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의 많은 봉우리들 중에 유독 나와 인연이 있는 봉우리를 고르라면 '족두리봉'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예전 북한산둘레길을 걸을 때의 기억이 가장 강렬하겠지만 그 이후에도 몇번을 오를 수 있는 기회를 다음으로 미룬 일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오늘 그 인연의 시작을 확인해보고자 그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족두리봉에 오를 수 있는 등산로는 크게 2-3개 정도가 되는데 이번에 고른 등산로는 둘레길 중 하나인 구름정원길을 지나는 길이다. 이곳에서 출발하게 되면 약간 난이도가 높아지는 단점은 있지만 내게 있어서는 오늘만은 이길을 가야한다는 묘한 마음의 부담을 안고 출발했다. 주말이어서 상당히 많은 이들이 북한산을 찾았는데 사람이 없는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길의 시작은 구름정원길이다. 벌써 이곳을 걸었던 것이 1년도 넘은 일이라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곳인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구나..시간은 흘러도 자연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구나. 사람의 삶이란 얼마나 짧고 보잘 것 없는 것인지..


이 표지판은 작년과 약간 달라졌다. 전에는 머리조심이라고 적혀 있어서 어쩐지 재미도 있었는데 이번 표지판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오히려 저 그림을 바라보다가 위험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며 천천히 발길을 옮긴다. 내 산행 속도는 상당히 느린 편인데 아마도 사진을 찍느라 멈추는 일이 많아서가 아닐까 싶다. 


원만한 길을 조금 걷다보면 이 지점을 만나게 된다. 오른쪽에 보이는 탐방객 확인을 위한 문을 지나면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물론 둘레길을 걷는 것도 산행이지만 걷기와 오르기는 묘한 뉘앙스가 분명 존재하기는 한다. 아무튼 이제 1년이 지난 약속을 지키려 이곳에 왔다. 늘 닿을 것만 같으면서 좀처럼 닿지 않았던 인연에 내가 먼저 다가서기로 한다.


둘레길 걷기와 다르다는 것은 초입에서부터 적나라해진다. 족두리봉에 오르는 길을 이곳으로 정했을 경우에는 오르는 내내 이런 모양의 길을 만나게 된다. 북한산의 특징인 바위를 아주 지겹도록 볼 수 있는데 등산화의 선정에 조금은 주의가 필요하지 싶다. 맑은 날이라면 큰 문제는 없겠지만 습기가 많은 날에 이 루트를 탈 경우 비브람창은 다소 미끄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물론 사람 나름이기는 하다)


한여름이었다면 제법 숨이 벅찼을 길을 따갑지 않은 한낮의 햇살을 맞으며 천천히 올라본다. 내 산행이란 급하지도 않고 정상에 올라야 한다는 사명감도 없기에 아무런 부담이 없다. 물론 정상에 다다르면 잠깐은 기쁘겠지만 몸과 마음이 힘들다면 좋은 산행이라 부르기 어렵다. 일상에서 그렇게 목표달성에 치이며 살아가면서 모처럼 만난 자연에조차 그런 세상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어쩐지 어색하다.


이런 곳에 사람이 쌓은 돌벽이 있을까. 한참을 멈추고 바라본다. 그러고보면 자연이라 해도 어딘들 사람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있을까 싶다. 그렇게 사람들은 자기들의 편의를 위해 자연을 이리 재단하고 저리 재단하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 남는 것은 여전히 변함없는 자연과 어설픈 인간의 흔적이 아닐까. 아무튼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겨본다.


이쪽 등산로는 흙을 만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돌로 만들어진 길은 어쩐지 차가운 느낌이 강하다. 흙이 주는 따스함보다는 '왜 굳이 이리 올라오느냐'며 채근하는 느낌이다. 돌길은 흙길에 비해 체력소모가 확실히 많고 계절의 뜨거움이나 차가움이 그대로 몸에 전해지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그나마 습기가 없어 미끄러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이 뿌리들이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얼마나 많은 등산화가 이 뿌리를 밟고 지나갔을까. 가파른 경사로의 이어짐 속에 바닥 한 번 내려다 보기 어려운 길에 이렇게 뿌리는 묵묵히 그 존재를 남기고 있었다. 사람이 걷는 길을 막아서는 나무가 있다면 그 나무를 베어내고 길을 가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그 나무를 에둘러 가는 것이 맞을까...


주말이어서 제법 많은 이들이 둘레길에 있었지만 족두리봉으로 넘어가는 이쪽 등산로에는 그렇게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환갑이 훨씬 넘은 어르신들이 성큼성큼 걷는 모습을 보면 내 체력이 영 부실하다는 느낌은 족두리봉을 오르는 내내 지울 수가 없었다. 하루종일 앉아서 씨름해야 하는 직장생활 속에서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산은 꾸준히 와야지 싶다.


이렇게 사진을 찍으니 제법 험해보이는데 실제로도 이렇다. 가끔은 네발(?)로 돌에 붙어서 올라가기도 해야 한다. 등산화가 미끄러지면 참 낭패인 구간이 곳곳에 있으니 이쪽으로 족두리봉을 오르시려는 분들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 물론 신발 종류에 관계없이 잘 오르는 분들은 잘 오른다. 나처럼 기술보다는 장비에 의존해야 하는 초보등산객은 바위에 잘 붙는 신발은 좀 더 유리하다는 말이다.


족두리봉은 불광역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올라가면 서울의 한 구석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저 아래 수 많은 아파트들과 건물들 안에서 수 많은 인생들의 희로애락이 펼쳐지고 있겠지만 이렇게 산에 올라 바라보면 그깟 인생이 참 뭐가 대단한가 싶다. 결국은 다시 저곳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잠시 떠나있는 지금만큼은 도시 이야기는 완전히 잊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저 방향으로 오르는 것이 아니어서 조금은 다행이지만 이쪽도 만만치는 않다. 그래도 조금은 벅찬 길로 산을 오르는 느낌은 꽤나 즐겁다. 위험요소에 대한 준비만 잘 한다면 천천히 오르면 아주 어렵지는 않으니 너무 겁내지는 않아도 된다. 다만 계절이 서서히 겨울에 가까워지는 요즘이기 때문에 체온 유지를 위한 겉옷과 비상식량 등은 이전보다는 좀 더 신경을 쓰는 것이 좋겠다.


한참 앉아서 쉬던 곳인데 고소공포증이라도 있다면 제법 무서울만한 장소다. 금방이라도 미끄러질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면 꽤 긴장했을 것같다. 겨울에 눈이라도 쌓이면 바닥 보기도 힘들텐데..라는 생각에 한동안 앉아 이곳저곳의 지형들을 살폈다. 멀리 바라보니 이제까지 올라온 길이 보인다. 능선길을 따라 이렇게 올라왔구나라는 생각 그리고 사람들이 참 길을 잘도 만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리면 어김없이 바위와 바위로 이어진 길이 등장한다. 이쪽 코스에 대한 사전 정보라고는 가파른 곳이라는 게 전부였던지라 오늘은 참 바위를 질리게도 오르는구나 생각하며 걸음을 옮겼다. 가을이 서서히 저물어가는 북한산은 어렴풋하게 남아있는 여름의 흔적과 조금씩 다가오는 겨울의 징조가 어울릴듯 어울리지 않을듯 묘하게 얽히곤 했다.


오르막이 멈추고 난 후 나타난 능선길은 이번 산행의 절반이 끝나가는구나라는 조금은 안도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늦가을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한낮의 햇살은 여전히 따가워 그늘만 보이면 조금이라도 그 그늘에 의지해 쉬곤 했다. 산행은 마음 맞는 이와 같이 가는 것이 제일 좋고 그렇지 않다면 혼자서 가는 편이 낫다. 개인별로 체력이 다르고 산행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이다.


정상인 족두리봉에 다다를 수 있었다. 해발 370미터면 사실 오르기 크게 어렵지 않은 동네 뒷산(?) 정도일 수도 있는 높이지만 초보등산객의 입장에서는 참 높고 멀기만 한 등산이 아니었나 싶다. 나름 천천히 오른다고 시작한 등산이지만 실제 걸린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내 기준에서 천천히지 다른 사람이 보기엔 빠를 수도 있지 않나 싶기도 했다.


