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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9 19:21 - Snowroad snowroad

[사적 124호] 대한제국 종말의 시작 - 덕수궁 중명전

1905년 11월 17일 정확하게는 11월 18일 새벽 1시경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이 들어 있을 무렵 광무황제(이하 고종황제)의 처절한 외침을 뒤로 하고 일본의 주한공사 하야시 곤스케와 대한제국 외부대신 박제순이 한 장의 종이에 서명을 하고 도장을 찍는다. 우리가 을사조약, 을사보호조약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을사늑약은 이렇게 황제의 승인도 없는 가운데 을사오적이라 불리는 친일파들의 손에 의해 처리되고 이 늑약을 시작으로 500년을 이어온 조선 그리고 대한제국은 종말로 치닫게 된다. 이 조약 이후 대한제국은 모든 외교권을 상실하게 되고 일본의 식민지로 빠르게 편입되는 과정을 겪게 된다. 


이 치욕적인 역사가 만들어진 장소가 바로 이곳 덕수궁 중명전이다. 중명전은 한자로 重明殿이라 적는데 '광명이 계속 이어져 그치지 않는 전각'이라는 뜻이다. 중명전이 세워진 것은 1897년으로 바로 대한제국이 성립된 해기도 하다. 러시아인 사바찐에 의해 설계된 서양식 건물로 당시에는 황실도서관의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중명전이 우리 근대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제법 크다. 을사늑약이 강제되었고 고종황제에 의해 헤이그 특사가 파견된 장소이며 영친왕이 황태자로 책봉된 장소기 때문이다.

이 역사적인 건물은 대한제국이 성립된 이래 두 번이나 화재로 건물이 모두 타버리는가 하면 외국인들의 사교클럽으로 혹은 주차장 등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후 서울시가 1983년 유형문화재 제53호로 지정하고 2003년에 정동극장이 인수한 것을 2006년에 문화청이 넘겨 받아 2007년에 사적 제 124호로 덕수궁에 편입되는 과정을 겪는다. 그리고 2010년에서야 문화재청에 의해 복원이 완료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1897년 건축된 이래 100년이 지난 후에 비로소 제모습을 찾게 되었다는 말이니 한편에서는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일반에 개방된 것은 지난 2010년부터다.


현재의 중명전은 덕수궁 바로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원래 1910년 당시의 덕수궁은 현재보다 넓은 면적이었는데 1919년 고종황제 승하 후 여기저기 전각이 해체되면서 원래 면적의 거의 절반 크기로 줄어 들었다. 중명전 역시 당시에는 덕수궁 안에 있었지만 지금은 덕수궁과 이어지지 않고 정동극장 뒤켠의 길을 따라 들어가야 만날 수 있기 때문에 그 중요성에 비해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장소기도 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덕수궁과 이곳을 어떻게든 이어 덕수궁을 찾는 이들이 이곳을 반드시 들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중명전은 2층 건물인데 2층은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어 올라갈 수가 없다. 아쉬운 점이다. 당시 이토 히로부미가 병력으로 고종황제를 억압하며 대신들에게 조약에 찬성하는지 여부를 물을 때 대성통곡을 하며 끝까지 반대를 하다 2층 어느 방으로 끌려간 한규설 참정대신의 흔적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8대신 중 참정대신 한규설, 탁지부대신 민영기, 법부대신 이하영을  제외한 이들 즉 우리가 기억하는 을사오적의 손에 을사늑약이 맺어진다. 늑약이란 한자로 勒約이라 적는데 '굴레 륵'자에 '조약 약'자를 적어 강제로 맺어진 것이라는 의미다. 최근 들어 정부 어느 부처인가에서 출판사에 중등 교과서에 적힌 을사늑약을 전부 을사조약으로 바꾸라는 지시를 내렸다 하는데 시대를 역행하는 느낌이다.


