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서울역에 다녀왔다. 먼 발치에서라도 한 번 볼 수 있지 않을까...그런 생각이었지만 엇갈림의 강제력이란 참 대단한 것이었다. 아는 얼굴은 하나 없는 그러나 수 많은 만남과 이별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역은 언제나 마음을 울컥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시간이 지나 이제는 더 이상 마주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커피 한 잔을 들고 하늘을 바라보면서 하얀 담배 연기로 너를 기억해본다..

하필이면 이 시대에 하필이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하필이면 남자와 여자로 만나 사랑을 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복잡한 수식이야 알 길이 없지만 이 '하필이면'이라는 우연들이 한 군데에서 만날 확률은 정말 넓은 백사장에서 오각형의 모래와 육각형의 모래를 집어 세로로 세우는 일보다 어려운 일은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굳이 그렇게까지 기적이니 우연의 일치니 하는 수식어를 붙여야 하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리 만만하게 이루어지는 결과는 아니다. 너무 거창하게 생각할 것만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 인연을 가볍게 볼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오래 전부터 나는 사랑의 완성이라는 말을 믿지는 않았고 그것은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사랑이란 결국 감정이고 감정이란 그 종착점이나 결론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을 해서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아 기르다 노년이 되어 편안한 죽음을 서로 맞을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최선의 사랑일까..아니면 평생 한 번의 만남으로 헤어지고 각자의 삶을 살다 세상을 뜨는 어느 날 오래 전 기억의 서로를 추억하며 미소지을 수 있는 것이 최선의 사랑일까. 에로틱한 사랑, 아가페적인 사랑.. 사랑이라는 단어를 가져다 붙일 수 있는 온갖 단어들을 다 뒤져봐도 딱 이것이 사랑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는 것은 없지 않을까...

사랑에는 역시 최선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만나는 동안'이 아닐까. 평생을 다른 환경 속에서 각자의 삶을 살던 두남녀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만나 함께 겪은 모든 것. 그 자체가 가장 소중하다. 그리고 그 순간들이 행복했건 불행했건 오직 두 사람만이 나눌 수 있었던 기억이기에 그것이 최선인 셈이다. 사랑 = 행복이라는 등식에 너무 연연하다보니 서로 놓치는 것이 너무 많았던 것은 아닐까...

후회도 미련도 아쉬움도.. 그런 감정을 남기진 말자. 그저 너를 만나는 동안... 

네가 내 곁에 있는 동안 난 너무나 행복했었다고.. 

네가 있었기에 꿈꿀 수 있었던 미래와 

너로 인해 만들 수 있었던 과거와.. 

네 손을 잡고 먼 하늘을 바라보던 오늘이.. 

모두 다.. 네가 있었기에 가능했었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환한 웃음으로 너를 추억하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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