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접하는 따뜻한 느낌의 책이다. 글만 떼어놓아도 수필집으로 적당하고 사진만 떼어놓아도 사진집으로 적당하다. 적당한 글과 사진이 책장을 쉬이 넘기게 해 주는 책이다. 

인도라는 곳은 우리에게 어쩌면 막연한 동경의 대상인지도 모르겠다. 인도의 삶과 철학을 주제로 한 여러 미디어들이 있어서겠지만 한 번쯤은 가 보고 싶다고 느끼는 장소가 아닐까 싶다.

사진작가 고빈이 부러운 점은 무엇보다 인도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는 점 그리고 그네들의 삶의 모습을 그대로 사각의 공간에 담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사진이 참 편안한 느낌인데 주로 아이들 사진이 많다. 아이들은 꾸밈이 없다.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다. 그 모습이 인간의 아니 모든 생명체의 본연의 모습인데 그 모습을 참 예쁘게 담아내고 있다.


사진은 그 사진을 찍는 순간 완성된다. 내가 사진에 대한 의견을 바꾼 것인데 이 문장을 읽고 나와는 다른 의견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은 같은 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과거의 기억을 찍듯이 현재를 찍는다. 과거에 대한 집착과 미련을 셔터버튼을 누르는 순간 날려 버리는 것이다. 작가의 개인사를 알 길은 없지만 작가 역시 삶에 대한 나름대로의 많은 고민과 여정이 있지 않았나 싶다. 


책의 구성은 괜찮다. 조금 긴 산문(작가의 여행기)을 처음에 싣고 페이지마다 작은 제목과 짧은 글 그리고 사진을 담고 있다. 딱히 처음부터 읽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아무 페이지나 넘겨 보아도 좋을 그런 구성인데 이점이 꽤나 마음에 든다.

작가의 글이 죽죽 늘어지지 않고 짧고 간결하게 전달하고 싶은 말만 적고 있는 점도 강한 인상을 준다. 사진에 대한 설명은 너무 많으면 오히려 독자들에게 해가 된다. 기행문 부분의 글은 조금 아쉬운 데 뭐랄까..작가만의 고유한 여행에 대한 느낌의 기록이라기보다는 과거의 어느 작가의 문체를 따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자기만의 색이 담긴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책장을 넘기며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으며 역시 인도는 언젠가는 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니 작가의 생각이 전달이 잘 된 것 같다. 물론 우리나라의 어느 지역을 찾아가보는 것도 그리고 그곳에서도 충분히 이런 글과 사진을 담을 수 있겠지만 지금의 삶의 터전이 되는 공간과는 전혀 다른 곳으로의 여행이 그래도 좀 더 매력적이다.

종이가 잉크를 잘 먹는 탓에 사진들이 전반적으로 어둡게 나온 점은 아쉬웠다. 작가의 느낌을 담은 사진을 좀 더 독자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었을텐데..라는 아쉬움..그럼에도 종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특유의 냄새는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  디지털이 결코 따라올 수 없는 아날로그만의 휴식 같은 느낌..바로 그 느낌이다.

밝게 웃는 아이들과 동물들의 모습 그걸로 충분했다.



저는 건강한 리뷰문화를 만들기 위한 그린리뷰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도서]게코스키의 독서편력

릭 게코스키 저/한기찬 역
뮤진트리 | 2011년 08월

내용     편집/구성  



책벌레들의 우상..사실 제법 많은 책을 읽어 온 나지만 저자의 이름은 생소하다. '어떻게 이 사람을 모를 수 있냐?'고 물으면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글 첫머리에 결론을 미리 적어 본다. 행여 어떤 책이건 추천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책을 읽게 되면 후회하게 된다. 

이책은 게코스키라는 저자의 일생에 걸친 일종의 회고록-심하게 말하면 일기장-이지 싶다. 필자와 어떤 코드에서든 공감하기가 극히 어려웠던 나로서는 이책을 선택하게 된 것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다. 사실 전제가 잘못되었기 때문인데 나는 뭔가 새로운 책을 추천받기를 바랬기 때문이었다.

물론 각 장별로 책에 대한 내용은 들어가 있다. 그러나 그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찾기는 힘들다. 그리고 내용이 전반적으로 상당히 지역적이고 지엽적이고 또한 개인적이기 때문에 2011년의 한국에 사는 나로서는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았다.

이책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게코스키가 선정한 도서들을 통해 직접 자신의 삶에 변화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책장을 덮고 가만히 생각을 해 봐도 역시나 같은 결론이다. 이책의 전개방식 자체가 그렇기 때문인데 저자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어떤 책이 좋다가 아니라 어떤 책을 통해 어떻게 삶이 바뀌어 나갔나를 적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장 공감이 가는 말은 '내가 읽은 책이 나를 형성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 나 자신을 알게 되었으며, 나 자신을 통해 그 책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는 문장이다. 한 사람을 알기 위해 많은 방법이 있겠지만 그 사람의 서재를 둘러보는 것처럼 좋은 것이 있을까?

