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헤드램프는 새벽 산행이나 야간 산행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도구지만 항상 배낭 구석에 넣어두면 요긴하게 사용되는 장비 중의 하나다. 여름을 제외한 계절에는 해가 일찍 지게 되는데 산의 경우는 그 속도가 상대적으로 빨라 금방 어두워지게 된다. 사람이 느끼는 여러 공포 중에 어둠에 대한 공포는 상상을 초월하는데 이 작은 헤드램프의 위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헤드램프를 다루는 업체는 제법 많지만 보통 페츨이나 블랙다이아몬드, 마무트 등에서 출시된 제품을 주로 사용한다. 지금 소개하는 장비는 블랙다이아몬드의 뉴스팟 헤드램프다. 


이 제품은 맨 위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5개의 LED로 구성되어 있는데 중앙 부분의 큰 LED(트리플파워)가 90루멘의 밝기를 내는 메인 LED이고 양쪽으로 한쌍씩 흰색과 적색의 LED로 구성되어 있다. 메인 LED의 90루멘은 바로 위의 그림에서 보듯 약 70미터 전방까지 밝혀주는 밝기로 중앙으로 상당히 강한 빛을 모아 주기 때문에 진행하는 방향의 지형이나 경로를 파악하기 쉽게 해 준다. 


중앙에 크게 보이는 것이 트리플파워로 이루어진 메인 LED이고 좌우로 2개씩 있는 싱글파워 LED는 윗부분이 백색 아랫부분이 적색으로 구성되어 있다. 적색 LED는 각종 경고용으로 백색 LED는 근접 거리에서 빛을 밝히는데 사용하면 된다. 전체적인 만듦새는 단단한 편인데 생활방수는 기대하기 어려워보이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모든 조작은 상단의 큰 고무버튼으로 하면 되는데 누르는 시간과 횟수에 따라 각각 전용의 모드가 있다. 버튼 하나로 모든 제어를 하는 방식은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이기도 하다. 버튼은 돌출부가 넓고 누르기 쉬운 편이다. 다만 겨울용 장갑을 끼고는 약간 어려운 편인데 맨손이라면 버튼이 눌렸을 때 딸깍하는 느낌을 바로 받을 수 있지만 두꺼운 장갑을 낀 상태에서는 그 느낌을 알아채기 어렵기 때문인데 버튼의 접점을 좀 더 위로 올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처음 작동을 시키면 정면에서 바라봤을 때 좌측부분에 위치란 LED가 점멸을 하게 되는 데 이때의 색깔로 배터리의 남은 양을 파악할 수 있다. 제조사 설명으로는 메인 LED를 작동했을 때 50시간을 버틴다고 하지만 아마도 그 상황은 상온에서 방금 뜯은 배터리를 이용할 때일테고 실제로는 그보다 짧다는 점, 특히 겨울에는 배터리 소모가 상당히 빠르다는 점을 생각하면 예비 배터리(AAA사이즈)는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


밴드 부분은 상당히 부드러운 스판 재질이어서 맨살에 대도 큰 부담이 없다. 하지만 땀이 배면 아무래도 좋을 것은 없으니 가능하면 모자 위에 쓰는 것이 좋다. 무게가 90그램으로 워낙 가벼워서 밴드를 약간 조이지 않으면 거의 느낌이 없을 정도다. 물론 배터리를 모두 채우면 약간 묵직한 느낌은 들지만 그렇다고 머리에 부담이 갈 정도는 아니다. 


헤드 부분은 이렇게 아래로 딱딱 끊어지는 방식으로 조절할 수 있는데 직각으로 내릴 수도 있다. 헤드램프를 작동한 다음에는 가능하면 아래로 내리고 이동하는 것이 혹시 마주칠 수도 있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다. 특히나 이 정도로 밝은 헤드램프는 순간적으로 상대방의 눈을 안 보이게 알 수도 있으니 주의해서 이용해야 한다. 물론 이 제품의 밝기가 굉장히 밝은 편은 아니긴 해도 말이다.


배터리는 이렇게 본체를 분리한 다음에 넣게 되는데 본체를 연결한 플라스틱 재질의 고정 장치가 조금 불안불안하다. 그리고 본체를 분리하면 상당히 힘없이 두개로 나뉘어 덜렁덜렁하기 때문에 배터리를 갈아 끼울 때는 평평한 곳에서 하는 것이 좋겠다. 원가 절감 측면인지는 모르겠지만 헤드램프 자체의 가격이 만만치 않은데 이렇게 처리되어 있는 부분은 영 아쉬운 부분이다. 배터리는 넣을 때 딱 고정되는 느낌이 들지 않으니 잘 확인할 필요가 있다.


스팟의 간단한 조작법이다. 위에서부터 메인램프, 흐린 밝기, 연속발광, 적색 발광 순으로 버튼을 누르는 시간이나 횟수에 따라 변경됨을 알 수 있다. 버튼 하나로 여러 가지 모드의 조작이 가능한 점은 꽤 편리한 방식이지 싶다. 헤드램프를 장만할 때 그냥 메인 LED 하나만 있는 것은 배터리 관리도 쉽지 않고 밝기가 고정되어 있어 여러 상황에 대처하기 어렵기 때문에 가능하면 몇 가지 모드가 있는 제품을 고르는 것이 좋다.

산에 가는데 뭐 대단한 장비를 가져 가냐고 할 수도 있지만 자연 앞에서는 최대한 겸손하게 다가서야 한다. 특히나 언제 어떻게 기상여건이 바뀔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는 곳이 산이기 때문에 헤드램프는 사용을 하건 안 하건 항상 배낭 한 구석에 넣고 다녀야할 필수품 중의 하나다. 옷을 사는 데 비용을 투자하는 것에는 인색하지 않으면서 이런 필수 장비에 생각보다 무관심한 분들이 많은데 정 내키지 않는다면 작은 플래시라도 항상 휴대하도록 하자. 가져가서 사용하지 않고 들고 오는 것이 낫지 가져가지 않아 고생하는 것처럼 위험한 일도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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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산행을 준비하며 맞이한 친구  (14) 2014.11.03

새벽 4시 50분, 세상이 깨어나기에는 약간 이른 시간 집을 나선다. 왜 태백에 가려고 했는지 뚜렷한 이유는 없었다. 비우고 싶다는 생각이 우선이었고 차가운 바람을 좀 맞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달까. 


시외버스를 타고 태백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려 유일사행 버스로 갈아탄다. 예전에 올랐던 코스와 반대로 걷는다. 1년 전에 이곳을 지나며 남겼던 발자국과 기억들을 홀로 걸으며 하나 둘 떠올려 보고 또 그렇게 지워나간다. 조금은 가라앉은 기분으로 산행을 하게 된 것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언젠가는 거쳐야할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천천히 발길을 옮겨본다. 유일사 입구는 어느 산악회인지 단체로 와서 줄을 서서 올라가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바위 위에 나무가 자란다. 생명력이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살아있다는 것에 새삼 감사하게 된다. 비록 유한한 삶이지만 그 살아가는 동안에 적어도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가족이 있다면 그 가족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스스로의 삶을 온전하게 지켜가는 일이다. 자신을 우선 지키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유일사에서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제법 가파른 오르막의 연속이고 사방이 막혀있어서 경치를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어느 정도 올라가면 서서히 주변이 밝아지며 산의 웅장함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순간이 온다. 그래서 한 걸음 한 걸음이 소중하다. 앞으로 걷지 않으면 아무 것도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주목 군락지에 다다랐지만 아쉽게도 눈꽃은 피지 않았다. 내심 지난 날에 눈이 내려 눈꽃을 기대했지만 고고하게 서 있는 나무들은 가지 위에 눈이 쌓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슬슬 칼바람이 불어 온다. 머릿속이 하얗게 될 정도로 차고 강한 바람. 그 바람에 그냥 기대본다. 발 아래로는 어디가 끝인지 모를 긴 산자락이 펼쳐져 있다. 


