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를 공부하는데는 아무래도 강사와 교재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어떤 강사의 수업을 듣고 어떤 책을 보느냐에 따라 외국어 실력은 정말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내가 외국어 공부를 할 때 강사와 교재를 선택하는 기준은 간단하다. 해당 외국어의 원어민일 것, 그리고 우리말을 정확하게 구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런 강사나 저자는 많지 않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해당 외국어를 표준으로 구사하면서 마찬가지로 우리말을 그 정도로 구사한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 책 한 권을 소개해본다. 책 제목은 "일본어 필수 표현 무작정 따라하기"이다


무작정 따라하기? 어디서 많이 들어보지 않았을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일본어 공부에 있어서 무작정 따라하기만한 책을 본 적이 없다. 무엇보다 강사 겸 저자인 후지이 아사리라는 인물의 특이함때문인데 그녀에 대한 소개글을 잠시 보도록 하자

일본인이면서도 서울대학교 국문과에서 고전문학을 전공하고 국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서울대학교 언어학 박사과정에 입학하기까지 했다. 한국어의 구조와 언어학을 이론적으로 학습해오며 한국어와 일본어가 어떻게 다른지 연구해왔고, 웬만한 서울대 학생보다 한국어 맞춤법을 더 잘 안다. 또 국문과 사람들에게 한국어와 일본어가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해 왔기 때문에 한국어와 일본어의 관계에 대해서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전문가이다

글만 봐서 실감이 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직접 그녀의 강의를 들어보면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정말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우리말 표현에 있어 정확하고 체계적이다. 외국인이다보니 그녀가 배운 우리말은 기초부터 고급 과정까지 그야말로 표준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일본어 실력도 상당하다. 무엇보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를 했다. 일본어와 우리말을 모두 상당 수준 구사할 뿐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도 접근하기 힘든 고전 문학을 전공하고 국문학 석사를 받았다. 외부로 드러난 스펙(?)에 연연할 것은 아니지만 이런 강사는 사실 흔하지가 않다.


그리고 위 사진의 아래에 깔려 있는 일본어 무작정 따라하기 시리즈를 집필했는데 그동안 독학으로 어렵고 복잡한 교재들로 일본어를 공부해온 내게는 정말 눈과 귀와 입이 확 뚤리는 계기가 된 대단한 책이었다. (이 말이 형식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은 직접 후지이 선생의 수업을 들어보면 된다.)

가장 최근에 출간된 책이 바로 지금 살펴보는 '일본어 필수 표현 무작정 따라하기'다. '990문장만 알면 말이 통한다.'는 광고 카피가 보이는데 '이런 카피야 어느 책에나 있는 것 아냐?'라고 무시해버릴 수도 있지만 이미 후지이 선생의 책으로 상당히 도움을 받은 나로서는 그냥 믿을 수밖에 없는 표현이다. 아마 무작정 따라하기 시리즈로 공부해온 분들이라면 쉽게 공감이 갈지도 모르겠다.

책의 크기는 188x128mm이다. 서평에 왜 책의 크기를 적느냐면 이책은 휴대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치 외국에 여행을 갈 때 그 나라의 회화책 한 권정도는 가방에 넣어가듯이 이책 역시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언제든 필요한 상황에서 꺼내어 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외국에 나가 책을 보며 외국인에게 말을 거는 것은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상대 외국인으로부터 더 많은 관심을 얻을 수 있고 실제로 내가 겪어본 일이기도 하다.

책의 구성은 간단하다. 총4개의 마당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각의 마당마다 몇 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어 상황에 맞는 공부를 하거나 바로 실전에 적용할 수 있도록 배치하고 있다. 이 구성이 간단한 것 역시 장점인데 수 많은 상황들을 줄줄이 늘어 놓아 독자가 제대로 공부도 하기 전에 질리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

첫째마당 일상생활에서 쓰는 표현 

둘째마당 여러 가지 상황에서 쓰는 표현

셋째마당 일본을 여행할 때 쓰는 표현

넷째마당 감정을 나타내는 표현

후지이 선생은 듣기를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강사인데 이책의 활용법 역시 듣기부터 시작한다. 책 말미에 CD부록이 있는데 책에서 다루고 있는 표현들을 담아두고 있다. "먼저 소리를 듣고 나서 책을 보면서 확인하고 다시 듣기를 여러 번 반복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공부 방법"이라고 그녀는 늘 강조하는데 이책 역시 같은 방법으로 활용하면 된다. 아마 이전에 무작정 따라하기 수업을 들었거나 책을 공부한 독자라면 왜 그녀가 이런 식으로 수업을 진행하는지 금방 이해가 될 것이다.

