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찌는듯한 날씨다. 원래 여름을 나기가 상당히 어려운 체질이라 여름만 오면 걱정이 앞선다. 예전에는 여름을 그리 타지 않았는데 체질이 바뀌었는지 여름만 되면 맥을 못 춘다. 하지만 사람이야 이래저래 여름을 피해가는 방법이 많지만 원래 추운 곳에 살던 녀석들에게는 이런 찌는 듯한 여름은 고문에 가깝다.


"야! 너는 날도 더운데 왜 돌아다니고 그래. 물 속에 들어와서 좀 가만히 있어. 나까지 더워지잖아!"

"말도 안 듣는구만.. 나는 모르겠다. 그냥 잠이나 잘란다.."

동물원의 녀석들에게 여름은 고문이다. 펭귄들도 마찬가지고 추운 동네에 살다가 남쪽 나라로 와서 이런 더위를 겪게 되니 참 동물 팔자도 알다가 모를 일이다. 문득 인간에게 다른 동물의 거주지를 마음대로 바꿀 권리가 있나 생각이 든다. 정상적이라면 이 녀석들은 북극의 어느 얼음 위엔가 살고 있을 녀석들인데...

동물원의 동물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가끔은 당연스레 생각되는 것들이 어느 날 문득 '이것은 좀 이상하지 않아?'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생각도 많으면 병이라는데 굳이 안 해도 될 생각들을 머리에서 끄집어 내는 걸 보면 나도 쉽게쉽게 살아갈 팔자는 아닌 듯도 하다.

아무튼 이 여름은 이제 시작이고 적어도 9월초까지는 지금과 비슷한 날들이 이어질텐데 매년 맞이하는 계절이지만 여전히 내게 여름은 쉽지 않은 계절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여름이 춥다면 이미 여름이 아닌 것일테니까..


Contax Aria, Carl Zeiss 50mm Planar f/1.4, LS40

덧) 보관 중인 사진 폴더에 필름의 이름을 모두 기록을 해 둔 줄 알았는데 카메라와 렌즈만 기록을 해 두고 필름 이름을 남겨 놓지 않은 것이 제법 된다. 슬라이드의 경우 마운트에 넣어 모두 보관 중이니까 들여다보면 어느 필름인지 알 텐데 책장 위에 가지런히 꽂혀 있는 보관함을 열어볼 마음이 아직은 들지 않는다. 스캔하지 않은 또 다른 많은 기억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낮의 도시가 밝을까 싶지만 사실은 밤의 도시가 더 밝다. 낮의 도시는 태양 아래 주어진 빛에 의해 보이는 풍광인 반면에 밤의 도시는 보여주는 빛에 의해 보이는 풍광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무엇인가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낸 빛.. 그 빛에 비친 세상은 낮의 그것과는 조금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순리대로라면 밤은 어둡고 캄캄해서 그 시간동안은 세상이 낮의 열기를 식히고 휴식을 해야 하지만 인간들의 욕망은 밤의 어둠을 멀리 걷어버리고 낮에는 보이지 않던 치부마저 선명하게 드러내버린다. 그래서 가장 편안해야할 밤의 시간은 욕망의 시간이 되어 버리곤 한다.


Contax Aria, Carl Zeiss 35mm Distagon f/2.8, Ilford XP2, LS40


제목이 조금 유치(?)한데.. 제가 밖에 나갈 때 들고 다니는 '애들'입니다.

LX5의 첫 사진은 제 가장 가까운 동반자인 이 녀석이군요. 항상 RAW로만 찍다가 JPG로 찍으니 뭔가 어색하긴 합니다. ^^ 보시면 아시겠지만 천장 바운스 촬영인데 스트로보를 달았더니 카메라가 완전히 가분수가 되어 버리네요. 스트로보 크기보다 훨씬 작은 데다가 무게도 스트로보가 훨씬 무거워서 핫슈가 부러질 것 같아서 두손으로 받쳐들고 찍었네요..;

바디는 이미 구세대 기종인 니콘 D700입니다. 원래는 세로그립도 같이 있었는데 무게 감당이 안 되어서 방출했네요. 렌즈군은 조촐한데 이전에 줌렌즈를 쓰면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화각인 35mm를 구한 것이고 55mm는 예전 필름카메라 쓰던 시절에 참 좋아하던 렌즈라 다시 들여왔습니다. 뒤에 보이는 가방은 돔케 F6 왁스웨어입니다. 보통 이렇게 들고 밖에 나가지요.