역시 태백산은 설경이 제맛이다. 눈이 이렇게 아름답다는 것에 그저 감탄할 따름이다. 새벽같이 일어나 집을 나온 피로도 이곳에 이르면 느껴지지 않는다. 올라오는 동안 숨을 헐떡이며 내뱉었던 땀방울들도 찬바람에 날아가 버리고 이곳 민족의 영산이라 불리는 태백산 정상에서는 그저 바람 소리만 거세게 들려올뿐이었다. 


좁고 급경사인 길을 올라오니 이런 넓은 공간이 있다는 게 참 신기할 정도. 여기서부터는 거의 평지로 이동하게 된다. 날이 제법 맑아서 눈에 반사되는 햇살이 강하다. 손을 내밀어 만져본 눈은 도시의 그것보다 훨씬 차갑고 투명한 느낌이 든다. 분명 같은 눈인데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이렇게 다르다. 이곳의 눈은 그냥 집어 입에 넣어도 괜찮을 것같다.


아마 눈이 없었다면 나무들이 을씨년스러운 느낌을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견딘다는 주목. 내가 보고 있는 이 나무들은 어느 천년의 흔적들일까 한참 바라본다. 천 년이라는 세월동안 나무들은 얼마나 많은 바람을 맞고 또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았을까. 그 세월동안 나무들은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모두 견뎌온 것이다. 인고의 세월. 태백의 주목이 살아온 시간은 그런 것은 아닐까.


그래서인지 나무들이 내밀고 있는 가지의 방향이며 모양은 우리의 상상을 넘어선다. 애초에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의 단위를 넘어선 것이고 나무들에게 내가 지금 바라보는 이 순간은 정말 찰라도 아닌 짧은 순간일테니 지금 내 눈으로 보는 나무의 모습은 그저 오묘하고 신기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저 나무들은 이곳에 서서 세월의 바람을 견디어 나갈테지..


여기쯤 오면 사람들의 흔적이 제법 줄어든다. 올라갈 때 그렇게 북적이던 사람들이 얼마 남지 않은 천제단으로 서둘러 이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풍경을 놓치고 빨리 정상에 오른다한들 아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 산행을 하다보면 무조건 빨리빨리 정상에만 이르는 것에 집중하는 이들을 보게 되는데 그 사람의 취향이니 뭐라 할 것은 아니지만 빨리 오르면 빨리 내려가야 하는 법이다. 힘들여 멀리까지 와서 눈만 돌리면 볼 수 있는 장관을 그냥 지나쳐버리는 것은 조금 안타깝다.


그리고 도착한 천제단 중의 하나인 장군단이다. 이 제단은 보존 상태가 조금 열악하고 규모도 작아 사람들이 몰리는 곳은 아닌데 내게는 태백산의 기억의 정점에 이른 곳이기도 하다. 한참을 이곳에 머문다. 


이 표지석은 기존에는 없던 것인데 작년 9월에 이곳에 새로 세워진 것이다. 1년만에 다시 찾은 태백의 정상에서 마주치게 된 유일하게 달라진 풍경은 이 표지석이었다. 백두대간의 중추이며 민족의 영산이라 불리는 태백산은 우리나라의 12개의 명산 중의 하나로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는 의미가 큰 산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 태백의 정기를 받는다는 표현을 많이들 쓰는데 오늘 산행에서 정기를 받았을지 아니면 정기를 산에 나누어 주었을지는 감이 오지 않았다.


멀리 보이는 천왕단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태백산 사진에 자주 등장하는 모습인데 정상에 눈꽃이 피지 않아 극적인 느낌은 적었지만 나름 사람들이 걸어가는 모습이 멋드러져 보인다. 산이란 하루에도 수십 번 날씨가 변화하는지라 어느 방향에서 하늘을 바라보면 푸른물이 떨어질 정도로 새파랗지만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면 당장이라도 뭔가 내릴 것처럼 어둡기도 하다. 내심 눈이라도 내리길 바랐지만...


어지간해서 이 표지석을 제대로 찍기란 불가능하다.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제법 많았고 이 표지석 앞에는 늘 사진을 남기려는 사람들이 끊이질 않기 때문에 이리저리 카메라를 돌려 최대한 사람이 안 보이는 시점에 찍어야 하는게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 아닌가 싶은데...표지석 위에는 사람들이 뭔가를 남기고 간 흔적이 조금은 흉물스럽게 남아있다. 자기들이야 떠나면 그뿐이지만 앞으로 수 천년의 세월을 이곳을 지켜야할 돌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은 아니지 싶다.


여기서 한 번 고민을 한다. 문수봉까지 갈 것이냐 말 것이냐인데 오늘의 이동이 상당히 치밀한 동선을 따라 움직이는 지라 아직 가 보지 않은 문수봉을 거칠 경우 차 시간이 어찌될지 몰라 일단 오늘은 생각을 접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내려가보니 차 시간까지 20여 분 정도 여유가 있었는데 다음에 올라온다면 문수봉을 거치는 코스로 이동해볼 생각이다. 아마도 내년 겨울이 되어야겠지만...


당골로 하산하는 코스에서 단종비각을 마주칠 수 있다. 역사의 지난 끈들. 당사자들은 이미 없고 기억의 흔적조차 사라진 지금이지만 세월 속에 당시의 장면들은 이렇게 남아 오가는 이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우리네 삶 역시 언젠가 그 끝에 이르러 우리와 우리를 기억하는 이들조차 사라지겠지만 우리가 남겨 놓은 흔적들은 조각조각일지라도 여전히 남아 누군가 우리를 기억하게 해 줄 끈으로 남아있을 것을 생각하면 뭔가 마음이 애잔해지는 느낌도 든다.


용정의 물은 예나 지금이나 마셔볼 기회가 없다. 이곳을 찾을 때면 언제나 얼어있기 때문인데 용정의 물을 한 모금 마시기 위해서라도 눈이 내리지 않는 계절에 이곳을 다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라도 이유를 하나 만들어두면 된다. 그 이유가 비록 나에게만 해당되는 사소한 것일지라도 그것만으로도 내몸을 움직여 다시 태백을 찾기에 충분할 테니 말이다.


그리고 휴게소 바닥에 아무렇게나 앉아 먹는 사발면 한 그릇. 늘 그렇듯이 나는 산행을 할 때 무엇을 먹지 않는 나쁜 버릇이 있다. 물 한 통이나 이온 음료 한 통이 전부인데 습관치고는 몸을 꾸준히 움직여야 하는 산행에서는 좋지 않은 것이다. 아마도 예전에 운전을 할 때의 습관이 산행에 그대로 옮겨온 모양이다. 하지만 오늘은 어느 층계참에 앉아 멀리 산을 보며 라면을 먹는다. 다 내주었으니 이제 채우고 가야 한다는 생각이었을까. 뭔가 짠한 마음이 들어 라면을 먹는지 다른 무엇을 먹는지 모르고 먹는다. 하얀 수증기가 안경을 온통 뿌옇게 만든다.