이책의 장점은 무엇보다 각 장에 실려있는 내용들이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는데 있다. 막연하게 실제로는 있을 것 같지도 않은 상황들로 가득 차 있는 다른 회화 서적들과 분명히 차별화되는 점이다. 처음 무작정 따라하기 시리즈를 공부할 때에는 '이거 책이 너무 가벼운게 아닌가?'라고도 생각했었다. 딱딱하고 무거운 주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네 일상의 이야기로 책을 구성하고 수업을 진행했기 때문인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실제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일본어 표현이 생각나고 말을 할 수 있게 된 나를 보면서 꽤나 놀랐던 기억이 있다. (아마 반말로 배우는 일본어라는데 대한 거부감이 처음에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기존의 무작정 따라하기 시리즈의 초급 과정을 마쳤다면 이책으로 일상에서 반복 학습을 하며 표현들을 익히는 것이 좋다. 별도의 사전이 필요없을 정도로 세세하게 단어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고 좌우면 대칭으로 왼쪽에는 일어 오른쪽에는 우리말을 배치하여 학습효과를 높이고 있다.

공부방법은 간단하다. 우선 공부하고자 하는 장의 발음을 먼저 듣고 따라해본다. 그 다음에 글자를 보고 익힌다. 어느 정도 익숙해졌으면 오른쪽의 우리말 번역을 보고 그 문장을 다시 일본어로 바꾸어본다. 그렇게 하나의 단원이 끝나면 회화 지문을 보고 어떤 식으로 위 표현이 사용되고 있는지 적용해보면 된다.  오히려 너무 간단하기 때문에 과연 효과가 있을까?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분명 효과가 있다. 기존의 후지이 선생의 수업을 듣고 그 방식에 익숙해진 분이라면 좀 더 쉽고 빠르게 익숙해지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정말 이책에 써 있는 말들을 무조건 따른다는 생각으로 부딪혀보기 바란다.

어지간해서는 외국어 공부에 특별한 기술이나 비법이 존재한다고 믿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워낙 후지이 선생의 강의 방식이나 교재의 덕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너무 칭찬 일색으로 글을 쓴 것 같아 조금 어색하기도 하지만 막연한 느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내가 경험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니 일어 공부를 한번 해보기로 생각하고 있다면 속는 셈치고 따라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다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바로 이책을 구입해 일본어 공부를 하는 것은 조금 어렵다. 기초가 전혀 없는 독자라면 가장 초보적인 교재인 일본어 무작정 따라하기를 먼저 학습하기를 권한다. 정말 듣기만 해도 말이 나온다. 내가 본 몇 안 되는 마법 같은 책이다.

이런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이책은 내지가 조금 두껍고 광택지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무게가 좀 나간다. 실용성이라는 면을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차라리 가벼운 종이를 써서 좀 더 편하게 들고 다닐 수 있게 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저는 건강한 리뷰문화를 만들기 위한 그린리뷰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읽은 책은 '철학교사 안광복의 키워드 인문학'이라는 조금은 긴 제목을 가지고 있는 책입니다. 21세기의 첨단 시대인 지금, 어쩌면 인문학이라는 단어는 고리타분하고 지루함을 상징하는 단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요즘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철학과 고전 등이 대학입시나 고교입시에서 논술이나 면접 등의 기초 자료로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때아닌 인기(?)를 누리고 있는 단어기도 합니다.


