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시작이라는 것은 나름대로의 여러가지 의미를 스스로에게 부여한다. 본격적인 겨울의 시작이 내게 주는 의미 중 가장 큰 것은 역시 '정리'라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이제는 희미하게 사라져 가는 지난 시간들의 수많았던 순간들을 고이 접어 과거라는 이름으로 봉인하는 일과 막연하게 혹은 혹시나..라는 미련과 기대를 남겨 두었던 미래를 좀 더 멀리 미뤄두는 것이랄까. 사실 겨울을 기다렸으면서도 한편에서는 내심 조금은 늦게 와 주었으면 바란 것도 이 정리를 해야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달력을 보고 지난 시간들을 하나 둘 돌아보며 조금은 아쉬운 웃음으로 넘겨 버릴 수 있게 되었고 모아 두었던 기억의 단편들을 보이는 것이던 혹은 보이지 않는 것이던 하나 둘 내 기억과 시야에서 지워나간다. 겨울의 기억이 유난히 많은 내게 이 계절은 생각만큼 쉬이 지나칠 수 없는 시기인 것은 분명하지만 오히려 이 계절이 아니면 머릿속 어딘가에서 방황하고 있을 기억의 조각들과 방안 곳곳에서 떠돌고 있는 과거의 흔적들을 온전히 찾아 떠나보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 본다. 


방 구석에 먼지가 수북이 쌓인채 잠들어 있는 커다란 여행 가방에서 오랜 기억의 흔적들을 끄집어 내고 이제는 다시 그것들을 마주 하지 않으련다는 생각을 하며 가방을 텅 비워가는 작업도 내가 겨울에 해야하는 일이다. 수많은 약속과 다짐들, 다정한 말과 글들이 이제는 부질없는 한숨의 이유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씁쓸하기는 하지만 그것들을 더 이상 내 주변에 놓아둘 이유도 없어졌고 오히려 이런 것들을 나 홀로 보관하고 있는 것이 나 자신뿐 아니라 이전의 기억들에게도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몇번을 망설이다 치워나간다.


생각해보면 지난 추억의 흔적들 특히나 물리적인 흔적들을 보관한다는 것은 꽤나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이 결혼까지 이르러 한 집에 살게 된다면 그 흔적들은 미래의 어느날에 다시 들춰보아도 즐거운 서로의 공감대가 되겠지만 이미 다른 사랑을 찾아 다니는 사람 혹은 다른 이의 아내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사람과 나눈 기억들을 나 혼자 보관한다는 것은 객관적인 시각에서 보면 찌질하거나 비참한 일이 아닐까. 남자의 기억의 방이란 그런 것이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남자의 사랑이란 원래 그렇게 유치하고 어리석은 모양이다.


혹시나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라며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 알게된 첫 소식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더라..라는 이야기일 때는 내심 섭섭하기도 하지만 한편에서는 시원하기도 한 그런 감정이 교차하게 되는데 그런 이야기를 듣고 '우리가 사귄 게 얼마나 오래인데.. 둘이 아니면 못 산다며..'라는 말을 되새기며 한탄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보편적으로 여자의 사랑은 그렇게 대상이 옮겨가면 지난 시간은 새로운 시간으로 덮어 버리는데 이것을 남자들은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다. 아마도 생물학적인 특성이 큰 이유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니 그런 이야기를 들었더라도 마음에 담아둘 필요는 전혀 없다.


아무튼 지난 기억들을 하나 둘 끄집어 내어 눈 앞에 놓고 그때의 감정과 지금의 감정을 찬찬히 바라본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고 여러 장면들이 눈앞에 스치지만 그래도 예전처럼 마음이 쓰리지는 않는 것을 보면 이제는 이런 물건들이나 기록들을 보관해둘 필요가 없어졌다는 나름의 확신이 서는 모양이다. 텅빈 가방을 보니 뭔가 휑한 마음이 들기는 하지만 오늘따라 바람이 많이 불어서..라고 위안을 해 본다.

요즘에는 사랑이라는 감정조차 내게는 사치스러운 것이 아닐까라는 조금은 회의적인 생각마저 드는 상황인데 나이가 하나 둘 더 들어갈 수록 뭐랄까 '사람'자체가 좋아 사랑이 시작되고 이어지는 확률은 극히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경험에서 비롯된) 생각때문인지도 모르겠다.