하산길은 조금은 지루한 내리막의 연속이다. 이 사진에는 나도 나와있다. 이렇게 어느 겨울 날의 태백산에 내 그림자를 찍어 두었다. 해가 뜨면 이 길가에 내 그림자는 깨어나고 해가 지면 깊은 잠에 빠져들며 앞으로 남아 있는 시간들을 기억하겠지. 그리고 돌아서서 내려오는 길에 내 마음의 한 조각을 떼어 그림자의 주머니에 넣어 준다. 잘 간직하고 있으라고 말하면서...


"아직 만나지 못한 내 그리움을 찾으러" 나뭇가지에 묶여 있는 작은 천조각에 쓰인 글을 보고 또 본다. 오늘 내가 태백에 온 것은 이것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산행에서는 그 산행을 나 스스로에게 납득시킬 수 있는 이유가 불현듯 찾아지기도 한다. 기억을 지우려..라는 조금 엇갈린 이유로 집을 나섰지만 결국 내가 이곳을 찾은 것은 아직 만나지 못한 내 그리움때문이었다. 그 그리움의 대상이 무엇인지 혹은 누구인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그저 저 글귀를 보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것이면 됐다.


그리고 다시 도시로 내려왔다. 짧고도 또 짧은 하루였다.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서 자정이 가까울 무렵 다시 집에 들어갔음에도 오늘 하루는 내게 너무나 짧았다. 


오늘 글은 산행기라 하기보다는 하루의 일기같은 느낌이다. 

하루의 일기라 하기보다는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는 해묵은 일기장같은 느낌이다.

해묵은 일기장이라 하기보다는 아직 만나지 못한 그리움을 찾아 떠나야 할 도착하지 않은 기차 시간표 같은 느낌이다.


Nikon D700, AF Nikkor 35mm f2D, Panasonic LX5



올해를 마감하는 날. 어디를 올라가볼까 생각을 했다. 원래는 북한산을 오를까 했는데 왠지 마음이 남쪽으로 향해 청계산으로 발길을 돌렸다. 

청계산은 높이 618 m이며 주봉인 망경대(望景臺)를 비롯하여 옥녀봉(玉女峰) ·청계봉(582 m)·이수봉(二壽峰) 등의 여러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이수봉은 무오사화(戊午士禍)에 연루된 정여창이 이곳에 숨어 위기를 두번이나 모면하였다고 지어진 이름이다. 서쪽에 관악산(冠岳山), 남쪽에 국사봉(國思峰)이 솟아 있으며, 이들 연봉과 더불어 서울의 남쪽 방벽을 이룬다. 남북방향으로 뻗어 있는 능선은 비탈면이 비교적 완만하며 산세도 수려하다. 서울 근교에 위치한데다 서쪽 기슭에 서울대공원을 안고 있어 하이킹 코스로 찾고 있다. 정상인 망경대는 출입이 통제되어 있어 북쪽의 청계봉이 정상을 대신하고 있다. 남서쪽 중턱에는 신라 때에 창건된 청계사가 있고, 동쪽 기슭에는 경부고속도로가 동남방향으로 지난다. -출처 두산대백과 사전


청계산도 오르는 코스가 제법 많은데 보통 매봉까지 많이 가는 편이다. 오늘은 옥녀봉에 들러 매봉까지만 가보기로 했다. 만경대와 이수봉은 미뤄두어도 괜찮다. 흔히 산에 오를 때 봉우리를 많이 정복한다던가 얼마나 빨리 올랐다던가 하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는데 그렇게 한번에 다 올라가 버리거나 마치 달리기를 하듯이 산을 오르는 것은 어쩐지 나와는 어울리지 않다 싶다. 산이 줄 수 있는 것들은 가능한 많이 받아오려면 천천히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며 걸어야하지 않을까...

북한산둘레길에 대한 글을 쓸 때도 그렇고 이전의 산에 대한 글을 쓸 때도 거리와 시간이 적힌 도표를 올리곤 했는데 이제사 생각해보니 그런 숫자에 얽매어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이 된다. 물론 그 자료들이 후에 비슷한 곳을 가는 이들이나 나 자신에게 참고자료가 될 수는 있겠지만 자칫 그 수치에 연연하며 정작 보고 듣고 느껴야할 것들을 잃고 있지는 않았었는지 아쉬운 마음이다. 일단 이번 글에서는 거리, 시간이 적힌 도표는 한번 빼보기로 한다.


등산로 입구에서 간단하게 정비를 하고 길게 난 길을 천천히 걷는 것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역시 산은 눈에 덮혀 있을 때 제맛이 난다. 발 아래로 들려오는 뽀드득 소리, 스틱이 눈에 미끄러지는 소리...그렇게 눈이 만들어내는 소리와 겨울이 주는 차가운 바람의 향기에 취해 천천히 길을 가 본다. 오늘은 오랜만에 메인 카메라를 들고 나왔다. 겨울에 이 녀석을 들고 다니는 것은 꽤나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서울 날씨가 올해 들어 가장 추운 상황에서 믿을 것은 역시 이 녀석뿐이다.


사람들이 주로 가는 매봉으로 가는 길도 제법 많다. 하지만 일단은 옥녀봉에 갈 생각이다. 왠지 하얀 소복을 입은 처자가 '서방님 어서 옵소서'라고 부르는 것같은 느낌이 들어서인데 정말 그런 처자를 만나게 되면 이미 이 세상 사람은 아닐테니...


청계산은 서울에서 접근성이 워낙 좋고 연예인들이 자주 출몰한다하여 남녀노소가 자주 찾는 산이다. 산세가 그리 험한 편도 아니고 길도 잘 나 있어서 그렇겠지만 역시 간밤의 눈은 이미 여러 등산객들의 발자국을 따라 잘 다녀진 후였다. 겨울 산행이 매력적인 이유는 역시 눈이다. 눈 내린 산을 걷는 느낌은 참 무엇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가 막히달까


청계산에도 진달래 능선이 있다. 조금 더 위로 올라가면 개나리 능선도 있는데 주변에 그 꽃들이 많이 피기때문에 그런 이름을 지어주었지 싶다. 물론 겨울이니 진달래꽃 만발한 풍경은 볼 수 없지만 대신 눈꽃이 핀 것을 볼 수 있으니 나무 위에 쌓인 눈꽃들을 때로는 진달래로 때로는 개나리로 생각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사람들이 많이 다녔다고는 하지만 계단들은 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눈에 푹 파묻혀 있다. 겨울 산행에는 스틱(콩글리쉬라 한다)을 꼭 가져가는 것이 좋은데 눈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눈으로만 봐서는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스틱은 미끄러짐을 예방하는데 아주 중요한 수단이다. 오늘도 여러 번 넘어질뻔 했는데 스틱을 부여잡고 버텼다. 물론 대신 손에 가해지는 무리는 어쩔 수 없지만...


진달래의 어원은 이렇다. 피맺힌 슬픔이 꽃잎에 닿아 붉은 색이 되었다는 것. 이별의 한이 어느 정도이면 피눈물이 날 수 있을지 상상하기도 어렵다. 그러고보면 우리 설화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참 많이 있다. 망부석 설화도 그렇고 대부분 이별을 겪은 여인들의 한이다. 왜 우리 여인들은 그리도 한이 많았을까.


