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오래 찍어오고 있지만 내게 꽃사진은 거의 없다. 애초에 꽃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싶다. 오래 전 접사를 시도해봤던 때를 제외하곤 풍경 전체에 꽃이 들어가는 경우는 있어도 꽃 자체만을 프레임에 담지는 않았다. 왜 그랬을까? 라는 물음이전에 '꽃'이라는 개념 자체가 내 사진에는 없었던 셈이다.

대개 내 사진의 주제는 하늘, 바다, 길.. 그런 것들이 주를 이루었고 대체로 내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 조금은 우울한 느낌의 흔적들을 만들어냈다. (이 블로그의 사진들 대부분이 주는 그런 느낌말이다) 아마도 그런 일종의 선입견이 나로 하여금 꽃이라는 화려한 혹은 긍정적인 피사체를 무의식 중에 경계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어쩌면 내 삶에서 또 한 번의 괴롭다면 괴로운 시기에 나는 꽃을 발견했다. 이전에는 눈에도 들어오지 않던 꽃들이 하나 둘 내 눈 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상당히 큰 변화다.. 꽃을 파인더로 들여다보면 우울한 감정의 그림은 여간해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늘이나 길이나..바다나 구름 같은 것들은 어느 정도의 감정이입이 되면 제법 우울한 그림이 나오지만 꽃은 파인더 너머로 그 자태가 보이는 순간 내가 그 힘에 압도되기 때문이다.

사실 사진가가 피사체에 압도되면 원하는 사진을 만들어낼 수 없다. 아니 그렇게 믿고 있었다. 적어도 스스로의 사진을 찍는다면 피사체를 내가 원하는 대로의 이미지로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꽃은 그런 나의 시도를 번번히 무산시킨다. 그리고 내게 역으로 그림을 그려내라 요구한다. 그러면 나는 내 의지는 접어 두고 꽃이 원하는 그림을 그려내려 노력하곤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이 어쩐 일인지 거부감이 생기지 않는다. 

고집스러웠던 사진의 습관이 깨지는 계절. 봄이다.


길상사에 다녀온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다시 그곳을 찾았습니다. 이번에는 어머니께서 한 번 가보고 싶으시다하셔서 아침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길상사는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6번 출구로 나가면 셔틀버스를 타고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일전에는 걸어서 다녀왔지만 이번에는 버스를 탔습니다.


입구에서부터 화려한 연등들이 방문객들을 반깁니다. 사찰에 연등이 걸린 것을 본 것은 참 오랜만인데 곧 부처님오신날이니 이미 준비를 하는 분주한 모습이었습니다. 이날은 날도 꽤나 좋은 편이어서 다른 때보다 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전에 방문했을 때 찍지 못 했던 관음상입니다. 천주교와 불교가 묘하게 어울린 모습으로 서 있는 관음상을 보면 종교라는 것이 끝끝내 추구하는 바는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불교나 천주교나 그런 면에서는 이전부터 잘 어울려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 크지 않은 절이기에 연등만으로 절 전체가 가득 찬 느낌이었습니다. 다시 찾아가 보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길상사에 들르기 전 이전 포스팅에서 적었던 소인형을 발견한 것도 큰 수확이랄까요. 

길상사를 다시 찾으면서 인연이라는 주제에 대해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단 사람간의 인연 뿐 아니라 세상의 어떤 것과도 인연은 맺어질 수 있는 것이고 그 마주치는 인연들을 하나하나 소중하고 간직하고 가꿔가다보면 삶 자체가 윤택해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20여일만에 꼭 같은 장소가 참 많이도 달라지더군요. 물론 장소 자체, 건물들 자체는 달라진 것이 없지만 그 장소와 건물을 둘러싼 분위기랄까..그런 변화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제법 빠른 것 같습니다. 사람도 별반 다르지 않아 한 사람 자체는 언제나 같지만 그 사람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는 매시간시간 본인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빠른 것이 인생사가 아닌가 합니다.

법정스님의 흔적 그리고 백석과 그의 연인 자야의 흔적이 어디엔가 여전히 남아있겠지만 오늘 이 순간만큼은 이곳을 방문한 이들의 흔적이 사찰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길상사를 들르기로 하고 한성대 입구역에 도착하니 시간이 조금 남아 길 건너에 있던 아름다운가게를 찾았다. 잘 뒤져 보면 생각보다 좋은 물건들을 찾을 수 있는지라 이것저것 보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얘, 이거 봐라!"며 나를 부르셨다. 어머니 손에 들린 것은 작은 소 인형..

이 별로 귀엽지도 않고 어디 하나 뚜렷한 개성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인형을 왜 어머니는 그렇게 기뻐하며 나를 부르셨을까. 사실 이 인형은 우리집에 있던 인형이다. 워낙 인형을 좋아하시는 어머니의 성격 탓에 집안에 제법 인형들이 많았는데 이 녀석하고 꼭같이 생겼지만 크기만 좀 더 큰 녀석이 1988년 우리집에 있었단다.


나도 이 녀석을 제법 오래 봐왔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무래도 낡을 수밖에 없었고 어머니는 여기저기 튿어진 곳을 실로 꿰매며 계속 간직해오셨다. 그리고 아마 몇 년 전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더 이상 인형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게 되어 집에서 내보냈는데 전의 그 녀석과 꼭 같은 크기만 좀 작은 녀석을 찾은 것이다.

인연(글쎄 인형과 인연을 이야기한다는 것에 반감을 가질 분도 계시겠지만)이라는 것이 참 오묘한 것이어서 아침에 불쑥 길상사에 가겠다고 집을 나선 것. 한성대 입구에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 셔틀버스를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남았다는 것. 길 건너에 아름다운가게가 보인 것과 그 안에 이 녀석이 있었다는 것은 그저 인연이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길은 없었다.

남들에게는 그저 작은 소모양을 한 인형이고 크게 매력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팔리지 않고 그렇게 남아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에게 이 인형은 한 세월을 같이 해 온 복덩이요 재산이었던 것이다. 

세상의 모든 가치라는 것은 결국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고 그 결정은 살아오는 동안의 경험과 기억들이 바탕이 된다. 인형 하나 가지고 무슨 철학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삶이란 그렇게 복잡한 것 같으면서도 단순한 것이다. 

아무튼 이 작은 인형은 어머니에게 지난 20여년의 시간을 잠시 되돌릴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이 정도면 충분한 가치가 있지 않은가?


니콘 NEF코덱이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D4를 지원하는 내용이니 아래 링크에서 내려받으시면 됩니다.


NEF Codec은 Nikon RAW(*.NEF) 이미지 파일을 JPEG나 TIFF 이미지와 같이 

손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모듈입니다.

버전 1.13.0 변경 사항

  • D4으로 촬영한 NEF(RAW) 화상을 지원합니다.


다운로드



항상 마음이 평안하기를

세상의 힘겨움과 유혹과 번잡함과 고통 속에서도 스스로를 지켜갈 수 있기를

삶이라는 건 어쩌면 행복한 날들보다 힘겨운 날들이 더 많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지금 오감으로 세상을 느낄 수 있다는 그 자체가 큰 행복이며 축복이라는 것을 잊지 말기를

이제 우리 비록 다른 길에 서서 다시 마주할 수 없는 길을 걷겠지만

함께 한 시간들

그 시간들 속에서 그래도 행복했었던 

서로에게 힘이 되었던 기억들만 온전히 남아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미약하나마 힘이 되어 주기를

그래서 언젠가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에

그래도 다행이었어 라며

작은 미소 띄울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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