좌우로 3개의 방을 만날 수 있는데 왼쪽에 한 개 오른쪽에 두 개의 방이 있다. 왼편의 방으로 들어가면 을사늑약 체결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도록 설명을 해 둔 자료들을 만날 수 있다. 1905년 11월 17일로 알고 있던 날짜가 사실은 18일이었음을 오늘 이곳을 방문하고야 알게 되었다. 관심 부족이 무엇보다 큰 이유겠지 싶다. 그까짓 1일 정도가 무슨 상관이냐고도 할 수 있지만 을사늑약이 18일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체결되었다는 것은 이미 무언가 정상은 아니라는 말이다. 어느 국가간의 조약이 새벽 1시에 체결된다는 말인가


을사늑약의 복제본을 만날 수 있다. 제2조를 보면 "한국정부는 이 조약 이후 일본국정부의 중개를 거치지 않고 국제적 성질을 가진 조약을 절대로 맺을 수 없다."는 문구가 적혀 있는데 이로써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일본에 온전히 넘겨주게 된다. 즉 한 국가로서의 존재 가치를 잃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렇게 중요하고도 처절한 문서가 작성된 곳이 이곳 중명전이다.


외부대신 박제순과 일본의 하야시 곤스케의 도장이 보인다. 박제순은 당시 고민하였다는 이야기도 들리지만 이후 승승장구하며 일본에 충성을 바쳐 대한제국의 마지막 영의정까지 거치면서 자손대대로 풍족하게 지냈다고 한다. 을사오적으로 이완용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에 못지 않은 인물이 또한 박제순으로 친일파 목록에서 빠지지 않고 상위권을 차지하는 인물이다.


오른쪽으로 가면 작은 방이 하나 있다. 중명전의 모형과 당시의 사진들 몇 점을 볼 수가 있는데 우리나라의 국보, 보물, 사적 등의 관리가 대체로 불만족스러운 것은 많은 분들이 공감하는 것일텐데 중명전 역시 좀 더 효과적으로 관리를 할 수는 없을까라는 아쉬움이 문을 나설 때까지 이어졌다. 개인이 관리하는 곳도 아니고 국가가 국민의 세금으로 관리하는 곳인데 말이다. 문화재청을 '부'로 승격해도 모자랄 일이다.


오른쪽의 두 번째 방은 작은 방 하나와 큰 방 하나가 이어져 있다. 가장 먼저 만나는 방에서는 을사늑약 당시의 해외 보도 자료를 만날 수 있다. 사진 오른쪽 구석에 벽난로가 보이는데 벽돌로 꼭 막아두고 있어 조금은 인위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중명전 자체를 이렇게 전시공간으로만 활용할 것이 아니라 당시의 분위기대로 복원을 하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건물 자체가 을사늑약이 체결된 곳이라는 점을 빼면 사실 무언가 당시를 돌아볼만한 "꺼리"들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을사늑약 체결 이후 을미의병(명성황후 살해사건) 이후 잠시 활동이 뜸했던 의병이 다시 일어나게 되고 애국계몽운동이 본격화된다. 사진 맨 오른쪽에는 늑약 체결 3일 후에 황성신문에 장지연이 쓴 '시일야방성대곡'이 보인다. 장지연에 대해서는 애국자냐 친일파냐 워낙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어 자세히 적을 바는 아니지만 적어도 당시만큼은 그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이어진 문으로 들어가면 늑약체결 이후 고종황제가 1907년 헤이그에서 열린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보내어 늑약이 무효임을 주장하고자 한 노력들을 만날 수 있다. 우리가 '헤이그 특사'라고 부르는 세 분 즉 이준, 이상설, 이위종이 그들이다. 강대국들의 형식적인 만남일 뿐이었던 당시 회의에 결국 특사들은 발조차 들여놓지 못하게 되고 이준은 헤이그에 더 머물다가 갑자기 사망하는데 그의 사망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뚜렷한 원인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헤이그 특사가 우리 근대사에서 또 중요한 이유는 일제가 이를 빌미 삼아 고종황제를 퇴위시켰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황제를 온갖 협박으로 물러나게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지만 이것을 도운 것 역시 우리나라 사람인 이완용과 송병준이라는 점이 무엇보다 씁쓸한 일이다. 당시 송병준은 "동경에 가서 사과하던지 자결하라"고 황제를 협박했다고 한다.


