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고리타분한 단어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이런 생각을 할테고 내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인문학 관련 서적을 읽을라치면 일단 어느 정도의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마 국내에서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계기로 인문학에 대한 편견이 많이 해소된 것 같지만 그래도 여전히 단어 자체에서 풍겨나는 독특한 향기가 선뜻 책장을 넘기기 어렵게 한다.

길 위에서 만나지는 학문이 제대로 된 학문이다. 책을 덮고 거리로 나가자

그래서인지 최근 들어 쉽게 인문학에 접근할 수 있도록 지침서 역할을 해 주는 책들이 선보이고 있는데 이책 '길 위의 인문학'도 그런 류의 책이다.

중간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책은 '현장의 인문학', '생활 속의 인문학'을 위한 모음집이다. 여러 명의 인문학 관련 저자들이 모여 어떻게 하면 인문학을 일반 대중들의 생활 속으로 파고 들게 할 수 있을지를 연구하고 집필한 책이다.

책의 구성은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어 있다. 전반부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조선시대의 학자들, 저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후반부는 우리나라의 지리적인 장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제법 신선한 편집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1부·사람의 자취를 따라 떠나는 길 위의 인문학

2부·역사의 흔적을 따라 떠나는 길 위의 인문학

이렇게 두 개의 주제를 잡고 그 안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인물과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간다. 물론 조선시대라는 시대적인 한계와 그리 많지 않은 장소의 여정이라는 공간적인 한계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한 인물이나 한 장소에 대해 제법 많은 이야기를 풀어 가면서 독자들에게 '봐라, 이렇게 보니 어렵고 지루하지 않지 않느냐"고 말하고 있다.

무엇보다 각각의 인물과 장소에 대한 개별 저자들 특유의 경험과 감상을 마치 내 눈 앞에서 펼쳐 지는 것처럼 그려나가고 있어 딱딱한 인문학 서적이라는 느낌보다 가벼운 기행문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렇게 글을 읽다 보면 어느새 나도 과거로 돌아가 그 인물의 곁에서 혹은 그 장소에서 또 다른 삶과 학문을 느낄 수 있었다.

이책의 주된 배경은 과거다. 그러나 그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서는 현재의 우리를 알 수 없고 현재의 우리를 알 수 없다면 미래의 우리 또한 알 수 없다. 인문학이 따분하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은 직접적으로 우리가 체감할 수 없기 때문인데 이책에서처럼 과거의 일을 마치 현재의 일처럼 혹은 장소처럼 여기고 죽 따라가다보면 과거를 온전히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재로 끌어올 수 있을만한 나름의 요령이 생긴다.

특별히 목차에 집착할 필요도 없고 가끔 손이 가는대로 눈이 가는대로 아무 구석이나 펼치고 읽어도 좋은 것도 이책의 장점이다. 아니면 무언가 리포트를 쓰거나 나름의 글을 쓸 때 참고 교재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다. 공동 저자의 책은 책 전체에 흐르는 일관성은 약하지만 책 전체에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필체와 언어 그리고 지식이 그 부족함을 지워주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렇게 책을 마무리 짓고 있다.

"무지개를 잡으러 간 일이 있었다. 무지개는 나를 반기며 웃었고, 일곱 색깔 자태를 뽐내며 산 위에 걸려 있었다. 그렇게 무지개를 따라가다 무지개를 잃어버렸다. 돌아오는 길엔 온갖 사상이 나를 마중했다. 집에 왔을 때 무지개를 여전히 산 위에 걸려 있었다."

어쩌면 우리네 삶도 그럴테고 학문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삶의 화려함과 일의 고단함, 생활의 습관에 빠져 헤메다가 어느 덧 시간이 지나 나를 돌아봤을 때 애초에 내가 원하던 삶과 거리가 있는 것을 밝견하게 되는 것처럼 학문 역시 깊게 공부했다고 자부했지만 결국은 학문의 언저리에도 도달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때로는 인생이건 학문이건 멀리서 그 전체를 바라보며 즐길 수 있는 여유도 필요하리라..

아무튼 기획 의도가 참신하고 적극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글들을 읽다 보면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인물편을 다루고 있는 전반부는 일반 대중들에게 익히 알려져 있는 인물들을 주제로 선택했음에도 저자 스스로가 그 인물의 세계에 빠진 나머지 독자들을 외면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안내서라는 점을 감안했다면 차라리 지역을 다룬 후반부를 앞으로 빼내었다면 좀 더 많은 이들에게 관심을 끌지 않았을까?





