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둘레길을 걸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첫발을 내딛은 것이 작년 5월 8일이었다. 그리고 오늘 1구간을 처음 걷기 위해 설렘과 기대와 불안을 갖고 출발했었던 우이동 시작점으로 다시 돌아왔다. 아직 채 1년은 되지 않았지만 벌써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났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1년 사이 참 많은 일들.. 사람이 삶을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가장 감정에 민감한 일들을 많이 겪었다. 그래서일까 오늘의 걸음은 예전 둘레길을 걸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지하철 1호선 도봉역 1번 출구로 나간 다음 길을 건너 한참을 걸어야 한다. 둘레길을 걸으면서 자연스레 서울의 여러 지역들을 접하게 되는데 이 지역의 느낌은 약간은 허전하달까? 아마도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곳들이 많아서겠지만 한번 더 생각해보면 오히려 이런 공간적인 여유가 남아있는 것이 다행일런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사진들은 라이트룸에서 후지 아스티아 필름의 설정을 전부 적용해봤다. 아스티아는 필름 카메라를 쓰던 시절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던 약간은 비주류 필름인데 청색기운이 약간 강한 편이고(물론 벨비아만은 못하지만 후지에서 나오는 필름은 박스 포장의 색처럼 녹색과 청색이 강조되는 편이다) 상당히 입자가 곱고 동양인의 피부색을 꽤나 잘 구현하는 필름이어서 주로 포트레이트용으로 사용하던 필름인데 풍경에 적용할 경우는 독특한 색감이 나는 게 특징이다. 디지털 변환이 온전히 아스티아의 느낌을 살린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왠지 오늘은 그냥 그 필름의 느낌이 그리웠다. 아마 색이 왜 이래?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리라...


도봉초등학교의 모습인데 학교의 색을 알록달록하게 칠해놓은 것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가까이 가서 찍어보고도 싶었지만 요즘 초등학교 근처에서 배회하다가는 괜한 오해를 살 수도 있어 90mm로 죽 당겨봤지만 이 정도가 최선이다. 맑은 날이어서 멀리 산의 모습도 제법 또렷이 볼 수 있었는데 아이들에게는 좋은 교육환경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길을 따라 좀 더 올라가면 주말농장을 꾸려둔 곳들이 많이 있다. 온전히 서울 촌놈인 나는 이런 것만 봐도 참 신기한데 한때 주말농장에 꽤 인기를 끌었던 시절도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요즘은 인기가 시들한 모양이다. 저렇게 번호를 붙여 놓으니 농장이라는 느낌보다 묫자리같은 느낌이 들어 왠지 꺼림칙하긴 했지만 내 개인적인 선입견이니 염두에 둘 필요는 없으리라.


이제 19구간의 시작점을 만날 수 있다. 방학동(放鶴洞)이라는 명칭은 한자 을 보면 학이 평화롭게 앉아 놀고, 알을 품고 있는 것 같다는 데서 유래됐다는 설,  방아터가 있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방아골로 부르던 것을 한자명으로 쓴 데서 유래됐다는 설 등이 있지만 한자를 볼때 앞의 의견이 맞는 것이 아닐까 추측을 해본다.


4월이라는 계절은 애매하다. 차라리 3월이면 심리적으로도 봄이라고 생각을 하겠지만 4월은 따뜻한 것도 아니고 추운 것도 아니다. 굳이 어느 시인의 '잔인한 달'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내게는 충분히 잔인했던 달이어서 그런지 그 애매함에 잔인함까지 덧붙여져 썩 마음에 들지 않는 계절이 되어 버렸다. 산길에 들어서서도 그 느낌은 이어졌다. 그러고보니 주변에도 봄을 특히 4월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도저도 아닌 애매함 때문이 아닐까.


산길의 곳곳에는 이미 활짝 꽃망울을 터뜨린 녀석들도 있는가하면 이제 조금씩 꽃잎을 열어볼까 하는 녀석들도 있고 이미 제철을 다 보내고 바닥에 화려한 흔적들을 남기고 저물어 버린 녀석들도 있다. 삶의 시작과 진행과 마감까지 동시에 이루어지는 공간이 봄의 산길이다. 꽃은 그것이 활짝 펴서 절정을 이룰 때는 아름답지만 삶을 마치고 길바닥에 무참히 꽃잎들의 조각을 흩뿌릴 때가 되면 추한 모습이 된다. 마치 눈과 같다고나 할까.. 하지만 화려함뿐 아니라 그 화려함 뒤의 초라함까지 받아들일 때 온전히 한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길만 봐서는 겨울에 접어들 무렵이 아닐까 생각될 수도 있다. 이렇게 4월이라는 계절이 주는 느낌은 애매하다. 아마 당분간은 봄이라는 계절과 4월이라는 달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래도 이 계절과 달을 지나야 본격적인 화창함과 만날 수 있으니 그저 인고의 느낌으로 기다려야 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근처 초등학교의 체육 시간인지 아이들이 제법 많이 나를 지나쳐갔다. 특이했던 것은 시간제한이라도 있는 모양인데 거의 모든 아이들이 달려가고 있다는 점이었는데 그저 앞만 보고 달리는 동안 마주칠 수 있는 수 많은 '느낌'들을 아이들은 인식하기도 전에 지나쳐버린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도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 들여다보기에 시간이 모자랄 지경인데...


꽃이 왜 피는지는 알지만 꽃이 왜 지는지를 아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뽐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길가에 아무렇게나 뒹구는 모습이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본 이들은 얼마나 될까? 만약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산에 간다면 그 이유를 설명해주고 싶다. 그리고 이렇게 내버려진듯 흩어져버린 꽃잎들도 모두 다 같은 꽃이라고...


언젠가 연리지(連理枝)라는 단어를 좋아한다고 적은 적이 있는데 사실 연리지를 직접 마주친 적은 드물다. 이 사진에 보이는 나무도 그런 이름으로 부르기에는 부족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내가 이 사진을 찍은 것은 이 나무들 곁을 지나고 있을 때 불어오는 바람에 두 나무가 부대끼며 끼익끼익하는 소리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생이 다른 두 삶이 만나 내는 소리. 같은 나무였다면 결코 만들어낼 수 없었던 그 소리를 이 두 나무는 그렇게 내고 있었다. 인간의 귀로 듣기에는 불편하 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이 두 나무에게는 어쩌면 또 다른 삶을 이루어가는 소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 생각 저 생각하는 중에 19구간 방학동길이 끝났다. 그리고 일반적인 경우라면(21구간은 예약을 해야 하니) 걸을 수 있는 북한산둘레길의 마지막 구간인 20구간 왕실묘역길이 내 앞으로 펼쳐졌다. 19구간이나 20구간이나 모두 걷기에 큰 무리는 없다. 다만 날이 슬슬 덥다는 느낌을 줄 정도가 되고 있으니 옷이라든가 물이라든가 하는 준비물들을 이전과는 조금씩 다르게 챙겨야 한다.


왕실묘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처음 만나는 곳은 정의공주묘다. 사실 처음 정의공주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발해의 공주였던 정혜, 정효공주가 떠올라 이분도 발해의 공주인가 생각을 했는데 설명이 적힌 표지판을 읽어보니 세종의 따님이셨다.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 이곳은 공개를 하지 않아 이것저것 자세히 살펴볼 여지는 없었다. 명당이라는 것이 과연 있는 것인가 싶지만 따스한 봄날의 햇살을 듬뿍 받기에는 제법 어울리는 장소였다.

