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고리타분한 단어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이런 생각을 할테고 내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인문학 관련 서적을 읽을라치면 일단 어느 정도의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마 국내에서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계기로 인문학에 대한 편견이 많이 해소된 것 같지만 그래도 여전히 단어 자체에서 풍겨나는 독특한 향기가 선뜻 책장을 넘기기 어렵게 한다.

길 위에서 만나지는 학문이 제대로 된 학문이다. 책을 덮고 거리로 나가자

그래서인지 최근 들어 쉽게 인문학에 접근할 수 있도록 지침서 역할을 해 주는 책들이 선보이고 있는데 이책 '길 위의 인문학'도 그런 류의 책이다.

중간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책은 '현장의 인문학', '생활 속의 인문학'을 위한 모음집이다. 여러 명의 인문학 관련 저자들이 모여 어떻게 하면 인문학을 일반 대중들의 생활 속으로 파고 들게 할 수 있을지를 연구하고 집필한 책이다.

책의 구성은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어 있다. 전반부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조선시대의 학자들, 저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후반부는 우리나라의 지리적인 장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제법 신선한 편집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1부·사람의 자취를 따라 떠나는 길 위의 인문학

2부·역사의 흔적을 따라 떠나는 길 위의 인문학

이렇게 두 개의 주제를 잡고 그 안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인물과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간다. 물론 조선시대라는 시대적인 한계와 그리 많지 않은 장소의 여정이라는 공간적인 한계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한 인물이나 한 장소에 대해 제법 많은 이야기를 풀어 가면서 독자들에게 '봐라, 이렇게 보니 어렵고 지루하지 않지 않느냐"고 말하고 있다.

무엇보다 각각의 인물과 장소에 대한 개별 저자들 특유의 경험과 감상을 마치 내 눈 앞에서 펼쳐 지는 것처럼 그려나가고 있어 딱딱한 인문학 서적이라는 느낌보다 가벼운 기행문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렇게 글을 읽다 보면 어느새 나도 과거로 돌아가 그 인물의 곁에서 혹은 그 장소에서 또 다른 삶과 학문을 느낄 수 있었다.

이책의 주된 배경은 과거다. 그러나 그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서는 현재의 우리를 알 수 없고 현재의 우리를 알 수 없다면 미래의 우리 또한 알 수 없다. 인문학이 따분하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은 직접적으로 우리가 체감할 수 없기 때문인데 이책에서처럼 과거의 일을 마치 현재의 일처럼 혹은 장소처럼 여기고 죽 따라가다보면 과거를 온전히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재로 끌어올 수 있을만한 나름의 요령이 생긴다.

특별히 목차에 집착할 필요도 없고 가끔 손이 가는대로 눈이 가는대로 아무 구석이나 펼치고 읽어도 좋은 것도 이책의 장점이다. 아니면 무언가 리포트를 쓰거나 나름의 글을 쓸 때 참고 교재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다. 공동 저자의 책은 책 전체에 흐르는 일관성은 약하지만 책 전체에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필체와 언어 그리고 지식이 그 부족함을 지워주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렇게 책을 마무리 짓고 있다.

"무지개를 잡으러 간 일이 있었다. 무지개는 나를 반기며 웃었고, 일곱 색깔 자태를 뽐내며 산 위에 걸려 있었다. 그렇게 무지개를 따라가다 무지개를 잃어버렸다. 돌아오는 길엔 온갖 사상이 나를 마중했다. 집에 왔을 때 무지개를 여전히 산 위에 걸려 있었다."

어쩌면 우리네 삶도 그럴테고 학문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삶의 화려함과 일의 고단함, 생활의 습관에 빠져 헤메다가 어느 덧 시간이 지나 나를 돌아봤을 때 애초에 내가 원하던 삶과 거리가 있는 것을 밝견하게 되는 것처럼 학문 역시 깊게 공부했다고 자부했지만 결국은 학문의 언저리에도 도달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때로는 인생이건 학문이건 멀리서 그 전체를 바라보며 즐길 수 있는 여유도 필요하리라..

