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무척 좋아하는 한자어가 있는데 바로 連理枝입니다. 연리지라고 읽는데 아마 우리나라에도 이 나무들이 제법 있어 한두 번 정도는 어디선가 보시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얼마 전 태풍이 왔을 때 금산사의 연리지가 부러졌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리기도 했습니다.

이 단어는 원래의 의미와는 약간 다르게 쓰여 지금은 남녀사이의 애틋한 정을 뜻하지요. 특히 부부사이의 정을 의미하는데 전혀 다른 근본에서 자란 두 개의 가지가 이어져 하나의 가지처럼 서로 의지하고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전 가족에 대해 뭐랄까 환상이라면 환상을 가지고 있는데 어릴 적부터 언젠가 좋은 여자 만나 가족을 꾸리고 사는 게 꿈이었지요.. 뭐 별것도 아닌게 꿈이다 하실 수도 있지만요..

하지만 이꿈은 참 이루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꿈으로 남아있지만 어쩌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더 애틋한 기다림과 희망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주변에 결혼한 이들로부터 혹은 인터넷 등에서 결혼 이후의 냉정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보기도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 가족을 만든다는 것은 참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은 변치 않고 있습니다.

사람을 만나기는 그리 어렵지 않고 연애를 하기도 그리 어렵지 않지요. 결혼을 하는 것도 어쩌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만 그 이후의 삶을 꾸려 가는 일은 참 대단한 거라 생각이 됩니다. '나'가 아닌 '우리'로서의 삶이라는 건 이제까지 하나의 결정만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시각에서 두 개의 결정을 합쳐 하나로 만든 다음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는 커다란 벽이 있기 때문이지요. 

결혼의 문턱에서 현실이라는 벽에 많이들 부딪히고 그벽을 끝내 넘지 못 하는 경우를 종종 보았고 겪기도 했지만 결국 그벽이란 건 두 사람의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나서는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되더군요. 결혼이란 어쩌면 나를 버리고 그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나 하나만이 아닌 서로 노력해야 하는 그래서 두 사람이 각자 상대에게 녹아들어 상대가 되어 가는 그런 모습이 되어서야 비로소 온전히 세상을 마주 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만약 그 벽을 넘지 못 했거나 못 한다면 아직 두 사람이 서로를 남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서로를 남으로 여기고 '나'를 먼저 생각하면 영원한 평행선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저 나를 상대에게 녹여 가야 하는 것이죠.. 그래야 온전한 連理枝가 되는 것이 아닐까 이제사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아무튼.. 連理枝는 이후 백락천에 의해 의미가 바뀌게 됩니다. 주인공은 잘 아시는 당 현종과 양귀비지요. 양귀비가 죽은 이후 현종은 이 시를 늘 외우곤 했다는데 한번 보시지요.


長恨歌(장한가)


七月七日長生殿

夜半無人和語時

在天願作比翼鳥

在地願爲連理枝

天長地久有時盡

此恨綿綿無絶期


7월 7일 장생전에서

깊은 밤 사람들 모르게 한 맹세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기를 원하고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기를 원하네

높은 하늘 넓은 땅 다할 때 있는데

이 한 끝없이 계속되네.


Nikon F5, AF DC Nikkor 105mm f2D, Kodak Supra 100, LS-40



입추도 지난 지 2주가 넘었습니다. 23일이면 우리 24절기 중 '처서'지요. 더위가 물러간다는 절기입니다. 올 여름은 유난히 더워서였는지 참 견디기 힘들었는데 어느샌가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찬기운도 느껴집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가을입니다. 가을은 '아, 이제 가을인가?'라고 생각할 즈음이면 이미 가고 없는 특이한 계절입니다. 달로 따져보면 10월 정도가 그나마 가을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올해는 뭐랄까요 -이제껏 살아오면서 그렇지 않은 적이 없겠지만- 유난히 스펙타클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인생이 여러 번 바뀌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아직 올해가 몇달이나 더 남아 있으니 -벌써 이런 말을 하게 되다니요- 어떤 일들이 더 생길지 참 흥미진진해지기도 합니다.

발이 아프다는 핑계아닌 핑계로 사진을 찍으러 밖을 다니지는 못 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덕분에 북한산 일정도 가을이나 되어야 갈 수 있을 것 같고요. 사실 사진이라는 게 어디를 가야 찍을 수 있는 건 아니지요. 이 또한 게으름과 나태함을 감추기 위한 핑계가 아닐까 합니다. SLR이 무겁다고 서브카메라까지 들여놓고서 그놈 역시 제습함에서 쿨쿨자고 있으니까요..

마음은 여전히 허전합니다. 가을이 오고 그 가을이 깊어가면 그 허전함은 더해지겠지요. 살아가면서 가장 가까운 벗이 바로 이 허전함이라는 녀석이 아닐까요. 이 녀석이 항상 곁에 있으니 떨쳐버리고 싶어 이런 일도 저런 일도 해 보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올해는 연초부터 달라붙은 이 녀석이 영 떨어질 줄을 모르고 더 품으로 파고들고 있으니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르겠네요.

세월은 가고 나이는 먹어가고 추억은 쌓여갑니다.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가게 될지 전혀 알 수 없는 삶인데도 우리는 너무나 당연스럽게 내일을 이야기하고 다음 주를 이야기하고 내년을 이야기하며 살아가지요. 부질없는 상상이지만 이제까지 살아온 날들 중에 혹은 만났던 사람 중에 혹은 가졌었던 물건 중에... 딱 한 가지만 그대로 되돌려준다면 어느 것을 고르시겠습니까?


