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처세술이나 자기계발서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뭐랄까 너무나 뻔한 이야기들을 포장만 바꾸고 단어만 바꾸어 내보낸다는 느낌이 강했기때문이기도 하고 이런 류의 책들은 당시의 시대적인 분위기에 따라 지나치게 선정성을 가지고 있는 점도 내가 부정적인 생각을 갖는데 한몫 했다.

그러다가 접한 책이 안상헌 씨의 '생산적 삶을 위한 자기발전노트 50"이었다. 역시 제목만 보아서는 여느 계발서와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한 번에 계속 책을 붙들고 있을 정도로 눈을 떼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천편일률적인 식상한 문체가 아니라는 점과 적절한 예시가 돋보였다. 그때 안상헌 씨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게 되었는데, 위드블로그에서 진행 중인 이벤트를 보다가 '안상헌'이라는 이름만 보고 덥썩 신청을 했다.



우선 '홍크'의 출판사 서평을 보니 전형적인 내용들이다.
 
"좋은 리더는 최우선목표를 잊지 않는다!" 라던가

"협력은 공동의 목표달성에 필수적이다!"라는 식이다.

아마 안상헌을 모르고 이 서평만 봤다면 절대 이책을 읽지는 않았을 것이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이런 식의 홍보방식보다는 필자에게 더 비중을 두었으면 어떨까 싶다. 위와 같은 문구는 너무나 지천에 널려있으므로..

책의 제목은 '홍크'다. 이래서는 일단 관심은 가지만 무슨 책인지 알길이 없다. 그래서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리더십'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첫장에 보이는 기러기의 일러스트를 다시 한 번 보면 책의 대충의 내용이 예상된다.

첫장을 펼치면 깔끔한 삽화와 등장인물에 대한 소개가 나온다. '아, 이책은 소설식으로 진행이 되는구나. 제법 특이한 시도인데?'라는 생각이 든다.



계절이 겨울로 바뀌면서 머나먼 여행을 떠나야 하는 23마리의 기러기들의 여정을 통해 작가는 직면하는 다양한 위기들을 슬기롭게 극복하며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을 풀어나가고 있다. 아마 이 책이 소설체가 아닌 문체로 써졌다면 꽤나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겠지만 구어체의 사용과 삽화, 조금은 어색하지만 줄거리가 있는 내용으로 작성되면서 독자들을 빠져들게 한다. 주제는 "좋은 팀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으로 "최우선목표를 함께 공유하는 것"으로 요즘처럼 직장의 위기가 만연된 시기에 한 번쯤 생각해볼만한 화두라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웠던 점은 자기계발서라는 점을 의식해서 본문 중에 '목표', '팀원', '리더', '팀의 목표' 등과 같은 단어들이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중간중간에 사용된 제목도 조금 딱딱해보인다. 차라리 갈메기의 꿈처럼 글 전체를 소설형의 문체로 진행하고 독자가 그 안에 숨어있는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게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이번 책을 계기로 안상헌 씨의 책이 계속 이런 형식으로 나와주기를 바라며...

"삶은 우리가 배울 준비가 되어 있을 때에만 가르침을 준다" -p135.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은 쓰여진 시기가 제법 오래된 책임에도 오늘날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도 많은 생각거리들을 던져줍니다. 무엇보다 소로우는 자연주의적인 사상을 통해 문명사회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문체나 시대적인 상황이 근대이기 때문에 읽어나가는 것이 그리 수월하지는 않지만 한 문장 한 문장을 되새김질하고 읽어나가다 보면 공감하게 되는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사실 오늘날의 인간들, 아니 유사 이래 인간들은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선 부와 명예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차 있죠. 유한한 생명을 가진 존재이기에 오히려 살아있는동안 더 많은 물질적인 것들에 집착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결국은 부질없는 것이죠. 물론 살아가는 시간을 열심히 일하고 그것을 통해 부를 축적한다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지나친 욕망의 결과 오히려 정신적인 황폐함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점을 우리네들은 너무 간과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소박한 생활을 하며 자신이 직접 가꾼 농작물만을 먹되 필요한 만큼만을 가꾸며, 또한 거둬들인 농작물을 호사스러운 기호 식품과 바꾸려 들지 않는다면 단지 몇 '라드'의 땅만 일구어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다는 것.

