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날에 한강을 걷는 것은 썩 기분내키는 일은 아니다. 딱히 해를 피할 곳도 마땅치 않기 때문인데 그래도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돌아보면 평소에 보지 못 했던 사소함들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어 폭주행위를 금지하는 플래카드를 비웃는 비둘기떼라던가...


사람이 물에 빠지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배워볼 수도 있다. 부실해 보이기는 하지만 저것을 던지면 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


아무렇게나 서 있는 전봇대들은 이제는 그 기능을 모두 다 해 쓸쓸한 흔적의 하나로만 기억되고...


그 틈새는 지나가는 이들이 몰래 버린 시간의 찌꺼기들로 점점 차 오른다.


낡음이란 내쳐지는 것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녹이 슬고 제 기능을 하지 못 하게 되면 기억에서도 잊히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신세가 되고 만다. 이것은 비단 물건에만 한정된 일은 아닐 것이다.


비둘기들은 어느 장소, 어느 시간을 막론하고 존재하는데 가끔은 이 녀석들이 시간과 공간 모두를 지배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난 시간을 뒤돌아볼 때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조연이 이 녀석들이기 때문이다.


Contax Aria, Carl Zeiss 35mm Distagon f/2.8, Ilford XP2, LS40


연일 찌는듯한 날씨다. 원래 여름을 나기가 상당히 어려운 체질이라 여름만 오면 걱정이 앞선다. 예전에는 여름을 그리 타지 않았는데 체질이 바뀌었는지 여름만 되면 맥을 못 춘다. 하지만 사람이야 이래저래 여름을 피해가는 방법이 많지만 원래 추운 곳에 살던 녀석들에게는 이런 찌는 듯한 여름은 고문에 가깝다.


"야! 너는 날도 더운데 왜 돌아다니고 그래. 물 속에 들어와서 좀 가만히 있어. 나까지 더워지잖아!"

"말도 안 듣는구만.. 나는 모르겠다. 그냥 잠이나 잘란다.."

동물원의 녀석들에게 여름은 고문이다. 펭귄들도 마찬가지고 추운 동네에 살다가 남쪽 나라로 와서 이런 더위를 겪게 되니 참 동물 팔자도 알다가 모를 일이다. 문득 인간에게 다른 동물의 거주지를 마음대로 바꿀 권리가 있나 생각이 든다. 정상적이라면 이 녀석들은 북극의 어느 얼음 위엔가 살고 있을 녀석들인데...

동물원의 동물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가끔은 당연스레 생각되는 것들이 어느 날 문득 '이것은 좀 이상하지 않아?'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생각도 많으면 병이라는데 굳이 안 해도 될 생각들을 머리에서 끄집어 내는 걸 보면 나도 쉽게쉽게 살아갈 팔자는 아닌 듯도 하다.

아무튼 이 여름은 이제 시작이고 적어도 9월초까지는 지금과 비슷한 날들이 이어질텐데 매년 맞이하는 계절이지만 여전히 내게 여름은 쉽지 않은 계절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여름이 춥다면 이미 여름이 아닌 것일테니까..


Contax Aria, Carl Zeiss 50mm Planar f/1.4, LS40

덧) 보관 중인 사진 폴더에 필름의 이름을 모두 기록을 해 둔 줄 알았는데 카메라와 렌즈만 기록을 해 두고 필름 이름을 남겨 놓지 않은 것이 제법 된다. 슬라이드의 경우 마운트에 넣어 모두 보관 중이니까 들여다보면 어느 필름인지 알 텐데 책장 위에 가지런히 꽂혀 있는 보관함을 열어볼 마음이 아직은 들지 않는다. 스캔하지 않은 또 다른 많은 기억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낮의 도시가 밝을까 싶지만 사실은 밤의 도시가 더 밝다. 낮의 도시는 태양 아래 주어진 빛에 의해 보이는 풍광인 반면에 밤의 도시는 보여주는 빛에 의해 보이는 풍광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무엇인가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낸 빛.. 그 빛에 비친 세상은 낮의 그것과는 조금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순리대로라면 밤은 어둡고 캄캄해서 그 시간동안은 세상이 낮의 열기를 식히고 휴식을 해야 하지만 인간들의 욕망은 밤의 어둠을 멀리 걷어버리고 낮에는 보이지 않던 치부마저 선명하게 드러내버린다. 그래서 가장 편안해야할 밤의 시간은 욕망의 시간이 되어 버리곤 한다.


Contax Aria, Carl Zeiss 35mm Distagon f/2.8, Ilford XP2, LS40


글쎄..그걸 알려고 지금까지 살아왔지만 아직 뭔지 모르겠어..

그러는 자네는 뭐라고 생각하나?


Contax T3, Fuji Reala, LS-40



비가 제법 많이 내리는 날이었는데 갑자기 내린 비였습니다. 저곳은 마을버스를 타는 곳인데 아가씨 한 명이 어쩔 줄을 몰라하며 내리는 비를 그대로 다 맞고 있더군요. 표정은 잘 안 보이지만 뭐랄까 황당하다는 웃음... 비가 올 것 같지 않았는데 갑자기 쏟아지니 어쩔 수가 없었던 거죠.

뒤의 천막에라도 가 비를 피하면 되지 않겠나 싶지만 이미 워낙 많이 맞은터라 이제와서 비를 피해봐야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살다보면 그럴 때가 있죠. 자신이 예상한 것보다 더 많은 일들이 한번에 터져버려서 그저 손을 놓고 쏟아져들어오는 것들을 온몸으로 받아낼 수밖에 없는 순간..

아마도 그 당시 저분의 마음은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이제와 생각을 해봅니다. 딱 10년 전의 사진인데 동네도 지금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지금 저곳에 가보면 남아있는 가게는 하나도 없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하지만 요즘은 3년정도면 강산이 변하는 것 같네요. 아니 스마트폰 한대가 새로 나오는 1년이면 변할까요?

흑백은 요즘과 같은 시대에 아련한 향수처럼 다가옵니다. 일전에 앞으로 가능한 흑백 촬영을 하겠다 했었는데 이전의 사진 스캔 폴더를 뒤적여보면 생각보다 흑백사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흑백 필름은 스캔작업이 제법 까다로운데 그래도 그 당시에는 재미가 붙어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이 사진은 후지 리얼라가 원판이고 사후에 라이트룸에서 레드 필터를 적용시킨 것입니다.


Contax T3, RealaLS-40 film s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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