아무튼 기획 의도가 참신하고 적극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글들을 읽다 보면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인물편을 다루고 있는 전반부는 일반 대중들에게 익히 알려져 있는 인물들을 주제로 선택했음에도 저자 스스로가 그 인물의 세계에 빠진 나머지 독자들을 외면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안내서라는 점을 감안했다면 차라리 지역을 다룬 후반부를 앞으로 빼내었다면 좀 더 많은 이들에게 관심을 끌지 않았을까?





책을 읽는 데 기술이 필요한가? 라고 이전에 스스로 질문을 해 본 적은 없다. 어릴 적부터 그저 손에 잡히는대로 책을 읽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교과서라면 사정은 달라서 밑줄도 긋고 노트에 요약도 하며 읽지만 수험용 책이 아닌 일반 서적을 그렇게까지 정성을 들여(?)읽지는 않았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렇게 읽은 책들은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곧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감동을 많이 받았거나 완전히 새로운 지식을 습득해 나 스스로 감탄한 정도가 아니면 얼마 후에는 이책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가물가물해지고 나중에는 분명히 읽은 기억은 있음에도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 난감한 상황을 겪게 되곤 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이었을까?

분명 무언가 내 독서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정확히 그 문제점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을 하면 좋을지 문제 의식만 가질 뿐 굳이 해결해야겠다는 적극적인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접한 책이 애들러의 '독서의 기술'이다. 마치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연상시키는 책 제목인데 '사랑의 기술'이 그러하듯 도대체 책을 읽는데도 기술이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키는 제목이었다.

책장을 넘겨갈 수록 처음의 생각, 그러니까 책을 읽는데 기술따위는 필요없어! 라는 내 생각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런, 내가 왜 읽은 책이 다시 기억이 나지 않는지 이제 이해가 가는군..' 출근길에 지하철에서 스스로 감탄을 했다.

책 자체의 느낌은 조금 낡은 느낌이다. 범우사에서 출간된 이책은 번역체도 다소 딱딱하고 종이질이라던가 디자인도 어쩐지 오래되어 보인다. 거기에 제목까지 독서의 기술이니 어지간해서는 책장을 넘기기 힘든 책임은 분명했다. 그럼에도 내가 이책을 끝까지 그리고 줄을 치며 메모를 해가며 읽은 것은 그동안의 잘못된 독서 습관에 대한 반성은 물론이고 이제부터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내 나름의 방향을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번역이 조금 오래된 맛이 있기는 하지만 책장을 넘기기에 어색할 정도는 아니어서 중고등학생들도 조금만 집중을 하면 읽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이책은 중고등학생들에게 적합하기도 하다. 단지 수험 목적이 아닌 앞으로 대학에서 학문을 해 나가는데 있어 참 많은 시사점이 될만한 내용들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애들러의 일종의 독서의 공식은 일반론이다. 자기 스스로 이 방법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서법을 찾고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흔히 물고기가 아닌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말을 하는 데 내 생각으로는 바로 이책이 그 방법을 가르쳐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자세히 책을 읽다보면 이미 본인이 알고 있는 내용들도 상당수 될 것이다. 책을 읽어 나갈 때 메모를 한다던가 주제를 뽑는다던가 목차를 먼저 읽고 요약을 해본다던가 하는 내용이다. 뻔히 알고 있는 내용임에도 오히려 우리는 실천에는 더디다. 애들러는 그 점을 정확하게 짚고 있고 나아가 우리가 뻔히 알고 있는 것들을 이어붙여 완성된 독서로 이르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열심히 책을 읽고는 있는데 도무지 내가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곤란을 느낀다면 다른 책은 일단 접어두고 이책을 읽기를 권한다. 그리고 이책을 읽어나갈 때는 애들러가 제시한 독서의 기술을 바로 적용해서 읽어보기를 권한다. 어쩌면 지루하고 단순한 작업의 연속일 수도 있겠지만 그 작업을 마친 후 상당히 진보해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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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글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스스로를 드러내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인식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그가 많은 지식으로 무장을 하고 있더라도 기본이 되어 있지 않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짧은 지식과 숫자놀음..화려한 형용사로 현학적인 글로 상대방을 비난해봤자 스스로의 위선을 드러내는 것외에는 별것도 아니다. 비평과 비난의 차이조차 모르는 그런 글을 굳이 내 블로그에 남겨둘 이유가 없어 삭제한다.