헤이그 특사 세 분의 사진을 볼 수 있다. 의연하고 떳떳한 모습이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이후 고종황제의 강제 퇴위 그리고 순종황제의 즉위와 소위 한일신협약이라 불리는 정미7조약 등이 일사천리로 이어지게 된다. 결국 대한제국은 이때 군대마저 해산되게 되는데 외교권에 이어 나라를 지킬 군사력마저 모두 빼앗겨 버리게 된다. 그리고 이로부터 3년 후 대한제국은 완전히 일본제국에 병합되고 만다.


참고자료: 문화재청 홈페이지, 문화유산콘텐츠지도, 덕수궁 홈페이지, 위키피디아

참고서적: 한영우, 다시 찾는 우리 역사, 경세원, 2004. 이영철, 한국사총론, 메티스, 2012.


덕수궁 중명전(重明殿)

1897년 건축 사적 제124호

주소: 서울 중구 정동길 41-4 중명전

평일 오전은 제한없이 관람할 수 있지만 오후와 주말은 선착순 예약을 해야 입장할 수 있다.

덕수궁 및 중명전 홈페이지 


중명전에 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다. 지하철 1.2호선 시청역에 내려 덕수궁 방향으로 나가 대한문을 바라보고 왼쪽길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아는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걸으면 된다. 이곳이 바로 정동인데 정동에는 우리 근대사의 흔적들이 상당히 많이 남아 있는 장소다.


가을의 정취가 한껏 느껴지는 덕수궁 돌담길이다. 연인과 함께 걸으면 헤어진다는 전설이 서린 곳이라는데 왜 그런 이야기가 나오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이 길을 따라 걸으면 좌우로 근대사의 조각들이 조금씩 흩어져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문화재청에서 배포하는 '다같이 돌자 정동한바퀴'라는 안내 소책자가 있는데 지도와 해설을 잘 담아놓고 있으니 덕수궁이나 중명전에서 한 부 얻도록 하자.


오른쪽에 정동극장이 보인다. 정동 자체가 워낙 이런 시설들이 넘쳐 나는 공간이다보니 글 하나에 모두 소개하기란 벅찬 일이다. 정동의 우리 유산들은 천천히 한곳씩 소개해 나갈 생각이다. 이 글에서는 이런 곳이 있구나 정도로만 그치기로 한다.


정동극장을 지나 바로 오른쪽으로 난 작은 샛길에 중명전으로 가는 안내 푯말을 볼 수 있다. 평소에는 한 번도 눈에 띄지 않은 것인데 막상 찾아간다고 생각하고 가니 엄청나게 크게 보였다. 이길을 지나시는 분들은 눈 여겨 보셨다가 한 번 들러보시기 바란다.


길을 따라 약간만 올라가면 중명전 입구를 만날 수 있다. 생각보다 외진 데 있고 생각보다 초라하다는 생각은 지울 길이 없지만 그래도 남아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된다. 

이곳이 바로 "대한제국의 운명이 갈린 곳 - 덕수궁 중명전"이다.


Nikon D700, AF Nikkor 35mm f2D & Panasonic LX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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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중구 소공동 | 덕수궁 중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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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0.19 20:03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nowheart.tistory.com BlogIcon Snowroad snowroad 2012.10.20 16:56 신고

      현대사는 여전히 일제의 잔재를 떠 안고 있고 그 흔적을 온전히 지우지 못한채..아니 기득권을 유지한채 이어져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적하신 그 역사의 시간들이 21세기에 여전히 우리의 눈앞에서 현실로 벌어지고 있으니 기가막힐 노릇이지요..

