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란 묘한 것이어서 관계가 지속되고 있는 동안에는 어지간해서는 긍정보다 부정의 감정이 크게 작용하지만 막상 그 관계가 끝나고 나면 부정보다는 긍정의 감정이 크게 작용한다. 사람과의 관계건 혹은 사물과의 관계건 그래서 그 관계가 끝난 후에 자신의 실수나 더 잘 하지 못 했던 것들에 대한 회한의 감정이 종종 머릿속을 가득 채울 때가 있다.

허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난 후의 보상심리일 뿐이다. 다시 만난다면 혹은 다시 그것을 갖게 된다면 이번에는 이렇게 더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다짐과 스스로에 대한 약속은 이미 끝이 나 버린 관계에 대해 자신의 '탓'이 아님을 그래서 불가피한 것이었음을 자신에게 납득시키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도 몇 번인가 그런 생각을 했지만 결국 생각이 다다른 곳은 '다시' 만나거나 '다시' 갖게 되더라도 이전과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적어도 그 '대상'이 같다면 행동이나 생각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차라리 그 마음과 다짐으로 새로운 이를 만나거나 새로운 것을 들이는 것이 더 낫다. 

관계가 깨진다는 것은 스스로 '알고 있는 이유' 이외의 수도 없이 많은 '알지 못 하는 이유들' 때문이다. 그 알지 못 하는 이유들은 끝끝내 해소될 수 없기에 '되돌림'은 오히려 서로에게 남겨진 상처를 더 벌어지게 할 뿐이다.

다시 되돌이키는 것이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나'를 버릴 때다. 내가 상대에게 혹은 어떤 사물에 완전히 몰입되어 내 존재가 사라질 지경에 이른다면 그땐 비로소 과거의 어떤 오류나 엇갈림도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된다는 것은 '인간'이라는 전제 하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신에 귀의한다거나 어떤 신념에 스스로를 버리는 경우가 드문 예일 뿐..


Nikon D300, AF-S 35mm f/1.8G


얼마 전 포스팅은 한강시민공원의 사물들에 대한 이야기. 이번에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는 공간인만큼 그곳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도 꽤나 다양하다. 물론 평소의 일상생활에서도 많은 이들을 만나지만 조금은 느긋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기는 쉽지가 않다. 하지만 공원에 나가면 '사람들'을 제대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네들의 삶 역시도..

공원에서 만나는 이들은 보통의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처럼 제각기의 방향을 가지고 있다. 차이라면 일상의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치우친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해 공원에서 만난 이들은 그 방향이 각자 다르다는 점이다. 주어진 길을 갈 수도 있고 때로는 길이 나 있지 않은 공간으로도 갈 수 있다. 사람들에게 스스로 결정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공간..바로 공원이다.

또한 모처럼 자연과 동화가 될 수도 있는 공간의 역할도 한다. 비둘기야 원래 사람을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지만 사람들이 주는 먹이에 익숙한 녀석들이 있는 곳에서는 내 눈높이에서 비둘기들을 마주 볼 수도 있다. 마치 서해 어느 바닷길에서 새우깡으로 유혹할 수 있는 갈매들처럼...

삶의 방향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끌 수 있는 곳. 공원은 그렇게 자유로움과 여유가 함께 하는 공간이다. 대단한 삶의 이유도 삶의 방향도 목적도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길을 만들어 걸을 수 있는 곳. 공원은 그래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 아무렇게나 바닥에 누워 하늘을 보고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곳이니까..


Contax Aria, Carl Zeiss 35mm Distagon f/2.8, Ilford XP2, LS40



감옥을 둘러싸고 있는 탑은 높았다. 높은 탑과 꽉 막힌 벽들..사방을 둘러보아도 어느 곳으로도 쉽게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았다. 어쩌다가 이곳에 이런 모습으로 있느냐고 물어도 나는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쓴웃음만 지어 보일 뿐이었다. 사실 내가 여기에 갇혀 있다는 사실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그래도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를 알아낸 것은 큰 수확이었다. 이전에는 내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가 없어 시간이 갈 수록 나의 정체성을 찾지 못 하고 방황하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설마 이런 곳에 머물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너무나 우울한 그리고 고요한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문은 안에서 잠그게 되어 있어 바깥에서는 어떤 수를 써도 들어올 수가 없었다. 스스로 잠가 버린 감옥의 문. 그것이 내가 갇혀 있는 마음의 감옥이었다. 문을 안에서 잠그고 두꺼운 자물쇠도 채워 두어 안에서조차 열쇠가 없으면 나갈 수가 없었다. 나는 그렇게 나 스스로를 가둬 두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찌된 일인지 내가 이곳을 찾았을 때 나는 문을 열어주었다. 열쇠로 자물쇠를 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는데 아마도 한 번도 이 문을 스스로 열었던 적이 없었기에 사방에 퍼진 녹이 자물쇠를 더욱 단단하게 고정시켰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그곳에는 제법 많은 방들이 있었는데 각각의 방마다 다른 내가 갇혀 있는지 아니면 이 많은 방들중의 하나에 내가 갇혀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느 방이냐고 물어보았더니 시간이 갈 수록 방 하나하나에 또 다른 내가 한 명씩 늘어난다고 했다. 세월이 가면서 나는 그렇게 나를 하나 둘씩 감옥에 가두어두고 있었던 것이다. 이 많은 방들이 모두 다 차면 어떻하냐고 묻자 나는 어깨를 으쓱해보일 뿐 대답이 없었다.