외국어를 공부하는데는 아무래도 강사와 교재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어떤 강사의 수업을 듣고 어떤 책을 보느냐에 따라 외국어 실력은 정말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내가 외국어 공부를 할 때 강사와 교재를 선택하는 기준은 간단하다. 해당 외국어의 원어민일 것, 그리고 우리말을 정확하게 구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런 강사나 저자는 많지 않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해당 외국어를 표준으로 구사하면서 마찬가지로 우리말을 그 정도로 구사한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 책 한 권을 소개해본다. 책 제목은 "일본어 필수 표현 무작정 따라하기"이다


무작정 따라하기? 어디서 많이 들어보지 않았을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일본어 공부에 있어서 무작정 따라하기만한 책을 본 적이 없다. 무엇보다 강사 겸 저자인 후지이 아사리라는 인물의 특이함때문인데 그녀에 대한 소개글을 잠시 보도록 하자

일본인이면서도 서울대학교 국문과에서 고전문학을 전공하고 국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서울대학교 언어학 박사과정에 입학하기까지 했다. 한국어의 구조와 언어학을 이론적으로 학습해오며 한국어와 일본어가 어떻게 다른지 연구해왔고, 웬만한 서울대 학생보다 한국어 맞춤법을 더 잘 안다. 또 국문과 사람들에게 한국어와 일본어가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해 왔기 때문에 한국어와 일본어의 관계에 대해서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전문가이다

글만 봐서 실감이 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직접 그녀의 강의를 들어보면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정말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우리말 표현에 있어 정확하고 체계적이다. 외국인이다보니 그녀가 배운 우리말은 기초부터 고급 과정까지 그야말로 표준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일본어 실력도 상당하다. 무엇보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를 했다. 일본어와 우리말을 모두 상당 수준 구사할 뿐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도 접근하기 힘든 고전 문학을 전공하고 국문학 석사를 받았다. 외부로 드러난 스펙(?)에 연연할 것은 아니지만 이런 강사는 사실 흔하지가 않다.


그리고 위 사진의 아래에 깔려 있는 일본어 무작정 따라하기 시리즈를 집필했는데 그동안 독학으로 어렵고 복잡한 교재들로 일본어를 공부해온 내게는 정말 눈과 귀와 입이 확 뚤리는 계기가 된 대단한 책이었다. (이 말이 형식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은 직접 후지이 선생의 수업을 들어보면 된다.)

가장 최근에 출간된 책이 바로 지금 살펴보는 '일본어 필수 표현 무작정 따라하기'다. '990문장만 알면 말이 통한다.'는 광고 카피가 보이는데 '이런 카피야 어느 책에나 있는 것 아냐?'라고 무시해버릴 수도 있지만 이미 후지이 선생의 책으로 상당히 도움을 받은 나로서는 그냥 믿을 수밖에 없는 표현이다. 아마 무작정 따라하기 시리즈로 공부해온 분들이라면 쉽게 공감이 갈지도 모르겠다.

책의 크기는 188x128mm이다. 서평에 왜 책의 크기를 적느냐면 이책은 휴대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치 외국에 여행을 갈 때 그 나라의 회화책 한 권정도는 가방에 넣어가듯이 이책 역시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언제든 필요한 상황에서 꺼내어 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외국에 나가 책을 보며 외국인에게 말을 거는 것은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상대 외국인으로부터 더 많은 관심을 얻을 수 있고 실제로 내가 겪어본 일이기도 하다.