능선길은 역시 바람이 차다. 안경을 쓴 탓에 뭔가 얼굴에 쓰면 안경이 온통 뿌옇게 되는 까닭에 그냥 귀만 가리고 걷는다. 두툼한 겨울용 잠바는 이미 배낭 안에 들어있기 때문에 얼굴을 바람으로부터 막을 대책이 없다. 마스크를 쓰고 고글을 끼면 된다고도 하는데 안경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겨울 산행의 특색이기도 하다. 


진달래능선을 타고 옥녀봉으로 이르는 길은 아주 무난하다. 게다가 천천히 걸으면 땀이 날 틈도 없다. 오히려 찬바람을 어찌 피할까 고민을 하다보면 어느새 정상에 이르게 된다. 산행이 부담스럽거나 처음 가보는 경우라면 옥녀봉만 간단히 둘러 보고 내려오는 것도 괜찮다. 무난한 길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아주 짧은 길은 아니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거나 산책을 하기에 적당하다.


능선에서 바라본 양재쪽 전망. 35mm렌즈는 참 편하기도 하면서 어떤 때는 애매하기도 한 화각인데 보통 사람이 두 눈을 뜨고 바라보는 각도가 대충 35mm렌즈와 비슷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렇게 넓게 펼쳐진 풍경을 접하게 되면 뭔가 부족해보인다. 실제로 보이는 것은 사진보다는 가깝고 넓기 때문인데 그런 화각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어떤 렌즈도 사람 눈보다 나을 수는 없으니까..


나 다시 진달래로 피어 그대 가슴으로 스몄으면, 나 다시 진달래로 피어 그대 타는 가슴으로 스몄으면... 작사가들은 시인들 못지 않다. 거기에 음악까지 어우러지면 감정의 전달은 몇배가 된다. 겨울산에서 빨갛게 물든 진달래를 떠올릴 수 있게 만든 그런 가사였다. 


산에 오르는 목적이 정상에 다다르기 위함은 분명 아니지만 정상이란 한번 숨을 고를 수 있는 그런 여유를 주는 곳이다. 오를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다는 표현으로 인생을 등산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살아간다는 것이 그렇게 정상이 있고 바닥이 있고 하는 식으로 구분지어지지는 않는다고 생각된다. 굳이 산행을 인생에 비유하기보다는 걸음걸음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어느 소원들이 쌓여 저렇게 돌탑이 되었나. 아니면 다른 무엇을 기리기 위한 것일까. 오늘 돌아본 코스 중에 유일하게 만난 돌탑이었는데 쌓인 폼이 예사롭지 않다. 저 돌을 쌓은 사람은 이미 이곳에 없지만 그 사람이 남긴 감정이랄까 그런 느낌은 여전히 이곳을 맴돌고 있었다. 그 바람은 이루어졌을까? 아니면 영원한 꿈으로 남아 있을까?


다른 나무들과 떨어져 눈밭에 나무 하나가 던져진 듯이 자라고 있다. 조금 더 가까이서 사진에 담았다면 큰 나무라 해도 손색이 없겠지만 실제로 이 녀석은 아주 작아 눈에 잘 띄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줄기며 가지며 무엇 하나 큰 나무들에 비해 손색이 없다. 이 추운 겨울날을 온전히 몸으로 받아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존재일지라도


옥녀봉 정상에서 보이는 과천 방향. 저 멀리 관악산이 보인다. 이렇게 보니 꽤 웅장하다. 오늘 관악산에 오른 분들도 제법 많겠지 싶다. 사진에는 잘 안 보이는데 아래 쪽으로 경마장이 보인다. 경마장은 전에 연애할 때 한번 가봤는데 돈을 쓰지 않을 생각이라면 꽤 괜찮은 데이트 코스다. 물론 지독한 담배연기는 감수해야 하는데... 경마장도 금연이 추진될까?


온길을 되돌아 이제 매봉으로 향한다. 옥녀봉 쪽에서 매봉으로 가려면 가장 빠른 길은 역시 이길인데 지도에서 깔딱고개라고 부르는 곳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깔딱고개와는 아주 다르게 생겼다. 계단이 전체적으로 한 1,500개 정도 되는 것같다. 올라갈 때는 괜찮은데 하산길로는 이길은 택하지 않는 편이 좋다. 무릎에 무리가 많이 가고 저렇게 눈이 쌓인 계단은 아이젠이 없으면 넘어지기 십상이다.


계단마다 번호를 적어두었다. 이렇게 번호가 적혀 있으면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사람들은 기운이 나기보다는 힘이 더 든다. 게다가 위를 올려다봐도 계속 계단만 있다면 약간 막막한 느낌도 든다. 하지만 청계산의 이 구간은 그리 길지 않기 때문에 숨이 넘어갈 정도의 깔딱고개라고 하기는 약간 어색하다. 설악산 오색약수쪽 계단 정도 되면 '아, 이거 보통 일은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지만...


길은 계단과 약간의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서초구에서는 인체공학적 설계를 한 계단이라고 강조를 하고 있는데 내 몸이 이상한 건지 그렇게 강조가 된 계단은 오르기가 더 어려웠다. 오르는 계단은 다리 힘보다는 팔 힘으로 올라가야 피로가 덜 하다. 오늘은 SLR을 가져와서 목에 매고 다녔던지라 양손이 비교적 자유로워 스틱을 제대로 활용했다.


이 정도 오면 거의 다 와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청계산의 정기를 준다는 바위인데 누구 생각인지 참 기가 막히게 이름을 붙여놨다. 덕분에 저기 조금 서 있으면 사람들이 저 틈 사이로 부지런히 빙빙 도는 것을 볼 수 있다. 많이 돌 수록 정기를 많이 받는 모양인지 4-5번 도는 처자분도 있었다. 기가 많이 부족해 보이는 얼굴이긴 했지만...


매봉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이른 아침에도 제법 많은 이들이 이쪽 코스로 오르고 있었다. 겨울 산행의 잔재 중의 하나는 다른 분들이 입고 온 옷이나 신고 온 신발 메고 온 배낭 등을 관찰하는 것. 청계산은 다른 산에 비해 오르기가 어렵지 않아 등산화를 신지 않고 운동화만으로 오르는 분들도 제법 많다. 다른 계절에는 괜찮겠지만 겨울 특히 눈 내린 날이라면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이제 거의 막바지다. 이곳을 오르면 매바위를 만날 수 있다. 사실 매봉보다 매바위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더 좋다. 오늘은 비교적 맑은 날이어서 제법 멀리 보이지 않을까 생각을 하면서 오른다. 사람들이 없는 틈을 노려 사진을 찍으려다 보니 제법 멈추는 시간이 많아서인지 그렇게 힘이 들지는 않았던 산행이었다. 나와 비슷하게 가던 오리털 패딩으로 무장한 어느 분은 결국 쉼터에서 얼굴이 시뻘개져서 숨을 몰아쉬고 있었는데 땀이 죽죽 흘러내리는 상황에서 패딩을 입고 걸어가는 것은 정말이지 말리고 싶다.


청계산 매바위. 해발 578미터다. 이 바위는 제법 위가 널찍해서 여러 명이 올라가도 넉넉하다. 정면으로 뻥 뚫려있어서 아주 경치가 좋은데 생각보다 시야가 아주 멀리까지 보이지는 않아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속이 시원해질 정도로 멋진 경치를 볼 수 있는 장소다. 매봉은 이곳에서 100미터만 더 이동하면 되는데 매봉에 도착하면 사람들로 북적이기 때문에 정비할 것이 있다면 이곳에서 하는 것이 좋다.


