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고리타분한 단어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이런 생각을 할테고 내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인문학 관련 서적을 읽을라치면 일단 어느 정도의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마 국내에서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계기로 인문학에 대한 편견이 많이 해소된 것 같지만 그래도 여전히 단어 자체에서 풍겨나는 독특한 향기가 선뜻 책장을 넘기기 어렵게 한다.

길 위에서 만나지는 학문이 제대로 된 학문이다. 책을 덮고 거리로 나가자

그래서인지 최근 들어 쉽게 인문학에 접근할 수 있도록 지침서 역할을 해 주는 책들이 선보이고 있는데 이책 '길 위의 인문학'도 그런 류의 책이다.

중간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책은 '현장의 인문학', '생활 속의 인문학'을 위한 모음집이다. 여러 명의 인문학 관련 저자들이 모여 어떻게 하면 인문학을 일반 대중들의 생활 속으로 파고 들게 할 수 있을지를 연구하고 집필한 책이다.

책의 구성은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어 있다. 전반부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조선시대의 학자들, 저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후반부는 우리나라의 지리적인 장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제법 신선한 편집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1부·사람의 자취를 따라 떠나는 길 위의 인문학

2부·역사의 흔적을 따라 떠나는 길 위의 인문학

이렇게 두 개의 주제를 잡고 그 안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인물과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간다. 물론 조선시대라는 시대적인 한계와 그리 많지 않은 장소의 여정이라는 공간적인 한계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한 인물이나 한 장소에 대해 제법 많은 이야기를 풀어 가면서 독자들에게 '봐라, 이렇게 보니 어렵고 지루하지 않지 않느냐"고 말하고 있다.

무엇보다 각각의 인물과 장소에 대한 개별 저자들 특유의 경험과 감상을 마치 내 눈 앞에서 펼쳐 지는 것처럼 그려나가고 있어 딱딱한 인문학 서적이라는 느낌보다 가벼운 기행문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렇게 글을 읽다 보면 어느새 나도 과거로 돌아가 그 인물의 곁에서 혹은 그 장소에서 또 다른 삶과 학문을 느낄 수 있었다.

이책의 주된 배경은 과거다. 그러나 그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서는 현재의 우리를 알 수 없고 현재의 우리를 알 수 없다면 미래의 우리 또한 알 수 없다. 인문학이 따분하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은 직접적으로 우리가 체감할 수 없기 때문인데 이책에서처럼 과거의 일을 마치 현재의 일처럼 혹은 장소처럼 여기고 죽 따라가다보면 과거를 온전히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재로 끌어올 수 있을만한 나름의 요령이 생긴다.

특별히 목차에 집착할 필요도 없고 가끔 손이 가는대로 눈이 가는대로 아무 구석이나 펼치고 읽어도 좋은 것도 이책의 장점이다. 아니면 무언가 리포트를 쓰거나 나름의 글을 쓸 때 참고 교재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다. 공동 저자의 책은 책 전체에 흐르는 일관성은 약하지만 책 전체에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필체와 언어 그리고 지식이 그 부족함을 지워주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렇게 책을 마무리 짓고 있다.

"무지개를 잡으러 간 일이 있었다. 무지개는 나를 반기며 웃었고, 일곱 색깔 자태를 뽐내며 산 위에 걸려 있었다. 그렇게 무지개를 따라가다 무지개를 잃어버렸다. 돌아오는 길엔 온갖 사상이 나를 마중했다. 집에 왔을 때 무지개를 여전히 산 위에 걸려 있었다."

어쩌면 우리네 삶도 그럴테고 학문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삶의 화려함과 일의 고단함, 생활의 습관에 빠져 헤메다가 어느 덧 시간이 지나 나를 돌아봤을 때 애초에 내가 원하던 삶과 거리가 있는 것을 밝견하게 되는 것처럼 학문 역시 깊게 공부했다고 자부했지만 결국은 학문의 언저리에도 도달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때로는 인생이건 학문이건 멀리서 그 전체를 바라보며 즐길 수 있는 여유도 필요하리라..

