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그 사람만 있으면 못할 것이 없을 줄 알았지요. 내 삶이 아닌 우리로서의 삶. 그와 내가 말 그대로 하나가 되어 세상을 함께 바라보고 세상을 함께 살아갈 수 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만나기까지의 과정, 만난 후의 삶의 모습들이 참 특별하다 생각을 했었고 그런 소중함을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같이 끌어안고 살아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특별하다고 생각한 우리의 만남과 우리의 일상은 사실 특별할 것이 하나도 없었지요. 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인데 세상과 우리를 나누어 생각한게 가장 큰 실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인가 전혀 특별하지 않은 우리의 모습을 세상에 비춰보고서야 우리의 길이 서로 엇갈려있음을 그리고 둘의 길이 영원한 평행선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랑이라는 감정. 그 감정만으로 세상을 넘어서고 아니 넘어서지 못하더라도 세상을 함께 끌어안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았지요.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그녀도 나도 이미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만남은 우연처럼 혹은 기적처럼 전혀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다가오지만 헤어짐은 그것을 어렴풋하게나마 이미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누가 먼저 이별을 이야기할 것도 없이 다른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이별이라는 단어는 안녕이라는 말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미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순간순간마다 느끼고 있었으니 말이죠..

하지만 이미 알고 있던 사실도 그것이 현실화되면 감정의 폭풍에 휘말릴 수밖에 없습니다. 헤어진 이후에는 늘 좋은 기억과 행복했던 추억들이 먼저 떠오르게 되니까요.. 

그리고 이제 혼자 걸어야 하는 길을 바라봅니다. 조금씩 걸음을 걸어보기도 하면서 이길이 앞으로 내가 가야할 길이구나..나 혼자 걸어야 하는 길이구나..하고 이 생각 저 생각을 해봅니다. 이제까지.. 그러니까 함께 걷던 그리고 함께 걸어갈 수 있었던 길과 전혀 다른 길이기에 처음에는 제법 낯설고 두려운 마음도 듭니다.

그렇지만 걸어가야겠지요.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록 그 사람에 대한 기억과 추억과..그리고 둘이 함께한 기억, 둘이 함께 할 미래와 멀어지지만 그래도 걸어가지 않을 수 없겠지요. 이 또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가 걸어가야 할 나의 길이니까요..


제법 오랜 기간 이 블로그의 이름은 Vogelfrei였다. 니체에서 시작한 내 독서의 결과물 중의 하나랄까.. 독일어가 주는 특유의 건조한 발음과 웬지 있어보이는 듯(그만큼 유치했었던) 해 무작정 블로그의 이름으로 정한 지도 수년이 지났다. 그리고 오늘 블로그의 이름을 바꾸었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아예 도메인을 하나 구입해 덜컥 앉혀버렸다. 지금 블로그의 주소가 곧 블로그의 이름인데 Snowroad.. 눈을 좋아하고 길을 좋아하는지라 연결이 되는대로(팔리지 않은 도메인이 있는 조합으로 문법은 무시할 수밖에..) 만들다보니 이렇게 됐다.

눈과 길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Vogelfrei에 대한 이야기가 이글의 주제니 그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나의 삶 자체가 그렇게 무엇인가 멀리 있고 위에 있는 것을 지향했었던 것 같다. 자연 현실에 집중하고 현실에 충실해지기 어려웠고 지금 발을 붙이고 있는 땅을 도외시하고 늘 하늘만 바라보다보니 현실도 미래도 모두 붕 떠 버린 그런 삶이었지 싶다. 분명 하늘을 날고 있는 자유로운 새가 내 눈 앞에 보이는데도 그곳에 오를 수도 그 새를 잡을 수도 없었던 지난 시간들.. 그저 바라보기만 할 수밖에 없었던..어쩌면 절망적인 순간들을 하루하루 이어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얻을 수 있었던 그리고 얻은 것보다 읽은 것들, 잃어가는 중인 것들이 더 많다는 자괴감에 무척이나 시달렸는데 냉정하게 들여다봐도 잃은 것이 많았다. 최근 들어 더 이상 잃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마저 떠나보내고 나서 드는 생각은 나 스스로의 그런 강박관념이 현실에서 내게 주어진 행복조차도 잡지 못 하게 한 것이라는 것.

항상 후회를 하고 정신을 차리지만 또 같은 실수를 하고 다시 후회를 하는 것이 또한 인간의 평범한 삶이라고는 하지만 나는 내 내면의 아주 은밀한 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무언가가 늘상 문제였다. 결국 보이는 것에서부터 변화를 주자고 생각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아무리 뒤적이고 뒤짚어보는 것보다 당장 내가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그런 것들부터 바꾸어가기로 했다.

물론 이런 시도가 끝내 성공을 해서 그동안 나를 붙들고 있던 멍에를 내려놓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전보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자유로운 새를 쫓아갈 수는 있을테니 아무 것도 안 하고 하늘만 바라보는 것보다 내 몸을 가볍게 해 몇 번이고 뛰어 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아무튼 어쩌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Vogelfrei라는 이름은 사라졌다. 

덧.. 또 하나 남아있는 것은 내 이메일주소인데 워낙 연결된 것들이 많아 시도는 해봤지만 바꾸기가 쉽지가 않다. 언젠가는 분명히 바꿔야할 것 중의 하나다. 


