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북한산둘레길을 걷고 있을 때 두 번정도 산의 유혹을 받은 적이 있었다. 한 번은 북한산이고 또 한 번은 사패산이다. 둘중 사패산을 먼저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지난 겨울 둘레길을 걸을 때 먼 발치에서 바라본 사패산의 느낌이 참 좋았기 때문이다. 사패산을 가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고 정상에 오르는 길도 몇 가지나 된다. 등산 초보인 내 입장에서는 그래도 수월한 길이 어디일까 찾아보다가 의정부 회룡역에서 출발하는 코스로 정하고 집을 나섰다.

사패산이라는 이름은 조선 선조 당시 6째 딸인 정휘옹주가 시집을 갈 때 하사한 산이라 하여 賜牌山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원래 이 지역에서 부르는 이름은 갓바위산, 삿갓산이었다고 한다. 북한산도 삼각산이라는 순 우리말 이름이 있는 것처럼 사패산도 이전의 이름을 찾아 부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지하철 1호선 회룡역에서 내려 15분 정도 걸으면 '회룡사'로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을 만날 수 있고 그 길을 따라 걸어들어가면 된다. 길을 조금 걷다보니 익숙한 표지판이 보인다. 1년여에 걸쳐 걸었던 북한산둘레길. 한 해를 정신적으로 버티게 해 준 힘이 되었던 그 길을 다시 만나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둘레길은 틈나는 대로 다시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사진이 작아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클릭하면 약간 커진다) 오늘 가게될 길은 회룡사를 지나 회룡사거리, 범골삼거리를 지나 사패산 정상에 이르는 코스다. 전체적으로 난이도가 높은 산은 아니지만 산에 오를 때는 늘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특히나 홀로 걷는 산행이라면 더더욱 한발한발 조심스럽게 내딛을 필요가 있다. 물론 빠르게 속전속결식으로 산에 오르는 분들도 있지만 나는 그저 거북이 스타일이다.


회룡탐방지원센터인데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아직 영업개시(?) 전이다. 이곳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북한산국립공원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몇 장 안 되지만 여기까지는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작은 화면으로 볼 때는 그래도 괜찮아보이더니 모니터로 옮겨오니 '영 아니올시다'라는 느낌이다. 뭔가 인화된 사진을 물에 담가둔 느낌같기도 하고... 아이폰으로도 사진을 잘 찍는 분들도 있던데.. 내 둔한 감각을 탓해본다.


어디 가서 길치라는 소리는 듣지 않는 편인데 산에만 오면 어디가 어딘지 아니 어느 봉우리가 무슨 산이고 지금 내가 있는 위치가 산의 어디쯤인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는다. 산행 경험이 적어서 그런가 싶기도 한데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것 중의 하나다. 아무튼 저기 뒤쪽으로 보이는 머리가 벗겨진 봉우리가 사패산 정상인가라고 추측만 해본다.


전에 만난 적이 있는 북한산둘레길 중 하나인 보루길이다. 보루길로 올라가면 사패산 보루들을 만날 수 있다.(이전 글 참조) 그렇다는 것은 보루길을 통해서도 사패산에 오를 수 있다는 셈인데 이전 글을 뒤적여보니 포대능선으로 향하는 표지판이 있는 것으로 보아 능선따라 죽 이어진 모양이다. 사실 사패산도 북한산 자락이니 어디로든 길은 이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길을 조금 더 가면 만날 수 있는 '사패공방'. 주인장은 안 계신지 조용했고 벽 쯤에 붙어 있는 문구가 참 마음에 들었다. 그러고보니 누군가를 기다려본 지도 제법 오래됐다. 기다림은 만남을 전제로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던가. 그래도 역시 누군가 만날 사람을 기다리는 일이 조금 더 행복하다. 머지 않아 나 역시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면 마음이 설레인다'라는 말을 건넬 수 있기를 바라며 걸음을 옮긴다.


이곳이 회룡골계곡인지 정확하지는 않다. 지도앱이라도 켜서 확인을 했어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이내 마음을 접었다. 산행은 그저 산과 내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거기에 다른 요소들을 끼워넣는게 내키지 않아서였다. 산을 걷는 것은 그 자체로 아날로그인데 굳이 거기에 인간 세계의 날카로움을 덧입힐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러면서도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것은 변명의 여지는 없지만...


사패산 등산코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안내도다. 내가 가는 길은 가운데에 있는 회룡사를 지나 위로 올라가 사패능선에서 우회전하는 코스다. 등산 정보를 찾아보니 4코스라고 한다. 사패능선 그러니까 회룡사거리에서 좌회전으로 하게 되면 포대능선을 지나 도봉산 자운봉으로 갈 수 있다. 언젠가 산행이 조금 더 익숙해지면 가 볼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하고 오늘은 사패산만 바라보고 올라가보자.


조금 더 올라가면 회룡사를 만날 수 있다. 부처님오신날이 막 지난 터라 아직 연등이 곳곳에 매달려 있다. 큰 행사가 끝나서인지 인적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혼자 돌아다니자니 어쩐지 어색해져서 사진만 살짝 찍고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보니 산에 있는 절에서는 점심 때 절밥을 준다는데 아직 먹어본 적은 없다. 하산할 때 이쪽으로 다시 돌아오면 혹시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이때까지는 생각을 했었다.


이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왼쪽으로 보이는 좁은 길이 등산로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산 정상만 목표로 하고 길을 나서본 적은 그리 많지 않다. 태백산, 인왕산, 청계산 정도가 아닐까? 물론 객기로 올랐었던 설악 대청봉도 있었지만 그건 도무지 산행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어서..(이전에 올린 글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아무튼 산행은 둘레길 걷기보다는 준비할 것들이 많다. 오늘은 스틱을 두고 왔는데 하산길에 생각하면 가져오는 것이 나았다.


산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돌탑(?)이다. 산을 오르는 이들의 작은 소원들을 모아놓은 돌무더기. 크고 높은 것들도 많지만 이렇게 앙증맞게 있는 것이 오히려 사람 냄새가 나서 좋다. 돌 하나를 주워 올려볼까 하다가 이내 그만 두었다. 누군가 올려 놓은 돌 위에 내 소원까지 올리면 소원을 이루어주는 분(?)에게 부담이 될까 싶어서다. 그냥 저 돌을 올린 분들의 소원만 이루어져도 충분하다.


산을 조금이라도 다녀온 분들은 아시겠지만 산에서 만나는 이정표의 거리는 진짜 별 의미가 없다. 단순히 사패능선까지 800미터다라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단 등산길은 꾸준한 오르막이고 사패산의 경우는 일직선에 가깝지만 어느 산들은 구불구불한 길들이 제법 많기도 하기 때문이다. 저 거리만 생각해서 등산이나 하산 혹은 휴식 계획을 세우면 낭패를 보기 쉬우니 페이스 조절을 잘 하도록 해야 한다. 나는 저런 표지판이 보이면 대충 곱하기 2를 해버린다. 사패능선까지 1.6km 남았다고 보고 간다는 말이다.


갈림길에서 내가 길을 잘못 든 지점이다. 양쪽 길 모두가 등산로처럼 되어 있어서 어느 길을 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이쪽 길로 접어들었는데 이길의 끝은 막다른 곳이다. 그럼에도 들머리는 제법 운치가 있었다. 표지판이 하나 있으면 어땠을까 싶지만 결과적으로는 없는 것이 나았다. 왜냐하면 이길의 끝에서 만나는 곳이 꽤나 멋진 곳이었기 때문이다.


골짜기 사이로 물이 흘러나오는 약수터 비슷한 것이 있었다. 약수터라고 하기에는 물이 고여있지 않으니 아닌 것 같지만 바가지가 있는 것으로 봐서는 물을 먹으라는 소리니 약수터가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물은 제법 시원하다. 요즘에는 산에 흐르는 물도 안심하고 마시기 어렵다지만 산행 중간에 만나는 물마저 외면해야 한다면 너무 인간미가 없는 것은 아닐까. 다만 바가지에 봄벌레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파이프를 들어 올려 한 모금 산의 느낌을 맛본다.


내가 좋아하는 산은 겨울산이지만 봄의 산도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 지난 겨울의 못 다 지워진 흔적들과 다가오는 여름을 미리 알리는 징조들이 섞인 느낌인데 이도저도 아닐 수도 있지만 그 또한 봄의 산이 주는 매력이다. 요즘은 봄이 워낙 짧아 봄의 산을 느끼려면 4월말에서 5월초 정도가 적당하다. 그전은 겨울의 느낌이 강하고 그 후는 여름의 느낌이 강한 까닭이다. 사실 엄밀히 따지만 오늘도 입하가 지났으니 이미 여름인 셈이지만...


이쪽 계곡에는 물이 전혀 흐르지 않는다. 아마도 여름이 오고 비가 내리면 이 계곡에도 물이 흐를 것 같은데 다른 계절을 겪어보질 않아서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겠다. 여름에 다시 한 번 와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이다. 사패산은 북한산국립공원 안에서도 가장 자연림이 보존이 잘 되어 있다고 한다. 확실히 나무들이 어느 곳보다 울창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는데 곳곳에 짙에 깔린 이끼들을 보면 이 산이 얼마나 깨끗한지 알 수 있다.


