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신림동에 나갔다. 대학 시절 숱하게 드나들던 어쩌면 암흑기라 불러도 좋은 시기에 접했던 그 거리를 오늘은 반가운 인사와 이야기로 채워 넣을 수 있었다. 사실 신림동에서 약속이 잡히고 나서는 조금 주저했다. 그곳은 내게 그렇게 반길만한 곳은 아니기에 더 그런 느낌이 강했는지도 모르겠다. 그곳에 살고 있는 분들에게는 폐가 되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신림동은 책냄새와 치열한 수험의 열기와 패배의 눈물로 얼룩지고 젊은 날의 회한이 서려 있는 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고통이나 상처는 다시 그것을 마주해 이겨내지 않으면 평생 마음 한 구석에 얼룩으로 남을 뿐... 그렇게 찾아간 신림동에서 오히려 '나'의 내일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무리 말로 혹은 글로 '나는 바뀌고 있다'거나 '나는 이제 예전의 내가 아니야'라고 말하고 써보았자 실제로 행동으로 바뀌지 않으면 오히려 말을 하지 않은 것만 못 하다. 그런 말을 할 때는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도 하고 각오도 한 상태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상의 행동 특히 반사적으로 드러나는 행동은 그런 사전의 준비를 하지 못 하기 때문에 본래의 자기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오늘은 그런 나의 모습을 내 스스로 확인할 수 있었다. 다행인 것은 그 순간 그것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는 것.. '아, 내가 또 이전의 실수를 반복하려 하고 있구나'라는 경고등이 순간 온몸을 흔들었다. 

 

예전에는 그런 실수를 하고 있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 하고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듣거나 해서 비로소 되돌이켜 깨닫곤 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타인에게서 지적을 받은 실수는 내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저항감때문에 곧 사그라들기 마련이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실수를 하는 순간 그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면 그 자리에서 바로 그 '오류'를 바로 잡을 수 있게 된다. 물론 그 순간에도 그저 '아, 잘못했네'라고 속으로만 깨닫고 오히려 부끄럽게 느끼거나 자존심에 상처를 받아 다시 내면으로 가라 앉아버리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래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즉 '실수를 깨닫는 것'과 그 '실수를 바로 잡는 것'이 동시에 적극적으로 그리고 긍정적으로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의 감정이란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기운이 긍정적인 기운보다 강하다. 부정은 누구라도 쉽게 할 수 있지만 긍정은 치열한 연습과 노력을 통해 습관이 되지 않으면 좀처럼 드러나지 않게 된다. 혼자 있는 시간에 끊임없이 자기 최면을 걸고 사람들 속에 섞일 때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그렇다고 늘 긴장을 하고 있으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겸손하게 자신을 인정하라는 말이다. 이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자신있게 말할 수 있지 싶다.

아무튼... 한나절만에 제법 많은 것들을 되돌이켜 배울 수 있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통해 그것을 직접 깨우칠 수 있었다는 것이 더 반가운 일이다. 

부딪히지 않으면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 

부딪히더라도 깨닫지 못 하면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 

깨닫더라도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

부딪히고 깨닫고 움직이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Panasonic LX-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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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다시 둘레길이다. 왼쪽 발이 생각지도 않게 아파 한동안 미뤄두었는데 덕분에 무더운 여름을 보내고 가을에 접어드는 시점에 둘레길을 다시 걸을 수 있게 됐다. 북한산둘레길 6구간은 이전에 적었듯이 5구간의 종료지점이 곧 시작점이다. 둘레길의 앞구간들은 구간별로 구분이 확연하게 되어 있는데 6구간 그리고 7구간은 그런 구분이 없이 바로 이어졌다. 오늘 걸은 구간은 6구간 평창마을길과 7구간 옛성길이다.

