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제법 흘렀다. 물론 언제 어떻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득한 기억이 되기에는 아직 부족한 시간이지만 이제까지 살아온 삶을 돌아보고 현재의 삶을 생각하고 앞으로의 인생을 계획하기에는 그리 짧지만은 않은 시간이었다. 사실 살아가는 동안 겪는 일들은 대부분 언젠가 과거에 한 번쯤은 겪었던 일들의 비슷한 반복이지만 완전히 똑같은 반복은 아니기에 매일매일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으리라. 

예전에는 그 반복에 조금은 낙담을 하곤 했었지만 그 반복 속에 무언가 다른 모습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어떻게 하면 그 반복의 모습을 조금씩 -그리고 내가 주도적으로- 바꾸어나갈 것인가를 생각하게 됐다면 그래도 괜찮은 변화가 아닐까 싶다.

사람에게 하도 실망을 많이 해서 사람과 거리를 두고 싶었지만 결국 삶 그 자체가 사람과의 관계이기에 사람과의 거리를 멀리하면 할 수록 삶 자체와도 멀어진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을 이제야 조금은 이해를 하는 모양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실망을 했다면 그 원인은 그 누군가에게 그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이상의 기대를 내가 주었기 때문이다. 

그 대상이 가족이건 연인이건 혹은 사회에서 만나는 동료나 친구이건 말이다. 크게 바라지 않고 작은 부분에 만족하면 되는데 사람의 욕심이 그렇지 못했고 내 욕심이 그렇지 못했다. 어떤 관계건 내가 희생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준 만큼 받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관계는 틀어져버린다. 아니 준 것과 받은 것의 비교를 애초에 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그런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이 흔히 말하는 성인이나 되야 가능하다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지만 일상의 아주 작은 순간순간을 떠올려보면 그리 어렵지만은 않은 일이다. 우리네 삶이 얼마나 짧고 얼마나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지를 절절하게 겪고 나서야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되니 나도 참 둔한 사람이다. 

삶에 그렇게 대단한 것은 없다. 내 나이에 할 말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담담하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다보면 마음 속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욕심과 욕망 같은 감정들을 조금씩 몰아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렇다고 현실로부터 도피해버리면 안 될 일이다. 

아무튼 올해는 해가 저물어가는 이 시기까지 정말 한치도 예상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다.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과제가 된 이후의 변화들이 무엇보다 크겠고 그 변화 속에서 돌아본 지난 과거의 시간들이 사실은 그렇게 거창하고 대단한 것들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 또 올해 느낀 소회랄까. 어떤 일이건 어떤 사람이건 그 대상에 의미를 너무 부여하지 않을 일이다. 

그동안 나는 너무 편하게 쉽게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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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2001년 겨울로 기록이 남아있는데 강화 어디쯤이 아니었을까. 그때만 해도 자세하게 기록을 남기지는 않았으니... 필름 스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게 어쩐지 마음에 든다. 기종은 F100에 렌즈는 80-200mm, 필름은 코닥 수프라였던 것 같다. 스캐너는 늘 같은 LS-4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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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카이 마코토는 내가 꽤나 좋아하는 감독이자 프로듀서다. 흔히 그에 대해 영상미가 뛰어나다거나 대사가 매력적(혹은 난해하다)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이번에 개봉된 작품인 '언어의 정원(言の葉の庭)'은 그 두 가지를 한데 어우러지게 한 작품이 아닐까 생각된다. '단어'의 사용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작품들은 해당 언어의 원어로 보고 듣는 것이 가장 좋은데 워낙 뜬구름 잡기식으로 공부한 일본어인지라 듣기는 엉망이어서 꽤나 고생이었다. 혹 의미의 해석이 어색하다면 전적으로 내 탓이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언어'라는 단어에 쓰인 한자인데 아마도 언어라면 언어(言語)가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言の葉이라고 적고 있다는 점.



이 작품이 주요 시간적 배경은 여름이다. 그리고 비가 많이 내리는 장마철이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이 비오는 날 시작되고 비오는 날 끝이 난다. 비가 내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생각을 해보게 되는데 언어의 정원에서 펼쳐지는 비는 아마도 기다림과 설렘 사랑과 아픔 등 여러가지 의미를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지 않나 싶다. 전작인 초속 5cm에서 펼쳐졌던 영상미는 언어의 정원에서 극치를 보인다. 마치 사실주의 화가의 작품을 보는 느낌이랄까. 


