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필을 쓰는 이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일까?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습기를 빼 놓을 수 없겠습니다. 모처럼 장문의 연애편지를 썼는데 들고 가는 중에 소나기라도 맞았다면? 소나기는 아니더라도 땀이 많이 나 편지지에 습기가 배었다면 어떻게 될까요? 또 공공문서에 만년필로 서명을 하는 경우도 많은 데 보관 상의 부주의나 천재지변 등으로 습기가 문서를 습격한다면 문서는 멀쩡하게 살아 있을까요?


위에 보이는 종이는 중성지로 일반 산성지에 비해 내구성이나 보존성이 좋은 종이입니다. 그리고 각각의 문장은 제가 가지고 있는 5종류의 잉크로 글을 적은 것입니다. 테스트는 좀 과격하게 했는데 종이에 글을 쓴 다음 잉크가 마르기를 기다렸습니다. 분무기로 뿌려줄 수도 있지만 아주 극단적인 상황이다 생각하고 수돗물을 흘려 보냈습니다.

완전히 물에 담글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 상태가 되면 사실 어떤 잉크도 버티기는 어렵다는 판단이 들어서 물을 흘려보내는 수준으로 테스트를 했는데 결론적으로는 물에 담가도 버티는 잉크가 있기는 있더군요.

자, 위에 사용된 잉크는 모두 5종입니다. 몽블랑의 블랙 잉크, 파카의 퀸크 잉크, 세일러의 극흑 잉크, 오로라의 블랙 잉크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이허빈의 사파이어블루입니다. 제이허빈의 잉크는 까렌다쉬로 납품을 하고 있으니 까렌다쉬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물론 제이허빈의 잉크는 워낙 종류가 다양하니 100%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펜 좀 만져보신 분(?)은 일단 대충 각각의 번호에 맞는 잉크를 벌써 맞추셨을 수도 있겠네요. 원문이 거의 사라지지 않고 버틴 잉크 즉 2번은 역시 세일러의 극흑 잉크입니다. 그리고 원문이 대체 뭔지 알 수도 없게 지워진 잉크는 짐작하시는 대로 몽블라의 블랙 잉크입니다.

1번은 파카의 퀸크 잉크로 버티려고 노력은 했는데 번짐이 생겼고 4번은 오로라의 블랙 잉크인데 대충 글씨는 알아볼 수는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청색은 제이허빈의 사파이어블루로 번짐이 생기기는 했지만 그래도 제법 잘 버텨주었습니다.

세일러 - 제이허빈 - 오로라 - 파카 - 몽블랑의 순으로 습기에 대한 저항력이 강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아니 방탄 잉크라는 몽블랑이 왜 저래? 하실 수도 있는데..사실 몽블랑 블랙 잉크는 습기에 약합니다. 그래서 보통 보존을 위한 경우에는 블루블랙을 주로 사용합니다. 몽블랑 블루블랙의 경우는 어느 정도의 내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을 흘려 보니 블랙 잉크의 경우라도 제각기 고유의 색이 다르다는 것을 보실 수 있을 텐데요. 블랙 잉크 중에 어떤 것을 고를까 할 때도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바로 어제 만년필 관련 포스팅을 했지만 처음 만년필을 쓰는 분이라면 잉크가 생각보다 진하지 않다고 느낄 경우가 많지 싶다. 물론 잉크 본연의 색상이기 때문에 그 자체에 더 매력을 느낄 수도 있고 한편에서 보면 그렇게 잉크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그 메이커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방법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내 경우는 아주 진한 잉크를 좋아한다. 잉크는 제조사마다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까다로운 만년필들은 같은 제조사에 최적화 되어 있는 경우도 종종 있어서 제조사와 잉크가 다른 경우 필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100% 그런 것은 아니지만 세일러의 '극흑' 잉크가 그런 성향이 있는데 이 잉크는 세일러의 만년필에 적합하게 되어 있다. 세일러 만년필은 가는 글씨인 세필이 특징인데 잉크 역시 세필에 맞춰져 있어서 다른 만년필 특히 촉이 굵은 만년필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이 잉크 외에도 라미의 잉크가 비교적 진한 잉크로 알려져 있는데 이미 집에 몇 종의 잉크를 가지고 있을 경우 굳이 비용을 들여 새로 잉크를 사기보다는 예전 고시생들이 애용하던 "잉크 말리기"를 이용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과거 고시 2차에 만년필이 주로 사용되던 시절에는 고시생들은 답안을 좀 더 도드라지게 하기 위해 잉크를 진하게 할 다양한 방법들을 연구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잉크를 말리는 것이다. 잉크를 말린다면 그냥 뚜껑을 열어두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어느 정도 맞긴 하지만 한 가지 팁이 있다.

