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산행은 다른 계절에 비해 소위 '장비'가 필요해진다. '명필이 붓을 탓하랴'는 말도 있지만 겨울의 산에 대해서는 이 말이 어느 정도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겨울 산행에 필수적인 장비들을 적어보자면 이것저것 많겠지만 가장 우선적으로 장만(?) 해야할 품목에 배낭을 꼽아본다. 왜냐하면 겨울산에 오르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여러가지 장비나 의류들을 담을 수 있는 시작이자 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민고민 끝에 한 녀석을 들였다.


풍뎅이처럼 불룩 튀어나온 전면부가 인상적인 그레고리 Z40 2014년형이다. 그레고리 배낭이 이름값을 하는지는 이전에 사용해본 적이 없어 알 길은 없었고 고어텍스처럼 과대 평가된 것이 아닌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무렵 우연히 찾은 매장에서 등에 메본 이후 다른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거다! 라고 유레카를 외친 배낭이기도 하다.


뒷면은 이렇게 생겼다. 등산 배낭이 뭐 저리 복잡한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산행 중 땀이 등에 차서 흐르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이전에도 이런 비슷한 류의 배낭을 사용해본 일이 있지만 심하게 땀이 나는 경우라면 이런 기능성 장치로도 사실 감당하기는 어렵다. Z40의 무게 배분은 아래에 보이는 허리끈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데 허리끈을 조인 상태에서 흔한 말로 어깨 부분에 달걀이 하나 들어갈 정도의 여유가 생긴다.


옆에서 바라보면 대략 이런 모양새인데 곡선으로 프레임이 들어가 있고 그것을 지지하는 이중 구조로 되어 있어서 전체적인 배낭의 수납력은 떨어지게 된다. 40리터급 배낭이면 1박 2일 정도의 산행에 무난해야 하는데 이 독특한 프레임 구조 덕분에 패킹을 신경 써서 하지 않으면 넣을 것 못 넣고 가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통기 시스템은 사용자마다 호불호가 분명히 갈릴 부분이기도 하다.


상단 헤드 부분에는 안쪽과 바깥쪽으로 각각 수납 공간이 있다. 자주 사용하는 물건은 바깥쪽에 배치하면 되는데 전체적으로 내부 파티션은 없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작은 물건을 패킹해야 하는 경우는 별도의 디팩이나 주머니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이런 점은 다소 불만이긴 하지만 말이다. 재질은 일단 어느 정도 방수성을 갖고 있으며 내장된 레인커버가 있어서 악천후 대비는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튼실한 허리벨트에 비해 늘 욕을 먹는 허리벨트 주머니는 신형 모델에서도 별반 개선된 것이 없어 보인다. 아이폰5S가 들어가고나면 거의 여유 공간은 없는 편인데 간단한 행동식이나 랜턴 정도는 수납이 가능하지만 문제는 벨트가 배낭을 맸을 때 허리 좌우로 많이 치우치기 때문에 물건을 넣고 꺼내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40리터급 배낭에 너무 많은 것을 바랄 수도 있겠지만 아쉬운 부분임은 분명하다.


이전 모델과 다르게 신형 Z40은 하단부 개방이 되지 않고 경사가 진 형태로 되어 있다. 덕분에 배낭을 똑바로 세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2014년형의 경우 백패킹을 염두에 두고 제작했다는 말도 있는데 사진에 보는 것처럼 하단에 깔판 같은 것을  묶을 수 있는 고리가 추가되어 있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 그런 의도로 제작된 것 같기도 하다. 침낭을 묶기에는 조금 짧아 보이기는 한다.


전면의 풍뎅이 같은 부분은 그 형태 그대로 통짜의 수납 공간인데 가벼운 바람막이 정도는 수납이 가능하지만 우모복 같은 패딩류는 넣기에는 공간이 부족해보인다. 제조사의 설명으로는 옷을 넣는 곳이 맞기는 한데 역시 평가가 엇갈리는 부분이다. 도드라진 모습에 비해 애매한 수납공간이라 이곳을 어떤 용도로 쓰는 것이 좋을지는 고민이 좀 더 필요해보인다.