이곳을 지나 바로 만나게 되는 장소가 연산군묘와 800념이 넘은 은행나무인데 연산군묘는 사진의 구도가 영 나오지 않았고 천년된 은행나무는 앞에 왠 광고 플래카드를 크게 걸어놓아 탐탁지 않아 이곳에 올리지는 않을 생각이다. 아무튼 왕실묘역이라는 이름은 정의공주묘와 연산군묘의 위치를 빌어 지은 이름 같은데 그 이름이 주는 무게에 비해 여러모로 아쉬운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왕실묘역길은 이렇게 일반 동네의 뒷길 같은 길을 조금 걷다가 산길을 조금 걷다가 금방 마무리 된다. 워낙 거리가 짧은 구간이고 별 다른 특징도 없는데 차라리 이전의 구간에 이어 붙였으면 아쉬움이 덜 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였다. 물론 애초에 북한산둘레길의 구간이라는 것 자체가 인위적인 것이니 특정 구간의 거리와 풍경에 연연해 할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아마도 (어설픈) 아스티아의 색감 덕분에 봄의 산길인데도 마치 겨울의 그것처럼 조금은 쓸쓸한 느낌이 더 드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계절은 분명 봄이고 며칠 후면 절기상 여름인 입하에 접어든다. 어쩌면 나는 아직도 겨울의 느낌을 겨울의 풍경을 그리워하고 있는가보다. 적어도 지난 겨울에는 아니 지난 겨울까지는 그래도 마음을 크게 다치지 않고 지낼 수 있었으니까...


다시 도로로 나서면 이제 막바지다. 멀리 북한산 아니 삼각산의 세 봉우리가 보인다. 북한산을 가로로 관통하는 우이령길을 빼고 보면 온전하게 북한산 자락을 모두 걸은 셈이다. 누군가에게는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닐 수도 있는 이 걸음을 걷는데 1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래도 내가 이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는 말 덕분이 아니었을까.


처음 북한산둘레길을 걷기 위해 그러니까 1구간 소나무길을 걷기 위해 저 멀리 보이는 버스종점에 내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산에 오르는 것도 아니고 고작 둘레길을 걷는 것이었을 뿐인데 그날은 왜 그리 설레고 떨렸을까? 그리고 이제 바라보는 그때의 그길은 지난 해의 그길보다는 조금 더 여유있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약간이라도 익숙함이란 이런 편안함을 주는 가보다.


이곳 블로그에는 없지만 아직도 내 휴대폰에 남아있는 이 장소를 다시 찍어본다. 전체적으로 사진들이 물빠진 듯한 필름의 느낌을 주는 것이 그래도 마음에 든다. 필름카메라에 대한 추억을 이렇게나마 되돌려볼 수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제 한 번의 걸음을 더 걸으면 북한산둘레길의 모든 구간을 마무리하게 된다. 아마도 1년을 모두 채우기 전이 되겠지만 내게는 마치 평생과도 같았던 1년이었다.


길을 시작했던 그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길을 그대로인데 그길을 걷는 사람만 달라졌다.

사람의 외모도 사람의 마음도 1년 전의 그것과는 참 많이도 달라졌다.


Panasonic LX-7, Adobe Lightroom Fuji Astia Preset


오랜만에 다시 북한산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대로 두다가는 눈 덮인 겨울산을 더 보기 힘들 것 같아 없는 시간 쪼개서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이번에 다녀온 구간은 17구간과 18구간으로 드디어 경기도에서 다시 서울로 접어드는 나름 의미가 있는 걸음이었다. 다행히 오늘은 날이 제법 맑고 하늘이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았던 데다가 며칠 새 눈이 제법 왔으니 설산을 보기에는 제격이다 싶었다. 물론 마음은 백운대에 가 있었지만 우선은 이 걸음을 마무리해야 한다.


17구간 다락원길은 지하철 1호선 망월사 역에서 시작한다. 이 구간은 이전 글에서 적은 지점에서 바로 이어지는 형식이어서 따로 출발점이 있진 않다. 지하철 역에서부터 본격적인 둘레길 코스에 진입하는 동안 길가에 쌓인 눈은 정말 대단해서 인도는 거의 치워지지 않아 차도로 걸어야 했다. 멀리 도봉산 자락이 손짓해 부른다. 강북5산이라 불리는 불-수-사-도-북의 네 번째 산인 도봉산. 둘레길 완주가 마무리되면 천천히 돌아볼 생각이다.


멍하니 산만 바라보다가 갑자기 앞에 시커먼 녀석이 있어 깜짝 놀랐다. 대충 3-4미터 정도의 거리였던 것 같은데 까마귀가 그렇게 큰 줄을 몰랐다. 아니면 이 녀석만 유달리 발육상태가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는 폼이 대단했다. 까마귀는 우리나라에서는 흉조로 여겨지지만 길조로 여기는 나라도 있다. 아마도 이름이 좀 이상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머리도 좋다고 한다. 검은색에 대한 어딘가 모를 타부 의식이 아닐까 싶다.


이 구간은 사실 이제까지 걸어온 여러 구간들 중에서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은 구간으로 꼽을만하다. 뭐랄까 특징이 없는 길이랄까 그런 느낌이 강한데 이 구간을 걸으며 아쉬웠던 마음은 18구간인 도봉옛길에서 모두 사라지게 된다. 아무든 이 근처에는 군 부대가 여럿 있는데 오늘은 사격일인지 총소리가 제벱 요란했다. 총소리라면 군 시절 지겨울 정도로 많이 들었었는데 오랜만에 들으니 반갑기도 하다.


이제 제대로 된 산길에 접어든다. 아이젠을 꺼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참 고민하다 일단 그냥 가보기로 한다. 하지만 겨울산에는 무조건 아이젠과 등산스틱(마운틴 폴)을 이용해야 한다. 무엇보다 눈 아래 무엇이 있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스틱은 미리 길을 짚어보는 용도로 유용하다. 아이젠이야 말할 필요도 없다. 눈이나 얼음에 미끄러지지 않으려면 번거로워도 채우고 출발하자. 가끔 보면 산을 잘 탄다는 호기에 혹은 몰라서 아이젠을 기피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이젠 없이 눈길을 성큼성큼 달려간다고 해서 누가 대단하다고 칭찬해주진 않는다.


사방이 온통 눈이고 나무다. 무척이나 보고 싶었던 풍경이다. 선글라스를 챙기지 않은 게 오늘은 좀 실수였다. 햇빛이 제법 강해서 눈에서 반사되는 빛이 상당히 강렬했다. 할 수 없이 실눈을 뜨고 걸어가곤 했는데 누가 보기라도 했으면 참 우스웠을 표정이 아니었을까? 이 근방의 눈은 정말 많이 쌓여있었다. 사람 한 명정도 지나갈 정도의 길만 그나마 눈이 적고 그 주변은 발을 집어 넣으면 발목을 쉽게 넘을 정도였다.


요 며칠새 내린 눈은 습기를 많이 머금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눈 쌓인 나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고개를 늘어뜨리고 있다. 눈 무게가 상당한 까닭인데 나무는 그저 허리를 숙여 눈을 온몸으로 버텨낼 뿐 아무 불평도 없이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었다. 눈이 내린 이후 사람들의 왕래가 그리 많지 않은 길이어서 정말 원없이 눈을 즐길 수 있는 길이기도 했다.


대충 이 정도로 발이 푹 들어가는데 위에서 보니 감이 잘 오지 않지만 발목 위로 훌쩍 올라온다. 어림짐작으로 20Cm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러고보니 둘레길 시리즈를 쓰면서 내 몸이 출연하기는 처음이다. 전신 사진도 있긴 하지만 눈이 피로해질 분들이 상당수 되지 않을까 싶어 차마 그 사진을 올리지는 못 하겠다. 카카오스토리에 올려둔 게 있긴 한데.. 아무튼...