아무튼 이책은 생각보다 폭넓은 인기를 누리기는 어렵지 싶다. 일단 한 번 읽은 다음에 저자가 추천하는 책들을 읽어 보고 그책을 통해 자신의 삶에 변화가 주어보거나 변화가 생긴 다음에 이책을 다시 읽는다면 이책의 진가를 알 수 있겠지만 그런 과정을 몸소 따라가보려는 독자는 생각보다 많지는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끝으로 게코스키가 어쩌면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엘리엇의 황무지를 옮겨 본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키우나니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뒤섞나니
기억과 욕망을...

이 문장이 이해가 가는 사람이라면 이책을 어느 정도는 제대로 읽은 것이다.

RPG게임에서 베데스다는 명가로 알려져있다. 특히나 이 엘더스크롤 시리즈는 수십 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많은 팬들의 인기를 누려왔다. 다만 서양식 RPG가 국내 사용자들에게 아주 큰 호응을 못 얻는 점(아마도 캐릭터의 외모와 전투 타격감 정도가 원인일지도 모르겠다)을 생각해보면 엘더스크롤이 국내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점은 게임의 작품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생각하게 해 준다.

이번에 선 보인 5편 스카이림은 전작에 비해 한층 향상된 그래픽적 요소가 돋보인다. 하드웨어가 진보하니 당연한 일이기는 하겠지만 오리지널 버전에 전 세계 사용자들이 만든 모드가 추가되면서 게임의 확장성은 거의 무한할 정도로 넓어진다. 서양 RPG는 이런 점이 참 장점이 아닌가 싶다. 얼마 전에 플레이해본 드래곤에이지에서 이런 확장의 진수를 이미 체감해본 나로서는 스카이림의 확장 역시 반가울 뿐이다.

게임 그래픽이 사실적인 정도를 넘어선다는 표현이 어울릴까? 하드웨어 사양이 갈 수록 올라가면서  PC게임에서 묘사할 수 있는 수준 역시 어디까지일지 궁금해진다. 이런 추세라면 머지 않아 거의 실사판에 가까운 게임을 할 수도 있겠지 싶다. (이미 몇몇 게임은 그런 수준이기는 하지만..)

4년 전에 장만한 PC다보니 내 PC에서는 옵션을 어지간히 낮추었음에도 꽤나 사실적인 그래픽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래픽적인 면에서 스카이림은 참 칭찬할만한 게임이다. 그러나 조작성이나 뭐랄까 전투 장면에서는 2D 게임을 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는 법이겠지만...

차라리 드래곤에이지2처럼 아예 액션게임(?)이었으면 더 나았으려나?

[도서]유한계급론

원용찬 등저
살림출판사 | 2007년 05월

내용     편집/구성    




'베블렌'이라는 이름은 그리 낯설지 않다. '과시적 소비'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이 괴팍한 경제학자의 생각은 이책을 쓴 당시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는 없어 보인다. 아니 오늘날의 과시적 소비의 정도가 훨씬 지나치지 않을까?

보이기 위한 소비 행태인 과시적 소비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남들이 보기에 전혀 쓸데없는데 돈을 쓰는 행동은 그가 힘든 일을 하지 않는 고위한 존재라는 점을 알리기 위한 수단인 셈이다. 일부러 새끼 손가락의 손톱을 길러 그가 육체노동을 하지 않는 '있는 집 자식'임을 드러내는 행태는 차라리 애교에 속한다.

과거에는 가문이라는 것이 사람을 외부적으로 판단하는 기준으로서 큰 의미를 가졌지만-물론 요즘도 그렇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비중은 많이 줄었다-요즘은 경제적인 성공을 통해 그 사람을 외부적으로 판단하는 일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소위 명품이나 수입차를 끌고 다니는 사람은 사회적으로(일면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이고 남들이 그 성공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에 만족을 느끼게 된다. 과거의 귀족들은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타고난 가문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그런 혜택(?)을 누렸지만 현재에 와서는 한번에 그 사람의 가문을 알아내기도 어렵고 특히 우리나라처럼 전통의 가문이 드문 현실에서는 뭔가 다른 것으로 부를 드러내야만 했다.

즉 돈이 많은 부자들은 효용성보다는 가격이 비싼 명품들을 그들을 남들과 다르게 하는 도구로 삼았고 과거에도 그랬지만 그 부자들을 따라하고 싶은-자신들도 그 부자들처럼 남들의 시선을 받고 싶어하는-이들은 앞다투어 명품을 구입하기에 이른다. 물론 이 명품이라는 용어 자체도 상당히 어폐가 있어보이는데 무엇을 기준으로 그런 용어를 사용하는지 좀 더 숙고해볼 일이다.

사정이 이러니 소위 3초백이라 불리는 루이비똥 가방을 든 사람들이 지천에 널리게 된다. 그러나 정작 부자들은 그런 흔한(?) 명품은 지양하는 추세이고 결국 돈을 버는 것은 천박한 심리에 부응하는 상품을 만들어내는 회사들이다. 