산에 오를 때는 가능하면 작은 것들을 좀 더 많이 보려고 노력한다. 정상에 오르는 것은 그런 걸음의 결과일 뿐이지 끝까지 오르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무작정 정상에만 오를 생각으로 급하게 산을 오르다보면 그 중간에 있는 수많은 이야깃거리들을 그냥 지나쳐버리게 된다. 산이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정상에만 있지 않다. 그 많은 것들을 버리고 끝에 있는 하나의 이야기만 들으려하는 것은 인간의 오만함은 아닐까?


경사가 급해지는 것을 보니 사패능선에 거의 다 와가는 모양이다. 둘레길을 걸을 때도 그랬지만 역시나 별 다른 식량(?)준비를 해가지 않는 탓에 여기쯤 오니 제법 숨이 차다. 준비를 잘 해야 한다고 이야기는 잘 하면서 정작 나는 제대로 준비를 안 한 셈이다. 혼자 하는 산행이다보니 이것저것 챙기는 것이 번거롭다고 스스로 변명도 해보지만 그대로 짊어지고 돌아가게 되더라도 최소한의 먹거리는 챙겨와야 한다.


사패능선 그러니까 회룡사거리인데 이곳에서 만나는 표지판은 자운봉과 사패산이 정반대의 거리에 있음을 알려준다. 거리가 만만해보이지만 위에서 적은 것처럼 저 숫자에 곱하기 2를 해보면 어느 곳도 만만하지가 않다. 표지판을 가만히 보니 자운봉은 '봉'이고 사패산은 '산'이다. 이건 산의 규모에서 오는 차이인데 사패산은 여러 봉우리들이 없는 반면에 도봉산은 자운봉, 만장봉, 선인봉 등 여러 봉우리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도봉산의 주봉은 자운봉이다.


능선길은 거의 평지도 되어 있어 걷기가 어렵지 않다. 다만 가림막이 없다보니 바람을 있는 그대로 맞기 때문에 제법 쌀쌀한 느낌이다. 아마 겨울에 이곳에 왔다면 이쯤에서 바람막이 정도는 입어야 체온유지가 되지 싶다. 물론 여름에도 올라오는 동안 땀이 많이 흘렀기 때문에 능선에 오르면 순간적으로 춥게 느껴질 수 있으니 바람막이는 사시사철 배낭 안 구석에 넣고 다니는 것이 좋다.


사패산은 흔히 말하는 꼴딱고개는 없다고 봐도 좋을 것 같지만 사패능선에 도착하기 바로 직전 그리고 이 계단과 이어 등장하는 바위들에서는 체력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것이 좋다. 이 계단은 갯수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촘촘하게 이어져 있기 때문에 두 칸씩 성큼성큼 올라가기 보다는 한칸씩 천천히 올라가는 것이 좋다.


그리고 정상 부근의 바위인데 여기는 경사에 비해 어렵지는 않지만 일방통행 코스로 되어 있기 때문에 오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오늘 신고간 신발은 바위적응형 등산화는 아니어서 약간 미끄러웠는데 바위 위에 흙 등이 있는 경우는 특히 조심하자. 바위에 척척 달라붙는 등산화가 아니라면(물론 붙어도 마찬가지지만) 무리는 금물인 지점이다.


정상에 오르면 평평한 모습의 작은 운동장 같은 느낌이 드는데 계절마다 그리고 날마다 다르겠지만 오늘은 바람이 제법 강하게 불었다. 정상의 경우는 바람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특히 조심할 필요가 있는데 사패산 정상은 그냥 통바위들이 듬성듬성 연결된 형태이고 조금 내려가면 경치가 더 잘보이기 때문에 별 생각없이 아래 쪽 바위로 향하게 되는데 바위 끝이 아무 것도 없이 바로 절벽으로 이어지므로 조심하도록 하자.


바위 끝 쯤에서 내려다보면 이런 모습이다. 조금 더 자세히 보겠다고 앞으로 내려가지 않도록 하자. 사실 조금 더 간다고 해서 뭐가 더 잘 보이는 것도 아니다. 정상에서 장비를 다시 점검하고 하산을 준비한다. 원래는 올라온 길로 내려갈 생각이었는데 이전 둘레길의 기억이 떠올라 다른 방향으로 진로를 잡아본다. 하산길은 거의 사진이 없는데 내려갈 준비를 하면서 카메라를 배낭에 넣어버렸기 때문이다. 이건 내 습관이라면 습관인데 등산보다 하산길이 좀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산의 방향은 원각사 쪽으로 정했다. 이곳으로 내려가면 상당히 빠른 시간에 하산이 가능한데 문제는 교통편이 별로 좋지 않다는 점이 하나고 길이 약간 험하다는 게 또 하나의 문제다. 보통 폭포가 있는 루트는 길이 험하다고 하는데 예전에 북한산에서 한 번 제대로 고생을 해본지라 고민을 조금 하긴 했지만 일단 내려가보기로 한다. 여기서부터는 다시 아이폰으로 촬영.


세월이 계단을 만들었다. 이 나무는 얼마나 많은 이들의 걸음을 지탱하며 살아왔을까 한참 바라본다. 그리고 그 걸음에도 이 나무는 여전히 이곳에 버티고 서 있다. 이 길을 지나려면 이 나무를 밟지 않으면 안 되고 그 고통 속에서 나무는 점점 더 단단해졌으리라. 사람도 역경을 이겨내면 강하진다고 말을 하는데 요즘은 그말이 그렇게 신뢰가 가지는 않는다. 역경 안에서 오히려 가라앉는 모습을 더 많이 봐서일까.. 결국 모든 것은 사람 나름이다.


원각사 길을 선택한 이유는 바로 이곳에 있다. 내가 사패산에 올라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된 곳. 산너미길로 오는 길에 먼발치에서 바라본 사패산이 그리도 정겨워 보여서 이길을 걷던 날 사패산에 오르겠다고 약속을 했었다. 그리고 1년 하고도 몇 개월이 지나 나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곳에서 사패산의 정상을 다시 바라봤다. 지난 겨울의 약속을 이제야 지켰다고 산에게 이야기 해 주었다.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시간이 지나 나를 둘러싼 많은 것들이 변했어도 여전히 산은 그 자리에 서서 내가 다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기다림이란 만남을 전제로 할 때 그 의미가 더 큰 것 같다. 그리고 산은 내가 그 초입에서 산을 바라볼 때 그 모습 그대로 내가 그를 떠나는 순간에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Nikon D700, AF 35mm f/2.0D & iPhone 5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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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522미터인 사패산은 '강북5산'이라 불리는 '불수사도북' 그러니까 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의 하나로 난이도는 그리 어렵지 않은 편에 속한다고 한다. 이 부분을 인용한 것은 다른 산을 올라본 적이 없어서 내 판단기준이 없기 때문인데.. 나중에 내 기준에서 느낌은 다시 적어보겠다. 아무튼 오늘 오른 코스는 지하철 1호선 회룡역에서 출발해 회룡사를 거쳐 사패능선을 통해 정상에 오른 다음 원각사 방향으로 하산해 송추에서 버스를 타고 구파발역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대략 전체 이동 경로는 위 사진과 같은데 평소 걸음은 빠른 편이지만 산행은 최대한 느릿느릿 가는 편이라 전체 소요시간은 3시간 20분, 이동거리는 8.2km였다. 하산 후 교통편은 하산한 지점에서 바로 건널목을 건넌 다음 34번이나 360번을 타면 구파발역으로 갈 수 있으니 그곳에서 지하철을 이용하면 된다.



새벽 4시 50분, 세상이 깨어나기에는 약간 이른 시간 집을 나선다. 왜 태백에 가려고 했는지 뚜렷한 이유는 없었다. 비우고 싶다는 생각이 우선이었고 차가운 바람을 좀 맞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달까. 


시외버스를 타고 태백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려 유일사행 버스로 갈아탄다. 예전에 올랐던 코스와 반대로 걷는다. 1년 전에 이곳을 지나며 남겼던 발자국과 기억들을 홀로 걸으며 하나 둘 떠올려 보고 또 그렇게 지워나간다. 조금은 가라앉은 기분으로 산행을 하게 된 것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언젠가는 거쳐야할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천천히 발길을 옮겨본다. 유일사 입구는 어느 산악회인지 단체로 와서 줄을 서서 올라가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바위 위에 나무가 자란다. 생명력이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살아있다는 것에 새삼 감사하게 된다. 비록 유한한 삶이지만 그 살아가는 동안에 적어도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가족이 있다면 그 가족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스스로의 삶을 온전하게 지켜가는 일이다. 자신을 우선 지키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유일사에서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제법 가파른 오르막의 연속이고 사방이 막혀있어서 경치를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어느 정도 올라가면 서서히 주변이 밝아지며 산의 웅장함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순간이 온다. 그래서 한 걸음 한 걸음이 소중하다. 앞으로 걷지 않으면 아무 것도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주목 군락지에 다다랐지만 아쉽게도 눈꽃은 피지 않았다. 내심 지난 날에 눈이 내려 눈꽃을 기대했지만 고고하게 서 있는 나무들은 가지 위에 눈이 쌓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슬슬 칼바람이 불어 온다. 머릿속이 하얗게 될 정도로 차고 강한 바람. 그 바람에 그냥 기대본다. 발 아래로는 어디가 끝인지 모를 긴 산자락이 펼쳐져 있다. 