매바위에서 바라본 전망이다. 이 사진은 파노라마로 붙여서 만든 사진이니 눌러서 크게 보면 된다. 아무래도 여러 장을 붙여서 만들다보니 이미지 정보의 손실이 큰 것이 아쉬운데 원본 파노라마는 제법 웅장하고 세밀한 맛도 있지만 이곳에 올리기에는 20메가나 되어 아무래도 무리다. 1280 해상도로 변경해봤다. 


그리고 청계산 매봉이다. 이곳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역시 산 정상에서 볼 수 있는 음주 문화가 여지 없이 벌어지고 있어 아쉬운 생각이다. 왜 산과 술이 연결이 되는지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지만 그것이 그 사람들의 산을 즐기는 방식이라면 달리 뭐라 할 여지는 없다. 다만 음주로 인해 다른 이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매봉에는 사람들이 많아 표지석만 따로 찍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몇몇 분 얼굴은 모자이크를 해서 올려본다.

이렇게 올 한해를 마무리했다. 잃은 것이 있는만큼 얻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인생은 제로섬이고 올 한해만으로 봐도 역시 그렇다. 잃고 얻은 것을 정확하게 하나하나 그 가치를 비교할 수는 물론 없는 일이지만 1년이라는 하나의 틀에서 보면 모든 것은 마치 아무 것도 없었던 것과 같은 상태로 돌아간 것이다. 그러니 서운해할 이유도 없고 기뻐할 이유도 없다. 냉정하게 생각될 수도 있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인생 역시 무수한 얻음과 잃음 속에서 결국은 시작하던 때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다음 산행은 어디로 할까 생각을 한다. 같은 자연이지만 산마다 주는 기운은 정말 다르기에 가능한 많은 곳을 그리고 여러 방법으로 다녀보고 싶다. 

그나저나 3년 전에 구입한 등산화가 슬슬 기능(고어텍스)이 다 했나 보다. 산에 간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던 시절에 메이커만 보고 덥썩 집어온 녀석인데 어느 새 정이 들어 구석에 놓여 있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짠하기도 하다. 기능성은 비록 점점 사라져 가지만 발에는 점점 더 익숙해져 간다. 어찌 보면 모순같은 일인데  물에 빠지지 않게만 조심하면 몇 년은 더 내 발이 되어주지 않을까 싶다.


Nikon D700, AF Nikkor 35mm f2D 






인왕산은 조선의 한양을 기준으로 볼 때 우백호 즉 오른쪽의 흰호랑이라 불리는 영산이다. 인왕산은 조선 개국 초기에 서산(西山)이라 지칭하다가 세종때부터 인왕산(仁王山)이라 불리게 되었다. 본래 인왕이란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신(金剛神)의 이름인데 조선왕조를 수호하려는 뜻에서 산의 이름을 개칭하였다고 한다. (출처: 다음) 강감찬 장군이 호랑이를 호통으로 몰아냈다는 전설도 들려오는 등 여러 기이한 이야기들이 많아 한양에 사는 이들에게는 아주 친숙한 산이 이곳 인왕산이다.


오늘 코스는 여러 코스 중에 독립문역에서 출발하여 인왕산 정상을 거쳐 창의문을 들러 경복궁역으로 내려오는 코스로 정했다. 고도가 313미터로 나오는데 정확한 인왕산의 높이는 338미터라고 한다. 인왕산은 청와대에 가까운 까닭에 특정 구간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고 오르내리는 동안 내내 경찰들을 마주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여유가 된다면 경복궁까지 가보는 것도 괜찮다.


어제 눈이 내려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내심 눈 덮인 산을 기대했지만 뽀드득 소리를 내며 눈을 밟을 일은 거의 없어서 조금 아쉽기는 했다. 평생을 서울에 살면서 인왕산을 이제야 올라가봤다는 것에 의미를 좀 더 두기로 하자. 독립문역 2번 출구로 나와 왼쪽 샛길을 따라 아파트를 곁에 두고 조금 오르다보면 인왕산에 오를 수 있는 등산로가 나온다.


인왕산의 특징 중의 하나는 바위가 많다는 것과 서울성곽길 중의 일부가 이곳에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서울성곽길 엄밀하게는 한양도성(길)로 사적 10호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사적 10호는 한양도성 전체를 포괄하고 있어 내가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전체를 다 소개하기는 어렵지만 될 수 있는 한 여러 곳을 다녀볼 생각이다.


서울성곽에 대한 안내 표지판을 볼 수 있다. 서울 전역에 이런 안내판들이 대개 반사재질을 택하고 있는데 항상 깨끗하게 하지 않으면 글자를 제대로 알아보기 어렵다는 점은 단점이랄까...2중으로 되어 있어 글자가 겹쳐 보이기도 하는데 미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실용성면에서는 그다지 좋은 평가를 하기는 어렵겠다.


인왕산 등산로는 거의 계단으로 이루어져있다. 어찌 보면 편한 것같지만 상대적으로 무릎에 무리가 많이 가는 형식이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계단에는 눈의 흔적은 거의 없고 그나마 하얀 것들은 염화칼슘인데 주변에 경찰들이 경비를 서고 있어 눈이 쌓일 틈이 없다. 문득 전방 군생활 기억이 떠올랐던 순간인데 눈이 내림과 동시에 쓸어야했던 그런 시절이 지금도 여전한가보다.


애초에 등산 시작점의 고도가 높아서인지 얼마 가지 않아 정상이 보인다. 성곽을 옆에 끼고 걸으면 제설작업이 되어 있지 않아 눈 밟는 느낌이 좀 나긴 하는데 성곽만 따라가다가는 중간에 길이 끊어지기도 하니 주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길이 거의 능선 형태로 되어 있어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막을 대책이 없으니 겨울에는 준비를 철저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


겸재 정선이 그린 인왕제색도가 정확히 어느 방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얼핏 비슷한 것같기도 하다. 그림에 나오는 집은 지금은 무엇이 되어 있을까? 휴일이라 사람들이 제법 있을 줄 알았는데 열 명도 채 만나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근무서는 경찰들을 더 많이 만났다. 인왕산에 이렇게 경계가 삼엄한 것은 과거 1.21사태로 알려져 있는 그 사건의 여파가 아닐까 싶다.

성곽을 따라 눈이 쌓여있고 그 눈을 따라 길이 보인다. 그리고 그길을 조용히 걸어가본다. 바람은 제법 찼지만 찬바람이 오히려 머릿속을 싹 비워주는 그런 느낌이 들어 꽤나 괜찮았던 산행이었다. 하늘이 흐린 곳과 맑은 곳이 나뉘어 있어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면 파랗고 어느 방향에서 보면 회색빛이었던 것도 재미있었던 점이랄까.


오르고 내리는 길이 거의 계단이다. 흙길을 걸을 때에 비해 발이나 무릎에 가해지는 충격은 훨씬 크다. 그런 충격을 줄이는 방법은 천천히 가는 것. 정상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앞만 보고 씩씩거리며 산에 오르면 산은 오만한 인간에게 피로감을 선사한다. 주변 경관도 즐기며 차분히 산과 이야기하며 걸으면 힘도 들지 않고 어느새 정상에 다다르게 된다. 산에 오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겸손이다.