아무튼 기획 의도가 참신하고 적극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글들을 읽다 보면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인물편을 다루고 있는 전반부는 일반 대중들에게 익히 알려져 있는 인물들을 주제로 선택했음에도 저자 스스로가 그 인물의 세계에 빠진 나머지 독자들을 외면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안내서라는 점을 감안했다면 차라리 지역을 다룬 후반부를 앞으로 빼내었다면 좀 더 많은 이들에게 관심을 끌지 않았을까?





책을 읽는 데 기술이 필요한가? 라고 이전에 스스로 질문을 해 본 적은 없다. 어릴 적부터 그저 손에 잡히는대로 책을 읽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교과서라면 사정은 달라서 밑줄도 긋고 노트에 요약도 하며 읽지만 수험용 책이 아닌 일반 서적을 그렇게까지 정성을 들여(?)읽지는 않았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렇게 읽은 책들은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곧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감동을 많이 받았거나 완전히 새로운 지식을 습득해 나 스스로 감탄한 정도가 아니면 얼마 후에는 이책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가물가물해지고 나중에는 분명히 읽은 기억은 있음에도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 난감한 상황을 겪게 되곤 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이었을까?

분명 무언가 내 독서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정확히 그 문제점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을 하면 좋을지 문제 의식만 가질 뿐 굳이 해결해야겠다는 적극적인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접한 책이 애들러의 '독서의 기술'이다. 마치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연상시키는 책 제목인데 '사랑의 기술'이 그러하듯 도대체 책을 읽는데도 기술이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키는 제목이었다.

책장을 넘겨갈 수록 처음의 생각, 그러니까 책을 읽는데 기술따위는 필요없어! 라는 내 생각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런, 내가 왜 읽은 책이 다시 기억이 나지 않는지 이제 이해가 가는군..' 출근길에 지하철에서 스스로 감탄을 했다.

책 자체의 느낌은 조금 낡은 느낌이다. 범우사에서 출간된 이책은 번역체도 다소 딱딱하고 종이질이라던가 디자인도 어쩐지 오래되어 보인다. 거기에 제목까지 독서의 기술이니 어지간해서는 책장을 넘기기 힘든 책임은 분명했다. 그럼에도 내가 이책을 끝까지 그리고 줄을 치며 메모를 해가며 읽은 것은 그동안의 잘못된 독서 습관에 대한 반성은 물론이고 이제부터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내 나름의 방향을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번역이 조금 오래된 맛이 있기는 하지만 책장을 넘기기에 어색할 정도는 아니어서 중고등학생들도 조금만 집중을 하면 읽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이책은 중고등학생들에게 적합하기도 하다. 단지 수험 목적이 아닌 앞으로 대학에서 학문을 해 나가는데 있어 참 많은 시사점이 될만한 내용들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애들러의 일종의 독서의 공식은 일반론이다. 자기 스스로 이 방법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서법을 찾고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흔히 물고기가 아닌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말을 하는 데 내 생각으로는 바로 이책이 그 방법을 가르쳐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자세히 책을 읽다보면 이미 본인이 알고 있는 내용들도 상당수 될 것이다. 책을 읽어 나갈 때 메모를 한다던가 주제를 뽑는다던가 목차를 먼저 읽고 요약을 해본다던가 하는 내용이다. 뻔히 알고 있는 내용임에도 오히려 우리는 실천에는 더디다. 애들러는 그 점을 정확하게 짚고 있고 나아가 우리가 뻔히 알고 있는 것들을 이어붙여 완성된 독서로 이르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열심히 책을 읽고는 있는데 도무지 내가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곤란을 느낀다면 다른 책은 일단 접어두고 이책을 읽기를 권한다. 그리고 이책을 읽어나갈 때는 애들러가 제시한 독서의 기술을 바로 적용해서 읽어보기를 권한다. 어쩌면 지루하고 단순한 작업의 연속일 수도 있겠지만 그 작업을 마친 후 상당히 진보해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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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글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스스로를 드러내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인식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그가 많은 지식으로 무장을 하고 있더라도 기본이 되어 있지 않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짧은 지식과 숫자놀음..화려한 형용사로 현학적인 글로 상대방을 비난해봤자 스스로의 위선을 드러내는 것외에는 별것도 아니다. 비평과 비난의 차이조차 모르는 그런 글을 굳이 내 블로그에 남겨둘 이유가 없어 삭제한다.


