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선생에 대해 처음 알게된 것은 고등학교 동기가 빌려 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에서였다. 그러나 처음 그책을 접했을 때는 왠지 그렇게 마음에 많이 와 닿았다는 느낌은 적었다. 그리고 신영복이라는 이름이 내 기억에서 사라지고 세월이 제법 흘렀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들면서랄까.. 철학에 대한 생각들이 많아지면서 동양철학과 서양철학 그리고 인문학 서적들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대학 시절 어설프게나마 읽은 책들을 바탕으로 한 권 두 권 읽어갈 무렵 이책을 나에게 권해준 이가 있었다. 이전과 달리 고전에 대한 생각이 많은터라 덥썩 받아들고 왔지만 일단 책의 두께에 질렸는지 한동안 책꽂이에 놓아두기만 했었다.

그리고 어느날 이책을 처음 펼치게 되었는데 그때의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다. '아, 이책을 왜 이제야 읽게 되었을까..'라는 생각과 '이제라도 읽게 되었으니 참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동시에 교차했다. 

분명히 책이다. 종이에 찍힌 활자인데 마치 선생과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존댓말로 쓰여진 글때문만은 아니다. 뭐랄까 어려운 주제, 심각하고 오묘한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마음에 부담이 들지 않는다. 정말 선생의 수업을 듣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수업은 여느 주입식 교육에서처럼 일방적인 정보의 전달이 아닌 학생과의 교감을 원하는 그런 수업이었다.

내가 읽어본 책들 중에서 이책처럼 서론이 긴 책도 찾기 힘든데 그만큼 선생은 독자들에게 자상하고 친절하게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어떻게 하면 독자들에게 모두 그리고 온전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한 흔적이 너무 크게 드러나 있다. 덕분에 책을 마주 하는 동안 내내 선생에 대한 존경심과 애정 그리고 선생이 풀어내는 지식과 지혜에 깊게 빠져들게 되었다.

무엇보다 서양철학에 경도되어 있던 내게 동양철학의 단아함과 깊이를 알려준 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우리네 사고 방식이며 생활 양식은 대부분이 서구적이다. 그런 방식과 양식 속에서 살아가다보니 우리네 삶 역시 서양일변도의 가치관에 물들여져 있어 자신도 모르게 이해타산적이고 감각적인 분위기에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우리는 본디부터 동양인이고 동양철학의 뿌리에서 자라온 민족이다. 서구식 사고 방식의 유입으로 인해 마치 서양의 것이 참이고 동양의 것은 이단인양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의 뿌리는 어쩔 수 없는 동양인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선생은 강의 내내 우리에게 그 점을 깊이 새겨주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나 역시 이책을 읽으며 그동안의 내가 얼마나 편향된 사고와 생활에 익숙해있었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물론 동양적인 사고와 철학이 사람에 따라서는 진부하고 시대착오적으로 들릴 수도 있음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네 삶의 뿌리가 된 양식과 방식을 잊은채 무작정 서구적인 사고에 빠져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지혜들을 잊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인문학' 고리타분한 단어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이런 생각을 할테고 내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인문학 관련 서적을 읽을라치면 일단 어느 정도의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마 국내에서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계기로 인문학에 대한 편견이 많이 해소된 것 같지만 그래도 여전히 단어 자체에서 풍겨나는 독특한 향기가 선뜻 책장을 넘기기 어렵게 한다.

길 위에서 만나지는 학문이 제대로 된 학문이다. 책을 덮고 거리로 나가자

그래서인지 최근 들어 쉽게 인문학에 접근할 수 있도록 지침서 역할을 해 주는 책들이 선보이고 있는데 이책 '길 위의 인문학'도 그런 류의 책이다.

중간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책은 '현장의 인문학', '생활 속의 인문학'을 위한 모음집이다. 여러 명의 인문학 관련 저자들이 모여 어떻게 하면 인문학을 일반 대중들의 생활 속으로 파고 들게 할 수 있을지를 연구하고 집필한 책이다.

