는 풍경이기도 한데 평일인 오늘도 어김없이 많은 분들이 진을 치고 앉아 있어 성벽을 사진에 담지는 못했네요.


안내 표지판을 보니 갈만한 곳들이 정말 많습니다. 이곳에 오면 욕심이 저절로 생기는 모양입니다. 적혀 있는 소요시간을 보면서 갈까말까 망설입니다. 하지만 무리하면 탈이 나는 법이고 사전에 정보를 알고 오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가 얼마나 크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까닭에 이만 하산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온 길을 그대로 돌아가면 이미 한 번 온 길이니 어렵지 않게 내려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제법 걸리는 길이지요. 그런데 아래쪽에 뭔가 다른 길이 보입니다. 길이도 훨씬 짧습니다. '저 길로 가면 금방 내려가는 거 아닐까?' 싶은데 희한하게 소요시간이 적혀있지 않습니다. 아주 단순하게 온 길 생각만 하고 30분이면 가겠는데 라고 어림짐작을 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오늘의 가장 큰 교훈은 '모르는 길은 가지 마라'입니다. 


처음 진입을 하니 계단만 죽 있습니다. 다만 경사가 좀 가파른 편인데 이런 모양새라면 갈만하지 않을까 싶어 계속 내려가봅니다. 올라올 때와 가장 큰 차이점은 진달래능선을 탈 때는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꽤 많았지만 이곳은 딱 두 명 만났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난이도가 제법 되는 길이기 때문이지요.


올라올 때 보기 힘들었던 로프가 보입니다. 이 코스는 거의가 암벽 구간입니다. 내리막으로 택한다면 발에 가해지는 충격이 일단 제법 큰데 내리막에서는 아무래도 속도가 빠르다보니 충격이 좀 더 큰 편이니 주의가 필요합니다. 경사도도 제법 가파르고 전체적으로 편하게 갈 수 있는 구간은 아닙니다.


대략 이런 길이 줄줄이 이어지는데 비가 온 뒤나 눈이 내린 날에는 꽤 조심하지 않으면 다치기 쉬운 길이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별 생각없이 챙겨넣었던 장갑이 제 역할을 한 곳이기도 합니다. 전체적인 거리는 짧지만 이런 구간이 계속되기 때문에 소요시간은 진달래능선 쪽과 별 차이가 없으니 바위산길에 대해 특별한 애정이 없다면 이길을 굳이 고를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빨리 내려가서 늦은 점심을 먹어볼까 생각하며 꼼수를 부린다고 한 것이 화를 불렀달까요. 오르막 후에 쉬지 않고 내려온 탓에 다리 힘이 별로 많지 않아서 한발한발을 신경써야 하는 이런 구간들은 꽤 조심스럽더군요. 이쪽 코스를 생각하신다면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에 내려오시기 바랍니다. 하산 길은 이런 길들을 계속 내려오느라 사진이 거의 없습니다. 카메라도 가방에 넣어두고 걷는 데만 신경을 쓰는 것이 낫습니다. 중간쯤에 이르면 계곡 물길을 가로 질러 가는 구간이 있는데 물구경한다고 이리저리 다니다가 오른발이 빠져서 또 고생을 했네요. 고어텍스가 제 기능을 발휘한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여기까지 오면 힘든 내리막은 없습니다. 대신 돌멩이로 만들어진 길이 종작첨까지 이어지는데 이게 생각보다 발에 부담이 많이 갑니다. 가능하면 돌을 밟지 말고 흙을 밟으며 이동하는 것이 피로를 줄이는 방법입니다. 종착점에는 마을버스 1번이 거의 상시 대기하고 있으니 그것을 타고 다시 수유역으로 이동하면 됩니다.