대체로 무난한 산책로 정도의 구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오르막이나 내리막도 없다. 맨 아래에 트래킹 기록을 붙여 두었는데 17, 18구간을 참 천천히 걸었음에도 2시간 30분이 걸리지 않을 정도니 두 구간은 걷기 편한 길. 산책하기 좋은 길이라고 여기면 될 것 같다. 발 아래에서 들여오는 뽀드득 하는 눈 밟히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다. 


어딜 가나 눈이고 나무다. 볼 수 있는 색은 단 몇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이건 참 매력적이다. 도시로 돌아오면 정말 눈이 혼란스러울 정도의 많은 색들에 눈이 시달려야 하는데 눈 덮인 산을 걸으면 몇 개 안 되는 색밖에 볼 수 없고 그 색들에 푹 빠지게 되니 말이다. 산은 그렇게 어느 계절에 찾아와도 우리 인간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 그게 자연이다.


길가로 조금 나오면 다락원 캠프장이 보인다. 참 좋은 지역에 캠프장이 있다 싶은데 누가 와서 캠핑을 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YMCA에 대해 생각나는 건 야구단 주제로 한 영화밖에 없기도 하고...다락원이라는 이름은 다른 게 아니라 조선시대에 공무로 출장을 가던 이들이 머물던 곳이라 한다. 이 다락원길이 나름의 의미를 가지는 것은 경기도와 서울에 걸쳐 길이 이어져 있다는 것인데 하나의 경계를 넘어서는 일은 별 것 아닌 것 같으면서도 많은 것들을 달라지게 만든다.


자, 이제 경기도를 벗어나 서울로 접어 든다. 북한산둘레길을 걸어보자고 생각한 이래 서울에서 출발해 경기도로 나갔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온 것이다. 거리 상으로야 얼마 되지 않지만 이 길을 걸어오는데 걸린 시간은 제법 오래 걸렸다. 오늘 17구간과 18구간을 마무리했으니 이제 남은 구간은 단 세 구간뿐.. 19,20구간은 서울의 동쪽을 그리고 마지막 우이령길은 출발점을 어디로 잡건 경기도로 한 번 더 나가야 한다.


얼마 걷지 않았다 싶은데 17구간이 끝나고 18구간인 도봉옛길이다. 이 구간은 정말 괜찮다. 산을 오르는 듯한 재미도 있고 풍광도 근사하다. 그리고 이 구간의 끝부분에 다다르면 도봉산의 주등산로와 만날 수 있기도 하다. 평일임에도 이 구간에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는데 아마도 도봉산으로 향하는 이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이 구간은 사찰이 여러 곳 있다. 자세히 들여다볼까 하다가 뭐랄까 그 화려함에 조금은 기가 죽어 글로 적지는 않기로 한다.


사람이 다니면 길이 만들어진다. 이 계단에 누군가 지나지 않았다면 저렇게 길이 나지는 않았을 것. 어디가 계단의 시작이고 끝인지조차 알 수 없었을 것 같은데 누군가 부지런히 걷고 또 걸으며 길이 만들어진다. 눈 덮인 산은 이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물론 본격적인 등산을 시작해 눈을 헤치고 가야 하는 상황이라면 여유를 부릴 틈은 없겠지만 말이다.


멀리 보이는 정상이 자운봉일까. 나는 아직도 산을 멀리서 보고 저기가 무슨 봉우리고 무슨 능선이고 하는 것을 알지 못 한다. 이름을 알고 찾아간다면 좋겠지만 때로는 그냥 아무 것도 모르고 바라보는 것으로도 충분하기도 하다. 아마 저 봉우리들을 몇 번 다니다보면 자연스레 이름도 알게 되고 길도 알게 되겠지만 그때까지는 그냥 이렇게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운해라고 하기에는 조금은 어색해보이지만 그래도 꽤 멋진 풍경이다. 저 정상 위에서 내려다본다면 감탄사가 절로 나오지 않을까. 이렇게 먼 발치에서 바라만 봐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말이다. 정상 근처에 뭐가 뭍은 것처럼 보이는데 사진을 눌러보면(그래도 자세히는 안 보이지만) 까마귀 한 마리다. 모니터에 뭐가 뭍은 거 아니니 혹 모니터 닦고 계신 분은 안 그러셔도 된다. 


있는 줌 없는 줌 다 당겨서 찍어본다. 120mm로 당긴 사진인데 똑딱이로는 확실히 아쉬운 면이 있다. 크롭을 해볼까 했더니 여지 없이 해상도가 무너져 버려 그냥 원본을 올린다. 그래도 이 정도로 보이는 것만 해도 어딘가 싶다. 이럴 때는 니콘의 신병기인 D800이 멀리서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데 뭐 그건 나중 일이다. 그래도 똑딱이가 이 정도로 사진을 잘 담아내는 게 오히려 기특하다.


자운봉 3.2Km.. 0.7Km 남았다 이러면 유혹에 끌려 한참 고민을 할 수도 있겠지만 3Km가 넘어가면 빨리 포기할 수 있다. 산행으로 3Km면 도봉산의 난이도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눈길을 감안하면 3시간은 족히 걸리지 않을까 싶다. 이미 시간이 꽤 되었고.. 또 어딜 갈 때 내가 늘 그렇듯이 먹을 것을 전혀 챙겨오지 않았기 때문에 별 미련없이 둘레길로 발길을 옮긴다.


그리고 만나게 되는 이 웅장한 건물(광각렌즈 효과일 뿐이다)은 도봉산 주등반로의 시점을 알리는 도봉분소다. 여기서부터 도봉산 등산을 시작하면 비교적 무난한 코스로 오를 수 있다. 내가 가장 가 보고 싶은 코스는 사패산에서 도봉 능선을 따라 북한산 백운대로 이어진는 코스인데 부실한 체력으로 산 3개를 넘어갈 수 있을까 싶어 일단 간만 보는 중이다.


평일임에도 참 많은 사람들이 도봉산을 오르고 있었다. 사람 사진을 잘 찍지는 않지만 그래도 왠지 분위기가 괜찮아 보여 한 장 남겨 본다. 강북5산 중에 도봉산과 북한산이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산이 아닐까 싶다. 사패산이나 불암산, 수락산과 같은 이름은 어쩐지 조금은 낯설다. 아무튼 서울의 북쪽으로 이렇게 방대한 산자락이 이어져 있다는 것은 참 근사한 일이다.


도봉산 등산객들과 갈라져 다시 둘레길 코스로 돌아오면 한적한 길이 이어진다. 이쪽 길은 휠체어를 탄 이들도 둘레길을 돌아볼 수 있도록 만든 길이라고 하는데 아마 둘레길 전 구간에 걸쳐 이곳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여러 구간에 이런 시설을 마련해두면 물론 좋겠지만 그래도 비교적 경치가 좋고 접근성도 괜찮은 이곳에 마련해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그리고 길을 걷고 또 걸어 하늘의 파란색과 땅의 하얀색이 만나는 길을 끝까지 오르면 18구간 도봉옛길도 어느새 종착점에 다다른다. 이제까지 걸어온 둘레길의 여러 코스 중에 단 한 구간을 고르라면 이곳 도봉옛길을 추천한다. 누구나 걷기에 부담이 없고(난이도도 '하'다). 주변에 둘러볼 수 있는 곳들도 많고 경치도 꽤나 좋은 편이다. 계절 가리지 않고 걷기에 참 좋은 길이 아닌가 싶다.