족두리봉 정상에는 그다지 경치와 어울리지 않는 송신기 비슷한 것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일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달갑지 않은 이물질일뿐이다. 아무튼 이렇게 인연이라면 인연인 족두리봉과의 만남은 일단 끝이 났다. 그동안 내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내게 무엇을 전하고 싶었는지 바로는 알 수 없었지만 언젠가 그 의미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저 아래 아주 조그맣게 보이는 집이 무엇일까 궁금했지만 굳이 알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저렇게 어우러진 모습 자체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이번 사진들은 이전 사진들과는 아마 색감이 다르게 느껴지지 싶은데 라이트룸에서 VSCO 필터를 적용한 덕분이다. 어떤 필터가 적용된 것인지 짐작이 가는 분이 있을까? 100VS라는 이름이 낯익다면 아마도 스크롤을 다시 위로 올라 한참 사진을 보지 않을까? 나 역시 필터를 적용시키고 나서 한참을 화면을 바라봤는데 아주 오래 전.. 이제는 추억의 이름이 된 Kodak 100VS를 이렇게 어설프게나마 다시 만날 수 있어서 무척이나 반가웠다.


Panasonic LX-7, Lightroom + VSCO Kodak 100V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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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둘레길을 걸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첫발을 내딛은 것이 작년 5월 8일이었다. 그리고 오늘 1구간을 처음 걷기 위해 설렘과 기대와 불안을 갖고 출발했었던 우이동 시작점으로 다시 돌아왔다. 아직 채 1년은 되지 않았지만 벌써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났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1년 사이 참 많은 일들.. 사람이 삶을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가장 감정에 민감한 일들을 많이 겪었다. 그래서일까 오늘의 걸음은 예전 둘레길을 걸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지하철 1호선 도봉역 1번 출구로 나간 다음 길을 건너 한참을 걸어야 한다. 둘레길을 걸으면서 자연스레 서울의 여러 지역들을 접하게 되는데 이 지역의 느낌은 약간은 허전하달까? 아마도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곳들이 많아서겠지만 한번 더 생각해보면 오히려 이런 공간적인 여유가 남아있는 것이 다행일런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사진들은 라이트룸에서 후지 아스티아 필름의 설정을 전부 적용해봤다. 아스티아는 필름 카메라를 쓰던 시절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던 약간은 비주류 필름인데 청색기운이 약간 강한 편이고(물론 벨비아만은 못하지만 후지에서 나오는 필름은 박스 포장의 색처럼 녹색과 청색이 강조되는 편이다) 상당히 입자가 곱고 동양인의 피부색을 꽤나 잘 구현하는 필름이어서 주로 포트레이트용으로 사용하던 필름인데 풍경에 적용할 경우는 독특한 색감이 나는 게 특징이다. 디지털 변환이 온전히 아스티아의 느낌을 살린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왠지 오늘은 그냥 그 필름의 느낌이 그리웠다. 아마 색이 왜 이래?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리라...


도봉초등학교의 모습인데 학교의 색을 알록달록하게 칠해놓은 것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가까이 가서 찍어보고도 싶었지만 요즘 초등학교 근처에서 배회하다가는 괜한 오해를 살 수도 있어 90mm로 죽 당겨봤지만 이 정도가 최선이다. 맑은 날이어서 멀리 산의 모습도 제법 또렷이 볼 수 있었는데 아이들에게는 좋은 교육환경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길을 따라 좀 더 올라가면 주말농장을 꾸려둔 곳들이 많이 있다. 온전히 서울 촌놈인 나는 이런 것만 봐도 참 신기한데 한때 주말농장에 꽤 인기를 끌었던 시절도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요즘은 인기가 시들한 모양이다. 저렇게 번호를 붙여 놓으니 농장이라는 느낌보다 묫자리같은 느낌이 들어 왠지 꺼림칙하긴 했지만 내 개인적인 선입견이니 염두에 둘 필요는 없으리라.


이제 19구간의 시작점을 만날 수 있다. 방학동(放鶴洞)이라는 명칭은 한자 을 보면 학이 평화롭게 앉아 놀고, 알을 품고 있는 것 같다는 데서 유래됐다는 설,  방아터가 있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방아골로 부르던 것을 한자명으로 쓴 데서 유래됐다는 설 등이 있지만 한자를 볼때 앞의 의견이 맞는 것이 아닐까 추측을 해본다.


4월이라는 계절은 애매하다. 차라리 3월이면 심리적으로도 봄이라고 생각을 하겠지만 4월은 따뜻한 것도 아니고 추운 것도 아니다. 굳이 어느 시인의 '잔인한 달'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내게는 충분히 잔인했던 달이어서 그런지 그 애매함에 잔인함까지 덧붙여져 썩 마음에 들지 않는 계절이 되어 버렸다. 산길에 들어서서도 그 느낌은 이어졌다. 그러고보니 주변에도 봄을 특히 4월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도저도 아닌 애매함 때문이 아닐까.


산길의 곳곳에는 이미 활짝 꽃망울을 터뜨린 녀석들도 있는가하면 이제 조금씩 꽃잎을 열어볼까 하는 녀석들도 있고 이미 제철을 다 보내고 바닥에 화려한 흔적들을 남기고 저물어 버린 녀석들도 있다. 삶의 시작과 진행과 마감까지 동시에 이루어지는 공간이 봄의 산길이다. 꽃은 그것이 활짝 펴서 절정을 이룰 때는 아름답지만 삶을 마치고 길바닥에 무참히 꽃잎들의 조각을 흩뿌릴 때가 되면 추한 모습이 된다. 마치 눈과 같다고나 할까.. 하지만 화려함뿐 아니라 그 화려함 뒤의 초라함까지 받아들일 때 온전히 한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길만 봐서는 겨울에 접어들 무렵이 아닐까 생각될 수도 있다. 이렇게 4월이라는 계절이 주는 느낌은 애매하다. 아마 당분간은 봄이라는 계절과 4월이라는 달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래도 이 계절과 달을 지나야 본격적인 화창함과 만날 수 있으니 그저 인고의 느낌으로 기다려야 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근처 초등학교의 체육 시간인지 아이들이 제법 많이 나를 지나쳐갔다. 특이했던 것은 시간제한이라도 있는 모양인데 거의 모든 아이들이 달려가고 있다는 점이었는데 그저 앞만 보고 달리는 동안 마주칠 수 있는 수 많은 '느낌'들을 아이들은 인식하기도 전에 지나쳐버린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도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 들여다보기에 시간이 모자랄 지경인데...


꽃이 왜 피는지는 알지만 꽃이 왜 지는지를 아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뽐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길가에 아무렇게나 뒹구는 모습이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본 이들은 얼마나 될까? 만약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산에 간다면 그 이유를 설명해주고 싶다. 그리고 이렇게 내버려진듯 흩어져버린 꽃잎들도 모두 다 같은 꽃이라고...


언젠가 연리지(連理枝)라는 단어를 좋아한다고 적은 적이 있는데 사실 연리지를 직접 마주친 적은 드물다. 이 사진에 보이는 나무도 그런 이름으로 부르기에는 부족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내가 이 사진을 찍은 것은 이 나무들 곁을 지나고 있을 때 불어오는 바람에 두 나무가 부대끼며 끼익끼익하는 소리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생이 다른 두 삶이 만나 내는 소리. 같은 나무였다면 결코 만들어낼 수 없었던 그 소리를 이 두 나무는 그렇게 내고 있었다. 인간의 귀로 듣기에는 불편하 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이 두 나무에게는 어쩌면 또 다른 삶을 이루어가는 소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 생각 저 생각하는 중에 19구간 방학동길이 끝났다. 그리고 일반적인 경우라면(21구간은 예약을 해야 하니) 걸을 수 있는 북한산둘레길의 마지막 구간인 20구간 왕실묘역길이 내 앞으로 펼쳐졌다. 19구간이나 20구간이나 모두 걷기에 큰 무리는 없다. 다만 날이 슬슬 덥다는 느낌을 줄 정도가 되고 있으니 옷이라든가 물이라든가 하는 준비물들을 이전과는 조금씩 다르게 챙겨야 한다.