풍뎅이 부분을 들어올리면 나타나는 공간인데 또 하나의 수납공간이 등장한다. 그 공간은 제법 넓은데 역시 통짜 공간이라 애매하다. 아마도 내 패킹 습관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주머니가 많은 것이 좋은데 그런 면에서는 Z40은 꽤나 불친절한 배낭인 것은 분명하다. 착용감에 반해서 들인 녀석이긴 한데 앞으로 산행을 하면서 적당한 사용법을 찾아야 할 것같다.


헤드를 들어올리면 이런 모양이다. 앞서 이야기한 내부 수납 공간이 하나 더 있다. 중간쯤에 보이는 삼각형 모양쪽으로 수낭의 빨대(?)가 나오게 되어 있는데 수낭을 쓸 일은 없으니 내게는 불필요한 부분이다. 다른 배낭들도 그렇겠지만 Z40은 유난히 체결되는 고리들이 많은데 군대 시절 생각하면 소위 끈처리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 정도다.


배낭의 메인(?)부분은 이렇게 되어 있다. 상단을 조이는 방식인데 끈을 한쪽으로 당기면 배낭 입구가 개방되고 다른 쪽을 당기면 조여지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이 좋은 것이 배낭의 크기를 어느 정도 사용자가 조절할 수 있다는 점때문이다. Z40도 이곳저곳에 배치된 끈들을 타이트하게 정리하면 제법 컴팩트한 크기로 작아진다.


위에서 보면 이런 모양인데 사진상으로는 잘 티가 나지 않지만 손을 넣어보면 프레임 구조때문에 수납 공간이 넉넉하다는 느낌보다는 좁다는 느낌이 먼저 든다. 패킹을 효율적으로 하는 기술이 많이 부족한지라 결국은 디팩을 채워넣은 다음 나머지 공간을 활용해야 할 것 같은데 패킹을 잘 하는 분들은 넉넉한 공간일 수도 있겠다.


배낭을 거꾸로 돌리면 이렇게 보이는데 이전 버전과 달라진 것은 스틱 걸이가 고무줄식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화면 상단에 좌우로 고리 2개가 보이는데 이 줄을 당긴 다음 스킥 하단부를 고정시키는 방식이다. 아무튼 Z40에서도 스틱을 걸고 풀기 위해서는 여전히 배낭을 등에서 벗어야 한다. 중간에 보이는 아래로 처진 고리 모양은 전면부를 개방할 수 있는 지퍼다.


지퍼를 열면 이렇게 배낭의 전면이 개방되는 형태인데 배낭을 위에서 부터 열지 않고 바로 내용물을 꺼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디팩 사용자라면 전면부가 개방되는 코끼리 디팩을 사용하는 것이 좀 더 편리하고 Z40의 경우는 미스테리월의 스몰-롱 디팩이 적당한 크기로 잘 어울린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이 지퍼에 연결된 천끈인데 끈을 지퍼에 고정시킨 부분이 바깥쪽으로 되어 있고 마무리가 약간 날카롭게 되어 있어 급하게 끈을 잡고 지퍼를 열 때 손이 다칠 수도 있는 점이다. 보통 지퍼를 열 때 좀 더 많은 힘이 들어가는 점을 생각한다면 방향을 반대로 고정시켰으면 어땠을까 싶은 부분인데 사용자가 주의를 하는 수밖에 없다.


글을 적다보니 처음 내가 Z40을 등에 메보고 느낀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아 보이는데 아마도 직접 산행을 하고 난 이후의 감상이 아닌 방안에서 리뷰를 하듯 이것저것 비판적으로 바라봤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정말 쓸만한 배낭인지는 꽤 많은 산행을 함께 한 다음에 비로소 알게될 것같다.

사진에 한창 빠져 있을 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사진을 찍는 것보다 바디나 렌즈에 더 신경을 썼던 기억이 있는데 등산에 한창 빠지고 나니 정작 산에 가는 것보다 산행 장비들에 정신이 팔리는 요즘이다. 취미라는 게 결국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즐기는 것이 아니냐는 서툰 변명을 해 본다.