간간히 빛이 들어오는 복도는 그리 낯설지 않았다. 창문들은 모두 열 수가 없게 되어 있었다. 빛이 들어오면 빛을 받아들이고 어두워지면 그냥 그 어둠을 받아들여야 하는 어쩌면 수동적인... 어쩌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체념의 공간 그 자체였다. 저 멀리에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이 보이지만 나는 한 번도 그곳까지 걸어가본 적은 없다고 했다.

왜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냐고 묻자 나는 왜 그래야 하냐고 반문했다. 왜 이곳에서 나가야 하냐고... 나는 그 대답에 뭐라고 할말을 잃어 고개를 떨구고 바닥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가장 최근의 내가 머물고 있는 방은 제법 밝았다. 나는 끝내 내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았다. 나만의 공간에 또 다른 내가 들어와서는 안 된다고 했다. 좀 더 이야기를 나누어보려했지만 나는 그 두꺼운 문을 안으로부터 잠가버렸다. 사방이 적막한 가운데 나는 문 안에 홀로 갇힌 나와 문 밖에 서 있는 나를 구별하기조차 어렵게 되어 버렸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최근의 내가 머물고 있는 방이 아침이면 해가 드는 밝은 방이라는 사실이다. 해마저 들지 않는 방이었다면 애초에 내가 이곳을 찾아오는 것조차 막았을 텐데...

어쩌면 나는 머지 않아 이곳의 문이란 문은 모두 내손으로 열어버리고 자물쇠가 굳게 잠긴 정문도 열어버리고 밖으로 나올 것 같다. 사실 나는 이곳을 방문하기 전부터 내가 이곳에서 조만간 떠날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었다.


Leica M6, Summicron 35mm f/2.0 asph, Superangulon 21mm f/3.4, Ilford XP2, LS-40 Film scan


비가 제법 많이 내리는 날이었는데 갑자기 내린 비였습니다. 저곳은 마을버스를 타는 곳인데 아가씨 한 명이 어쩔 줄을 몰라하며 내리는 비를 그대로 다 맞고 있더군요. 표정은 잘 안 보이지만 뭐랄까 황당하다는 웃음... 비가 올 것 같지 않았는데 갑자기 쏟아지니 어쩔 수가 없었던 거죠.

뒤의 천막에라도 가 비를 피하면 되지 않겠나 싶지만 이미 워낙 많이 맞은터라 이제와서 비를 피해봐야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살다보면 그럴 때가 있죠. 자신이 예상한 것보다 더 많은 일들이 한번에 터져버려서 그저 손을 놓고 쏟아져들어오는 것들을 온몸으로 받아낼 수밖에 없는 순간..

아마도 그 당시 저분의 마음은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이제와 생각을 해봅니다. 딱 10년 전의 사진인데 동네도 지금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지금 저곳에 가보면 남아있는 가게는 하나도 없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하지만 요즘은 3년정도면 강산이 변하는 것 같네요. 아니 스마트폰 한대가 새로 나오는 1년이면 변할까요?

흑백은 요즘과 같은 시대에 아련한 향수처럼 다가옵니다. 일전에 앞으로 가능한 흑백 촬영을 하겠다 했었는데 이전의 사진 스캔 폴더를 뒤적여보면 생각보다 흑백사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흑백 필름은 스캔작업이 제법 까다로운데 그래도 그 당시에는 재미가 붙어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이 사진은 후지 리얼라가 원판이고 사후에 라이트룸에서 레드 필터를 적용시킨 것입니다.


Contax T3, RealaLS-40 film scan



세상에 그 사람만 있으면 못할 것이 없을 줄 알았지요. 내 삶이 아닌 우리로서의 삶. 그와 내가 말 그대로 하나가 되어 세상을 함께 바라보고 세상을 함께 살아갈 수 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만나기까지의 과정, 만난 후의 삶의 모습들이 참 특별하다 생각을 했었고 그런 소중함을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같이 끌어안고 살아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특별하다고 생각한 우리의 만남과 우리의 일상은 사실 특별할 것이 하나도 없었지요. 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인데 세상과 우리를 나누어 생각한게 가장 큰 실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인가 전혀 특별하지 않은 우리의 모습을 세상에 비춰보고서야 우리의 길이 서로 엇갈려있음을 그리고 둘의 길이 영원한 평행선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랑이라는 감정. 그 감정만으로 세상을 넘어서고 아니 넘어서지 못하더라도 세상을 함께 끌어안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았지요.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그녀도 나도 이미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만남은 우연처럼 혹은 기적처럼 전혀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다가오지만 헤어짐은 그것을 어렴풋하게나마 이미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누가 먼저 이별을 이야기할 것도 없이 다른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이별이라는 단어는 안녕이라는 말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미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순간순간마다 느끼고 있었으니 말이죠..

하지만 이미 알고 있던 사실도 그것이 현실화되면 감정의 폭풍에 휘말릴 수밖에 없습니다. 헤어진 이후에는 늘 좋은 기억과 행복했던 추억들이 먼저 떠오르게 되니까요.. 

그리고 이제 혼자 걸어야 하는 길을 바라봅니다. 조금씩 걸음을 걸어보기도 하면서 이길이 앞으로 내가 가야할 길이구나..나 혼자 걸어야 하는 길이구나..하고 이 생각 저 생각을 해봅니다. 이제까지.. 그러니까 함께 걷던 그리고 함께 걸어갈 수 있었던 길과 전혀 다른 길이기에 처음에는 제법 낯설고 두려운 마음도 듭니다.

그렇지만 걸어가야겠지요.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록 그 사람에 대한 기억과 추억과..그리고 둘이 함께한 기억, 둘이 함께 할 미래와 멀어지지만 그래도 걸어가지 않을 수 없겠지요. 이 또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가 걸어가야 할 나의 길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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