눈이 좀 더 내렸다면 하는 아쉬움도 남지만 그래도 어제 눈이 내린 것이 참 다행이다 싶었다. 눈 쌓인 산은 참 볼 때마다 멋지다. 그리고 그 속을 걸어나간다는 것은 꽤나 즐거운 일이기도 하다. 인왕산은 전체적으로 등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기 때문에 어느 코스를 선택하더라도 오전에 출발한다면 점심 전에 내려올 수 있다. 


멀게만 느껴지던 정상이 바로 눈앞까지 다가온다. 좌우로 넓게 펼쳐진 서울 시내가 죽 둘러서 보이는데 제법 시원스럽고 볼만하다. 오른쪽 멀리 청와대도 보이는데 사진 금지라고 써 놓은 표지판이 하도 많아 그쪽은 그냥 눈으로만 보고 말았다. 굳이 사진으로 남길만한 것도 아닌 것 같고...


제일 헷갈리기 쉬운 구간인데 성곽길 따라서 올라가면 길이 없다. 좀 더 오른쪽에 길이 나 있으니 그곳으로 가야 한다. 나도 처음엔 이곳이 길인가 해서 올라가다가 중간에 보이는 작은 계단으로 얼른 방향을 바꿨다. 성곽들이 복원된 것은 좋은데 너무 깨끗해서 주변과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느낌도 든다. 가능하면 오래된 돌을 구해다가 만들었으면 어떨까 싶기도 한데 쉬운 일은 아니겠지 싶다.

이길을 올라가면 정상이다. 역시나 눈은 거의 없어 미끄러지는 위험없이 편하게 오를 수 있었다. 다른 계절에는 인왕산에 사람들이 제법 많다는데 겨울이라 사람이 없는 것인지 크리스마스라 없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사람이 적은 것이 산에 오르기에는 좋은지라 오히려 오늘 인왕산을 찾은 것이 괜찮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경찰들이 여기의 눈은 안 치워주는 배려를 해서 처음으로 눈을 쓸어주고 한 바퀴 빙 돌며 서울 시내를 바라본다. 셀카라도 찍어보고 싶었지만 바로 앞에 초소가 있고 경찰들이 왔다 갔다 하고 있어서 영 민망해서 그만 두기로 했다. 혼자 산에 다니면 아쉬운 점 중의 하나가 내가 담긴 사진이 없다는 것인데 여태 사진을 취미로 했으면서도 나를 찍은 사진은 거의 없는지라 그냥 그려려니 하기로 했다.


이쪽 방향으로는 사진을 찍어도 딱히 뭐라 하지 않길래 한장 담아봤다.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일찍 정상에 올라와서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고 다른 산과는 다르게 초소와 근무하는 이들이 왔다갔다 하고 있어 정상에 올랐다는 느낌이 그리 들지 않는 것도 인왕산의 특징이라면 특징이겠다. 나는 배낭에 등산 의류 끼어 입고 올라가고 있는데 휙휙 날아다니는 젊은 경찰들을 보면 좀 민망한 느낌도 있고...


하산길 역시 깔끔하게 제설작업이 되어 있다. 이쪽 방향은 창의문으로 가는 방향이다. 멀리 보이는 풍경이 참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아마도 눈이 쌓인 덕분이 아닐까 싶은데 눈이 쌓이지 않은 겨울산은 뭐랄까 조금은 쓸쓸한 느낌이 강한데 눈이 이렇게 덮혀 있으면 쓸쓸한 느낌은 여간해서는 들지 않는다.


희한하게 생긴 큰바위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다. 뭔가 전설이라도 담겨 있음직한데 주변에 뭐라 적혀있지는 않았다. 분명 무슨 사연이 담겨 있는 것이 분명한데 집에 돌아와 검색을 해봐도 알 길이 없다. 오늘 산행에서 본 것 중에 제일 특이한 것은 이 바위 두 개였다.


조금 걷다가 이정표를 만나게 되는데 사진에 보이는 기차바위로 향하는 길과 창의문으로 향하는 길이 갈리게 된다. 기차바위는 수락산이 유명하다고 하는데 인왕산 기차바위도 꽤 괜찮다고 한다. 사실 인왕산에서 바위 구경하는 것도 흥미진진한 일인데 독립문역에서 올라오는 코스에서는 유명한 바위들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 아니면 내가 모르고 지나쳤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오늘 목표는 창의문 방향이니 기차바위는 다음으로 미뤄둔다.


성곽을 따라 죽 내려가는 계단이 이어져 있다. 계단만 보고 걷는 것도 좋지만 가끔 멈춰서 주변을 둘러보면 경치가 꽤나 볼만하다. 멀리서 바라보는 도시는 그래도 운치가 있다. 그안으로 들어가 삶 자체와 마주치면 여러 감정들이 몰아치겠지만 이렇게 멀리 떨어져서 보면 그저 하나의 풍경처럼 다가온다. 가끔은 삶 자체도 멀리서 볼 필요가 그래서 있는 것이 아닐까.


멀리 보이는 북한산 자락. 이렇게 보니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웅장해보인다. 산은 멀리서 보는 것도 좋고 가까이 보는 것도 좋다. 인왕산도 저 북한산 자락에서 이어진 것처럼 보인다. 중간중간 잘리긴 했지만 산줄기가 뻗어있는 모양을 보면 능선따라 죽 걸어가면 북한산에 이를 것만도 같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인 하산길이다. 이길을 따라 죽 걸어내려오면 오래지 않아 도로와 만나게 된다. 그 도로를 가로질러 조금 더 걸어가면 윤동주 시인의 언덕을 만날 수 있고 조금 더 걸어가면 창의문이다. 창의문에 대해서는 다른 글로 올리기로 하겠다. 그곳에 대해 적을 내용도 제법 되고 서울성곽길 전반에 대한 글도 있어야 할 것같다는 생각에서다.


이정표를 보다가 뭔가 희한한 게 보인다. "인왕산에서 굴러온 바위" 저것은 대체 무엇인가.. 인왕산이 바위로 유명하다고 하긴 하지만 바위가 굴러 내려온 것이 있나 싶어 호기심이 발동한다. 창의문으로 바로 이동하려다가 잠깐 들라보기로 했는데...


바위 하나가 굴러 내려온 것이 아니라 여러 바위(?)들을 묶어 놓은 것이다. 나름 바위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가 되는 녀석도 있지만 대개 작은 돌들이다. 인왕산 자체가 바위산이다보니 이런저런 이유로 바위들이 굴러내려오는 모양인데 굴러내려온 바위들을 저런 식으로 모아둔 것도 재밌다.


그리고 만나게 되는 장소가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다. 이곳이 윤동주의 이름을 따게 된 것은 그가 실제로 이 근처에 살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큰 바위 하나에 시인의 시를 앞뒤로 적어두고 있어 제법 분위기가 괜찮다. 여기서 창의문 쪽으로 좀 더 이동하면 윤동주 기념관도 있다는 데 어쩐 일인지 내가 가는 방향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시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쉽지 않다고 생각된다. 자기 내면을 깊게 그리고 투명하게 들여다봐야 만날 수 있을까말까한 자신의 본질. 그 본질을 온전히 밖으로 끄집어 내어야 하는 고통을 감수한 후에야 비로소 시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너무나 익숙한 시지만 한참 그 앞에 서서 싯구를 반복해서 읽어본다. 나는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가...부끄럽다면 떳떳해지자고 생각을 하면서...


