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원정은 여름에 가야 제맛인데 무엇보다 연꽃이 활짝 핀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어떤가 모르겠지만 예전의 향원정은 말 그대로 옛정취가 물씬 풍기는 그래서 시간의 개념조차 잊게 되던 그런 곳이었다. 위 사진은 16mm인데 아마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렌즈가 아닐까 싶다. 어안렌즈 특유의 느낌을 살리기에 적당한 바디를 쓰지 못해 아쉬웠던 날...

연꽃을 담아보려 이리저리 노력을 해봐도 쉽지 않은 것은 역시나 거리. 당시 D1x와 200mm 렌즈였는데도 좀처럼 마음에 드는 꽃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꽃이라는 게 피고지는 때가 있는 법인데 어느 날 갑자기 찾아가 왜 꽃이 없냐고 항의를 해봐야 무지한 자신을 드러내는 일일 뿐...

살아가는 일은 결국 순리대로 따라가는 것이 상선(上善)이다. 즉 물처럼 살아가는 동안에 가장 좋은 삶을 살게 되는 것이지 싶다. 그럼에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우리네 삶은 물처럼이 아닌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의 삶을 보다 추구하는 모양새다. 꽃처럼 때가 되면 꽃을 피우고 때가 되면 조용히 물러나 다음 개화를 기다리는 마음.. 그것을 우리네 인간은 참 갖기가 어렵다.

허나..어렵다 생각하면 또 끝이 없는 법.. 물의 흐름을 따라 꽃의 순리를 이해하는 마음을 얻기 위해 살아가는동안 노력해야한다. 그것이 살아가는 이유이자 목적이 된다면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얼마 전에는 차로 춘천 외곽을 둘러보았는데 이번에는 춘천 안으로 들어가봤다. 춘천으로 가는 길은 이제는 너무나 손쉬워져서 중앙선을 타기만 하면 갈 수 있다.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고 기차 안에서 기차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대학생의 낭만은 덕분에 영화에서나 등장하는 이야기가 되어 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너무나 깨끗해진 현대식 건물의 역사를 보며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아득한 기억을 애써 떠올려보려고 해보지만 워낙 일체감이 없기에 쉽사리 기억을 끄집어내긴 어려워보인다. 하루 정도 머물 생각이어서 렌터카를 알아보니 8만원을 달란다. 주말에 덥썩 사무실을 찾아가니 그럴만하다 싶었다. 춘천 밖으로 나갈 생각은 없었기에 차라리 택시가 저렴할 것 같았고 실제로도 그랬다.

춘천의 기억은 늘 햇살이 따가울 정도로 내리쬐는 여름이다. 오래 전 만나던 이와 청평사를 찾았을 때도 그랬고 오늘 역시 대서라는 절기가 절정에 이르렀는지 햇살이 아플 정도로 따가왔다. '공지천'주변에는 에티오피아 기념관이 있는데 6.25참전을 기억하는 장소로 왜 춘천에 이런 것이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이 지역이 사실은 격전지 중의 하나였다는 역사를 떠올리면 그럴만하다..라는 생각이 든다.

오리보트는 공지천의 녹색 물결을 가르고 있었는데 무슨 일인지 몰라도 정말 강의 색이 '녹색' 자체다. 무언가 정체모를 꺼먼 것들도 둥둥 떠다니고 있어서 저 보트를 타려면 제법 용기가 필요하지 싶다. 그래도 연인들은 더위도 강물의 색도 개의치 않고 끊임없이 오리보트를 타고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있었다. 좋을 때다 연인들이란..

에티오피아 원두로 만든 커피를 파는 전문점인데 커피를 워낙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 '맛'은 전혀 모르는 나로서는 이것이 에티오피아 커피의 맛인지 알 길이 없기에 주는대로 덥썩 받아와 마실 수밖에 없었다. 커피숍은 제법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낡은 인테리어를 뽐내고 있었는데 오래 전 이곳을 들러간 이들에게는 기억을 되살리기에 충분하지 싶었다.

엄청난 더위에 아예 SLR을 들고 가는 것은 상상도 못 했다. LX5 하나만 들고갔는데도 가방은 무거웠다. 체력이 갈 수록 떨어지는 게 분명하다. 게다가 더위에 지쳤다는 핑계로 그나마 가져간 녀석도 좀처럼 꺼내지 않았다.  카메라에 매달려있는 렌즈캡을 찍으며 그나마 사진 몇 장 찍어왔다고 위안을 삼아 본다.