왕실묘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처음 만나는 곳은 정의공주묘다. 사실 처음 정의공주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발해의 공주였던 정혜, 정효공주가 떠올라 이분도 발해의 공주인가 생각을 했는데 설명이 적힌 표지판을 읽어보니 세종의 따님이셨다.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 이곳은 공개를 하지 않아 이것저것 자세히 살펴볼 여지는 없었다. 명당이라는 것이 과연 있는 것인가 싶지만 따스한 봄날의 햇살을 듬뿍 받기에는 제법 어울리는 장소였다.

이곳을 지나 바로 만나게 되는 장소가 연산군묘와 800념이 넘은 은행나무인데 연산군묘는 사진의 구도가 영 나오지 않았고 천년된 은행나무는 앞에 왠 광고 플래카드를 크게 걸어놓아 탐탁지 않아 이곳에 올리지는 않을 생각이다. 아무튼 왕실묘역이라는 이름은 정의공주묘와 연산군묘의 위치를 빌어 지은 이름 같은데 그 이름이 주는 무게에 비해 여러모로 아쉬운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왕실묘역길은 이렇게 일반 동네의 뒷길 같은 길을 조금 걷다가 산길을 조금 걷다가 금방 마무리 된다. 워낙 거리가 짧은 구간이고 별 다른 특징도 없는데 차라리 이전의 구간에 이어 붙였으면 아쉬움이 덜 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였다. 물론 애초에 북한산둘레길의 구간이라는 것 자체가 인위적인 것이니 특정 구간의 거리와 풍경에 연연해 할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아마도 (어설픈) 아스티아의 색감 덕분에 봄의 산길인데도 마치 겨울의 그것처럼 조금은 쓸쓸한 느낌이 더 드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계절은 분명 봄이고 며칠 후면 절기상 여름인 입하에 접어든다. 어쩌면 나는 아직도 겨울의 느낌을 겨울의 풍경을 그리워하고 있는가보다. 적어도 지난 겨울에는 아니 지난 겨울까지는 그래도 마음을 크게 다치지 않고 지낼 수 있었으니까...


다시 도로로 나서면 이제 막바지다. 멀리 북한산 아니 삼각산의 세 봉우리가 보인다. 북한산을 가로로 관통하는 우이령길을 빼고 보면 온전하게 북한산 자락을 모두 걸은 셈이다. 누군가에게는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닐 수도 있는 이 걸음을 걷는데 1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래도 내가 이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는 말 덕분이 아니었을까.


처음 북한산둘레길을 걷기 위해 그러니까 1구간 소나무길을 걷기 위해 저 멀리 보이는 버스종점에 내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산에 오르는 것도 아니고 고작 둘레길을 걷는 것이었을 뿐인데 그날은 왜 그리 설레고 떨렸을까? 그리고 이제 바라보는 그때의 그길은 지난 해의 그길보다는 조금 더 여유있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약간이라도 익숙함이란 이런 편안함을 주는 가보다.


이곳 블로그에는 없지만 아직도 내 휴대폰에 남아있는 이 장소를 다시 찍어본다. 전체적으로 사진들이 물빠진 듯한 필름의 느낌을 주는 것이 그래도 마음에 든다. 필름카메라에 대한 추억을 이렇게나마 되돌려볼 수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제 한 번의 걸음을 더 걸으면 북한산둘레길의 모든 구간을 마무리하게 된다. 아마도 1년을 모두 채우기 전이 되겠지만 내게는 마치 평생과도 같았던 1년이었다.


길을 시작했던 그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길을 그대로인데 그길을 걷는 사람만 달라졌다.

사람의 외모도 사람의 마음도 1년 전의 그것과는 참 많이도 달라졌다.


Panasonic LX-7, Adobe Lightroom Fuji Astia Preset


아침 6시에 집을 나섰다. 아직 해 뜨기 전이라 사방이 어둑어둑하다. 의정부까지는 제법 먼 거리다. 이동 시간만 2시간은 잡아야 한다.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나오기는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지하철은 한산하다. 한 1-2시간후면 사람들로 발 딛을 틈이 없을 정도로 붐비겠지. 같은 장소도 시간에 따라 이렇게 다르다. 


2013년의 시작은 둘레길이다. 산행을 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작년부터 시작한 내 나름대로의 일정을 일단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나선 길이지만 벌써 15구간이다. 오늘 2구간을 걸었으니 이제 5구간 남아있다. 멀게만 느껴지던 완주도 이제 종반에 접어들고 나니 무언가 해내고 있다라는 기쁨보다 아쉬움이 더 많다. 둘레길은 내겐 그런 기억을 남기고 있다.


안골길은 말 그대로 안골 계곡을 거쳐 지나가는 길이다. 사패산 자락을 먼 발치에서 보면서 아주 느긋하게 걸을 수 있는 산책로 정도의 구간이다. 하지만 지난 눈이 여전히 덮혀 있어 아이젠이 없다면 여간해서 지나기 힘든 구간이 제법 많다. 집 주변을 걷다가도 넘어지기 쉬운데 하물며 산자락이야 오죽할까. 들고 다니기는 번거롭지만 신발에 붙어 있는 그 쇳조각에 그날 산행의 안전을 모두 맡겨야 한다.


오늘은 날씨가 그리 춥지 않았고 바람도 거의 불지 않아 겉옷을 벗고 걸어야할 정도였다. 패딩을 배낭에 넣고 자켓 하나를 또 넣으니 배낭이 무슨 원정대처럼 빵빵해졌다. 겨울 산행에는 배낭이 일단 큰 것이 좋다. 리터수로 이야기들을 많이 하지만 그건 사람마다 많이 다른데 혼자 다니는 내 경우라면 35리터 정도면 당일 산행에 빠지는 것 없이 다 챙겨 넣을 수 있다.


조금 올라가니 약수터가 하나 있다. 요즘은 약수터 보기도 쉽지 않고 또 찾더라도 여간 해서 그 물을 마시기가 쉽지 않다. 예전에는 약수터에서 나온 물이라면 벌컥벌컥 아무 걱정없이 마셨었는데 이제 와서는 이것저것 따져야 하는 시대가 됐다. 그러고보면 내 지난 기억에서 이제는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것들이 하나둘 늘어감을 느낀다. 이것이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 싶다. 가까이 가서 보니 수질부적합 판정을 받아 마실 수 없다고 한다. 수질 부적합이라..그 원인은 다름 아닌 사람일텐데 우리 스스로의 추억은 물론 후세에 전해 줄 미래까지 사람들은 이렇게 하나 둘 없애가고 있다.


아이젠을 장착하면 눈 밟는 소리가 한결 커진다. 제법 걷는 느낌이 든다. 양손에 든 스틱을 앞발처럼 움직이며 걷는다. 스틱을 사용하면 네발이 된다던데 요즘 그말이 이해가 간다. 예전에는 오히려 번거롭고 불편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외면했었는데 막상 사용해보고나니 이젠 없으면 허전하다. 습관이란 이렇게 강한 법이다. 습관을 잘 이용하면 자기 스스로를 조련(?)하는 일도 그리 어렵지는 않으리라.


저 멀리 보이는 산이 도봉산인지 북한산인지 알 길이 없다. 거리로 보면 아마도 북한산이 아닐까 싶은데... 산 아래로 짙은 안개가 좍 깔린 것이 제법 멋드러져 한참 바라봤는데 사진으로 담아보니 안개가 어디있는지도 잘 보이질 않는다. 언젠가는 운해가 짙게 깔린 산 정상에 앉아 사발면이라도 먹어볼 생각이다. 둘레길에 오는 날은 흐린 날이 더 많았다. 오늘도 날이 흐린 편인데 내심 파란 하늘을 찍어오려던 계획은 좌절됐지만 흐린 날은 또 흐린 날대로의 운치가 있다.


이 구간을 걷다 보면 이런 군사시설(이라고 하기도 뭐한)들을 제법 보게 된다. 관리는 사실 거의 포기한 듯 하고 오래된 폼이나 생김새를 보면 지난 한국전쟁의 흔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전쟁은 가장 잔인하면서도 가장 인간적인 현상이라 생각한다. 요즘도 전쟁은 1초를 다투며 일어난다. 총칼을 들었건 아니건 한 존재와 외부 세계, 한 존재와 내부 세계와의 전쟁은 한 순간도 그칠 날이 없다. 


