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원정은 여름에 가야 제맛인데 무엇보다 연꽃이 활짝 핀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어떤가 모르겠지만 예전의 향원정은 말 그대로 옛정취가 물씬 풍기는 그래서 시간의 개념조차 잊게 되던 그런 곳이었다. 위 사진은 16mm인데 아마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렌즈가 아닐까 싶다. 어안렌즈 특유의 느낌을 살리기에 적당한 바디를 쓰지 못해 아쉬웠던 날...

연꽃을 담아보려 이리저리 노력을 해봐도 쉽지 않은 것은 역시나 거리. 당시 D1x와 200mm 렌즈였는데도 좀처럼 마음에 드는 꽃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꽃이라는 게 피고지는 때가 있는 법인데 어느 날 갑자기 찾아가 왜 꽃이 없냐고 항의를 해봐야 무지한 자신을 드러내는 일일 뿐...

살아가는 일은 결국 순리대로 따라가는 것이 상선(上善)이다. 즉 물처럼 살아가는 동안에 가장 좋은 삶을 살게 되는 것이지 싶다. 그럼에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우리네 삶은 물처럼이 아닌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의 삶을 보다 추구하는 모양새다. 꽃처럼 때가 되면 꽃을 피우고 때가 되면 조용히 물러나 다음 개화를 기다리는 마음.. 그것을 우리네 인간은 참 갖기가 어렵다.

허나..어렵다 생각하면 또 끝이 없는 법.. 물의 흐름을 따라 꽃의 순리를 이해하는 마음을 얻기 위해 살아가는동안 노력해야한다. 그것이 살아가는 이유이자 목적이 된다면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후배와 집다리골 자연휴양림을 다녀왔다. 이름이 낯선 곳이어서 집에 와 찾아보니 시원한 계곡으로 유명한 곳이다. 실제로 계곡에 내려가보면 흐르는 물은 얼음물이고 바람은 에어컨 저리가라 할 정도였다. 어제 비가 와서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아 한적하게 돌아볼 수 있었다.

집다리골의 유래라는데 칠석의 설명과도 어딘가 비슷한 것 같고.. 새로 만들어진 느낌도 나지만 이름이야 어떻든 시간을 내어 방문할만한 곳이라는데 의미를 부여하면 족하지 싶다. 왼쪽에 약간 보이는 다리는 중간쯤 가면 흔들림이 커지는데 고요한 휴양림에서 그나마 운동감을 느낄 수 있는 소도구랄까.

가뭄에 물이 없는 요즘치고는 제법 많은 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어제 온 비의 영향인 듯하다.  제대로 물이 흐른다면 꽤 장관일 것 같다. 계곡 자체의 경사가 제법 되어서 물의 속도는 꽤 빠른 편이다. 아이들을 동반할 경우에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겠다.

투명하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맑은 물. 이 정도로 맑은 물을 본 기억이 거의 없을 정도인데.. 꽤 오래 전 청평사에 갔을 때 계곡에 발을 담그고 논 적이 있었는데 아마 그 이후 처음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만큼 계곡을 돌아다니지 않은 탓도 있긴 하겠지만..

그냥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온몸이 으슬으슬해질 정도로 차가운 물과 바람. 자연 자체에서 느껴지는 바람인지라 몸 속까지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오래 있기는 정말 어려웠다. 피서라는 말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는 없었다.

자연 안에 들어가면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지 싶다. 시간이 갈 수록 인간 자신의 편의를 위해 자연을 훼손하지만... 그래도 자연은 묵묵히 인간을 감싸 안고 있다. 비록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그저 어머니처럼 아무 이유도 조건도 없이 안아주는 것이 자연이다..

초행길이고 네비가 구춘천가도로 길을 안내해 시간이 조금 더 걸린 편이었다. 거리는 생각보다 멀다. 서울 노원역 기준으로 2시간이 조금 넘게 걸리는데 주말에는 시간이 좀 더 걸리지 싶다. 펜션 비슷한 숙소도 있고 야영을 위한 장소들도 제법 잘 갖춰두고 있어 가족 캠핑으로 방문하기에도 괜찮아 보였다.

다만 집다리골 휴양림 자체를 빼면 주변에 접근하기 용이한 다른 관광지가 가깝지 않은 점은 단점이라 할 수 있겠는데 휴양림에서 진득하게 쉰다고만 생각하면 큰 무리는 없다. 


Panasonic LX-5


무더운 날에 한강을 걷는 것은 썩 기분내키는 일은 아니다. 딱히 해를 피할 곳도 마땅치 않기 때문인데 그래도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돌아보면 평소에 보지 못 했던 사소함들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어 폭주행위를 금지하는 플래카드를 비웃는 비둘기떼라던가...


사람이 물에 빠지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배워볼 수도 있다. 부실해 보이기는 하지만 저것을 던지면 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


아무렇게나 서 있는 전봇대들은 이제는 그 기능을 모두 다 해 쓸쓸한 흔적의 하나로만 기억되고...


그 틈새는 지나가는 이들이 몰래 버린 시간의 찌꺼기들로 점점 차 오른다.