Nikon F3hp, Ai Nikkor 105mm f/1.8S, Ilford XP2. LS40

펭귄클래식 리뷰단에서 이번에 보내온 책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입니다. 한 번 정도는 들어보셨을 듯한 제목이지요. 아마 줄거리도 막연하게나마 알고 계신 분들이 계시리라 생각이 됩니다. 제 서평에 줄거리는 적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막연하게나마 알고들 계신 줄거리는 한 남자가 유부녀를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을 이루지 못 하게 됨을 아쉬워하며 자살한다는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그게 이 소설의 줄거리만 끌어내자면 전부입니다. 어쩌면 큰 이슈가 될만한 것도 아닌 이책이 거의 30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여전히 읽히고 있다는 것은 단순히 줄거리만 보고 읽을 책은 아니라는 의미도 됩니다.

이책의 내용은 괴테의 경험에서 끌어낸 것입니다. 흔히 고백 문학의 시초로 이책을 꼽는 것도 그런 이유지요. 여주인공 로테(혹은 롯데)는 괴테가 실제로 사랑한 로테의 이름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입니다. 소설에서처럼 괴테가 자살을 하지는 않은 것이 차이라면 차이일까요. 자, 이제 한번 생각을 해보도록 하지요. '사랑을 위해 죽다.' 그것이 가능하리라 생각하시나요? 여러 상황이 있겠지만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한 사람만을 살려야할 때 사랑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는 일은 최근에도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루지 못한 사랑때문에 생명을 끊는다는 것은 요즘의 사고방식에서 본다면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에 남자가 혹은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훌훌 털고 다른 사람을 만나면 돼" 아마도 요즘 사람들이 내리는 결론은 대부분 이렇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베르테르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을 어리석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오히려 사랑하는 이의 마음에 상처를 준 것이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비난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멀리서 사랑하는 이의 행복을 빌어줄 수 있을까요? 다른 이와 결혼한 사람의 미래가 행복하기를 바라며 축복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쉬운 질문은 아니라 생각됩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각자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책의 대부분은 편지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주인공 베르테르가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속에서 모든 이야기들이 펼쳐 집니다. 초반부만 해도 베르테르의 냉철함과 확고한 철학이 빛납니다.  

"인생이 꿈이라는 사실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 바이지만, 나 역시 어딜 가나 그런 느낌을 받는다네. 인간이 지닌 활동적인 탐구력 역시 한계에 갇혀 있음을 볼 때, 그리고 인간의 모든 노력이 궁극적으로는 욕망을 채우는 쪽에 머물며 이 욕망이라는 것도 사실은 우리의 불쌍한 생을 연장하는 데 봉사할 뿐..."

이라는 문장을 읽게 되면 베르테르가 감정적이라기보다는 이성적인 인물이고 나름의 확고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적어도 로테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죠. 베르테르는 욕망에 의해 흔들리는 인간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 역시 한편에서는 욕망의 일종인데 다른 편지에서는 남자가 여자에게 끊임없는 헌신을 바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까지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던 그가 로테를 만나고 기존의 생각이 무너지게 됩니다.

"사랑이 없는 세상이 우리의 가슴에 무엇일까! 빛이 없는 마법의 등잔이 다 무슨 소용인가!"

사람이 변해도 이렇게 변하나 싶습니다. 첫눈에 반하는 사랑을 해 본 분들이라면 공감이 되실텐데 저는 그런 사랑은 해 본 적이 없어서 누군가를 한번 만나고 이렇게까지 변하게 되는 것이 잘 이해는 가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기는 하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꼭 겪어보고 싶은 감정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베르테르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이루어진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사랑의 완성은 무엇일까요? 결혼일까요? 적어도 베르테르에게 있어서는 그런 것처럼 보입니다. 어떠신가요? 사랑을 한다면 최종적으로는 결혼을 해야 그 사랑이 온전해 지는 것인가요? 저는 이 질문에 선뜻 대답하기는 어렵습니다.

베르테르는 말합니다. "꼭 이래야만 하는가? 인간의 행복의 원천이 그의 불행의 근원이 되다니" 라고 부르짖습니다. 사랑으로 인해 행복하지 못하고 오히려 괴로워해야 하는 것이 그에게는 커다란 무게로 다가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로테의 남편에게서 총을 빌려 그 총으로 자살을 합니다. 물론 로테에게 장문의 편지를 남기고 말이죠. 어쩌면 굉장히 치졸하고 비겁한 행동처럼 보입니다. 이 모든 것을 겪는 로테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감정에만 도취된 모습을 보입니다. 