막아선 철조망에 이름 모를 꽃이 피어 있다. 참 묘한 기분이 들었는데 줄기가 철조망을 타고 올라가며 꽃을 피우고 있다는 게 뭐랄까 굉장한 모순같아 한동안 그 앞을 서성였다. 너무나 반대되는 이미지를 가진 것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모습이다. 어울린다는 것은 무엇일까? 비슷한 존재가 만나야 잘 어울리는 것만은 아니다. 전혀 다른 존재가 만나도 충분히 조화를 이룰 수 있다. 그럴 수 없다는 선입견을 없앤다면...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참 단단하게 엮여 있다. 철조망은 줄기를 받아 들였고 줄기는 그 받아들임을 그대로 이용해 생명을 이어간다. 관계란 이렇게 되지 않으면 좀처럼 지속되기 어렵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관계의 유지에는 희생이 필요한데 서로 상대에게만 그 희생을 기대하거나 요구하다보니 문제가 일어난다. 스스로 희생을 할 생각은 애초에 접어둔채 "왜 너는 나에게 맞춰주지 않냐"고 울분을 토한다. "네게 맞추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고 묻지 않는다. 자신에게 누가 어울릴까는 묻지만 내가 누구에게 어울릴까는 묻지 않는다.


조금 더 걷다보니 특이한 지점에 이른다. 분명 산길인데 제설작업이 되어 있다. 산의 눈을 치울 정도의 능력을 가진 것은 "의무복무를 하는 군인이나 경찰"이 유일할텐데 이 근처에서 군 부대를 본 적은 없는데 어쩐 일인가 싶다. 설마 306보충대에서 인원을 가져다가 이곳의 눈을 치운 것은 아닐텐데 뭔가 희한한 산길이다.


이 정도면 사실 군인이 한 거라고 보는 게 맞지 않나 싶다. 상당한 거리를 질서정연하게 눈을 싹 치워놓았다. 둘레길의 경우 제설작업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니 국립공원에서 한 것은 분명히 아니고 대체 누가 이런 만행(?)을 저질렀을까 궁금해진다. 걷는 이의 안전을 위해 충분히 눈을 치우는 것을 정당화할 수는 있겠지만 여긴 애초에 산길이고 이곳을 오는 이라면 눈 덮힌 길을 당연히 기대하고 올텐데 이것은 좀 아니지 싶다.


추측이지만 이 제설작업을 주도한 곳은 의정부시가 아닐까 싶다. 15구간 안골길은 국립공원 소속이기도 하지만 의정부시에도 속해 있다. 그리고 이 구간은 의정부시에서 소풍길이라는 이름으로 대대적인 정비를 해 놓은 곳이다. 걷다 보면 곳곳에서 국립공원과 경쟁이라도 하는 듯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처음에는 그냥 별 생각이 없지만 걸으면 걸을수록 그리 좋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물론 내 오해일 수도 있겠지만


소풍길이라는 이름이 지어지게 된 유래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에서 인용한 거라 한다. 이 시는 읽을 수록 참 마음이 짠해지는데 나이가 들어갈 수록 점점 더 그 느낌이 진해진다. 세상살이...인생이라는 것이 얼마나 한 순간인지 이제는 조금은 알 것도 같다. 그래도 소풍처럼 끝나는 날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랄 뿐...


예전에 적어 두었던 귀천이다. 둘레길에서 이 시를 만나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시인들의 언어란 확실히 우리네 소시민의 언어와는 사뭇 다르다. 짧은 문장에 그토록 많은 이야기들을 그리고 의미들을 담아낸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여기저기 이런 흔적들이 널려 있는데 둘레길을 걷는 입장에서만 보면 썩 유쾌해보이지는 않지만 소풍길을 걷는 입장에서 보면 둘레길 표지가 또 눈에 거슬릴 수도 있겠다 싶다. 조금전까지 '뭐지? 경쟁이라도 하려는 건가?'라고 생각했었던 내가 참 부끄러워진다. 길이라는 것은 애초에 누구의 것도 아니건만 이런 이름이면 어떻고 저런 이름이면 또 어떠랴. 그저 사람들이 그 위를 걸어갈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멀리 사패산이 보인다. 지난 번 걸음에서는 올라가보고 싶은 충동을 꾹꾹 눌러 담았는데 오늘은 왠일인지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산이 부르는 날이 있다는 것은 맞는 말같다. 오늘은 사패산이 나를 부르는 날은 아니었던 게다. 오늘은 북한산이 손을 길게 내민 그 자락을 돌아보는 것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전부를 하는 셈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욕심은 화를 부른다. 특히 자연 앞에서는 말이다.


15구간의 종착점은 16구간 보루길의 시작이다. 보루길은 북한산둘레길의 구간 난이도 '상'인 마지막 구간이다. 이곳을 기점으로 약간 더 올라가면 본격적으로 보루길과 마주하게 된다. 이곳 역시 길이 제설작업이 말끔하게 잘 되어 있다. 아이젠을 벗었다가 신었다가 하는 작업을 오늘은 제법 여러 군데에서 해야했다. 물론 흙길을 아이젠을 신고 못 갈 것은 아니지만 걸어본 사람이라면 선뜻 그런 모험을 하지는 않을게다.


회룡탐방지원센터다. 다소곳한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이곳을 기점으로 북한산둘레길을 이어갈 수도 있고 도봉산 등산을 시작할 수도 있고 사패산으로 오를 수도 있다. 도봉산 쪽으로 이동한다면 그대로 북한산으로 이어갈 수도 있는 요충지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오늘도 제법 많은 이들이 이곳을 오고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저 탐방객수 조사하는 개찰구를 반대로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입구로 들어가자마자 바로 나오는 식으로 빙글빙글 돌면 숫자가 올라갈까? 별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길게 난 도로를 걷는다. 멀리 사패산이 보이고 아버지와 딸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걸어오는 게 먼발치로 보인다. 여자아이가 어찌나 즐거워하는지 보는 내가 다 웃음이 났다. 가족이란 참 좋은 것이구나. 내게는 저런 아빠가 될 기회는 없겠지만...


난이도 '상'구간 답게 입구에서부터 겁을 준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둘레길의 '상'코스는 산행에 비하면 크게 어려운 편은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 구간은 계단과 오르막이 주를 이루기때문에 눈이 녹기 전까지 아이젠은 필수로 가져 가야 한다. 오른쪽으로 사패능선으로 향하는 길이 보인다. 저 능선에 일단 오르면 북한산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다.


눈이 하얀 물감을 튕겨 놓은 것처럼 군데군데 번져 있는 모습이 제법 멋드러졌다. 조선 어느 화가의 그림첩에 나올만한 풍경이 아닐까 싶다. 물론 사진보다 더 멋지다. 오늘은 어쩐 일인지(아니면 원래 그런지) 사진이 잘 안 받는 날이다. 


길게 이어진 계단들. 둘레길을 걸으면서 최근 몇년간 가장 많은 계단을 오르내렸다. 아직은 무릎이 큰 이상없이 버텨주어서 다행인데 발바닥 통증은 어느 정도 거리를 걸으면 금세 재발하기 때문에 여기쯤 와서는 꽤 속도가 느려졌다. 대략 5km이상을 걸으면 발바닥에 통증이 시작되는 것같은데 최대한 통증을 줄여주는 걸음법으로 천천히 걸어본다. 역시나 오늘도 화면 비율 버튼이 돌아가서 여기서부터 사진이 또 4:3이다.


멀리 보이는 의정부 시내의 모습이다. 가장 오른쪽에 보이는 산은 수락산이라 한다. 그러고보면 서울 주변에 참 산이 많기도 많다. 그만큼 가볼 수 있는 곳이 많다는 말이니 행복한 일이다. 이 사진은 파노라마로 만든 사진이니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다.


보루길이라는 이름에는 이런 유래가 있다. 좀처럼 현장에서 그 흔적을 찾기는 어려워서 아쉬웠다. 설명하는 글을 읽다보면 참 어렵게도 썼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말이나 글은 쉽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쓰는 것이 가장 좋은데 어쩐 일인지 우리는 어려운 단어나 복잡한 문장을 쓰는 것을 더 알아준다.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들어도 감탄의 박수를 보내기도 한다. 지적 허영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내 글도 가만히 읽어보면 그리 쉬운 편은 아니어서 한 번 더 반성을 해 본다.


