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을 오르고 다음말 방문한 곳은 영주 부석사였다. 역사책에서 보던 곳인지라 여행 시작 전에 꼭 가보기로 했고 전날의 일정을 마무리한 이후 당연하게 부석사를 찾을 예정이었다. 부석사는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마주치는 위치에 있어 그 분위기가 뭐랄까 예사롭지 않았다는 표현이 적당하지 싶다.

다만 날이 겨울이어서 다른 계절에는 어떨까 싶은데 스산한 바람과 한기 속에서 왠지 오래된 이 사찰은 낯선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았고 당시 느낌을 돌아보면 아무도 살지 않는 그런 느낌었달까. 그래도 다행이 날은 무척이나 맑고 오히려 햇살이 따가울 지경이었다. 차디찬 겨울바람만 아니었다면...

현판에 쓰인 부석사라는 글이 빛을 받아 마치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중에 이 사진을 봤을 때 참 그날의 분위기와 앞으로의 미래를 내다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면 지나친 해석일까...사찰의 거의 모든 건물들은 하얗게 빛이 바래있었고 무정한 세월 속에 뼈대만 남은 그런 느낌이었다.

경내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사찰 전체에서 주는 느낌은 제법 장엄했다. 무게가 느껴진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같다. 비록 뼈대만 남아 앙상할지라도 과거의 영광을 그렇게 간직하고 있던 곳. 그곳이 부석사였다.

세월의 흐름 속에 이렇게 오늘까지 남아 그 향을 남기고 있다는 것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 무량수전. 어색한 분위기로 이 앞에서 사진을 남기기도 했지만 그 사진들은 이제 남아있지 않다. 

겨울만 아니었다면 잠시 지친 발을 쉬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차가운 겨울바람을 어디 피할 곳없이 온전히 맞아가며 둘러본 부석사. 별 다른 이야기도 별 다른 몸짓도 없이 조용하게 돌아본 그곳 그래서 더 쓸쓸했던 겨울 어느 날의 부석사였다.


이별은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먼저 알 수 있다. 어렵게 어렵게 이어온 가늘기만한 실 한 가닥을 서로 힘을 다해 붙잡았지만 이미 마음속에서는 더 이상 그 실을 지탱할 힘이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별은 물리적인 거리가 생긴다고 바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몸이 떨어져 있어도 마음의 거리가 가깝다면 여전히 관계는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평생을 만나지 못 하고 살더라도 애잔한 추억으로 기억되는 사람이 있다면 상대방은 어떨지 몰라도 자신은 그를 떠나보내지 못한 것이 아닐까.

또한 서로의 마음이 그렇다면 어느 드라마나 영화의 소재로는 어울릴지 몰라도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한편에서는 장애가 되기도 한다. 

상대방의 마음속에서 나에 대한 추억과 생각들을 지우는 일은 쉽지가 않다. 특히나 물리적인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다면 더더욱..상대가 앞으로 또 다른 인연을 만들어가고 스스로의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 나에 대한 모든 것들을 지워준다는 것이 어쩌면 지극히 이기적이고 한편에서는 치사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현재의 나로서는 그것이 최선이 아닐까 라고 판단했다. 어쩌면 잔인하고 타인의 감정에 개입해야 하는 이 불편한 작업을 나는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가 자유로워질 수 있고 '우리'의 기억을 묻어 버리고 앞으로 나갈 수 있다면 나로서는 마지막 내 역할은 다 한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어리석다면 어리석은 생각이지만.. 이제사 그 과정이 마무리되었다.


우리네 삶은 뭔가 대단해보이지만 어느 누구의 삶도 자연의 순환법칙에서 예외일 수 없다. 언젠가 과학기술이 아주 발전해 순리를 거스르는 때가 오기는 하겠지만 적어도 이글을 쓰고 읽는 이들에게는 해당은 없겠지 싶다. 

인류의 역사는 우주 아니 지구의 역사에 비해서 보잘 것없이 짧고.. 인간의 삶이라 해도 고작 100년을 버티기조차 힘든데 우리네들은 그 짧은 시간동안 무엇을 그리고 욕망할까.. 특히 더 많이 가지고 싶은 욕망.. 

참 속물적이라 생각하면서도 그 누구도 이 욕망 앞에서 자유롭지는 않겠지 싶다.

그 대상이 물질적이건 정신적이건 인간은 무엇인가를 더 자신의 손 안에 넣고 싶어 한다. 손 안에 넣고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될지언정 일단 손으로 그것을 잡아 내것으로 하고자 하는 욕망이 그 어느 생물보다 강하다. 

반면 자연은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다. 딱 균형이 유지될 정도만 바란다. 자연의 아주 작은 일부일 뿐인 인간은 왜 그리도 바라는 것이 많을까..

당장 나 스스로도 그 욕망에서 자유롭지 않다. 역시 정신적인 것이건 물질적인 것이건 말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솔로몬의 독백을 '당신은 다 가져봤으니 하는 말 아니오'라고 비난하며 '나도 일단 그렇게 가져보기라도 했으면 좋겠군요'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가진다는 것. 소유라는 것은 대체 무엇인지...