역시 태백산은 설경이 제맛이다. 눈이 이렇게 아름답다는 것에 그저 감탄할 따름이다. 새벽같이 일어나 집을 나온 피로도 이곳에 이르면 느껴지지 않는다. 올라오는 동안 숨을 헐떡이며 내뱉었던 땀방울들도 찬바람에 날아가 버리고 이곳 민족의 영산이라 불리는 태백산 정상에서는 그저 바람 소리만 거세게 들려올뿐이었다. 


좁고 급경사인 길을 올라오니 이런 넓은 공간이 있다는 게 참 신기할 정도. 여기서부터는 거의 평지로 이동하게 된다. 날이 제법 맑아서 눈에 반사되는 햇살이 강하다. 손을 내밀어 만져본 눈은 도시의 그것보다 훨씬 차갑고 투명한 느낌이 든다. 분명 같은 눈인데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이렇게 다르다. 이곳의 눈은 그냥 집어 입에 넣어도 괜찮을 것같다.


아마 눈이 없었다면 나무들이 을씨년스러운 느낌을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견딘다는 주목. 내가 보고 있는 이 나무들은 어느 천년의 흔적들일까 한참 바라본다. 천 년이라는 세월동안 나무들은 얼마나 많은 바람을 맞고 또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았을까. 그 세월동안 나무들은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모두 견뎌온 것이다. 인고의 세월. 태백의 주목이 살아온 시간은 그런 것은 아닐까.


그래서인지 나무들이 내밀고 있는 가지의 방향이며 모양은 우리의 상상을 넘어선다. 애초에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의 단위를 넘어선 것이고 나무들에게 내가 지금 바라보는 이 순간은 정말 찰라도 아닌 짧은 순간일테니 지금 내 눈으로 보는 나무의 모습은 그저 오묘하고 신기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저 나무들은 이곳에 서서 세월의 바람을 견디어 나갈테지..


여기쯤 오면 사람들의 흔적이 제법 줄어든다. 올라갈 때 그렇게 북적이던 사람들이 얼마 남지 않은 천제단으로 서둘러 이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풍경을 놓치고 빨리 정상에 오른다한들 아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 산행을 하다보면 무조건 빨리빨리 정상에만 이르는 것에 집중하는 이들을 보게 되는데 그 사람의 취향이니 뭐라 할 것은 아니지만 빨리 오르면 빨리 내려가야 하는 법이다. 힘들여 멀리까지 와서 눈만 돌리면 볼 수 있는 장관을 그냥 지나쳐버리는 것은 조금 안타깝다.


그리고 도착한 천제단 중의 하나인 장군단이다. 이 제단은 보존 상태가 조금 열악하고 규모도 작아 사람들이 몰리는 곳은 아닌데 내게는 태백산의 기억의 정점에 이른 곳이기도 하다. 한참을 이곳에 머문다. 


이 표지석은 기존에는 없던 것인데 작년 9월에 이곳에 새로 세워진 것이다. 1년만에 다시 찾은 태백의 정상에서 마주치게 된 유일하게 달라진 풍경은 이 표지석이었다. 백두대간의 중추이며 민족의 영산이라 불리는 태백산은 우리나라의 12개의 명산 중의 하나로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는 의미가 큰 산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 태백의 정기를 받는다는 표현을 많이들 쓰는데 오늘 산행에서 정기를 받았을지 아니면 정기를 산에 나누어 주었을지는 감이 오지 않았다.


멀리 보이는 천왕단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태백산 사진에 자주 등장하는 모습인데 정상에 눈꽃이 피지 않아 극적인 느낌은 적었지만 나름 사람들이 걸어가는 모습이 멋드러져 보인다. 산이란 하루에도 수십 번 날씨가 변화하는지라 어느 방향에서 하늘을 바라보면 푸른물이 떨어질 정도로 새파랗지만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면 당장이라도 뭔가 내릴 것처럼 어둡기도 하다. 내심 눈이라도 내리길 바랐지만...


어지간해서 이 표지석을 제대로 찍기란 불가능하다.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제법 많았고 이 표지석 앞에는 늘 사진을 남기려는 사람들이 끊이질 않기 때문에 이리저리 카메라를 돌려 최대한 사람이 안 보이는 시점에 찍어야 하는게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 아닌가 싶은데...표지석 위에는 사람들이 뭔가를 남기고 간 흔적이 조금은 흉물스럽게 남아있다. 자기들이야 떠나면 그뿐이지만 앞으로 수 천년의 세월을 이곳을 지켜야할 돌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은 아니지 싶다.


여기서 한 번 고민을 한다. 문수봉까지 갈 것이냐 말 것이냐인데 오늘의 이동이 상당히 치밀한 동선을 따라 움직이는 지라 아직 가 보지 않은 문수봉을 거칠 경우 차 시간이 어찌될지 몰라 일단 오늘은 생각을 접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내려가보니 차 시간까지 20여 분 정도 여유가 있었는데 다음에 올라온다면 문수봉을 거치는 코스로 이동해볼 생각이다. 아마도 내년 겨울이 되어야겠지만...


당골로 하산하는 코스에서 단종비각을 마주칠 수 있다. 역사의 지난 끈들. 당사자들은 이미 없고 기억의 흔적조차 사라진 지금이지만 세월 속에 당시의 장면들은 이렇게 남아 오가는 이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우리네 삶 역시 언젠가 그 끝에 이르러 우리와 우리를 기억하는 이들조차 사라지겠지만 우리가 남겨 놓은 흔적들은 조각조각일지라도 여전히 남아 누군가 우리를 기억하게 해 줄 끈으로 남아있을 것을 생각하면 뭔가 마음이 애잔해지는 느낌도 든다.


용정의 물은 예나 지금이나 마셔볼 기회가 없다. 이곳을 찾을 때면 언제나 얼어있기 때문인데 용정의 물을 한 모금 마시기 위해서라도 눈이 내리지 않는 계절에 이곳을 다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라도 이유를 하나 만들어두면 된다. 그 이유가 비록 나에게만 해당되는 사소한 것일지라도 그것만으로도 내몸을 움직여 다시 태백을 찾기에 충분할 테니 말이다.


그리고 휴게소 바닥에 아무렇게나 앉아 먹는 사발면 한 그릇. 늘 그렇듯이 나는 산행을 할 때 무엇을 먹지 않는 나쁜 버릇이 있다. 물 한 통이나 이온 음료 한 통이 전부인데 습관치고는 몸을 꾸준히 움직여야 하는 산행에서는 좋지 않은 것이다. 아마도 예전에 운전을 할 때의 습관이 산행에 그대로 옮겨온 모양이다. 하지만 오늘은 어느 층계참에 앉아 멀리 산을 보며 라면을 먹는다. 다 내주었으니 이제 채우고 가야 한다는 생각이었을까. 뭔가 짠한 마음이 들어 라면을 먹는지 다른 무엇을 먹는지 모르고 먹는다. 하얀 수증기가 안경을 온통 뿌옇게 만든다.


하산길은 조금은 지루한 내리막의 연속이다. 이 사진에는 나도 나와있다. 이렇게 어느 겨울 날의 태백산에 내 그림자를 찍어 두었다. 해가 뜨면 이 길가에 내 그림자는 깨어나고 해가 지면 깊은 잠에 빠져들며 앞으로 남아 있는 시간들을 기억하겠지. 그리고 돌아서서 내려오는 길에 내 마음의 한 조각을 떼어 그림자의 주머니에 넣어 준다. 잘 간직하고 있으라고 말하면서...


"아직 만나지 못한 내 그리움을 찾으러" 나뭇가지에 묶여 있는 작은 천조각에 쓰인 글을 보고 또 본다. 오늘 내가 태백에 온 것은 이것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산행에서는 그 산행을 나 스스로에게 납득시킬 수 있는 이유가 불현듯 찾아지기도 한다. 기억을 지우려..라는 조금 엇갈린 이유로 집을 나섰지만 결국 내가 이곳을 찾은 것은 아직 만나지 못한 내 그리움때문이었다. 그 그리움의 대상이 무엇인지 혹은 누구인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그저 저 글귀를 보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것이면 됐다.


그리고 다시 도시로 내려왔다. 짧고도 또 짧은 하루였다.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서 자정이 가까울 무렵 다시 집에 들어갔음에도 오늘 하루는 내게 너무나 짧았다. 


오늘 글은 산행기라 하기보다는 하루의 일기같은 느낌이다. 

하루의 일기라 하기보다는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는 해묵은 일기장같은 느낌이다.

해묵은 일기장이라 하기보다는 아직 만나지 못한 그리움을 찾아 떠나야 할 도착하지 않은 기차 시간표 같은 느낌이다.