책을 읽는 데 기술이 필요한가? 라고 이전에 스스로 질문을 해 본 적은 없다. 어릴 적부터 그저 손에 잡히는대로 책을 읽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교과서라면 사정은 달라서 밑줄도 긋고 노트에 요약도 하며 읽지만 수험용 책이 아닌 일반 서적을 그렇게까지 정성을 들여(?)읽지는 않았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렇게 읽은 책들은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곧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감동을 많이 받았거나 완전히 새로운 지식을 습득해 나 스스로 감탄한 정도가 아니면 얼마 후에는 이책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가물가물해지고 나중에는 분명히 읽은 기억은 있음에도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 난감한 상황을 겪게 되곤 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이었을까?

분명 무언가 내 독서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정확히 그 문제점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을 하면 좋을지 문제 의식만 가질 뿐 굳이 해결해야겠다는 적극적인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접한 책이 애들러의 '독서의 기술'이다. 마치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연상시키는 책 제목인데 '사랑의 기술'이 그러하듯 도대체 책을 읽는데도 기술이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키는 제목이었다.

책장을 넘겨갈 수록 처음의 생각, 그러니까 책을 읽는데 기술따위는 필요없어! 라는 내 생각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런, 내가 왜 읽은 책이 다시 기억이 나지 않는지 이제 이해가 가는군..' 출근길에 지하철에서 스스로 감탄을 했다.

책 자체의 느낌은 조금 낡은 느낌이다. 범우사에서 출간된 이책은 번역체도 다소 딱딱하고 종이질이라던가 디자인도 어쩐지 오래되어 보인다. 거기에 제목까지 독서의 기술이니 어지간해서는 책장을 넘기기 힘든 책임은 분명했다. 그럼에도 내가 이책을 끝까지 그리고 줄을 치며 메모를 해가며 읽은 것은 그동안의 잘못된 독서 습관에 대한 반성은 물론이고 이제부터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내 나름의 방향을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번역이 조금 오래된 맛이 있기는 하지만 책장을 넘기기에 어색할 정도는 아니어서 중고등학생들도 조금만 집중을 하면 읽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이책은 중고등학생들에게 적합하기도 하다. 단지 수험 목적이 아닌 앞으로 대학에서 학문을 해 나가는데 있어 참 많은 시사점이 될만한 내용들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애들러의 일종의 독서의 공식은 일반론이다. 자기 스스로 이 방법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서법을 찾고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흔히 물고기가 아닌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말을 하는 데 내 생각으로는 바로 이책이 그 방법을 가르쳐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자세히 책을 읽다보면 이미 본인이 알고 있는 내용들도 상당수 될 것이다. 책을 읽어 나갈 때 메모를 한다던가 주제를 뽑는다던가 목차를 먼저 읽고 요약을 해본다던가 하는 내용이다. 뻔히 알고 있는 내용임에도 오히려 우리는 실천에는 더디다. 애들러는 그 점을 정확하게 짚고 있고 나아가 우리가 뻔히 알고 있는 것들을 이어붙여 완성된 독서로 이르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열심히 책을 읽고는 있는데 도무지 내가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곤란을 느낀다면 다른 책은 일단 접어두고 이책을 읽기를 권한다. 그리고 이책을 읽어나갈 때는 애들러가 제시한 독서의 기술을 바로 적용해서 읽어보기를 권한다. 어쩌면 지루하고 단순한 작업의 연속일 수도 있겠지만 그 작업을 마친 후 상당히 진보해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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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글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스스로를 드러내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인식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그가 많은 지식으로 무장을 하고 있더라도 기본이 되어 있지 않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짧은 지식과 숫자놀음..화려한 형용사로 현학적인 글로 상대방을 비난해봤자 스스로의 위선을 드러내는 것외에는 별것도 아니다. 비평과 비난의 차이조차 모르는 그런 글을 굳이 내 블로그에 남겨둘 이유가 없어 삭제한다.


보통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우리는 주로 책상 위에서 작업을 많이 합니다. 책상이라는 가구의 용도 자체가 애초에 그런 것이다보니 당연스레 책상에서 작업을 하게 되지만 의자에 앉아 오랜 시간 작업을 하다보면 허리도 뻐근하고 집중력도 저하되는 것이 사실이죠.