낡음이란 내쳐지는 것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녹이 슬고 제 기능을 하지 못 하게 되면 기억에서도 잊히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신세가 되고 만다. 이것은 비단 물건에만 한정된 일은 아닐 것이다.


비둘기들은 어느 장소, 어느 시간을 막론하고 존재하는데 가끔은 이 녀석들이 시간과 공간 모두를 지배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난 시간을 뒤돌아볼 때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조연이 이 녀석들이기 때문이다.


Contax Aria, Carl Zeiss 35mm Distagon f/2.8, Ilford XP2, LS40


연일 찌는듯한 날씨다. 원래 여름을 나기가 상당히 어려운 체질이라 여름만 오면 걱정이 앞선다. 예전에는 여름을 그리 타지 않았는데 체질이 바뀌었는지 여름만 되면 맥을 못 춘다. 하지만 사람이야 이래저래 여름을 피해가는 방법이 많지만 원래 추운 곳에 살던 녀석들에게는 이런 찌는 듯한 여름은 고문에 가깝다.


"야! 너는 날도 더운데 왜 돌아다니고 그래. 물 속에 들어와서 좀 가만히 있어. 나까지 더워지잖아!"

"말도 안 듣는구만.. 나는 모르겠다. 그냥 잠이나 잘란다.."

동물원의 녀석들에게 여름은 고문이다. 펭귄들도 마찬가지고 추운 동네에 살다가 남쪽 나라로 와서 이런 더위를 겪게 되니 참 동물 팔자도 알다가 모를 일이다. 문득 인간에게 다른 동물의 거주지를 마음대로 바꿀 권리가 있나 생각이 든다. 정상적이라면 이 녀석들은 북극의 어느 얼음 위엔가 살고 있을 녀석들인데...

동물원의 동물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가끔은 당연스레 생각되는 것들이 어느 날 문득 '이것은 좀 이상하지 않아?'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생각도 많으면 병이라는데 굳이 안 해도 될 생각들을 머리에서 끄집어 내는 걸 보면 나도 쉽게쉽게 살아갈 팔자는 아닌 듯도 하다.

아무튼 이 여름은 이제 시작이고 적어도 9월초까지는 지금과 비슷한 날들이 이어질텐데 매년 맞이하는 계절이지만 여전히 내게 여름은 쉽지 않은 계절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여름이 춥다면 이미 여름이 아닌 것일테니까..


Contax Aria, Carl Zeiss 50mm Planar f/1.4, LS40

덧) 보관 중인 사진 폴더에 필름의 이름을 모두 기록을 해 둔 줄 알았는데 카메라와 렌즈만 기록을 해 두고 필름 이름을 남겨 놓지 않은 것이 제법 된다. 슬라이드의 경우 마운트에 넣어 모두 보관 중이니까 들여다보면 어느 필름인지 알 텐데 책장 위에 가지런히 꽂혀 있는 보관함을 열어볼 마음이 아직은 들지 않는다. 스캔하지 않은 또 다른 많은 기억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2006년도에 구입한 시계니 6년이 되었다. 시계수집가도 아니고 어떤 시계를 골라야 하나 둘러보다가 구입한 녀석인데 생각보다 유행을 탔던 모양이다. 요즘은 좀처럼 보기 어렵지만 당시만 해도 나이키 신발처럼 유행했던 녀석. 본의 아니게 유행을 좇은 격이 되었지만 6년이 지난 지금 와서는 괜찮은 선택이었지 싶다.

이 녀석을 데리고 다니는 동안 고장난 적이 없었으니 첫째 만족이고 언제나 거의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니 둘째 만족이다. 하지만 세월이 세월인지라 가죽줄은 벌써 2개째다. 가죽이 땀을 타다보니 아무래도 쉬이 끊어진다. 올해도 여름이 다가오고 있어 고민하던 차에 인터넷에서 시원해보이는 줄을 하나 골랐다. 예전같으면 비싼 메이커를 골랐겠지만 이젠 그런 것들에 대해 나름 초연해져서인지 시원해보인다가 유일한 이유였다.

내 시계에 맞는 줄이 아니다보니 조금 손질을 해야했는데 칼로 몇 군데 도려내고 나니 그럭저럭 어울린다. 윗부분은 너무 잘라내서 휑한 느낌도 있지만 뭐 시계가 시간만 잘 알려주면 그만이지 싶은 생각에 그냥 두었다.시계줄을 바꿔 주며 녀석을 살펴보았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하다보니 이곳저곳에 흠집이 많이 나 있다. 그런데 그 흠집들이 오히려 정이 간다. 내가 가는 곳을 늘 함께 따라다니며 나와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니 그정도의 흠집은 당연하지 싶다.

그러고보면 나는 물건 하나를 사서 꽤 오랜 시간을 쓰는 습관이 있다. 비록 물건이라도 정을 붙이면 좀처럼 떼지 못하는 성격 탓인데 그러다보니 내 주변에는 골동품의 모양을 슬슬 내기 시작하는 물건들이 제법 된다. 같이 늙어간다는 것은 그래도 꽤 괜찮은 느낌이다. 물건이 이 정도인데.. 사람과 함께 늙어간다면 그 정은 얼마나 클까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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