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오랜 기간 이 블로그의 이름은 Vogelfrei였다. 니체에서 시작한 내 독서의 결과물 중의 하나랄까.. 독일어가 주는 특유의 건조한 발음과 웬지 있어보이는 듯(그만큼 유치했었던) 해 무작정 블로그의 이름으로 정한 지도 수년이 지났다. 그리고 오늘 블로그의 이름을 바꾸었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아예 도메인을 하나 구입해 덜컥 앉혀버렸다. 지금 블로그의 주소가 곧 블로그의 이름인데 Snowroad.. 눈을 좋아하고 길을 좋아하는지라 연결이 되는대로(팔리지 않은 도메인이 있는 조합으로 문법은 무시할 수밖에..) 만들다보니 이렇게 됐다.

눈과 길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Vogelfrei에 대한 이야기가 이글의 주제니 그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나의 삶 자체가 그렇게 무엇인가 멀리 있고 위에 있는 것을 지향했었던 것 같다. 자연 현실에 집중하고 현실에 충실해지기 어려웠고 지금 발을 붙이고 있는 땅을 도외시하고 늘 하늘만 바라보다보니 현실도 미래도 모두 붕 떠 버린 그런 삶이었지 싶다. 분명 하늘을 날고 있는 자유로운 새가 내 눈 앞에 보이는데도 그곳에 오를 수도 그 새를 잡을 수도 없었던 지난 시간들.. 그저 바라보기만 할 수밖에 없었던..어쩌면 절망적인 순간들을 하루하루 이어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얻을 수 있었던 그리고 얻은 것보다 읽은 것들, 잃어가는 중인 것들이 더 많다는 자괴감에 무척이나 시달렸는데 냉정하게 들여다봐도 잃은 것이 많았다. 최근 들어 더 이상 잃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마저 떠나보내고 나서 드는 생각은 나 스스로의 그런 강박관념이 현실에서 내게 주어진 행복조차도 잡지 못 하게 한 것이라는 것.

항상 후회를 하고 정신을 차리지만 또 같은 실수를 하고 다시 후회를 하는 것이 또한 인간의 평범한 삶이라고는 하지만 나는 내 내면의 아주 은밀한 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무언가가 늘상 문제였다. 결국 보이는 것에서부터 변화를 주자고 생각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아무리 뒤적이고 뒤짚어보는 것보다 당장 내가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그런 것들부터 바꾸어가기로 했다.

물론 이런 시도가 끝내 성공을 해서 그동안 나를 붙들고 있던 멍에를 내려놓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전보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자유로운 새를 쫓아갈 수는 있을테니 아무 것도 안 하고 하늘만 바라보는 것보다 내 몸을 가볍게 해 몇 번이고 뛰어 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아무튼 어쩌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Vogelfrei라는 이름은 사라졌다. 

덧.. 또 하나 남아있는 것은 내 이메일주소인데 워낙 연결된 것들이 많아 시도는 해봤지만 바꾸기가 쉽지가 않다. 언젠가는 분명히 바꿔야할 것 중의 하나다. 


사진을 오래 찍어오고 있지만 내게 꽃사진은 거의 없다. 애초에 꽃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싶다. 오래 전 접사를 시도해봤던 때를 제외하곤 풍경 전체에 꽃이 들어가는 경우는 있어도 꽃 자체만을 프레임에 담지는 않았다. 왜 그랬을까? 라는 물음이전에 '꽃'이라는 개념 자체가 내 사진에는 없었던 셈이다.

대개 내 사진의 주제는 하늘, 바다, 길.. 그런 것들이 주를 이루었고 대체로 내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 조금은 우울한 느낌의 흔적들을 만들어냈다. (이 블로그의 사진들 대부분이 주는 그런 느낌말이다) 아마도 그런 일종의 선입견이 나로 하여금 꽃이라는 화려한 혹은 긍정적인 피사체를 무의식 중에 경계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어쩌면 내 삶에서 또 한 번의 괴롭다면 괴로운 시기에 나는 꽃을 발견했다. 이전에는 눈에도 들어오지 않던 꽃들이 하나 둘 내 눈 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상당히 큰 변화다.. 꽃을 파인더로 들여다보면 우울한 감정의 그림은 여간해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늘이나 길이나..바다나 구름 같은 것들은 어느 정도의 감정이입이 되면 제법 우울한 그림이 나오지만 꽃은 파인더 너머로 그 자태가 보이는 순간 내가 그 힘에 압도되기 때문이다.

