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의 일상이라는 것. 매 순간순간을 생각하면 참 길게도 느껴지지만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에 돌아보면 몇 분 안에 하루가 정리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여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되어도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과거란 혹은 추억이란 현재의 나에게는 아주 찰라의 순간처럼 짧은 그런 것이 되어 버린다.

때론 아쉬울 때도 있다. 좋은 기억이라면 좀 더 길게 기억해보고 싶은데 그렇지가 않으니까..

때론 다행이다 싶을 때도 있다. 안 좋은 기억이라면 좀 더 짧게 기억해보고 싶은데 그렇게 되어 버리니까..

모든 것은 결국 다 지나가버린다. 그리고 깨닫는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이라는 것을...

분명 그 문장에 여러 번 줄까지 치면서 기억을 했었는데 왜 잊고 있었을까...

한 때는 지나간 과거에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며 아쉬워 하고 어떻게든 돌이킬 수 없을까 고민하며 시간을 보냈었다. 현재 내가 살아서 느끼고 있는 현재는 외면한채 흐릿한 눈으로 흐려져 가는 기억들을 억지로 또렷하게 만들려 의미없는 시간들을 보냈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살아난 과거는 이미 나의 편견과 고집에 의해 왜곡된 과거라는 것을 나는 좀처럼 알아채지 못 했다.

그리고 가까스로 현재로 돌아와 몸과 마음을 추스리고나니 그렇게 조작된 과거가 한없이 부끄럽기만 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 아닌 내 마음대로 만들어진 나의 과거들... 그리고 그 과거에 얽매인채 현실을 외면하고 살았던 나날들이 얼마나 아깝고 또 아까운지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정신을 차려 하나둘 어긋난 조각들을 맞추어 놓고 보니 그동안 어렵게만 보이던 것들이 하나둘 명백해진다. 

'아, 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았던 것이구나'

결국 모든 원인은 내게 있었고 모든 해답 역시 내게 있다는 아주 단순한 진리를 다시 확인하며 새 담배에 불을 붙인다.


Canon EOS-1Vhs, EF 28-70mm f/2.8L


입추도 지난 지 2주가 넘었습니다. 23일이면 우리 24절기 중 '처서'지요. 더위가 물러간다는 절기입니다. 올 여름은 유난히 더워서였는지 참 견디기 힘들었는데 어느샌가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찬기운도 느껴집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가을입니다. 가을은 '아, 이제 가을인가?'라고 생각할 즈음이면 이미 가고 없는 특이한 계절입니다. 달로 따져보면 10월 정도가 그나마 가을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올해는 뭐랄까요 -이제껏 살아오면서 그렇지 않은 적이 없겠지만- 유난히 스펙타클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인생이 여러 번 바뀌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아직 올해가 몇달이나 더 남아 있으니 -벌써 이런 말을 하게 되다니요- 어떤 일들이 더 생길지 참 흥미진진해지기도 합니다.

발이 아프다는 핑계아닌 핑계로 사진을 찍으러 밖을 다니지는 못 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덕분에 북한산 일정도 가을이나 되어야 갈 수 있을 것 같고요. 사실 사진이라는 게 어디를 가야 찍을 수 있는 건 아니지요. 이 또한 게으름과 나태함을 감추기 위한 핑계가 아닐까 합니다. SLR이 무겁다고 서브카메라까지 들여놓고서 그놈 역시 제습함에서 쿨쿨자고 있으니까요..

마음은 여전히 허전합니다. 가을이 오고 그 가을이 깊어가면 그 허전함은 더해지겠지요. 살아가면서 가장 가까운 벗이 바로 이 허전함이라는 녀석이 아닐까요. 이 녀석이 항상 곁에 있으니 떨쳐버리고 싶어 이런 일도 저런 일도 해 보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올해는 연초부터 달라붙은 이 녀석이 영 떨어질 줄을 모르고 더 품으로 파고들고 있으니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르겠네요.

세월은 가고 나이는 먹어가고 추억은 쌓여갑니다.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가게 될지 전혀 알 수 없는 삶인데도 우리는 너무나 당연스럽게 내일을 이야기하고 다음 주를 이야기하고 내년을 이야기하며 살아가지요. 부질없는 상상이지만 이제까지 살아온 날들 중에 혹은 만났던 사람 중에 혹은 가졌었던 물건 중에... 딱 한 가지만 그대로 되돌려준다면 어느 것을 고르시겠습니까?


Nikon D100, AF-S Nikkor ED 17-35mm f/2.8D 


관계란 묘한 것이어서 관계가 지속되고 있는 동안에는 어지간해서는 긍정보다 부정의 감정이 크게 작용하지만 막상 그 관계가 끝나고 나면 부정보다는 긍정의 감정이 크게 작용한다. 사람과의 관계건 혹은 사물과의 관계건 그래서 그 관계가 끝난 후에 자신의 실수나 더 잘 하지 못 했던 것들에 대한 회한의 감정이 종종 머릿속을 가득 채울 때가 있다.

허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난 후의 보상심리일 뿐이다. 다시 만난다면 혹은 다시 그것을 갖게 된다면 이번에는 이렇게 더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다짐과 스스로에 대한 약속은 이미 끝이 나 버린 관계에 대해 자신의 '탓'이 아님을 그래서 불가피한 것이었음을 자신에게 납득시키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도 몇 번인가 그런 생각을 했지만 결국 생각이 다다른 곳은 '다시' 만나거나 '다시' 갖게 되더라도 이전과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적어도 그 '대상'이 같다면 행동이나 생각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차라리 그 마음과 다짐으로 새로운 이를 만나거나 새로운 것을 들이는 것이 더 낫다. 

