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은 대상을 의미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기다림이라는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끔은 빈 벤치에 앉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기다려볼 때가 있다.

그 기다림의 대상이 헤어진 연인일 수도 있고

그 기다림의 대상이 다가올 어느 계절의 따스함일 수도 있고

그 기다림의 대상이 새벽같이 일터로 향한 아버지일 수도 있다.

기다림은 대상을 의미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기다림이라는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다.

Nikon F5, AF Micro NIkkor 105mm f2.8D, Softfilter, LS-40 film sca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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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도 더 지난 시절의 이야기인데 딱 이맘때 쯤이다. 폴더를 보니 4월 27일이다. 사진에 한창 빠져 정신이 없을 시절. 노출이니 구도니 하는 사진의 기본 이론(사실 당시까지 내가 아는 사진 이론은 초등학교 사진반에서 배운 것이 전부였지만 당연히 기억날리가 없다)은 하나도 모르고 여기저기 몰려 다니며 일단 찍고 보자는 생각뿐이었던 것같다. 

당시 필름값을 생각하면 만만치는 않았지만 그저 사진을 찍는 게 재미있었던 시절이다. 같이 일하던 동료가 친구를 모셔와(?) 남자 셋 여자 하나 그렇게 어수선하게 보냈던 어느날..지금 돌아보니 참 재미있었던 기억이다.

아무튼...어렵게 어렵게 출사(당시로 보면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를 나가 뭔가 찍어 보려고 말 그대로 발버둥을 쳤던 것 같은데 지금 와 돌아보면 쓴웃음이 나오는 사진들이 참 많기도 많다. 아마 그런 이유에서였는지 사진을 제법 많이 지웠는데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도 많다. 

사진 이론을 좀 더 많이 알았으면..(그러니까 배경은 어떻게 하고 심도는 어떻게 주고.. 아웃포커싱이 어떻고..공간감이 살면 어쩌고저쩌고...) 사진이 좀 더 좋았을까?

그렇지는 않다. 당시의 어설픔이 오히려 추억이 되고 그래서 그 사진을 보면 그때 그 순간에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떠올림은 어설프고 실수가 많을 수록 재밌는 것이고 그 재미가 세월이 지난 후에 사진을 돌아보는 이유 중의 하나가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러고보니 내 경우도 사진 자체에 대한 만족도보다는 그 사진을 찍기까지의 과정과 막상 사진을 찍는 순간들에 대한 만족 혹은 재미가 더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디지털로 넘어오면서 이 재미가 많이 떨어졌다. 사진을 너무 쉽게 찍고 지울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저명한 사진작가들의 사진을 볼 때 그런 생각을 한다. 노출이니 공간감이니 선예도니..다이내믹레인지니..특히나 스냅 작가들에게서는 그런 이론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그들의 사진에는 마음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다.. 기술과 장비는 갈 수록 진보하는데 좋은 사진은 시간이 갈 수록 적어지는 것은 쉬운 사진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사진을 찍기까지의 과정과 시간을 생각하기 보다 일단 셔터버튼을 누르고 LCD창으로 이미지 자체를 보는 것에 집착하다보니 사진을 찍는 것이 재미가 없어지고 찍은 사진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오래 전에 찍은 도무지 이론적으로는 영 아니올시다인 사진들이 내게는 더 만족감을 주는 것도 그런 이유다. 사진찍기의 목적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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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집게는 어느 방향으로 있는 것이 정상일까?

평소의 빨래집게는 집게가 하늘을 보고 있다.

그리고 양말이라도 한짝 집으려면 집게가 땅을 향한다.

빨래를 집으라고 존재하는 것이니 땅을 보는 것이 마땅하다 해야할까

아니면 줄에 걸었을 때 가장 자연스러운 하늘을 보고 있는 것이 마땅하다 해야할까


오래 전 필름 스캔 폴더를 뒤적이다보면 별별 사진들이 다 나오는데 그 사진을 찍을 당시의 느낌을 이미 잊었다면

지금의 느낌대로 그 사진을 해석해도 괜찮으리라. 어차피 사진을 찍은 것은 '나'니 말이다.

어쩌면 그 당시의 나와 현재의 나가 전혀 다른 존재라는 모 철학자의 의견에 따르면

과거 내가 찍은 사진을 내 마음대로 해석하는 것은 촬영자에 대한 모독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아무려면 어떨까.. 어차피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를 생각한 적이 없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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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을 자주 찾는 것은 고즈넉함과 그 안에서 느낄 수 있는 평화로움이 아닐까 싶다. 삶의 각박함 속에서 평화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인데 각자 개인이 그 평화를 찾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도시적인 느낌이 적은 공간을 찾아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싶다.


꽤 오래 전..아마 10년은 더 된 필름 스캔이다. 디지털과 달리 필름은 시간이 지나면 색이 바란다. 아날로그란 그런 것이다. 수치화되어 0아니면 1, 이런 식으로 딱딱 끊어져서 변하는 것이 아니라 물흐르듯이 점점 퇴색되어 간다. 그것이 세월이고 시간과는 다른 흐름이다.


소위 쨍하고 또렷한 사진이야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만 흐릿하고 원래 무슨 색이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사진은 오로지 세월에 의해서만 만들어진다. 물론 이것도 디지털 보정을 통해 가능하겠지만 자연스레 세월 속에 녹아난 감성과 감정을 숫자로 표현하는데는 분명 한계가 있지 싶다.


필름카메라를 쓰던 시절에는 촬영을 하고 돌아와 현상을 맡기고 슬라이드를 찾아 루페로 들여다보고 또 집에 돌아와 필름스캐너를 이용해 스캔을 하던 조금은 번거로운(?) 작업들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지금은 필름스캐너가 없어 이전 슬라이드들을 하늘에 비춰 볼 수밖에 없다. 물론 외부 업체에 스캔을 맡기면 되지만 당시 스캔해 둔 이미지들이 그래도 적지 않으니 이 정도면 충분하지 싶다.

당시는 경회루를 개방하지 않아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것이 전부였지만 이제는 개방이 되어 안에 들어가 볼 수 있게 됐다. 올해는 4월부터 개방이니 한 번 들러보는 것도 괜찮지 싶다. 그러고보면 서울 안에서도 이곳저곳 찾아보면 제법 운치 있는 공간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무조건 멀리만 가려 하지 말고 주변에 놓친 곳들은 없는지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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