사실 사진가가 피사체에 압도되면 원하는 사진을 만들어낼 수 없다. 아니 그렇게 믿고 있었다. 적어도 스스로의 사진을 찍는다면 피사체를 내가 원하는 대로의 이미지로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꽃은 그런 나의 시도를 번번히 무산시킨다. 그리고 내게 역으로 그림을 그려내라 요구한다. 그러면 나는 내 의지는 접어 두고 꽃이 원하는 그림을 그려내려 노력하곤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이 어쩐 일인지 거부감이 생기지 않는다. 

고집스러웠던 사진의 습관이 깨지는 계절. 봄이다.


오래 전 헤어진 이를 다시 만나게 되면 세월의 흐름에 변한 외모를 가장 먼저 마주치게 된다. 과거의 내가 기억하는 이의 모습 그리고 그 모습과 더불어 만들어진 추억들이 어쩐지 낯선 느낌이 들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어떤 장소나 어떤 사물에 맺혀있는 추억은 변하지 않는다. 평소에는 잊고 지내다가 어느 날 문득 오래 전 추억이 담긴 장소를 방문하거나 물건을 찾게 되었을 때 그 장소 그 물건에는 여전히 어린 시절의 그의 모습이 남아있고 그와 함께 만들어갔던 추억이 그 시간에 그대로 멈춘 채 나를 반기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나 여행은 그런 기억을 아주 선명하게 되살린다. 그와 함께 떠났던 그 여행의 흔적들이 그 장소를 다시 찾았을 때 또렷하게 되살아난다. 마치 드라마나 영화의 어느 장면처럼 그와 내가 어울려 웃는 모습, 함께 걷는 모습 등 여러가지의 장면들이 내 눈 앞에 펼쳐진다. 비록 현재의 나는 그 모습에 손을 가져대 댈 수도 과거의 그의 모습에 말을 걸 수도 없지만...

사진 역시 그런 추억을 되살려 희미해진 기억들의 조각들을 붙이는 역할을 하지만 장소나 물건이 주는 오감의 되살림에 비할 바는 아니다. 요즘 건축학개론이라는 영화가 아마도 그런 향수를 많이 불러오는 모양인데 그 향수를 좀 더 느끼고 싶다면 예전의 그 장소를 다시 찾는 것이 가장 나은 방법이지 싶다. 물론 향수에 젖어봐야 지나간 세월을 돌이킬 수는 없지만 잠시나마..아주 잠깐이나마 행복했던 그 시간들을 현재로 불러들여보는 것도 괜찮으리라..



필름을 사용해서 사진을 찍던 시절.. 지금 생각해보면 스캔을 참 어설프게 했구나 싶다. 스캔 원본의 크기도 작고 스캐너를 다루는 실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아 먼지며 스크래치며 난리도 아니었다. 슬라이드 원본은 아직도 잘 보관은 하고 있지만 언제 다시 스캔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하루에 두 롤 정도를 찍으면 두 장 정도 마음에 들었다. 마음에 든 사진을 빼고는 그냥 지워버린 것들이 많다. 그러지 않았어야 했다. 사진이란 물론 찍는 순간에 완성이 되지만 그 사진에 대한 인상은 당시에는 자기 스스로도 제대로 느끼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찍을 당시에 좋아보이건 그렇지 않건 바리바리 싸 들고 와 나중에 다시 돌아보면 오히려 그때의 느낌이 더 잘 살아나는 경우가 많다. 사진은 절대 지우면 안 된다. 기억이라는 것 혹은 추억이라는 것을 몇 번의 클릭으로 그렇게 잊어서는 안 된다.

Nikon F5, AF NIkkor ED 80-200mm F2.8D, LS-40



필름카메라를 쓰던 시절에는 촬영을 하고 돌아와 현상을 맡기고 슬라이드를 찾아 루페로 들여다보고 또 집에 돌아와 필름스캐너를 이용해 스캔을 하던 조금은 번거로운(?) 작업들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지금은 필름스캐너가 없어 이전 슬라이드들을 하늘에 비춰 볼 수밖에 없다. 물론 외부 업체에 스캔을 맡기면 되지만 당시 스캔해 둔 이미지들이 그래도 적지 않으니 이 정도면 충분하지 싶다.

당시는 경회루를 개방하지 않아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것이 전부였지만 이제는 개방이 되어 안에 들어가 볼 수 있게 됐다. 올해는 4월부터 개방이니 한 번 들러보는 것도 괜찮지 싶다. 그러고보면 서울 안에서도 이곳저곳 찾아보면 제법 운치 있는 공간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무조건 멀리만 가려 하지 말고 주변에 놓친 곳들은 없는지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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