책의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책은 키워드를 중심으로 내용을 전개해나가고 있습니다. 총 50개의 개별 키워드와 100권의 책이 이 책의 뼈대가 되고 있습니다. 저자가 직접 밝히고 있듯이 '2%의 물음', 생활인의 인문학이 이 책을 이루는 커다란 흐름입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인문학이라는 다소 진부한 주제들을 우리의 현실과 맞닥뜨려 다루고 있다는 말입니다. 지식이 책 안에 머물고 있으면 생기가 없습니다. 그 지식을 현실로 끌어내어 우리의 실생활 속에 던져두었을 때야 비로소 지식의 가치가 있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제법 치밀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전체 7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주제 하나를 잡고 그 안에 소주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소주제들은 3-5페이지 정도의 짧은 글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읽기에도 충분합니다. 그리고 각장의 말미에는 소주제의 글을 쓰는데 참고한 서적들에 대한 간략한 서평을 달아두고 있습니다. 저자의 이런 친절함 덕분에 우리는 인문학이라는 광범위한 주제에 대해 차근차근 배워나갈 수 있게 됩니다.

철학박사이자 고교 교사인 저자는 왜 하필 인문학이라는 주제를 잡았을까요? 인문학은 오늘날 우리의 사상과 가치의 바탕이 된 고전입니다. 과거의 고전들이 없었다면 현재의 우리의 문화는 존재하기 어려웠겠죠. 그러나 오늘날의 사람들은 그런 과거의 영광을 진부하다거나 낡았다는 핑계로 제쳐둡니다. 서가를 장식하기 위해 몇 권의 고전들을 꽂아둘 뿐이죠. 그렇지만 인문학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아니 미래에도 여전히 우리의 생각과 가치를 좌우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입니다. 그 점을 저자는 강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50개의 키워드를 아우르는 각 장의 제목을 보면 그런 의도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Chapter 1 생활 속의 'ism'들
Chapter 2 선전, 선동, 그리고 진실
Chapter 3 의ㆍ식ㆍ주_생활의 뿌리
Chapter 4 과학, 종교, 교육_인류를 떠받치는 세 기둥
Chapter 5 왕따, 갈등, 그리고 전쟁_세상의 '참 평화'를 지키려면
Chapter 6 자본주의 생존학_정글에서 살아남기
Chapter 7 Miscellaneous_'기타' 생각거리들

인문학에 대해 보통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많이 걷어내고 현실적인 접근을 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각 장의 세부 주제 즉 키워드로 들어가면 좀 더 그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3장 경우

Keyword 17 옷의 철학 패션, 혁명을 이끌다
Keyword 18 한식의 세계화 먹거리에 담긴 인문 정신
Keyword 19 공장식 농장 공짜는 없다! 값싼 음식의 비밀
Keyword 20 행정복합도시 성장과 균형, 도시계획의 이중주
Keyword 21 가족 해체 ‘알파걸’이 우리 미래를 지켜 준다고?
Keyword 22 소셜 네트워크 우리가 외롭지 않으려면
Keyword 23 아파트 대한민국 ‘리모델링’은 ‘아파트 허물기’부터

이런 식으로 각각의 키워드에 따른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이 제목만 봐서는 과연 인문학을 다루고 있는 책인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소주제 그러니까 키워드 하나하나마다 예를 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예'가 우리의 현실과 직접적으로 맞물려 있습니다. 책 속에만 등장하는 상상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매일 겪는 바로 오늘입니다. 키워드 36이 다루고 있는 왕따에 대해 저자는 왕따의 사회학이라는 제목을 잡아 이야기를 풀어 갑니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책은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기득권자와 아웃사이더'라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는 구분이 차별로 이루어지는 과정을 흥미롭게 묘사하고 있는데 저자는 이 부분을 상세히 언급하면서 이와 같은 차별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함을 보여줍니다.