사랑이라는 감정은 언제 생겨나는 것일까 생각을 해 본다.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정말 '아주 우연히 만나'는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를 만나 익숙해지다보니 자연히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이어지는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사랑'이라는 감정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고 그 익숙함이 일상이 되어 버리는 것인지 어느 것이 맞는 것일까 알 수는 없다. 그렇기에 '사랑'은 영원한 인간의 주제가 아닐까. 


신카이 마코토는 '언어의 정원'에서 조금은 특별한 사랑을 다룬다. 하긴 이전에 그가 다룬 작품들도 어느 하나 평범한 것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한국 사람들이라면 조금은 거부감(?)이 들지도 모를 그런 사랑이다. 하지만 그것도 일종의 편견이 아닐까? 나이나 사회적인 신분 혹은 그외의 배경들은 어차피 눈에 보이는 형식일 뿐은 아닐까.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하는데 이유가 딱히 달린다면 그것을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이 생각에 반대하는 분들도 많겠지만...


비 내리는 어느 초여름날 우연이라면 우연하게 시작된 이 만남에서 '사랑'이 시작된다. 그러나 그 사랑은 서로에 대한 사랑이전에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즉 사랑 이전의 사랑이야기를 먼저 써 내려간다. 그리고 그 써 내려감이 잠시 멈춰 어디로 가야할지 도무지 갈피를 찾지 못 하고 있을 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손을 잡아 그 이야기를 마저 써 내려간다. 이 작품은 그렇게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사랑이란 불완전함과 불안전함이 만나 서로의 결핍을 채워가는 과정이기에...


모든 사랑이 아무런 역경없이 행복하기만 할 리는 없다. 아니 어쩌면 행복하고 즐거운 날들보다 힘겹고 고통스러운 날들이 함께 한다는 것에 더 많이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 고통을 그 힘겨움을 함께 한다는 것은 서로의 삶을 지켜내겠다는 다짐과 의지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사랑의 과정 속에는 오해도 갈등도 있을 수 있다. 아니 오히려 그것들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마음에도 없는 말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것처럼 사랑에 독이 되는 것도 없다.


사랑은 행복한 일이고 즐거운 일이고 기쁜 일이다. 하지만 그 행복한 순간에 이르기 위해서는 긴 기다림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긴 기다림 끝에 서로를 마주 보고 섰을 때 비로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평온함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난 어느 날 우연히 만나 그날로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쉽게 믿지 않는다. 설령 그렇게 시작되더라도 지속되기는 어렵다. 오랜 기다림의 시간 끝에 시작된 사랑도 때로는 너무나 쉽게 깨질 수 있기 때문에...


흔히 '너를 위해 떠나겠다'든지 '당신에게는 내가 부족해', '더 좋은 사람 만나' 라든지 하는 말들을 하곤 하는데 이런 말은 결국 서로에게 큰 상처만 줄뿐이다. 왜 스스로 선택한 사랑에 책임을 지지 못하는가. 자신이 선택한 사랑이라면 상대에 대한 약속 이전에 자기 자신에 대한 약속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일까. 물론 그 순간순간에 이런 것들을 생각할만큼 이성적이지는 못한 것이 또 우리네 사람이니 그토록 많은 만남과 이별이 존재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끝내 그 순간을 이겨낸다면 그것으로 사랑은 한 번의 기회를 더 얻은 것이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랑의 날들은 그렇게 이겨내고 버텨내야 하는 날들이 대부분이다. 아름답고 달콤한 시간만으로 가득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람의 삶이란 그리고 사랑이란 그렇지가 않은 법. 결국 사랑이란 두 사람이 하나가 되어 세상과 맞서 이겨내는 순간순간들의 기록이 아닐까. 사랑을 하는데 사랑을 하기 전보다 왜 마음이 더 아플까를 묻지만 그게 정상이다.