Nikon D700, AF Nikkor 35mm f2D, Panasonic LX5



올해를 마감하는 날. 어디를 올라가볼까 생각을 했다. 원래는 북한산을 오를까 했는데 왠지 마음이 남쪽으로 향해 청계산으로 발길을 돌렸다. 

청계산은 높이 618 m이며 주봉인 망경대(望景臺)를 비롯하여 옥녀봉(玉女峰) ·청계봉(582 m)·이수봉(二壽峰) 등의 여러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이수봉은 무오사화(戊午士禍)에 연루된 정여창이 이곳에 숨어 위기를 두번이나 모면하였다고 지어진 이름이다. 서쪽에 관악산(冠岳山), 남쪽에 국사봉(國思峰)이 솟아 있으며, 이들 연봉과 더불어 서울의 남쪽 방벽을 이룬다. 남북방향으로 뻗어 있는 능선은 비탈면이 비교적 완만하며 산세도 수려하다. 서울 근교에 위치한데다 서쪽 기슭에 서울대공원을 안고 있어 하이킹 코스로 찾고 있다. 정상인 망경대는 출입이 통제되어 있어 북쪽의 청계봉이 정상을 대신하고 있다. 남서쪽 중턱에는 신라 때에 창건된 청계사가 있고, 동쪽 기슭에는 경부고속도로가 동남방향으로 지난다. -출처 두산대백과 사전


청계산도 오르는 코스가 제법 많은데 보통 매봉까지 많이 가는 편이다. 오늘은 옥녀봉에 들러 매봉까지만 가보기로 했다. 만경대와 이수봉은 미뤄두어도 괜찮다. 흔히 산에 오를 때 봉우리를 많이 정복한다던가 얼마나 빨리 올랐다던가 하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는데 그렇게 한번에 다 올라가 버리거나 마치 달리기를 하듯이 산을 오르는 것은 어쩐지 나와는 어울리지 않다 싶다. 산이 줄 수 있는 것들은 가능한 많이 받아오려면 천천히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며 걸어야하지 않을까...

북한산둘레길에 대한 글을 쓸 때도 그렇고 이전의 산에 대한 글을 쓸 때도 거리와 시간이 적힌 도표를 올리곤 했는데 이제사 생각해보니 그런 숫자에 얽매어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이 된다. 물론 그 자료들이 후에 비슷한 곳을 가는 이들이나 나 자신에게 참고자료가 될 수는 있겠지만 자칫 그 수치에 연연하며 정작 보고 듣고 느껴야할 것들을 잃고 있지는 않았었는지 아쉬운 마음이다. 일단 이번 글에서는 거리, 시간이 적힌 도표는 한번 빼보기로 한다.


등산로 입구에서 간단하게 정비를 하고 길게 난 길을 천천히 걷는 것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역시 산은 눈에 덮혀 있을 때 제맛이 난다. 발 아래로 들려오는 뽀드득 소리, 스틱이 눈에 미끄러지는 소리...그렇게 눈이 만들어내는 소리와 겨울이 주는 차가운 바람의 향기에 취해 천천히 길을 가 본다. 오늘은 오랜만에 메인 카메라를 들고 나왔다. 겨울에 이 녀석을 들고 다니는 것은 꽤나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서울 날씨가 올해 들어 가장 추운 상황에서 믿을 것은 역시 이 녀석뿐이다.


사람들이 주로 가는 매봉으로 가는 길도 제법 많다. 하지만 일단은 옥녀봉에 갈 생각이다. 왠지 하얀 소복을 입은 처자가 '서방님 어서 옵소서'라고 부르는 것같은 느낌이 들어서인데 정말 그런 처자를 만나게 되면 이미 이 세상 사람은 아닐테니...


청계산은 서울에서 접근성이 워낙 좋고 연예인들이 자주 출몰한다하여 남녀노소가 자주 찾는 산이다. 산세가 그리 험한 편도 아니고 길도 잘 나 있어서 그렇겠지만 역시 간밤의 눈은 이미 여러 등산객들의 발자국을 따라 잘 다녀진 후였다. 겨울 산행이 매력적인 이유는 역시 눈이다. 눈 내린 산을 걷는 느낌은 참 무엇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가 막히달까


청계산에도 진달래 능선이 있다. 조금 더 위로 올라가면 개나리 능선도 있는데 주변에 그 꽃들이 많이 피기때문에 그런 이름을 지어주었지 싶다. 물론 겨울이니 진달래꽃 만발한 풍경은 볼 수 없지만 대신 눈꽃이 핀 것을 볼 수 있으니 나무 위에 쌓인 눈꽃들을 때로는 진달래로 때로는 개나리로 생각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사람들이 많이 다녔다고는 하지만 계단들은 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눈에 푹 파묻혀 있다. 겨울 산행에는 스틱(콩글리쉬라 한다)을 꼭 가져가는 것이 좋은데 눈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눈으로만 봐서는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스틱은 미끄러짐을 예방하는데 아주 중요한 수단이다. 오늘도 여러 번 넘어질뻔 했는데 스틱을 부여잡고 버텼다. 물론 대신 손에 가해지는 무리는 어쩔 수 없지만...


진달래의 어원은 이렇다. 피맺힌 슬픔이 꽃잎에 닿아 붉은 색이 되었다는 것. 이별의 한이 어느 정도이면 피눈물이 날 수 있을지 상상하기도 어렵다. 그러고보면 우리 설화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참 많이 있다. 망부석 설화도 그렇고 대부분 이별을 겪은 여인들의 한이다. 왜 우리 여인들은 그리도 한이 많았을까.


능선길은 역시 바람이 차다. 안경을 쓴 탓에 뭔가 얼굴에 쓰면 안경이 온통 뿌옇게 되는 까닭에 그냥 귀만 가리고 걷는다. 두툼한 겨울용 잠바는 이미 배낭 안에 들어있기 때문에 얼굴을 바람으로부터 막을 대책이 없다. 마스크를 쓰고 고글을 끼면 된다고도 하는데 안경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겨울 산행의 특색이기도 하다. 


진달래능선을 타고 옥녀봉으로 이르는 길은 아주 무난하다. 게다가 천천히 걸으면 땀이 날 틈도 없다. 오히려 찬바람을 어찌 피할까 고민을 하다보면 어느새 정상에 이르게 된다. 산행이 부담스럽거나 처음 가보는 경우라면 옥녀봉만 간단히 둘러 보고 내려오는 것도 괜찮다. 무난한 길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아주 짧은 길은 아니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거나 산책을 하기에 적당하다.


능선에서 바라본 양재쪽 전망. 35mm렌즈는 참 편하기도 하면서 어떤 때는 애매하기도 한 화각인데 보통 사람이 두 눈을 뜨고 바라보는 각도가 대충 35mm렌즈와 비슷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렇게 넓게 펼쳐진 풍경을 접하게 되면 뭔가 부족해보인다. 실제로 보이는 것은 사진보다는 가깝고 넓기 때문인데 그런 화각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어떤 렌즈도 사람 눈보다 나을 수는 없으니까..


나 다시 진달래로 피어 그대 가슴으로 스몄으면, 나 다시 진달래로 피어 그대 타는 가슴으로 스몄으면... 작사가들은 시인들 못지 않다. 거기에 음악까지 어우러지면 감정의 전달은 몇배가 된다. 겨울산에서 빨갛게 물든 진달래를 떠올릴 수 있게 만든 그런 가사였다. 


산에 오르는 목적이 정상에 다다르기 위함은 분명 아니지만 정상이란 한번 숨을 고를 수 있는 그런 여유를 주는 곳이다. 오를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다는 표현으로 인생을 등산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살아간다는 것이 그렇게 정상이 있고 바닥이 있고 하는 식으로 구분지어지지는 않는다고 생각된다. 굳이 산행을 인생에 비유하기보다는 걸음걸음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어느 소원들이 쌓여 저렇게 돌탑이 되었나. 아니면 다른 무엇을 기리기 위한 것일까. 오늘 돌아본 코스 중에 유일하게 만난 돌탑이었는데 쌓인 폼이 예사롭지 않다. 저 돌을 쌓은 사람은 이미 이곳에 없지만 그 사람이 남긴 감정이랄까 그런 느낌은 여전히 이곳을 맴돌고 있었다. 그 바람은 이루어졌을까? 아니면 영원한 꿈으로 남아 있을까?


다른 나무들과 떨어져 눈밭에 나무 하나가 던져진 듯이 자라고 있다. 조금 더 가까이서 사진에 담았다면 큰 나무라 해도 손색이 없겠지만 실제로 이 녀석은 아주 작아 눈에 잘 띄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줄기며 가지며 무엇 하나 큰 나무들에 비해 손색이 없다. 이 추운 겨울날을 온전히 몸으로 받아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존재일지라도


옥녀봉 정상에서 보이는 과천 방향. 저 멀리 관악산이 보인다. 이렇게 보니 꽤 웅장하다. 오늘 관악산에 오른 분들도 제법 많겠지 싶다. 사진에는 잘 안 보이는데 아래 쪽으로 경마장이 보인다. 경마장은 전에 연애할 때 한번 가봤는데 돈을 쓰지 않을 생각이라면 꽤 괜찮은 데이트 코스다. 물론 지독한 담배연기는 감수해야 하는데... 경마장도 금연이 추진될까?