북한산의 많은 봉우리들 중에 유독 나와 인연이 있는 봉우리를 고르라면 '족두리봉'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예전 북한산둘레길을 걸을 때의 기억이 가장 강렬하겠지만 그 이후에도 몇번을 오를 수 있는 기회를 다음으로 미룬 일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오늘 그 인연의 시작을 확인해보고자 그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족두리봉에 오를 수 있는 등산로는 크게 2-3개 정도가 되는데 이번에 고른 등산로는 둘레길 중 하나인 구름정원길을 지나는 길이다. 이곳에서 출발하게 되면 약간 난이도가 높아지는 단점은 있지만 내게 있어서는 오늘만은 이길을 가야한다는 묘한 마음의 부담을 안고 출발했다. 주말이어서 상당히 많은 이들이 북한산을 찾았는데 사람이 없는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길의 시작은 구름정원길이다. 벌써 이곳을 걸었던 것이 1년도 넘은 일이라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곳인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구나..시간은 흘러도 자연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구나. 사람의 삶이란 얼마나 짧고 보잘 것 없는 것인지..


이 표지판은 작년과 약간 달라졌다. 전에는 머리조심이라고 적혀 있어서 어쩐지 재미도 있었는데 이번 표지판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오히려 저 그림을 바라보다가 위험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며 천천히 발길을 옮긴다. 내 산행 속도는 상당히 느린 편인데 아마도 사진을 찍느라 멈추는 일이 많아서가 아닐까 싶다. 


원만한 길을 조금 걷다보면 이 지점을 만나게 된다. 오른쪽에 보이는 탐방객 확인을 위한 문을 지나면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물론 둘레길을 걷는 것도 산행이지만 걷기와 오르기는 묘한 뉘앙스가 분명 존재하기는 한다. 아무튼 이제 1년이 지난 약속을 지키려 이곳에 왔다. 늘 닿을 것만 같으면서 좀처럼 닿지 않았던 인연에 내가 먼저 다가서기로 한다.


둘레길 걷기와 다르다는 것은 초입에서부터 적나라해진다. 족두리봉에 오르는 길을 이곳으로 정했을 경우에는 오르는 내내 이런 모양의 길을 만나게 된다. 북한산의 특징인 바위를 아주 지겹도록 볼 수 있는데 등산화의 선정에 조금은 주의가 필요하지 싶다. 맑은 날이라면 큰 문제는 없겠지만 습기가 많은 날에 이 루트를 탈 경우 비브람창은 다소 미끄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물론 사람 나름이기는 하다)


한여름이었다면 제법 숨이 벅찼을 길을 따갑지 않은 한낮의 햇살을 맞으며 천천히 올라본다. 내 산행이란 급하지도 않고 정상에 올라야 한다는 사명감도 없기에 아무런 부담이 없다. 물론 정상에 다다르면 잠깐은 기쁘겠지만 몸과 마음이 힘들다면 좋은 산행이라 부르기 어렵다. 일상에서 그렇게 목표달성에 치이며 살아가면서 모처럼 만난 자연에조차 그런 세상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어쩐지 어색하다.


이런 곳에 사람이 쌓은 돌벽이 있을까. 한참을 멈추고 바라본다. 그러고보면 자연이라 해도 어딘들 사람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있을까 싶다. 그렇게 사람들은 자기들의 편의를 위해 자연을 이리 재단하고 저리 재단하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 남는 것은 여전히 변함없는 자연과 어설픈 인간의 흔적이 아닐까. 아무튼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겨본다.


이쪽 등산로는 흙을 만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돌로 만들어진 길은 어쩐지 차가운 느낌이 강하다. 흙이 주는 따스함보다는 '왜 굳이 이리 올라오느냐'며 채근하는 느낌이다. 돌길은 흙길에 비해 체력소모가 확실히 많고 계절의 뜨거움이나 차가움이 그대로 몸에 전해지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그나마 습기가 없어 미끄러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이 뿌리들이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얼마나 많은 등산화가 이 뿌리를 밟고 지나갔을까. 가파른 경사로의 이어짐 속에 바닥 한 번 내려다 보기 어려운 길에 이렇게 뿌리는 묵묵히 그 존재를 남기고 있었다. 사람이 걷는 길을 막아서는 나무가 있다면 그 나무를 베어내고 길을 가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그 나무를 에둘러 가는 것이 맞을까...