아무렇게나 묶여 있을만한 녀석이 아닌데 묶여 있다 싶어 한참 서로 바라본다. 저 녀석은 저기 서 있으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접하게 될까. 나는 저 녀석이 만난 수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겠지만 그래서 저 녀석에게는 금방 잊히고 마는 그런 존재일 수도 있겠지만 내게 저 개는 단 한 마리로 기억되고 이렇게 집에 돌아와서도 여전히 기억 속에 맴돈다.

관계란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어떤 만남은 스치는 순간 바로 잊기도 하고 어떤 만남은 평생에 걸쳐 기억 속에 남아 있기도 하다. 기억에 오래 남거나 혹은 바로 기억에서 사라지거나 그렇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만히 생각해본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얼굴들을 떠 올려 본다. 힘들여 기억해보려 하지 않아도 곧 떠오르는 얼굴들은 분명 내 삶에 좋은 면이건 그렇지 않은 면이건 큰 영향을 준 이들이다.

그렇다면 나는 다른 이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좋지 않은 모습으로 기억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스친 후 잊히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세월을 돌이켜 생각해볼 때 그 사람을 만난 것은 참 후회스러운 일이었어..라고 기억하거나 기억되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도 그 사람을 만난 것이 다행이었어..라고 서로 기억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무튼 오랜만에 눈 덮인 산에 이끌려 걸어본 둘레길이었다. 이제 정말 막바지구나 싶다. 앞으로 남은 구간은 3구간. 두 구간은 하루에 걸을 수 있고 우이령길은 예약제로 운영이 되기에 편한 날을 잡아 걸으면 된다. 총 21개 구간 71Km에 이르는 길. 어쩌면 별 게 아닐 수도 있지만 이렇게 하나의 맺음을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여러 의미를 주는 것 같아 또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둘레길 완주가 끝나면 북쪽의 산들부터 하나둘 다녀볼 생각이다. 아마 첫 번째 대상은 사패산이 아닐까 싶은데 언제가 될 지는 역시 정해두지 않기로 하겠다.




Panasonic LX-5


사적 10호는 '한양도성'이다. 내가 아는 한도에서 가장 큰 사적이 아닐까 싶은데 서울을 원의 형태로 빙 둘러서 하나의 성을 쌓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이 한양도성은 서울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존재인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일단 오랜 전쟁과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성곽이 대부분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한양도성을 둘러싼 8개의 문은 4대문과 4소문으로 나뉘는데 동쪽의 흥인지문(동대문), 서쪽의 돈의문(서대문), 남쪽의 숭례문(남대문), 북쪽의 숙정문(북대문)이 4대문이다. 이 중에 제대로 남아있는 것은 동대문과 숙정문이다. 서대문은 일제 강점기 때 철거되어 아직 복원이 되지 않았고 한양의 관문인 숭례문은 이전의 화재로 아직 복원이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4대문 중 흥인지문은 보물 1호, 숭례문은 국보 1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이 4대문을 중심으로 북동쪽에 혜화문(동소문), 북서쪽에 창의문(자하문), 남동쪽에 광희문(수구문), 남서쪽에 소의문(서소문)이 있는데 혜화문은 일제가 철거한 후 복원이 되지 않았고 서소문 역시 일제 때 철거되었기 때문에 현재 남아 있는 것은 광희문과 창의문이다. 혜화문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뉘지만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다. 아무튼 이 8개의 문을 빙 둘러서 쳐진 성곽이 사적 10호인 한양도성으로 오늘 찾은 곳은 한양의 북서 관문인 창의문(자하문)이다.


멀리 창의문이 보인다. 창의문은 한양의 북서쪽에 있는 문이지만 한양의 실제 북문인 숙정문이 거의 열린 적이 없어 창의문이 북문의 역할을 대신했다고 한다. 숙정문은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 문이 열리면 한양의 풍기가 문란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늘 닫아 두었다고 한다. 현재 숙정문은 활짝 열려 있는 상태인데 서울의 문란함이 증가되었는지는 알길이 없다.


창의문(彰義門)은 자하문(紫霞門)이라는 애칭으로 더 많이 불렸다고 하는데 보라색 노을을 의미하는 자하가 이 문을 중심으로 많이 보여 그렇게 불렸다고 한다. 창의문은 4소문 중에 가장 보존도가 높은 문으로 1396년 태조 당시 축조된 상태가 거의 그대로 보존되고 있으며 1958년 완전하게 보수를 마쳐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위의 그림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인왕산에서 북악산에 이르기 위해서는 창의문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조선 시대에는 이 문의 이용이 상당히 많았다고 한다. 


창의문의 특징 중의 하나가 목계 즉 나무로 만든 닭인데 추녀에 닭을 매달아두었다는 이야기, 망루에 닭을 올려두었다는 이야기 등 이런 저런 말이 많은데 직접 가서 보니 저게 닭인가 싶어 한참을 바라봐야했다. 창의문은 다른 문들과 달리 항상 열려 있어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 있는 문이다. 다른 문들이 닫혀 있거나 접근이 어려운데 반해 이문만큼은 가장 잘 보존이 되고 있음에도 늘 사람들에게 길을 열어주고 있었다.


창의문을 시점으로 서울성곽길 코스가 하나 있는데 사진에서 오른쪽에 입구가 있다. 북악산 서울성곽길로 여기는 신분증을 내고 서류를 작성해야 입장을 할 수 있는데 오늘은 그 코스를 따라가지는 않았다. 서울성곽길도 전체적으로 한번 둘러볼만한데 북한산둘레길의 완주가 끝나면 성곽길을 주제로 글을 써볼까 싶기도 하다. 


문의 보존이 아주 잘 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문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몇백 년의 세월이 지난 것을 생각해보면 이문을 통해 얼마나 많은 우리네 조상들의 삶의 희로애락이 교차되었을까 싶어 새삼 느낌이 새롭다. 겨울 햇살에 살짝 몸을 녹이고 있는 작은 문을 바라본다. 겨울이 아닌 다른 계절에 이곳을 찾았다면 좀 더 생동감 있는 모습이지 않을까 싶지만 역시 겨울에 제 빛을 낼 수 있어야 다른 계절에도 그 빛이 강해지는 법. 


단청의 색은 언제 봐도 참 알록달록한 것이 사람 마음을 즐겁게 한다. 이렇게 보니 닭머리(주: 사실 동물은 머리라고 쓰지 않지만 언어순화를 위해 머리로 적습니다)도 좀 더 잘 보인다. 윗부분은 바람 등의 영향을 적게 받아 색이 온전히 남아 있지만 아래 부분은 색이 조금씩 바래고 있는데 그래도 이 정도로 남아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싶다. 


천장을 보면 참 잘 짜여진 구조로 지어졌구나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세월을 지탱하는 힘은 이 뼈대에 있다. 밖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안으로 튼튼하게 지어진 틀들이 모진 세파를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오밀조밀한 나무들과 그 틈 사이로 오래된 역사가 숨쉬는 느낌이 든다. 오른쪽에 뭔가 현판이 하나 보이는데 여기에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제법 넓어 보이지만 광각렌즈의 효과다. 중앙 부분은 보존 차원에서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아두고 있다. 가끔 보면 이런 걸 그냥 무시하고 들어가는 분들이 있는데 잠시의 자기 만족을 위해 역사를 후세에 물려주는 일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하지 말라고 하면 하고 싶어지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지만 그 본성때문에 사라진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인조반정 당시 반정군은 이 창의문을 뚫고 창덕궁으로 진격했다고 하니 이 문에 서린 피의 역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남아 주위를 맴돌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새삼스러운 순간이다. 아무튼 영조는 그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창의문을 보수하고 저 현판을 매달아 두었다고 한다.


