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다시 둘레길이다. 왼쪽 발이 생각지도 않게 아파 한동안 미뤄두었는데 덕분에 무더운 여름을 보내고 가을에 접어드는 시점에 둘레길을 다시 걸을 수 있게 됐다. 북한산둘레길 6구간은 이전에 적었듯이 5구간의 종료지점이 곧 시작점이다. 둘레길의 앞구간들은 구간별로 구분이 확연하게 되어 있는데 6구간 그리고 7구간은 그런 구분이 없이 바로 이어졌다. 오늘 걸은 구간은 6구간 평창마을길과 7구간 옛성길이다.

길음역에서 내려 3번 출구로 가 7211번을 타고 롯데아파트에 내리면 된다. 조금 걸어올라가면 이전에 5구간을 마치고 내려왔던 길을 만나게 된다. 6구간 평창마을길은 이전의 구간들과는 전혀 다르다. 구간 이름처럼 평창동 마을을 관통하는 코스가 이어진다. 마치 삼청동의 어느 골목을 걷는 그런 느낌이다. 6구간만 걷는다면 굳이 등산용 장비는 필요하지 않아 보인다. 다만 이어서 7구간을 간다면 등산화 정도는 챙겨서 신자.

6구간은 북한산국립공원의 안내로는 5Km, 소요예상시간은 2시간 30분이다. 6구간은 이 수치가 어느 정도 맞아 트레킹앱 역시 비슷하게 잡아내고 있었다. 이 구간은 전형적인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길이기 때문에 수월해보이지만 사실 아스팔트를 걷는 것이 산길을 걷는 것보다 몸에 무리도 많이 가고 피로도 크다는 점을 기억하고 무리하지 않도록 하자.

전체적으로 위로 올라가는 고도 형상을 볼 수 있다. 제법 높이 올라가서 한동안 걷다가 약간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는 형태로 이러지는데 5Km지점에서 일반 도로로 나오면서 고도가 가장 낮게 떨어진다. 

오늘은 혼자 걷는 게 아니어서 SLR은 들고 나오지 않았다. 누군가 동행이 있다면 동행과의 대화나 함께 걷는 것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몇 장의 사진을 더 남기는 것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한 까닭이다. 이번에 함께 간 녀석은 LX5다. RAW+JPG모드로 담아봤는데 집에 와서 편집을 해 보니 RAW보다 JPG가 더 나아보인다. D700과는 또 다른 느낌인데 아마도 라이트룸의 어도비 프로파일 때문이 아닐까 싶다.

6구간은 아스팔트로 시작한다. 이 느낌은 구간이 마무리될 때까지 크게 달라지지 않는데 사전에 구간에 대한 정보를 접하지 않고 왔기 때문에 조금은 특이한 느낌이다. 이제까지의 구간들이 흙으로 된 전형적인 산길이었던 것에 비해 이 구간은 전형적인 동네길이다. 

평창동은 한옥과 양옥이 동시에 존재하는 묘한 동네인데 잘 알려진 것처럼 강북의 부촌 중의 한곳이다. 하지만 굳이 그곳의 집들에 위화감이나 어색함을 느낄 필요는 없다. 어디나 근본적으로 사람이 산다는 것은 같으니 말이다.

완전히 주택가 밀집지역이어서 그런지 제법 조용했고 주말임에도 오가는 사람이 없어 마음 편하게 걸었던 길이다. 동네는 뭐랄까 개발과는 거리가 아주 먼 느낌이랄까.. 예전의 집들이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채로 마치 어느 순간에 시간이 멈춘 듯한 그런 느낌을 주었다.

어느 집 앞에 자리한 계곡의 모습인데 서재에 앉아 저런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마음에 들었다. 아마 이 지점이 그나마 북한산이라고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지점은 아닐까 싶다. 그만큼 산과는 거리가 먼 구간이다.

둘레길에서 볼 수 있는 잔재미는 역시 예상치 못한 구경거리다. 허머가 떡 하니 자리잡고 있어 담아봤다. 연비가 그렇게 안 좋다는 차인데(군용이다보니) 겉으로 보기에는 꽤나 남성적인 느낌이 강하다 싶다. 엔진음은 어떨까 궁금해진다.

어느 회사(?)였을가 앞에 아무렇게나 방치된 낡은 트럭. 보아하니 전시용으로 놓아둔 것 같은데 제법 운치가 있다. 저 차도 어느 시절엔가는 도로를 누비고 다녔을텐데 이제는 그 수명을 다하고 우두커니 앉아 오고가는 차들을 바라보는 자리에 서 있다. 