주말이어서 제법 많은 이들이 둘레길에 있었지만 족두리봉으로 넘어가는 이쪽 등산로에는 그렇게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환갑이 훨씬 넘은 어르신들이 성큼성큼 걷는 모습을 보면 내 체력이 영 부실하다는 느낌은 족두리봉을 오르는 내내 지울 수가 없었다. 하루종일 앉아서 씨름해야 하는 직장생활 속에서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산은 꾸준히 와야지 싶다.


이렇게 사진을 찍으니 제법 험해보이는데 실제로도 이렇다. 가끔은 네발(?)로 돌에 붙어서 올라가기도 해야 한다. 등산화가 미끄러지면 참 낭패인 구간이 곳곳에 있으니 이쪽으로 족두리봉을 오르시려는 분들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 물론 신발 종류에 관계없이 잘 오르는 분들은 잘 오른다. 나처럼 기술보다는 장비에 의존해야 하는 초보등산객은 바위에 잘 붙는 신발은 좀 더 유리하다는 말이다.


족두리봉은 불광역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올라가면 서울의 한 구석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저 아래 수 많은 아파트들과 건물들 안에서 수 많은 인생들의 희로애락이 펼쳐지고 있겠지만 이렇게 산에 올라 바라보면 그깟 인생이 참 뭐가 대단한가 싶다. 결국은 다시 저곳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잠시 떠나있는 지금만큼은 도시 이야기는 완전히 잊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저 방향으로 오르는 것이 아니어서 조금은 다행이지만 이쪽도 만만치는 않다. 그래도 조금은 벅찬 길로 산을 오르는 느낌은 꽤나 즐겁다. 위험요소에 대한 준비만 잘 한다면 천천히 오르면 아주 어렵지는 않으니 너무 겁내지는 않아도 된다. 다만 계절이 서서히 겨울에 가까워지는 요즘이기 때문에 체온 유지를 위한 겉옷과 비상식량 등은 이전보다는 좀 더 신경을 쓰는 것이 좋겠다.


한참 앉아서 쉬던 곳인데 고소공포증이라도 있다면 제법 무서울만한 장소다. 금방이라도 미끄러질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면 꽤 긴장했을 것같다. 겨울에 눈이라도 쌓이면 바닥 보기도 힘들텐데..라는 생각에 한동안 앉아 이곳저곳의 지형들을 살폈다. 멀리 바라보니 이제까지 올라온 길이 보인다. 능선길을 따라 이렇게 올라왔구나라는 생각 그리고 사람들이 참 길을 잘도 만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리면 어김없이 바위와 바위로 이어진 길이 등장한다. 이쪽 코스에 대한 사전 정보라고는 가파른 곳이라는 게 전부였던지라 오늘은 참 바위를 질리게도 오르는구나 생각하며 걸음을 옮겼다. 가을이 서서히 저물어가는 북한산은 어렴풋하게 남아있는 여름의 흔적과 조금씩 다가오는 겨울의 징조가 어울릴듯 어울리지 않을듯 묘하게 얽히곤 했다.


오르막이 멈추고 난 후 나타난 능선길은 이번 산행의 절반이 끝나가는구나라는 조금은 안도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늦가을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한낮의 햇살은 여전히 따가워 그늘만 보이면 조금이라도 그 그늘에 의지해 쉬곤 했다. 산행은 마음 맞는 이와 같이 가는 것이 제일 좋고 그렇지 않다면 혼자서 가는 편이 낫다. 개인별로 체력이 다르고 산행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이다.


정상인 족두리봉에 다다를 수 있었다. 해발 370미터면 사실 오르기 크게 어렵지 않은 동네 뒷산(?) 정도일 수도 있는 높이지만 초보등산객의 입장에서는 참 높고 멀기만 한 등산이 아니었나 싶다. 나름 천천히 오른다고 시작한 등산이지만 실제 걸린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내 기준에서 천천히지 다른 사람이 보기엔 빠를 수도 있지 않나 싶기도 했다.