당시 반정공신들의 이름이라는데 가까이 갈 수가 없어 망원으로 당겨보았지만 120mm로는 아주 약간의 글자만 읽을 수 있을 뿐이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데 정말 저렇게 이름을 남겨 두고 있다. 문득 이름을 남긴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름이라는 것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말해줄 수 있을까. 하지만 한 사람 혹은 한 존재의 내면을 속속들이 알 수 없는 우리로서는 눈에 보이는 것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셈이니 역사에 적힌 이름이나 글자들이 진실을 반영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참고자료: 한국관광공사 홈페이지,  위키피디아, 다음 백과사전, 서울성곽 홈페이지 등


한양도성 창의문 (彰義門)

1396년 건축 사적 제10호

주소: 서울 종로구 부암동

북악산 서울 성곽 홈페이지 



창의문에 가는 길은 도보로는 약간 멀다. 경복궁 역에서 4번 출구로 나온 다음 경북궁 돌담길을 끼고 그대로 직진하면 되는데 대략 2km정도의 거리로 천천히 걸으면 30분 정도 소요되므로 경복궁 역에서 버스를 타고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서 내리는 교통편을 이용해도 좋다. 


창의문으로 가는 길에서 만날 수 있는 최규식 경무관의 동상이다. 121사태 당시 종로경찰서장으로 근무하다가 김신조 일당의 총격으로 사망한 분이다.


창의문 입구에서 만날 수있는 청계천 발원지를 알리는 표지다. 예전에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에 가본 적도 있지만 정말 강의 시작은 미미하지만 그끝은 창대한 것같다. 발원지 표지만 보고 약수터를 직접 보지 못한 것은 아쉬운 점이었지만 다음 번 걸음으로 이 또한 미뤄둔다.

걷는다는 것은 사람에게 참 많은 것을 준다. 무엇보다 세상을 이제까지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르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이 큰 것이라 생각된다. 틀 안에 갇혀 있어서는 변화를 줄 수 없다. 물론 그 변화의 끝에 행운이 함께 할지 아닐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문밖으로 나가 세상과 마주하지 않으면 삶 자체가 경직될 가능성이 많다. 올해 들어 이곳저곳을 온전히 내 발 끝으로 걸어보면서 드는 생각들은 이런 것들이다.

올해의 마지막 산행을 준비해본다. 어디를 가야할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지만 그날이 되면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Panasonic LX5


지난 글이 길어져서 새로 글 창을 하나 열어 14구간 산너미길을 이어 적어 본다. 산너미길은 북한산둘레길의 난이도 '상'구간 중의 하나로 둘레길에서 난이도가 '상'인 구간은 모두 3개(5구간 명상길, 14구간 산너미길, 16구간 보루길)인데 그중의 하나인 길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구간은 산을 넘어 가는 길이다. 그리고 그 산은 다름 아닌 사패산이다. 그리고 전체 난이도 '상'인 구간 중에 이곳 14구간이 가장 힘든 곳으로 알려져 있다.

국립공원의 안내상으로 이 구간은 2.3Km, 소요시간은 1시간 10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실제로 걸은 거리와 측정상의 거리가 다를 경우는 오르막과 내리막 특히 계단이 많은 곳으로 생각하면 된다. 이 구간은 전체적으로 고도가 제법 올라가고 계단이 높고 길게 이어져 있는 편이다. 그리고 겨울인데다가 눈까지 쌓여있는 지역들이 있음을 감안하면 실제 이동 속도는 더 오래 걸릴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다.


산너미길을 알리는 입구다. 입구에 다다르기 전에 화장실이 있으니 미리 이용하도록 하자. 그리고 오늘 이후로 이곳을 찾는 분들이라면 가능하다면 아이젠을 준비하기를 권한다. 눈이 내린 날이라면 아이젠은 필수인데 이 구간은 꽤 오래 오르막이 있고 능선 구간도 있는데다가 내리막 계단이 제법 길어서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난 고무신 신고도 대청봉에 오른다'고 하실 분도 있겠지만 막을 수 있는 위험이 있다면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약간 뒤에서 찍은 사진인데 이정표에 사패산이 보인다. 역시 등산의 유혹에 빠지게 되는 지점이다. 오늘은 겨울산행 준비도 다 했겠다. 무엇보다 먹을 것도 있다. 1.9km... 가볼만하다는 생각이 여전히 괴롭혔지만 둘레길 완주 후로 미뤄두기로 한다. 망설이는 나를 흘깃 쳐다보고 아저씨 한 분이 스틱을 한 개만 들고 유유히 걸어 올라간다. 배낭도 없이 오리털 파카를 입고... 괜찮았을까 모르겠다. 아무튼 이번 구간만 해도 사패산의 6부 능선까지는 오를 수 있으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기로 한다.


들어서자마자 계단이다. 이전 구간의 평온함과 약간의 지루함은 이 구간에서 모두 날려버릴 수 있다. 특히 겨울이라면 제법 긴장감마저 느낄 수 있는 구간이다. 역시 이 구간도 제법 한산했는데 정상에서 한 부부를 만난 것을 빼고는 사람의 흔적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좌우로 겨울색 옷을 입은 나무들이 벗이 되어 천천히 길을 걸어본다.


왼편으로 계곡이 보이고 오른편으로는 길이 보인다. 난 이런 길을 제법 좋아하는데 얼지 않은 물 흐르는 소리가 적막함을 깨고 들려오는 느낌이 참 좋다. 겨울이 모든 것이 숨죽이고 있지 않음을 흐르는 물은 이렇게 보여준다. 여기까지 사진을 보신 분들 중에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셨다면 눈치가 빠른 분이다. 스틱을 들고 카메라를 꺼냈다 뺐다를 반복하다가 이미지 비율 버튼이 4:3으로 바뀐 것을 알아채지 못했던 것. 이하 사진들은 전부 4:3 비율이다..


물이 얼음이 되지만 그 얼음을 녹이는 것이 또 물이다. 사실 물과 얼음은 같은 것인데 눈에 보이는 것은 이렇게 다르다. 살아가면서 실상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을 우리들은 얼마나 다르다고 생각하고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해 준다. 결국은 물이고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이 물이다. 上善若水[상선약수]란 말을 또 한번 되새기게 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렇게 혼자 걸으면 생각이 많아진다. 그리고 이게 혼자 걷는 길의 장점이기도 하다.


아직까지는 길가에 눈도 없고 드문드문 햇살이 들어 그리 어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길이 이어진다. 황량함이 느껴지지만 그 속에서 생명의 끈을 이어가는 나무들이 꿋꿋이 서 있다. 이전 구간에 비해 확실히 숨이 차 오르는 지역들이 많아지는데 걷는 페이스를 적당하게 잘 조절해야 한다. 이 구간부터 시작했다면 그래도 괜찮지만 이전 구간에서 이어서 오는 경우라면 체력이 많이 소모된 상태기 때문이다.


'울띄교'라고 적힌 것이 맞나 한참 들여다본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 주변을 둘러보지만 설명이 없어 아쉬웠다. 스틱을 들고 다닐 때는 이런 나무 다리 구간에서는 가능하면 바닥을 찍지 않도록 하자. 나무가 패일 수도 있고 스틱의 촉부분이 나무 틈 사이에 끼는 경우도 있기 때문인데 살짝 들고 이동하면 된다. 고무다리를 씌운 분이라면 상관없겠지만 수시로 고무다리를 씌웠다 뺐다하는 것도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사실은 내가 게으른 것이다-


가지런히 놓인 돌로 만든 계단이 정겹다. 한발한발 올라가면서 산이 이렇게 부르는구나 생각을 한다. 그러고보니 왜 갑자기 산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나 스스로도 궁금해진다. 군대에서 그렇게 지겹도록 다니던 산이라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생각까지 했던 곳인데...아마 차가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도 해봤지만 다시 차를 들여도 오히려 산에 가려고 더 많이 이용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번에 만나게 되는 다리는 갓바위교. 이것은 바위 이름에서 빌려왔겠구나 추측을 해본다. 산너미길이라는 이름에 참 어울리게 이 구간은 산 넘고 다리 건너는 일이 많다. 길이란 결국은 혼자서 걸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도 결국은 곁을 떠나게 되고 자신의 마지막 순간 역시 고독하게 홀로 가는 것이니.. 가끔은 홀로 걷는 일에 익숙해질 필요도 있지 않을까..물론 누군가 곁에서 토닥여주는 것이 그래도 더 좋긴 하다.