온길을 되돌아 이제 매봉으로 향한다. 옥녀봉 쪽에서 매봉으로 가려면 가장 빠른 길은 역시 이길인데 지도에서 깔딱고개라고 부르는 곳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깔딱고개와는 아주 다르게 생겼다. 계단이 전체적으로 한 1,500개 정도 되는 것같다. 올라갈 때는 괜찮은데 하산길로는 이길은 택하지 않는 편이 좋다. 무릎에 무리가 많이 가고 저렇게 눈이 쌓인 계단은 아이젠이 없으면 넘어지기 십상이다.


계단마다 번호를 적어두었다. 이렇게 번호가 적혀 있으면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사람들은 기운이 나기보다는 힘이 더 든다. 게다가 위를 올려다봐도 계속 계단만 있다면 약간 막막한 느낌도 든다. 하지만 청계산의 이 구간은 그리 길지 않기 때문에 숨이 넘어갈 정도의 깔딱고개라고 하기는 약간 어색하다. 설악산 오색약수쪽 계단 정도 되면 '아, 이거 보통 일은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지만...


길은 계단과 약간의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서초구에서는 인체공학적 설계를 한 계단이라고 강조를 하고 있는데 내 몸이 이상한 건지 그렇게 강조가 된 계단은 오르기가 더 어려웠다. 오르는 계단은 다리 힘보다는 팔 힘으로 올라가야 피로가 덜 하다. 오늘은 SLR을 가져와서 목에 매고 다녔던지라 양손이 비교적 자유로워 스틱을 제대로 활용했다.


이 정도 오면 거의 다 와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청계산의 정기를 준다는 바위인데 누구 생각인지 참 기가 막히게 이름을 붙여놨다. 덕분에 저기 조금 서 있으면 사람들이 저 틈 사이로 부지런히 빙빙 도는 것을 볼 수 있다. 많이 돌 수록 정기를 많이 받는 모양인지 4-5번 도는 처자분도 있었다. 기가 많이 부족해 보이는 얼굴이긴 했지만...


매봉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이른 아침에도 제법 많은 이들이 이쪽 코스로 오르고 있었다. 겨울 산행의 잔재 중의 하나는 다른 분들이 입고 온 옷이나 신고 온 신발 메고 온 배낭 등을 관찰하는 것. 청계산은 다른 산에 비해 오르기가 어렵지 않아 등산화를 신지 않고 운동화만으로 오르는 분들도 제법 많다. 다른 계절에는 괜찮겠지만 겨울 특히 눈 내린 날이라면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이제 거의 막바지다. 이곳을 오르면 매바위를 만날 수 있다. 사실 매봉보다 매바위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더 좋다. 오늘은 비교적 맑은 날이어서 제법 멀리 보이지 않을까 생각을 하면서 오른다. 사람들이 없는 틈을 노려 사진을 찍으려다 보니 제법 멈추는 시간이 많아서인지 그렇게 힘이 들지는 않았던 산행이었다. 나와 비슷하게 가던 오리털 패딩으로 무장한 어느 분은 결국 쉼터에서 얼굴이 시뻘개져서 숨을 몰아쉬고 있었는데 땀이 죽죽 흘러내리는 상황에서 패딩을 입고 걸어가는 것은 정말이지 말리고 싶다.


청계산 매바위. 해발 578미터다. 이 바위는 제법 위가 널찍해서 여러 명이 올라가도 넉넉하다. 정면으로 뻥 뚫려있어서 아주 경치가 좋은데 생각보다 시야가 아주 멀리까지 보이지는 않아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속이 시원해질 정도로 멋진 경치를 볼 수 있는 장소다. 매봉은 이곳에서 100미터만 더 이동하면 되는데 매봉에 도착하면 사람들로 북적이기 때문에 정비할 것이 있다면 이곳에서 하는 것이 좋다.


매바위에서 바라본 전망이다. 이 사진은 파노라마로 붙여서 만든 사진이니 눌러서 크게 보면 된다. 아무래도 여러 장을 붙여서 만들다보니 이미지 정보의 손실이 큰 것이 아쉬운데 원본 파노라마는 제법 웅장하고 세밀한 맛도 있지만 이곳에 올리기에는 20메가나 되어 아무래도 무리다. 1280 해상도로 변경해봤다. 


그리고 청계산 매봉이다. 이곳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역시 산 정상에서 볼 수 있는 음주 문화가 여지 없이 벌어지고 있어 아쉬운 생각이다. 왜 산과 술이 연결이 되는지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지만 그것이 그 사람들의 산을 즐기는 방식이라면 달리 뭐라 할 여지는 없다. 다만 음주로 인해 다른 이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매봉에는 사람들이 많아 표지석만 따로 찍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몇몇 분 얼굴은 모자이크를 해서 올려본다.

이렇게 올 한해를 마무리했다. 잃은 것이 있는만큼 얻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인생은 제로섬이고 올 한해만으로 봐도 역시 그렇다. 잃고 얻은 것을 정확하게 하나하나 그 가치를 비교할 수는 물론 없는 일이지만 1년이라는 하나의 틀에서 보면 모든 것은 마치 아무 것도 없었던 것과 같은 상태로 돌아간 것이다. 그러니 서운해할 이유도 없고 기뻐할 이유도 없다. 냉정하게 생각될 수도 있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인생 역시 무수한 얻음과 잃음 속에서 결국은 시작하던 때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다음 산행은 어디로 할까 생각을 한다. 같은 자연이지만 산마다 주는 기운은 정말 다르기에 가능한 많은 곳을 그리고 여러 방법으로 다녀보고 싶다. 

그나저나 3년 전에 구입한 등산화가 슬슬 기능(고어텍스)이 다 했나 보다. 산에 간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던 시절에 메이커만 보고 덥썩 집어온 녀석인데 어느 새 정이 들어 구석에 놓여 있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짠하기도 하다. 기능성은 비록 점점 사라져 가지만 발에는 점점 더 익숙해져 간다. 어찌 보면 모순같은 일인데  물에 빠지지 않게만 조심하면 몇 년은 더 내 발이 되어주지 않을까 싶다.


Nikon D700, AF Nikkor 35mm f2D 






1905년 11월 17일 정확하게는 11월 18일 새벽 1시경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이 들어 있을 무렵 광무황제(이하 고종황제)의 처절한 외침을 뒤로 하고 일본의 주한공사 하야시 곤스케와 대한제국 외부대신 박제순이 한 장의 종이에 서명을 하고 도장을 찍는다. 우리가 을사조약, 을사보호조약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을사늑약은 이렇게 황제의 승인도 없는 가운데 을사오적이라 불리는 친일파들의 손에 의해 처리되고 이 늑약을 시작으로 500년을 이어온 조선 그리고 대한제국은 종말로 치닫게 된다. 이 조약 이후 대한제국은 모든 외교권을 상실하게 되고 일본의 식민지로 빠르게 편입되는 과정을 겪게 된다. 


이 치욕적인 역사가 만들어진 장소가 바로 이곳 덕수궁 중명전이다. 중명전은 한자로 重明殿이라 적는데 '광명이 계속 이어져 그치지 않는 전각'이라는 뜻이다. 중명전이 세워진 것은 1897년으로 바로 대한제국이 성립된 해기도 하다. 러시아인 사바찐에 의해 설계된 서양식 건물로 당시에는 황실도서관의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중명전이 우리 근대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제법 크다. 을사늑약이 강제되었고 고종황제에 의해 헤이그 특사가 파견된 장소이며 영친왕이 황태자로 책봉된 장소기 때문이다.

이 역사적인 건물은 대한제국이 성립된 이래 두 번이나 화재로 건물이 모두 타버리는가 하면 외국인들의 사교클럽으로 혹은 주차장 등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후 서울시가 1983년 유형문화재 제53호로 지정하고 2003년에 정동극장이 인수한 것을 2006년에 문화청이 넘겨 받아 2007년에 사적 제 124호로 덕수궁에 편입되는 과정을 겪는다. 그리고 2010년에서야 문화재청에 의해 복원이 완료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1897년 건축된 이래 100년이 지난 후에 비로소 제모습을 찾게 되었다는 말이니 한편에서는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일반에 개방된 것은 지난 2010년부터다.