족두리봉 정상에는 그다지 경치와 어울리지 않는 송신기 비슷한 것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일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달갑지 않은 이물질일뿐이다. 아무튼 이렇게 인연이라면 인연인 족두리봉과의 만남은 일단 끝이 났다. 그동안 내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내게 무엇을 전하고 싶었는지 바로는 알 수 없었지만 언젠가 그 의미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저 아래 아주 조그맣게 보이는 집이 무엇일까 궁금했지만 굳이 알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저렇게 어우러진 모습 자체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이번 사진들은 이전 사진들과는 아마 색감이 다르게 느껴지지 싶은데 라이트룸에서 VSCO 필터를 적용한 덕분이다. 어떤 필터가 적용된 것인지 짐작이 가는 분이 있을까? 100VS라는 이름이 낯익다면 아마도 스크롤을 다시 위로 올라 한참 사진을 보지 않을까? 나 역시 필터를 적용시키고 나서 한참을 화면을 바라봤는데 아주 오래 전.. 이제는 추억의 이름이 된 Kodak 100VS를 이렇게 어설프게나마 다시 만날 수 있어서 무척이나 반가웠다.


Panasonic LX-7, Lightroom + VSCO Kodak 100VS 



'산 이야기 > 산에 오르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리산 눈꽃 산행  (13) 2014.11.17
雨中山行  (7) 2014.06.05
지난 겨울의 약속, 사패산  (16) 2014.05.07
태백, 기억이 부르는 날에, 2013년 겨울.  (24) 2013.01.15
2012년 마지막날, 청계산 매봉에서  (22) 2012.12.31

연인들이라면 한 번쯤은 찾는 곳이 이곳 정동진이 아닐까 싶다. 정동진이 유명해진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우리가 이곳을 찾은 것은 새벽열차를 타고 떠나는 거의 마지막(?) 여행이 아닐까 싶은 마음에서였다. 청량리에서 11시 넘어 출발해 새벽 4시경에 도착하는 무박열차는 한창 나이 때는 별 무리 없이 즐기며 다녀올 수 있는 낭만이 있겠지만 한 두 해 나이가 들다보면 어쩐지 낭만보다 고단함이 점점 더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청량리에서부터 스냅식으로 여행을 죽 그려보고자 했던 생각은 덜컹거리는 열차와 자는둥마는둥하는 밤샘에 금세 어디론가 사라졌다. 35mm를 들고가야 한다는 내면의 압박은 극심했지만 결국 가벼움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LX-7만 들고 왔는데 일상의 스냅과 여행 스냅은 확실히 달라서 줌렌즈의 유용성에 새삼 놀랐달까.. 그래도 최대한 괜찮은 사진을 건져보겠다고 RAW 파일로 찍었더니 돌아와서 편집이 만만치가 않았다.


동해의 일출이란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는건지 좀처럼 해가 뜨는 모습을 보기는 어려웠지만 하루의 시작을 연인과 바라본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아무튼 파인더가 없는 똑딱이 디카는 여전히 사용법이 익숙지가 않아서 노출을 잡는데 늘 애를 먹는다.- 그래도 해가 뜨는 순간. 주변이 어둠에서 단 몇 초 사이에 환한 빛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역시나 감동적이다.


나는 바다를 유난히 좋아한다. '바다에 와서 소원 풀었네요?'라는 그녀의 말에 새삼 내가 얼마나 바다 이야기를 많이 했나 싶기도 했다. 한 없이 멀리 펼쳐진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모습, 약간은 비릿한 냄새와 함께 얼굴을 스치는 바람.. 이 두 가지만 해도 바다를 찾을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어쩌면 일상이 지나치게 도심에 집중이 된 삶을 평생 살아오다보니 막히지 않은 공간 자체에 대한 동경이 늘 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지 않았을까..