바로 만나게 되는 사패교. 사패산 안으로 들어와 있으니 이런 이름의 다리도 하나 있어야지 싶다. 사패산은 어느 소개에 따르면 북한산 귀신들도 잘 모르는 숨겨진 산이고 가장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라 한다. 양주와 의정부에 걸쳐 있는 산이고 무엇보다 이곳이 천연의 생태를 유지하게 된 계기는 얼마 전까지 군사보호구역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었기 때문이다. 대략 등반 시간은 4시간 정도 소요된다는데 꼭 들러볼 곳으로 기억해둔다.


사람의 손이 많이 닿지는 않았지만 길은 그래도 곧게 나 있다. 길이라는 단어는 참 내게 정겨운 단어다. 사진을 시작하고서부터 길 사진이 제법 많은 편인데 길 자체에 대한 생각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왠지 길이라는 것이 내가 살아가는 모양새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좋아하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앞으로도 길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이어질 것이고...


고개를 살짝 넘을 무렵 슬슬 지난 폭설의 자취가 나를 마주 한다. 꽤 오랜 내리막인데 그나마 사람들도 거의 다니지 않아 그대로 얼어 있다. 여기서부터는 아이젠을 끼고 가는 것이 좋다. 세상 좋다는 등산화도 아이젠만 못하기 때문인데 여기서부터 이 구간의 정상 전망대까지는 아이젠을 그대로 장착하고 걷기를 권한다. 처음 몇 발을 괜찮으려니 생각하고 가다가 스틱으로 간신히 버텼기 때문이다.


한참을 걷다보면 능선길이다. 이제 좌우로 전망이 시원하게 뚫리고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어오기 시작한다. 확실히 겨울 산행이 신경쓸 것이 많은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옷도 부지런히 갈아입고 장갑도 갈아 끼워주고 귀마개도 해 보고 하다보니 배낭을 몇 번을 들었다놨다를 반복해야 한다. 그것이 귀찮다고 그냥 버티다가는 산의 무서움을 온몸으로 깨닫게 된다. 겨울 산행을 가는 이들의 배낭이 그렇게 커 보이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멀리 의정부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의정부까지 왔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기도 하다. 북한산이라는 산자락이 얼마나 넓게 뻗어 있는지 새삼 느끼게 되는데 주변을 죽 둘러봐도 능선들이 죽죽 이어져 있어 어디가 끝인지 모를 정도다. 주변에...특히 서울을 끼고 이렇게 광활한 녹지대가 살아 있구나라는 것을 이제사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 갈 곳이 정말 많다고 새삼 생각이 든다.

여기 전망대에서 처음으로 한 부부를 만났다. 등산장비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지역 주민이 아니셨나 싶은데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네 주신다. 부부가 같이 산에 다닐 수 있다는 것은 꽤나 행복한 일이다. 다시 말하면 한평생을 같이 살아가는 두 사람이 비슷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전혀 다른 삶의 길을 살아오다 어느 갈림길에서 만나 이어지는 길을 함께 걷는 것. 그 앞에 어떤 고비가 있건 행복이 있건 온전히 두 사람이 함께 마주하는 것. 그것이 가능한 것이 부부이고 가능해야 부부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내리막 계단은 경사가 급하고 제법 길게 이어져 있다. 다행히 아직 이곳의 눈은 모두 녹아 아이젠을 사용하지 않고도 걸을 수 있지만 내리막 구간은 무엇보다 무릎에 가는 충격이 상당하기 때문에 스틱을 잘 활용해야 한다. 가뜩이나 부실한 체력인지라 스틱 쓰랴 사진 찍으랴 정신이 없지만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 풍광을 보는 것만으로도 오늘 이곳에 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이곳의 진지는 제법 모양새를 잘 갖추고 있다. 보아하니 60mm 박격포 진지가 아닐까 싶은데..사실 나는 일반 보병 부대에 근무한 적이 없어서 60mm박격포 운용을 본 적이 없어서 추측만 해볼 뿐이다. 처음엔 60미터인가 생각을 했지만 길을 지나나보면 이런 진지가 몇 개 더 보이는데 60M-1, 60M-2 이런 식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니 포 진지가 맞는 것도 같다. 그러고보니 내가 조작해본 박격포는 81mm가 전부였구나.


몇 번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걸으며 이 생각 저 생각하다보면 이 구간도 슬슬 종착점에 다다라간다는 것이 느껴진다. 오랜만의 외출치고는 제법 오래 걸은 셈이고 동계 등산 장비들을 처음 테스트 하는 산행인지라 이런저런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덕분에 본격적인 겨울 산행 준비를 좀 더 잘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나름 괜찮은 산행이었다. 아마 이 다음의 걸음은 북한산둘레길이 아니라 인왕산이 될 것 같다. 서울의 우백호라 불리는 산이다.


조금 더 이동하면 이 문과 마주 하게 되는데 안골길의 시작은 아니고 산너미길의 끝지점이다. 안골길은 아래로 조금 더 내려가면 진입로가 보인다. 여기서부터는 꽤 오랜 시간을 걸어야 한다. 대충 20분이 넘는 시간을 걸어야 버스 정류장에 이를 수 있으니 이곳에서 정비를 하고 이동하면 되겠다. 길은 그대로 아스팔트길로 이어지고 좌우로 많이 식당들이 있으니 쉬어 가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고 아니면 의정부쪽으로 이동해도 좋겠다.


문을 뒤에서 본 모습. 이 다리는 안골교란다. 조금 이름을 대충 지은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지역을 대표하는 이름이니 이해하고 넘어갈 일이다. 13구간에 이어 14구간까지 마치고 나니 3시간 20분 정도 소요되었다. 확실히 겨울이라 장비 갈아 입는 시간이 많이 걸렸고 눈길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더 걸린 까닭이다. 하지만 산행에 있어 시간처럼 버려두어야 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일상의 시간을 잊기 위해 찾는 곳이 산인데 그곳에서 또 시간에 연연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글 위에 지도를 붙여 두는 것은 이후 이길을 가게 될 분들을 위한 작은 안내자 역할을 하기 위함이지 무슨 기록을 세우기 위함은 아니다.


길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면 이렇게 안골길의 입구를 만날 수 있다. 왼편에 보이는 보루길은 무엇일까 궁금한데 다음 걷기에서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마 안골길 안에서 의정부에 있는 직동공원으로 이어지는 다른 길과 만날 수 있다는 의미인 것같다. 자전거 출입금지라고 씌어 있는 것으로 봐서는 길이 제법 평탄하지 않을까?


그런데 어쩐 일인지 입구 우측의 이정표가 무너져 있다. 국립공원측에서 모르고 있나 싶었지만 플래카드까지 걸어둔 것을 보니 알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수리를 미뤄둔 것이다. 보기에도 영 좋지가 않고 행여 위험할까 싶어 국립공원관리공단에 문의를 넣었더니 다음날 보수가 완료되었다고 사진까지 올려주었다. 

