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여행의 시작은 두류산이었지만 그녀와 내가 들른 장소는 다름 아닌 팽목항이었다. 그녀도 나도 선뜻 가보자는 말을 하기 어려웠던 곳인데 마음이 통한 것인지 어느 새 차는 팽목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전까지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다니는 여행이었지만 진도대교를 건너면서 우리는 말이 없었다.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 비는 팽목항으로 접어들면서 제법 빗줄기를 만들어냈고 작은 우산 하나에 의지해 우리는 그곳을 걸었다.


차에서 내릴 때 카메라는 가져가지 않았다. 애초에 사진으로 기록을 남길 장소는 아니었던 까닭인데 진도항이라는 표지판과 풍경 너머 멀리 보이는 천막은 실례를 무릅쓰고 휴대폰에 담아왔다

세상의 관심이 멀어진 지금 가족들이 머물던 천막은 항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옮겨졌고 팽목항이라는 이름은 진도항(팽목항이라는 명칭은 작년에 진도항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을 기억하는 곳은 진도항이 아닌 팽목항이다)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예전의 교통의 요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진도항에서 팽목항으로 그리고 다시 진도항이 된 이곳은 하루하루 쌓여가는 시간의 조각들로 인해 점점 이전의 기억들은 묻혀져 가고 있었다. 

기억이란 장소에 새겨지기 마련이지만 그 장소가 시간의 힘을 이기지 못 하고 변해가면 그곳에 남아있던 기억 역시 아스라히 사라져가는 것 또한 사실이다. 

가족들의 천막을 지나 등대에 이르는 길을 걷는 동안에는 세월호의 쓰린 기억들이 주변을 꽉 채우고 있었지만 항에서 다른 지역으로 가기 위해 몰려든 차들이 줄을 지어 있는 도로에는 다시 번거로운 일상의 흔적들이 답답한 공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결국 언젠가는 세월호의 기억 위로 덧입혀진 일상의 번거로움이 이곳을 가득 메우겠지만 이제 막 100일이 지난 팽목항에는 아직도 아이들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가족들의 피눈물이 그대로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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