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염식 그러니까 필름 카메라를 버리고 디지털로 넘어 온지도 2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디지털로 넘어온 후 변한 것이라면 편리함을 얻은 대신에 감정이 담긴 사진이 적어졌다는 점이다. 예전 필름 카메라를 사용할 때는 촬영 장소와 노출에 따라 필름을 바꾸고 촬영을 하고 (슬라이드의 경우 필름값이 아까워 한 장 한 장 꽤나 신중했다) 충무로로 나가 현상을 맡기고 근처 샵에 들어가 구경도 하고 잡담도 하곤 했다. 몇 시간 후 현상된 필름을 찾아와 스캐너에 물리고 화면에 나타는 이미지를 골라내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필름값의 부담에서 벗어나 일단 많이 찍는다. 슬라이드 36장 기준으로 보통 한 롤에 마음에 드는 컷은 많아야 한 두컷, 디지털로 넘어온 이후에는 마음에 드는 컷이 꽤나 안 나온다. 신중한 노출 계산도 거리와 구도 측정도 적어졌고 신중하게 찍어야 할 장면도 스냅성이 되어 버렸다.

디지털 촬영을 할 때도 필름 촬영을 하는 마음가짐으로 하면 되지 않냐고 할 분들도 있지만 왠지 마음처럼 손이 따라주지 않는다. 이 점은 참 많은 반성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장비 자체에 대한 애정이 적어진 듯하다. 아날로그 카메라에서 느껴졌던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공감대가 디지털 카메라에서는 여간해서는 느껴지지 않는다. 이것이 내 개인적인 소양의 문제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디지털로 넘어온 이후 무언가 빠져 버린 공백이 있다.

특히나 흑백 사진을 즐겼던 내게는 디지털은 참 치명적인데... 다시 이전의 필름 카메라로 선뜻 건너가지 못하는 것은 또 무슨 미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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