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인사동을 찾다. 내게는 본적지이기도 하지만 번지를 찾아가본 적은 없다. 그게 무슨 대단한 의미도 아닐테니 말이다. 예전의 인사동과 지금의 인사동은 많이 달라졌다. 무엇보다 구식의 느낌이 많이 사라졌다. 그리고 상업적인 냄새가 날이 갈 수록 더 진해진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아쉬운 일이다.

내게 있어 인사동은 여러 기억들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좋은 기억도 혹은 아쉬웠던 기억도 모두 담겨 있다. 만남이 있었고 이별이 있었다. 결국은 사람과의 관계가 인사동이 내게 주는 가장 큰 감정이랄까...

그래서인지 여간해서는 이길을 혼자 걷고 싶지 않았다. 빈자리가 주는 공허함이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감정 또한 나 스스로 감내해야할 것이기 때문에 언제까지 피할 수만은 없지 싶다. 

그렇게 찾아간 인사동은 내 복잡한 심사와는 관계없이 분주하다. 그안에도 사람들의 숫자만큼의 인생사가 담겨 있고 그 인생들만큼의 희로애락이 드러난 듯 혹은 감춰진 듯 짙은 향내를 풍기고 있었다. 나는 그 공간을 걷는 그저 한 사람의 관객이자 모노드라마의 주인공이었다.

그렇게 초봄의 인사동은 내게 다가왔다가 지나갔다.

D700, AF Nikkor 35mm f2D

 

가능하다면 그 시대에 그 순간에 그 장소의 기록을 남기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그것은 시간의 흐름이 용납하지 않는 진리...

지나가버린 과거를 현재로 다시 돌이킨다는 것은 어쩌면 그 진리를 거역하는 일이겠지만..

그렇게라도 오래 전의 흔적들을 되새기고 싶어한다면 변명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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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에서 노동당사를 바라보며...

D200, AF-S 17-55mm f/2.8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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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이하윤의 '메모광'을 읽어보면 참 사람의 심리를 딱 부러지게 잘 묘사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 경우에도 소위 글발이 오르는 것은 잠들기 전의 찰라의 몇 초간 혹은 문득 잠에서 깨어 현실과 꿈의 경계가 모호한 시간이다. 늘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그 순간 머릿속에서 빠르게 지나가는 상념의 조각들을 제대로 기록으로 남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뭔가가 아쉬울 때 더 절실해진다. 바쁜 출근길에 옴싹달싹할 여지도 없는 순간에 머리를 가득 매우는 시나리오들. '아 자리에 앉게 되면 이것들을 기록해야지'라고 생각하고 있다가도 금세 잊고마니 아쉬움은 한층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하윤의 글의 일부를 발췌해보면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을 때, 흔히 내 머리에 떠오르는 즉흥적인 시문(詩文), 밝은 날에 실천하고 싶은 이상안(理想案)의 가지가지, 나는 이런 것들을 망각의 세계로 놓치고 싶지 않다. 그러므로 내 머리맡에는 원고지와 연필이 상비되어 있어, 간단한 것이면 어둠 속에서도 능히 적어 둘 수가 있다...


특히 이 문장은 와 닿는 구석이 많다. 나도 언제고 펜을 들어 즉흥적인 감상을 옮기기로 하고 위와 같은 실천방안을 몇 차례 강구해봤지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님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습관이라는 것은 기실 어느 정도의 강제력이 작용해야 비로소 몸에 익숙해지는 것이지 '그래? 이건 어떨까?"라고 막연하게 생각만 해서는 안 되지 싶다.

이동 중에도 내 양복 안주머니에는 늘 만년필 한 자루와 두 개의 펜이 있고 손만 뻗치면 가방 안에서 노트를 꺼낼 수 있음에도 쉽사리 상념의 조각들을 메모하지 못하는 것은 '사정이 이러해서..쉽지가 않았다..'라는 변명으로 넘길 구석은 아닌 것이다.


예전에는 지난 기억들을 되살리는 방법으로 앨범을 뒤적인다거나 편지를 다시금 열어보는 것이외에 딱히 이렇다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사진이 없어지거나 편지조차 잃어버렸을 경우에는 내게 그런 기억이 있다는 것조차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의 내 모습을 글자 하나하나까지 기억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바로 인터넷 덕분이다. 특히나 구글 검색을 이용하면 내 이름과 나를 상징할 수 있는 몇몇 단어들만 같이 넣어주면 "언제 이런 일이 있었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나에 대한 정보들을 나열해준다.

컴퓨터 잡지 기자로 활동했던 덕분에 비교적 인터넷에서 나에 대한 정보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비단 기사 뿐 아니라 여러 동호회에서 활동하면서 적었던 글이나 사진.. 나는 잊고 있었지만 그 단편들은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는 현실이었다.

내가 죽은 이후에도 이런 단편들은 꾸준히 남아 나의 기억을 대신할텐데...

문명이 발달하면 할 수록 나를 지우기는 어려워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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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새로운 감정으로 모든 것을 리셋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내 지독한 단점 중의 하나는 지나간 기억을 가슴 속에 그리고 머리 속 어딘가에 남겨둔다는 점이다.

인간은 원천적으로 망각의 동물이다. 기억이 제 때에 지워지지 않는다면 도무지 세상을 살기란 어려울 것이다.

망각이 있기에 과거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다시 내일을 꿈꿀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나라는 인간은 과거의 굴레를 되새김질하는 것이 습관이 된 모양이다.

게다가 내가 의미하는 과거란 비단 아주 먼 옛날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어서

불과 5분 전의 사실에도 "아차"라고 느끼고 있으니....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읽고 있다. 왠만해서는 서평만으로 책을 보는 스타일은 아닌데

신에 대한 해석이 내가 오래 전부터 생각하던 그것과 지극히 일치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나저나..이 블로그는 개인적인 감상을 적기에는 너무 오픈된 감이 없지 않다..

뭐 그래도 어쩌겠나 싶다. 새로 공간을 만들기도 귀찮다..

게다가 이곳은 도메인 유지비에 웹호스팅 비용까지 꼬박 나가는 곳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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