사실 출발 전에는 5Km라는 거리가 제법 되기 때문에 어색한 걷기가 되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다. 참 다행스럽게도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것처럼 이야기가 잘 통했다.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기를..;) 딱딱한 아스팔트 길 위를 만약 혼자 걸었다면 참 무료하고 지루한 걷기가 되었을 텐데...

거의 모든 사진이 24mm로 찍은 까닭에 전체적으로 길이 멀어보이지만 실제로도 저렇다고 보면 된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가 앞서거니 뒷서거니하면서 평창마을을 감싸고 도는 그런 느낌이다. 한여름이라면 이 구간은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다른 구간에서처럼 나무 그늘이 있어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유난히 사찰과 기도원이 많은 구간이었다. 청련사 앞에는 의자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어 잠시 쉬어갈 수 있다. 이곳에서 사과를 먹고 한참을 머물렀다. 정말 고요한 가운데 풍경 울리는 소리만 잔잔하게 퍼졌던 시간.. 물론 잠시 후 사람들이 늘어나고 차들이 지나다니긴 했지만 꽤나 평화로운 공간이다.

길이라는 것은 우리가 어딘가를 목적지로 삼아 가기 위한 수단일 때가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길 자체가 목적이 되기도 한다. 오늘과 같은 경우가 후자라고 하겠는데 그럴 때는 가능한 천천히 길 자체가 들려 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걸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시간을 내 길을 걸을 이유가 없다. 마찬가지로 사람을 만난다면 그 사람 자체가 만남의 목적이기 때문에 온전히 그 사람에게 집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을 만날 이유가 없다.

아무렇게나 서 있는 마쯔다의 쿠페인데 제법 오래된 모델같아 보인다. 낡은 차고와 낡은 문과 제법 잘 어울린다. 옛것은 옛것과 있을 때 잔잔한 어울림의 느낌이 살아난다. 만약 저 자리에 최신 스포츠카가 서 있었다면 꽤나 어색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울림이란 억지로 꾸민다고 될 일이 아니다. 

평창마을길에 접어든 이래 처음 만나게 되는 흙길이다. 이 구간에서는 흙길이 반갑다. 다른 구간에서는 흙길이 당연하기 때문에 별 느낌이 없지만 이 구간에서는 아스팔트길이 당연하기에 흙길이 반갑다. 뭔가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이렇게 사람의 느낌을 마비시키는 무언가가 있다. 살아가면서 가장 경계해야할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익숙함"이다. 내게는 한없이 편한 그 익숙함이 때로는 내 생각과 행동을 경직시킬 때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물론 내가 무엇에 익숙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조차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있는 줌 없는 줌 다 잡아당겨도 이게 최선이었다. 분명 한 발을 더 다가서면 녀석은 도망갈 것이고 도망가버린다면 사진을 아예 찍을 수 없으니 이게 최선이다. 청소년 정도된 고양이였는데 그렇지 않아도 걸어오는동안 고양이들을 제법 봤다. "둘레길 걷다가 고양이를 만났지 뭐야" 어디 가서 이렇게 말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물론 "둘레길 걷다가 멧돼지를 만났는데.." 이게 더 설득력은 있지만 말이다... 사진을 찍고 한발 다가서보았고 역시나 녀석은 저만치 도망갔다. "아이컨택"이 부질없었다.

갑자기 등장한 전형적인 산길이다. 그렇다. 이 지점이 6구간과 7구간 "옛성길" 의 경계점이다. 아스팔트가 순식간에 끊어지고 흙길이 나타난다. 원래 계획은 6구간을 마치고 간단히 식사를 하고 헤어질 예정이었는데 "수다"가 끝이 날 줄을 몰라 한 구간을 더 가기로 했다. 편안함이란 참 좋은 느낌이다.

이제까지 봐온 전형적인 둘레길이 7구간이다. 동행은 "여기까지 걸어서 왔다고 생각하지요"라고 이야기 했는데 그말이 참 적절했다.   예전에도 적었지만 북한산둘레길의 각 구간은 구간마다 확연하게 구별되는 느낌이 강하다. 이렇게 구간을 구분하기 위해 꽤나 많은 조사와 연구가 이루어졌을 것 같다. 앞으로도 많은 구간들이 남아 있지만 그곳들 역시 그런 독특함을 주리라 생각된다.