생각이 많은 것도 병이다. 생각 역시 소유하려는 욕망에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조차 버리는.. 그런 연습을 해야 한다.


Nikon F5, AF-S Nikkor ED 17-35mm f/2.8D, LS-40, HDR Converted


D700의 펌웨어가 오랜만에 업데이트되었습니다. 아마 마지막 버전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자료는 니콘이미징코리아 자료실에서 받으실 수 있습니다. 이곳 블로그에는 바이너리 파일을 올려 두도록 하겠습니다. 

D700_0103.bin


이번 업데이트 내용은 

[펌웨어 A:Ver.1.02/B:Ver.1.02 에서 A:Ver.1.03/B:Ver.1.02 의 변경 사항]
   드물게 촬영 화상이 극단적인 노출 언더가되는 현상을 수정하였습니다.

라고 합니다. 정확한 설명이라고 보기는 어려운데 D700을 사용하면서 아직 극단적인 노출 언더 상황을 겪어보지 못 해서 펌웨어 업데이트 후에도 체감상 이전과 큰 차이는 없을 듯 합니다. 하지만 보통 펌웨어 업데이트의 경우 공개적인 사실 이외의 자잘한 부분들에 대한 개선도 이루어지니 D700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업데이트를 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펌웨어 업데이트 방법은 간단합니다. 다운로드한 파일을 풀어주면 'D700Update' 라는 폴더가 생성됩니다. 해당 폴더 안으로 들어가면 'D700_0103'라는 이름의 바이너리 파일을 볼 수 있습니다. 

이 파일을 CF메모리의 루트 폴더 그러니까 메모리를 열었을 때 가장 상위 폴더에 복사하면 됩니다. 그 다음 메모리를 카메라에 삽입하고 메뉴를 눌러 펌웨어라는 항목을 찾으면 펌웨어 업그레이드 메뉴가 활성화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OK를 눌러 주면 몇 분 정도 업데이트 과정이 진행되고 카메라를 껐다가 다시 켜주시면 업데이트가 완료됩니다.

주패치 외의 부가적인 보완 사항에 대해서는 사진동호회의 게시판 등에서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창덕궁 후원 혹은 비원(이 이름에 대한 여러 의견도 있지만)이 일반에 공개된 다음 참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는다. 정원이 정해져있고 사전에 예약을 하는 불편함은 있지만 그만한 수고(?)를 들여 가볼만한 곳이 아닌가 싶다. 작년 여름에 이곳에 들른 이후 그리 오래지 않아 다시 찾았는데 몇 가지 바뀐 것이 있었다. 무엇보다 입장만 확인을 하고 자유관람이 가능해졌다는 게 가장 큰 차이였다.

그래서인지 많은 이들이 해설사를 따라가기보다 각자 길을 가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그래도 내 생각으로는 해설사를 따라가며 곳곳에 담겨 있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훨씬 낫지 싶다. 작년에는 한 바퀴 관람시간이 2시간이었던 것 같은데 올해는 1시간 30분으로 줄어든 것도 달라진 모습이었다. 

후원은 해설사분도 이야기하듯 가을이나 초봄 혹은 겨울이 제격이다. 작년 여름은 그나마 비가 조금 내려 괜찮았지만 오늘은 무더운 날씨 탓인지 그 공간의 느낌을 제대로 느끼기도 전에 덥다는 말부터 절로 나왔다. 무엇이건 제대로 감상을 하기 위해서 주변 환경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제대로 경험한 하루였다.

부용정은 수리 중이어서 오늘은 보지 못했는데 대신 오리인지 이름모를 새 식구가 부용지 위에 집을 짓고 있었다. 집 모양새를 보니 사람들이 만들어준 집이고 35미리 단렌즈로는 아기들의 모습까지 담아내기는 쉽지 않아 확대를 해보았다. 부용지 주변에는 어느 국빈인가가 방문해 이 더운 날씨에 선글라스에 긴 정장으로 무장한 이들이 죽 배치되어 있어 그리 편안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후원의 장점은 무엇보다 고즈넉함이라는 단어가 어울린다는게 아닐까. 평일에도 워낙 사람들이 많이 오가긴 하지만 구석진 곳을 잘 찾아보면 정말 고요함을 느낄 수 있다. 각각의 장소마다 담긴 사연들을 하나 둘 읽어내려가다 보면 어느샌가 조선 시대 어느 날의 풍경이 내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한 느낌도 든다. 오래되었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과거를 그대로 현재로 끌어오는..

