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산란한 탓인지 담배 한 대를 피워야겠다고 생각하고 밖으로 나갔다. 집 앞 구석에 누군가 버려둔 유리판이 몇 주째 있는데 제법 크기도 크고 게다가 3조각으로 잘려있어서 위험하겠다 싶었지만 누가 거기에 가져다놨는지 알 길이 없어 그냥 무시만 하고 지내다가 갑자기 무슨 일인지 저 유리판들을 치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는 그래도 그 유리판들이 어쩐지 시원해보이기도 하고 각도를 잘 잡으면 거울처럼 주변 풍경을 보여주기도 해서 가만히 있었지만 오늘따라 왜 저 유리판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알 길은 없다. 그냥 위치도 잘못되어 있는 것 같고 처음엔 맑기만 했었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먼지를 뒤집어써서 흐려지는 것이 싫었나보다.

담배 한 가치를 입에 물고 아무 생각없이 가장 큰 조각을 오른손으로 잡아올렸는데 내가 생각한 무게와 큰 차이가 있었는지 그대로 미끄러지며 오른손을 가르고 지나갔다. 잡은 면이 당연히 마모작업이 되어 있을 거라고 착각을 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겠지만 순식간이란 단어가 그렇게 실감이 날 줄은 몰랐다.

오른손 엄지와 검지사이로 유리판이 미끄러졌는데 뭔가 묘한..말로 표현하기 힘든 찰라의 통증이 잠시 스치고 지나가더니 금세 붉은 피가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우습게도 그 순간 든 생각은 '나도 살아있긴 하구나' 였으니 참... 아무튼 이제껏 살아오면서 내 몸에서 그렇게 많은 피가 흐르는 것을 본 것도 처음인데 왼손으로 지압을 하며 '힘줄은 안 끊어졌어야 하는데...'라고 중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유리란 물과 같이 투명하다. 다만 물은 그 모양과 흐름을 그저 맡겨둘 뿐이고 유리는 누군가에 의해 그 모양이 정해진 것에 차이가 있다. 그렇게 강제로 만들어진 투명함은 본래의 맑음보다는 억지로 만들어진 것에 대한 상처를 그 내면에 담고 있어 누군가 자기에게 상처를 줄 것 같으면 가차없이 상대의 살을 베어버린다. 그리고 상대의 상처에서는 피가 흐르지만 정작 유리는 깨끗하다. 그 유리에 은가루를 입혀 거울로 쓴다는 것은 또한 아이러니다...

아무튼 모든 문제는 그 유리를 마주하는 이의 마음이다. 자기의 마음이 좋을 때는 한없이 맑고 투명해보이기만 했던 유리가 자신의 마음이 헝클어졌다는 이유로 탁하게 보인다. 애초에 유리 자체는 변한 것이 없다, 그냥 원래 주어진대로 존재할 뿐인데 그것을 대하는 사람만 달라졌을 뿐이다. 결국 모든 문제는 상대가 아닌 나에게서 비롯된다는 단순한 진리를 다시 확인할 뿐이다. 

가장 맑은 것, 가장 투명한 것이 가장 날카롭다. 


Canon EOS-1Vhs, EF 28-70mm f/2.8L, Kodak Supra, LS-40

사실 무더위에 어디를 다닌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고 카메라를 짊어지고 나갔다면 고통은 배가 된다. 똑딱이라면 어찌어찌 버텨보겠지만 SLR에 렌즈까지 마운트하고 돌아다니는 것. 특히 도시 한 가운데를 다니는 것은 상당한 인내가 요구되는 작업이다.

도시의 삶의 모습들을 잡아봐야겠다는 거창한 목표를 세우고 집을 나서지만 대개는 흐르는 땀과 오른손에 느껴지는 무게의 압박때문에 쉽사리 카메라를 들어 무언가를 찍어야겠다는 '의지'가 솟아나지는 않는 편이다. 그러면 보통 '내가 직업 사진가도 아니고..'라는 자기합리화를 하며 '오늘은 그냥 구경이나 하자'며 적당한 타협을 하곤 한다.

그래도 아예 사진을 찍지 않자니 뭔가 어색해 조리개를 조여 놓고 노파인더 촬영을 하겠다고 폼을 잡고 카메라를 아무렇게나 휘휘 돌리며 거리를 쏘다닌다. 이러면 애초의 원대한 목표에 대한 부담이 급격하게 떨어져서 기분에 따라 셔터버튼을 꾹꾹 눌러대는 고양이 촬영을 하게 된다. 구도며 초점이며 그런 것들은 멀리 사라지고 어려운 말로 Candid Photo라며 혼자 으쓱해한다.