그냥 뚜껑을 열어 두면 당연히 공기 중의 먼지나 불순물이 잉크병 안으로 들어가게 되고 만년필을 고장나게 하는 원인이 된다. 뚜껑을 열어 놓되 그 위에 휴지를 가볍게 올려 두면 된다. 이렇게 되면 잉크는 말 그대로 숨을 쉬는 상태가 되고 불순물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다만 여기서 얼마나 뚜껑을 열어 두고 잉크를 말려야 할까 고민이 되는데 딱 어느 정도가 좋다는 기준은 없다. 아무리 휴지로 입구를 막았다해도 잉크가 공기 중으로 날아가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기 때문에 계속 잉크의 양이 줄어드는 점도 문제기 때문이다.

내 경우는 보통 하루 정도를 말리는데 일단 한번 말려보고 색을 확인한 다음 시간을 조절한다. 그리고 이렇게 작업을 해 둔 잉크는 쓰면 쓸 수록 진해지기 때문에 무작정 길게 말릴 필요는 없지 싶다. 특히나 한 병에 2만 원이 넘어가는 고가 잉크라면 말리는 것은 둘째치고 날아가는 잉크가 아쉽기 때문이다. 아무튼 바로 전의 글에도 적었지만 조금이라도 진한 느낌을 원한다면 몽블랑, 세일러 잉크를 권하고 싶고 이국적인 색을 원한다면 까렌다쉬 잉크를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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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만년필에 대한 이야기를 적은 적이 있지만 난 펜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렇다고 대단한 명필은 아니지만 펜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왠지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뭐랄까 좀 더 정리가 잘 되는 느낌이다. 아마도 e-book으로 책을 읽는 것보다 종이책을 읽는 것이 더 눈에 잘 들어오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기존에 사용 중인 만년필은 일상에서 메모를 하기 위해 사용하는 펠리컨의 M150과 플래너에 작은 글씨를 기록하기 위한 세일러의 프로핏이다. 아버지가 주신 파커 제품은 쓰지는 않고 보관만 하고 있다. 역시 만년필하면 아마 파커가 가장 먼저 생각나기 쉬운데 그런 면에서 보면 펠리컨이나 세일러는 조금 낯선 브랜드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만년필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꽤나 친숙한 이름이다.

그리고 3번째 만년필은 좀 더 이름이 낯선 비스콘티다. 소위 조금 잘 나가는(?) 만년필이라면 몽블랑이나 (그라폰)파버카스텔, 오로라 등을 떠올리는 분들도 계실텐데 비스콘티는 여전히 낯선 이름이다. 하지만 이 메이커도 만년필에 관심이 좀 있다면 꽤나 낯익은 이름이 아닐까 싶다. 비스콘티의 특징은 본체의 재질인데 셀룰로이드를 사용하고 있다. 만년필을 식물성으로 만들다니? 라고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그만큼 처음 잡았을 때의 그립감이 부드럽다.

내가 구입한 제품은 비스콘티의 여러 제품 중에 가장 저렴한(?) 반 고호 미디 모델이다. 색상은 바닐라 색으로 만년필이라면 검정을 고집하는 분들에게는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비스콘티의 경우 모든 제품이 손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같은 색상을 택하더라도 100% 같은 제품은 없는 것도 특징이다.

