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제법 흘렀다. 물론 언제 어떻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득한 기억이 되기에는 아직 부족한 시간이지만 이제까지 살아온 삶을 돌아보고 현재의 삶을 생각하고 앞으로의 인생을 계획하기에는 그리 짧지만은 않은 시간이었다. 사실 살아가는 동안 겪는 일들은 대부분 언젠가 과거에 한 번쯤은 겪었던 일들의 비슷한 반복이지만 완전히 똑같은 반복은 아니기에 매일매일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으리라.
예전에는 그 반복에 조금은 낙담을 하곤 했었지만 그 반복 속에 무언가 다른 모습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어떻게 하면 그 반복의 모습을 조금씩 -그리고 내가 주도적으로- 바꾸어나갈 것인가를 생각하게 됐다면 그래도 괜찮은 변화가 아닐까 싶다.
사람에게 하도 실망을 많이 해서 사람과 거리를 두고 싶었지만 결국 삶 그 자체가 사람과의 관계이기에 사람과의 거리를 멀리하면 할 수록 삶 자체와도 멀어진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을 이제야 조금은 이해를 하는 모양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실망을 했다면 그 원인은 그 누군가에게 그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이상의 기대를 내가 주었기 때문이다.
그 대상이 가족이건 연인이건 혹은 사회에서 만나는 동료나 친구이건 말이다. 크게 바라지 않고 작은 부분에 만족하면 되는데 사람의 욕심이 그렇지 못했고 내 욕심이 그렇지 못했다. 어떤 관계건 내가 희생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준 만큼 받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관계는 틀어져버린다. 아니 준 것과 받은 것의 비교를 애초에 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그런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이 흔히 말하는 성인이나 되야 가능하다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지만 일상의 아주 작은 순간순간을 떠올려보면 그리 어렵지만은 않은 일이다. 우리네 삶이 얼마나 짧고 얼마나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지를 절절하게 겪고 나서야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되니 나도 참 둔한 사람이다.
삶에 그렇게 대단한 것은 없다. 내 나이에 할 말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담담하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다보면 마음 속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욕심과 욕망 같은 감정들을 조금씩 몰아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렇다고 현실로부터 도피해버리면 안 될 일이다.
아무튼 올해는 해가 저물어가는 이 시기까지 정말 한치도 예상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다.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과제가 된 이후의 변화들이 무엇보다 크겠고 그 변화 속에서 돌아본 지난 과거의 시간들이 사실은 그렇게 거창하고 대단한 것들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 또 올해 느낀 소회랄까. 어떤 일이건 어떤 사람이건 그 대상에 의미를 너무 부여하지 않을 일이다.
그동안 나는 너무 편하게 쉽게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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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2001년 겨울로 기록이 남아있는데 강화 어디쯤이 아니었을까. 그때만 해도 자세하게 기록을 남기지는 않았으니... 필름 스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게 어쩐지 마음에 든다. 기종은 F100에 렌즈는 80-200mm, 필름은 코닥 수프라였던 것 같다. 스캐너는 늘 같은 LS-40이다.
신카이 마코토는 내가 꽤나 좋아하는 감독이자 프로듀서다. 흔히 그에 대해 영상미가 뛰어나다거나 대사가 매력적(혹은 난해하다)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이번에 개봉된 작품인 '언어의 정원(言の葉の庭)'은 그 두 가지를 한데 어우러지게 한 작품이 아닐까 생각된다. '단어'의 사용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작품들은 해당 언어의 원어로 보고 듣는 것이 가장 좋은데 워낙 뜬구름 잡기식으로 공부한 일본어인지라 듣기는 엉망이어서 꽤나 고생이었다. 혹 의미의 해석이 어색하다면 전적으로 내 탓이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언어'라는 단어에 쓰인 한자인데 아마도 언어라면 언어(言語)가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言の葉이라고 적고 있다는 점.
이 작품이 주요 시간적 배경은 여름이다. 그리고 비가 많이 내리는 장마철이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이 비오는 날 시작되고 비오는 날 끝이 난다. 비가 내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생각을 해보게 되는데 언어의 정원에서 펼쳐지는 비는 아마도 기다림과 설렘 사랑과 아픔 등 여러가지 의미를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지 않나 싶다. 전작인 초속 5cm에서 펼쳐졌던 영상미는 언어의 정원에서 극치를 보인다. 마치 사실주의 화가의 작품을 보는 느낌이랄까.