책의 구성은 간단하다. 총4개의 마당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각의 마당마다 몇 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어 상황에 맞는 공부를 하거나 바로 실전에 적용할 수 있도록 배치하고 있다. 이 구성이 간단한 것 역시 장점인데 수 많은 상황들을 줄줄이 늘어 놓아 독자가 제대로 공부도 하기 전에 질리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

첫째마당 일상생활에서 쓰는 표현 

둘째마당 여러 가지 상황에서 쓰는 표현

셋째마당 일본을 여행할 때 쓰는 표현

넷째마당 감정을 나타내는 표현

후지이 선생은 듣기를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강사인데 이책의 활용법 역시 듣기부터 시작한다. 책 말미에 CD부록이 있는데 책에서 다루고 있는 표현들을 담아두고 있다. "먼저 소리를 듣고 나서 책을 보면서 확인하고 다시 듣기를 여러 번 반복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공부 방법"이라고 그녀는 늘 강조하는데 이책 역시 같은 방법으로 활용하면 된다. 아마 이전에 무작정 따라하기 수업을 들었거나 책을 공부한 독자라면 왜 그녀가 이런 식으로 수업을 진행하는지 금방 이해가 될 것이다.

이책의 장점은 무엇보다 각 장에 실려있는 내용들이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는데 있다. 막연하게 실제로는 있을 것 같지도 않은 상황들로 가득 차 있는 다른 회화 서적들과 분명히 차별화되는 점이다. 처음 무작정 따라하기 시리즈를 공부할 때에는 '이거 책이 너무 가벼운게 아닌가?'라고도 생각했었다. 딱딱하고 무거운 주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네 일상의 이야기로 책을 구성하고 수업을 진행했기 때문인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실제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일본어 표현이 생각나고 말을 할 수 있게 된 나를 보면서 꽤나 놀랐던 기억이 있다. (아마 반말로 배우는 일본어라는데 대한 거부감이 처음에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기존의 무작정 따라하기 시리즈의 초급 과정을 마쳤다면 이책으로 일상에서 반복 학습을 하며 표현들을 익히는 것이 좋다. 별도의 사전이 필요없을 정도로 세세하게 단어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고 좌우면 대칭으로 왼쪽에는 일어 오른쪽에는 우리말을 배치하여 학습효과를 높이고 있다.

공부방법은 간단하다. 우선 공부하고자 하는 장의 발음을 먼저 듣고 따라해본다. 그 다음에 글자를 보고 익힌다. 어느 정도 익숙해졌으면 오른쪽의 우리말 번역을 보고 그 문장을 다시 일본어로 바꾸어본다. 그렇게 하나의 단원이 끝나면 회화 지문을 보고 어떤 식으로 위 표현이 사용되고 있는지 적용해보면 된다.  오히려 너무 간단하기 때문에 과연 효과가 있을까?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분명 효과가 있다. 기존의 후지이 선생의 수업을 듣고 그 방식에 익숙해진 분이라면 좀 더 쉽고 빠르게 익숙해지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정말 이책에 써 있는 말들을 무조건 따른다는 생각으로 부딪혀보기 바란다.

어지간해서는 외국어 공부에 특별한 기술이나 비법이 존재한다고 믿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워낙 후지이 선생의 강의 방식이나 교재의 덕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너무 칭찬 일색으로 글을 쓴 것 같아 조금 어색하기도 하지만 막연한 느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내가 경험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니 일어 공부를 한번 해보기로 생각하고 있다면 속는 셈치고 따라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다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바로 이책을 구입해 일본어 공부를 하는 것은 조금 어렵다. 기초가 전혀 없는 독자라면 가장 초보적인 교재인 일본어 무작정 따라하기를 먼저 학습하기를 권한다. 정말 듣기만 해도 말이 나온다. 내가 본 몇 안 되는 마법 같은 책이다.