일반 서민들이 아무리 수입 중고차를 사고 명품 가방을 둘러메고 다녀도 부자들을 따라갈 수는 없다. 애초에 쓰는 금액의 규모도 규모지만 오늘날에 와서는-아니 예전의 귀족 시대에도 그랬지만-돈만으로는 어려운 벽이 서민과 부자들을 가로 막고 있기 때문인데 바로 '교양'이라는 요소다. 

물론 졸부들의 경우는 그런 교양이라는 면에서 일반 서민들보다 한참 떨어지는 경우도 허다하지만 전통적인 부를 축적해온 이들의 교양은 보통 사람들이 따라가기에는 쉽지 않은 거리에 있다.

책에서도 지적하고 있지만 외적인 상품으로 자신들이 부자인 척할 수는 있지만 어려서부터 부자들 혹은 귀족들이 받아 온 지적인 교육과 교양은 따라갈 수 없기에 소위 천박한 부자 소리를 듣게 된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없는 형편에 명품 가방을 들고 연주회나 전시회를 찾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참 씁쓸한 일이면서도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는 상류 사회에 대한 서민들의 막연한 동경의 일면을 보게 된다.

계급과 계급의 투쟁이라는 말은 우리가 자주 듣지만 실상 우리 주변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다른 계급을 동경하고 따라가려고 가랑이가 찢어지도록 달려가는 서민들의 모습들이 더 많으니 참 아이러니한 세상이 아닌가...


[도서]나는 궁금해 미치겠다

A. J. 제이콥스 저/이수정 역
살림출판사 | 2011년 07월



일단 책 제목이 독특했다. 이런 제목이면 한 번쯤 겉장을 넘겨 보게 된다. 책의 뒷표지와 띠지에 적힌 내용들 역시 궁금증을 자아낸다. 인간처럼 호기심이 강한 동물이 없는데 그런 면에서 이책은 제법 제목을 잘 정했다싶다. 

이책은 총 9가지의 작가의 실험으로 구성되어 있다. 온라인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남장여자 혹은 여장남자 행세는 제법 많은 이들의 공감을 자아낼만한다. 그리고 일상을 아웃소싱하는 실험은 누구나 한 번쯤은 바라는 일이 아닐까? 획기적으로 정직해보기 편은 조금 어색한 감이 있다. 정직을 표현하는 방법들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스타로 살아보기 편은 꽤나 흥미있는 주제였다. 만약 내가 장동건이나 원빈이 되어 하루를 살아본다면 이제까지 살아온 경험들보다 더 많은 것들을 하루에 느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일상에서 모든 편견과 오류 몰아내기 편은 조금은 억지스러운 면이 없지 않은데 아마도 주제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진행한 내용에 별로 공감이 가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누드모델 되기 편은 굳이 실험이라도 말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별 다른 느낌이 없었지만 이어지는 조지 워싱턴의 원칙대로 살아보기나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기 편은 미국이 아닌 한국에 살고 있는 지금의 우리들도 한 번쯤 해볼만한 실험이지 싶다. 

무엇보다 이책에 실린 내용들이 실제로 필자가 실천한 내용이라는 점에서 자극이 된다. 우리는 많은 경우 '~했으면'이라고 생각만 하거나 공상을 하곤 하는데 그런 상상과 공상들을 직접 실천에 옮기는 일은 드물다. 필자의 여러 실험 중 내 입에 맞는 치약 찾기는 당장이라도 해 볼 수 있는 실험이지만 아마도 이런저런 핑계로(이 순간의 나 역시도) 실천에 옮기기는 어렵지 싶다.

우리는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길들여져 있다. 그러나 그 너무도 당연하다는 것에 대해 과연 진지하게 고민하고 생각해봤는지 되묻고 싶다. 남들이 당연하다고 하니까 나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그 방식과 그 틀에 자신을 맞추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필자는 그런 당연함에 의문을 제기했고 단지 의문을 제기하는데 그치지 않고 직접 자신이 경험을 해보기로 한 것이다. 주제나 내용이야 어쨌건 그와 같은 실천에 많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이책을 읽는 내내 '과연 나는 어떻게 하고 있나?'라고 나 스스로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던졌다.

부록은 제법 신선하다. 본문에서 필자가 직접 사용했던 조지 워싱턴의 110가지 원칙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책들이 본문에만 이러저러하다고 적어 놓고 정작 독자들이 그 방법 혹은 출처를 찾아볼 기회를 주지 않는데 이책에는 당장이라도 바로 실천에 옮겨볼 수 있는 원칙을 적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필자가 한 방식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고도 나만의 110가지 원칙 실천법을 만들 수 있다.

그럼에도 뭐랄까.. 끝내 아쉬운 것은 작가의 주관이 너무 많이 들어있다는 점이다. 물론 온전히 작가의 창의적인 실험만으로 이루어지다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여러 실험들에 좀 더 객관성을 부여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실험 자체에 대한 내용 외에 별로 필요치 않은 사족들도 곳곳에서 눈에 보여 아쉬웠다. 

하지만 이 역시 나의 주관일 뿐이다. 필자가 실험한 9가지 외에도 우리는 더 많은 창의적인 실험을 할 수 있다. 이책은 그런 실험을 바로 지금 할 수 있는 동기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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