"나는 이 옷을 입은 채로 묻히고 싶습니다. 로테, 당신이 만져서 성스러워진 이 옷을 입은 채로 말입니다. 당신의 아버지에게 그것도 부탁해 놓았습니다."

여기까지 읽으면 마음이 답답해 집니다. 황순원의 소나기의 마지막 부분과도 비슷한 느낌이 드는데 정녕 로테를 사랑한다면 이렇게까지 잔인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편지의 마지막은 클라이맥스를 보여줍니다.

"권총은 장전되었습니다. 시계가 12시를 치네요! 자 이제! 로테! 로테, 잘 있어요! 잘 있어요!"

이 정도면 상대방에 대한 만행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남아 있는 이에게 모든 짐을 떠안겨 버립니다. '너를 사랑하지만 맺어질 수 없으니 내가 죽겠다'는 것인데 죽으면 조용히 죽지 사방팔방 다 이야기를 하고 당사자에게 편지까지 남깁니다. 요새말로 찌질해도 이렇게 찌질한 인간상이 있을까 싶습니다. 물론 이책에 대한 해석은 독자마다 차이가 큰 편인데 적어도 제가 읽기에는 이렇습니다. 베르테르는 사랑을 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내던진 것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책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일꾼들이 유해를 운반했습니다. 성직자는 한 사람도 따르지 않았습니다."

결국 괴테는 베르테르의 모든 행동이 옳지 않음을 스스로 밝히고 있는 셈입니다. 가톨릭이 지배하던 사회 안에서 성직자의 축복도 받지 못한 장례식이란 말 그대로 버려진 죽음일 뿐입니다. 여기까지 읽고나서야 앞부분을 읽으면서 느꼈던 베르테르의 비겁함과 찌질함이 해소됩니다. 마치 술에 취한 듯 자신의 감정에 도취되어 타인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편한 대로 생각하고 행동한 베르테르라는 인간에 대해 괴테는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 의도와는 반대로 이책의 출간 이후 수많은 자살자들이 양산되었는데 아마도 마지막 문장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까닭이라 생각됩니다.



아주 작은 책이 한 권 도착했습니다. 종이냄새가 물씬 풍기는 어쩐지 정감어린 표지의 그런 책입니다. 

사랑하는 이의 부탁이라는 꽤 감성적인 제목은 다름 아닌 저자가 독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입니다. 독자를 사랑하는 이라 부르고 그에게 이런저런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차분하고 담담한 어조로 엮어가고 있습니다. 필체가 워낙에 부드러워 글을 조금만 읽어도 마음이 잔잔해집니다. 딱딱하고 거친 말투가 익숙한 우리네들에게 이렇게 다정다감한 말투가 어색할지도 모르겠지만 사랑하는 이에게 이야기를 한다면 아마 누구라도 이런 말투가 되지 않을까 생각도 듭니다.

작은 책이지만 다섯 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사랑을 고민하는 이, 일상에 지친 이, 건강한 삶을 원하는 이,외로운 이 그리고 이 순간 행복을 바라는 이..이렇게 다섯 경우의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사실 장을 분류를 해놓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하나의 흐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느 페이지가 손길가는대로 펼쳐 읽어도 마음에 와 닿는 그런 매력을 가진 책입니다. 


저자가 이책의 글들을 쓰게 된 동기입니다. 어떠신가요? 지금 자신의 모습을 한 번 돌아보세요. 만약 자신의 생명이 며칠 남지 않았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저자는 그 하고 싶은 일을 글로 옮겨 적었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운명의 시간에 어떤 일을 후회하게 될지 이미 알고 계실텐데 저자처럼 그 일들을 바로 실행해 옮겨보는 것은 어떨까요. 물론 그것이 너무나 어렵다는 것을 저 자신도 잘 알고 있습니다..정말 어렵지요. 그렇게 간직해둔 '언젠가 해야할 일'들.. 마음속 깊이 묻어 둔 '할 말'들, '할 일'들... 우리는 누구나 그런 것들을 가지고 있지요. 해야 한다는 부담을 떠 안은 채 말이죠.