가끔 운이 좋으면 그래도 수평이 맞은 사진을 담을 수도 있는데 아마 내가 매그넘의 어느 저명한 사진작가였다면 여러가지 이유를 붙여 대단한 작품일 수도 있는 사진들을 건지게 된다. 물론 나는 그네들이 아니기때문에 쉽게 이야기하면 '망작'이 탄생하게 된다. 허나 미래의 내가 어떤 사람이 될 지는 알 수 없지 않냐? 며 나름 사진에 심오한 의미를 부여한다. 

집에 돌아와 메모리카드로부터 사진들을 컴퓨터로 옮기고 났을 때 도저히 눈을 뜨고 볼 만한 사진이 없어서 이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물론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도 본다.

그리고 마지막 사진에서 진정한 의미를 찾는다. 그렇다. 오늘의 사진은 아방가르드였던 것이다. 구도니 초점이니 하니 번잡한 요소들은 작품에 있어 아무런 가치를 주지 않는 것이다. 마치 행위예술처럼 마음가는대로 카메라를 돌리다가 어느 순간 잡힌 장면..그것이야말로 시대의 순간의 포착이며 진정한 삶의 현장이 아닌가! 라며 흡족해 한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며 생각한다.


'다시는 이런 짓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Nikon D300, AF NIkkor 35mm f2.0D


향원정은 여름에 가야 제맛인데 무엇보다 연꽃이 활짝 핀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어떤가 모르겠지만 예전의 향원정은 말 그대로 옛정취가 물씬 풍기는 그래서 시간의 개념조차 잊게 되던 그런 곳이었다. 위 사진은 16mm인데 아마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렌즈가 아닐까 싶다. 어안렌즈 특유의 느낌을 살리기에 적당한 바디를 쓰지 못해 아쉬웠던 날...

연꽃을 담아보려 이리저리 노력을 해봐도 쉽지 않은 것은 역시나 거리. 당시 D1x와 200mm 렌즈였는데도 좀처럼 마음에 드는 꽃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꽃이라는 게 피고지는 때가 있는 법인데 어느 날 갑자기 찾아가 왜 꽃이 없냐고 항의를 해봐야 무지한 자신을 드러내는 일일 뿐...

살아가는 일은 결국 순리대로 따라가는 것이 상선(上善)이다. 즉 물처럼 살아가는 동안에 가장 좋은 삶을 살게 되는 것이지 싶다. 그럼에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우리네 삶은 물처럼이 아닌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의 삶을 보다 추구하는 모양새다. 꽃처럼 때가 되면 꽃을 피우고 때가 되면 조용히 물러나 다음 개화를 기다리는 마음.. 그것을 우리네 인간은 참 갖기가 어렵다.

허나..어렵다 생각하면 또 끝이 없는 법.. 물의 흐름을 따라 꽃의 순리를 이해하는 마음을 얻기 위해 살아가는동안 노력해야한다. 그것이 살아가는 이유이자 목적이 된다면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얼마 전에는 차로 춘천 외곽을 둘러보았는데 이번에는 춘천 안으로 들어가봤다. 춘천으로 가는 길은 이제는 너무나 손쉬워져서 중앙선을 타기만 하면 갈 수 있다.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고 기차 안에서 기차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대학생의 낭만은 덕분에 영화에서나 등장하는 이야기가 되어 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너무나 깨끗해진 현대식 건물의 역사를 보며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아득한 기억을 애써 떠올려보려고 해보지만 워낙 일체감이 없기에 쉽사리 기억을 끄집어내긴 어려워보인다. 하루 정도 머물 생각이어서 렌터카를 알아보니 8만원을 달란다. 주말에 덥썩 사무실을 찾아가니 그럴만하다 싶었다. 춘천 밖으로 나갈 생각은 없었기에 차라리 택시가 저렴할 것 같았고 실제로도 그랬다.

춘천의 기억은 늘 햇살이 따가울 정도로 내리쬐는 여름이다. 오래 전 만나던 이와 청평사를 찾았을 때도 그랬고 오늘 역시 대서라는 절기가 절정에 이르렀는지 햇살이 아플 정도로 따가왔다. '공지천'주변에는 에티오피아 기념관이 있는데 6.25참전을 기억하는 장소로 왜 춘천에 이런 것이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이 지역이 사실은 격전지 중의 하나였다는 역사를 떠올리면 그럴만하다..라는 생각이 든다.