길음역에서 내려 3번 출구로 가 7211번을 타고 롯데아파트에 내리면 된다. 조금 걸어올라가면 이전에 5구간을 마치고 내려왔던 길을 만나게 된다. 6구간 평창마을길은 이전의 구간들과는 전혀 다르다. 구간 이름처럼 평창동 마을을 관통하는 코스가 이어진다. 마치 삼청동의 어느 골목을 걷는 그런 느낌이다. 6구간만 걷는다면 굳이 등산용 장비는 필요하지 않아 보인다. 다만 이어서 7구간을 간다면 등산화 정도는 챙겨서 신자.

6구간은 북한산국립공원의 안내로는 5Km, 소요예상시간은 2시간 30분이다. 6구간은 이 수치가 어느 정도 맞아 트레킹앱 역시 비슷하게 잡아내고 있었다. 이 구간은 전형적인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길이기 때문에 수월해보이지만 사실 아스팔트를 걷는 것이 산길을 걷는 것보다 몸에 무리도 많이 가고 피로도 크다는 점을 기억하고 무리하지 않도록 하자.

전체적으로 위로 올라가는 고도 형상을 볼 수 있다. 제법 높이 올라가서 한동안 걷다가 약간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는 형태로 이러지는데 5Km지점에서 일반 도로로 나오면서 고도가 가장 낮게 떨어진다. 

오늘은 혼자 걷는 게 아니어서 SLR은 들고 나오지 않았다. 누군가 동행이 있다면 동행과의 대화나 함께 걷는 것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몇 장의 사진을 더 남기는 것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한 까닭이다. 이번에 함께 간 녀석은 LX5다. RAW+JPG모드로 담아봤는데 집에 와서 편집을 해 보니 RAW보다 JPG가 더 나아보인다. D700과는 또 다른 느낌인데 아마도 라이트룸의 어도비 프로파일 때문이 아닐까 싶다.

6구간은 아스팔트로 시작한다. 이 느낌은 구간이 마무리될 때까지 크게 달라지지 않는데 사전에 구간에 대한 정보를 접하지 않고 왔기 때문에 조금은 특이한 느낌이다. 이제까지의 구간들이 흙으로 된 전형적인 산길이었던 것에 비해 이 구간은 전형적인 동네길이다. 

평창동은 한옥과 양옥이 동시에 존재하는 묘한 동네인데 잘 알려진 것처럼 강북의 부촌 중의 한곳이다. 하지만 굳이 그곳의 집들에 위화감이나 어색함을 느낄 필요는 없다. 어디나 근본적으로 사람이 산다는 것은 같으니 말이다.

완전히 주택가 밀집지역이어서 그런지 제법 조용했고 주말임에도 오가는 사람이 없어 마음 편하게 걸었던 길이다. 동네는 뭐랄까 개발과는 거리가 아주 먼 느낌이랄까.. 예전의 집들이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채로 마치 어느 순간에 시간이 멈춘 듯한 그런 느낌을 주었다.

어느 집 앞에 자리한 계곡의 모습인데 서재에 앉아 저런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마음에 들었다. 아마 이 지점이 그나마 북한산이라고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지점은 아닐까 싶다. 그만큼 산과는 거리가 먼 구간이다.

둘레길에서 볼 수 있는 잔재미는 역시 예상치 못한 구경거리다. 허머가 떡 하니 자리잡고 있어 담아봤다. 연비가 그렇게 안 좋다는 차인데(군용이다보니) 겉으로 보기에는 꽤나 남성적인 느낌이 강하다 싶다. 엔진음은 어떨까 궁금해진다.

어느 회사(?)였을가 앞에 아무렇게나 방치된 낡은 트럭. 보아하니 전시용으로 놓아둔 것 같은데 제법 운치가 있다. 저 차도 어느 시절엔가는 도로를 누비고 다녔을텐데 이제는 그 수명을 다하고 우두커니 앉아 오고가는 차들을 바라보는 자리에 서 있다. 

사실 출발 전에는 5Km라는 거리가 제법 되기 때문에 어색한 걷기가 되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다. 참 다행스럽게도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것처럼 이야기가 잘 통했다.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기를..;) 딱딱한 아스팔트 길 위를 만약 혼자 걸었다면 참 무료하고 지루한 걷기가 되었을 텐데...