이후로 이곳을 가시는 분들은 똑바로 바로 서 있는 이정표를 보실 수 있겠다. 이런 부분은 정말 칭찬할만한 일인데 사실 나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도 다음날 바로 수리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생각해보면 국립공원을 이용하다가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공단에 알려 주는 것이 좋겠다. 확실히 저렇게 보니 좋아보이지 않는가..

이렇게 북한산둘레길을 14구간을 마무리했다. 21개 구간이 이제 7구간이 남아있다. 나머지 구간들은 서울의 북쪽에서 동쪽으로 돌아가는 길이고 마지막 구간인 우이령길은 북한산을 관통하는 길이다. 우이령길은 아마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관통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을 하는데 사전 예약을 해야하지만 평일이라면 1,000명이 모일 것 같지는 않으니 선착순 입장도 가능하지 싶다.

사회에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한 취미는 사진이었고 그 다음은 자동차였다. 그리고 이제는 등산이다. 아마 이 3가지만 평생 가지고 가기에도 어느 하나 제대로 소화해내기 어렵지 않을까 싶지만 그래도 참 좋은 취미를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물론 수 없이 맞는 시행착오로 인한 경제적인 지출은 상당하지만 돈으로 살 수 있는 경험이 이런 것이라면 기꺼이 지불할 용의가 있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만큼 많은 일들이 마무리되었던 한해다. 결국 인생은 제로섬게임이라지만 그래도 얻는 순간 잃는 순간에 각각 느끼는 감정의 깊이는 다르다고 생각된다. 내게 12월은 미련은 사라지고 희망은 남은 그런 달로 기억될 것같다. 이제 열흘도 채 안 남은 2012년... 올해의 마지막 산행 준비를 해 본다. 아마도 그리 멀리 가지는 않겠지 싶다. 그리고 올 겨울 안에 태백산에 다시 오를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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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뉘엿뉘엿 넘어가는 11월의 첫날 둘레길을 다시 찾았다. 오랜만이라고 반갑게 맞아주지는 않는 것 같지만 산은 언제나 그렇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고보면 산처럼 한결같은 것도 많지는 않다. 자연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빠르게 변화하기에 이렇게 무뚝뚝하지만 늘 제자리에 버티고 서서 나를 반기는 산은 어쩌면 내게 하나의 큰 버팀목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오늘 코스는 서울을 벗어나게 된다. 서울의 북서쪽 외곽을 지나 경기도 남부에 이르는 길인데 마무리되는 지점은 대충 송추, 장흥 부근이다. 송추라면 기억하시는 분들은 전투방위가 생각나실테고 장흥은 커피 한 잔 -행간을 읽으시는 분들은 다른 것을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정도가 생각나실까? 가을도 아니고 그렇다고 겨울도 아닌 11월의 첫째날은 아침에 집을 나설 때는 제법 차가운 바람이 걱정됐지만 막상 길을 걸을 때에는 비교적 두껍게 입지 않아도 걸을 만하다 싶을 정도였다.


북한산국립공원에서 안내하는 12구간 충의길의 거리는 3.7km로 대략 1시간 45분이 소요되며 난이도는 중급 수준이고 실제로 걷게 되면 4.2km정도에 시간은 1시간 20분 정도 소요된다. 이번 구간은 시작점이 지하철 구파발역에서 버스로 제법 멀리 와야 한다. 이번 구간과 다음 구간이 서울에서 출발하는 경로로는 마지막인데 구파발역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출발점으로 이동한 다음 북한산 등반로로 향하다보면 중간에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사람은 습관의 동물이라던가. 몇몇 구간을 혼자 걷지 않다가 불쑥 혼자 걷게 되니 뭔가 허전한 마음이 걷는 내내 가시질 않았다. 딱히 뭐라 설명하기는 애매한 그런 느낌이랄까. 입구로 가는 중간에 은행잎 위로 서리가 내린 것인지 밤사이 내린 비가 얼은 것인지 모를 얼음 알갱이들이 제법 보였다. 아직 그 색이 바래지 않은 은행잎과 물방울과 얼음조각들이 이번 걷기의 시작을 알려주는듯 했다.


오늘은 LX5만 들고 나갔는데 집에 두고 온 카메라가 자기 생각을 해달라는 것인지 색감이 니콘 비스무리하게 나왔다. 이번 구간은 말그대로 사방이 온통 낙엽으로 가득 차 있었다. 변화를 위해서는 무언가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자연의 단순한 진리를 어렵거나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이 그저 눈으로 보고 발로 밟아 느끼면 그만일 정도였다. 북한산에는 이미 단풍은 남아있지 않았다. 가장 화려한 시간이 지난 후에는 이렇게 회색빛의 세상이 오는데 단풍의 시기에 이곳을 왔다면 한 가지만 보고 다른 한 가지는 놓칠 수도 있었으니 차라리 오늘이 적당한 때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12구간 충의길은 다른 구간의 이름짓기법과는 조금 다른데 사실 이 구간에는 무언가 특징적인 것이 없다. 그래서였는지 국립공원측도 고민 끝에 '주변에 군부대가 많으니 충의길이라고 하자'라고 결심한 것처럼 보인다. 구간 자체는 중급 난이도라 하지만 실제로 걸어보면 하급 정도가 아닐까 싶은데 정말 걷기 편하고 인적도 아주 드문 편이니 데이트 하기에 꽤 어울리는(사람 나름이겠으나) 구간이다. 


길은 대부분 흙길이라 걷기에 편하고 낙엽들이 푹신푹신한 느낌도 더해주기 때문에 천천히 걸으며 저물어가는 가을을 배웅하기에 적당한 길이 아닌가 생각됐다. 지난 밤에 내린 비의 흔적들이 여전히 남아 있음에도 미끄럽지 않아 큰 어려움은 없었다. 구간을 마칠 때까지 딱 두 명과 마추쳤다. 북한산국립공원도 이 구간의 특징으로 인적이 드물다고 하고 있는데 꽤나 좋은 구간임에도 왜 사람들이 적은지는 알 길이 없다. 서울에서 이동하기에 멀다는 점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출렁다리'라고 불리는 다리인데 이런 다리가 2개인가 3개가 있다. 다리 위를 걸으면 위아래로 출렁거리는 느낌이 제법 강한데 평지로 나온 다음에도 몇걸음은 출렁거리는 느낌이 유지되는 점이 재밌다 다리 자체는 아주 튼실하게 만들어져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구간에 들어서기 전에 깜빡하고 음료수를 준비하지 않았다. 늘 들고 다니는 묘한 빗깔의 파워에이드가 오늘따라 그리웠다. 결국 종착점에 가서야 그 녀석을 만날 수 있었다.


그냥 편하게 걸으면 족했다. 이제까지 걸어온 어느 길보다 걷기가 편했다. 길도 널찍하고 크게 오르내리는 구간도 없기 때문에 주변의 바람소리와 신발 밑으로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걸으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낙엽은 영어로는 'dead leaves'라고도 하는데 그 표현에 비하면 물론 한자기는 하지만 우리말이 더 운치가 있어서 좋다. 그래도 길을 걷는 내내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든 사람은 몰라도 난 사람은 안다던가... 


이것은 버섯일까? 쓰러진 나무 위로 피어 오르는 또 다른 생명들이 묘한 부조화를 이루며 있었다. 하나의 생명이 사그라짐으로 인해 또 다른 생명이 살게 된다는 것은 한편 생각해보면 잔인해보이기도 하지만 조금 큰 틀에서 생각해보면 결국 그렇게 생명이라는 것이 이어지는 것인 셈이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순리일테니 오히려 새로운 생명을 반길 일이다. 산길을 나서 일반도로로 접어들었을 때 길가에 반듯하게 누운 채 식어있는 강아지 한 마리를 보았는데 이때의 감정이 그때까지 이어졌을지도 모르겠다.