오리보트는 공지천의 녹색 물결을 가르고 있었는데 무슨 일인지 몰라도 정말 강의 색이 '녹색' 자체다. 무언가 정체모를 꺼먼 것들도 둥둥 떠다니고 있어서 저 보트를 타려면 제법 용기가 필요하지 싶다. 그래도 연인들은 더위도 강물의 색도 개의치 않고 끊임없이 오리보트를 타고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있었다. 좋을 때다 연인들이란..

에티오피아 원두로 만든 커피를 파는 전문점인데 커피를 워낙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 '맛'은 전혀 모르는 나로서는 이것이 에티오피아 커피의 맛인지 알 길이 없기에 주는대로 덥썩 받아와 마실 수밖에 없었다. 커피숍은 제법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낡은 인테리어를 뽐내고 있었는데 오래 전 이곳을 들러간 이들에게는 기억을 되살리기에 충분하지 싶었다.

엄청난 더위에 아예 SLR을 들고 가는 것은 상상도 못 했다. LX5 하나만 들고갔는데도 가방은 무거웠다. 체력이 갈 수록 떨어지는 게 분명하다. 게다가 더위에 지쳤다는 핑계로 그나마 가져간 녀석도 좀처럼 꺼내지 않았다.  카메라에 매달려있는 렌즈캡을 찍으며 그나마 사진 몇 장 찍어왔다고 위안을 삼아 본다.

조각공원에는 김유정문학비가 있다. 김유정은 1908년 춘천의 실레마을이라는 곳에서 태어났고 이곳은 그를 기념하기 위한 공원 중의 한 곳이다.  춘천역을 가는 중간에 우리나라 최초로 사람 이름을 역 이름에 담은 김유정 역이 있는데 이곳 역시 같은 의미다. 물론 지금의 김유정 역은 현대식 역사다. 이전의 한옥 지붕의 역사는 폐쇄되어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한다.

공원 곳곳에는 제법 많은 조각들이 있었는데 찬찬히 둘러보기엔 날이 너무나 더웠다. 그럼에도 풀밭 곳곳에서는 연인들이 야릇한 포즈로 부둥켜 안고들 있어서 가뜩이나 더운 날씨를 더 뜨겁게 만들고 있었다. 연인들에게 추위와 더위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

춘천의 번화가인 명동의 밤거리다. 명동 자체는 그리 넓다고 볼 수는 없지만 정말 없는 게 없을 정도로 다 있다. 좁은 공간에 상점의 밀집도가 상당하달까.. 예전에는 춘천 시내라 해도 밤 시간이 깊어가면 상점들도 많이 문들 닫고 행인도 적었다는데 요즘은 제법 늦은 시간에도 많은 이들이 거리를 오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겨울연가를 보지 않아 알 수는 없지만 이곳도 촬영지 중의 한 곳인가보다. 촬영지라면...이라고 생각할 즈음 같은 색의 옷을 입은 수십 명의 중국인 관광객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것이 보였다. 외국인 관광객들을 통한 지역사회의 수익창출은 아주 좋은 것이지만 그 지방의 고유한 특색이 아닌 드라마라는 점이 아쉽긴 했다. 그래도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나은 것일까...

춘천은 도시의 이름 자체가 낭만을 안고 있다. 가평, 청명, 대성리...이런 이름들처럼 춘천은 희미한 기억 속의 도시라는 느낌이 강한 곳이다. 그럼에도 선뜻 발이 춘천으로 향하지 않았던 것은 그 희미한 기억, 아스라한 기억이 사라질까 못내 두려웠기 때문이고 오래 전의 추억으로 남아있는 그 기억을 다시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모든 기억은 장소에 그렇게 봉인되곤 한다. 어떤 기억이 좋았건 혹은 그렇지 않았건 세월이 지나 한 번의 웃음으로 그 기억들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때가 오는데 그때 그 기억들이 봉인된 장소를 찾아가게 되면 마치 얼음이 녹듯 서서히 그리고 온전하게 지난 시간의 기억들이 바로 지금의 일처럼 또렷해진다. 

기억은... 그리고 추억은 잊히는 게 아니다. 그저 가두어둘 수 있을 뿐이다. 


Panasonic LX5


SLR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렌즈에 대한 고민을 늘 하게 된다. 99년으로 기억하는데 니콘의 F100으로 SLR에 입문한 나로서는 그동안 소위 '장비병'을 거쳤었다. 사진을 찍는 것도 좋아하지만 사진 장비 자체 또한 상당히 좋아하는지라 중형포맷을 제외하면 어지간한 장비들은 써 보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 끝에 내 나름대로 내린 장비 세팅은 의외로 간단했다.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렌즈들을 거치고 거쳐 끝내 정착한 렌즈는 아래의 두 개다. 물론 아쉬운 거라면 광각 영역이다. 20mm 하나만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당분간은 조금 미뤄두어야 할 상황이다. 

