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라는 책도 있지만 짧은 인생을 돌아봤을 때 가장 열정적으로 살았던 시기는 책을 곁에 두고 있었을 때였던 것 같다. 그 책이 두꺼운 법률 수험서였건 그렇지 않으면 가벼운 소설이었건 내가 제일 집중할 수 있었고 하루하루의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던 때였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 세트씩은 있을법한 전집류를 무식하다 싶을 정도로 읽어나갔던 영향일까? 사회에 나와서도 글을 쓰고 책을 만들 때가 가장 열정적이었고 일에서건 연애에서건 나름대로 멋지게 살 수 있었던 시기였다. 책이 주는 매력은 대단하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그리고 결코 살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을 체험할 수 있는 데다가 책 속에 빠져 있는 동안은(그것이 독서건 책을 만드는 일이건) 영혼이 평화롭다고나 할까?

그런 영향인지 사회에 나온 이후 지금껏 책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물론 지금은 책이 주가 아닌 것이 아쉽지만 언젠가는 다시 책 속에 파묻히는 내 모습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본다. 앞으로 꿈이 있다면 내가 찍은 사진과 글로 채워진 책을 내보는 것인데 언제가 되야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만으로도 제법 유쾌해진다. 책이 주는 매력에 한참 빠져있을 때는 대학로 어느 극단에라도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고 실제로 모 극단의 단원 모집 공고를 놓고 오랜 시간 고민에 빠졌었던 적도 있다.

보통 한 인간의 삶이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비교적 단조롭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책이나 연극은 또 다른 삶을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인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잠들기 전 한 시간씩은 무슨 일이 있어도 책을 읽는 시간으로 하려고 노력 중이다. 예전의 열정을 되찾기 위한 노력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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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고 기다리던 책이 나왔다. 망설일 틈도 없이 바로 주문...

에코의 책은 늘 내게 심란함과 경외감을 동시에 불러들이는 매력이 있다. 아니 마력이라고 해야지 싶다.

오늘 집에 가면 도착해있을텐데... 읽으려고 쌓아둔 책은 갈수록 늘어가는데 대체 언제 다 읽을지...

책읽고난 소감은 차차 올리도록 하겠다. 간만에 흥분되는 날....

원제는  'La Misteriosa Fiamma della Regina Loana' 이고 원본 표지는 이렇게 생겼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리나라에서는 에코 책들을 주로 펴온 열린책들에서 이세욱 번역가의 손을 빌어 출간했다.

도서 상세정보는 여기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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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회사까지 지하철 편도 시간이 40여 분 남짓 걸리는 것은 한편에서 보면 지루하기도 하지만 잘만 활용하면 꽤나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시간이다. 이 시간을 가장 적절하게 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을 하던 와중에 드라마들이 보통 40여 분 내외라는 것을 알고 나서 그동안 밀렸던 드라마들을 보기 시작했다. 물론 이 선택에는 비교적 최근에 변경한 휴대폰이 제법 좋은 화질을 보인다는 것도 한몫했다.

그리고 어제 대단원의 막을 내린 드라마가 ‘엔진’이다. 기무라 타쿠야가 나오는 드라마는 거의 다 봤는데 유독 이 드라마는 그다지 내키지가 않았다. 어디선가 스치듯이 본 감상평에서 ‘별로’라는 문구를 봐서일까? 엔진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이 차가 등장하고 레이싱이 등장하지만 이 드라마의 중심은 사실 사람의 엔진 그러니까 ‘심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좀 더 말하자면 ‘마음’인 셈이다.

화려한 드라마들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이 드라마는 확 끌리는 매력은 없을 수도 있다. 경주 장면이 멋들어진 것도 아니고 극적인 반전 요소도 없다.(마지막 장면조차도 반전스럽지 않다.) 타쿠야가 출연한 드라마치곤 밋밋하다는 인상이 들 수도 있지만(특히 히어로나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 개의 별을 본 사람이라면) 과연 주인공 지로의 역할을 그만큼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타쿠야의 연기력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도 많지만 적어도 엔진에서의 타쿠야는 그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고 생각된다.