현재의 중명전은 덕수궁 바로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원래 1910년 당시의 덕수궁은 현재보다 넓은 면적이었는데 1919년 고종황제 승하 후 여기저기 전각이 해체되면서 원래 면적의 거의 절반 크기로 줄어 들었다. 중명전 역시 당시에는 덕수궁 안에 있었지만 지금은 덕수궁과 이어지지 않고 정동극장 뒤켠의 길을 따라 들어가야 만날 수 있기 때문에 그 중요성에 비해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장소기도 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덕수궁과 이곳을 어떻게든 이어 덕수궁을 찾는 이들이 이곳을 반드시 들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중명전은 2층 건물인데 2층은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어 올라갈 수가 없다. 아쉬운 점이다. 당시 이토 히로부미가 병력으로 고종황제를 억압하며 대신들에게 조약에 찬성하는지 여부를 물을 때 대성통곡을 하며 끝까지 반대를 하다 2층 어느 방으로 끌려간 한규설 참정대신의 흔적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8대신 중 참정대신 한규설, 탁지부대신 민영기, 법부대신 이하영을  제외한 이들 즉 우리가 기억하는 을사오적의 손에 을사늑약이 맺어진다. 늑약이란 한자로 勒約이라 적는데 '굴레 륵'자에 '조약 약'자를 적어 강제로 맺어진 것이라는 의미다. 최근 들어 정부 어느 부처인가에서 출판사에 중등 교과서에 적힌 을사늑약을 전부 을사조약으로 바꾸라는 지시를 내렸다 하는데 시대를 역행하는 느낌이다.


좌우로 3개의 방을 만날 수 있는데 왼쪽에 한 개 오른쪽에 두 개의 방이 있다. 왼편의 방으로 들어가면 을사늑약 체결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도록 설명을 해 둔 자료들을 만날 수 있다. 1905년 11월 17일로 알고 있던 날짜가 사실은 18일이었음을 오늘 이곳을 방문하고야 알게 되었다. 관심 부족이 무엇보다 큰 이유겠지 싶다. 그까짓 1일 정도가 무슨 상관이냐고도 할 수 있지만 을사늑약이 18일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체결되었다는 것은 이미 무언가 정상은 아니라는 말이다. 어느 국가간의 조약이 새벽 1시에 체결된다는 말인가


을사늑약의 복제본을 만날 수 있다. 제2조를 보면 "한국정부는 이 조약 이후 일본국정부의 중개를 거치지 않고 국제적 성질을 가진 조약을 절대로 맺을 수 없다."는 문구가 적혀 있는데 이로써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일본에 온전히 넘겨주게 된다. 즉 한 국가로서의 존재 가치를 잃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렇게 중요하고도 처절한 문서가 작성된 곳이 이곳 중명전이다.


외부대신 박제순과 일본의 하야시 곤스케의 도장이 보인다. 박제순은 당시 고민하였다는 이야기도 들리지만 이후 승승장구하며 일본에 충성을 바쳐 대한제국의 마지막 영의정까지 거치면서 자손대대로 풍족하게 지냈다고 한다. 을사오적으로 이완용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에 못지 않은 인물이 또한 박제순으로 친일파 목록에서 빠지지 않고 상위권을 차지하는 인물이다.


오른쪽으로 가면 작은 방이 하나 있다. 중명전의 모형과 당시의 사진들 몇 점을 볼 수가 있는데 우리나라의 국보, 보물, 사적 등의 관리가 대체로 불만족스러운 것은 많은 분들이 공감하는 것일텐데 중명전 역시 좀 더 효과적으로 관리를 할 수는 없을까라는 아쉬움이 문을 나설 때까지 이어졌다. 개인이 관리하는 곳도 아니고 국가가 국민의 세금으로 관리하는 곳인데 말이다. 문화재청을 '부'로 승격해도 모자랄 일이다.


오른쪽의 두 번째 방은 작은 방 하나와 큰 방 하나가 이어져 있다. 가장 먼저 만나는 방에서는 을사늑약 당시의 해외 보도 자료를 만날 수 있다. 사진 오른쪽 구석에 벽난로가 보이는데 벽돌로 꼭 막아두고 있어 조금은 인위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중명전 자체를 이렇게 전시공간으로만 활용할 것이 아니라 당시의 분위기대로 복원을 하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건물 자체가 을사늑약이 체결된 곳이라는 점을 빼면 사실 무언가 당시를 돌아볼만한 "꺼리"들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을사늑약 체결 이후 을미의병(명성황후 살해사건) 이후 잠시 활동이 뜸했던 의병이 다시 일어나게 되고 애국계몽운동이 본격화된다. 사진 맨 오른쪽에는 늑약 체결 3일 후에 황성신문에 장지연이 쓴 '시일야방성대곡'이 보인다. 장지연에 대해서는 애국자냐 친일파냐 워낙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어 자세히 적을 바는 아니지만 적어도 당시만큼은 그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이어진 문으로 들어가면 늑약체결 이후 고종황제가 1907년 헤이그에서 열린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보내어 늑약이 무효임을 주장하고자 한 노력들을 만날 수 있다. 우리가 '헤이그 특사'라고 부르는 세 분 즉 이준, 이상설, 이위종이 그들이다. 강대국들의 형식적인 만남일 뿐이었던 당시 회의에 결국 특사들은 발조차 들여놓지 못하게 되고 이준은 헤이그에 더 머물다가 갑자기 사망하는데 그의 사망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뚜렷한 원인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헤이그 특사가 우리 근대사에서 또 중요한 이유는 일제가 이를 빌미 삼아 고종황제를 퇴위시켰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황제를 온갖 협박으로 물러나게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지만 이것을 도운 것 역시 우리나라 사람인 이완용과 송병준이라는 점이 무엇보다 씁쓸한 일이다. 당시 송병준은 "동경에 가서 사과하던지 자결하라"고 황제를 협박했다고 한다.


헤이그 특사 세 분의 사진을 볼 수 있다. 의연하고 떳떳한 모습이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이후 고종황제의 강제 퇴위 그리고 순종황제의 즉위와 소위 한일신협약이라 불리는 정미7조약 등이 일사천리로 이어지게 된다. 결국 대한제국은 이때 군대마저 해산되게 되는데 외교권에 이어 나라를 지킬 군사력마저 모두 빼앗겨 버리게 된다. 그리고 이로부터 3년 후 대한제국은 완전히 일본제국에 병합되고 만다.


참고자료: 문화재청 홈페이지, 문화유산콘텐츠지도, 덕수궁 홈페이지, 위키피디아

참고서적: 한영우, 다시 찾는 우리 역사, 경세원, 2004. 이영철, 한국사총론, 메티스, 2012.


덕수궁 중명전(重明殿)

1897년 건축 사적 제124호

주소: 서울 중구 정동길 41-4 중명전

평일 오전은 제한없이 관람할 수 있지만 오후와 주말은 선착순 예약을 해야 입장할 수 있다.

덕수궁 및 중명전 홈페이지 


중명전에 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다. 지하철 1.2호선 시청역에 내려 덕수궁 방향으로 나가 대한문을 바라보고 왼쪽길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아는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걸으면 된다. 이곳이 바로 정동인데 정동에는 우리 근대사의 흔적들이 상당히 많이 남아 있는 장소다.


가을의 정취가 한껏 느껴지는 덕수궁 돌담길이다. 연인과 함께 걸으면 헤어진다는 전설이 서린 곳이라는데 왜 그런 이야기가 나오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이 길을 따라 걸으면 좌우로 근대사의 조각들이 조금씩 흩어져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문화재청에서 배포하는 '다같이 돌자 정동한바퀴'라는 안내 소책자가 있는데 지도와 해설을 잘 담아놓고 있으니 덕수궁이나 중명전에서 한 부 얻도록 하자.


오른쪽에 정동극장이 보인다. 정동 자체가 워낙 이런 시설들이 넘쳐 나는 공간이다보니 글 하나에 모두 소개하기란 벅찬 일이다. 정동의 우리 유산들은 천천히 한곳씩 소개해 나갈 생각이다. 이 글에서는 이런 곳이 있구나 정도로만 그치기로 한다.


정동극장을 지나 바로 오른쪽으로 난 작은 샛길에 중명전으로 가는 안내 푯말을 볼 수 있다. 평소에는 한 번도 눈에 띄지 않은 것인데 막상 찾아간다고 생각하고 가니 엄청나게 크게 보였다. 이길을 지나시는 분들은 눈 여겨 보셨다가 한 번 들러보시기 바란다.


길을 따라 약간만 올라가면 중명전 입구를 만날 수 있다. 생각보다 외진 데 있고 생각보다 초라하다는 생각은 지울 길이 없지만 그래도 남아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된다. 

이곳이 바로 "대한제국의 운명이 갈린 곳 - 덕수궁 중명전"이다.


Nikon D700, AF Nikkor 35mm f2D & Panasonic LX5



-오늘 글은 조금 깁니다. ^^-

사실 예정에 없던 둘레길이다. 아침에 일어나 문득 오늘은 좀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집을 나섰다. 평소와 같은 시간에 일어나 평소와 같은 준비를 하고 평소와 같은 버스를 탔지만 목적지는 달랐다. 같은 준비를 해도 다다를 수 있는 곳은 이렇게나 다른 법이다.


둘레길 8구간은 아주 예쁜 이름인 "구름정원길"이다. 하지만 오늘의 둘레길 걷기는 내가 아침에 하고 싶었던 천천히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들을 정리해보자..라는 계획을 좌절시킬 정도였으니.. 읽어보시면 아시리라.. 8구간은 총 5.2Km로 중급 코스다. 소요시간은 2시간 30분 정도로 국립공원은 안내를 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버스 이동을 하지 않는다면 이동거리와 시간은 더 늘어난다.