소로우, '월든', 이레, 2007,  p81.

위 문장은 소로우가 인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사람이 살아가는동안 무엇을 추구해야할 것인지는 철학의 원천적인 주제 중의 하나이고 사춘기 청소년들은 물론 80이 넘게 생을 살아온 사람도 풀기 어려운 난제 중의 하나입니다. 소로우는 다분히 안분지족적인 삶의 모습을 인간들에게 제시하고 있는데 이를 쉽게 받아들이기는 한편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합니다.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인데 과연 소로우가 이야기한대로 안분지족의 자세로 '철학자'의 삶을 사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가 아니면 이왕 사는 거 화끈하게 하고 싶은 일 다 하면서 사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가는 어떤 쪽이 더 나은 것이라고 단정지어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에는 개개인이 생각하는 가치관이 반영되기 때문이죠. 다만 월든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지나침에 대한 자기반성이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무덤까지 가지고 가지 못할 것은 끌어안지 않으려고 한다"는 대사도 이런 면에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지나친 회의주의는 일상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은 되지 않습니다만

아무튼 '월든'은 날로 각박해져가는 인생 그리고 욕망덩어리로 가득 찬 인생에 적나라한 경고를 던지고 있습니다. 문장 자체가 어떻게보면 과격하다 싶을 정도인 부분도 있지만 가끔 인생을 돌아보고 싶을 때 혹은 스스로의 삶을 한 번 정리해보고 싶을 때 훌륭한 지침서가 될만한 책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불필요한 삶의 열매는 사치일 뿐이다.


ibid, p26.
 




외국어 공부를 할 때는 역시 사전이 없어서는 안 되는 일이고 대학 때부터 계속 써오던 사전이 민중서림의 이 사전인데 일본어의 경우에는 일반 사전에 덧붙여 한자사전 한 권 정도가 더 있으면 제법 요긴하다. 그러다보니 제법 두꺼운 본 사전에 한자읽기사전까지 사전만 두 권이 되니 불편하다(자기최면...)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전자사전을 하나 구입했었는데 처음에는 신기하기도 하고 발음까지 나오는 첨단 기술에 놀라 조금 써봤지만 역시나 인터넷으로 신문을 보는 것처럼 뭔가 허전하고 어색한 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결국 몇 번 쓰지도 않은 전자사전은 장터에 올려버리고 먼지가 풀풀 날리는 종이사전을 다시 꺼내왔다. 나는 책에서 나는 책 고유의 향(?)을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사전의 경우는 그 향이 독특하다. 그리고 역시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사전에 줄을 치고 공부하는게 성격에 맞는다. 벌써 구세대가 되어 버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글은 아무래도 종이에 적힌 것을 보는 것이 내겐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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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5일 미국의 카네기멜론 대학의 종신 교수인 랜디 포시가 세상을 떴습니다. 다른 나라의 교수가 세상을 뜬 것이 중요한 일이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는 이미 우리나라에도 책으로 소개되어 있는 '마지막 강의'의 저자이자 주인공입니다.

사실 이전까지는 이책이나 랜디 교수에 대해 알지 못했습니다. 우연히 팀원 한명이 이책을 사주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고 서점에서 책에 대한 내용을 보고 팀원 모두에게 한권씩 선물해주었죠. 그러면서도 정작 저는 이책을 사지 않았는데 뻔한 내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 그러고나서 얼마 후 랜디 교수의 임종 소식을 접했고 뒤늦게 그의 강의를 직접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이 강의의 제목은 "Really Achieving Your Childhood Dreams"으로 책에도 소개되어 있지만 어린 시절 자신의 꿈은 어떤 것이었고 그것을 어떻게 이루었는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원본은 1시간이 넘는 분량인지라 편집본을 링크로 걸어둡니다) 누구나 어린 시절 꿈을 갖기 마련인데 랜디 교수는 평생을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았고 나름대로 대부분의 꿈을 실현시켰습니다. 그리고 강조하죠. 어린 시절의 꿈은 무엇이었느냐? 그리고 지금은 그꿈을 이루기위해 무엇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또 무엇을 할것이냐고 묻습니다.

