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참 많은 이어폰을 써 왔다. 워크맨 시절부터 음악 듣기를 워낙 좋아했으니 그동안 바꾼 이어폰만 해도 상당한 수가 되지 싶다. 딱히 음악을 듣는 뛰어난 음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음악을 듣는 취향이 있다보니 이어폰 고르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선호하는 이어폰은 젠하이저와 오디오 테크니카 두 종류다. 젠하이저의 MX시리즈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상당히 우수한 음질을 들려준다(물론 헤드폰으로 가면 젠하이저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오디오 테크니카의 이어폰은 뭐랄까 차가운 느낌이 강하다면 어울릴까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가장 최근까지 사용한 이어폰은 오디오 테크니카의 제품이었다.

커널형 제품을 사용하다 보니 불편한 점이 여러 번 생겨서 -특히 주변에서 뭐라고 말하는 지를 전혀 듣지 못한다던가 뒤에서 차가 와도 알지 못하는 점, 생각보다 귀가 아픈 점-새로 이어폰을 바꾸기로 생각하고 이것저것 뒤져보다가 E888을 발견했다. 명성(?)은 익히 알고 있는 기종이고 이어폰 논쟁하면 빠지지 않는 단골 손님이어서 그다지 인상이 좋지는 않았는데 내 오랜 습관인 "해보지 않고 말을 말자"가 발동을 해서 일단 들어보기로 했다.


사실 이어폰 정도(?)를 쓰면서 에이징을 해야 하는 지는 반론의 여지가 많지만 여기저기 게시판을 수소문해본 결과 확연한 단점으로 지적되는 진동판이 약하다는 평에 소심해져서 일단 볼륨을 적게 해서 들어보았다. 첫 느낌은 '이거 좀 답답한데..'였다. 하지만 몇 곡정도 이어서 들어보니 답답하다기 보다는 음 자체에 상당히 충실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음 자체에 충실하다는 것은 상당한 매력이다. 물론 음 자체를 가장 잘 살린 이어폰은 개인적으로는 오디오 테크니카 제품이라고 생각하지만 E888도 이 정도면 꽤나 선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10년을 이어온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사용자들이 불만을 제기하는 내구성, 선꼬임 등의 문제는 직접 사용해보니 지극히 주관적인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리를 높이면 진동판이 고장난다던가하는 부분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전에 이야기한 것같지만 난 사진 장비를 이야기할 때도 렌즈의 해상력이니 공간감이니 하는 등의 기술적인 부분은 논쟁을 삼가는 편이다-이것처럼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인 일은 없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마찬가지로 E888의 음색, 해상력 등의 언급은 하지 않겠다. 특히나 음이라는 것은 주관적인 면이 강한 영역인데 무작정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는 것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무튼 오랜만에 꽤나 마음에 드는 이어폰이다. "대충 소리만 잘 들리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 이어폰을 바꿔보는 것도 새로운 음악의 세계로 들어설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물론 경제적 여유만 있다면 소위 명품으로 소문난 장비들을 써볼 수도 있지만 가장 현명한 것은 적당한 비용에 적당한 성능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음의 본래 모습을 비교적 잘 살리고 있는 E888도 괜찮은 선택이다. 번들 이어폰을 쓰던 사람이라면 특히 그 차이가 확 드러날테고 어느 정도 이어폰을 섭렵한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이 독특한 세계를 경험해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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