책의 구성은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어 있다. 전반부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조선시대의 학자들, 저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후반부는 우리나라의 지리적인 장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제법 신선한 편집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1부·사람의 자취를 따라 떠나는 길 위의 인문학

2부·역사의 흔적을 따라 떠나는 길 위의 인문학

이렇게 두 개의 주제를 잡고 그 안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인물과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간다. 물론 조선시대라는 시대적인 한계와 그리 많지 않은 장소의 여정이라는 공간적인 한계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한 인물이나 한 장소에 대해 제법 많은 이야기를 풀어 가면서 독자들에게 '봐라, 이렇게 보니 어렵고 지루하지 않지 않느냐"고 말하고 있다.

무엇보다 각각의 인물과 장소에 대한 개별 저자들 특유의 경험과 감상을 마치 내 눈 앞에서 펼쳐 지는 것처럼 그려나가고 있어 딱딱한 인문학 서적이라는 느낌보다 가벼운 기행문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렇게 글을 읽다 보면 어느새 나도 과거로 돌아가 그 인물의 곁에서 혹은 그 장소에서 또 다른 삶과 학문을 느낄 수 있었다.

이책의 주된 배경은 과거다. 그러나 그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서는 현재의 우리를 알 수 없고 현재의 우리를 알 수 없다면 미래의 우리 또한 알 수 없다. 인문학이 따분하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은 직접적으로 우리가 체감할 수 없기 때문인데 이책에서처럼 과거의 일을 마치 현재의 일처럼 혹은 장소처럼 여기고 죽 따라가다보면 과거를 온전히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재로 끌어올 수 있을만한 나름의 요령이 생긴다.

특별히 목차에 집착할 필요도 없고 가끔 손이 가는대로 눈이 가는대로 아무 구석이나 펼치고 읽어도 좋은 것도 이책의 장점이다. 아니면 무언가 리포트를 쓰거나 나름의 글을 쓸 때 참고 교재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다. 공동 저자의 책은 책 전체에 흐르는 일관성은 약하지만 책 전체에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필체와 언어 그리고 지식이 그 부족함을 지워주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렇게 책을 마무리 짓고 있다.

"무지개를 잡으러 간 일이 있었다. 무지개는 나를 반기며 웃었고, 일곱 색깔 자태를 뽐내며 산 위에 걸려 있었다. 그렇게 무지개를 따라가다 무지개를 잃어버렸다. 돌아오는 길엔 온갖 사상이 나를 마중했다. 집에 왔을 때 무지개를 여전히 산 위에 걸려 있었다."

어쩌면 우리네 삶도 그럴테고 학문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삶의 화려함과 일의 고단함, 생활의 습관에 빠져 헤메다가 어느 덧 시간이 지나 나를 돌아봤을 때 애초에 내가 원하던 삶과 거리가 있는 것을 밝견하게 되는 것처럼 학문 역시 깊게 공부했다고 자부했지만 결국은 학문의 언저리에도 도달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때로는 인생이건 학문이건 멀리서 그 전체를 바라보며 즐길 수 있는 여유도 필요하리라..

아무튼 기획 의도가 참신하고 적극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글들을 읽다 보면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인물편을 다루고 있는 전반부는 일반 대중들에게 익히 알려져 있는 인물들을 주제로 선택했음에도 저자 스스로가 그 인물의 세계에 빠진 나머지 독자들을 외면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안내서라는 점을 감안했다면 차라리 지역을 다룬 후반부를 앞으로 빼내었다면 좀 더 많은 이들에게 관심을 끌지 않았을까?