그래서 방바닥에 앉아서 작업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마땅한 가구가 없어 지레 포기하곤 합니다. 밥상을 가져다놓고 책을 읽자니 왠지 어색하고 그냥 맨몸으로 있자니 책은 어찌어찌 읽겠지만 글을 쓰기는 어렵죠.

이번에 살펴볼 부림홈즈의 다용도테이블은 말 그대로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전천후 테이블입니다.


멀리서 보면 마치 원목 같은 느낌을 줍니다. MDF로 만들었지만 상당히 고급스러운 느낌이 납니다. 화면으로는 보여드릴 수 없지만 나무 특유의 향이 있는데 물론 오랜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겠지만 마치 자연 안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특이한 테이블입니다. 상판은 별도의 코딩을 하지 않고 있는데 그점이 오히려 친근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테이블을 펴면 높이는 25cm입니다. 사진에서는 자가 0.5cm차이가 나게 보이는데 자 안쪽부터 눈금이 있어서 그렇게 보이는군요. 왜 높이를 이야기하는가 하면 이 높이면 보통의 성인 남성이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을때 양무릎이 테이블 안으로 들어갑니다. 의외로 중요한 부분인데 테이블 위에 책을 놓고 읽을 경우 테이블을 멀리 떨어뜨려 놓지 않고 가까이 끌어당길 수 있다는 것이지요.



4개의 다리는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양쪽을 눌러서 펴고 접을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큰 힘이 필요하지도 않아서 여성분들도 무난하게 이용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리의 고정은 제법 단단하게 되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물건을 올려 놓아도 상다리가 부러질(?)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한번 테이블 위에 책을 올려 보았습니다.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테이블이지만 제 경우에는 독서용으로 사용하는 일이 가장 많은데요. 직접 사용해보면 참 크기나 높이가 책읽기에 적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4개의 다리를 접으면 상판의 두께가 얇기 때문에 전체적인 두께도 제법 줄어듭니다. 자취나 하숙 등을 하시는 분들이라면 공간에 대한 아쉬움이 많으실텐데 밥상 겸 책상으로 쓰기에도 좋도록 보관에 용이한 크기와 두께를 갖춘 테이블입니다.



이 정도면 책 한 권을 읽기에 제법 분위기가 있어 보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무릎이 테이블 아래로 들어가기 때문에 적당한 거리에서 상당히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물론 밥상 대용으로 사용할 때도 편리함은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책만 읽기에는 다용도테이블의 이름이 아깝습니다. 오랜만에 만년필과 노트를 꺼내어 글을 적기에도 적당합니다. 책을 볼 때도 공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는데 이렇게 노트와 펜을 올려두어도 제법 넉넉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다용도테이블인 것이지요. 테이블의 가로길이는 60cm이고 세로길이는 40cm입니다.

이 작은 테이블이 과연 일상 생활에서 얼마나 유용할까 생각들을 하실텐데요. 직접 방 안에 두고 이런저런 용도로 사용해보면 '아, 이게 이렇게 편리한가?'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됩니다. 늘상 책상 앞에 앉아 작업을 하는 것에 혹은 독서를 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셨다면 이 다용도테이블로 분위기 전환 한번 해보시면 어떨까요?


저는 건강한 리뷰문화를 만들기 위한 그린리뷰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읽은 책은 '철학교사 안광복의 키워드 인문학'이라는 조금은 긴 제목을 가지고 있는 책입니다. 21세기의 첨단 시대인 지금, 어쩌면 인문학이라는 단어는 고리타분하고 지루함을 상징하는 단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요즘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철학과 고전 등이 대학입시나 고교입시에서 논술이나 면접 등의 기초 자료로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때아닌 인기(?)를 누리고 있는 단어기도 합니다.


책의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책은 키워드를 중심으로 내용을 전개해나가고 있습니다. 총 50개의 개별 키워드와 100권의 책이 이 책의 뼈대가 되고 있습니다. 저자가 직접 밝히고 있듯이 '2%의 물음', 생활인의 인문학이 이 책을 이루는 커다란 흐름입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인문학이라는 다소 진부한 주제들을 우리의 현실과 맞닥뜨려 다루고 있다는 말입니다. 지식이 책 안에 머물고 있으면 생기가 없습니다. 그 지식을 현실로 끌어내어 우리의 실생활 속에 던져두었을 때야 비로소 지식의 가치가 있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제법 치밀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전체 7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주제 하나를 잡고 그 안에 소주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소주제들은 3-5페이지 정도의 짧은 글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읽기에도 충분합니다. 그리고 각장의 말미에는 소주제의 글을 쓰는데 참고한 서적들에 대한 간략한 서평을 달아두고 있습니다. 저자의 이런 친절함 덕분에 우리는 인문학이라는 광범위한 주제에 대해 차근차근 배워나갈 수 있게 됩니다.