중간에 앱이 저절로 멈춰버리는 바람에 측정이 애매하게 됐다. 평소 멀쩡하던 앱이 정신이 나가다니..아무튼 불광역 2번 출구로 나가 왼쪽으로 돌아 죽 직진하면 이전에 마무리했던 7구간의 종점을 볼 수 있고 그 건너편이 바로 8구간이다. 그런데 이 8구간 시작점을 생각보다 찾기가 어렵다. 표지판도 애매하거나 없어서 시작부터 조금 헤맸는데.. 정말 시작에 불과했다.

앱이 멈춘 지점부터 다시 기록을 했다. 총 이동거리는 8Km이고 소요시간은 3시간 58분이다. 차이가 나도 좀 심하게 나는데 위 2개의 그림을 조금 살펴보면 뭔가 이상한 것을 찾으실 수 있을테고 그게 오늘의 하이라이트였다.

아무튼 오늘은 2대의 카메라를 들고 나갔다. 두 카메라의 차이를 제대로 확인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고(물론 비교하기는 애매하지만) 광각과 매크로를 보조할 수 있는 카메라가 한 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아래 사진에서 두 카메라의 차이를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지 싶다.

구름정원길로 접어들기 직전에는 이렇게 안내도가 붙어있다. 주변에 먹을거리들이 제법 많은 소위 먹자골목이라는데 워낙 먹는 것과는 담을 쌓고 지내는지라 그냥 그려려니 하고 안내도가 잘 되어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후의 걷기는 거짓말 조금 보태어 GPS를 가동한 지도가 없었으면 쉽지 않았을 구간이었다. (사실은 내가 정신줄을 놓은 게 제일 문제긴 했다)


할아버지 한 분, 할머니 한 분이 지키시는 안내소를 지나 공원길로 올라가면 된다. 가는 동안 '여기가 둘레길이다', '아니다 저기가 둘레길이다' 라고 외치는 표지판들이 여기저기서 부르는 소리가 들릴텐데 꿋꿋하게 외면하고 왼쪽으로 진행하도록 하자. 


민가를 몇 채 지나 익숙한 계단을 넘으면 8구간의 시작점에 다다르게 된다. 오늘은 생각할 거리를 한 뭉치 들고왔으니 평소와는 달리 아주 천천히 걸을 생각이다. 생각이 많은 것은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그래도 오늘만큼은 차근차근 내 안에 엉킨 것들이 있으면 풀어버리고 아주 단순해져서 돌아올 생각이다. (아니 생각이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문이다. 앞서 전체 안내표지판도 그렇고 이번 구간은 꽤나 친절한 안내가 되어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됐다. 물론 여기까지 잘 왔다면 이 마음은 더 컸으리라 싶지만 잠시 앉아 심호흡을 한 다음 천천히 걷기로 했다. 평일이라 역시 사람은 거의 없다. 등산로도 아닌데 사람이 많을리가 없다. 사람이 없어야 맞았다.


아무렇게나 방치된 낡은 집을 한참 바라본다. 저곳에도 예전에는 사람이 살고 그 안에서 오욕칠정이 오고갔을텐데 이제는 을씨년스러울 정도다. 사람이 떠난다는 것은 집으로부터 혼을 빼앗아가는 것과 같다. 조금 이른 아침이라 그래도 괜찮았지만 늦은 저녁에 보면 제법 공포분위기도 나지 싶다.


뭔가 사진 색감이 확 달라졌다고 느꼈다면 제대로 본 것이다. 니콘의 전형적인 느낌인데 어쩐지 이 느낌을 평생 버리기는 힘들 것 같다. 이전의 사진은 모두 LX5로 찍은 사진이다. 약간 캐논의 느낌도 들지만 파나소닉의 화사함은 캐논과는 또 다른 맛이 난다. 캐논은 나와는 워낙 상극인 메이커였는데 파나소닉은 제법 괜찮다.


길을 걷다 마주하는 모든 것들을 한 번 더 바라보고 한 번 더 생각해보면 평소 가지고 있던 선입견이 무너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너무나 당연스레 생각하는 것들을 한번쯤 바꿔본다면 이제까지의 생활과는 또 다른 생활을 해볼 수 있다. 혹은 기존의 것에 익숙함이라는 일종의 고집을 버려야 하는데 그게 참 쉽지만은 않다.


예전에는 '논쟁'을 즐겨 했었다. 어떻게든 내가 옳음을 증명하려고 했었다. 내가 100% 옳아 상대가 수긍을 해야 만족을 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과연 상대가 완전히 내 생각에 동의를 했을까? 아니지 싶다. 앞에서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여도 자신의 의견이 무너진 것에 대한 '반감'은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남기 마련이다. 내가 그렇게까지 해서 상대에게 이긴다한들 그것은 사실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차라리 아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만 못 하게 된다.


물론 이야기를 하다보면 마음속에서 울컥하며 반론을 제기하고 싶은 생각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분명히 내가 맞다는 생각에 시달리게 된다. 하지만 그것을 상대에게 전하는 방법이 꼭 논쟁이나 마치 수업시간에 선생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식으로 상대방보다 내가 우월한양 행동해서는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 나의 지난 날들을 보면 실제로 그래왔었다. 오히려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 좀 더 신경을 써야했는데 나는 그러지를 못했다. 틀림과 다름이라는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두 단어를 깨닫지 못한 탓이다.


같은 장소에서 찍은 사진 두 장이다. 한장은 내가 바닥에 붙다시피 하고 찍었고 한장은 평소와 다름 없는 내가 선 높이에서 찍었다. 풍경은 전혀 변하지 않았지만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제법 많은 것들이 다르다. 같은 것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이렇게 큰 차이가 있다. 마찬가지로 대화를 한다면 상대의 눈높이로 내가 맞춰야 한다. 다가서지 않고서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고 해봐야 손해는 결국 내게 돌아온다. 땅바닥까지 내려가 상대를 바라보는 것이 부끄러운가? 그렇다면 이미 대화를 할 마음이 없는 것과 같다.

8구간은 전반적으로 화려하면서도 대단히 멋진 풍광을 지닌 구간이다. 코스 자체가 구불구불하거나 계단이 많은 편도 아니어서 한가로이 생각을 하거나 대화를 하면서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구간이다. 구름정원이라는 이름이 제법 잘 어울리는 곳이지 싶다. 가을임에도 마치 한여름처럼 무척이나 더웠던 날씨가 잠깐잠깐 길을 멈추게 했지만 그 멈춤에도 여유가 있어 평화로웠달까


이길의 이름은 "스카이워크"란다. 조금 뜬금이 없다. 둘레길이라는 우리말로 예쁜 이름을 지어 놓고 갑자기 이길의 이름은 무려 스카이워크라니(사실 데크라는 말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외국인도 함께 걷자는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차라리 우리말로 무언가 이름을 붙이고 그것을 영어로 표기하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둘레길을 걷다가 갑자기 스타워즈를 생각하게 되다니... 아무튼 이곳에 포토포인트가 있으니 도장 모으는 분들은 셀카 한 방 찍으시고..


처음 보는 표지판인데 누군가 자꾸 이 나무가지에 머리를 부딪혔던 모양이다. 가지가 조금 낮게 굽어 있어 이야기라도 하다가 잠시 한눈을 팔면 여지없이 부딪힐만한 위치에 있다. '뭐야 이게 여기에 머리를 왜 부딪혀?'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 한편 나무입장에서는 제법 억울한 일인데 자기는 그저 가만히 팔을 뻗고 있을 뿐인데 이놈의 인간들이 자꾸 머리로 들이받으니 난처할 노릇이다. 그래놓고 만물의 영장이라니..


느긋하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정말 이제까지 돌아본 둘레길 중에 가장 편안한 몸과 마음으로 걷고 있을 무렵 나타난 이정표. '족두리봉이라..이름 참 특이하네..' 지난 구간을 돌 때 들은 이야기가 문득 생각이 났다. 여기를 지칭한 것인지 정확하진 않지만 북한산에 올라야겠다는 충동이 생긴다는 것이다.  800미터라..얼마 안 되는데.. 지금은 별로 힘들지도 않고.. 흠... ......


진입을 하고나면 길을 그리 험하지 않다. 이제까지 온 길보다 갑자기 경사가 급해져서 조금 당황되기도 하지만 등산장비를 갖추고 있다면 큰 무리는 없을 정도다. 북한산은 몇 년 전에는 칼바위능선 쪽으로 거의 일주일마다 올랐던 터라 큰 부담은 없었다. 문제라면 가져온 것이 전혀 없다는 것 정도인데 오늘도 늘 둘레길에 올 때처럼 파워에이드 한 병이 전부였다. 시간은 11시가 조금 넘었고 그냥 둘레길을 걷는다면 점심 먹을 때쯤은 끝날텐데 북한산을 아예 올라간다면 상황은 조금 다를텐데..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800미터 정도야...'라고 착각을 해버렸다.