이런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이책은 내지가 조금 두껍고 광택지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무게가 좀 나간다. 실용성이라는 면을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차라리 가벼운 종이를 써서 좀 더 편하게 들고 다닐 수 있게 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저는 건강한 리뷰문화를 만들기 위한 그린리뷰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읽은 책은 '철학교사 안광복의 키워드 인문학'이라는 조금은 긴 제목을 가지고 있는 책입니다. 21세기의 첨단 시대인 지금, 어쩌면 인문학이라는 단어는 고리타분하고 지루함을 상징하는 단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요즘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철학과 고전 등이 대학입시나 고교입시에서 논술이나 면접 등의 기초 자료로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때아닌 인기(?)를 누리고 있는 단어기도 합니다.


책의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책은 키워드를 중심으로 내용을 전개해나가고 있습니다. 총 50개의 개별 키워드와 100권의 책이 이 책의 뼈대가 되고 있습니다. 저자가 직접 밝히고 있듯이 '2%의 물음', 생활인의 인문학이 이 책을 이루는 커다란 흐름입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인문학이라는 다소 진부한 주제들을 우리의 현실과 맞닥뜨려 다루고 있다는 말입니다. 지식이 책 안에 머물고 있으면 생기가 없습니다. 그 지식을 현실로 끌어내어 우리의 실생활 속에 던져두었을 때야 비로소 지식의 가치가 있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제법 치밀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전체 7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주제 하나를 잡고 그 안에 소주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소주제들은 3-5페이지 정도의 짧은 글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읽기에도 충분합니다. 그리고 각장의 말미에는 소주제의 글을 쓰는데 참고한 서적들에 대한 간략한 서평을 달아두고 있습니다. 저자의 이런 친절함 덕분에 우리는 인문학이라는 광범위한 주제에 대해 차근차근 배워나갈 수 있게 됩니다.

철학박사이자 고교 교사인 저자는 왜 하필 인문학이라는 주제를 잡았을까요? 인문학은 오늘날 우리의 사상과 가치의 바탕이 된 고전입니다. 과거의 고전들이 없었다면 현재의 우리의 문화는 존재하기 어려웠겠죠. 그러나 오늘날의 사람들은 그런 과거의 영광을 진부하다거나 낡았다는 핑계로 제쳐둡니다. 서가를 장식하기 위해 몇 권의 고전들을 꽂아둘 뿐이죠. 그렇지만 인문학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아니 미래에도 여전히 우리의 생각과 가치를 좌우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입니다. 그 점을 저자는 강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50개의 키워드를 아우르는 각 장의 제목을 보면 그런 의도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Chapter 1 생활 속의 'ism'들
Chapter 2 선전, 선동, 그리고 진실
Chapter 3 의ㆍ식ㆍ주_생활의 뿌리
Chapter 4 과학, 종교, 교육_인류를 떠받치는 세 기둥
Chapter 5 왕따, 갈등, 그리고 전쟁_세상의 '참 평화'를 지키려면
Chapter 6 자본주의 생존학_정글에서 살아남기
Chapter 7 Miscellaneous_'기타' 생각거리들

인문학에 대해 보통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많이 걷어내고 현실적인 접근을 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각 장의 세부 주제 즉 키워드로 들어가면 좀 더 그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3장 경우

Keyword 17 옷의 철학 패션, 혁명을 이끌다
Keyword 18 한식의 세계화 먹거리에 담긴 인문 정신
Keyword 19 공장식 농장 공짜는 없다! 값싼 음식의 비밀
Keyword 20 행정복합도시 성장과 균형, 도시계획의 이중주
Keyword 21 가족 해체 ‘알파걸’이 우리 미래를 지켜 준다고?
Keyword 22 소셜 네트워크 우리가 외롭지 않으려면
Keyword 23 아파트 대한민국 ‘리모델링’은 ‘아파트 허물기’부터