거의 모든 사진이 24mm로 찍은 까닭에 전체적으로 길이 멀어보이지만 실제로도 저렇다고 보면 된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가 앞서거니 뒷서거니하면서 평창마을을 감싸고 도는 그런 느낌이다. 한여름이라면 이 구간은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다른 구간에서처럼 나무 그늘이 있어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유난히 사찰과 기도원이 많은 구간이었다. 청련사 앞에는 의자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어 잠시 쉬어갈 수 있다. 이곳에서 사과를 먹고 한참을 머물렀다. 정말 고요한 가운데 풍경 울리는 소리만 잔잔하게 퍼졌던 시간.. 물론 잠시 후 사람들이 늘어나고 차들이 지나다니긴 했지만 꽤나 평화로운 공간이다.

길이라는 것은 우리가 어딘가를 목적지로 삼아 가기 위한 수단일 때가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길 자체가 목적이 되기도 한다. 오늘과 같은 경우가 후자라고 하겠는데 그럴 때는 가능한 천천히 길 자체가 들려 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걸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시간을 내 길을 걸을 이유가 없다. 마찬가지로 사람을 만난다면 그 사람 자체가 만남의 목적이기 때문에 온전히 그 사람에게 집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을 만날 이유가 없다.

아무렇게나 서 있는 마쯔다의 쿠페인데 제법 오래된 모델같아 보인다. 낡은 차고와 낡은 문과 제법 잘 어울린다. 옛것은 옛것과 있을 때 잔잔한 어울림의 느낌이 살아난다. 만약 저 자리에 최신 스포츠카가 서 있었다면 꽤나 어색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울림이란 억지로 꾸민다고 될 일이 아니다. 

평창마을길에 접어든 이래 처음 만나게 되는 흙길이다. 이 구간에서는 흙길이 반갑다. 다른 구간에서는 흙길이 당연하기 때문에 별 느낌이 없지만 이 구간에서는 아스팔트길이 당연하기에 흙길이 반갑다. 뭔가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이렇게 사람의 느낌을 마비시키는 무언가가 있다. 살아가면서 가장 경계해야할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익숙함"이다. 내게는 한없이 편한 그 익숙함이 때로는 내 생각과 행동을 경직시킬 때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물론 내가 무엇에 익숙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조차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있는 줌 없는 줌 다 잡아당겨도 이게 최선이었다. 분명 한 발을 더 다가서면 녀석은 도망갈 것이고 도망가버린다면 사진을 아예 찍을 수 없으니 이게 최선이다. 청소년 정도된 고양이였는데 그렇지 않아도 걸어오는동안 고양이들을 제법 봤다. "둘레길 걷다가 고양이를 만났지 뭐야" 어디 가서 이렇게 말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물론 "둘레길 걷다가 멧돼지를 만났는데.." 이게 더 설득력은 있지만 말이다... 사진을 찍고 한발 다가서보았고 역시나 녀석은 저만치 도망갔다. "아이컨택"이 부질없었다.

갑자기 등장한 전형적인 산길이다. 그렇다. 이 지점이 6구간과 7구간 "옛성길" 의 경계점이다. 아스팔트가 순식간에 끊어지고 흙길이 나타난다. 원래 계획은 6구간을 마치고 간단히 식사를 하고 헤어질 예정이었는데 "수다"가 끝이 날 줄을 몰라 한 구간을 더 가기로 했다. 편안함이란 참 좋은 느낌이다.

이제까지 봐온 전형적인 둘레길이 7구간이다. 동행은 "여기까지 걸어서 왔다고 생각하지요"라고 이야기 했는데 그말이 참 적절했다.   예전에도 적었지만 북한산둘레길의 각 구간은 구간마다 확연하게 구별되는 느낌이 강하다. 이렇게 구간을 구분하기 위해 꽤나 많은 조사와 연구가 이루어졌을 것 같다. 앞으로도 많은 구간들이 남아 있지만 그곳들 역시 그런 독특함을 주리라 생각된다.