외국어를 공부하는데는 아무래도 강사와 교재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어떤 강사의 수업을 듣고 어떤 책을 보느냐에 따라 외국어 실력은 정말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내가 외국어 공부를 할 때 강사와 교재를 선택하는 기준은 간단하다. 해당 외국어의 원어민일 것, 그리고 우리말을 정확하게 구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런 강사나 저자는 많지 않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해당 외국어를 표준으로 구사하면서 마찬가지로 우리말을 그 정도로 구사한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 책 한 권을 소개해본다. 책 제목은 "일본어 필수 표현 무작정 따라하기"이다


무작정 따라하기? 어디서 많이 들어보지 않았을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일본어 공부에 있어서 무작정 따라하기만한 책을 본 적이 없다. 무엇보다 강사 겸 저자인 후지이 아사리라는 인물의 특이함때문인데 그녀에 대한 소개글을 잠시 보도록 하자

일본인이면서도 서울대학교 국문과에서 고전문학을 전공하고 국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서울대학교 언어학 박사과정에 입학하기까지 했다. 한국어의 구조와 언어학을 이론적으로 학습해오며 한국어와 일본어가 어떻게 다른지 연구해왔고, 웬만한 서울대 학생보다 한국어 맞춤법을 더 잘 안다. 또 국문과 사람들에게 한국어와 일본어가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해 왔기 때문에 한국어와 일본어의 관계에 대해서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전문가이다

글만 봐서 실감이 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직접 그녀의 강의를 들어보면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정말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우리말 표현에 있어 정확하고 체계적이다. 외국인이다보니 그녀가 배운 우리말은 기초부터 고급 과정까지 그야말로 표준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일본어 실력도 상당하다. 무엇보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를 했다. 일본어와 우리말을 모두 상당 수준 구사할 뿐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도 접근하기 힘든 고전 문학을 전공하고 국문학 석사를 받았다. 외부로 드러난 스펙(?)에 연연할 것은 아니지만 이런 강사는 사실 흔하지가 않다.


그리고 위 사진의 아래에 깔려 있는 일본어 무작정 따라하기 시리즈를 집필했는데 그동안 독학으로 어렵고 복잡한 교재들로 일본어를 공부해온 내게는 정말 눈과 귀와 입이 확 뚤리는 계기가 된 대단한 책이었다. (이 말이 형식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은 직접 후지이 선생의 수업을 들어보면 된다.)

가장 최근에 출간된 책이 바로 지금 살펴보는 '일본어 필수 표현 무작정 따라하기'다. '990문장만 알면 말이 통한다.'는 광고 카피가 보이는데 '이런 카피야 어느 책에나 있는 것 아냐?'라고 무시해버릴 수도 있지만 이미 후지이 선생의 책으로 상당히 도움을 받은 나로서는 그냥 믿을 수밖에 없는 표현이다. 아마 무작정 따라하기 시리즈로 공부해온 분들이라면 쉽게 공감이 갈지도 모르겠다.

책의 크기는 188x128mm이다. 서평에 왜 책의 크기를 적느냐면 이책은 휴대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치 외국에 여행을 갈 때 그 나라의 회화책 한 권정도는 가방에 넣어가듯이 이책 역시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언제든 필요한 상황에서 꺼내어 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외국에 나가 책을 보며 외국인에게 말을 거는 것은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상대 외국인으로부터 더 많은 관심을 얻을 수 있고 실제로 내가 겪어본 일이기도 하다.

책의 구성은 간단하다. 총4개의 마당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각의 마당마다 몇 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어 상황에 맞는 공부를 하거나 바로 실전에 적용할 수 있도록 배치하고 있다. 이 구성이 간단한 것 역시 장점인데 수 많은 상황들을 줄줄이 늘어 놓아 독자가 제대로 공부도 하기 전에 질리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

첫째마당 일상생활에서 쓰는 표현 

둘째마당 여러 가지 상황에서 쓰는 표현

셋째마당 일본을 여행할 때 쓰는 표현

넷째마당 감정을 나타내는 표현

후지이 선생은 듣기를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강사인데 이책의 활용법 역시 듣기부터 시작한다. 책 말미에 CD부록이 있는데 책에서 다루고 있는 표현들을 담아두고 있다. "먼저 소리를 듣고 나서 책을 보면서 확인하고 다시 듣기를 여러 번 반복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공부 방법"이라고 그녀는 늘 강조하는데 이책 역시 같은 방법으로 활용하면 된다. 아마 이전에 무작정 따라하기 수업을 들었거나 책을 공부한 독자라면 왜 그녀가 이런 식으로 수업을 진행하는지 금방 이해가 될 것이다.

