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만에 친구를 만났다. 정확하게는 97년 전역 후니 11년이 되었다.

이런저런 문제들로 고민이 제법 깊어지던 어느 날 낯선 번호의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대학 후배인데 혹시 학사장교 XX기가 아니세요?"로 시작된 전화는 처음 소위로 임관한 후 자대로 배치를 받았을 때 하루를 같이 보내고(나는 당일 수색대로 전출이 되었다) 중위 말년에 1년 정도 같이 군 생활을 한 동기 녀석이 간경화 말기라는 소식으로 이어졌다.

다음 날 바로 대구로 향했다. 대구는 장교 교육을 받던 94년 이후 첫 방문이다. 10여년 만에 본 동기의 얼굴은 황달기까지 돌아 초췌함 그 자체였다. "2주 안에 적당한 이식장기를 찾지 못하면 살기 어렵다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던가. 차라리 몰랐더라면 괜찮았을텐데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첫 마디가 바로 죽음을 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 대한 설명이었으니 오히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두 아이와 한 여자의 남편이기도 한 친구는 이제 일주일의 여유도 남지 않은 채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 있다. "너 RH-라며? 내 아들이 그 혈액형인데 혹시 무슨 일 생기면 수혈 좀 해줘"라며 아들의 전화번호를 불러주는 친구의 말에 전화번호를 메모하며 여전히 무슨 말을 해야할까 혼란스러운 마음이었다.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언젠가는 죽음을 마주해야할 필연을 가진 것이지만 그 시기를 모르기에 사람들은 오늘 하루를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자신의 수명이 언제 끝이 날지를 알게된다면 하루하루의 삶에 대해 대체 어떤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야할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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