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사진에 푹 빠져 있을 때에는 오로지 사진을 찍고 현상하고 스캔 작업을 하는 것만이 인생의 전부였을 정도였다. 오늘 문득 지난 스캔 파일 폴더를 뒤적이다 보니 올해 들어서는 한 장의 사진다운 사진을 찍지 못했다. 2008이라고 적힌 폴더는 텅 비어 있고...한참을 보관함에 넣어 둔 카메라는 오히려 낯설기까지 하다.

생각해보면 사진을 가장 열심히 찍던 시절이 일도 가장 열심히 했고 마음도 가장 편안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사진이라는 것은 사진가 본인의 감정이 그대로 이미지에 나타나기 때문에 정신이 멀쩡하지 않으면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직업 사진가들의 고뇌가 얼마나 클지 짐작이 간다. 후배 녀석이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여행을 가자는 제안을 해왔다. 어쩌면 다시 사진을 내 인생의 중심으로 끌어올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 선뜻 응했다.

보관함에 고이 모셔져 있는 카메라를 들어본다. 전원을 넣어보니 여전하다. 그동안 얼마나 쓸쓸했을까... 

은염식 그러니까 필름 카메라를 버리고 디지털로 넘어 온지도 2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디지털로 넘어온 후 변한 것이라면 편리함을 얻은 대신에 감정이 담긴 사진이 적어졌다는 점이다. 예전 필름 카메라를 사용할 때는 촬영 장소와 노출에 따라 필름을 바꾸고 촬영을 하고 (슬라이드의 경우 필름값이 아까워 한 장 한 장 꽤나 신중했다) 충무로로 나가 현상을 맡기고 근처 샵에 들어가 구경도 하고 잡담도 하곤 했다. 몇 시간 후 현상된 필름을 찾아와 스캐너에 물리고 화면에 나타는 이미지를 골라내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필름값의 부담에서 벗어나 일단 많이 찍는다. 슬라이드 36장 기준으로 보통 한 롤에 마음에 드는 컷은 많아야 한 두컷, 디지털로 넘어온 이후에는 마음에 드는 컷이 꽤나 안 나온다. 신중한 노출 계산도 거리와 구도 측정도 적어졌고 신중하게 찍어야 할 장면도 스냅성이 되어 버렸다.

디지털 촬영을 할 때도 필름 촬영을 하는 마음가짐으로 하면 되지 않냐고 할 분들도 있지만 왠지 마음처럼 손이 따라주지 않는다. 이 점은 참 많은 반성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장비 자체에 대한 애정이 적어진 듯하다. 아날로그 카메라에서 느껴졌던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공감대가 디지털 카메라에서는 여간해서는 느껴지지 않는다. 이것이 내 개인적인 소양의 문제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디지털로 넘어온 이후 무언가 빠져 버린 공백이 있다.

특히나 흑백 사진을 즐겼던 내게는 디지털은 참 치명적인데... 다시 이전의 필름 카메라로 선뜻 건너가지 못하는 것은 또 무슨 미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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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차에 그렇게 매력을 느낀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사진이야 어려서부터 자의와는 상관없이 손에 쥔 카메라를 부지런히 들고 다니면서 시작된 일종의 '의무감(?)'같은 것이라면 자동차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부터 나를 해방해 줄 수 있는 '도구'의 의미 이상은 아니었다.

면허를 딴 것이 제대한 이후 소일거리를 찾던 시기였으니 벌써 10년이 되었고 운전을 시작한 지는 8년이 조금 넘었다. 첫 직장이 워낙 야근을 밥먹듯 하던 곳이라 새벽에 집에 가기 위해 드는 택시비만 해도 만만치 않았다는 게 처음 차를 장만하게 된 동기다.

그리고 한 7년을 운전을 하면서도 차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었다. 액센트 1.5라는 조금 특이한 차였는데 고속도로에서 말 그대로 고속이 나와주지 않는 점만 빼면 고장도 없고 주차하기도 꽤나 편한 차였다. 물론 당시부터 조금씩 '아 조금만 더 출력이 나와줬으면..'하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런 순간이 지나면 또 아무렇지도 않게 잘 타고 다녔다.

작년 말 대치동으로 회사를 옮기면서 슬슬 이동거리에 대한 부담이 다시 커졌고 항상 집 앞에서 잠만 자던 놈을 끌고 좀 다녀보니 예전의 부족한 출력에 대한 아쉬움이 하루가 다르게 커져갔고 결국 아반테 2.0이라는 특이한 선택을 해버리게 되었다.

아반테에 베타엔진이라...차를 좀 아는 사람들은 '그래 뭐 그것도 나쁘진 않아'라고 말하지만 차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에? 아반테인데 왠 2.0? 소나타를 사지 그랬어?'라고 이야기 한다. 이런 말은 워낙 많이 들어서 그때마다 주저리주저리 변명아닌 변명을 해보지만 요즘에는 그냥 '어, 그냥 그렇게 됐어'라는 말로 넘겨버린다.

아무튼 가벼운 차체에 나름의 보강을 거쳐 어느 정도 내가 원하는 대로 달려주는 모양새가 되고 나니 또 다시 출력에 대한 목마름이 다가온다. 사람 욕심이라는 게 참 끝이 없다. 예전에는 2000cc만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요즘은 이 정도로는 아직 부족해..라고 생각하니 말이다.

자동차도 이런 면에서 보면 카메라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일단 사진 기술은 없어도 장비로 먹고 들어가는 일이 많은 것처럼 운전은 못해도 일단 비싼 차면 왠지 나아보이는 것같은 것말이다. 그동안 카메라 장비병에 무척이나 시달렸었고 이제사 어느 정도 해탈의 경지에 올랐다 싶었는데 자동차가 또 발목을 잡는 것을 보니 나란 인간은 아직도 한참은 덜 되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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