축구 선수를 뽑을 때 달리기 실력의 차이는 결코 차별이 아니다. 그러나 어느 지역 출신인지에 따라 선수를 가릴 때는 문제가 달라진다. 이처럼 정당하지 못한 차이로 차별의 벽을 쌓는 경우가 우리 사회에는 너무나 많다...(중략)..이런 우리 모습에 3구역을 멸시하는 2구역 주민들의 모습이 자연스레 겹쳐진다. -199면에서 발췌
이런 식으로 50개의 키워드에 대한 이야기와 100권에 책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독자는 자연스레 저자가 글에서 언급한 다른 책들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저자가 직접적으로 희망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물론 제한된 지면에 광범위한 주제를 담으려다보니 각각의 주제나 관련 서적에 대한 깊이가 깊지는 않습니다. 하나의 키워드마다 몇 권의 책을 써도 모자란데 고작 4-5페이지에 그 내용을 모두 담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 책은 도화선이 되는 역할이 강합니다. 독자들이 저자의 글을 읽고 한걸음 나아가 원저를 읽고 더 나아가 독자 스스로의 키워드를 만들어주기를 저자는 바라고 있습니다.

각 장의 말미에 자리잡은 서평란에는 바탕이 된 100권의 책들은 저자와 출판사까지 명시해주고 있어 서점을 두리번거려야 하는 분주함을 덜어주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자세히 적을 수 없었던 내용도 추가적으로 담고 있어 도서의 선정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그렇지만 저자가 언급한 책은 어디까지나 저자의 생각에 뒷받침이 된 책들입니다. 같은 제목을 가지고 있는 책들도 출판사와 역자에 따라 천차만별이니 읽고 싶은 책을 하나 정하면 여러 출판사의 책들을 같이 놓고 비교해보며 자신이 좀 더 읽기 좋은 책을 고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됩니다.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이 독자들의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한국인의 에로스
김열규

남자와 여자, 여자와 남자는 떼어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존재다. 인류가 이어지기 위해서는 가족이 필요하고 가족이란 남자와 여자가 합쳐 자식을 낳음으로써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사랑의 의미에 대해서도 유물론자들은 종족번식을 위한 가상의 감정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분명 이성으로서 남자와 여자, 여자와 남자 사이에는 종족번식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다. 그럼에도 요즘은 어떤가? 늦은 밤 앞서 가는 여자와 뒤에서 가는 남자 모두 불안을 느껴야 하고 엘리베이터에 단 둘이라도 타는 경우가 생기면 서로 고개를 돌리기 바쁘다.

인터넷에서는 연일 남자의 군대이야기와 여자의 임신이야기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양성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것이 자연적인 순리라면 요즘의 모양새는 양성이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야단이다. 사정이 이러니 아예 독신을 선언하기도 한다. 가족을 만들기 위한 성적인 욕구가 아닌 쾌락을 위한 성적인 욕구가 판을 친다. 주객전도라는 말은 오늘날의 남녀관계에 잘 어울리지 않을까?


김열규 교수의 '한국인의 에로스'는 이런 시점의 우리에게 참 적절한 문제 제기를 해 준다. '에로스'라는 제목에 혹시 야한 이야기라도 나오지 않을까 책장을 펼치면 금방 후회하게 된다. 출판사도 지적하듯 "라틴어인 Eros는 사랑의 신을 가리키면서도 Amor와 마찬가지로 남녀 간의 사랑을 가리키기도 한다. 동시에 남녀 간의 성적인 관계도 의미한다. 저자는 Eros가 이런 복합적인 뜻을 가진 점을 취해 남녀 간의 더 넓은 관계를 포착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과거 역사와 신화 속의 남녀 관계를 짚어 간다. 이를 통해 오늘날의 남녀관계를 진단하고 처방을 내린다. 기본적인 구조는 이렇지만 문제의 제기와 풀이라는 경계조차 없을 정도로 유연하게 글을 이끌어 간다.