보통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우리는 주로 책상 위에서 작업을 많이 합니다. 책상이라는 가구의 용도 자체가 애초에 그런 것이다보니 당연스레 책상에서 작업을 하게 되지만 의자에 앉아 오랜 시간 작업을 하다보면 허리도 뻐근하고 집중력도 저하되는 것이 사실이죠.

그래서 방바닥에 앉아서 작업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마땅한 가구가 없어 지레 포기하곤 합니다. 밥상을 가져다놓고 책을 읽자니 왠지 어색하고 그냥 맨몸으로 있자니 책은 어찌어찌 읽겠지만 글을 쓰기는 어렵죠.

이번에 살펴볼 부림홈즈의 다용도테이블은 말 그대로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전천후 테이블입니다.


멀리서 보면 마치 원목 같은 느낌을 줍니다. MDF로 만들었지만 상당히 고급스러운 느낌이 납니다. 화면으로는 보여드릴 수 없지만 나무 특유의 향이 있는데 물론 오랜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겠지만 마치 자연 안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특이한 테이블입니다. 상판은 별도의 코딩을 하지 않고 있는데 그점이 오히려 친근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테이블을 펴면 높이는 25cm입니다. 사진에서는 자가 0.5cm차이가 나게 보이는데 자 안쪽부터 눈금이 있어서 그렇게 보이는군요. 왜 높이를 이야기하는가 하면 이 높이면 보통의 성인 남성이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을때 양무릎이 테이블 안으로 들어갑니다. 의외로 중요한 부분인데 테이블 위에 책을 놓고 읽을 경우 테이블을 멀리 떨어뜨려 놓지 않고 가까이 끌어당길 수 있다는 것이지요.



4개의 다리는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양쪽을 눌러서 펴고 접을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큰 힘이 필요하지도 않아서 여성분들도 무난하게 이용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리의 고정은 제법 단단하게 되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물건을 올려 놓아도 상다리가 부러질(?)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한번 테이블 위에 책을 올려 보았습니다.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테이블이지만 제 경우에는 독서용으로 사용하는 일이 가장 많은데요. 직접 사용해보면 참 크기나 높이가 책읽기에 적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4개의 다리를 접으면 상판의 두께가 얇기 때문에 전체적인 두께도 제법 줄어듭니다. 자취나 하숙 등을 하시는 분들이라면 공간에 대한 아쉬움이 많으실텐데 밥상 겸 책상으로 쓰기에도 좋도록 보관에 용이한 크기와 두께를 갖춘 테이블입니다.



이 정도면 책 한 권을 읽기에 제법 분위기가 있어 보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무릎이 테이블 아래로 들어가기 때문에 적당한 거리에서 상당히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물론 밥상 대용으로 사용할 때도 편리함은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책만 읽기에는 다용도테이블의 이름이 아깝습니다. 오랜만에 만년필과 노트를 꺼내어 글을 적기에도 적당합니다. 책을 볼 때도 공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는데 이렇게 노트와 펜을 올려두어도 제법 넉넉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다용도테이블인 것이지요. 테이블의 가로길이는 60cm이고 세로길이는 40cm입니다.