오랜만에 진득하게 앉아서 본 작품이었다. 상영시간은 1시간이 채 안 되지만 그 속에 담겨 있는 의미들을 생각하기에는 충분했다. 워낙 감독이 영상과 단어에 의미를 많이 부여하는 까닭에 장면장면에 꽤 신경을 써야했고 안 들리는 일본어에 귀를 세우고 있느라 피로도가 올라가기는 했지만 내게는 괜찮은 작품이었다. 다른 이들에게는 호불호가 많이 갈릴 것 같다. 신카이 마코토의 이전 작품을 몇 편 보고 간다면 조금은 도움이 되지 싶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이게 뭐야?'라는 인상을 줄 지도 모르겠다.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가고나면 이후의 이야기들이 짧게 펼쳐지는데 여주인공 유키노가 보낸 편지의 날짜가 내년 2월인 점이 재밌다. 비오는 날이 거의 대부분이다보니 여름만을 배경으로 하는 것 같지만 사실 남자 주인공의 이름에는 가을이 여자 주인공의 이름에는 겨울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이 편지의 끝부분에 등장하는 '따뜻한 계절' 즉 봄까지 포함하면 4계절이 모두 들어있는 셈이다. 봄은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은 그래서 아직은 알 수 없지만 긍정적인 두 사람의 미래를 암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무엇보다 손글씨로 안부를 묻는다는 설정이 마음에 든다.

그리고 이 작품에는 고전 문학 선생인 유키노가 일본의 고대 문학 작품집인 '만엽집'에 실린 작품으로 이야기를 건네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미 여러 곳에 소개가 되었기 때문에 문장을 옮겨 오기보다 의미만 적어 보면 먼저 

"멀리서 천둥 소리가 들리고 구름이 낀 것을 보니 비가 올 것 같다. 비가 오면 당신을 잡아둘 수 있을텐데.."라고 말을 건네고  이에 대해

"천둥 소리가 작게 들리고 비가 내리지 않더라도 나는 여기에 머무르겠습니다. 당신이 그러기를 바란다면.."이라고 답을 한다. 

꽤나 낭만적인 문답인데 이 대사가 오고 가는 장면이 제법 처리가 멋드러진 탓인지 '아, 멋진 대사를 하고 있군'이라는 인상을 남겼다. 이 두 대사는 작품의 시작과 끝에 나뉘어져 등장하고 천둥과 구름 그리고 비는 여러 곳에서 복선으로 등장하는데 작품 전체의 줄거리와 이들의 관련을 연결해서 보는 것도 좀 더 작품에 몰입해서 볼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한 번만 보고 여러 복선들을 맞추기는 아무래도 어려워보인다.

"사랑, 기억하고 있나요?" 라는 대사가 문득 떠오른다.




일상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흘러가고 있는데 마음은 여전히 제자리를 찾지 못 하고 있는 요즘이다. 이렇게 자꾸 심연 어딘가로 가라앉는 것 같아 '이래서는 안 된다'고 여러 번 다짐을 해 보지만 좀처럼 물 위로 올라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항상 무언가 중요한 일을 앞두고 이런 일이 많았던 것이 내 예전의 모습이었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 굴레가 반복되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면서도 그래도 어떻게든 지나간다는 것에 조금은 위안을 얻어본다.

삶이라는 것은 약간의 모양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정도 비슷한 궤적을 그리며 나아간다는 것을 요즘 부쩍 많이 느끼는데 20년 전의 어느 일상과 10년 전의 어느 일상 그리고 현재의 어느 일상이 궁극적으로는 참 비슷하다는 것은 한번쯤 곰곰이 생각해보면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아무튼 예전보다 조금은 더 냉소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아 스스로도 경계하고 있는 요즘이지만 솔직히 한 번 무너져버린 마음을 추스르기는 참 쉽지가 않다. 돌파구를 찾아 이런 현재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는 내면의 반발에 한 차례 더 뒤로 물러서는 요즘이다. 

삶이라는 것이 한편으로는 끈질기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나 쉽게 스러진다는 것을 겪고나니 마치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처럼 쓸데없는 공상만 늘어간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도 벌써 2개월이 지났고 그렇게 잔인하던 기억들도 조금씩 옅어져 가고는 있지만 여전히 내 마음속 겨울은 좀처럼 햇살을 마주 하려 않는다.

카메라를 들고 어딘가라도 돌아다녀봐야할텐데... 