철학박사이자 고교 교사인 저자는 왜 하필 인문학이라는 주제를 잡았을까요? 인문학은 오늘날 우리의 사상과 가치의 바탕이 된 고전입니다. 과거의 고전들이 없었다면 현재의 우리의 문화는 존재하기 어려웠겠죠. 그러나 오늘날의 사람들은 그런 과거의 영광을 진부하다거나 낡았다는 핑계로 제쳐둡니다. 서가를 장식하기 위해 몇 권의 고전들을 꽂아둘 뿐이죠. 그렇지만 인문학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아니 미래에도 여전히 우리의 생각과 가치를 좌우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입니다. 그 점을 저자는 강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50개의 키워드를 아우르는 각 장의 제목을 보면 그런 의도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Chapter 1 생활 속의 'ism'들
Chapter 2 선전, 선동, 그리고 진실
Chapter 3 의ㆍ식ㆍ주_생활의 뿌리
Chapter 4 과학, 종교, 교육_인류를 떠받치는 세 기둥
Chapter 5 왕따, 갈등, 그리고 전쟁_세상의 '참 평화'를 지키려면
Chapter 6 자본주의 생존학_정글에서 살아남기
Chapter 7 Miscellaneous_'기타' 생각거리들

인문학에 대해 보통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많이 걷어내고 현실적인 접근을 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각 장의 세부 주제 즉 키워드로 들어가면 좀 더 그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3장 경우

Keyword 17 옷의 철학 패션, 혁명을 이끌다
Keyword 18 한식의 세계화 먹거리에 담긴 인문 정신
Keyword 19 공장식 농장 공짜는 없다! 값싼 음식의 비밀
Keyword 20 행정복합도시 성장과 균형, 도시계획의 이중주
Keyword 21 가족 해체 ‘알파걸’이 우리 미래를 지켜 준다고?
Keyword 22 소셜 네트워크 우리가 외롭지 않으려면
Keyword 23 아파트 대한민국 ‘리모델링’은 ‘아파트 허물기’부터

이런 식으로 각각의 키워드에 따른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이 제목만 봐서는 과연 인문학을 다루고 있는 책인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소주제 그러니까 키워드 하나하나마다 예를 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예'가 우리의 현실과 직접적으로 맞물려 있습니다. 책 속에만 등장하는 상상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매일 겪는 바로 오늘입니다. 키워드 36이 다루고 있는 왕따에 대해 저자는 왕따의 사회학이라는 제목을 잡아 이야기를 풀어 갑니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책은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기득권자와 아웃사이더'라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는 구분이 차별로 이루어지는 과정을 흥미롭게 묘사하고 있는데 저자는 이 부분을 상세히 언급하면서 이와 같은 차별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함을 보여줍니다.

축구 선수를 뽑을 때 달리기 실력의 차이는 결코 차별이 아니다. 그러나 어느 지역 출신인지에 따라 선수를 가릴 때는 문제가 달라진다. 이처럼 정당하지 못한 차이로 차별의 벽을 쌓는 경우가 우리 사회에는 너무나 많다...(중략)..이런 우리 모습에 3구역을 멸시하는 2구역 주민들의 모습이 자연스레 겹쳐진다. -199면에서 발췌
이런 식으로 50개의 키워드에 대한 이야기와 100권에 책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독자는 자연스레 저자가 글에서 언급한 다른 책들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저자가 직접적으로 희망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물론 제한된 지면에 광범위한 주제를 담으려다보니 각각의 주제나 관련 서적에 대한 깊이가 깊지는 않습니다. 하나의 키워드마다 몇 권의 책을 써도 모자란데 고작 4-5페이지에 그 내용을 모두 담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 책은 도화선이 되는 역할이 강합니다. 독자들이 저자의 글을 읽고 한걸음 나아가 원저를 읽고 더 나아가 독자 스스로의 키워드를 만들어주기를 저자는 바라고 있습니다.