이 작은 테이블이 과연 일상 생활에서 얼마나 유용할까 생각들을 하실텐데요. 직접 방 안에 두고 이런저런 용도로 사용해보면 '아, 이게 이렇게 편리한가?'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됩니다. 늘상 책상 앞에 앉아 작업을 하는 것에 혹은 독서를 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셨다면 이 다용도테이블로 분위기 전환 한번 해보시면 어떨까요?


저는 건강한 리뷰문화를 만들기 위한 그린리뷰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체 게바라, 누군지는 자세히는 몰라도 어디선가 들어봤음직한 이름이다. 기억이 잘 나지 않더라도 지난 2004년 개봉한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본 적이 있다면 '아'하고 무릎을 칠지도 모르겠다. 과거 정권이었다면 제대로 빛도 발하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인물인데 그나마 민주화가 진행된 덕분일까? 한때 우리나라에도 체의 얼굴이 그려진 옷을 입고 다니는 이들이 제법 될 정도로 그의 인기는 대단했다.

그리고 그 열기가 모두 가라앉고 그의 이름조차 세인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갈 무렵 나는 그의 전기를 다시 읽어내려갔다. 실천문학사에서 꽤 공을 들여 내놓은 '체 게바라 평전'은 일단 독자를 배려한 책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700페이지가 넘는 분량덕분에 한 손에 책을 올려놓고 읽는 것을 즐기는 내게는 제법 고역이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독서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체를 본받으라는 의미가 담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판형도 작은데 두께가 두꺼워 한 손으로 책을 들면 자꾸 책이 접히려는 경향이 있어 결국 한 손으로 받혀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책을 눌러가며 봐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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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의 일대기에 대해서는 워낙에 많은 정보들이 공개되어 있으니 이 자리에서 그의 일생을 다시 돌아보는 것은 큰 의미는 없어보인다. 다만 왜 그가 전 세계인들에게 그렇게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지는 돌아봐야 한다. 그는 한 마디로 소신껏 살아간 인물이었다. 자신의 신념과 이상의 실현을 위해 평생을 바친 인물이다. 어떻게 보면 무모하고 무계획적이고 현실을 도외시한 이상주의자로 보일 수도 있었지만 그런 평범한 인간들과 그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그 이상을 실천에 옮겼고 성공을 거두었다는데 있다.

누구가 살아가는동안 자신의 이상과 현실사이의 괴리때문에 고민을 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을 택하고 하나의 부속으로 일생을 마감하지만 소위 '위인'이라는 인간들은 그런 현실을 타파하고 이상을 얻기 위해 일생을 바친다. 어떤 인생이 가치있는 인생이냐고 묻는다면 주저없이 위인의 인생이 가치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막상 직접 그런 삶을 선택해서 살것이냐고 묻는다면 주저하게되는 것이 또 우리네 삶이다.

이 책은 한 번을 읽어서는 제대로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다. 체의 일생을 시간적인 흐름에 따라 죽 훑어가고 있기때문에 글자에만 집중해서 읽어내려가다 보면 나중에는 도무지 무엇을 읽고 있는지 오히려 혼동스럽다. 처음 읽을 때는 그냥 이런 사람이 있었다정도로 만족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인터넷이나 도서관 등을 이용해 그 시대로 돌아가 역사적인 상황을 되짚어본다면 다시 책을 읽어내려갈 때 좀 더 체 게바라라는 인간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 본성에 대한 믿음과 스스로의 신념에 대한 확신과 추진력으로 가득 차 있는 근대사에서 접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인 체 게바라, 물론 혁명을 당한 입장에서는 귀찮은 테러리스트일 뿐이겠지만 그의 진정한 가치는 혁명가에서보다는 그가 가졌던 인간애에 있다고 보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내가 곧 서른 아홉이 된다. 시간은 어느 누구의 사정도 봐주지 않는다.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게릴라로서 내 미래에 대해 깊이 성찰한다. 그러나 당장은 '타협하지 않겠다'라고 결심했다. 해발 고도: 8백 40미터"