사랑이라는 감정은 언제 생겨나는 것일까 생각을 해 본다.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정말 '아주 우연히 만나'는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를 만나 익숙해지다보니 자연히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이어지는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사랑'이라는 감정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고 그 익숙함이 일상이 되어 버리는 것인지 어느 것이 맞는 것일까 알 수는 없다. 그렇기에 '사랑'은 영원한 인간의 주제가 아닐까.
신카이 마코토는 '언어의 정원'에서 조금은 특별한 사랑을 다룬다. 하긴 이전에 그가 다룬 작품들도 어느 하나 평범한 것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한국 사람들이라면 조금은 거부감(?)이 들지도 모를 그런 사랑이다. 하지만 그것도 일종의 편견이 아닐까? 나이나 사회적인 신분 혹은 그외의 배경들은 어차피 눈에 보이는 형식일 뿐은 아닐까.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하는데 이유가 딱히 달린다면 그것을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이 생각에 반대하는 분들도 많겠지만...
비 내리는 어느 초여름날 우연이라면 우연하게 시작된 이 만남에서 '사랑'이 시작된다. 그러나 그 사랑은 서로에 대한 사랑이전에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즉 사랑 이전의 사랑이야기를 먼저 써 내려간다. 그리고 그 써 내려감이 잠시 멈춰 어디로 가야할지 도무지 갈피를 찾지 못 하고 있을 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손을 잡아 그 이야기를 마저 써 내려간다. 이 작품은 그렇게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사랑이란 불완전함과 불안전함이 만나 서로의 결핍을 채워가는 과정이기에...
모든 사랑이 아무런 역경없이 행복하기만 할 리는 없다. 아니 어쩌면 행복하고 즐거운 날들보다 힘겹고 고통스러운 날들이 함께 한다는 것에 더 많이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 고통을 그 힘겨움을 함께 한다는 것은 서로의 삶을 지켜내겠다는 다짐과 의지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사랑의 과정 속에는 오해도 갈등도 있을 수 있다. 아니 오히려 그것들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마음에도 없는 말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것처럼 사랑에 독이 되는 것도 없다.
사랑은 행복한 일이고 즐거운 일이고 기쁜 일이다. 하지만 그 행복한 순간에 이르기 위해서는 긴 기다림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긴 기다림 끝에 서로를 마주 보고 섰을 때 비로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평온함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난 어느 날 우연히 만나 그날로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쉽게 믿지 않는다. 설령 그렇게 시작되더라도 지속되기는 어렵다. 오랜 기다림의 시간 끝에 시작된 사랑도 때로는 너무나 쉽게 깨질 수 있기 때문에...
흔히 '너를 위해 떠나겠다'든지 '당신에게는 내가 부족해', '더 좋은 사람 만나' 라든지 하는 말들을 하곤 하는데 이런 말은 결국 서로에게 큰 상처만 줄뿐이다. 왜 스스로 선택한 사랑에 책임을 지지 못하는가. 자신이 선택한 사랑이라면 상대에 대한 약속 이전에 자기 자신에 대한 약속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일까. 물론 그 순간순간에 이런 것들을 생각할만큼 이성적이지는 못한 것이 또 우리네 사람이니 그토록 많은 만남과 이별이 존재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끝내 그 순간을 이겨낸다면 그것으로 사랑은 한 번의 기회를 더 얻은 것이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랑의 날들은 그렇게 이겨내고 버텨내야 하는 날들이 대부분이다. 아름답고 달콤한 시간만으로 가득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람의 삶이란 그리고 사랑이란 그렇지가 않은 법. 결국 사랑이란 두 사람이 하나가 되어 세상과 맞서 이겨내는 순간순간들의 기록이 아닐까. 사랑을 하는데 사랑을 하기 전보다 왜 마음이 더 아플까를 묻지만 그게 정상이다.