1. 한국의 남과 여 2. 짝짓기와 혼례 3. 또 다른 짝짓기 이야기 4. 사랑, 그 만다라의 얼굴 이렇게 총 4개의 커다란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제목에 대한 선입관과는 전혀 달리 훌륭한 참고문헌의 역할을 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자료와 이야기가 곳곳에 담겨 있다.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에서부터 오늘날의 이야기까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든다. 조선 시대의 이야기가 바로 눈 앞에서 펼쳐지고 고교 교과서에 등장하는 작품들의 속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는 아무런 선입견 없이 처음부터 죽 읽어 가자. 각 장마다 특별한 연계성이 없기 때문에 두 번째 읽을 때에는 아무렇게나 마음 내키는 페이지를 펼쳐 읽으면 된다. 어느 곳을 읽어도 쉽게 빠져 들 수 있는 재미. 김열규 교수의 말빨(?)의 힘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김 교수는 왜 굳이 '한국인의'라는 부분을 강조했을까? 우리 사회가 현대화되면서 등장한 정체불명의 현대식 결혼식은 형식적이고 상업적이다. 가정의례준칙이라는 괴물이 등장하면서 우리만의 고유의 남녀관계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의 전통 혼례는 단지 양성이 만나 한 살림을 꾸리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가족과 가족의 만남, 인간과 인간의 만남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정적인 의미는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았다는 것이다. 인륜지대사라는 혼인의 형식이 그렇게 되었으니 혼인의 내용이 알찰 리가 없다. 김 교수가 개탄하는 점은 그런 것이 아닐까..

김 교수는 남녀 관계가 세상 모든 관계 중에 가장 까다롭고 성가시다고 한다. 그말은 곧이곧대로 들을 것이 아니라 그만큼 많은 경우가 있고 지켜야 할 것들이 많은 것이라고 받아들이면 어떨까? 생면부지의 남녀가 만나 혼인을 하고 살을 맞대어 자식을 낳는다는 것은 세상 어느 관계보다 대단한 관계가 아닐까. 그렇기에 어느 관계보다 조심스럽게 그러면서도 진실되게 다가서야 하는 관계가 아닐까 생각된다. 남녀는 적이 아니다. 다른 성으로 받아 들이기보다는 둘이 합쳐 하나의 완성체가 된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신체적인 차이는 눈에 보이는 외양일 뿐이다. 오히려 그 외견 상의 차이를 결합을 통해 완성시키는 것이고 이전에 서로의 마음이 온전히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이런 진부한 이야기를?' 이라고 비판하는 이도 있겠지만 인간 역시 자연이라는 커다란 역사 안에서는 그저 작은 한 부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을 받아들이고 살아간다는 마음으로 남자와 여자, 여자와 남자가 서로를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사랑은 받음이기 전에 베풂이란 것을 내세우고 싶습니다. 내가 받는 것보다는 상대방에게 주는 것에 더 마음을 써야 할 것입니다. 상대를 위하는 것이 바로 내 보람이고 기쁨이라야 할 것입니다. 이 점은 어떤 시대에도 바뀌지 않을 불변의 사랑의 철학일 것입니다." 김 교수의 사랑에 대한 일침이다.

체 게바라, 누군지는 자세히는 몰라도 어디선가 들어봤음직한 이름이다. 기억이 잘 나지 않더라도 지난 2004년 개봉한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본 적이 있다면 '아'하고 무릎을 칠지도 모르겠다. 과거 정권이었다면 제대로 빛도 발하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인물인데 그나마 민주화가 진행된 덕분일까? 한때 우리나라에도 체의 얼굴이 그려진 옷을 입고 다니는 이들이 제법 될 정도로 그의 인기는 대단했다.

그리고 그 열기가 모두 가라앉고 그의 이름조차 세인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갈 무렵 나는 그의 전기를 다시 읽어내려갔다. 실천문학사에서 꽤 공을 들여 내놓은 '체 게바라 평전'은 일단 독자를 배려한 책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700페이지가 넘는 분량덕분에 한 손에 책을 올려놓고 읽는 것을 즐기는 내게는 제법 고역이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독서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체를 본받으라는 의미가 담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판형도 작은데 두께가 두꺼워 한 손으로 책을 들면 자꾸 책이 접히려는 경향이 있어 결국 한 손으로 받혀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책을 눌러가며 봐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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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의 일대기에 대해서는 워낙에 많은 정보들이 공개되어 있으니 이 자리에서 그의 일생을 다시 돌아보는 것은 큰 의미는 없어보인다. 다만 왜 그가 전 세계인들에게 그렇게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지는 돌아봐야 한다. 그는 한 마디로 소신껏 살아간 인물이었다. 자신의 신념과 이상의 실현을 위해 평생을 바친 인물이다. 어떻게 보면 무모하고 무계획적이고 현실을 도외시한 이상주의자로 보일 수도 있었지만 그런 평범한 인간들과 그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그 이상을 실천에 옮겼고 성공을 거두었다는데 있다.