Nikon D100, AF-S Nikkor ED 17-35mm f/2.8D 


관계란 묘한 것이어서 관계가 지속되고 있는 동안에는 어지간해서는 긍정보다 부정의 감정이 크게 작용하지만 막상 그 관계가 끝나고 나면 부정보다는 긍정의 감정이 크게 작용한다. 사람과의 관계건 혹은 사물과의 관계건 그래서 그 관계가 끝난 후에 자신의 실수나 더 잘 하지 못 했던 것들에 대한 회한의 감정이 종종 머릿속을 가득 채울 때가 있다.

허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난 후의 보상심리일 뿐이다. 다시 만난다면 혹은 다시 그것을 갖게 된다면 이번에는 이렇게 더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다짐과 스스로에 대한 약속은 이미 끝이 나 버린 관계에 대해 자신의 '탓'이 아님을 그래서 불가피한 것이었음을 자신에게 납득시키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도 몇 번인가 그런 생각을 했지만 결국 생각이 다다른 곳은 '다시' 만나거나 '다시' 갖게 되더라도 이전과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적어도 그 '대상'이 같다면 행동이나 생각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차라리 그 마음과 다짐으로 새로운 이를 만나거나 새로운 것을 들이는 것이 더 낫다. 

관계가 깨진다는 것은 스스로 '알고 있는 이유' 이외의 수도 없이 많은 '알지 못 하는 이유들' 때문이다. 그 알지 못 하는 이유들은 끝끝내 해소될 수 없기에 '되돌림'은 오히려 서로에게 남겨진 상처를 더 벌어지게 할 뿐이다.

다시 되돌이키는 것이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나'를 버릴 때다. 내가 상대에게 혹은 어떤 사물에 완전히 몰입되어 내 존재가 사라질 지경에 이른다면 그땐 비로소 과거의 어떤 오류나 엇갈림도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된다는 것은 '인간'이라는 전제 하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신에 귀의한다거나 어떤 신념에 스스로를 버리는 경우가 드문 예일 뿐..


Nikon D300, AF-S 35mm f/1.8G


살다보면 자의에 의해서건 혹은 타의에 의해서건 꼭 가보고 싶었던 길을 걷지 못 하게 되는 일이 종종 있다. 대부분 '할 수 없지'라고 생각하고 잊고 사는 것이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생각하면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래도 못내 아쉬움이 남은 그길에 대한 동경과 아쉬움은 특히나 일상에 지치고 사람에 치일 때면 불쑥 머리를 강하게 치고 지나가곤 한다.

그래서 '아, 전에 그길을 갔더라면 지금 이렇지는 않을텐데...'라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정말 생각지도 않게 그길을 다시 가야 하는 상황이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지면 그 감격이란 참 대단한 것이다. 물론 그길이 언제나 쭉쭉 뻗어있는 신작로가 아닌 그리고 아제까지 살아온 삶의 어떤 모습보다도 힘든 여정임을 잘 알고 있더라도 말이다.

몇 번인가를 돌고 돌아 다시 여기 섰다. 막상 서 보니 두려움도 생긴다.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반드시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던 일이 현실이 되니 두려운 것이다. 사람이란 이렇게 간사하다. 늘 손에 닿을 수 없는 것을 바라고 희망한다. 그러면서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과 가고 있는 길에 대해 불만을 늘어놓곤 한다.

이제 다시 그길에 서서 나는 어떤 삶을 살 수 있을까 내게 물어본다. '돌아만 갈 수 있다면...'이리고 늘 바라기만 했던 그 여정의 출발점에 이제 나 홀로 서 있다. 오래 전 묻어두었던 길인지라 어디부터가 길의 시작이고 가장자리인지 보이지도 않고 이정표조차 세월의 무게를 버티지 못해 쓰러져 있는 이길에 단지 내 몸뚱이 하나만 가지고 서게 됐다.

이제 흔한 문구를 인용하며 걸어나가는 수밖에


"운명아 비켜라 용기 있게 내가 간다!" -니체


Nikon D300, AF NIkkor 35mm f2.0D


향원정은 여름에 가야 제맛인데 무엇보다 연꽃이 활짝 핀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어떤가 모르겠지만 예전의 향원정은 말 그대로 옛정취가 물씬 풍기는 그래서 시간의 개념조차 잊게 되던 그런 곳이었다. 위 사진은 16mm인데 아마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렌즈가 아닐까 싶다. 어안렌즈 특유의 느낌을 살리기에 적당한 바디를 쓰지 못해 아쉬웠던 날...

연꽃을 담아보려 이리저리 노력을 해봐도 쉽지 않은 것은 역시나 거리. 당시 D1x와 200mm 렌즈였는데도 좀처럼 마음에 드는 꽃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꽃이라는 게 피고지는 때가 있는 법인데 어느 날 갑자기 찾아가 왜 꽃이 없냐고 항의를 해봐야 무지한 자신을 드러내는 일일 뿐...

살아가는 일은 결국 순리대로 따라가는 것이 상선(上善)이다. 즉 물처럼 살아가는 동안에 가장 좋은 삶을 살게 되는 것이지 싶다. 그럼에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우리네 삶은 물처럼이 아닌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의 삶을 보다 추구하는 모양새다. 꽃처럼 때가 되면 꽃을 피우고 때가 되면 조용히 물러나 다음 개화를 기다리는 마음.. 그것을 우리네 인간은 참 갖기가 어렵다.

허나..어렵다 생각하면 또 끝이 없는 법.. 물의 흐름을 따라 꽃의 순리를 이해하는 마음을 얻기 위해 살아가는동안 노력해야한다. 그것이 살아가는 이유이자 목적이 된다면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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