첫번째 렌즈는 구형 35mm렌즈다. 정식 명칭은 AF NIkkor 35mm f2.0D인 이 녀석은 1995년에 초기 버전이 출시되었고 내가 가지고 있는 렌즈는 2006시리즈로 2006년 이후 발매된 버전이다. 구형 렌즈인데다가 포커싱 소리가 시끄럽기도 하고 뭔가 디자인이 고리타분해 보이기도 하지만 카메라를 들고 나갈 때면 소위 렌즈캡으로 사용하는 녀석이다. 35mm는 오래 전부터 워낙 내 눈에 익숙한 화각이어서 그런지 이 렌즈로 세상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참 편안한 느낌이 든다. 가장 현실감있는 렌즈가 아닐까 싶다.

니콘으로 정착하기 이전에도 콘탁스, 라이카 기종 모두 35mm를 사용했는데 심도만을 이용해 노파인더 촬영도 간단하고 어떻게 찍어도 가장 무난하게 나오는 화각대라는 생각이다. 물론 50mm를 표준으로 사용하는 분들에게는 다소 넓은 감도 있겠지만 렌즈의 화각이라는게 사실 어느 정도는 익숙함에서 오는 것이지 싶다. 28mm를 사용하는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화각대가 가장 편안하다고 하니 말이다.

두번째 렌즈는 55mm 마이크로다. 원래는 매크로라고 해야 하는데 니콘의 고집인지 굳이 마이크로라 쓴다. 흔히 말하는 접사렌즈인데 1979년에 처음 발매된 렌즈이니 역사도 제법 되는 렌즈다. 그렇다고 골동품은 아니고 시리얼 8번대는 2006년 이후 출시된 렌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녀석은 5번대 시리얼로 아마 2003년 정도에 나온 렌즈가 아닐까 싶다. 이 렌즈는 디지털로 넘어 오기 전에도 두번을 구입했다가 내보낸 녀석인데 D700으로 넘어오면서 다시 들인 녀석이다. 예전에는 구하기가 어려워 미국에서 공수를 해오기도 했었다.

니콘의 전형적인 Ai-S타입렌즈다. 이 렌즈는 접사렌즈임에도 풍경에서도 대단한 성능을 보이는 렌즈여서 전천후로 활용하기에 적당하다. 가격도 저렴해져서 중고장터를 뒤져보면 깨끗한 녀석을 10만 원대에 들일 수 있다. (물론 신품을 구할 수도 있다) 디지털 시대가 열리면서 니콘 수동렌즈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반가운 일이다. 

이런 분위기지만 칼 차이즈의 수동렌즈들은 여전히 대단한 가격대를 자랑한다. 특히나 25mm는 여전히 유혹의 대상이긴 하다. 예전같으면 어떻게 장만이라도 해볼까 전전긍긍했겠지만 요즘은 좋은 장비들을 봐도 크게 마음이 가지 않는다. 무엇보다 내 사진 실력이 장비가 달라진다고 해서 크게 나아지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고 결정적으로 사진을 찍으러 좀처럼 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단렌즈가 좋으냐 줌렌즈가 좋으냐. 밝은 렌즈가 좋으냐 어두운 렌즈도 괜찮냐. 끊임없이 사람들이 묻는 질문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줌렌즈는 편리하지만 생각을 흐트러뜨린다.내가 단렌즈를 고집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 자동렌즈는 편리하지만 생각의 시간을 빼앗아간다. 내가 수동렌즈를 좋아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편의성과 즉시성을 끝내 포기할 수 없어 LX5를 들였으니 말처럼 실천하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새삼 생각을 해 본다. 

결국 결론은 자기가 편하면 된다. 사진 역시 자기가 보아 마음에 들면 그만이다. 그렇다고 고가의 장비를 들이는 것을 비난할 필요는 전혀 없다. 그 역시 자기만족이다. 히말라야에 오를만한 옷을 입고 동네 뒷산을 가건 고성능 스포츠카로 마트에 장보러 가건 어디까지나 그건 개인의 문제니 말이다. 사진 장비도 마찬가지다. 200만 원대의 조리개 2.8렌즈를 들고 다니건 번들렌즈를 들고 다니건 그 사람이 좋으면 그만이다. 등산장비가 취미일 수도 있고 자동차 자체가 취미일 수도 있고 카메라나 렌즈 자체가 취미일 수도 있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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