안골길에 비해 다닌 사람의 수가 적어서 그런지 눈이 아직 온전한 곳들이 제법 많은 구간이다. 저렇게 쌓인 눈을 보면 안으로 들어가 꾹꾹 밟고 싶은 충동이 드는데 나이가 드니 나 자신에게 눈치가 보인다. 오가는 사람도 없으니 들어가서 눈장난이라도 쳐도 좋으련만 괜한 눈치만 늘었나보다. 대신 쪼그리고 앉아 한참 눈을 들여다본다. 참 신기한 존재다. 눈이라는 것은...


어떻게 바람이 불고 빗물이 흘러내리면 바위가 저런 모양이 될까? 산에 있는 바위들은 생긴 것도 특이한 것들이 꽤나 많고 이름도 희한한 것들이 많다. 이 바위는 이름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해골바위 정도면 어울리려나? 그러고보면 산에 있는 온갖 이름들은 참 원초적인 것들이 많다. 생긴대로 보이는대로 이름을 턱 붙여놓는데 그 이름을 생각하고 바라보면 정말 그렇게 느껴지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속세에서는 쓰지 않는 표현들을 산에 오면 만날 수 있는 것도 산행의 잔재미 중의 하나다.


계단을 걷고 오르막을 올라 다리를 건너고 또 오르막을 오르고... 이번 구간은 그런 느낌이 내내 이어지는데 그리 긴 편은 아니기 때문에 지루하지는 않다. 게다가 눈까지 쌓여 있어 발걸음이 조심스럽기 때문에 잔뜩 긴장을 하고 걸어야 하니 잠시 쉬는 틈에 보면 온몸이 뻐근하다. 운동부족이 맞긴 맞는 모양이다. 좀 더 자주 산행을 해야 하나 싶지만 과욕은 늘 화를 부르는 법.


계곡을 타고 흐르는 물은 이 추위에도 얼지 않았다. 손이라도 담가볼까 어디로 내려가야 하나 생각할 무렵에 앞쪽에서 여러 명이 몰려오는 바람에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어 아쉬웠던 계곡물. 삼각대를 가져올 생각을 못했기에 흐르는 물의 느낌을 살리지 못한 게 아쉽기도 했다. 사진이란 보통 한 순간을 멈추어버리기 때문에 기억들 역시 하나의 조각으로 존재한다. 저속 셔터는 그런 조각을 조금 늘여주는 역할을 한다. 


이제 보루길도 막바지다. 구간 난이도는 높지만 상대적으로 거리가 짧아 큰 어려움없이 걸을 수 있다. 여기쯤 오니 시간이 11시가 조금 넘었다. 일어난 지 5시간만에 여기까지 이른 셈이다. 집에서 의정부까지 오는 시간이 2시간이 넘게 걸렸으니 2구간을 모두 걷는 데 대략 3시간 조금 넘게 걸린 셈이다. 3시간 정도의 걷기는 비록 산길이기는 해도 크게 무리없는 걸음이다. 발바닥 통증은 이젠 치료보다는 덜 아프게 라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기에 걷기나 산행을 멈추는 일은 없지 않을까 싶다.


포대능선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이곳에 적멸보궁이 있다니 조금 놀랐다. 그리고 이제 둘레길이 다시 서울로 접어든다. 서울의 동쪽 가장자리에서 출발해 한바퀴 빙돌아 경기도를 거쳐 다시 서울로 들어가게 되는 것. 새삼 멀리 돌아돌아 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둘레길 전체가 71.8km니 이제 50km 조금 넘는 거리를 걸어왔다.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은 거리다. 걸어온 거리보다 걸어온 마음이 더 크다. 그리고 그 마음을 고이 접어 담아 둔다.


17구간 다락원길을 알리는 팻말을 보며 오늘 걸음을 마무리짓는다. 오늘은 다른 날에 비해 기분이 조금은 가라 앉은 그런 날이었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은 탓이다. 나 혼자만 열심히 하고 힘을 낸다고 해서 바뀌지 않는 현실에 자꾸 부딪히다보니 다소 지쳤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대로 주저 앉을 수 없는 것도 현실인지라 그것이 요즘 나를 더 답답하게 만들고 있다.

새벽같이 집을 나서 둘레길을 걸은 것은 그런 현재의 모습에 대한 반성 그리고 짧은 시간과 거리지만 무언가 이루어낼 수 있고 이루어냈다는 성취감을 나 자신에게 일러 주고 싶어서였다. 하루하루 크게 변하지 않는 일상을 보내다보면 쉽게 마음이 지쳐버린다. 어디까지 가야하지? 얼마나 더 가야하지? 알 수 없는 막연함에 기운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길게 보면 지금의 이 순간들은 둘레길의 한 구간만큼이나 짧다. 한 구간을 내 발로 힘을 내 걸을 수 있다면 지금 이 순간도 내 힘으로 이겨낼 수 있다.

내가 산행을 시작한 이유. 아마도 가장 큰 것은 이것이지 싶다. 그리고 그에 덧붙여 자연을 바라보며 느끼는 겸손. 이 두 가지가 나를 계속 산으로 이끈다. 앞으로는 일주일에 한 번은 어디든 걸어야겠다고 생각을 해 본다. 둘레길은 아마도 2월 정도면 전 구간을 마치게 될 것 같다. 전체 걸음을 마치더라도 몇몇 구간은 다시 걸어볼 생각이다. 그 구간을 걸었던 계절과는 다른 계절에 다시 한 번 만나보고 싶은 그런 구간들이 몇곳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한 번 끝을 냈다고 해서 다시 돌아보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Panasonic LX5



지난 글이 길어져서 새로 글 창을 하나 열어 14구간 산너미길을 이어 적어 본다. 산너미길은 북한산둘레길의 난이도 '상'구간 중의 하나로 둘레길에서 난이도가 '상'인 구간은 모두 3개(5구간 명상길, 14구간 산너미길, 16구간 보루길)인데 그중의 하나인 길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구간은 산을 넘어 가는 길이다. 그리고 그 산은 다름 아닌 사패산이다. 그리고 전체 난이도 '상'인 구간 중에 이곳 14구간이 가장 힘든 곳으로 알려져 있다.

국립공원의 안내상으로 이 구간은 2.3Km, 소요시간은 1시간 10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실제로 걸은 거리와 측정상의 거리가 다를 경우는 오르막과 내리막 특히 계단이 많은 곳으로 생각하면 된다. 이 구간은 전체적으로 고도가 제법 올라가고 계단이 높고 길게 이어져 있는 편이다. 그리고 겨울인데다가 눈까지 쌓여있는 지역들이 있음을 감안하면 실제 이동 속도는 더 오래 걸릴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다.


산너미길을 알리는 입구다. 입구에 다다르기 전에 화장실이 있으니 미리 이용하도록 하자. 그리고 오늘 이후로 이곳을 찾는 분들이라면 가능하다면 아이젠을 준비하기를 권한다. 눈이 내린 날이라면 아이젠은 필수인데 이 구간은 꽤 오래 오르막이 있고 능선 구간도 있는데다가 내리막 계단이 제법 길어서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난 고무신 신고도 대청봉에 오른다'고 하실 분도 있겠지만 막을 수 있는 위험이 있다면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약간 뒤에서 찍은 사진인데 이정표에 사패산이 보인다. 역시 등산의 유혹에 빠지게 되는 지점이다. 오늘은 겨울산행 준비도 다 했겠다. 무엇보다 먹을 것도 있다. 1.9km... 가볼만하다는 생각이 여전히 괴롭혔지만 둘레길 완주 후로 미뤄두기로 한다. 망설이는 나를 흘깃 쳐다보고 아저씨 한 분이 스틱을 한 개만 들고 유유히 걸어 올라간다. 배낭도 없이 오리털 파카를 입고... 괜찮았을까 모르겠다. 아무튼 이번 구간만 해도 사패산의 6부 능선까지는 오를 수 있으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기로 한다.


들어서자마자 계단이다. 이전 구간의 평온함과 약간의 지루함은 이 구간에서 모두 날려버릴 수 있다. 특히 겨울이라면 제법 긴장감마저 느낄 수 있는 구간이다. 역시 이 구간도 제법 한산했는데 정상에서 한 부부를 만난 것을 빼고는 사람의 흔적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좌우로 겨울색 옷을 입은 나무들이 벗이 되어 천천히 길을 걸어본다.