곳곳의 정자들에 방석을 가져다놓고 책도 몇 권 가져다두고 앉아서 책을 보라는 행사를 하고 있었는데 몇몇분들은 자리 펴고 누워서 주무시고들 계셔서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후원 자체가 독서와 공부라는 면이 강조되고 있는 장소인데 그런 취지를 살려보고자 하는 행사같지만..글쎄다..아무리 좋은 의도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들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곳저곳 다니면서 사진은 거의 찍지 않았다. 사진을 찍는 작업은 한편에서 보면 시간과 공간을 제거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어느 곳의 분위기를 마음껏 느껴보고 싶다면 카메라는 가방에 넣어두고 다니는 것이 훨씬 낫다. 게다가 어머니와 함께 찾은 일정인지라 어머니 사진을 찍는 것이 좀 더 큰 행사(?)였다.

나이가 들면서 어머니는 여러 곳을 다녀보고 싶어 하셨다. 오늘의 후원 관람 역시 그렇게 출발한 것인데 당신이 중학교 때 와보시고 이제껏 와보지 못하셨단다. 평생을 서울에만 살았는데 이곳을 다시 찾는데 50년이 넘게 걸린 셈이다. 큰 아들이 되어서 부모님 모시고 이곳저곳 여행이라도 마음껏 다녀보지 못한 것이 참 후회스럽지만 이제라도 조금씩 다녀볼 생각이다. 

어머니는 '네 뒷모습을 찍어 줄 사람이 누가 있냐'며 가끔 내 뒷모습을 담아 준다. 뒷모습을 담아 준다는 것을 가만히 생각해보니 참 깊은 의미가 있다. 함께 할 누군가가 있다면 그의 뒷모습을 담아보자. 생각보다 많은 것들은 한 장의 사진 안에서 얻을 수 있다.

나는 내 사진이 사실 거의 없는 편인데 어머니와 다니면서 참 많은 사진들을 남기고 있다. 내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시는 어머니를 보는 게 좋아서기도 하지만 뭐랄까.. 그렇게 많은 사진 폴더 안에 정작 그 사진을 찍은 내 모습이 없다는 게 조금 억울해서일까? 그래도 여전히 사진 찍히는 것은 어색한 일이고 표정은 늘 굳어있다. 내가 사진을 찍을 때는 '밝게 웃어요~'라고 외치면서도 말이다..


오래된 컴퓨터는 온갖 잡소리들로 윙윙거린다. 본체를 뜯어 이리저리 위치를 바꾸어도 보고 몇몇 부품은 갈아도 보지만 그 소음은 여전하다. '처음에 살 때는 안 이랬는데.. 왜 이럴까..' 차츰 그 소음이 귀찮고 거슬리기 시작한다. 손에 익어 편하기는 하지만 이제껏 잘 지내오다가 갑자기 삐걱대니 언짢아진다. 그래도 큰 마음 먹고 장만할 때는 평생을 이 녀석들과 함께 하자는 의욕도 높았는데 이제는 바라보기만 해도 어쩐지 정이 떨어진다. 

실상 문제가 있는 것은 아마도 어느 장치 한 두개일 텐데 그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하다보니 곁에 있는 키보드도 마음에 들지 않고 모니터도 화질이 안 좋은 것만 같다. 어느 날인가는 집에 들어와 컴퓨터를 켜려고 하는 순간 케이스 디자인이 너무 오래되어 답답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성능과는 별 상관도 없는 디자인이나 색상도 이젠 불만이 되어 버린다.

결국 스스로 할 수 있는 노력들을 다 했다고 생각하고 다른 제품으로 바꿔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슬슬 새로 나온 컴퓨터를 알아본다. 내가 가지고 있는 녀석에 비해 값도 저렴하면서 성능은 더 좋아 보인다. 지금 가지고 있는 녀석은 오래 같이 지냈을 뿐이지 장점은 도통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새것을 들이게 된다. 이왕 바꾸는 거 모니터며 키보드며 쓸만한 것들도 죄다 바꾼다. 새술은 새부대에..라지 않느냐며..

이전의 것에 대한 기억은 가끔 새것이 손에 익숙지 않을 때 잠깐잠깐 든다. '그래도 이전 것은 편하게 다룰 수 있었는데...' 하지만 이미 어디론가 처분해 고철이 되어 버린 녀석을 다시 찾아올 수는 없다. 그냥 새로 들인 녀석에 최대한 정을 붙이는 수밖에 없다. 새것이 완전히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전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고 여기저기 좋다는 소문도 내본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의 선택이 틀렸다는 것이니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영 내키지는 않은 탓이다.

그 소음만 참고 아니 그 소음조차 나와 함께 하면서 생긴 관계의 연속으로 생각하고 자연스레 받아들였으면 됐을텐데 시간이 지나면서 함께 해 온 장점은 묻혀버리고 단점만 보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새로 들인 컴퓨터도 낡게 된다. 그러면 앞서 겪었던 고민을 다시 하게된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방법을 스스로 찾을 수 없었기에 또 다시 교체를 해야 하는 상황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것이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하는 방법이니까..

우리는 살아가는동안 위와 같은 과정을 무수히 반복한다. 어떤 것이 정답이냐.. 그에 대한 해답은 물론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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