사진을 오래 찍어오고 있지만 내게 꽃사진은 거의 없다. 애초에 꽃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싶다. 오래 전 접사를 시도해봤던 때를 제외하곤 풍경 전체에 꽃이 들어가는 경우는 있어도 꽃 자체만을 프레임에 담지는 않았다. 왜 그랬을까? 라는 물음이전에 '꽃'이라는 개념 자체가 내 사진에는 없었던 셈이다.

대개 내 사진의 주제는 하늘, 바다, 길.. 그런 것들이 주를 이루었고 대체로 내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 조금은 우울한 느낌의 흔적들을 만들어냈다. (이 블로그의 사진들 대부분이 주는 그런 느낌말이다) 아마도 그런 일종의 선입견이 나로 하여금 꽃이라는 화려한 혹은 긍정적인 피사체를 무의식 중에 경계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어쩌면 내 삶에서 또 한 번의 괴롭다면 괴로운 시기에 나는 꽃을 발견했다. 이전에는 눈에도 들어오지 않던 꽃들이 하나 둘 내 눈 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상당히 큰 변화다.. 꽃을 파인더로 들여다보면 우울한 감정의 그림은 여간해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늘이나 길이나..바다나 구름 같은 것들은 어느 정도의 감정이입이 되면 제법 우울한 그림이 나오지만 꽃은 파인더 너머로 그 자태가 보이는 순간 내가 그 힘에 압도되기 때문이다.

사실 사진가가 피사체에 압도되면 원하는 사진을 만들어낼 수 없다. 아니 그렇게 믿고 있었다. 적어도 스스로의 사진을 찍는다면 피사체를 내가 원하는 대로의 이미지로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꽃은 그런 나의 시도를 번번히 무산시킨다. 그리고 내게 역으로 그림을 그려내라 요구한다. 그러면 나는 내 의지는 접어 두고 꽃이 원하는 그림을 그려내려 노력하곤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이 어쩐 일인지 거부감이 생기지 않는다. 

고집스러웠던 사진의 습관이 깨지는 계절. 봄이다.


오래 전 헤어진 이를 다시 만나게 되면 세월의 흐름에 변한 외모를 가장 먼저 마주치게 된다. 과거의 내가 기억하는 이의 모습 그리고 그 모습과 더불어 만들어진 추억들이 어쩐지 낯선 느낌이 들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어떤 장소나 어떤 사물에 맺혀있는 추억은 변하지 않는다. 평소에는 잊고 지내다가 어느 날 문득 오래 전 추억이 담긴 장소를 방문하거나 물건을 찾게 되었을 때 그 장소 그 물건에는 여전히 어린 시절의 그의 모습이 남아있고 그와 함께 만들어갔던 추억이 그 시간에 그대로 멈춘 채 나를 반기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나 여행은 그런 기억을 아주 선명하게 되살린다. 그와 함께 떠났던 그 여행의 흔적들이 그 장소를 다시 찾았을 때 또렷하게 되살아난다. 마치 드라마나 영화의 어느 장면처럼 그와 내가 어울려 웃는 모습, 함께 걷는 모습 등 여러가지의 장면들이 내 눈 앞에 펼쳐진다. 비록 현재의 나는 그 모습에 손을 가져대 댈 수도 과거의 그의 모습에 말을 걸 수도 없지만...

사진 역시 그런 추억을 되살려 희미해진 기억들의 조각들을 붙이는 역할을 하지만 장소나 물건이 주는 오감의 되살림에 비할 바는 아니다. 요즘 건축학개론이라는 영화가 아마도 그런 향수를 많이 불러오는 모양인데 그 향수를 좀 더 느끼고 싶다면 예전의 그 장소를 다시 찾는 것이 가장 나은 방법이지 싶다. 물론 향수에 젖어봐야 지나간 세월을 돌이킬 수는 없지만 잠시나마..아주 잠깐이나마 행복했던 그 시간들을 현재로 불러들여보는 것도 괜찮으리라..


이 사진은 제법 오래 전 재개발로 동네 전체가 허물어지던 어느 동네를 찾았을 때 찍은 사진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삶의 기반을 두고 있던 집이 헐린다는 느낌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우리네 삶 속에서 제법 적지 않게 일어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공간이 허물어지는 것.. 그것은 물리적인 공간일 수도 혹은 정신적인 공간일 수도 있다.

당시 나는 이 사진을 찍을 때 그리고 그 동네를 걸으며 그 사람들이 혹은 그 동네가 안쓰럽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뒤돌아 생각해보니 얼마나 나의 오만스러움과 착각이 당시의 나를 감싸고 있었는지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려 온다. 흔히 재개발 지역, 혹은 공사장의 인부들의 모습, 시장의 상인 등을 프레임에 담으며 삶의 모습을 느끼고 싶다곤 하지만 그것은 사진을 찍는 이의 교만스러움 외에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네들의 삶 속에 직접 들어가 오욕칠정의 모든 감정을 함께 겪지 않고서 어느 날 카메라 하나 달랑 매고 그 동네를 한 번 휙 둘러보고 그 사람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사진가는 겸손해야 하고 피사체와 공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어린 시절의 내 사진..그리고 지금의 내 사진 역시 피사체와 너무나 동떨어진 그런 먼 거리의 사진들이 대부분이다. 파인더 안을 들여다봤을 때 그런 감정이 느껴진다면 카메라를 내려놓고 한 발 더 다가설 필요가 있다.


Contax Aria, Distagon 35mm f/2.8, LS-40 필름 스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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