Panasonic LX-5





지난 글이 길어져서 새로 글 창을 하나 열어 14구간 산너미길을 이어 적어 본다. 산너미길은 북한산둘레길의 난이도 '상'구간 중의 하나로 둘레길에서 난이도가 '상'인 구간은 모두 3개(5구간 명상길, 14구간 산너미길, 16구간 보루길)인데 그중의 하나인 길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구간은 산을 넘어 가는 길이다. 그리고 그 산은 다름 아닌 사패산이다. 그리고 전체 난이도 '상'인 구간 중에 이곳 14구간이 가장 힘든 곳으로 알려져 있다.

국립공원의 안내상으로 이 구간은 2.3Km, 소요시간은 1시간 10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실제로 걸은 거리와 측정상의 거리가 다를 경우는 오르막과 내리막 특히 계단이 많은 곳으로 생각하면 된다. 이 구간은 전체적으로 고도가 제법 올라가고 계단이 높고 길게 이어져 있는 편이다. 그리고 겨울인데다가 눈까지 쌓여있는 지역들이 있음을 감안하면 실제 이동 속도는 더 오래 걸릴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다.


산너미길을 알리는 입구다. 입구에 다다르기 전에 화장실이 있으니 미리 이용하도록 하자. 그리고 오늘 이후로 이곳을 찾는 분들이라면 가능하다면 아이젠을 준비하기를 권한다. 눈이 내린 날이라면 아이젠은 필수인데 이 구간은 꽤 오래 오르막이 있고 능선 구간도 있는데다가 내리막 계단이 제법 길어서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난 고무신 신고도 대청봉에 오른다'고 하실 분도 있겠지만 막을 수 있는 위험이 있다면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약간 뒤에서 찍은 사진인데 이정표에 사패산이 보인다. 역시 등산의 유혹에 빠지게 되는 지점이다. 오늘은 겨울산행 준비도 다 했겠다. 무엇보다 먹을 것도 있다. 1.9km... 가볼만하다는 생각이 여전히 괴롭혔지만 둘레길 완주 후로 미뤄두기로 한다. 망설이는 나를 흘깃 쳐다보고 아저씨 한 분이 스틱을 한 개만 들고 유유히 걸어 올라간다. 배낭도 없이 오리털 파카를 입고... 괜찮았을까 모르겠다. 아무튼 이번 구간만 해도 사패산의 6부 능선까지는 오를 수 있으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기로 한다.


들어서자마자 계단이다. 이전 구간의 평온함과 약간의 지루함은 이 구간에서 모두 날려버릴 수 있다. 특히 겨울이라면 제법 긴장감마저 느낄 수 있는 구간이다. 역시 이 구간도 제법 한산했는데 정상에서 한 부부를 만난 것을 빼고는 사람의 흔적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좌우로 겨울색 옷을 입은 나무들이 벗이 되어 천천히 길을 걸어본다.


왼편으로 계곡이 보이고 오른편으로는 길이 보인다. 난 이런 길을 제법 좋아하는데 얼지 않은 물 흐르는 소리가 적막함을 깨고 들려오는 느낌이 참 좋다. 겨울이 모든 것이 숨죽이고 있지 않음을 흐르는 물은 이렇게 보여준다. 여기까지 사진을 보신 분들 중에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셨다면 눈치가 빠른 분이다. 스틱을 들고 카메라를 꺼냈다 뺐다를 반복하다가 이미지 비율 버튼이 4:3으로 바뀐 것을 알아채지 못했던 것. 이하 사진들은 전부 4:3 비율이다..


물이 얼음이 되지만 그 얼음을 녹이는 것이 또 물이다. 사실 물과 얼음은 같은 것인데 눈에 보이는 것은 이렇게 다르다. 살아가면서 실상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을 우리들은 얼마나 다르다고 생각하고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해 준다. 결국은 물이고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이 물이다. 上善若水[상선약수]란 말을 또 한번 되새기게 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렇게 혼자 걸으면 생각이 많아진다. 그리고 이게 혼자 걷는 길의 장점이기도 하다.


아직까지는 길가에 눈도 없고 드문드문 햇살이 들어 그리 어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길이 이어진다. 황량함이 느껴지지만 그 속에서 생명의 끈을 이어가는 나무들이 꿋꿋이 서 있다. 이전 구간에 비해 확실히 숨이 차 오르는 지역들이 많아지는데 걷는 페이스를 적당하게 잘 조절해야 한다. 이 구간부터 시작했다면 그래도 괜찮지만 이전 구간에서 이어서 오는 경우라면 체력이 많이 소모된 상태기 때문이다.


'울띄교'라고 적힌 것이 맞나 한참 들여다본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 주변을 둘러보지만 설명이 없어 아쉬웠다. 스틱을 들고 다닐 때는 이런 나무 다리 구간에서는 가능하면 바닥을 찍지 않도록 하자. 나무가 패일 수도 있고 스틱의 촉부분이 나무 틈 사이에 끼는 경우도 있기 때문인데 살짝 들고 이동하면 된다. 고무다리를 씌운 분이라면 상관없겠지만 수시로 고무다리를 씌웠다 뺐다하는 것도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사실은 내가 게으른 것이다-


가지런히 놓인 돌로 만든 계단이 정겹다. 한발한발 올라가면서 산이 이렇게 부르는구나 생각을 한다. 그러고보니 왜 갑자기 산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나 스스로도 궁금해진다. 군대에서 그렇게 지겹도록 다니던 산이라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생각까지 했던 곳인데...아마 차가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도 해봤지만 다시 차를 들여도 오히려 산에 가려고 더 많이 이용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번에 만나게 되는 다리는 갓바위교. 이것은 바위 이름에서 빌려왔겠구나 추측을 해본다. 산너미길이라는 이름에 참 어울리게 이 구간은 산 넘고 다리 건너는 일이 많다. 길이란 결국은 혼자서 걸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도 결국은 곁을 떠나게 되고 자신의 마지막 순간 역시 고독하게 홀로 가는 것이니.. 가끔은 홀로 걷는 일에 익숙해질 필요도 있지 않을까..물론 누군가 곁에서 토닥여주는 것이 그래도 더 좋긴 하다.


바로 만나게 되는 사패교. 사패산 안으로 들어와 있으니 이런 이름의 다리도 하나 있어야지 싶다. 사패산은 어느 소개에 따르면 북한산 귀신들도 잘 모르는 숨겨진 산이고 가장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라 한다. 양주와 의정부에 걸쳐 있는 산이고 무엇보다 이곳이 천연의 생태를 유지하게 된 계기는 얼마 전까지 군사보호구역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었기 때문이다. 대략 등반 시간은 4시간 정도 소요된다는데 꼭 들러볼 곳으로 기억해둔다.


사람의 손이 많이 닿지는 않았지만 길은 그래도 곧게 나 있다. 길이라는 단어는 참 내게 정겨운 단어다. 사진을 시작하고서부터 길 사진이 제법 많은 편인데 길 자체에 대한 생각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왠지 길이라는 것이 내가 살아가는 모양새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좋아하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앞으로도 길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이어질 것이고...


고개를 살짝 넘을 무렵 슬슬 지난 폭설의 자취가 나를 마주 한다. 꽤 오랜 내리막인데 그나마 사람들도 거의 다니지 않아 그대로 얼어 있다. 여기서부터는 아이젠을 끼고 가는 것이 좋다. 세상 좋다는 등산화도 아이젠만 못하기 때문인데 여기서부터 이 구간의 정상 전망대까지는 아이젠을 그대로 장착하고 걷기를 권한다. 처음 몇 발을 괜찮으려니 생각하고 가다가 스틱으로 간신히 버텼기 때문이다.