아무튼 열쇠고리 받으러 나선 길이 등산이 되었고 괜한 호기심에 고생을 좀 한 산행이 되었는데 역시나 모르는 길은 선뜻 가지 않는 것이 제일이고 조금 무겁더라도 가방 안에 이것저것 챙겨서 다니는 것이 좋다는 교훈을 얻었네요. 겨울 산행은 다른 계절과 달리 땀과의 싸움, 추위와 바람과의 싸움이 이어지기 때문에 체온의 유지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에 어울리는 복장이 필요합니다. 

산은 늘 그 자리에 있네요. 저만 움직이면 언제고 만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습니다. 어찌보면 일방적인 관계일 수도 있지만 산은 그래도 싫다는 내색 한 번 안 합니다. 그저 그렇게 묵묵히 제가 찾아오기만을 기다릴 뿐이죠. 그래서 산에 가면 고개를 숙입니다. 고맙기 때문입니다.




올 1월 태백산행을 했었지요. 겨울 산행을 가기는 군대 이후로 처음이고 산행 자체에 대한 개념도 없던 시절이라(한여름에 청바지 입고 대청봉에 오를 정도의 상식 수준) 집에 있는 두꺼운 옷들 몇 가지 주섬주섬 끼어 입고 올라갔었습니다. 아마 지금 겨울 태백을 다시 가라고 하면 늘어난 지식(?)만큼 장비도 늘어나겠지요.

겨울산은 다른 계절과 달라 역시 보이는 것이 눈이고 하늘입니다. 흰색과 파란색이 절정을 이루는 그런 계절이 겨울이 아닌가 싶고 그래서 겨울이면 눈맞은 강아지처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올해 아니 이번 겨울에 겨울산행을 갈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일단 아이젠을 하나 장만하기는 했으니 어딘가 가긴 하겠지만 그게 태백산이 될지 아니면 이전의 둘레길의 연장일지는 단정짓기가 애매한 요즘입니다. 몸살로 며칠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보니 어딜 간다는게 막막해지기도 하는 탓도 있고 나름 외로움을 잘 타는지라 혼자 돌아다니는 것에 대한 묘한 거부감 비슷한 것이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가능하다면 태백은 한 번 더 가 보고 싶은 곳이네요. 새벽같이 일어나 서울을 출발하면 어찌어찌 당일 코스로 가능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사실 시간이 없어 어디를 가지 못 한다는 것은 핑계지요. 그만큼 절실하지 않다는 말일 뿐입니다. 뭔가 절실하면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겠지요. 이번 겨울에 얼마나 제 마음이 산으로 들로 향하는지 저도 지켜볼 일입니다.

개인적으로 사연도 많은 11월도 이제 종반으로 다가서고 있습니다. 올 한 해 어떻게 잘 들 보내고 계신지요? 


Nikon D300, AF-S DX NIKKOR 35mm f1.8G, HDR


이번에 건네진 책은 '스님의 청소법'이라는 독특한 제목의 책입니다. 게다가 걸레 한 장으로 삶을 닦는다는 수식어까지 붙어 있어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청소와 수행은 어떤 관계가 있고 그것이 인생에는 또 어떤 영향을 줄까 궁금해집니다.

수도자들에게 있어 청소는 상당히 중요한 자기수양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이책을 통해 불교의 청소의 의미를 좀더 자세히 알게 되었지만 가톨릭의 수도자들에게도 청소는 꽤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청소란 무엇인가를 버리는 것만이 아닌 가지고 있는 것들을 정리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놓일 자리에 제대로 놓는다는 말이지요. 한번 지금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세요. 온갖 물건들이 제자리에 바르게 정리되어 있으신가요?