단 몇 분 사이에 어둑했던 역 주변에 햇살이 드리우고 보이지 않던 길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온다. 그렇구나..원래 길이 있었는데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았을 뿐이구나.. 우리네 삶도 그런 것 같다. 어딘가 분명히 내가 걸어갈 수 있는 길이 곧게 뻗어 있음에도 잠시의 어둠에 마음을 빼앗겨 그 길이 있다는 사실조차 잊는 것은 아닐까. 해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했다. 그 어둠만 이겨내면 사방이 환해지는 공간 속에 내가 걸어갈 길이 또렷하게 놓여있음을 찾을 수 있다.


사진은 많이 찍고 볼 일이다. 예전처럼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해야 하는 수고로움(물론 그 기다림의 즐거움은 없어졌지만)이 사라진 지금은 다다익선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 사진이 몇몇 특별한 계층들의 전유물이 되던 시대도 이미 지난 지 오래고 휴대폰에 붙어 있는 카메라만 해도 좋은 사진들을 많이 만들어내는 게 요즘이다. 어색함에 혹은 결정적인 순간에 대한 욕망에 누르지 못한 한 컷에 나의 소중한 기억들이 담길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한다면 사진 찍는 일에 인색할 것은 아니다. 


그녀를 만난 이후 내 사진에 대부분은 소위 '셀카'가 주를 이루고 있다. 내 사진의 색이 변한 부분 중의 하나기도 한데 처음에는 나도 어지간히 어색했었지만 지금은 내가 먼저 카메라를 들고 포즈를 잡을 정도가 됐으니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 맞는 모양이다. 아무튼 덕분에 DSLR은 점점 더 제습함 속에 들어갈 일이 많아졌다. 그나마 들고 다니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은 35mm인데도 말이다.


여담이지만 요즘 새로 출시된 두 녀석이 마음을 어지간히 흔든다. LX-7의 후속기(사실 따져보면 완전히 달라졌다.)인 LX-100, 그리고 항상 나와 궁합이 맞지 않았던 캐논의 G7X다. LX시리즈를 제법 오래 사용을 했었기에 어쩌면 LX-100으로 넘어가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내 사진인생에서 늘 뭔가 나와 엇갈렸던 캐논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생각보다 크게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겠다. 뭐.. 직접 내 손에 오려면 내년은 훨씬 넘은 언젠가가 되겠지만 가끔은 이런 상상으로도 즐겁다.


Panasonic LX-7 & iPhone5s



'사진 이야기 > 여행 혹은 스케치' 카테고리의 다른 글

@Paris #2  (5) 2016.06.14
@Paris #1  (4) 2016.06.02
두륜산 대흥사, 2014년 여름  (12) 2014.08.31
팽목항, 100일 그리고 진도항  (9) 2014.08.02
기억이 머무는 곳을 따라 걸으며  (16) 2013.12.30

두륜산(대둔산)은 한반도 최남단에 자리잡은 산이라 한다. 해남에서 찾은 산이니 이보다 더 남쪽의 산이라면 한라산이 있겠지만 바다를 건너는 수고를 들여야 하니 온전히 걸음을 걸어서 만날 수 있는 마지막 산이라 불러도 어색함이 없다. 그 두륜산에 자리잡은 사찰이 바로 대흥사다. 예사롭지 않은 일주문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대흥사는 규모면에서 찾는 이를 압도한다. 보통 사찰을 떠올린다면 넓지 않은 터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불전들을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이곳 대흥사는 어디서부터 사찰의 시작인지조차 알기가 어려웠다. 오히려 그 덕분인지 사찰 경내를 걷는다는 느낌보다는 공원을 걷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사진의 돌에 '13대종사도량'이라 적혀 있다. 대흥사는 불교의 맥을 잇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인 사찰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서산대사가 이곳에서 후학들을 양성했다고 한다. 일주문을 지나 조금 걷다보면 서산대사를 비롯한 고승들의 부도가 자리한 '부도밭'을 만날 수 있는데 무려 54기라 하니 대흥사의 법력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대흥사에서 만날 수 있는 다채로움 중에 이 '연리근'은 유난히 우리의 관심을 끌었다. 가지가 이어진 '연리지'는 종종 만날 수 있지만 뿌리가 이어진 '연리근'은 희귀하기도 하고 연리지에 비해 더 끈끈하달까 좀 더 각별하달까..그런 느낌이 드는 나무였다. 이렇게 대흥사는 전각들 외에도 볼 거리들이 많은 것이 특별한 점인데 남도 여행을 하게 된다면 하루 정도 온전히 대흥사만을 위해 할애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이란 무엇일까 생각을 해 본다. 특히나 여행을 좋아하는 우리에게 여행은 각자의 삶의 연장인 동시에 두 사람의 삶이 마주치고 얽히는 그런 순간이었다. 오감으로 느끼는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참 대단한 일이 아닌가. 같은 길을 걷고 같은 풍경을 바라보면서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들이 어색하지 않고 부드러운 바람처럼 두 사람을 감싸고 있었기에 각별했던... 그런 모든 순간들의 이어짐. 그것이 우리의 여행이었다.