각각의 장은 또 작은 이야기들이 소품처럼 펼쳐져 있는데 두 세 페이지의 길지 않은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해답을 적어 줍니다. 해답이라고 적었지만 오히려 조언에 가깝습니다. 저자만의 생각이 아닌 다른 책이나 영화나 혹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 그럴 때는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라고 말을 건넵니다. 이래야 한다가 아니라 이렇게 해봐요..라는 말은 꽤나 설득력이 있는 법입니다.

이책이 마음에 든 점 중의 하나는 편집인데 중요한 이야기는 다른 색과 크기의 폰트를 사용해 도드라지게 하고 있는데 재생지와 어울리면서 뭔가 흐린듯하면서도 선명한 색상들의 조합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줍니다. 제법 많은 양의 사진들을 함께 담고 있는데 종이의 특성상 제법 진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오히려 선명하고 뚜렷한 이미지가 아니라 배경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힐링'이라는 것이 마치 유행처럼 번져 있는 요즘이지만 정작 그런 홍보문구를 강조한 책들을 보면 마음의 치유를 받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책은 오히려 그런 말이 없음에도 '힐링'이라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리는 그런 책입니다. 보통 힐링이나 자기계발서들을 보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지만 좀처럼 실천에 옮기지 못 하는 이야기들을 되새기게 해 주는 역할을 하는데 이책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지 못 한 이야기들을 들려 주고 있다는데 큰 매력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이 점은 생각보다 우리 마음에 크게 다가옵니다. '아,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라고 말이지요.

표지에 보면 '내일이 아닌 오늘이 소중한 사람들을 위한' 이라는 문장이 적혀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미래와 꿈을 이야기할 때 이책은 현재와 오늘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점만으로도 이책이 가진 의미와 이유를 쉽게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참 오랜만에 천천히 읽을 수 있는 책을 접하게 되어 다행이다 싶습니다. 요즘은 책들도 너무나 급하고 빠른 패스트 북이 주를 이루는 데 이책은 말 그대로 슬로우 북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가끔 몸이 지칠 때 하늘을 보고 큰 심호흡을 하듯이 이 작은 책 한 권으로 마음의 지침을 풀 수 있기를 희망해봅니다.




쉽지 않겠다 싶었다. 두 권으로 이루어진 책의 분량을 떠나 줄거리가 만만치 않아 보였다. 흔히 접하는 불륜으로 인해 상처 입은 아내가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과정과는 반대의 상황이다. 주인공은 남편이다. 이 독특한 시점은 기존에 다른 매체 등을 통해 짐작할 수 있었던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지레 짐작조차 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물론 이것 역시 남성적인 편견이라는 점은 부인하지 않는다)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나가며 파악하는 수밖에 없었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겪은 가장 큰 저항은 특유의 편지 쓰기식 서술이었다. 이 부분은 독자에 따라서는 꽤 마음에 들어하는 분도 있을 수 있겠지만 내게는 결국 작가가 작품 안에 온전히 생각을 담아내지 못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수신자로 등장하는 수 많은 이들이 과연 허조그의 심리상태 나아가 이책의 흐름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의문마저 들었으니 말이다.

두 번째 저항은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찌질하기 그지 없는 주인공의 신세한탄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독자에 따라서는 인간적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무능력 그 자체고 그 무능력을 스스로 돌파하기보다는 그저 흘러가는대로 놔두고 이런저런 변명으로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수동적인 면이 지나칠 정도여서 읽기가 수월치 않았다. 물론 작가의 의도겠지만 이렇게까지 무능력한 주인공은 참 오랜만에 만났다.

그럼에도 주인공의 심리 묘사는 대단하다. 처음부터 거의 끝부분에 이르기까지 자포자기하고 무기력에 찌든 상태를 한결같이 유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두 권으로 이루어진 책의 대부분은 이 신세한탄으로 채워져 있다. 어떤 독자라면 이 어둡고 찌든 분위기가 몸서리쳐지도록 싫을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란 영 쉽지가 않았는데 결국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주인공은 자주적인 결정을 스스로 내리지 못 한다. 이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네 인간군상의 나약함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이런 이유로 결말 역시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뭐랄까 자신에게 닥친 황당하고-그 성격에 당연한 결론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불운한 상황들을 나름 희극적으로 돌파해보려는 의지가 아주 가끔 엿보이기는 했지만 과연 결론이 허조그 자신에게 만족스러운 것이었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나는 글쎄..라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 결국 스스로의 삶을 산 것이 아니라 살아짐을 당한 전형적인 수동태적인 삶을 산 허조그이고 그런 일관된 흐름 안에서 마지막 결론은 작가에 대한 배신감마저 느끼게 했으니 말이다. 