이책의 장점은 무엇보다 각 장에 실려있는 내용들이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는데 있다. 막연하게 실제로는 있을 것 같지도 않은 상황들로 가득 차 있는 다른 회화 서적들과 분명히 차별화되는 점이다. 처음 무작정 따라하기 시리즈를 공부할 때에는 '이거 책이 너무 가벼운게 아닌가?'라고도 생각했었다. 딱딱하고 무거운 주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네 일상의 이야기로 책을 구성하고 수업을 진행했기 때문인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실제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일본어 표현이 생각나고 말을 할 수 있게 된 나를 보면서 꽤나 놀랐던 기억이 있다. (아마 반말로 배우는 일본어라는데 대한 거부감이 처음에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기존의 무작정 따라하기 시리즈의 초급 과정을 마쳤다면 이책으로 일상에서 반복 학습을 하며 표현들을 익히는 것이 좋다. 별도의 사전이 필요없을 정도로 세세하게 단어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고 좌우면 대칭으로 왼쪽에는 일어 오른쪽에는 우리말을 배치하여 학습효과를 높이고 있다.

공부방법은 간단하다. 우선 공부하고자 하는 장의 발음을 먼저 듣고 따라해본다. 그 다음에 글자를 보고 익힌다. 어느 정도 익숙해졌으면 오른쪽의 우리말 번역을 보고 그 문장을 다시 일본어로 바꾸어본다. 그렇게 하나의 단원이 끝나면 회화 지문을 보고 어떤 식으로 위 표현이 사용되고 있는지 적용해보면 된다.  오히려 너무 간단하기 때문에 과연 효과가 있을까?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분명 효과가 있다. 기존의 후지이 선생의 수업을 듣고 그 방식에 익숙해진 분이라면 좀 더 쉽고 빠르게 익숙해지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정말 이책에 써 있는 말들을 무조건 따른다는 생각으로 부딪혀보기 바란다.

어지간해서는 외국어 공부에 특별한 기술이나 비법이 존재한다고 믿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워낙 후지이 선생의 강의 방식이나 교재의 덕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너무 칭찬 일색으로 글을 쓴 것 같아 조금 어색하기도 하지만 막연한 느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내가 경험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니 일어 공부를 한번 해보기로 생각하고 있다면 속는 셈치고 따라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다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바로 이책을 구입해 일본어 공부를 하는 것은 조금 어렵다. 기초가 전혀 없는 독자라면 가장 초보적인 교재인 일본어 무작정 따라하기를 먼저 학습하기를 권한다. 정말 듣기만 해도 말이 나온다. 내가 본 몇 안 되는 마법 같은 책이다.

이런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이책은 내지가 조금 두껍고 광택지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무게가 좀 나간다. 실용성이라는 면을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차라리 가벼운 종이를 써서 좀 더 편하게 들고 다닐 수 있게 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저는 건강한 리뷰문화를 만들기 위한 그린리뷰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한국인의 에로스
김열규

남자와 여자, 여자와 남자는 떼어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존재다. 인류가 이어지기 위해서는 가족이 필요하고 가족이란 남자와 여자가 합쳐 자식을 낳음으로써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사랑의 의미에 대해서도 유물론자들은 종족번식을 위한 가상의 감정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분명 이성으로서 남자와 여자, 여자와 남자 사이에는 종족번식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다. 그럼에도 요즘은 어떤가? 늦은 밤 앞서 가는 여자와 뒤에서 가는 남자 모두 불안을 느껴야 하고 엘리베이터에 단 둘이라도 타는 경우가 생기면 서로 고개를 돌리기 바쁘다.

인터넷에서는 연일 남자의 군대이야기와 여자의 임신이야기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양성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것이 자연적인 순리라면 요즘의 모양새는 양성이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야단이다. 사정이 이러니 아예 독신을 선언하기도 한다. 가족을 만들기 위한 성적인 욕구가 아닌 쾌락을 위한 성적인 욕구가 판을 친다. 주객전도라는 말은 오늘날의 남녀관계에 잘 어울리지 않을까?