마음이 여리니 하는 일이 다 어리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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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둘레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 작년 5월 8일이고 어제 그러니까 2013년 5월 8일에 마지막 구간인 21구간 우이령길을 걷었다. 뭔가 지고 있던 짐을 덜어놓은 기분이 들면서도 아쉬운 마음이다. 북한산둘레길은 총 길이가 71.8km에 달하고 서울과 경기도를 오가며 길이 나 있어서 구간마다 계절마다 독특한 느낌을 주는 길이다. 서울이나 경기에 사는 이들에게는 강북5산(불수사도북)이 있고 이 둘레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큰 혜택을 받고 있는 셈이다.


둘레길 홈페이지에서 캡쳐한 전체 구간이다. 처음 이 길을 완주해봐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았는데 막상 걷기를 시작하고 나니 딱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둘레길을 걷는 동안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무뚝뚝하게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들, 가볍게 목례를 던져 주는 사람들 그리고 함께 길을 걸었던 사람들... 결국 길이라는 것은 사람과 이어지는 그런 것이 아닐까 돌아온 길을 떠올리며 그런 생각이 든다.


21구간 우이령길은 사전예약구간이다. 하지만 주말을 제외하면 어지간해서는 예약이 가능하다. 내가 택한 코스는 교현에서 출발해서 우이동으로 들어오는 코스인데 이길을 가려면 서울에서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에 내려 740번이나 34번을 타고 석굴암 입구에서 내리면 된다. 우이에서 출발하는 것도 괜찮긴 한데 만약 식사를 할 생각이 있다면 우이동 쪽이 먹거리가 조금 더 많기 때문에 교현에서 출발하는 것이 낫다. 우이로 나올 경우는 버스를 타고 수유역이나 쌍문역으로 가면 된다. 

미리 적지만 21구간 우이령길은 별 다른 특징이 없는 구간이다. 길도 출발한 선에서부터 거의 일직선으로 나있다고 보면 된다. 오르막도 내리막도 많지 않고 계단은 아예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남녀노소 누구나 갈 수 있다. 구간 안쪽에 군부대와 경찰부대가 있어서 가끔 차들도 다닌다. 애초에 둘레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가는 편이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


오랜만에 보는 군부대 앞 표지. 무려 39개월을 복무했지만 저걸 지키는 부대는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원칙으로 지키는 이유는 원칙이 있어야 예외나 융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소위 FM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이유인데 어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닥쳤을 때 뭔가 기준이 있다는 것은 커다란 힘이 된다. 쓰지도 않는 것을 왜 매일 연습하냐고 이야기하는 것은 매너리즘에 빠진 이들이 하는 쉬운 핑계일뿐이다.


길을 이렇게 거의 일직선으로 곧게 나 있고 갈림길도 없다시피해 헷갈릴 일도 없다. 그저 산의 공기를 마시며 천천히 걸으면 된다. 다만 햇빛을 피할 곳이 거의 없는데 여름에 이 길을 걸을 때는 준비를 잘 해야할 것 같다. 햇빛이 그대로 내리 쬐기 때문에 길의 난이도가 낮음에도 쉬이 지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 이후 이 길을 가는 분이라면 선크림, 선글라스, 팔토시, 모자 정도는 꼭 준비하시길...


계절의 탓인지 날파리들이 심심치 않게 얼굴로 달려 든다. 전에 무슨 TV방송에서 날파리들이 사람 눈에 알을 낳는다는 끔찍한 소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렇지 않더라도 눈 앞으로 달려드는 것은 신경이 제법 쓰인다. 길을 들어설 때부터 길을 마무리 할 때까지 날파리와의 전쟁이다. 이 날파리들은 참 묘하게도 사람의 눈 앞에서 왔다갔다 하는데 어떻게들 알고 그리 달려드는지...


길을 조금 더 가면 멀리 오봉이 보인다. 원님의 딸을 맞아들이기 위해 내기로 던진 돌이 올라가 자리 잡았다는 전설이 함께 한 오봉. 다섯 개의 봉우리인데 나중에 사진을 더 올리겠지만 4개까지는 그럴 듯 한데 나머지 하나는 조금 애매하다. 사봉이라고 하기 뭐해서 오봉이라 한 것인지 아니면 원해 다섯 개의 돌이 있었는데 한 개가 굴러 내려간 것인지 알 길은 없다.