7구간을 걷다보면 왼편으로 오래된 성벽의 흔적을 볼 수 있는데 그래서 옛성길인 모양이다. 오늘은 날이 무척 맑아서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제법 멀리까지 볼 수 있었다. 안내판의 설명과 눈 앞에 보이는 산의 모양새를 바로 맞춰볼 수도 있었다. 내일부터는 날이 흐려지고 비 예보까지 있는터라 날은 참 잘 잡았다.

7구간의 거리는 2.7Km로 6구간까지 합치면 7.7Km다. 짧은 거리는 아니다. 아침 10시 조금 넘어 길을 걷기 시작했는데 두 구간을 모두 지날 때쯤은 오후 3시에 가까운 시간이었으니 시간도 제법 오래 걸렸다. 그런데 묘하게도 전혀 오래 걸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고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동행이 있는 산행이란 그런 느낌인 것이다. 정체모를 남정네와 선뜻 동행해준 분께 감사할 따름이다.

오래 전 원대한(?) 북한산둘레길 정복 계획을 짤 때는 일주일마다 한 코스씩 꾸준히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사실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중간에 본의아닌 부상(?)을 당해 멈춘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가려는 마음만큼 몸이 쉽사리 따르지 않는 것이 더 큰 이유였다. 굳이 그렇게 멀리까지 가서 '걷기'를 할 이유가 있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산행은 그 시작 전에 나와 작은 약속을 하나 하고 떠나는 것이기에 온전히 마무리를 해야 마음이 홀가분하다. 

총 21개의 구간 중에 이제 3분의 1이 마무리됐다. 다음 구간은 8구간이고 제법 산의 느낌이 많이 나는 구간인데 언제 걷게 될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 스스로에게 강제성을 부여하지 않으려 함이다. 산행에 있어 강제성을 부여해버리면 길을 걸을 때 길이 말하는 소리를 듣지 못 하고 길이 보여주는 풍경을 보지 못 하기 때문이다. 그저 마음이 내켜 걸으면 그만이고 그 걸음걸음에 충실하면 그만이다. 복잡할 것도 신경쓸 것도 아닌 것이다. 


Panasonic LX-5



가을입니다. 라고 이제는 이야기를 해도 좋으려나요? 그렇지만 아직도 한낮에는 여름을 쉽사리 놓아버리지 않으려는 계절의 마지막 안간힘이 느껴지네요. 그렇지만 강하게 내리쬐는 햇살도 한여름이 그것마냥 따갑지는 않은 그래서 어쩐지 가는 여름이 아쉽기도 한 그런 계절이 요즘이 아닌가 합니다.

사진은 원어의 의미가 알려주듯 빛의 예술이지요. 그리고 보통 자연의 빛의 변화무쌍함을 가장 많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은 해 뜨기 전과 해 지기 전입니다. 맨 처음의 사진과 바로 위의 사진의 빛이 얼마나 다른지요. 같은 하늘이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렇게 다양한 색으로 보는 이들을 유혹합니다. 게다가 바람마저 불어준다면 그 기분이란..^^

같은 장소에서의 노을도 해가 떨어지는 속도에 따라서 정말 다양한 빛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사실 이 시점에서 마음에 드는 사진을 잡아내려면 브라케팅 연사가 제일 좋은데 필름 시절에는 한 컷 한 컷이 500원짜리 동전 떨어지는 소리와 비슷한지라 연사란 그저 부유한 이들이나 할 수 있는 사치로 여겨졌지요. ^^

가난한 사진가는 브라케팅은 '아, 그런 기능이 있어!'라고 여기고 스팟 노출로 하늘을 잡는 것이 그나마 뭔가 건져볼 수 있는 기회기도 했었습니다. 물론 디지털 시대가 된 지금은 브라케팅이란 아주 일상적인 작업 중의 하나가 되어 버렸으니 이걸 좋다고 해야할지 사실 이야기하기는 애매합니다. 사진이 쉬워진만큼 소위 건질 수 있는 사진은 필름 시절보다 확실히 줄어들었으니까요.