이런 식으로 각각의 키워드에 따른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이 제목만 봐서는 과연 인문학을 다루고 있는 책인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소주제 그러니까 키워드 하나하나마다 예를 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예'가 우리의 현실과 직접적으로 맞물려 있습니다. 책 속에만 등장하는 상상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매일 겪는 바로 오늘입니다. 키워드 36이 다루고 있는 왕따에 대해 저자는 왕따의 사회학이라는 제목을 잡아 이야기를 풀어 갑니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책은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기득권자와 아웃사이더'라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는 구분이 차별로 이루어지는 과정을 흥미롭게 묘사하고 있는데 저자는 이 부분을 상세히 언급하면서 이와 같은 차별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함을 보여줍니다.

축구 선수를 뽑을 때 달리기 실력의 차이는 결코 차별이 아니다. 그러나 어느 지역 출신인지에 따라 선수를 가릴 때는 문제가 달라진다. 이처럼 정당하지 못한 차이로 차별의 벽을 쌓는 경우가 우리 사회에는 너무나 많다...(중략)..이런 우리 모습에 3구역을 멸시하는 2구역 주민들의 모습이 자연스레 겹쳐진다. -199면에서 발췌
이런 식으로 50개의 키워드에 대한 이야기와 100권에 책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독자는 자연스레 저자가 글에서 언급한 다른 책들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저자가 직접적으로 희망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물론 제한된 지면에 광범위한 주제를 담으려다보니 각각의 주제나 관련 서적에 대한 깊이가 깊지는 않습니다. 하나의 키워드마다 몇 권의 책을 써도 모자란데 고작 4-5페이지에 그 내용을 모두 담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 책은 도화선이 되는 역할이 강합니다. 독자들이 저자의 글을 읽고 한걸음 나아가 원저를 읽고 더 나아가 독자 스스로의 키워드를 만들어주기를 저자는 바라고 있습니다.

각 장의 말미에 자리잡은 서평란에는 바탕이 된 100권의 책들은 저자와 출판사까지 명시해주고 있어 서점을 두리번거려야 하는 분주함을 덜어주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자세히 적을 수 없었던 내용도 추가적으로 담고 있어 도서의 선정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그렇지만 저자가 언급한 책은 어디까지나 저자의 생각에 뒷받침이 된 책들입니다. 같은 제목을 가지고 있는 책들도 출판사와 역자에 따라 천차만별이니 읽고 싶은 책을 하나 정하면 여러 출판사의 책들을 같이 놓고 비교해보며 자신이 좀 더 읽기 좋은 책을 고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됩니다.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이 독자들의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한국인의 에로스
김열규

남자와 여자, 여자와 남자는 떼어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존재다. 인류가 이어지기 위해서는 가족이 필요하고 가족이란 남자와 여자가 합쳐 자식을 낳음으로써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사랑의 의미에 대해서도 유물론자들은 종족번식을 위한 가상의 감정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분명 이성으로서 남자와 여자, 여자와 남자 사이에는 종족번식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다. 그럼에도 요즘은 어떤가? 늦은 밤 앞서 가는 여자와 뒤에서 가는 남자 모두 불안을 느껴야 하고 엘리베이터에 단 둘이라도 타는 경우가 생기면 서로 고개를 돌리기 바쁘다.

인터넷에서는 연일 남자의 군대이야기와 여자의 임신이야기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양성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것이 자연적인 순리라면 요즘의 모양새는 양성이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야단이다. 사정이 이러니 아예 독신을 선언하기도 한다. 가족을 만들기 위한 성적인 욕구가 아닌 쾌락을 위한 성적인 욕구가 판을 친다. 주객전도라는 말은 오늘날의 남녀관계에 잘 어울리지 않을까?