애초에 이 드라마는 주인공으로 타쿠야를 정해놓은 상태에서 각본이 작성됐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타쿠야의 개성이 장면장면에 묻어날 수 있었고 어느 드라마보다 가장 ‘타쿠야’적인 드라마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보아가 스마스마에 출연해서 타쿠야의 특징으로 묘사하기도 했던 “뭐야?(なんだよ)”라는 표현을 원 없이 들을 수도 있다. 엔진의 마지막 장면은 어떻게 보면 조금 억지스러운 면도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리어 스포일러가 날아가고 결승점까지 고장난 차를 끌고 가는 모습... 전편을 모두 다 보지 않고 이 장면만 따로 봤다면 “야 너무 억지 아냐?” 라는 느낌이 들 수도 있겠지만 엔진 전체의 내용을 압축한 주제격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기무라 타쿠야의 매력도 볼만하지만 지금은 부쩍 커 버린 우에노 쥬리, 토다 에리카, 카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점도 이 드라마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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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꿈 속에서 다른 꿈을 꾸었는지, 두 꿈을 연달아가면서 꾸었는지, 아니면 오늘은 이 꿈, 내일은 저 꿈 하는 식으로 교대로 꾸었는지 기억해 낼 수 없다.

나는 한 여자....... 내가 아는 한 여자를 찾고 있다. 나와는 뜨겁고 깊은 관계를 맺고 있던 여자다. 이런 관계가 왜 소원해졌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어쨌든 여자에게 계속 연락을 취하지 않았던 것이 나의 잘못이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그대로 흘려 보냈다니, 정말 이해가 안 간다. 나는 그 여자를 찾고 있다. 아니다. 그 여자들인지도 모르겠다.

한 여자가 아니라 여러 여자다. 여럿이었다. 나는 여자들을 모두 같은 이유로 잃었다. 내가 무심했던 탓이다. 지금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하나만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나는, 여자들을 잃음으로써 많은 것을 잃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꿈속에서는 여자의 전화번호가 쓰인 수첩을 찾을 수 없거나, 내 수중에서 사라지거나, 있는 데도 펼칠 수 없게 되고는 한다. 심지어는 펴기는 펴는데. 원시(遠視)가 되어 버리는 바람에 이름을 읽을 수 없게 되는 꿈을 꾸기도 한다.

나는 그 여자가 어디에 있는지 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떻게 생긴 곳인지 모를 뿐, 그곳이 어디인지는 안다. 계단, 로비, 혹은 층계참에 대한 내 기억은 선명하다. 그런데도 나는 그곳을 찾기 위해 온 도시를 쑤시고 다니지 않는다. 그저 고민에 빠진 채 얼어붙은 듯이 죽치고 있다.

나는 여자와의 관계가 소원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그 자리에 나가지 않았던 이유, 마지막이 되어버린 그 자리에 나가지 못했던 이유를 생각하면서 내 머리를 쥐어 뜯는다.그 여자는 내 전화를 기다리고 있음이 분명하다. 아, 이름이라도 알았으면....... 나는 그 여자가 누군지 잘 안다. 단지 그 모습을 머릿속으로도 그릴 수 없을 뿐이다.

-움베르트 에코, 푸코의 진자 II 1990, 티페렛 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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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연금술은 현숙한 창녀다. 이 창녀는 애인은 많아도 어느 누구에게도 마음의 문을 열지 않음으로써 결국 실망만을 안기고 만다. 이 창녀는 거만한 자는 바보로, 부자는 거지로, 철학자는 멍청이로, 속은 자는 사기꾼으로 바꾼다.

- 트리테미우스, '히르사우겐시움 연대기', II, 산 갈로, 1690,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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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뿌리부터 바꾸어 놓은 책..

원래 가지고 있던 책이 너무 낡아 새로 한권 주문을 했다.


나는 정녕 내 마음 속에서 절로 우러나오는 것에 의해

살아보려고 했던 데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이 어찌 그다지도 어려웠을까?
 
내 인생의 시작에서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생을 마치는 순간까지 짊어지고 가는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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