제가 사진을 좋아하게 된 계기 중 하나는 외로워서였더랬습니다. 사진을 찍고 있으면 혼자라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였지요. 물론 기계 자체에 대한 흥미도 제법 큰 편이지만 뭐랄까 세상사의 번잡함같은 골치 아픈 것들이 사각 프레임 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전혀 생각나지 않았기에 사진에 빠졌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래서는 좋은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죠.

사진에는 사진가가 셔터버튼을 누르는 순간의 감정이 그대로 실려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온 정신을 집중해 네모난 그림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 마음을 담아 만들어내는 것이 사진인데 당연히 사진가의 감정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만약 사진에서 그런 느낌을 얻을 수 없다면 온전한 자신의 사진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닐까요?

아무튼 그런 과정을 겪고 나서야 사진을 좀 더 가깝게 그리고 마주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진을 찍을 때는 온전히 그 시간에 그 장소에서 제가 받은 느낌만을 담아내도록 신경을 씁니다. 그래서 저는 카메라를 들고 어딘가를 나가도 가방에서 전혀 꺼내지 않을 때도 있는데 마음속에 뭔가 불필요한 감정들이 많을 때 주로 그렇게 합니다.

아마 사진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나름대로의 생각들을 가지고 계실텐데 저라는 사람은 이렇다..라는 것을 적다보니 좀 길어졌네요 ^^; 자, 이번 사진들은 코닥의 수프라라는 필름입니다. ISO100인 이 필름은 후지의 리얼라와 함께 네가티브 필름의 쌍벽이랄까..아무튼 그런 느낌을 주는 좋은 필름입니다. 코닥 특유의 붉은 기운을 잘 살리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필름이지요. 후지의 푸른색이냐 코닥의 붉은색이냐는 역시 그날의 분위기에 따라 달라집니다. ^^


Canon Eos-1Vhs, EF 28-70mm f/2.8LKodak Supra, LS-40

가끔 제 사진에 보면 위와 같이 장비를 적어 두는 경우가 있는데요. 이건 제 기억을 남겨두자는 차원도 있고 혹시 어떤 장비가 사용되었는지 궁금해하시는 분이 있을까 싶어 적어 두는 것입니다. 순서대로 설명드리면.. 

Canon Eos-1Vhs: 카메라 바디의 제조사가 캐논이고 Eos-1Vhs라는 바디라는 이야기입니다.

EF 28-70mm f/2.8L: 사용한 렌즈의 이름인데 해당 제조사의 공식 명칭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2개 이상의 렌즈가 사용될 때도 많은데 보통 1개만 대표적으로 적어 둡니다. 

Kodak Supra: 사용한 필름의 제조사와 보통 부르는 별칭을 적어 두었습니다.

LS-40: 제가 사용한 니콘의 쿨스캔 필름 스캐너의 이름입니다.



며칠 전만 해도 한낮의 태양이 따가울 지경이었는데 어느새 아침에 집을 나설 때 부는 바람은 '춥다'는 생각마저 들게 할 정도네요. 계절의 흐름 특히 우리네 24절기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제가 '백로' 였습니다. 한자로는 白露인데 하얀 이슬이라는 의미로 농촌의 농작물에 하얀 이슬이 맺히는 것에서 유래했다고 하네요. 요즘은 아쉽게도 점점 가을이라는 계절이 짧아지고 있지요. 

여름과 겨울은 길어지고 간절기인 봄과 가을이 짧아진다는 것은 한편에서 생각해보면 이젠 날씨조차 양극단으로 치닫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합니다. 올 겨울은 늘 그렇듯이 여느 때보다 더 춥다고 하니 미리미리 준비들 하셔야할 거에요. 옆구리 허전한 분들은 커다란 곰인형이라도 하나 구비하시길...(제 것도 하나 사주시면....)