각 장의 말미에 자리잡은 서평란에는 바탕이 된 100권의 책들은 저자와 출판사까지 명시해주고 있어 서점을 두리번거려야 하는 분주함을 덜어주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자세히 적을 수 없었던 내용도 추가적으로 담고 있어 도서의 선정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그렇지만 저자가 언급한 책은 어디까지나 저자의 생각에 뒷받침이 된 책들입니다. 같은 제목을 가지고 있는 책들도 출판사와 역자에 따라 천차만별이니 읽고 싶은 책을 하나 정하면 여러 출판사의 책들을 같이 놓고 비교해보며 자신이 좀 더 읽기 좋은 책을 고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됩니다.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이 독자들의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체 게바라, 누군지는 자세히는 몰라도 어디선가 들어봤음직한 이름이다. 기억이 잘 나지 않더라도 지난 2004년 개봉한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본 적이 있다면 '아'하고 무릎을 칠지도 모르겠다. 과거 정권이었다면 제대로 빛도 발하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인물인데 그나마 민주화가 진행된 덕분일까? 한때 우리나라에도 체의 얼굴이 그려진 옷을 입고 다니는 이들이 제법 될 정도로 그의 인기는 대단했다.

그리고 그 열기가 모두 가라앉고 그의 이름조차 세인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갈 무렵 나는 그의 전기를 다시 읽어내려갔다. 실천문학사에서 꽤 공을 들여 내놓은 '체 게바라 평전'은 일단 독자를 배려한 책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700페이지가 넘는 분량덕분에 한 손에 책을 올려놓고 읽는 것을 즐기는 내게는 제법 고역이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독서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체를 본받으라는 의미가 담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판형도 작은데 두께가 두꺼워 한 손으로 책을 들면 자꾸 책이 접히려는 경향이 있어 결국 한 손으로 받혀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책을 눌러가며 봐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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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의 일대기에 대해서는 워낙에 많은 정보들이 공개되어 있으니 이 자리에서 그의 일생을 다시 돌아보는 것은 큰 의미는 없어보인다. 다만 왜 그가 전 세계인들에게 그렇게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지는 돌아봐야 한다. 그는 한 마디로 소신껏 살아간 인물이었다. 자신의 신념과 이상의 실현을 위해 평생을 바친 인물이다. 어떻게 보면 무모하고 무계획적이고 현실을 도외시한 이상주의자로 보일 수도 있었지만 그런 평범한 인간들과 그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그 이상을 실천에 옮겼고 성공을 거두었다는데 있다.

누구가 살아가는동안 자신의 이상과 현실사이의 괴리때문에 고민을 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을 택하고 하나의 부속으로 일생을 마감하지만 소위 '위인'이라는 인간들은 그런 현실을 타파하고 이상을 얻기 위해 일생을 바친다. 어떤 인생이 가치있는 인생이냐고 묻는다면 주저없이 위인의 인생이 가치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막상 직접 그런 삶을 선택해서 살것이냐고 묻는다면 주저하게되는 것이 또 우리네 삶이다.

이 책은 한 번을 읽어서는 제대로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다. 체의 일생을 시간적인 흐름에 따라 죽 훑어가고 있기때문에 글자에만 집중해서 읽어내려가다 보면 나중에는 도무지 무엇을 읽고 있는지 오히려 혼동스럽다. 처음 읽을 때는 그냥 이런 사람이 있었다정도로 만족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인터넷이나 도서관 등을 이용해 그 시대로 돌아가 역사적인 상황을 되짚어본다면 다시 책을 읽어내려갈 때 좀 더 체 게바라라는 인간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 본성에 대한 믿음과 스스로의 신념에 대한 확신과 추진력으로 가득 차 있는 근대사에서 접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인 체 게바라, 물론 혁명을 당한 입장에서는 귀찮은 테러리스트일 뿐이겠지만 그의 진정한 가치는 혁명가에서보다는 그가 가졌던 인간애에 있다고 보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내가 곧 서른 아홉이 된다. 시간은 어느 누구의 사정도 봐주지 않는다.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게릴라로서 내 미래에 대해 깊이 성찰한다. 그러나 당장은 '타협하지 않겠다'라고 결심했다. 해발 고도: 8백 40미터"

본문 중에서

장 코르미에 저/김미선 역 | 실천문학사 | 2005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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