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포스팅은 한강시민공원의 사물들에 대한 이야기. 이번에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는 공간인만큼 그곳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도 꽤나 다양하다. 물론 평소의 일상생활에서도 많은 이들을 만나지만 조금은 느긋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기는 쉽지가 않다. 하지만 공원에 나가면 '사람들'을 제대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네들의 삶 역시도..

공원에서 만나는 이들은 보통의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처럼 제각기의 방향을 가지고 있다. 차이라면 일상의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치우친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해 공원에서 만난 이들은 그 방향이 각자 다르다는 점이다. 주어진 길을 갈 수도 있고 때로는 길이 나 있지 않은 공간으로도 갈 수 있다. 사람들에게 스스로 결정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공간..바로 공원이다.

또한 모처럼 자연과 동화가 될 수도 있는 공간의 역할도 한다. 비둘기야 원래 사람을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지만 사람들이 주는 먹이에 익숙한 녀석들이 있는 곳에서는 내 눈높이에서 비둘기들을 마주 볼 수도 있다. 마치 서해 어느 바닷길에서 새우깡으로 유혹할 수 있는 갈매들처럼...

삶의 방향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끌 수 있는 곳. 공원은 그렇게 자유로움과 여유가 함께 하는 공간이다. 대단한 삶의 이유도 삶의 방향도 목적도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길을 만들어 걸을 수 있는 곳. 공원은 그래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 아무렇게나 바닥에 누워 하늘을 보고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곳이니까..


Contax Aria, Carl Zeiss 35mm Distagon f/2.8, Ilford XP2, LS40


무더운 날에 한강을 걷는 것은 썩 기분내키는 일은 아니다. 딱히 해를 피할 곳도 마땅치 않기 때문인데 그래도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돌아보면 평소에 보지 못 했던 사소함들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어 폭주행위를 금지하는 플래카드를 비웃는 비둘기떼라던가...


사람이 물에 빠지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배워볼 수도 있다. 부실해 보이기는 하지만 저것을 던지면 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


아무렇게나 서 있는 전봇대들은 이제는 그 기능을 모두 다 해 쓸쓸한 흔적의 하나로만 기억되고...


그 틈새는 지나가는 이들이 몰래 버린 시간의 찌꺼기들로 점점 차 오른다.


낡음이란 내쳐지는 것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녹이 슬고 제 기능을 하지 못 하게 되면 기억에서도 잊히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신세가 되고 만다. 이것은 비단 물건에만 한정된 일은 아닐 것이다.


비둘기들은 어느 장소, 어느 시간을 막론하고 존재하는데 가끔은 이 녀석들이 시간과 공간 모두를 지배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난 시간을 뒤돌아볼 때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조연이 이 녀석들이기 때문이다.


Contax Aria, Carl Zeiss 35mm Distagon f/2.8, Ilford XP2, LS40


창경궁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날따라 결혼식 야외촬영이 많은 날이었다. 결과적으로 보는 사진은 신랑과 신부가 밝게 웃고 있는 사진들이지만 그 사진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제법 분주하고 한편은 피곤스러워 보였다. 결혼을 해 본 적이 없으니 야외촬영이 얼마나 많은 수고를 동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신랑신부 모두 제법 힘들어보이는 표정. 

요즘은 디지털카메라가 일반적이니 사진에서처럼 중형 판형의 카메라를 쓰는 일은 없지 않을까 싶은데.. 아무래도 디지털보다 불리한 점이 많으니 한 컷을 찍는 데도 제법 많은 과정들이 필요한 모양이다. 나름 괜찮은 구도라고 생각해 찍었지만 호수 건너에서 35mm로는 무리.. 크롭을 해보니 좀 나아보이긴 하지만 표정을 담지 못한 점은 아쉬웠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차라리 표정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이 그래도 행복한 날의 사진을 담는 이들에게 예의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이동 중에 워낙 힘들어하는 분들이 많았기에..

일포드 XP2는 언제나 이렇게 부드러운 흑백을 그려준다..


Contax Aria, Carl Zeiss 35mm Distagon f/2.8, Ilford XP2, LS40


'사진 이야기 > 사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連理枝  (20) 2012.09.03
기다림은 대상을 의미하지 않아도 좋다  (0) 2012.04.12
어느 봄날, 어수선한 포트레이트  (2) 2012.04.10
여유 혹은 무관심에 대하여  (0) 2012.03.26
연인, 2011년 여름  (0) 2011.06.06

낮의 도시가 밝을까 싶지만 사실은 밤의 도시가 더 밝다. 낮의 도시는 태양 아래 주어진 빛에 의해 보이는 풍광인 반면에 밤의 도시는 보여주는 빛에 의해 보이는 풍광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무엇인가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낸 빛.. 그 빛에 비친 세상은 낮의 그것과는 조금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순리대로라면 밤은 어둡고 캄캄해서 그 시간동안은 세상이 낮의 열기를 식히고 휴식을 해야 하지만 인간들의 욕망은 밤의 어둠을 멀리 걷어버리고 낮에는 보이지 않던 치부마저 선명하게 드러내버린다. 그래서 가장 편안해야할 밤의 시간은 욕망의 시간이 되어 버리곤 한다.


Contax Aria, Carl Zeiss 35mm Distagon f/2.8, Ilford XP2, LS4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