김열규 교수의 '한국인의 에로스'는 이런 시점의 우리에게 참 적절한 문제 제기를 해 준다. '에로스'라는 제목에 혹시 야한 이야기라도 나오지 않을까 책장을 펼치면 금방 후회하게 된다. 출판사도 지적하듯 "라틴어인 Eros는 사랑의 신을 가리키면서도 Amor와 마찬가지로 남녀 간의 사랑을 가리키기도 한다. 동시에 남녀 간의 성적인 관계도 의미한다. 저자는 Eros가 이런 복합적인 뜻을 가진 점을 취해 남녀 간의 더 넓은 관계를 포착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과거 역사와 신화 속의 남녀 관계를 짚어 간다. 이를 통해 오늘날의 남녀관계를 진단하고 처방을 내린다. 기본적인 구조는 이렇지만 문제의 제기와 풀이라는 경계조차 없을 정도로 유연하게 글을 이끌어 간다.

1. 한국의 남과 여 2. 짝짓기와 혼례 3. 또 다른 짝짓기 이야기 4. 사랑, 그 만다라의 얼굴 이렇게 총 4개의 커다란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제목에 대한 선입관과는 전혀 달리 훌륭한 참고문헌의 역할을 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자료와 이야기가 곳곳에 담겨 있다.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에서부터 오늘날의 이야기까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든다. 조선 시대의 이야기가 바로 눈 앞에서 펼쳐지고 고교 교과서에 등장하는 작품들의 속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는 아무런 선입견 없이 처음부터 죽 읽어 가자. 각 장마다 특별한 연계성이 없기 때문에 두 번째 읽을 때에는 아무렇게나 마음 내키는 페이지를 펼쳐 읽으면 된다. 어느 곳을 읽어도 쉽게 빠져 들 수 있는 재미. 김열규 교수의 말빨(?)의 힘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김 교수는 왜 굳이 '한국인의'라는 부분을 강조했을까? 우리 사회가 현대화되면서 등장한 정체불명의 현대식 결혼식은 형식적이고 상업적이다. 가정의례준칙이라는 괴물이 등장하면서 우리만의 고유의 남녀관계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의 전통 혼례는 단지 양성이 만나 한 살림을 꾸리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가족과 가족의 만남, 인간과 인간의 만남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정적인 의미는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았다는 것이다. 인륜지대사라는 혼인의 형식이 그렇게 되었으니 혼인의 내용이 알찰 리가 없다. 김 교수가 개탄하는 점은 그런 것이 아닐까..

김 교수는 남녀 관계가 세상 모든 관계 중에 가장 까다롭고 성가시다고 한다. 그말은 곧이곧대로 들을 것이 아니라 그만큼 많은 경우가 있고 지켜야 할 것들이 많은 것이라고 받아들이면 어떨까? 생면부지의 남녀가 만나 혼인을 하고 살을 맞대어 자식을 낳는다는 것은 세상 어느 관계보다 대단한 관계가 아닐까. 그렇기에 어느 관계보다 조심스럽게 그러면서도 진실되게 다가서야 하는 관계가 아닐까 생각된다. 남녀는 적이 아니다. 다른 성으로 받아 들이기보다는 둘이 합쳐 하나의 완성체가 된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신체적인 차이는 눈에 보이는 외양일 뿐이다. 오히려 그 외견 상의 차이를 결합을 통해 완성시키는 것이고 이전에 서로의 마음이 온전히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이런 진부한 이야기를?' 이라고 비판하는 이도 있겠지만 인간 역시 자연이라는 커다란 역사 안에서는 그저 작은 한 부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을 받아들이고 살아간다는 마음으로 남자와 여자, 여자와 남자가 서로를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사랑은 받음이기 전에 베풂이란 것을 내세우고 싶습니다. 내가 받는 것보다는 상대방에게 주는 것에 더 마음을 써야 할 것입니다. 상대를 위하는 것이 바로 내 보람이고 기쁨이라야 할 것입니다. 이 점은 어떤 시대에도 바뀌지 않을 불변의 사랑의 철학일 것입니다." 김 교수의 사랑에 대한 일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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