책에 실려 있는 내용들은 어찌 보면 새로운 것은 없을 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이지요. 위의 목차를 가만히 들여다봐도 '아, 다 맞는 말이네'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렇다면 굳이 책까지 읽을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다 알고 있는 내용인데 말이죠. 하지만 이책의 의미는 우리가 다 알고 있는 내용을 스님이 직접 실천한 뒤에 그 이유와 결과를 알려주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이론도 그것이 실행할 수 없다면 공염불에 그치는 법입니다. 수많은 힐링서적들이 유행하는 요즘이지만 저자가 직접 실천을 하며 증명까지 해주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 사랑하는 이의 부탁이라는 책의 서평을 쓴 적이 있는데 책의 구성이 비슷해 살펴보니 예담에서 나온 책입니다. 재생지 특유의 진한 향과 글이 꽉 차지 않아 여유로운 편집 그리고 큼직한 폰트의 배치가 특징이죠. 다만 이책은 '색'을 써서 강조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사진이 들어가있지 않았기 때문이겠지만 '수행'이라는 틀 안에서 '색[色]'은 경계해야 할 대상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사실 청소라는 것은 우리의 일상에서 거의 매일 이루어지다시피 하는 아주 사소한 일일수도 있습니다. 마치 살림이 그렇듯이 청소라는 것은 해도 티도 잘 나지 않고 막상 하는 동안에는 손도 많이 가고 신경도 제법 쓰이는 꽤나 피로한 작업입니다. 그렇다보니 청소에 대해 그리 호감을 가지는 경우는 많지 않겠지요. 하지만 청소를 하지 않으면 금세 티가 납니다. 책상 위에 샇인 먼지들이 하루만 지나도 손가락에 묻어날 정도가 되어 버립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귀찮고 번거로운 그 청소를 즐겁고 하고 싶은 일로 받아들이는 마음의 변화에 있는 것이죠.

그리고 앞서 적은 것처럼 청소란 버리는 것만이 아닌 제자리에 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선 버리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방 안에 있는 수 많은 물건들 중에 어떤 것은 버리고 어떤 것은 간직해야할까요? 언젠가는 쓰이겠지하고 구석 어딘가에 넣어두는 것은 일종의 낭비입니다. 스님은 차라리 그런 것들을 바로 쓸 수 있는 누군가에게 주는 것이 낫다고 이야기합니다. 공감은 가지만 막상 실천해보려면 쉬운 일은 아니겠죠? 특히나 누군가에게서 받은 물건들은 그 처리가 곤란할 때가 많습니다. 스님은 이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 사람이 내게 그 물건을 주기 위해 들인 노력이 컸다면 그것을 보관하는 것이 낫다'고 말이죠. 제법 명쾌한 해답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물건들을 제자리에 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제자리에 있다는 것은 그 쓰임새를 내가 알고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제자리에 있지 않은 것은 내가 그 쓰임새를 제대로 모르는 것이고 한편 생각해보면 내게 불필요한 물건이 될 수도 있는 것이죠. 방 안을 하나둘 정리해나가다가 어디에 두어야할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물건이 있다면 내게 꼭 필요한 물건은 아닐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바로 위에 적은 '버리는 일'을 생각해봐야 하겠지요.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쓰임새가 있는데 내게는 딱히 쓸데가 없다면 그것은 소유에 대한 집착일 뿐입니다. 법정스님의 무소유도 결국은 이런 맥락이 아닐까요.


스님은 청소하는 행위 자체에 또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몸을 움직이는 그 행동 자체에 말이죠. 청소를 하는 동안 그 행위 자체에 몸과 마음을 집중하다보면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들이 많이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이때 중요한 것은 정소하는 행위 자체를 번거롭거나 거추장스러운 일로 받아들이지 않는 마음의 변화가 함께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청소라는 행위와 그 결과를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내면과 외면을 하나둘 바꾸어나갈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이 수행과 다름없다는 것이 스님이 끝내 건네고 싶은 이야기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떠신가요? 지금 앉아계신 사무실의 책상이나 방 안의 모습이 자신의 마음속이고 자신을 그대로 비추어주는 거울이라고 생각하고 바라봤을 때 얼마나 정리되어 있고 깨끗한가요? 혹 지저분하다고 부끄러워할 것은 전혀 없습니다. 그저 조용히 손을 들어 하나둘 치워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수행의 시작이지요. 그렇다고 새로 청소도구를 사서 불필요한 물건들을 늘릴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어지간한 청소는 몸과 걸레 한 장이면 충분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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