7구간을 걷다보면 왼편으로 오래된 성벽의 흔적을 볼 수 있는데 그래서 옛성길인 모양이다. 오늘은 날이 무척 맑아서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제법 멀리까지 볼 수 있었다. 안내판의 설명과 눈 앞에 보이는 산의 모양새를 바로 맞춰볼 수도 있었다. 내일부터는 날이 흐려지고 비 예보까지 있는터라 날은 참 잘 잡았다.

7구간의 거리는 2.7Km로 6구간까지 합치면 7.7Km다. 짧은 거리는 아니다. 아침 10시 조금 넘어 길을 걷기 시작했는데 두 구간을 모두 지날 때쯤은 오후 3시에 가까운 시간이었으니 시간도 제법 오래 걸렸다. 그런데 묘하게도 전혀 오래 걸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고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동행이 있는 산행이란 그런 느낌인 것이다. 정체모를 남정네와 선뜻 동행해준 분께 감사할 따름이다.

오래 전 원대한(?) 북한산둘레길 정복 계획을 짤 때는 일주일마다 한 코스씩 꾸준히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사실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중간에 본의아닌 부상(?)을 당해 멈춘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가려는 마음만큼 몸이 쉽사리 따르지 않는 것이 더 큰 이유였다. 굳이 그렇게 멀리까지 가서 '걷기'를 할 이유가 있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산행은 그 시작 전에 나와 작은 약속을 하나 하고 떠나는 것이기에 온전히 마무리를 해야 마음이 홀가분하다. 

총 21개의 구간 중에 이제 3분의 1이 마무리됐다. 다음 구간은 8구간이고 제법 산의 느낌이 많이 나는 구간인데 언제 걷게 될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 스스로에게 강제성을 부여하지 않으려 함이다. 산행에 있어 강제성을 부여해버리면 길을 걸을 때 길이 말하는 소리를 듣지 못 하고 길이 보여주는 풍경을 보지 못 하기 때문이다. 그저 마음이 내켜 걸으면 그만이고 그 걸음걸음에 충실하면 그만이다. 복잡할 것도 신경쓸 것도 아닌 것이다. 


Panasonic LX-5



얼마 전에 문학동네에서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이 선보였습니다. 하루키에 대해서는 할 말이 참 많은데 제 나름의 기준으로는 '해변의 카프카' 이후 변절했다고 단정을 지어버리고 있던 터라 이전만큼의 호감은 가지고 있지 못하죠. 게다가 1Q84에서 아주 결정타를 날려서 이제는 하루키의 책은 읽지 않겠다고 까지 선언을 해 버렸지요.

그럼에도 그의 신작에는 끌릴 수밖에 없는데 욕을 할 때는 하더라도 일단 읽기는 해야 한다는 묘한 압박에 시달렸습니다. 이번에 나온 에세이 걸작선은 총 5편입니다. 제게는 아주 다행스럽게도(!) 과거의 글을 모아놓은 것이지요. 즉 '변절 전의 하루키'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충분히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스스로 합리화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집어든 책은 바로 이 '세일러복을 입은 연필'입니다.

50편의 짧은 단편들이 모여 있는데 그가 주간 아사히에 연재한 글들이라는군요. 실려 있는 단편들은 굉장히 사적인 내용을 많이 담고 있는데 이제까지 접하지 못 했던 하루키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어 꽤 흥미 있었습니다. 물론 50편 모두가 흥미진진한 것은 아니고 어떤 작품은 지루하기도 하더군요. 그런데 페이지를 넘겨 가던 중에 압권인 단편을 발견했는데 책의 제목과도 같은 '세일러복을 입은 연필'편입니다. 이 단편이야말로 하루키답다는 말이 절로 나오더군요.

"F심 연필은 세일러복을 입은 여학생 같지 않습니까?"

술자리에서 나온 이 문장이 어떻게 느껴지시나요? 정말 하루키다운 문장입니다. 물론 그가 직접 한 말은 아니지만 이후 그의 행동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날 정도죠. 그리고 그 묘사가 참 하루키답기에 이책에서는 이 단편을 추천해봅니다.

아무튼 사물에 대한 인식의 부여..랄까요. 그런 것을 참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연치 않게 듣게 된 자기가 쓰는 연필이 여고생 같다는 말이 그 자리를 떠나서도 머릿속에서 영 떠나지 않고 연필을 볼 때마다 그런 묘한 생각이 드는 현상에 빠져 꽤나 고생을 하는 그의 모습이 아주 적나라합니다. 그것도 하필이면 성적인 의미 부여여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난감해 하는 모습이 재밌습니다. 