어떻게보면 참 단순한 이야기인데 실제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기위해 노력하는 사람 그리고 그꿈을 현실로 만드는 사람은 정말 적습니다. 그저 막연하게 마음 속으로만 그꿈의 향수에 가끔 잠기는 것이 평범한 우리네들의 삶의 모습이겠죠.

살림출판사에서 '마지막 강의'를 출간한 것이 6월말이었으니 이책은 그가 살아있다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진 책이고 책을 읽어나가는 많은 이들이 그가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일어서주기를 바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운명을 달리했고 그가 남긴 메시지들이 더 절실한 느낌으로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랜디 교수의 이 강의는 그가 살아있는 동안의 마지막 강의였고 우리가 흔히 접하는 소설이나 드라마에서처럼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죠.

당장 시한부선고를 받는다면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까요? 그동안 갈 수 없었던 긴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고 잔뜩 밀린 책들을 읽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랜디 교수처럼 앞으로 세상을 살아갈 남은 가족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남겨두는 것도 큰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이책은 그런 의미에서 가족들에게 최고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이책은 랜디 교수가 세상 사람들을 위해 쓴 책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사후 세상에 남겨진 아내와 아이들을 위한 책이라는 성격이 강합니다. 그런 면에서 보게 되면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계속 남의 일처럼 공감이 이루어지지는 않을 수도 있는데 그럴 때는 마음을 조금 넓게 열고 내가 남겨진 그의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읽어나가기를 권합니다.

끝으로 이 강의의 스크립트를 링크로 걸어둡니다. PDF니 리더가 있어야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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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책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거슬러 올가면 군 시절부터다. 신병교육대대 교육장교를 지내면서 신병교육지침서를 제작했는데 아직도 그책 뒷면에는 중위 OOO라는 내 이름이 고이 간직되어 있다. 물론 대학시절에 선배를 도와 석사논문 작업을 같이 하기도 했지만 정식으로 다른 사람들이 보는 책에 내 이름이 들어간 것은 제한적이긴 하지만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후 잡지사에 들어가 기자생활을 하면서 내 이름을 세상에 찍어 내기 시작했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서서히 이름이 노출되기 시작할 무렵에는 "야, 이 정도만 해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곤 했다. 누군가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은 대단히 흥미진진한 일인데 특히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잡지나 서적을 통해 그런 작업이 이루어지는 것은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후 단행본과 잡지, 온라인 미디어 등에 글을 쓰면서 제법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에 익숙해졌지만 본격적으로 책 한권을 온전히 내손으로 기획부터 인쇄까지 만든 것은 바로 이전 직장에서가 처음이었다. 따라서 나 개인적으로는 대단히 큰 욕심이 있었지만  어수선한 회사 분위기 탓에 좀 더 완성도를 높일 수 없었던 것은 앞으로도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다.

책 한권을 혼자서 만든다는 것은 아마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그 고충을 알 수가 없지 싶다. 어떤 책을 만들지 기획을 하고 일정을 잡고 저자와 부지런히 면담을 한다. 내부 구성은 어떻게 할지 각각의 구성에 따른 리드문의 발췌, 책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 만들기, 표지 디자인과 내지 디자인, 카피 문구와 이후 홍보 계획 등은 책상 앞에서 이루어지는 머리를 감싸쥐게 하는 작업이고 출력소와 인쇄소를 왔다갔다하며 없어진 폰트는 없는지 페이지가 넘치지는 않는지 색상은 어떻게 갈 것이며 실제 인쇄시 어떤 배색이 이루어지는지를 살피는 일 등은 발로 뛰는 작업이다.

이외에도 여러가지 부수적인 작업들이 있겠지만 이 모든 것을 나 혼자서 하기는 확실히 벅찼다. 그나마 내뜻대로 책을 만들 수 있는 여건도 아니었고 나가기 전에 만들고 나가라는 압박 역시 좀더 책에 집중하지 못하게된 원인이 아니었나 싶다. 결국 모든 작업이 마무리되고 제본된 책이 내손에 도착했을때는 기쁨보다는 아쉬움이 많았다. 누구 하나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 1인다역을 해가며 만든 책인만큼 감회도 남달라야 했는데...

아무튼 책의 마감과 동시에 나는 회사를 그만둬야했다. 이후 책의 판매나 피드백 같은 것은 들을 수 없었다. 마치 아이를 낳자마자 빼앗겨버린 어머니의 심정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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