무게는 캡이 상당히 무겁고 전체적으로 무게 중심이 펜촉이 있는 앞쪽으로 쏠려있다. 극히 가벼웠던 M150이나 프로핏에 비하면 육중한 느낌도 든다. 필기감은 역시 명불허전인데 금촉의 경우 스틸촉에 비해 종이면에 닿는 소리가 거의 없다. 스틸촉이 사각사각하는 느낌이라면 금촉은 스윽스윽하는 느낌이다.

다만 잉크는 비스콘티의 제품은 나랑은 조금 안 맞는 듯하다. 하긴 기존의 잉크도 어느 정도 말려서(?) 쓰는 스타일이니 묽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잉크는 역시 세일러 잉크와 몽블랑 잉크인데 일단 비스콘티 잉크에 적응을 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만년필을 쓴다는 것이 첨단과는 거리가 먼 일일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인간적인 느낌을 스스로 받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 아닐까 싶다.

손으로 글을 쓰는 것을 즐기는 입장에서는 ‘펜’이 중요한 관심사다. 펜을 고르는 요령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립감이라고 불리는 손에 잡았을 때의 느낌과 종이에 글을 쓸 때의 느낌이 가장 크게 작용하지 싶다.

내 경우는 가는 글씨(細筆)를 좋아한다. 가는 글씨는 깔끔하게 정리가 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필체가 좋지 않은 경우는 어수선하다는 느낌이 나는 단점이 있다. 가는 글씨를 쓰려면 특히 ‘펜’을 잘 골라야 한다. 잉크를 내보내는 공간이 다른 펜들에 비해 좁다 보니 글씨가 중간에 끊어지거나 종이가 긁히는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워드 프로세서가 워낙 보편적으로 사용되다 보니 직접 펜을 들고 종이에 글을 쓰는 일은 상대적으로 적어졌지만 일상 생활에서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즐기기에는 글쓰기처럼 좋은 것은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펜의 종류는 정말 많지만 연필과 샤프, 볼펜, 만년필 정도가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다. 연필의 경우는 아마도 요즘은 거의 사용하지 않겠지만 필기도구 중에서 가장 정감어린 것을 고르라면 연필을 1순위로 올려 놓아도 손색이 없다. 나무와 흑연 특유의 향이 글을 쓰는 중간에 여유를 주기 때문이다.

샤프는 내 경우 하나의 제품만을 고집해서 쓰고 있다. 일본 Pentel에서 나온 0.5mm와 0.3mm로 국산인 제도 샤프의 원조격인 제품이다. 이 샤프는 무엇보다 워낙 손에 익숙해져서 다른 것을 쓰기 어렵다는 이유로 사용 중이다.

볼펜의 경우는 젤 잉크가 들어간 제품을 선호하는 데 시험 공부를 할 당시에 답안지 작성용으로 워낙 많이 사용하다 보니 익숙해진 필기구다. PILOT의 G-2 0.5mm가 주로 사용하는 펜이고 들고 다니면서 메모를 하는 데에는 흔히 선물용으로 많이 주고 받는 Parker의 Reflex를 사용한다.

무엇보다 가장 좋아하는 펜은 역시 만년필이다. 만년필 사용자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나도 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은 낡은 Parker 만년필로 처음 글쓰기를 시작했다. 만년필은 손에 맞는 제품을 찾기가 쉽지가 않다. 우선 직접 써보고 고를 수 있는 경우가 많지 않은 데다가 가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나 역시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쳤고 현재 사용 중인 것은 일본 Sailor의 Profit과 Pelican의 M이다. 두 제품의 공통적인 특징이라면 역시 세필이다. 몽블랑과 같은 두꺼운 펜은 손에 쥐어줘도 사용하지 못한다.

잉크는 몽블랑이 특유의 색 때문에 매력적이고 세일러의 경우는 초미립자 잉크라는 자체적인 모델이 있는 데 세필에는 이 잉크가 가격적인 부담만 감수할 수 있으면 제일 적합하다. 펜 이야기는 하나씩 따로 주제를 잡아서 천천히 이어가 보도록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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