꽤 재밌는 상황이지요? 아마 일상 생활 중에 저런 식으로 의미 부여가 되는 경우를 제법 많이 겪어 보시지 않았을까 생각이 됩니다. 아침에 가장 먼저 보는 버스가 1번 버스면 하루종일 재수가 좋을 거라고 집을 나섰는데 1번이 연달아 온다던가 하면 하루종일 싱글벙글 하게 되죠. 실제로는 아무 일도 없었더라도 하루를 마무리 할 시간이 되면 어쩐지 흐뭇합니다. 

그런데 그 의미부여가 하루키의 경우처럼 성적인 거라면 꽤나 난처한 상황도 많겠지요. 그것도 잠시라도 떼어놓을 수 없는 어떤 물건에 그런 의미가 새겨지면 말이죠. 그런 경험들이 혹시 있으신가 모르겠네요. 있으셔도 여기에 답글을 다실 정도로 대담한 분은 안 계시겠지만요..^^

아무튼 오랜만에 만나는 하루키는 오래 전 하루키에게서 받았던 강한 인상을 조금이나마 되돌려주었습니다. 앞에 하루키의 변절이라고 적었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제가 느끼기에 그렇다는 것이니 크게 신경 쓰실 바는 아닙니다. 뭐랄까 '상실의 시대'로 알려져 있는 '노르웨이의 숲'에서 보였던 인간 자체에 대한 탐구와 감정의 묘사가 이후에는 점점 상업적으로 확대된데서 온 저만의 아쉬움이니까요. 

언젠가 1Q84에 대한 이야기를 써 볼 기회가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는 더 이상 내가 아는 하루키가 아니다'는 문장으로 요약할 정도랄까요..


제가 무척 좋아하는 한자어가 있는데 바로 連理枝입니다. 연리지라고 읽는데 아마 우리나라에도 이 나무들이 제법 있어 한두 번 정도는 어디선가 보시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얼마 전 태풍이 왔을 때 금산사의 연리지가 부러졌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리기도 했습니다.

이 단어는 원래의 의미와는 약간 다르게 쓰여 지금은 남녀사이의 애틋한 정을 뜻하지요. 특히 부부사이의 정을 의미하는데 전혀 다른 근본에서 자란 두 개의 가지가 이어져 하나의 가지처럼 서로 의지하고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전 가족에 대해 뭐랄까 환상이라면 환상을 가지고 있는데 어릴 적부터 언젠가 좋은 여자 만나 가족을 꾸리고 사는 게 꿈이었지요.. 뭐 별것도 아닌게 꿈이다 하실 수도 있지만요..

하지만 이꿈은 참 이루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꿈으로 남아있지만 어쩌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더 애틋한 기다림과 희망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주변에 결혼한 이들로부터 혹은 인터넷 등에서 결혼 이후의 냉정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보기도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 가족을 만든다는 것은 참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은 변치 않고 있습니다.

사람을 만나기는 그리 어렵지 않고 연애를 하기도 그리 어렵지 않지요. 결혼을 하는 것도 어쩌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만 그 이후의 삶을 꾸려 가는 일은 참 대단한 거라 생각이 됩니다. '나'가 아닌 '우리'로서의 삶이라는 건 이제까지 하나의 결정만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시각에서 두 개의 결정을 합쳐 하나로 만든 다음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는 커다란 벽이 있기 때문이지요. 

결혼의 문턱에서 현실이라는 벽에 많이들 부딪히고 그벽을 끝내 넘지 못 하는 경우를 종종 보았고 겪기도 했지만 결국 그벽이란 건 두 사람의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나서는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되더군요. 결혼이란 어쩌면 나를 버리고 그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나 하나만이 아닌 서로 노력해야 하는 그래서 두 사람이 각자 상대에게 녹아들어 상대가 되어 가는 그런 모습이 되어서야 비로소 온전히 세상을 마주 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만약 그 벽을 넘지 못 했거나 못 한다면 아직 두 사람이 서로를 남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서로를 남으로 여기고 '나'를 먼저 생각하면 영원한 평행선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저 나를 상대에게 녹여 가야 하는 것이죠.. 그래야 온전한 連理枝가 되는 것이 아닐까 이제사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아무튼.. 連理枝는 이후 백락천에 의해 의미가 바뀌게 됩니다. 주인공은 잘 아시는 당 현종과 양귀비지요. 양귀비가 죽은 이후 현종은 이 시를 늘 외우곤 했다는데 한번 보시지요.