왼편으로 계곡이 보이고 오른편으로는 길이 보인다. 난 이런 길을 제법 좋아하는데 얼지 않은 물 흐르는 소리가 적막함을 깨고 들려오는 느낌이 참 좋다. 겨울이 모든 것이 숨죽이고 있지 않음을 흐르는 물은 이렇게 보여준다. 여기까지 사진을 보신 분들 중에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셨다면 눈치가 빠른 분이다. 스틱을 들고 카메라를 꺼냈다 뺐다를 반복하다가 이미지 비율 버튼이 4:3으로 바뀐 것을 알아채지 못했던 것. 이하 사진들은 전부 4:3 비율이다..


물이 얼음이 되지만 그 얼음을 녹이는 것이 또 물이다. 사실 물과 얼음은 같은 것인데 눈에 보이는 것은 이렇게 다르다. 살아가면서 실상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을 우리들은 얼마나 다르다고 생각하고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해 준다. 결국은 물이고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이 물이다. 上善若水[상선약수]란 말을 또 한번 되새기게 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렇게 혼자 걸으면 생각이 많아진다. 그리고 이게 혼자 걷는 길의 장점이기도 하다.


아직까지는 길가에 눈도 없고 드문드문 햇살이 들어 그리 어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길이 이어진다. 황량함이 느껴지지만 그 속에서 생명의 끈을 이어가는 나무들이 꿋꿋이 서 있다. 이전 구간에 비해 확실히 숨이 차 오르는 지역들이 많아지는데 걷는 페이스를 적당하게 잘 조절해야 한다. 이 구간부터 시작했다면 그래도 괜찮지만 이전 구간에서 이어서 오는 경우라면 체력이 많이 소모된 상태기 때문이다.


'울띄교'라고 적힌 것이 맞나 한참 들여다본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 주변을 둘러보지만 설명이 없어 아쉬웠다. 스틱을 들고 다닐 때는 이런 나무 다리 구간에서는 가능하면 바닥을 찍지 않도록 하자. 나무가 패일 수도 있고 스틱의 촉부분이 나무 틈 사이에 끼는 경우도 있기 때문인데 살짝 들고 이동하면 된다. 고무다리를 씌운 분이라면 상관없겠지만 수시로 고무다리를 씌웠다 뺐다하는 것도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사실은 내가 게으른 것이다-


가지런히 놓인 돌로 만든 계단이 정겹다. 한발한발 올라가면서 산이 이렇게 부르는구나 생각을 한다. 그러고보니 왜 갑자기 산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나 스스로도 궁금해진다. 군대에서 그렇게 지겹도록 다니던 산이라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생각까지 했던 곳인데...아마 차가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도 해봤지만 다시 차를 들여도 오히려 산에 가려고 더 많이 이용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번에 만나게 되는 다리는 갓바위교. 이것은 바위 이름에서 빌려왔겠구나 추측을 해본다. 산너미길이라는 이름에 참 어울리게 이 구간은 산 넘고 다리 건너는 일이 많다. 길이란 결국은 혼자서 걸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도 결국은 곁을 떠나게 되고 자신의 마지막 순간 역시 고독하게 홀로 가는 것이니.. 가끔은 홀로 걷는 일에 익숙해질 필요도 있지 않을까..물론 누군가 곁에서 토닥여주는 것이 그래도 더 좋긴 하다.


바로 만나게 되는 사패교. 사패산 안으로 들어와 있으니 이런 이름의 다리도 하나 있어야지 싶다. 사패산은 어느 소개에 따르면 북한산 귀신들도 잘 모르는 숨겨진 산이고 가장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라 한다. 양주와 의정부에 걸쳐 있는 산이고 무엇보다 이곳이 천연의 생태를 유지하게 된 계기는 얼마 전까지 군사보호구역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었기 때문이다. 대략 등반 시간은 4시간 정도 소요된다는데 꼭 들러볼 곳으로 기억해둔다.


사람의 손이 많이 닿지는 않았지만 길은 그래도 곧게 나 있다. 길이라는 단어는 참 내게 정겨운 단어다. 사진을 시작하고서부터 길 사진이 제법 많은 편인데 길 자체에 대한 생각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왠지 길이라는 것이 내가 살아가는 모양새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좋아하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앞으로도 길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이어질 것이고...


고개를 살짝 넘을 무렵 슬슬 지난 폭설의 자취가 나를 마주 한다. 꽤 오랜 내리막인데 그나마 사람들도 거의 다니지 않아 그대로 얼어 있다. 여기서부터는 아이젠을 끼고 가는 것이 좋다. 세상 좋다는 등산화도 아이젠만 못하기 때문인데 여기서부터 이 구간의 정상 전망대까지는 아이젠을 그대로 장착하고 걷기를 권한다. 처음 몇 발을 괜찮으려니 생각하고 가다가 스틱으로 간신히 버텼기 때문이다.


한참을 걷다보면 능선길이다. 이제 좌우로 전망이 시원하게 뚫리고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어오기 시작한다. 확실히 겨울 산행이 신경쓸 것이 많은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옷도 부지런히 갈아입고 장갑도 갈아 끼워주고 귀마개도 해 보고 하다보니 배낭을 몇 번을 들었다놨다를 반복해야 한다. 그것이 귀찮다고 그냥 버티다가는 산의 무서움을 온몸으로 깨닫게 된다. 겨울 산행을 가는 이들의 배낭이 그렇게 커 보이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멀리 의정부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의정부까지 왔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기도 하다. 북한산이라는 산자락이 얼마나 넓게 뻗어 있는지 새삼 느끼게 되는데 주변을 죽 둘러봐도 능선들이 죽죽 이어져 있어 어디가 끝인지 모를 정도다. 주변에...특히 서울을 끼고 이렇게 광활한 녹지대가 살아 있구나라는 것을 이제사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 갈 곳이 정말 많다고 새삼 생각이 든다.

여기 전망대에서 처음으로 한 부부를 만났다. 등산장비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지역 주민이 아니셨나 싶은데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네 주신다. 부부가 같이 산에 다닐 수 있다는 것은 꽤나 행복한 일이다. 다시 말하면 한평생을 같이 살아가는 두 사람이 비슷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전혀 다른 삶의 길을 살아오다 어느 갈림길에서 만나 이어지는 길을 함께 걷는 것. 그 앞에 어떤 고비가 있건 행복이 있건 온전히 두 사람이 함께 마주하는 것. 그것이 가능한 것이 부부이고 가능해야 부부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내리막 계단은 경사가 급하고 제법 길게 이어져 있다. 다행히 아직 이곳의 눈은 모두 녹아 아이젠을 사용하지 않고도 걸을 수 있지만 내리막 구간은 무엇보다 무릎에 가는 충격이 상당하기 때문에 스틱을 잘 활용해야 한다. 가뜩이나 부실한 체력인지라 스틱 쓰랴 사진 찍으랴 정신이 없지만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 풍광을 보는 것만으로도 오늘 이곳에 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이곳의 진지는 제법 모양새를 잘 갖추고 있다. 보아하니 60mm 박격포 진지가 아닐까 싶은데..사실 나는 일반 보병 부대에 근무한 적이 없어서 60mm박격포 운용을 본 적이 없어서 추측만 해볼 뿐이다. 처음엔 60미터인가 생각을 했지만 길을 지나나보면 이런 진지가 몇 개 더 보이는데 60M-1, 60M-2 이런 식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니 포 진지가 맞는 것도 같다. 그러고보니 내가 조작해본 박격포는 81mm가 전부였구나.


몇 번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걸으며 이 생각 저 생각하다보면 이 구간도 슬슬 종착점에 다다라간다는 것이 느껴진다. 오랜만의 외출치고는 제법 오래 걸은 셈이고 동계 등산 장비들을 처음 테스트 하는 산행인지라 이런저런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덕분에 본격적인 겨울 산행 준비를 좀 더 잘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나름 괜찮은 산행이었다. 아마 이 다음의 걸음은 북한산둘레길이 아니라 인왕산이 될 것 같다. 서울의 우백호라 불리는 산이다.