사진은 셔터버튼을 누르는 그 순간에 내가 느낀 감정을 온전하게 프레임 안에 담아낼 수 있으면 더할나위 없이 좋다. 뷰파인더 안에서 본 느낌이 나중에 집에 돌아와 모니터를 통해 그대로 느껴진다면 그것으로 한 번의 셔터가 움직인 수고로움은 모두 사라지는 셈이다. 사진에 대한 생각이 예전과는 약간 달라진 부분인데 세월이 지난다는 것은 그렇게 생각에도 변화를 주는 모양이다. 


예전에는 저 문을 열고 들어가야만 무언가 달라지고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 문을 열고 들어가 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굳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지 않더라도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저 문 뒤의 삶이 궁금하지 않게 됐다.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이라는 것을 이제사 깨달은 까닭이다.

그러고보니 35mm 렌즈 하나로 지낸 지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나고 있다. 사람마다 기준은 다르겠지만 내 경우는 28mm와 35mm가 가장 내 눈과 일치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화각이다. 35mm말고도 55mm가 하나 더 있지만 좀처럼 손이 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요즘은 표준화각대의 줌렌즈가 하나 더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는데 아마도 사람을 찍어야 할 일이 늘어났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Nikon D700, AF 35mm f/2.0


해남 여행의 시작은 두류산이었지만 그녀와 내가 들른 장소는 다름 아닌 팽목항이었다. 그녀도 나도 선뜻 가보자는 말을 하기 어려웠던 곳인데 마음이 통한 것인지 어느 새 차는 팽목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전까지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다니는 여행이었지만 진도대교를 건너면서 우리는 말이 없었다.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 비는 팽목항으로 접어들면서 제법 빗줄기를 만들어냈고 작은 우산 하나에 의지해 우리는 그곳을 걸었다.


차에서 내릴 때 카메라는 가져가지 않았다. 애초에 사진으로 기록을 남길 장소는 아니었던 까닭인데 진도항이라는 표지판과 풍경 너머 멀리 보이는 천막은 실례를 무릅쓰고 휴대폰에 담아왔다

세상의 관심이 멀어진 지금 가족들이 머물던 천막은 항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옮겨졌고 팽목항이라는 이름은 진도항(팽목항이라는 명칭은 작년에 진도항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을 기억하는 곳은 진도항이 아닌 팽목항이다)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예전의 교통의 요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진도항에서 팽목항으로 그리고 다시 진도항이 된 이곳은 하루하루 쌓여가는 시간의 조각들로 인해 점점 이전의 기억들은 묻혀져 가고 있었다. 

기억이란 장소에 새겨지기 마련이지만 그 장소가 시간의 힘을 이기지 못 하고 변해가면 그곳에 남아있던 기억 역시 아스라히 사라져가는 것 또한 사실이다. 

가족들의 천막을 지나 등대에 이르는 길을 걷는 동안에는 세월호의 쓰린 기억들이 주변을 꽉 채우고 있었지만 항에서 다른 지역으로 가기 위해 몰려든 차들이 줄을 지어 있는 도로에는 다시 번거로운 일상의 흔적들이 답답한 공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결국 언젠가는 세월호의 기억 위로 덧입혀진 일상의 번거로움이 이곳을 가득 메우겠지만 이제 막 100일이 지난 팽목항에는 아직도 아이들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가족들의 피눈물이 그대로 새겨져 있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