문든 편지를 써 본 적이 언제인가 돌이켜본다. 흔한 연애편지가 아닌 가족들에게 편지를 써 본 적이 있던가.. 아마도 남자들에게는 군 시절이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뭔가 절실한 환경에서는 가족에게 글을 쓴다. 나는 지금도 군 시절의 편지들을 가지고 있는데 가족들이 보낸 편지,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 신병교육대 교관 시절 훈련병들이 보낸 편지 등등이 남아 있다. 지금 그 편지들을 읽어보면 참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당시에는 가장 마음속에 담긴 이야기들이 오고간 것이 아니었을까?


길을 걷는 중에 간간히 총소리가 들려 사격장이 있구나라는 것은 알았지만 어느 정도 가니 군인들의 함성 소리가 들려온다. 유격훈련이 한창 진행 중이었던 것이다. 장교 교육 시절 받았던 유격은 정말이지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았던 고통 그 자체였는데... 늘 사람들은 자신이 겪은 일은 과장하는 습성이 있어서 요즘 군대 편해졌다느니 우리 때는 얼마나 고생했는데..라는 말을 하곤 하지만 사실 현실적으로 바로 지금 그 일을 겪고 있는 사람보다 힘든 사람은 없는 법이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에게 "그것도 못 이겨내냐"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 조심해야 한다.


전체적인 우이령길의 안내도다. 앞서도 적었지만 길을 걷는 자체는 어렵지 않으니 가벼운 산책코스로 이용하기에도 적당하지만 계절에 따라 준비를 해 가야 할 것들은 잘 챙겨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구간은 다른 구간처럼 중간에 걷기를 그만둘 수가 없다. 빠져 나갈 샛길이 존재하지 않으니 볼일은 미리미리 다 보고 걷도록 하자.


이제 이 초소를 지나면 길이 좁아진다. 본격적인 걷기가 시작되는 지점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전체적으로 21구간은 구간 자체를 걷는 시간보다 출발점까지 가는 시간 종착점에서 교통편을 이용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 시간이 만만치 않다. 여기쯤 왔으면 일단 좀 쉬어 가는 것도 괜찮다. 요즘 방울토마토를 종종 먹는데 평생 살면서 올해 처음으로 제대로 먹게된 녀석이다. 의자에 앉아 한개 두개 입에 넣어본다. 톡 터지는 맛이 산행에는 제격이다. 


표지판대로 맨발로 걸어도 괜찮다 싶다. 등산화를 신고벗는 것에 별다른 귀찮음을 느끼지 않는다면 여기서부터는 신발을 벗고 걸어보는 것도 좋으리라. 실제로 몇몇 분들은 맨발로 길을 걷고 있었는데 행여 발에 뭐라도 박히지 않을까라는 소심함에 나는 끝내 신발을 벗지는 못했다. 상을 차려줘도 수저를 들지 못하니 원...아무튼 맨발로 길을 걷는 것은 권할만한 일이다. 올 여름 어느 바닷가 백사장이라도 걸어보면 어떨까.


앞서 사진들이나 큰 차이가 없다. 뭔가 풍경이라는 것이 있는 것은 아니고 처음부터 내내 이런 모양이다. 지루하게도 생각될 수 있는데 그럴 때는 걸음을 느리게 걸으며 나무들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도 지루함을 물리치는 좋은 방법이다. 겨우내 이곳에는 이런 푸름은 전혀 없었을 것이고 계절이 바뀌어 순식간에 길 전체가 생명으로 가득하게 된 것만 해도 신비로운 일이니 말이다.


조금 더 자세히 보이는 오봉이다. 4개까지는 '아..'하고 이해가 가는데 다섯번 째는 긴가민가하다. 아마도 바위 위에 또 다른 바위가 도드라져보이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120mm까지 당겨보아도 내 눈에는 여전히 '사봉'이다. 바위가 한 개 더 올라가 있어야 오봉이라는 이름에 어울릴거라고 내가 애초에 생각을 고정해둔 탓이겠지만 말이다.


전방에 가면 도로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대전차장애물. 이곳에 이런 것이 있으니 좀 뜬금없다 싶기도 하지만 교현에서 우이까지 산을 관통해 갈 수 있는 길이 공식적으로는 이길밖에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전차의 폭이 이렇게 좁은 경우는 좀처럼 많지는 않겠지만... 지금은 그저 과거의 역사의 흔적의 하나 정도로 남겨져 있다.  