조금 더 이동하면 이 문과 마주 하게 되는데 안골길의 시작은 아니고 산너미길의 끝지점이다. 안골길은 아래로 조금 더 내려가면 진입로가 보인다. 여기서부터는 꽤 오랜 시간을 걸어야 한다. 대충 20분이 넘는 시간을 걸어야 버스 정류장에 이를 수 있으니 이곳에서 정비를 하고 이동하면 되겠다. 길은 그대로 아스팔트길로 이어지고 좌우로 많이 식당들이 있으니 쉬어 가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고 아니면 의정부쪽으로 이동해도 좋겠다.


문을 뒤에서 본 모습. 이 다리는 안골교란다. 조금 이름을 대충 지은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지역을 대표하는 이름이니 이해하고 넘어갈 일이다. 13구간에 이어 14구간까지 마치고 나니 3시간 20분 정도 소요되었다. 확실히 겨울이라 장비 갈아 입는 시간이 많이 걸렸고 눈길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더 걸린 까닭이다. 하지만 산행에 있어 시간처럼 버려두어야 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일상의 시간을 잊기 위해 찾는 곳이 산인데 그곳에서 또 시간에 연연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글 위에 지도를 붙여 두는 것은 이후 이길을 가게 될 분들을 위한 작은 안내자 역할을 하기 위함이지 무슨 기록을 세우기 위함은 아니다.


길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면 이렇게 안골길의 입구를 만날 수 있다. 왼편에 보이는 보루길은 무엇일까 궁금한데 다음 걷기에서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마 안골길 안에서 의정부에 있는 직동공원으로 이어지는 다른 길과 만날 수 있다는 의미인 것같다. 자전거 출입금지라고 씌어 있는 것으로 봐서는 길이 제법 평탄하지 않을까?


그런데 어쩐 일인지 입구 우측의 이정표가 무너져 있다. 국립공원측에서 모르고 있나 싶었지만 플래카드까지 걸어둔 것을 보니 알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수리를 미뤄둔 것이다. 보기에도 영 좋지가 않고 행여 위험할까 싶어 국립공원관리공단에 문의를 넣었더니 다음날 보수가 완료되었다고 사진까지 올려주었다. 

이후로 이곳을 가시는 분들은 똑바로 바로 서 있는 이정표를 보실 수 있겠다. 이런 부분은 정말 칭찬할만한 일인데 사실 나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도 다음날 바로 수리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생각해보면 국립공원을 이용하다가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공단에 알려 주는 것이 좋겠다. 확실히 저렇게 보니 좋아보이지 않는가..

이렇게 북한산둘레길을 14구간을 마무리했다. 21개 구간이 이제 7구간이 남아있다. 나머지 구간들은 서울의 북쪽에서 동쪽으로 돌아가는 길이고 마지막 구간인 우이령길은 북한산을 관통하는 길이다. 우이령길은 아마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관통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을 하는데 사전 예약을 해야하지만 평일이라면 1,000명이 모일 것 같지는 않으니 선착순 입장도 가능하지 싶다.

사회에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한 취미는 사진이었고 그 다음은 자동차였다. 그리고 이제는 등산이다. 아마 이 3가지만 평생 가지고 가기에도 어느 하나 제대로 소화해내기 어렵지 않을까 싶지만 그래도 참 좋은 취미를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물론 수 없이 맞는 시행착오로 인한 경제적인 지출은 상당하지만 돈으로 살 수 있는 경험이 이런 것이라면 기꺼이 지불할 용의가 있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만큼 많은 일들이 마무리되었던 한해다. 결국 인생은 제로섬게임이라지만 그래도 얻는 순간 잃는 순간에 각각 느끼는 감정의 깊이는 다르다고 생각된다. 내게 12월은 미련은 사라지고 희망은 남은 그런 달로 기억될 것같다. 이제 열흘도 채 안 남은 2012년... 올해의 마지막 산행 준비를 해 본다. 아마도 그리 멀리 가지는 않겠지 싶다. 그리고 올 겨울 안에 태백산에 다시 오를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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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가지 않고 미뤄두었던 둘레길을 걸었다. 걸은 코스는 두 코스 13구간과 14구간이지만 우선 13구간에 대한 이야기를 적고 14구간의 이야기는 며칠 후로 남겨둔다. 둘레길 걷기가 중반을 넘어서 종반에 이를 수록 뭔가 마음속에 아쉬움이 밀려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물론 나중에라도 다시 걸을 수 있겠지만 지금처럼 전 구간은 하나씩 차례로 걷지는 않을테니 이번 걸음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서인지도 모르겠다.


13구간 송추마을길은 북한산국립공원의 안내에 따르면 난이도는 '하'이고 전체 거리는 5.3km, 소요시간은 약 2시간 40분이 걸리는 것으로 소개되어 있다.위의 기록을 보면 실제보다 거리가 약간 줄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길의 중간지점에 대규모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내가 걸은 길이 지정된 경로가 아닌 조금 구간을 단축하는 길이 몇 군데 있었지 않았나 싶다. 전체적으로 고도도 낮은 편이고 평지가 더 많은 구간이라 걷기 수월한 구간이다.


송추마을길은 이전 글에서도 적었지만 충의길에서 그대로 이어진다. -아니 이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난 번에 걷다가 중지한 지점에서 다시 걷기를 시작했다. 아침에 짐을 꾸리며 아이젠을 넣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참을 고민하다가 일단 넣기로 했는데 나중에 14구간을 걸을 때 제법 도움을 받았다. 겨울산에는 아이젠, 스틱은 필수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장갑 두 벌 정도와 바람막이 하나, 귀마개, 게이터, 바라클라바, 양말, 약간의 음식과 패딩 정도는 가져 가야 하니 배낭이 클 수밖에 없다. 겨울을 제외한 계절에는 여간해서는 배낭을 들고 다니지 않는데 겨울에는 어쩔 수가 없다. 그래도 크기는 딸랑 22리터다. 본격 산행이 아닌 둘레길 걷기인 까닭도 있다. 물론 오늘 저런 것들을 다 들고 간 것은 아니다.


역시나 시작은 밋밋한 도로인지라 이 도로길을 얼마나 더 걸어야 하나 생각도 들었지만 그리 오래 가지 않아 산쪽으로 방향을 잡게 된다. 13구간을 걷는 분들은 구파발 역에서 내린 다음 34번이나 704번을 타고 석굴암 입구에서 하차하면 된다. 전체적으로 바람은 불지 않는 날씨여서 가벼운 복장이었지만 그리 춥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겨울 산행은 땀과의 싸움이고 옷갈아입기의 부지런함 정도에 따라 버티느냐 아니냐가 정해지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손이 많이 가는 편이다.


어느 정도 걷다 보면 위의 이정표를 만나게 되는데 이제 도로를 따라 걷는 일은 별로 없다. 의정부 방향이라고 적혀 있는 표지판을 보니 내가 멀리 오기는 꽤 멀리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둘레길 안내 이정표의 맨 아래에 오봉탐방지원센터가 보인다. 오늘의 하이라이트이기도 한 그곳의 이야기는 한참 아래에 나온다. -하지만 뭔가 기대를 할만한 것은 아니다.-


전형적인 시골의 어느 마을길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겨울에 접어 들면서 둘레길 사진이 전체적으로 우중충해보이는데 역시 계절이 계절이다보니 눈이라도 없다면 어딜 가나 뭔가 화사한 모습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그나마 볼 수 있다면 등산객들의 옷이 색깔 정도일까. 하지만 겨울은 다른 계절이 줄 수 없는 나름의 매력이 있다. 


송추마을길에는 제법 많은 군부대들이 있는데.. 생각보다 주변에 묘지가 많아 군부대에 나름 여러 괴담(?)들이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근무했던 부대에도 별별 괴담이 다 있는데 지금 생각나는 건 빨간 부츠 신은 여자아이 이야기 정도다. 아무튼 이 주변의 묘역들은 제법 관리가 잘 되고 있었다. 어느 묘소 근처에는 바로 위에 초소가 있던데 그 초소에 근무하는 병사들에게는 뭔가 이야기들이 제법 많으리라.

이제야 볼 수 있는 것이 송추마을길 진입문이다. 이제까지 송추마을길이라고 알고 걸어왔던 것은 충의길도 송추마을길도 아닌 애매한 구간이었던 셈이다. 이런 부분은 좀 아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워낙 광범위한 지역을 둘레길이라는 하나의 틀로 묶으려다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중간중간의 안내가 좀 더 치밀하다면 어떨까 싶은 생각도 든다. 