누구가 살아가는동안 자신의 이상과 현실사이의 괴리때문에 고민을 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을 택하고 하나의 부속으로 일생을 마감하지만 소위 '위인'이라는 인간들은 그런 현실을 타파하고 이상을 얻기 위해 일생을 바친다. 어떤 인생이 가치있는 인생이냐고 묻는다면 주저없이 위인의 인생이 가치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막상 직접 그런 삶을 선택해서 살것이냐고 묻는다면 주저하게되는 것이 또 우리네 삶이다.

이 책은 한 번을 읽어서는 제대로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다. 체의 일생을 시간적인 흐름에 따라 죽 훑어가고 있기때문에 글자에만 집중해서 읽어내려가다 보면 나중에는 도무지 무엇을 읽고 있는지 오히려 혼동스럽다. 처음 읽을 때는 그냥 이런 사람이 있었다정도로 만족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인터넷이나 도서관 등을 이용해 그 시대로 돌아가 역사적인 상황을 되짚어본다면 다시 책을 읽어내려갈 때 좀 더 체 게바라라는 인간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 본성에 대한 믿음과 스스로의 신념에 대한 확신과 추진력으로 가득 차 있는 근대사에서 접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인 체 게바라, 물론 혁명을 당한 입장에서는 귀찮은 테러리스트일 뿐이겠지만 그의 진정한 가치는 혁명가에서보다는 그가 가졌던 인간애에 있다고 보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내가 곧 서른 아홉이 된다. 시간은 어느 누구의 사정도 봐주지 않는다.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게릴라로서 내 미래에 대해 깊이 성찰한다. 그러나 당장은 '타협하지 않겠다'라고 결심했다. 해발 고도: 8백 40미터"

본문 중에서

장 코르미에 저/김미선 역 | 실천문학사 | 2005년 05월





요즘은 전자사전 그리고 스마트폰 등에 내장된 사전 기능이 뛰어나서 종이사전에 대한 애착이 예전같지는 않다. 하지만 뭐랄까 외국어를 공부하는데 있어 종이사전이 주는 느낌 그리고 학습 효과는 디지털로 된 사전에 비해 뛰어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너무 구세대가 아니냐? 고 되물을 수도 있겠지만 낡은 LP처럼 오래된 사전은 자신의 공부의 이력이고 살아온 인생의 한 단면이니 말이다. 종이사전을 구비하기로 마음 먹었다면 어떤 사전을 사야할까? 아마 국내에서는 민중서림의 엣센스, 동아의 프라임, 시사영어사의 e4u 정도가 선택의 한계가 아닐까 싶다. 실제로 나도 처음 영어 공부를 시작하던 때부터 엣센스를 사용해왔으니 말이다.



그런데 많은 영한사전들의 문제는 일본식 번역이라는 데 있다. 사전을 만들기 어렵던 시절에 일본에서 사전을 들여와 그것을 다시 우리말로 번역하다보니 최신판의 사전을 구입해도 왠지 낯선 한자로 된 뜻풀이가 곳곳에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대안으로 영영사전을 고르기도 한다. 영영사전 중에는 옥스포드대학 ELT의 사전이 많이 알려져 있는데 OALD라고 줄여서 불리는 The Oxford Advanced Learner’s Dictionary가 가장 유명하다. 현재 8판이 나와있는데 사용자들 평으로는 이전의 7판이 더 나아보인다.

아무튼 가능하다면 영영사전을 고르는 것이 보다 깊이 있는 공부에 적당하겠지만 영영사전이 부담스럽다면 위 사전을 우리말로 번역한 사전이 있다는 점에 주목해보자. 정영국 교수와 조미옥 님이 편역자로 참여한 옥스포드 영한사전이 그것이다. 아래 박스는 이 사전이 출시될 당시의 편역자인 정영국 교수의 인터뷰 기사다.

