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꿈 속에서 다른 꿈을 꾸었는지, 두 꿈을 연달아가면서 꾸었는지, 아니면 오늘은 이 꿈, 내일은 저 꿈 하는 식으로 교대로 꾸었는지 기억해 낼 수 없다.

나는 한 여자....... 내가 아는 한 여자를 찾고 있다. 나와는 뜨겁고 깊은 관계를 맺고 있던 여자다. 이런 관계가 왜 소원해졌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어쨌든 여자에게 계속 연락을 취하지 않았던 것이 나의 잘못이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그대로 흘려 보냈다니, 정말 이해가 안 간다. 나는 그 여자를 찾고 있다. 아니다. 그 여자들인지도 모르겠다.

한 여자가 아니라 여러 여자다. 여럿이었다. 나는 여자들을 모두 같은 이유로 잃었다. 내가 무심했던 탓이다. 지금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하나만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나는, 여자들을 잃음으로써 많은 것을 잃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꿈속에서는 여자의 전화번호가 쓰인 수첩을 찾을 수 없거나, 내 수중에서 사라지거나, 있는 데도 펼칠 수 없게 되고는 한다. 심지어는 펴기는 펴는데. 원시(遠視)가 되어 버리는 바람에 이름을 읽을 수 없게 되는 꿈을 꾸기도 한다.

나는 그 여자가 어디에 있는지 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떻게 생긴 곳인지 모를 뿐, 그곳이 어디인지는 안다. 계단, 로비, 혹은 층계참에 대한 내 기억은 선명하다. 그런데도 나는 그곳을 찾기 위해 온 도시를 쑤시고 다니지 않는다. 그저 고민에 빠진 채 얼어붙은 듯이 죽치고 있다.

나는 여자와의 관계가 소원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그 자리에 나가지 않았던 이유, 마지막이 되어버린 그 자리에 나가지 못했던 이유를 생각하면서 내 머리를 쥐어 뜯는다.그 여자는 내 전화를 기다리고 있음이 분명하다. 아, 이름이라도 알았으면....... 나는 그 여자가 누군지 잘 안다. 단지 그 모습을 머릿속으로도 그릴 수 없을 뿐이다.

-움베르트 에코, 푸코의 진자 II 1990, 티페렛 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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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연금술은 현숙한 창녀다. 이 창녀는 애인은 많아도 어느 누구에게도 마음의 문을 열지 않음으로써 결국 실망만을 안기고 만다. 이 창녀는 거만한 자는 바보로, 부자는 거지로, 철학자는 멍청이로, 속은 자는 사기꾼으로 바꾼다.

- 트리테미우스, '히르사우겐시움 연대기', II, 산 갈로, 1690,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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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뿌리부터 바꾸어 놓은 책..

원래 가지고 있던 책이 너무 낡아 새로 한권 주문을 했다.


나는 정녕 내 마음 속에서 절로 우러나오는 것에 의해

살아보려고 했던 데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이 어찌 그다지도 어려웠을까?
 
내 인생의 시작에서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생을 마치는 순간까지 짊어지고 가는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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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새 무척 많은 책을 구입했다.

책 보는 걸 꽤 좋아하면서도 좀처럼 시간을 내지 못했었는데 억지로라도 시간을 내어 책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한 것은 요즘 너무 정서가 메말랐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 무엇보다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책을 보는 동안은 생각할 거리들이 많이 생긴다. 끊임없이 생각을 해야 하는 작업이 책읽기인 까닭이다.

모처럼 장만한 책들을 보니 기분은 뿌듯한데...과연 언제 다 읽을 수 있을 지는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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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대생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만한 책을 꼽으라면 권영성 선생님의 헌법학원론, 곽윤직 선생님의 민법강의 시리즈, 그리고 이재상 선생님의 형법총,각론을 꼽을 수 있다. 물론 요즘은 학원 강사의 책이나 다른 저서들도 어느 정도 나와서 그 대세는 많이 가라앉았지만 내가 공부하던 시절에는 위에 적은 책들은 말 그대로 교과서였다.

이 책의 제본은 박영사가 담당하고 있다. 지질이 좋은 편이어서 장기간 보아도 눈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 제본도 튼튼한 편이어서 공자의 경우처럼 위편삼절이 되기는 어렵지 않을까..

누구나 당연히 기본서라고 생각하는 책이지만 실제로 파고 들어가보면 상당히 난해한 책이기도 하다. 형법을 전공했음에도 어느 부분에서는 진도를 나가기 위해 상당히 고전을 하기도 했다. 이는 이 책의 전개방식이 독일 원서의 번역체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많이 나아졌지만 예전에는 가뜩이나 딱딱한 법률문장을 그것도 번역체로 이해하기에는 꽤나 어려웠었다. 나도 이 선생님의 책을 조금 이해하게 된 것은 학부과정을 마치고 좀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하게 되면서부터였으니 남들이 다 본다고 해서 결코 만만한 책은 아닌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몇몇 사람들은 이 선생님의 책이 쉽다고도 하는 데 존경스러울 뿐이다..

형법은 법학 과목 중 가장 공부하기가 어려운 과목이다. 바로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이 형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형법을 공부하다 보면 법철학이나 윤리학 심지어 심리학이나 생리학까지 공부해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도 법학에 대한 기반이 쌓이고 인생에 대한 경험이 쌓인 상태에서 접근을 하는 것이 형법을 빠르게 공부하는 지름길이랄까..

이 책으로 공부를 하다보면 문체가 난해한 부분은 몇 번이고 다시 되풀이해서 읽고 주석의 참고문헌과 관련 판례들을 직접 찾아서 읽어야 제대로 이해가 되는 경우가 많다. 너무 쉽게 이해가 되는 형법은 자칫 무고한 시민에게 유죄를 선고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공부는 어렵게 하는 것이 정석이다. 그래서 이 선생님께서 일부러 책을 어렵게 쓰셨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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