오랜만에 진득하게 앉아서 본 작품이었다. 상영시간은 1시간이 채 안 되지만 그 속에 담겨 있는 의미들을 생각하기에는 충분했다. 워낙 감독이 영상과 단어에 의미를 많이 부여하는 까닭에 장면장면에 꽤 신경을 써야했고 안 들리는 일본어에 귀를 세우고 있느라 피로도가 올라가기는 했지만 내게는 괜찮은 작품이었다. 다른 이들에게는 호불호가 많이 갈릴 것 같다. 신카이 마코토의 이전 작품을 몇 편 보고 간다면 조금은 도움이 되지 싶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이게 뭐야?'라는 인상을 줄 지도 모르겠다.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가고나면 이후의 이야기들이 짧게 펼쳐지는데 여주인공 유키노가 보낸 편지의 날짜가 내년 2월인 점이 재밌다. 비오는 날이 거의 대부분이다보니 여름만을 배경으로 하는 것 같지만 사실 남자 주인공의 이름에는 가을이 여자 주인공의 이름에는 겨울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이 편지의 끝부분에 등장하는 '따뜻한 계절' 즉 봄까지 포함하면 4계절이 모두 들어있는 셈이다. 봄은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은 그래서 아직은 알 수 없지만 긍정적인 두 사람의 미래를 암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무엇보다 손글씨로 안부를 묻는다는 설정이 마음에 든다.
그리고 이 작품에는 고전 문학 선생인 유키노가 일본의 고대 문학 작품집인 '만엽집'에 실린 작품으로 이야기를 건네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미 여러 곳에 소개가 되었기 때문에 문장을 옮겨 오기보다 의미만 적어 보면 먼저
"멀리서 천둥 소리가 들리고 구름이 낀 것을 보니 비가 올 것 같다. 비가 오면 당신을 잡아둘 수 있을텐데.."라고 말을 건네고 이에 대해
"천둥 소리가 작게 들리고 비가 내리지 않더라도 나는 여기에 머무르겠습니다. 당신이 그러기를 바란다면.."이라고 답을 한다.
꽤나 낭만적인 문답인데 이 대사가 오고 가는 장면이 제법 처리가 멋드러진 탓인지 '아, 멋진 대사를 하고 있군'이라는 인상을 남겼다. 이 두 대사는 작품의 시작과 끝에 나뉘어져 등장하고 천둥과 구름 그리고 비는 여러 곳에서 복선으로 등장하는데 작품 전체의 줄거리와 이들의 관련을 연결해서 보는 것도 좀 더 작품에 몰입해서 볼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한 번만 보고 여러 복선들을 맞추기는 아무래도 어려워보인다.
일상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흘러가고 있는데 마음은 여전히 제자리를 찾지 못 하고 있는 요즘이다. 이렇게 자꾸 심연 어딘가로 가라앉는 것 같아 '이래서는 안 된다'고 여러 번 다짐을 해 보지만 좀처럼 물 위로 올라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항상 무언가 중요한 일을 앞두고 이런 일이 많았던 것이 내 예전의 모습이었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 굴레가 반복되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면서도 그래도 어떻게든 지나간다는 것에 조금은 위안을 얻어본다.
삶이라는 것은 약간의 모양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정도 비슷한 궤적을 그리며 나아간다는 것을 요즘 부쩍 많이 느끼는데 20년 전의 어느 일상과 10년 전의 어느 일상 그리고 현재의 어느 일상이 궁극적으로는 참 비슷하다는 것은 한번쯤 곰곰이 생각해보면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아무튼 예전보다 조금은 더 냉소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아 스스로도 경계하고 있는 요즘이지만 솔직히 한 번 무너져버린 마음을 추스르기는 참 쉽지가 않다. 돌파구를 찾아 이런 현재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는 내면의 반발에 한 차례 더 뒤로 물러서는 요즘이다.
삶이라는 것이 한편으로는 끈질기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나 쉽게 스러진다는 것을 겪고나니 마치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처럼 쓸데없는 공상만 늘어간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도 벌써 2개월이 지났고 그렇게 잔인하던 기억들도 조금씩 옅어져 가고는 있지만 여전히 내 마음속 겨울은 좀처럼 햇살을 마주 하려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