  2. Favicon of http://areadi-music.tistory.com BlogIcon 아레아디 2012.10.19 21:19 신고

    행복하고 즐거운 금요일 저녁 되시길 바래요^^

  3. Favicon of http://goleemw1.tistory.com BlogIcon 멀바띠 2012.10.19 23:50 신고

    덕수궁은 서너번 가봤지만 저긴 처음보는 곳이네요..
    국내 역사볼거리 돌아다니때 많은 참고가 될거 같습니다:)

    • Favicon of http://snowheart.tistory.com BlogIcon Snowroad snowroad 2012.10.20 16:59 신고

      네 일반에 공개된 지가 얼마 되지도 않은데다가 좀처럼 찾기가 힘든 구석에 있지요 ^^ 오셔서 다니시기 전에 이것저것 더 챙겨놔야겠습니다.

  4. rabbitbook 2012.10.20 00:47 신고

    이 곳을 다녀오셨군요...
    덕수궁과 떨어져있어서 이런 자세한 설명이나 관심이 아니면 그냥 지나쳤을텐데..
    문화유적첫번째 장소로 가실 만큼 그 동안 봐두셨던 곳인가 봅니다..
    그냥 전시가 아닌 그 당시 현장의 분위기를 느낄수 있으면 좋을텐데요..
    그나저나 공부 많이 하시네요..
    첫 발 내디딘것 축하드려요...

    • Favicon of http://snowheart.tistory.com BlogIcon Snowroad snowroad 2012.10.20 17:00 신고

      다음 달이 을사늑약이 체결된 달이라 문득 생각이 났어요.
      첫 시작이 아주 대단히 유명한 장소는 아니지만 제 나름으로는
      꽤 중요한 장소가 아닐까? 라고 생각했었거든요 ^^

  5. Favicon of http://zomzom.tistory.com/ BlogIcon 좀좀이 2012.10.20 15:09 신고

    중명전은 못 들어갔었는데 이제 들어갈 수 있나 보군요!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연인이 헤어지게 된다는 말이 생긴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거 같아요.
    1. 예전에는 저 길 끝에 가정법원이 있었대요. 즉 이혼하러 가며 걷는 길이었다는 것이죠.
    2. 길은 매우 아름다우나 연인과 함께 걸어보면 걷기 썩 좋은 길은 아니랍니다. 특히 여름에 걸어보면 뭐랄까요...자기도 모르게 짜증이 조금씩 쌓여간달까요? ㅎㅎ 혼자 걸어도 짜증이 살살 올라오는 그런 길이기도 해요. 아마 높은 벽이 막고 있는 것과 길이 좁다는 것이 중요한 원인이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저 길에서 행패부리는 노숙자들도 좀 있었구요 ㅎㅎㅎ

    지역마다 이렇게 연인을 깨트리는 길이 하나씩은 있는 거 같아요 ㅎㅎㅎㅎㅎ

    • Favicon of http://snowheart.tistory.com BlogIcon Snowroad snowroad 2012.10.20 17:02 신고

      다녀오신 적이 있으시군요 ^^ 2010년부터 민간에 개방되었어요. 2층이 막힌 것은 아쉬운 부분이지요..

      덕수궁 돌담길은 적어주신 이유가 제법 공감이 갑니다. 좌우로 무언가 탁 막힌 듯한 느낌이 든다는 거.. 이제 생각해보니 그러네요. 서울시청 별관이 옮겨가고 그 건물 자리라도 공원으로 만들면 나아질텐데..어떻게 할지 궁금하네요

  6. Favicon of http://minitrip.tistory.com BlogIcon minitrip 2012.10.21 21:46 신고

    어쩐지 덕수궁에서 본 기억이 없는 건물인데, 따로 떨어져 있군요..
    여태 있는지도 몰랐네요. 덕수궁이나 그 근처에 가면, 한 번 들러봐야겠어요.