" 사전 편찬 과정에서 비교 분석한 국내 사전은 문제투성이였다.... 영일(英日) 사전을 베낀 듯한 대응어에서는 할 말을 잃게 된다. clove. 국내 영한사전에서 이 단어를 찾아보면 거의 다 ‘<식물> (백합 뿌리 등의) 소인경(小鱗莖), 소구근(小球根)’ 따위 대응어를 제시한다. 소인경과 소구근이라니? 한글학회에서 편찬한 <우리말큰사전>에도 없는 괴이한 단어들이다. 왜 이같이 생뚱맞은 낱말이 등장했을까. 간단하다. 영일 사전을 고스란히 번역한 탓이다. 정영국 교수는 “최근 통마늘로 번역하는 사례도 있지만, <옥스퍼드 영영사전>에 따르면, clove는 마늘 한 쪽을 뜻한다”라고 설명했다. (시사인, 2009년 4월 4일 발행자, p.70-71)"

일단 사전의 외양이나 제본 방식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사전을 디자인으로 선택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영영판에 비해서는 왠지 없어보이는 점은 지적을 하고 넘어가야겠다. 이전까지 국내에서 발간된 가죽 장정의 사전들을 보아왔기 때문인지 비닐로 투박하게 마무리된 커버는 별로 정감이 가지는 않는다. 원서를 보면 아예 비닐조차도 없으니 그것보다는 나을지도 모르겠다. 비닐 커버는 조금 날이 추우면 부러져 버릴 위험도 있어서 별로 선호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 사전의 경우 다른 선택지가 없으니 추운 날에는 돌돌 싸고 다니는 방법이 유일한 대비책일 듯하다. 게다가 표지는 한 번 접히면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단단하게 마감이 되어 있으니 혹 가방에서 표지가 접히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자.


The Oxford Advanced Learner’s Dictionary의 장점은 다양한 예문에 있다. 그리고 명확한 해석. 사실 사전으로서의 가장 중요한 기능에 충실하다고 할 수 있다. 수 많은 사전들 중에서 이 사전이 많은 사용자들의 인기를 모으는 것은 이 가장 기본이 되는 것들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사전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사전은 학습을 위한 사전이다. 따라서 사전 곳곳에 학습자들을 위한 배려를 하고 있다. 기본적인 단어의 색은 파란색으로 처리해서 눈에 잘 보이게 해 두고 있는데 영영판과 같은 편집 방식이다. 다만 편집이 조금 어설프달까.. 면을 펼치면 눈이 쉽게 피로해질 정도로 가독성은 떨어지는 편이다. 이 점에서는 국내 출간 사전들에 점수를 주고 싶다.


차라리 판형을 좀 더 키워서 가독성을 좋게 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현재로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The Oxford Advanced Learner’s Dictionary는 또한 고유의 편집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흔히 국내 사전에서 보는 타동사의 약어인 vt와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VN이라고 표기하고 있으니 첫 장의 약어표를 먼저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또한 모든 발음 기호는 영국식 영어가 우선된다. 미국식 발음은 뒤에 나오니 이 점도 기억하자.


전반적으로 한글 번역은 간단명료하고(한편에서 보면 부족할 수도 있지만) 예문을 많이 보여주는 편집 방식이다. 단어를 찾아 그 뜻만 보지 말고 실제의 활용법을 보라는 이야기다. 학습자의 사전으로서 당연한 배려다. 다만 많은 어휘를 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학습자를 위한 사전이라는 제목처럼 지엽적인 단어들은 나와 있지 않다는 점도 기억하자. 오히려 이 부분에서는 국내 사전이 좀 더 많은 어휘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영어학습이라는 본연의 목적을 생각한다면 지엽적인 단어들보다는 주로 사용되는 어휘들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다.

국내 출간 사전을 보다가 이 사전을 보면 처음에는 상당히 낯선 느낌이 든다. 단어도 부족한 것같고 왠지 눈도 피로한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활용해 나간다면 이제까지의 영어 공부 방식에 한바탕의 전환점을 마련해줄 수 있는 든든한 친구가 될 것이다. 8판의 한국어판이 출시될지는 알 수 없지만 하드웨어적인 편집에서 보완만 좀 더 이루어진다면 제대로 공부하기에 좋은 사전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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