그리고 이곳이 소귀고개인데 우이령의 우리말 표현이다. 우이령이라고 하면 대체 무슨 뜻인가 생각을 해야 하지만(물론 내 경우다.) 소귀라고 하니 단박에 이해가 간다. 차라리 소귀고개라는 표현을 그대로 쓰는 게 낫지 않겠나 싶은데 그러지 못 하는 여러 이유들이 있겠다는 짐작은 간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살던 동네 이름이 우이동에서 소귀동으로 바뀌면 그것을 별 것 아닌 것처럼 받아들일 수 있겠나.. 아파트 이름을 바꾸었더니 집값이 올라갔다고 반기는 것이 우리네들의 생각인데 소귀동이라면...


북한산둘레길 21구간 우이령길은 이렇게 끝이 난다. 우이동에서 출발하는 코스를 관리하는 사무소를 지나 버스를 타는 지점까지 걷는 거리가 제법 멀다. 좌우로 음식점들이 죽 늘어서 있고 포장된 길을 죽 걷다보면 지금 한창 공사 중인 큰길로 나오게 된다. 

우이령길은 실제 거리는 짧지 않음에도 '아, 벌써 길이 끝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금방 걸을 수 있다. 석굴암 입구에서 우이동 버스 정류장까지 거리가 약  7km정도 되는데 아주 단순하게 성인 남성이 1시간에 4km를 걷는다는 기준을 적용하면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사이면 얼추 전체 거리를 걸을 수 있다. 마지막 구간이고 예약제인탓에 뭔가 특별한 것이라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 이래저래 심심한 길이지만 이제까지 걸어온 발자취를 떠올리면서 걷게 되면 애틋한 마음마저 드는 것이 21구간 우이령길의 매력이다.

이제 길 하나를 마무리했으니 다음에는 어디를 걸을까 행복한 고민이다. 미뤄두었던 북한산 오르기를 해볼까 전부터 가 보고 싶던 사패산을 가볼까 생각이 많다. 어찌 되었건 그래도 산이 그리고 길이 좋은 것은 언제고 다시 돌아와 그곳에 설 수 있다는 점때문이다. 인간의 유한한 삶에 비하면 산이나 길이 가지고 있는 삶의 길이와 깊이는 거의 무한에 가까우니까 말이다.


Panasonic LX-7

 

일상으로 한 걸음 돌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일까 생각을 하다가 예전부터 내게 익숙한 일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게 가장 익숙한 일이라면 역시나 글을 쓰는 일, 사진을 찍는 일 그리고 운전을 하는 일인데 일단은 글과 사진을 다시 추스려보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사실 과분한 카메라를 2대나 가지고 있으면서도 늘 먼지만 쌓이게 방치해두고 있는 것이 현실인지라 어디 장터에라도 내놓으면 좋은 값을 받을지는 몰라도 지금의 내게는 장식품 정도의 역할도 못 하고 있기 때문에 꽤나 미안한 마음도 들었기 때문이다.

사진이란 어디를 가야 비로소 찍을 수 있는 것이 아닌데도 예전에는 '출사'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였었다. 특히나 디지털이 일반화되기 이전의 필름카메라 시절에는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것 자체가 남들의 시선을 끄는 일이어서 어쩐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요즘은 카메라 둘러메고 다니는 것(오히려 SLR은 촌스러워 보일 지경이다)이 전혀 어색하지 않으니 숫기없는 내게는 꽤나 좋아진 시절이다.

테라야마 슈지의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라는 구호(?)도 있듯이 일단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가면 무언가 세상이 달리 보이기 마련이다. 한 가지 늘 잊는 것이 있는데 카메라 파인더를 통해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만큼 세상 역시 나를 다르게 본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이것을 좀처럼 알아차리지 못하고 '나' 위주의 사진을 찍었었는데 그래서는 일방적인 사진만 나올 뿐이다. 참 깨닫기 어려웠던 부분이다. 

모델 사진을 찍어도 모델과 눈이 맞았을 때 찍은 사진이 좀 더 실감이 나듯이 일상의 소소함을 찍을 때도 그 일상이 나를 바라보는 순간들을 잡아보자라고 생각하면 좀 더 사진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늘 염두에 두고 싶은 생각이다.

아무튼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노력 중이다.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그런 일상에 익숙해야 하기 때문이다.


Nikon F5, AF Nikkor 24-85mm F2.8-4D, Ilford Delta 400, LS-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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