한참을 걷다보면 능선길이다. 이제 좌우로 전망이 시원하게 뚫리고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어오기 시작한다. 확실히 겨울 산행이 신경쓸 것이 많은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옷도 부지런히 갈아입고 장갑도 갈아 끼워주고 귀마개도 해 보고 하다보니 배낭을 몇 번을 들었다놨다를 반복해야 한다. 그것이 귀찮다고 그냥 버티다가는 산의 무서움을 온몸으로 깨닫게 된다. 겨울 산행을 가는 이들의 배낭이 그렇게 커 보이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멀리 의정부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의정부까지 왔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기도 하다. 북한산이라는 산자락이 얼마나 넓게 뻗어 있는지 새삼 느끼게 되는데 주변을 죽 둘러봐도 능선들이 죽죽 이어져 있어 어디가 끝인지 모를 정도다. 주변에...특히 서울을 끼고 이렇게 광활한 녹지대가 살아 있구나라는 것을 이제사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 갈 곳이 정말 많다고 새삼 생각이 든다.

여기 전망대에서 처음으로 한 부부를 만났다. 등산장비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지역 주민이 아니셨나 싶은데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네 주신다. 부부가 같이 산에 다닐 수 있다는 것은 꽤나 행복한 일이다. 다시 말하면 한평생을 같이 살아가는 두 사람이 비슷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전혀 다른 삶의 길을 살아오다 어느 갈림길에서 만나 이어지는 길을 함께 걷는 것. 그 앞에 어떤 고비가 있건 행복이 있건 온전히 두 사람이 함께 마주하는 것. 그것이 가능한 것이 부부이고 가능해야 부부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내리막 계단은 경사가 급하고 제법 길게 이어져 있다. 다행히 아직 이곳의 눈은 모두 녹아 아이젠을 사용하지 않고도 걸을 수 있지만 내리막 구간은 무엇보다 무릎에 가는 충격이 상당하기 때문에 스틱을 잘 활용해야 한다. 가뜩이나 부실한 체력인지라 스틱 쓰랴 사진 찍으랴 정신이 없지만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 풍광을 보는 것만으로도 오늘 이곳에 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이곳의 진지는 제법 모양새를 잘 갖추고 있다. 보아하니 60mm 박격포 진지가 아닐까 싶은데..사실 나는 일반 보병 부대에 근무한 적이 없어서 60mm박격포 운용을 본 적이 없어서 추측만 해볼 뿐이다. 처음엔 60미터인가 생각을 했지만 길을 지나나보면 이런 진지가 몇 개 더 보이는데 60M-1, 60M-2 이런 식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니 포 진지가 맞는 것도 같다. 그러고보니 내가 조작해본 박격포는 81mm가 전부였구나.


몇 번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걸으며 이 생각 저 생각하다보면 이 구간도 슬슬 종착점에 다다라간다는 것이 느껴진다. 오랜만의 외출치고는 제법 오래 걸은 셈이고 동계 등산 장비들을 처음 테스트 하는 산행인지라 이런저런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덕분에 본격적인 겨울 산행 준비를 좀 더 잘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나름 괜찮은 산행이었다. 아마 이 다음의 걸음은 북한산둘레길이 아니라 인왕산이 될 것 같다. 서울의 우백호라 불리는 산이다.


조금 더 이동하면 이 문과 마주 하게 되는데 안골길의 시작은 아니고 산너미길의 끝지점이다. 안골길은 아래로 조금 더 내려가면 진입로가 보인다. 여기서부터는 꽤 오랜 시간을 걸어야 한다. 대충 20분이 넘는 시간을 걸어야 버스 정류장에 이를 수 있으니 이곳에서 정비를 하고 이동하면 되겠다. 길은 그대로 아스팔트길로 이어지고 좌우로 많이 식당들이 있으니 쉬어 가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고 아니면 의정부쪽으로 이동해도 좋겠다.


문을 뒤에서 본 모습. 이 다리는 안골교란다. 조금 이름을 대충 지은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지역을 대표하는 이름이니 이해하고 넘어갈 일이다. 13구간에 이어 14구간까지 마치고 나니 3시간 20분 정도 소요되었다. 확실히 겨울이라 장비 갈아 입는 시간이 많이 걸렸고 눈길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더 걸린 까닭이다. 하지만 산행에 있어 시간처럼 버려두어야 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일상의 시간을 잊기 위해 찾는 곳이 산인데 그곳에서 또 시간에 연연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글 위에 지도를 붙여 두는 것은 이후 이길을 가게 될 분들을 위한 작은 안내자 역할을 하기 위함이지 무슨 기록을 세우기 위함은 아니다.


길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면 이렇게 안골길의 입구를 만날 수 있다. 왼편에 보이는 보루길은 무엇일까 궁금한데 다음 걷기에서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마 안골길 안에서 의정부에 있는 직동공원으로 이어지는 다른 길과 만날 수 있다는 의미인 것같다. 자전거 출입금지라고 씌어 있는 것으로 봐서는 길이 제법 평탄하지 않을까?


그런데 어쩐 일인지 입구 우측의 이정표가 무너져 있다. 국립공원측에서 모르고 있나 싶었지만 플래카드까지 걸어둔 것을 보니 알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수리를 미뤄둔 것이다. 보기에도 영 좋지가 않고 행여 위험할까 싶어 국립공원관리공단에 문의를 넣었더니 다음날 보수가 완료되었다고 사진까지 올려주었다. 

이후로 이곳을 가시는 분들은 똑바로 바로 서 있는 이정표를 보실 수 있겠다. 이런 부분은 정말 칭찬할만한 일인데 사실 나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도 다음날 바로 수리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생각해보면 국립공원을 이용하다가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공단에 알려 주는 것이 좋겠다. 확실히 저렇게 보니 좋아보이지 않는가..

이렇게 북한산둘레길을 14구간을 마무리했다. 21개 구간이 이제 7구간이 남아있다. 나머지 구간들은 서울의 북쪽에서 동쪽으로 돌아가는 길이고 마지막 구간인 우이령길은 북한산을 관통하는 길이다. 우이령길은 아마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관통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을 하는데 사전 예약을 해야하지만 평일이라면 1,000명이 모일 것 같지는 않으니 선착순 입장도 가능하지 싶다.

사회에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한 취미는 사진이었고 그 다음은 자동차였다. 그리고 이제는 등산이다. 아마 이 3가지만 평생 가지고 가기에도 어느 하나 제대로 소화해내기 어렵지 않을까 싶지만 그래도 참 좋은 취미를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물론 수 없이 맞는 시행착오로 인한 경제적인 지출은 상당하지만 돈으로 살 수 있는 경험이 이런 것이라면 기꺼이 지불할 용의가 있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만큼 많은 일들이 마무리되었던 한해다. 결국 인생은 제로섬게임이라지만 그래도 얻는 순간 잃는 순간에 각각 느끼는 감정의 깊이는 다르다고 생각된다. 내게 12월은 미련은 사라지고 희망은 남은 그런 달로 기억될 것같다. 이제 열흘도 채 안 남은 2012년... 올해의 마지막 산행 준비를 해 본다. 아마도 그리 멀리 가지는 않겠지 싶다. 그리고 올 겨울 안에 태백산에 다시 오를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Panasonic LX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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