본격적인 송추마을길의 시작이다. 제법 산다운 느낌이 들지만 이 구간은 전체적으로 무난한 구간이다. 딱히 힘들다거나 곤란한 지점도 없고 산책하듯이 천천히 걸어나가면 된다. 오늘은 날씨마저 워낙 흐린 탓에 우중충한 겨울의 분위기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느낌이다. 게다가 오고 가는 사람도 하나 없어 오후에라도 왔었다면 조금은 음산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제대하신 분들은 이것이 무엇인지 아시지 싶은데 이 구간 내내 이런 표지들이나 진지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주변이 거의 다 군부대기 때문이다. 크레모아는 저렇게 글만 보면 사실 별게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격발이 되면 참 잔인하기 이를데 없는 무기다. 신교대 교관 시절 저 녀석을 한 번 터뜨려본 적이 있는데 참.. 전쟁이 정말 일어나면 안 되겠다는 생각만 들었었다.


길은 이런 오솔길과 몇 군데의 계단으로 이어져 있다. 여름이나 가을날이었으면 제법 화려한 색상들과 마주치며 정겨운 느낌을 듬뿍 받을 수 있는 그런 길이 아닐까 싶지만 역시 겨울에 만나는 산길이란 지난 시절의 흔적들이 바닥에 짙게 깔린 무언가 다른 시간을 준비하는 잊혀져 가는 시간의 느낌을 간직하고 있어서 쓸쓸한 느낌을 걷는 내내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 역시 겨울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다.

 

왜 나무는 하늘을 보고 자라는 것일까? 라는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다. 하지만 어디서도 그 답을 얻을 수는 없었는데 굳이 답을 찾으려 하기보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면 차라리 편하지 않았을까?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에도 그런 풀리지 않는 질문들을 수 없이 마주 하는데 그 모든 것들에 대해 다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지나친 과욕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때로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필요도 있다.


이 사진을 보시면 분노(?)할 예비역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아니 진지공사를 어떻게 했길래?"라며 말이다. 군인들에게 봄가을 진지공사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닌데 그래도 저 정도면 꽤나 열심히 잘 만든거다. 쓸 데도 사실 없는 것을 왜 힘들여 작업을 하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이런 것들은 소위 FM 즉 Field Manual이다. 원칙이 있어야 그 원칙에 따른 융통성이 생기는 법이다. 당장은 무익한 듯 해보이지만 결정적일 때 필요한 것이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만나게 되는 곳이 오봉탐방지원센터다. 내가 오늘 이곳을 벼르고 온 것은 다름 아닌 둘레길 열쇠고리를 받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남은 구간을 올해 안에 완주하기는 일단 어려운데다가 탐방센터들이 어쩐 일인지 내가 가는 날마다 문을 닫고 있어서 이곳은 열었을까?라는 호기심도 한몫 했다. 다행히 이곳은 오늘 영업(?)을 하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 서니 인상 좋아 보이는 아저씨 한 분과 묘령의 미모의 처자가 한 분 계셨다. 

나: "스탬프 투어 확인 받으러 왔는데요"

처자: "네~ 다 도셨나요?"

나: "아뇨, 13구간까지만요. 올해 안에 다 못 돌 것 같아서 열쇠고리라도 받으려고요"

아저씨: "에이 하루에 3구간씩 돌면 금방 다 돌텐데 아깝네" 라며 인상 좋은 아저씨는 밖으로 나가셨고 처자와 둘만 남은 상황..

처자: "네~ 사진 보여주세요. 어머! 알아보기 쉽게 정리를 잘 해두셨네요"

나: '제가 정리 하나는 잘 하는지라'라고 생각만...

여기까지는 화기애애하고 괜찮았는데 처자분이 스탬프를 찍다가 잉크가 터져 왼손이 푸른색으로 온통 변색이 된 다음에는 좁디 좁은 그 사무실 안에는 적만만 감돌았다. 

나: "저런, 제가 괜히 많이 가져와서 이런 일이"

처자: ...................

이후 괜히 농담도 꺼냈봤지만 대답 없던 처자분... 잉크라 좀 오래 가겠지만 언젠간 지워지니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그리고 받아온 열쇠고리다. 별로 대단한 것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어느 날 갑자기 북한산둘레길을 걸어야겠다고 생각을 했었고 온전히 내 걸음으로 얻은 것이기에 그 소중함은 남다르지 싶다. 한 구간만 더 걸으면 탁상시계와도 바꿔준다지만 내게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앞으로 남은 구간은 완주할 생각이고 그럴 거라면 완주 기념품이 낫지 않겠냐고 할 수도 있지만 애초에 시작을 그렇게 내 스스로에게 부담을 줄 생각도 없었고 그렇게 되면 주객이 전도되는 셈이어서 열쇠고리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다행이었다. 배낭에 걸어두면 그럭저럭 어울리지 싶은데 아직 앞 부분의 칠이 마르지 않아 끈적끈적하다. 며칠 숙성시켜두면 나아지겠지.


오봉탐방지원센터 주변으로는 뭔가 큰 공사가 진행 중이다. 주변이 온통 어수선한 느낌인데 무슨 이주단지라 하던데 이곳에 새로 아파트나 그런 것이 들어서는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산 주변으로 자꾸 사람들이 모여 드는 것은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갈 수록 산이 산으로 조용히 서 있기도 힘들어진다.


다시 만나게 되는 도로. 여기는 국립공원 주차장이 있는 곳인데 이곳에서 등산로가 시작되기 때문에 제법 큼지막하게 만들어 두었다. 역시 평일이어서 한산한 모습이다. 겨울 산행은 확실히 손이 많이 간다. 양손에 든 스틱에 카메라에 장갑까지... 카톡이라도 오면 멈춰서 장갑 벗고 확인하고 해야 하니 부산스럽다. 게다가 옷도 땀이 나면 벗고 추워지면 입고를 꾸준히 반복해야 하니 가장 부지런히 움직여야하는 산행이 겨울산행이 아닐까.


군부대 앞에 저렇게 둘레길이라고 표시를 해 둔 것이 왠지 귀여운 느낌도 든다. 이 지점까지 오면 선택을 해야 한다. 더 진행을 해서 다음 14구간에 진입할 것인지 아니면 왼쪽으로 가 버스를 탈 것인지 말이다. 14구간은 난이도가 '상'이다. 북한산둘레길에서 난이도가 '상'인 구간은 단 세 곳뿐이다. 그곳 중의 한 곳이 바로 다음 구간이니 생각을 잘 해야 한다. 특히 겨울산에 과욕은 금물이다. 


멀리 사패산을 바라보면서 걷다 보면 13구간도 어느새 막바지에 접어 든다. 교통표지판에 의정부, 구리가 보이는 것을 보니 서울의 오른쪽으로 제법 많이 이동한 모양이다. 처음 서울의 동쪽 끄트머리에서 시작한 둘레길 걷기가 다시 원점으로 서서히 돌아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문득 마지막 구간인 우이령길은 어디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 생각도 해 본다.


계절은 겨울이지만 날이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은 맑고 투명하기만 하다. 여기까지 오면 전체적인 기온이 조금 내려가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점점 산의 품으로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오르막을 따라 조금 걸으면 14구간 산너미길의 시작이다. 두 구간을 모두 걸었지만 이번 포스팅은 13구간만으로 마무리한다.

오늘 걷기는 전반적으로 겨울 산행을 위한 예행연습 같은 느낌으로 준비도 했고 그렇게 움직여보는데 의미를 두었다. 평소 들지 않던 스틱도 들고 교과서대로 사용도 해보고(덕분에 손목이..;) 아이젠도 수시로 채웠다 풀었다 해 주고 배낭도 동계용으로 꾸려서 다녀봤는데 역시 다른 계절에 비해 정말 손이 많이 간다. 가장 문제는 몸에서 흐르는 땀과 바깥의 기온과의 차이인데 이 부분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동계 산행에서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무리하지 말 것이다.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으니 오늘 오르지 못 하면 내일 오르면 그만이다. 죽기 살기로 매달리다가 정말 죽을 수도 있는 것이 겨울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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