김열규 교수의 '한국인의 에로스'는 이런 시점의 우리에게 참 적절한 문제 제기를 해 준다. '에로스'라는 제목에 혹시 야한 이야기라도 나오지 않을까 책장을 펼치면 금방 후회하게 된다. 출판사도 지적하듯 "라틴어인 Eros는 사랑의 신을 가리키면서도 Amor와 마찬가지로 남녀 간의 사랑을 가리키기도 한다. 동시에 남녀 간의 성적인 관계도 의미한다. 저자는 Eros가 이런 복합적인 뜻을 가진 점을 취해 남녀 간의 더 넓은 관계를 포착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과거 역사와 신화 속의 남녀 관계를 짚어 간다. 이를 통해 오늘날의 남녀관계를 진단하고 처방을 내린다. 기본적인 구조는 이렇지만 문제의 제기와 풀이라는 경계조차 없을 정도로 유연하게 글을 이끌어 간다.

1. 한국의 남과 여 2. 짝짓기와 혼례 3. 또 다른 짝짓기 이야기 4. 사랑, 그 만다라의 얼굴 이렇게 총 4개의 커다란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제목에 대한 선입관과는 전혀 달리 훌륭한 참고문헌의 역할을 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자료와 이야기가 곳곳에 담겨 있다.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에서부터 오늘날의 이야기까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든다. 조선 시대의 이야기가 바로 눈 앞에서 펼쳐지고 고교 교과서에 등장하는 작품들의 속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는 아무런 선입견 없이 처음부터 죽 읽어 가자. 각 장마다 특별한 연계성이 없기 때문에 두 번째 읽을 때에는 아무렇게나 마음 내키는 페이지를 펼쳐 읽으면 된다. 어느 곳을 읽어도 쉽게 빠져 들 수 있는 재미. 김열규 교수의 말빨(?)의 힘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김 교수는 왜 굳이 '한국인의'라는 부분을 강조했을까? 우리 사회가 현대화되면서 등장한 정체불명의 현대식 결혼식은 형식적이고 상업적이다. 가정의례준칙이라는 괴물이 등장하면서 우리만의 고유의 남녀관계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의 전통 혼례는 단지 양성이 만나 한 살림을 꾸리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가족과 가족의 만남, 인간과 인간의 만남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정적인 의미는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았다는 것이다. 인륜지대사라는 혼인의 형식이 그렇게 되었으니 혼인의 내용이 알찰 리가 없다. 김 교수가 개탄하는 점은 그런 것이 아닐까..

김 교수는 남녀 관계가 세상 모든 관계 중에 가장 까다롭고 성가시다고 한다. 그말은 곧이곧대로 들을 것이 아니라 그만큼 많은 경우가 있고 지켜야 할 것들이 많은 것이라고 받아들이면 어떨까? 생면부지의 남녀가 만나 혼인을 하고 살을 맞대어 자식을 낳는다는 것은 세상 어느 관계보다 대단한 관계가 아닐까. 그렇기에 어느 관계보다 조심스럽게 그러면서도 진실되게 다가서야 하는 관계가 아닐까 생각된다. 남녀는 적이 아니다. 다른 성으로 받아 들이기보다는 둘이 합쳐 하나의 완성체가 된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신체적인 차이는 눈에 보이는 외양일 뿐이다. 오히려 그 외견 상의 차이를 결합을 통해 완성시키는 것이고 이전에 서로의 마음이 온전히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이런 진부한 이야기를?' 이라고 비판하는 이도 있겠지만 인간 역시 자연이라는 커다란 역사 안에서는 그저 작은 한 부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을 받아들이고 살아간다는 마음으로 남자와 여자, 여자와 남자가 서로를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사랑은 받음이기 전에 베풂이란 것을 내세우고 싶습니다. 내가 받는 것보다는 상대방에게 주는 것에 더 마음을 써야 할 것입니다. 상대를 위하는 것이 바로 내 보람이고 기쁨이라야 할 것입니다. 이 점은 어떤 시대에도 바뀌지 않을 불변의 사랑의 철학일 것입니다." 김 교수의 사랑에 대한 일침이다.
세상에서 가장 풀기 어려운 것 중의 하나가 사람의 마음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정말 강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한없이 약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고사하고 자신의 마음조차 알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사람으로 태어나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하면 나는 지체없이 사람과의 관계를 이야기한다. 그만큼 사람이 전부라는 말인데 그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사람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이번에 읽은 책은 한빛비즈에서 출간된 '마음의 암호에는 단서가 있다'라는 책이다. 마음을 암호라고 풀어둔 것이 제법 흥미가 간다. 아니 어쩌면 상당히 정확한 내용이다. 마음이란 그 자체가 암호화되어 있어서 풀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 마음의 암호에 단서가 있다고 한다. 즉 풀어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말이다.