가면 갈 수록 길이 이 모양이다. 카메라 두 대가 일단 걸리적거리기 시작한다.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한 대는 입고시킬 각오를 해야 한다. 튼튼한 하체만 믿기에는 완전히 낫지 않는 발도 슬슬 신경이 쓰인다. 무엇보다 먹을 게 없는데...'대청봉도 김밥 한 줄하고 파워에이드 한 통으로 갔었는데...' 괜찮겠지?


역시 올라오니 좋다. 경치 보이는게 일단 다르다. 날이 워낙 맑아서 제법 멀리 볼 수 있다. 바람이 불지 않고 햇살이 제법 따갑지만 그래도 이런 시원시원한 맛이 산에 오르는 즐거움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제법 많은 분들이 코스를 오르고 있었다. 

내 실수 중의 하나는 만약 등산을 계획했다면 미리 코스를 숙지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이건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나중에서야 족두리봉이 암벽코스도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사실 이 코스는 능선 쪽이 아니라면 꽤나 위험한 코스다. 실제 인명사고도 종종 나는 곳이다. 둘레길 정도는 모를까 충동적으로 등산을 결심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아야한다.


어지간히 헉헉거리고 올라가니 갑자기 사방이 탁 트인다. 사방은 온통 바위투성이다. 파워에이드는 이미 반을 비워가고 있었고 지구력이라면 제법 버티는 나로서도 생각지도 않던 등산은 당연히 힘겨운 일이었다. 처음엔 이 바위가 족두리 모양인가 생각을 했지만 이리보고 저리봐도 이건 족두리가 아니라...흠.. 아무튼.. 사방을 좀 더 둘러보고 GPS맵을 켜서 위치를 파악하기로 했다.


족두리봉 능선코스는 이쪽이었다. 까마득하다. 산길에서 800미터면 그냥 800미터가 아니다.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 과욕을 부리기에는 우유 한 잔 먹은 아침식사로는 분명히 곤란에 빠지지 싶었다. 못 가는게 아니라 안 가는거다..라고 나름 합리화를 하고 하산하기로 했다. 아쉽긴 했지만 준비가 너무 부족했다.


평지로 내려오니 살 것 같았다. 산이 있다 해서 그냥 올라갈 수 있는 건 아니다. 하다못해 둘레길을 걷는데도 어느 정도 준비를 해야 하는데 정상에 오를 생각이 있다면 가벼운 마음으로는 되지 않는다. 아무튼 괜한 객기를 부리는 바람에 체력소모도 컸고 음료수 소모도 컸다. 사실 앞으로 갈 길이 제법 남았는데 조금 걱정이다.


길가에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꽃인데 사실 손톱보다도 작은 꽃이다. 접사로 찍고 보니 이렇게 다른 모습이다. 무엇을 바라보는 시각은 정말 큰 차이를 가져온다. 고정관념이라는 것처럼 사람에게 무서운 것은 없는데 이것을 떨치려면 또 다른 습관을 들이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다. 이제껏 해오던 방법 혹은 시선과는 반대의 방법에 익숙해지거나 시점에 익숙해지면 차츰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편견이나 선입견은 사라진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시도하지 않았기에 바꾸지 못할 뿐.


길은 언제나 그 자리에 그렇게 놓여 있다. 그길을 갈 것이냐 말 것이냐는 사람이 정할 따름이다. 당장 가지 못했다고 아쉬워할 것도 없고 다시는 그길을 가지 못할 거라 체념할 필요도 없다. 길은 언제나 그렇게 그 자리에서 사람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지 않은 길'이란 '다시 갈 수 있는 길'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어느 길이 바른 길이냐 하는 것도 상대적이다. 절대적으로 옳은 길은 없고 절대적으로 그른 길도 없다. 중요한 것은 그길을 걷는 사람이 어떠한 마음과 자세로 걷느냐에 달려 있다. 칼도 주방에서 쓰면 요리용 도구지만 전쟁에서 쓰면 살인무기가 된다.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스스로 굳어지는 것보다 위험한 것은 없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지석(?)이 예사롭지 않다. 쓰인 글을 보니 중세국어인데 어떤 이유로 이곳에 무엇을 위해 이렇게 놓여 있는 것일까 한참 바라본다. 사실 뜻은 별 것이 없다. 8구간을 돌다보면 이렇게 무언가 적힌 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묘지를 지키는 돌인형이 누워있는 것도 볼 수 있고 무덤도 제법 많다. 과거의 기록들이 꽤 많이 보존된 구간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탐방객 수를 조사하는 개찰구(?)를 또 지난다. 아까 지나왔는데 왜 또 있을까..희한하다 싶었다. 사실 그때 주위를 둘러보고 상황파악을 했었어야 하는데 문득 "저기 왔다갔다 하면서 숫자 늘려봐요"라는 말이 생각이 나면서 혼자 웃으며 그냥 지나쳤다. 아...나는 대체 왜 정신줄을 놓은 것일까...

여기서부터 한동안 사진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위 사진에도 보이지만 뭔가 길이 이제까지 온 길과 달라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하느라 사진을 찍을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경고는 하나 더 있었다. 올라가다 보면 왼쪽에 안내도가 보이는데 전형적인 등반코스를 그려놓고 있는 안내도다. 정상까지 걸리는 시간이 똑바로 적혀있다. 나는 그 안내판 앞에 한참을 서서 '어라. 진흥왕순수비가 저기 있네. 저게 북한산비구나. 조금만 더 가면 볼 수있나?'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은 음료수가 10분의 1정도 남은 시점에 어느 넓다란 바위 위에 앉아서였다. 가도가도 "북한산둘레길"을 알리는 네모난 표지판이 보이지 않았고 갑자기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 이상해서 대체 여기가 어딘가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지도를 켜고 현위치가 나타나는 순간 참 할 말이 없었다. 나는 향로봉에 오르고 있었다...

오늘은 산이 나를 부르나 싶었다. 한 번은 내 의지로 올랐고 한 번은 무의식으로 올랐다. 물론 두 번 다 정상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묘한 날이었다. 그래 언젠가는 끝까지 가주마..라고 다짐을 하고 다시 올라온 길을 되돌아 내려갔다. 피로도도 제법 올라가있고 배도 제법 고파왔다. 


이렇게 큼직한 이정표가 있는데 왜 이것을 못 보고 지나쳤을까..생각이 많으면 병이다 싶다. 그래도 이 정도로 정신을 놓지는 않았는데..여기서 향로봉은 1.8Km다. 올라가려고 한다면 작정을 해야 갈 수 있는 거리다. 하지만 한 번 족두리봉에서 실패를 한 다음인지라 또 시도를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럼에도 몸이 저절로 올라간 것은 대체 왜인지...


다시 둘레길로 돌아와 조금 더 걷다보면 개울이 나온다. 이제는 제법 차가운 물이다. ND필터가 아쉬웠지만 없으면 없는대로 임기응변으로 물줄기를 담아봤다. 이제 거의 코스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 든다. 두 번의 삽질(?)이 없었으면 지금 쯤 집에 가 있을지도 모르는 시간에 나는 여전히 둘레길에 서 있었다. 하지만 힘은 많이 들었지만 마음은 편안했다.


나무 사이로 간간히 들어오는 햇살이 비추는 공간에 이름모를 꽃들이 또 그렇게 피어있었다. 해가 들어와 저렇게 저 부분만 밝게 비추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쳤을텐데 저렇게 빛이 들어오니 걸음을 멈추게 된다. 길은 그리고 산은 끊임없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내가 그 소리를 듣느냐 아니면 지나치느냐에 따라 내가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은 정말 많이 달라진다. 밖으로 나가 세상과 마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완연한 가을 느낌의 산이 보이고 길이 보이고 그 길 위에 내가 서 있고 또 걸어가고 있다. 이 순간에는 그것이 그냥 그 자체로 감격스러운 일이다. 여러 생각도 멈추고 그저 바라보고 느끼는 순간이다. 


어찌되었건 파란만장한 8구간은 마무리되었다. 남들은 편하게 즐기며 걷는다는 이 구간을 나는 꽤나 고생아닌 고생을 하며 걸었다. 예상보다 먼 거리를 그리고 오랜 시간을 걷게 되었는데 이번 가을에 다시 이 구간을 걸을 리는 없을테니 그래도 제법 괜찮은 기억으로 남을 걷기였다. 문을 나가 왼편 경사로에 짐을 풀고 남은 음료수를 모두 마시고 담배 한 대를 피고 나니 피로가 몰려왔다. 아마 배고픔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싶지만 잘 안 먹는 고집은 좀처럼 꺾이질 않으니 문제는 문제다.

이곳을 나가 왼편으로 죽 걸어나가면 큰 길이 나온다.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연신내역으로 이동하면 된다. 걸어가도 되지만 20분 정도 예상해야 하니 버스를 타는 편이 낫다. 돌이켜보면 오늘 정신줄을 놓기 시작한 것은 합정역에서 6호선을 타면서부터가 아니었나 싶다. 불광역으로 향하는 열차라고 덥썩 타고 나서 한창 미드 '그림'을 보고 있었는데 '다음 역은 삼각지, 삼각지입니다..'라는 소리가 들려왔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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