관계가 깨진다는 것은 스스로 '알고 있는 이유' 이외의 수도 없이 많은 '알지 못 하는 이유들' 때문이다. 그 알지 못 하는 이유들은 끝끝내 해소될 수 없기에 '되돌림'은 오히려 서로에게 남겨진 상처를 더 벌어지게 할 뿐이다.

다시 되돌이키는 것이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나'를 버릴 때다. 내가 상대에게 혹은 어떤 사물에 완전히 몰입되어 내 존재가 사라질 지경에 이른다면 그땐 비로소 과거의 어떤 오류나 엇갈림도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된다는 것은 '인간'이라는 전제 하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신에 귀의한다거나 어떤 신념에 스스로를 버리는 경우가 드문 예일 뿐..


Nikon D300, AF-S 35mm f/1.8G


살다보면 자의에 의해서건 혹은 타의에 의해서건 꼭 가보고 싶었던 길을 걷지 못 하게 되는 일이 종종 있다. 대부분 '할 수 없지'라고 생각하고 잊고 사는 것이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생각하면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래도 못내 아쉬움이 남은 그길에 대한 동경과 아쉬움은 특히나 일상에 지치고 사람에 치일 때면 불쑥 머리를 강하게 치고 지나가곤 한다.

그래서 '아, 전에 그길을 갔더라면 지금 이렇지는 않을텐데...'라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정말 생각지도 않게 그길을 다시 가야 하는 상황이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지면 그 감격이란 참 대단한 것이다. 물론 그길이 언제나 쭉쭉 뻗어있는 신작로가 아닌 그리고 아제까지 살아온 삶의 어떤 모습보다도 힘든 여정임을 잘 알고 있더라도 말이다.

몇 번인가를 돌고 돌아 다시 여기 섰다. 막상 서 보니 두려움도 생긴다.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반드시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던 일이 현실이 되니 두려운 것이다. 사람이란 이렇게 간사하다. 늘 손에 닿을 수 없는 것을 바라고 희망한다. 그러면서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과 가고 있는 길에 대해 불만을 늘어놓곤 한다.

이제 다시 그길에 서서 나는 어떤 삶을 살 수 있을까 내게 물어본다. '돌아만 갈 수 있다면...'이리고 늘 바라기만 했던 그 여정의 출발점에 이제 나 홀로 서 있다. 오래 전 묻어두었던 길인지라 어디부터가 길의 시작이고 가장자리인지 보이지도 않고 이정표조차 세월의 무게를 버티지 못해 쓰러져 있는 이길에 단지 내 몸뚱이 하나만 가지고 서게 됐다.

이제 흔한 문구를 인용하며 걸어나가는 수밖에


"운명아 비켜라 용기 있게 내가 간다!" -니체


Nikon D300, AF NIkkor 35mm f2.0D


오랜만에 서울역에 다녀왔다. 먼 발치에서라도 한 번 볼 수 있지 않을까...그런 생각이었지만 엇갈림의 강제력이란 참 대단한 것이었다. 아는 얼굴은 하나 없는 그러나 수 많은 만남과 이별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역은 언제나 마음을 울컥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시간이 지나 이제는 더 이상 마주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커피 한 잔을 들고 하늘을 바라보면서 하얀 담배 연기로 너를 기억해본다..

하필이면 이 시대에 하필이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하필이면 남자와 여자로 만나 사랑을 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복잡한 수식이야 알 길이 없지만 이 '하필이면'이라는 우연들이 한 군데에서 만날 확률은 정말 넓은 백사장에서 오각형의 모래와 육각형의 모래를 집어 세로로 세우는 일보다 어려운 일은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굳이 그렇게까지 기적이니 우연의 일치니 하는 수식어를 붙여야 하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리 만만하게 이루어지는 결과는 아니다. 너무 거창하게 생각할 것만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 인연을 가볍게 볼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오래 전부터 나는 사랑의 완성이라는 말을 믿지는 않았고 그것은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사랑이란 결국 감정이고 감정이란 그 종착점이나 결론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을 해서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아 기르다 노년이 되어 편안한 죽음을 서로 맞을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최선의 사랑일까..아니면 평생 한 번의 만남으로 헤어지고 각자의 삶을 살다 세상을 뜨는 어느 날 오래 전 기억의 서로를 추억하며 미소지을 수 있는 것이 최선의 사랑일까. 에로틱한 사랑, 아가페적인 사랑.. 사랑이라는 단어를 가져다 붙일 수 있는 온갖 단어들을 다 뒤져봐도 딱 이것이 사랑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는 것은 없지 않을까...

사랑에는 역시 최선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만나는 동안'이 아닐까. 평생을 다른 환경 속에서 각자의 삶을 살던 두남녀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만나 함께 겪은 모든 것. 그 자체가 가장 소중하다. 그리고 그 순간들이 행복했건 불행했건 오직 두 사람만이 나눌 수 있었던 기억이기에 그것이 최선인 셈이다. 사랑 = 행복이라는 등식에 너무 연연하다보니 서로 놓치는 것이 너무 많았던 것은 아닐까...

후회도 미련도 아쉬움도.. 그런 감정을 남기진 말자. 그저 너를 만나는 동안... 

네가 내 곁에 있는 동안 난 너무나 행복했었다고.. 

네가 있었기에 꿈꿀 수 있었던 미래와 

너로 인해 만들 수 있었던 과거와.. 

네 손을 잡고 먼 하늘을 바라보던 오늘이.. 

모두 다.. 네가 있었기에 가능했었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환한 웃음으로 너를 추억하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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