본문 중에서

장 코르미에 저/김미선 역 | 실천문학사 | 2005년 05월


세상에서 가장 풀기 어려운 것 중의 하나가 사람의 마음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정말 강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한없이 약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고사하고 자신의 마음조차 알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사람으로 태어나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하면 나는 지체없이 사람과의 관계를 이야기한다. 그만큼 사람이 전부라는 말인데 그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사람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이번에 읽은 책은 한빛비즈에서 출간된 '마음의 암호에는 단서가 있다'라는 책이다. 마음을 암호라고 풀어둔 것이 제법 흥미가 간다. 아니 어쩌면 상당히 정확한 내용이다. 마음이란 그 자체가 암호화되어 있어서 풀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 마음의 암호에 단서가 있다고 한다. 즉 풀어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말이다.

책은 전체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마음의 암호에는 반드시 단서가 있다

2장 그 사람은 당신을 위해 절로 움직일 것이다

3장 원하는 것을 순조롭게 얻는 기술

4장 누가 당신의 돈을 빼앗아 갔는가?

5장 사회의 틀을 넘나드는 기술

6장 관계의 가장 큰 기술은 사랑이다

처음 제목을 접하고 목차를 간단하게 훑어보았을 때는 여느 처세술 책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당연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기를 원한다' 라던가 '추구하는 목표를 매일 종이에 위에 써라'던가 하는 식이다. 원저가 그런 것인지 출판사의 편집 방침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목차를 끌어내는 모양새를 보니 공격적인 처세술을 알려주고자 하는 것같은 느낌이다. 하기야 그런 느낌이 아니면 요즘 같은 출판 시장에서 인기를 끌 수 없을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제법 많은 것을 알려준다.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소홀히 하고 있는 것. 마치 우리가 공기를 들여마시며 숨을 쉬고 있는 것과 같은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들을 다시금 이야기한다. 왜 그럴까? 당연하다고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을 강조하고 다시 풀어쓴다는 것은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 당연한 것을 이해하거나 실행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말이 강조되는 사회는 도덕이 엉클어진 사회다.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지극히 당연한 주제들 역시 우리가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전에 '생각버리기 연습'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책 역시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책이 잘 팔려나가는 것은 우리의 일상이 그렇지 못하다는 반증이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카렐의 공식'은 공식이라 부르기도 뭐할 정도로 당연한 이야기다. 그럼에도 하나의 공식이 되어 있고 또 책에 소개가 되고 있다. 사람들이 이것을 지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가치는 여기에 있다.

전반적인 책의 구성은 독자를 많이 배려하고 있는 느낌이다. 각 장별로 작은 사례와 함께 이야기를 풀어가는 형식이다. 그렇다보니 하나의 주제에 대한 페이지 분량은 많아야 2-3장이다. 바쁜 현대인을 위한 적절한 배려랄까? 각 주제의 구성은 하나의 사례를 소개하고 그 사례 속에서 사람의 심리를 파악하고 나아가 그 사례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식이다. 문체가 어렵지 않아 처세술이니 심리학이니 하는 거추장스런 수식어를 떼고 읽기에도 적당하다.

다만 자투리 시간에 읽기에 적당한 분량으로 구분한 것에 비해 책의 무게는 좀 나가는 편이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한 손으로 들고 읽기에는 무겁다. 이런 책들은 휴대를 위해 미니북이나 재생지 등으로 출간하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류의 책들은 도서관이나 서재에 앉아 진득하게 보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번역은 조금 딱딱한 편이다. 책의 구성이나 취지에 비해 번역자가 실제 사례를 많이 접해보지 못한 탓이 아닌가 싶고 책의 성격과 디자인, 번역이 딱딱 잘 맞아들어가는 느낌은 들지 않는 것이 아쉬운 점이라면 아쉬운 부분이다.




저는 건강한 리뷰문화를 만들기 위한 그린리뷰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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