니콘 카메라와는 인연이 제법 오래되어서 필름 카메라 시절 F100으로 처음 니콘을 접했죠. 이후 다양한 기변사가 있지만.. 아무튼 멀리 돌아돌아 여기까지 와 있네요. 줌렌즈를 쓰지 않는 것은 줌이 생각을 차단한다는 느낌이 들어서인데 LX5를 또 들인 것 보면 뭔가 대단한 신념 같은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

두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35mm와 가장 유사하다고 합니다. 보통 50mm는 한쪽 눈만 뜨고 바라보는 시야라고 하지요. 그래서 35mm가 편한지도 모르겠지만 이젠 그 화각이 너무 익숙해진 탓도 있겠죠. 초등학교 때 사진반에서 처음 캐논의 RF 카메라로 사진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해 참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사진은 쉽지가 않습니다.

언젠가부터 신기종, 신제품에 대한 미련이 적어지더군요. 이 바디도 사실 D800으로 갈 수 있었지만 굳이 700으로 간 것이고 LX5 역시 다음 달인가 후속기종이 나오지만 이 녀석을 들인 것인데 시대에 뒤쳐진다는 느낌보다 앞서가려고 너무 빨리 달리지 않아도 되겠다..라는 편안함이 더 큰 것 같습니다. 마운트 되어 있는 35mm 렌즈나 옆에 있는 55mm나 둘 다 십 수년은 넘은 렌즈들이죠. 하지만 사진을 찍는데 이 장비가 부족하다는 생각은 안 듭니다. 오히려 부담스러울 때가 많죠.

아마 세상은 점점 더 변하는 속도가 빨라지겠죠. 하지만 그 속도를 굳이 따라가려 하기 보다 아예 멀리 떨어뜨려 놓고 천천히 걸으며 좌우에 펼쳐진 길가의 모습도 살펴보고 아주 가까이 들여다봐야 보이는 작은 조약돌의 모습도 관찰할 수 있는 그런 느린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글쎄..그걸 알려고 지금까지 살아왔지만 아직 뭔지 모르겠어..

그러는 자네는 뭐라고 생각하나?


Contax T3, Fuji Reala, LS-40



방안에 오래 된 여행용 트렁크가 하나 있다. 그 트렁크를 열면 후보생 시절 쓰던 가방이 하나 있고 그 가방을 열면 오래된 기억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온다. 어지간해서는 열지 않는... 이제는 기억에서조차 희미해져 가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가방. 오랜만에 청소를 하다 그 가방을 열게 되었다.

군 시절은 내게는 꽤나 특이했던 시간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학사장교로 군생활을 시작했다는 것부터가 남들과는 조금 달랐고 3년 3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이라는 점도 달랐을테다. 경북 영천과 광주를 거쳐 최전방으로 배치되기 전까지 교육생 시절의 크고 작은 이야기들도 돌아보면 제법 재미있었던 기억이다.

초임 근무지가 수색대였는데 생전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던 내가 특공무술 시범을 보일 정도였으니 군대란 참 대단한 곳이지 싶다. 소대장 시절에는 유서를 쓰고 실탄 박스를 싣고 나가보기도 했는데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다들 잘 지내고 있을까.. 외모로만 보면 거칠어보이기만 했던 우리 소대원들..하지만 누구보다 마음이 따뜻한 녀석들이었는데...

중위 진급을 하면서 잠시 일반 대대에서 참모를 하다가 전역할 때까지는 신병교육대에서 교관 생활을 했는데 신병들의 모습을 보면 사람이 참 속한 집단 그리고 복장이 얼마나 그 사람의 정신세계까지 지배할 수 있는가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래도 군에서 만난 친구, 선배들이 아직도 친한 벗으로 남아 있다. 어설펐던 여군 장교와의 에피소드는 가끔 떠올려보면 쓴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수류탄 교장에서 수류탄을 그대로 떨어뜨렸던 훈련병 이야기는 아직도 아찔하다. 반면 그때 만난 동기 하나는 얼마 전 지병으로 세상을 등졌으니 인연이란 늘 그렇게 맺고 끊어지고의 반복이 아닌가 싶다.

장교들은 전역을 해도 소위 개구리마크를 달고 나오지 않기 때문에 전역 시절의 계급장이 그대로 박혀 있는 전투복과 전투모도 여전히 남아있고 수료식에서 눈물을 펑펑 쏟던 훈련병들이 자대에서 보내온 편지도 여전히 내 가방에 담겨 오래 전 기억을 되돌이켜 준다. 

덧) 적고 보니 이글이 1,000번째 글이네요. 그동안 지운 글도 있었지만 글 숫자를 정확하게 본 것은 처음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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