번역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원서는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교적 현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번역자가 풀어가는 방식은 제법 진부했다. 솔 벨로의 문체 자체가 그렇다면 달리 할 말은 없겠지만 지나치게 어려운 단어와 복잡한 표현이 작품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한다. 특히나 작품 해설은 독자를 생각하고 쓴 것이라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않다. 책에 대한 감상이라는 것이 워낙에 주관적인 것이긴 하지만 나로서는 감당하기 쉽지 않았던 번역이었다.

아무튼 책을 읽는 내내 '작가의 의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왜?'라는 의문은 책을 펼친 이래 마지막까지 가시질 않았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와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하는 것이 작가의 의도라는 생각도 든다. 생각보다 쉽게 상처입고 쉽게 넘어지는 우리네 삶의 모습 그리고 그 상처와 넘어짐을 쉽게 극복하지 못 하고 절망의 나락 속에 빠져드는 우리네 보통 사람들에게 때로는 현실의 복잡함과 마음의 괴로움을 잊고 그저 흘러가는대로 받아들이라는 메시지는 아니었을까? 시간이 좀 더 지나고나서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도서]부활 1

레프 톨스토이 저/박형규 역
민음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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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문학의 절정

이 책을 읽기 전 부활의 여주인공은 아나스타샤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아나스타샤라는 말이 부활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에 가지고 있었던 착각이긴 했지만 왠지 어울리지 않을까 싶었다. 민음사의 부활은 두 권으로 나뉘어 있다. 두 권 모두 제법 두꺼운데 읽는 데 오래 걸리지 않을까 싶었지만 생각보다 몰입이 잘 된 편이다.

네흘류도프와 카츄샤라는 두 주인공이 있고 둘 사이의 연결고리는 제법 단단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어쩌면 두 개의 서로 다른 줄거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그 생각은 확실해졌다. 아마 각자의 이야기만 가지고 별도의 소설을 써도 전혀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남자와 여자. 사랑이야기가 나오지만 사랑이라는 주제보다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각각의 주제들에 대한 톨스토이의 성찰력은 놀라워서 가끔 던져지는 문장들을 곱씹어 생각해야할 때가 많았다.

네흘류도프 쪽에서 보자면 철모르는 귀족 집안의 남자가 한 여자를 통해 그리고 그 여자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성숙하게 변모해가는 과정이 이어진다. 세상 부러울 것 없이 지내다가 평민들의 삶을 직접 들여다보고서야 사회의 부조리와 차별을 깨닫고 그 과정 속에서 성숙해져가지만 때로는 이전의 화려한 생활의 편안함을 갈구하기도 하는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카츄사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끌려가게 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불신, 사랑에 대한 불신을 간직한 채 그저 흘러가는 대로 체념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 안에는 순수함에 대한 동경, 사랑에 대한 믿음을 동시에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끝내 내리는 마지막 선택은 의외의 반전인 듯 하면서도 그녀의 지고지순함을 보여준다.

그야말로 모든 인간군상들의 모습을 톨스토이는 이 책에 담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 많은 인물들 속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네들의 모습이 모두 다 들어있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다. 이 책의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지위가 높건 그렇지 않건 평민이나 죄수, 혹은 간수와 정치가, 빈농들과 지주들...

요즘의 어느 나라의 풍경에 빗대어봐도 인물을 대입해보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결국 세월이 흘러도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겉에 걸친 옷이 달라지고 마차 대신 차를 탈지언정 그 근본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인간들의 심리와 본성을 적나라하고 진지하게 담아 내는 톨스토이의 통찰력에 새삼 놀랄 뿐이다.

아마도 이 책은 읽는 이의 상황(사회적인 신분, 처지 등)에 따라 제각기 달리 해석될 지도 모르겠는데 이 점 또한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다. 만약 노동운동을 하는 이가 읽는다면 아마도 계급투쟁을 위한 지침서가 될 수도 있겠고 순수한 사랑을 동경하는 이가 읽는다면 아가페적인 사랑의 표본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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