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긴 휴가(?)를 갖게 되었다.. 휴가 전에는 하고 싶은 것들이 무척 많았는데 막상 출근을 안 하고 나니 무엇부터 해야할지 정리가 제대로 안 된다. 큰 맘 먹고 결심했던 제주도에 다녀오자는 생각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마일리지를 이용해 휙 날아갔다가 오면 될 텐데 게으름 탓인지 도무지 계획조차 짜기가 어려우니 말이다. 이러다가 카메라를 한 번도 들고나가는 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가까운 근교 출사지라도 찾아 카메라에 쌓인 묵은 먼지들을 털어내야 하는데 언제가 될지는 아직 계획이 없다. 그나마 예정대로 진행 중인 것은 책 읽기와 운동이다. 책은 '체 게바라 평전'의 1독이 거의 마무리되어 가는 중이고 그제 주문한 '기형도 전집'이 도착해 비닐로 잘 싸두었다. 한동안 정리하지 못 했던 책상과 방 정리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긴 하는데 정리를 해도 해도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어보이니 이것도 걱정이다.

가끔 지인들을 만나 수다를 떠는 것도 하루이틀이고 결국은 혼자 시간 보낼 '꺼리'를 찾아야 하는데 역시 책 보기, 드라마 보기, 영화 보기, 출사 이런 것들 외에는 다른 대안은 없어 보인다. 한동안 접어 두었던 일어 공부를 다시 해볼까 하다가도 한 달동안 뭘 더 할 수 있을까 싶어 드라마 보기로 듣기 훈련이나 하기로 했으니 제법 게으른 자의 휴가다운 모습이다.

극장에 가서 보겠노라 다짐을 했던 X파일과 다크나이트는 결국 새벽 무렵 침대에 누워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X파일은 차라리 안 보는 것이 나았을 지도..

소리마치와 결혼 전까지는 무척이나 내 마음을 설레게 했던(물론 지금도 그녀는 대단하다) 마츠시마 나나코의 구명병동을 VTR수준의 화질로 보는 것도 나름대로 즐거운 일이고 한 동안 손을 못 댔던 본넷을 열어 엔진룸에 기름칠을 하는 것도 역시 즐거운 일이다.

다만 아침마다 출근 배웅을 하던 강아지가 "요즘 저 녀석은 왜 안 나가나?"하는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볼 때는 뭐라 설명을 할 길이 없어 답답하긴 하다. 오늘 밤에는 하루키의 단편을 다시 뒤적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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