물론 가을이 오고 바람이 슬슬 차지기 시작하면 저는 제철 만난 듯이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는데 겨울이 오면 그 방황이 절정에 다다라서 난리도 아니긴 합니다. 아마 겨울 사진은 많이 보실 수 있을 거에요. 여름 사진은 사실 거의 없죠..^^

아무튼 하나의 계절을 보내는 시기인만큼 또 다른 계절의 준비도 해야 하는 그런 시기가 왔습니다. 오랜만에 책상 정리도 해 보고 먼지 쌓인 카메라도 햇볕에 말려도 봅니다(D700은 지난 달 말로 무상보증기간이 만료가 되어서 이젠 조심조심 써야 합니다..;) 여름엔 사실 거의 카메라를 꺼내지 않는지라 애들이 아주 뽀송뽀송하네요..;;

보통 날이 추워지면 사진을 잘 안 찍는데 전 유난히 추운 날 찍은 사진이 많습니다. 겨울 태생이라 겨울에 적응을 잘 하는 것인지..아니면 고통을 즐기는 악취미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날이 추워진다는 것은 역마살이 도진다는 증거이니 나름 반가운 일이지요. ^^

이 사진들은 NPH400이라는 필름으로 찍은 건데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네요. 참 예전에는 필름마다 들고 다니면서 이럴 때는 이 필름을 저럴 때는 저 필름을 쓰는 맛이 있었는데 디지털로 넘어오고나서 그런 손맛이 싹 사라져버려 너무 아쉽습니다.. 뭐 그렇다고 요즘 필름카메라를 쓴다 해도 일단 필름이 없으니 이젠 다시는 되돌리기 힘든 추억이 되어 버렸지만요..


Canon EOS-1Vhs, EF 28-70mm f/2.8L IS USM, NPH400, LS-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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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의 일상이라는 것. 매 순간순간을 생각하면 참 길게도 느껴지지만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에 돌아보면 몇 분 안에 하루가 정리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여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되어도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과거란 혹은 추억이란 현재의 나에게는 아주 찰라의 순간처럼 짧은 그런 것이 되어 버린다.

때론 아쉬울 때도 있다. 좋은 기억이라면 좀 더 길게 기억해보고 싶은데 그렇지가 않으니까..

때론 다행이다 싶을 때도 있다. 안 좋은 기억이라면 좀 더 짧게 기억해보고 싶은데 그렇게 되어 버리니까..

모든 것은 결국 다 지나가버린다. 그리고 깨닫는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이라는 것을...

분명 그 문장에 여러 번 줄까지 치면서 기억을 했었는데 왜 잊고 있었을까...

한 때는 지나간 과거에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며 아쉬워 하고 어떻게든 돌이킬 수 없을까 고민하며 시간을 보냈었다. 현재 내가 살아서 느끼고 있는 현재는 외면한채 흐릿한 눈으로 흐려져 가는 기억들을 억지로 또렷하게 만들려 의미없는 시간들을 보냈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살아난 과거는 이미 나의 편견과 고집에 의해 왜곡된 과거라는 것을 나는 좀처럼 알아채지 못 했다.

그리고 가까스로 현재로 돌아와 몸과 마음을 추스리고나니 그렇게 조작된 과거가 한없이 부끄럽기만 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 아닌 내 마음대로 만들어진 나의 과거들... 그리고 그 과거에 얽매인채 현실을 외면하고 살았던 나날들이 얼마나 아깝고 또 아까운지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정신을 차려 하나둘 어긋난 조각들을 맞추어 놓고 보니 그동안 어렵게만 보이던 것들이 하나둘 명백해진다. 

'아, 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았던 것이구나'

결국 모든 원인은 내게 있었고 모든 해답 역시 내게 있다는 아주 단순한 진리를 다시 확인하며 새 담배에 불을 붙인다.


Canon EOS-1Vhs, EF 28-70mm f/2.8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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