長恨歌(장한가)


七月七日長生殿

夜半無人和語時

在天願作比翼鳥

在地願爲連理枝

天長地久有時盡

此恨綿綿無絶期


7월 7일 장생전에서

깊은 밤 사람들 모르게 한 맹세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기를 원하고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기를 원하네

높은 하늘 넓은 땅 다할 때 있는데

이 한 끝없이 계속되네.


Nikon F5, AF DC Nikkor 105mm f2D, Kodak Supra 100, LS-40



베르나르 베르베르. 천재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남자다. 그리고 작가다. 사실 나는 이 사람의 책에 대한 선입견이 제법 컸는데 뭐랄까 인기에 영합하는 그렇고 그런 류의 작가 중의 한 사람은 아닌가 오해하고 있었다. 마치 최근의 하루키와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의 책은 전혀 읽지 않았었는데 반전이 이루어진 것은 '타나토노트'였다.

이후로 그의 책을 마치 스펀지에 물을 빨아들이듯이 읽었는데 흔히 알려진 3부작이 준 정신적 충격은 대단했다. 물론 '신'의 마지막 결론 이후 꽤 오랜동안의 사색이 필요했던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나무'는 단편집이다. 그의 다른 책처럼 독자의 부담이 비교적 적은 책이다. 물론 페이지가 적을 뿐이지 담겨 있는 내용들을 고민하자면 또 끝도 없다. 그럼에도 군더더기없이 짧게 끊어지는 맛이 일품이다. 초창기의 하루키 작품을 읽는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인데 읽어나가는동안 하루키의 단편과 제법 공감이 되지 않는가? 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책에 실린 단편들 그리고 그 단편에서 이어져나오는 장편들을 굳이 연결지을 필요는 없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그 책의 내용 그러니까 내 눈 앞에 보이는 활자에 푹 빠지는 것으로 충분하다. 아니 오히려 눈 앞에 펼쳐진 내용들을 모두 소화하기에도 벅차기 때문에 굳이 생각의 영역을 지나치게 확장할 필요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책은 특히나 연관성이 대단히 넓은 책이기에 무엇보다 '단절'작업이 크게 요구된다. 그래야 내용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워낙에 신출귀몰한 이야기와 구성 그리고 영역을 가지고 있는 베르베르이기에 이 방법이 이책을 읽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나 나름대로 정해버린 것이다. 물론 수많은 연관성들을 모두 아울러 가며 읽는 것도 나쁠 것은 없다. 하지만 오직 이책에만 빠져보고 싶다면 그다지 권하고 싶지는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무려 18편이나 되는 단편들이 담겨 있다. 각각의 내용에 대한 이야기는 모음집에서는 별로 의미가 없을 듯 하여 적지 않겠지만 아무 작품이나 눈이 가는 것을 골라 읽어도 충분하다. 가능하다면 베르베르의 장편들을 읽은 다음에 쉬어 가는 시간에 읽어보면 어떨까 싶다. 그의 장편이 주는 피로감을 풀기에 이 단편들은 제법 치밀한 구성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어느 작품의 어느 부분만을 네모난 모양으로 잘라서 찍어보았다. 이것으로도 의미의 전달은 충분하다. 굳이 모든 문장을 한데 엮어 순서대로 맞추어 놓지 않더라도 말이다. 나는 이 문장이 꽤나 마음에 든 모양이다.



사실 믿고 사는 사회가 되면 굳이 소비자가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되팔이도 많다보니 부득이하게 소비자가 자기 폰의 개통일을 확인해야 하는 일도 생깁니다. 아래 방법은 SKT기준 삼성 갤럭시 S2와 S2 HD LTE 모델에 적용되는 개통일 확인법입니다. 

왼쪽 화면에서 전화버튼을 누른 다음 319712358 을 입력합니다. 그러면 화면이 바로 SKT관리자 화면으로 넘어갑니다.


비밀번호 입력란에 996412 를 입력하면 오른쪽 화면처럼 관리모드로 들어갑니다. 여기서 system이외의 것은 만지지 마세요. 혹 이상이 생겨 AS를 보낼 수도 있게 됩니다.


화면에 First Call이라는 것이 보이는 메뉴가 개통일입니다. 클릭하면 자신의 휴대폰 개통일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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