온통 낙엽이다. 내년 봄을 맞이하기 위해 산은 가을부터 준비를 한다. 계절에 맞게 그저 흐르는 순리대로 받아들인다. 나무들이라 해서 싱싱한 나뭇잎을 떨구는게 내키겠냐만 그것이 주어진 순리라면 그저 묵묵히 받아들임을 늦가을의 이 산길은 내게 보여주고 있었다. 아마도 그 큰 흐름에 맞서는 것은 우리네 인간밖에 없지 않을까.


햇빛은 산의 구석구석을 비춘다. 자기가 선 자리에 볕이 들지 않는다 해도 나무들은 그저 기다릴 뿐 달리 말이 없다. 그리고 언젠가 싸늘한 바람을 뚫고 한 조각의 빛이 내려오면 그 빛에 온몸을 기대고 선다. 빛이 자기 자리에 들 때까지는 묵묵하게 스스로의 길을 갈 뿐이다. 그것이 자연이고 그것이 순리다. 그저 수동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능동적인 기다림이다.


흔히 미래에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꿈을 갖는다. 그리고 그꿈을 이루기 위해 여러가지로 노력을 한다. 미래란 현재의 다른 모습이다. 현재가 이제까지 내가 걸어온 결과이듯 말이다. 현재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과거의 내가 그런 생각과 결정을 했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것은 하나로 돌아와 제자리에 선다. 모든 것의 시작이자 과정이자 결과는 나로 인한다는 것. 미래에 어떤 모습의 나를 만나고 싶다면 현재의 나를 보면 된다. 구태여 점을 볼 것도 막연함에 두려워할 것도 없도 없다. 지금의 모습이 미래의 모습이니 말이다.


이제까지 둘레길을 걷다가 이런 표지판은 처음 만났는데 생태계 보호를 위해 사람들이 오고가는 것을 막아둔 것이다. 실제로 나무로 울타리가 쳐져 있어 더 이상 이길을 따라 위로 가지 못 하게 하고 있다. 우리는 쉽게 나뭇가지 하나를 꺾을 수 있지만 나무가 그렇게 자라는데 걸리는 시간은 십 수년에 이를 수도 있다. 무언가를 파괴하는 것은 순간이지만 창조하는 것은 기다림이 필요하다. 사람도 모양이 갖추어져 나오는데 10달이나 걸리지 않는가.


이 구간은 대체로 좌우가 막혀 있는 편인데 가끔 이렇게 뻥 뚫린 여백을 만나게 되면 절로 마음이 시원해진다. 길을 걷다보면 간간히 총성이 들려오는데 근처 군부대에서 훈련을 하는 경우다. 총소리를 듣기도 참 오랜만이다. 소대장 시절 연말에 그동안 쓰지 않은 총알을 모두 소모해야 한다며 분대장 몇 데리고 나가 연발로 원없이 총을 쏴야했던 날이 문득 떠올랐다. 사실 총소리는 굉장히 큰편이다.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감당하기 쉬운 수준은 아니다. 전쟁 중에 총소리, 포소리 때문에 공황이 생긴다는 말이 이해가 갈 정도로 크다.


조금 더 내려가면 일반 도로(39번 도로)와 만나게 되는데 어지간해서는 여기까지 걷고 이 구간은 종료하는 편이 낫다. 여기서부터 포장된 길을 정말 하염없이 걸어야 한다. 혹 산길에서 낭만적인 데이트라도 했다면 바로 차를 타기를 권한다. 이제까지 만들어둔 낭만적인 분위기가 완전히 깨질 수 있으니 말이다. 특히나 계절이 극단적인 여름이나 겨울에는 몸에 무리가 갈 수도 있으니 주의를 요한다.


좌우로 보이는 것은 멀리 보이는 산들과 군부대가 전부인 길이다. 차들도 그리 많이 다니지는 않아서 조금 휑하다 싶을 정도의 길인데 이제까지 나무들이 가려준 덕분에 맞지 않았던 늦가을 바람이 제법 얼굴을 때리고 지나갔다. 이 포장도로에 진입하면 경기도에 들어선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처음 시작한 지점이 서울에서도 제법 동쪽이었는데 북한산 자락이 참 넓게 그리고 멀리 뻗어있구나 싶다. 


조금 더 걸으면 예약제로 운영되는 둘레길의 마지막 구간인 우이령길로 갈 수 있는 갈림길을 만날 수 있다. 우이령길을 가는 것은 역시나 내년이나 되어야 가능하지 싶다. 이제 12구간을 마쳤으니 올해가 두달 남은 지금으로서는 굳이 무리할 이유도 없으니 말이다. 산자락에는 늘 뭔가 수상해보이는 모텔들이 있는데 소문으로 들리는 그런 이야기가 실제로 있긴 한가 보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꼭 산이라 해서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상황이기에 두드러질 뿐이다. 


이 하염없이 길기만한 길은 1km가 넘게 이어진다. 사실 이때만 해도 어느 정도 걸으면 다음 구간 안내가 나오겠지 싶어 거기까지만 가자는 생각이었다. 다음 구간은 거리가 5km가 넘기 때문에 오늘 이어서 가기는 어차피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생각은 잠시 후에 바뀌게 된다. 아무튼 발바닥이 조금 피곤해지는 길이기는 하지만 천천히 걷는다 생각하면 직선으로 난 길이기 때문에 죽 걸어갈 수는 있다. 사방에 바람막이가 없으니 옷깃은 단단히 여밀 필요가 있다.


이번 구간을 마쳐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이 표지판을 만나고나서다. 가는 방향과 수평으로 있기 때문에 어쩌면 못 보고 지나칠 수도 있는데 그런 점을 생각했는지 제법 크다. 표지판의 의미는 12구간과 13구간은 달리 분기점이 없다는 말이다. 이 지점을 시작으로 13구간이라는 말인데 앞을 보니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같은 모양의 직선 도로가 죽 이어져 있다. 더 이상 걷기는 무리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건널목이 나오고 길을 건너 34번이나 704번을 타면 구파발로 돌아갈 수 있다.

전체적으로 12구간 충의길은 뚜렷한 특징은 없는 그러나 편하게 산책하듯이 걸을 수 있는 그런 길이었다. 낙엽이 푹신한 길을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도 해 보고 제법 차가워진 바람을 느끼며 또 하나의 계절이 오고가는구나라는 상념에 젖어볼 수고 있었다. 서울에서 경기도로 이어지는 점도 이제까지 제법 많이 걸어왔구나 라는 생각을 들게 했는데 21개 중에 이제 12개가 마무리되었으니 많으면 9번의 걸음만 하면 하나의 추억의 책이 완성된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조금 멀리 남겨둘까라는 생각도 해 보는데 크게 시간이나 구간에 구애받지 않을 생각이니 내년 초쯤에는 마무리가 되지 싶다.

사전에 일정이 있던 것도 아니고 갑작스레 걷게됐는데 한 가지 생각을 결정을 짓고자 함이었다. 길이 마무리될 때까지 대충 결심을 했는데 걷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생각을 바꾸었다. 무엇인가 스스로 단정을 짓고 그것을 옳다고 자기최면을 거는 것처럼 위험한 일이 없다.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하고 무엇보다 조율을 해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일방적으로 내린 결정은 당시에는 그것이 옳다고 느낄지는 몰라도 멀리 보면 정말 소중한 것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산의 어느 이름모를 꽃처럼 주어진 자리에 충실하며 순리를 기다려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니 말이다.


Panasonic LX-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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