  7. Favicon of http://iamdevivre.tistory.com BlogIcon 롤패 2012.10.22 12:13 신고

    페북에 제 소감을 얘기해서 여기에 동일하게 적어 놓자니 쑥스럽군요. ^^*
    역시 snowroad님 다우십니다. 정말 잘 읽었어요. ^^

    • Favicon of http://snowheart.tistory.com BlogIcon Snowroad snowroad 2012.10.22 19:03 신고

      감사합니다. ^^.. 앞으로 갈 길이 머네요. 언제 또 다음 글이 올라갈지는 모르겠지만.. 천천히 해야봐야지요

  8. Favicon of http://funnycandies.com BlogIcon 소심한 우주인 2012.10.22 13:32 신고

    서울엔 유서 깊은 건물들이 은근히 많이 있는데
    물어물어 찾기 전에는 잘 못보게 된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지여...ㅠㅠ

    • Favicon of http://snowheart.tistory.com BlogIcon Snowroad snowroad 2012.10.22 19:04 신고

      네 그래서 억지로 주제를 찾거나 그렇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치는 것들이 제법 많은 거 같아요. ^^ 주제를 하나 정해서 다니면 생각보다 가볼 곳이 많이 있네요

  9. Favicon of http://diaryofgrinder.tistory.com BlogIcon SAS 2012.10.22 21:24 신고

    중명전은 결코 자주 갈수가 없는 곳이었습니다. 가슴속이 부글부글 끓어서...
    그때의 한탄스러움이 여전히 50년 근대사에서도 계속 되풀이 되고 있다는게 더더욱 말이죠. ㅡㅡ;

    • Favicon of http://snowheart.tistory.com BlogIcon Snowroad snowroad 2012.10.24 07:15 신고

      어쩌면 그 역사가 지금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기 때문에 이곳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참 가슴이 답답한 장소였습니다

  10. w.샤우드 2012.10.22 22:24 신고

    치욕의 한이 서린 곳이네요.. 중명전
    고종의 외침이 다시 들려오는 듯 합니다

  11. Favicon of http://nnkent11.tistory.com BlogIcon NNK의 성공 2012.10.29 09:30 신고

    잘 보고 간답니다 ^^
    기분좋은 한 주를 보내세요~

  12. Favicon of http://resgestae.tistory.com BlogIcon 프린키패스 2012.10.31 09:46 신고

    snowroad님 안녕하세요? 덕수궁 하면 저는 여자친구랑 자주 걷던 덕수궁 돌담길만 생각했었는데(사진 멋지게 올려주셨네요^^)오~~저도 시간내서 한번 꼭 다녀가봐야겠습니다.

    • Favicon of http://snowheart.tistory.com BlogIcon Snowroad snowroad 2012.10.31 18:31 신고

      안녕하세요 ^^ 덕수궁 길 걸으시면서 정동에 남아있는 우리 흔적들도 한 번 관심있게 보시면 더 의미있는 데이트가 되실 거 같네요 ^^

  13. Favicon of http://blog.naver.com/nciv BlogIcon 맑은구름 2013.08.19 19:06 신고

    안녕하세요. 을사늑약 사진을 찾다가 들렀네요. 소개도 잘 되어 있고 내용이 좋은것 같네요.
    사진 1~2장 정도 제 블로그에 인용해도 될까요? 저도 이런쪽에 관심이 생겨서 을사늑약 사진이 없을까 하다가 찾아뵙게 되었네요.
    제 블로그에도 방문하신다면 환영하겠습니다. 다른 블로그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글들이 있다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독립군 조상님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글들을 읽으시러 꼭 오세요^^ blog.naver.com/nciv

  14. Favicon of http://blog.naver.com/nciv/193671014 BlogIcon 맑은구름 2013.08.21 22:55 신고

    허락하여 주시어 감사해요.
    출처 남기고 사진을 인용했는데 괜찮으신지요?
    http://blog.naver.com/nciv/193671014
    사진 자료 감사히 잘 썼습니다.
    제 글도 한번 읽어주신다면 좋겠네요^^

    • Favicon of http://snowheart.tistory.com BlogIcon Snowroad snowroad 2013.08.28 17:32 신고

      네 글 잘 읽었습니다. 역사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남다르시네요. 모쪼록 뜻 이루시기를 바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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