책은 전체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마음의 암호에는 반드시 단서가 있다

2장 그 사람은 당신을 위해 절로 움직일 것이다

3장 원하는 것을 순조롭게 얻는 기술

4장 누가 당신의 돈을 빼앗아 갔는가?

5장 사회의 틀을 넘나드는 기술

6장 관계의 가장 큰 기술은 사랑이다

처음 제목을 접하고 목차를 간단하게 훑어보았을 때는 여느 처세술 책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당연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기를 원한다' 라던가 '추구하는 목표를 매일 종이에 위에 써라'던가 하는 식이다. 원저가 그런 것인지 출판사의 편집 방침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목차를 끌어내는 모양새를 보니 공격적인 처세술을 알려주고자 하는 것같은 느낌이다. 하기야 그런 느낌이 아니면 요즘 같은 출판 시장에서 인기를 끌 수 없을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제법 많은 것을 알려준다.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소홀히 하고 있는 것. 마치 우리가 공기를 들여마시며 숨을 쉬고 있는 것과 같은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들을 다시금 이야기한다. 왜 그럴까? 당연하다고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을 강조하고 다시 풀어쓴다는 것은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 당연한 것을 이해하거나 실행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말이 강조되는 사회는 도덕이 엉클어진 사회다.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지극히 당연한 주제들 역시 우리가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전에 '생각버리기 연습'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책 역시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책이 잘 팔려나가는 것은 우리의 일상이 그렇지 못하다는 반증이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카렐의 공식'은 공식이라 부르기도 뭐할 정도로 당연한 이야기다. 그럼에도 하나의 공식이 되어 있고 또 책에 소개가 되고 있다. 사람들이 이것을 지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가치는 여기에 있다.

전반적인 책의 구성은 독자를 많이 배려하고 있는 느낌이다. 각 장별로 작은 사례와 함께 이야기를 풀어가는 형식이다. 그렇다보니 하나의 주제에 대한 페이지 분량은 많아야 2-3장이다. 바쁜 현대인을 위한 적절한 배려랄까? 각 주제의 구성은 하나의 사례를 소개하고 그 사례 속에서 사람의 심리를 파악하고 나아가 그 사례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식이다. 문체가 어렵지 않아 처세술이니 심리학이니 하는 거추장스런 수식어를 떼고 읽기에도 적당하다.

다만 자투리 시간에 읽기에 적당한 분량으로 구분한 것에 비해 책의 무게는 좀 나가는 편이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한 손으로 들고 읽기에는 무겁다. 이런 책들은 휴대를 위해 미니북이나 재생지 등으로 출간하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류의 책들은 도서관이나 서재에 앉아 진득하게 보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번역은 조금 딱딱한 편이다. 책의 구성이나 취지에 비해 번역자가 실제 사례를 많이 접해보지 못한 탓이 아닌가 싶고 책의 성격과 디자인, 번역이 딱딱 잘 맞아들어가는 느낌은 들지 않는 것이 아쉬운 점이라면 아쉬운 부분이다.




저는 건강한 리뷰문화를 만들기 위한 그린리뷰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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