조각공원에는 김유정문학비가 있다. 김유정은 1908년 춘천의 실레마을이라는 곳에서 태어났고 이곳은 그를 기념하기 위한 공원 중의 한 곳이다.  춘천역을 가는 중간에 우리나라 최초로 사람 이름을 역 이름에 담은 김유정 역이 있는데 이곳 역시 같은 의미다. 물론 지금의 김유정 역은 현대식 역사다. 이전의 한옥 지붕의 역사는 폐쇄되어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한다.

공원 곳곳에는 제법 많은 조각들이 있었는데 찬찬히 둘러보기엔 날이 너무나 더웠다. 그럼에도 풀밭 곳곳에서는 연인들이 야릇한 포즈로 부둥켜 안고들 있어서 가뜩이나 더운 날씨를 더 뜨겁게 만들고 있었다. 연인들에게 추위와 더위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

춘천의 번화가인 명동의 밤거리다. 명동 자체는 그리 넓다고 볼 수는 없지만 정말 없는 게 없을 정도로 다 있다. 좁은 공간에 상점의 밀집도가 상당하달까.. 예전에는 춘천 시내라 해도 밤 시간이 깊어가면 상점들도 많이 문들 닫고 행인도 적었다는데 요즘은 제법 늦은 시간에도 많은 이들이 거리를 오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겨울연가를 보지 않아 알 수는 없지만 이곳도 촬영지 중의 한 곳인가보다. 촬영지라면...이라고 생각할 즈음 같은 색의 옷을 입은 수십 명의 중국인 관광객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것이 보였다. 외국인 관광객들을 통한 지역사회의 수익창출은 아주 좋은 것이지만 그 지방의 고유한 특색이 아닌 드라마라는 점이 아쉽긴 했다. 그래도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나은 것일까...

춘천은 도시의 이름 자체가 낭만을 안고 있다. 가평, 청명, 대성리...이런 이름들처럼 춘천은 희미한 기억 속의 도시라는 느낌이 강한 곳이다. 그럼에도 선뜻 발이 춘천으로 향하지 않았던 것은 그 희미한 기억, 아스라한 기억이 사라질까 못내 두려웠기 때문이고 오래 전의 추억으로 남아있는 그 기억을 다시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모든 기억은 장소에 그렇게 봉인되곤 한다. 어떤 기억이 좋았건 혹은 그렇지 않았건 세월이 지나 한 번의 웃음으로 그 기억들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때가 오는데 그때 그 기억들이 봉인된 장소를 찾아가게 되면 마치 얼음이 녹듯 서서히 그리고 온전하게 지난 시간의 기억들이 바로 지금의 일처럼 또렷해진다. 

기억은... 그리고 추억은 잊히는 게 아니다. 그저 가두어둘 수 있을 뿐이다. 


Panasonic LX5


얼마 전 포스팅은 한강시민공원의 사물들에 대한 이야기. 이번에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는 공간인만큼 그곳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도 꽤나 다양하다. 물론 평소의 일상생활에서도 많은 이들을 만나지만 조금은 느긋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기는 쉽지가 않다. 하지만 공원에 나가면 '사람들'을 제대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네들의 삶 역시도..

공원에서 만나는 이들은 보통의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처럼 제각기의 방향을 가지고 있다. 차이라면 일상의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치우친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해 공원에서 만난 이들은 그 방향이 각자 다르다는 점이다. 주어진 길을 갈 수도 있고 때로는 길이 나 있지 않은 공간으로도 갈 수 있다. 사람들에게 스스로 결정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공간..바로 공원이다.

또한 모처럼 자연과 동화가 될 수도 있는 공간의 역할도 한다. 비둘기야 원래 사람을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지만 사람들이 주는 먹이에 익숙한 녀석들이 있는 곳에서는 내 눈높이에서 비둘기들을 마주 볼 수도 있다. 마치 서해 어느 바닷길에서 새우깡으로 유혹할 수 있는 갈매들처럼...

삶의 방향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끌 수 있는 곳. 공원은 그렇게 자유로움과 여유가 함께 하는 공간이다. 대단한 삶의 이유도 삶의 방향도 목적도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길을 만들어 걸을 수 있는 곳. 공원은 그래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 아무렇게나 바닥에 누워 하늘을 보고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곳이니까..


Contax Aria, Carl Zeiss 35mm Distagon f/2.8, Ilford XP2, LS40


후배와 집다리골 자연휴양림을 다녀왔다. 이름이 낯선 곳이어서 집에 와 찾아보니 시원한 계곡으로 유명한 곳이다. 실제로 계곡에 내려가보면 흐르는 물은 얼음물이고 바람은 에어컨 저리가라 할 정도였다. 어제 비가 와서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아 한적하게 돌아볼 수 있었다.

집다리골의 유래라는데 칠석의 설명과도 어딘가 비슷한 것 같고.. 새로 만들어진 느낌도 나지만 이름이야 어떻든 시간을 내어 방문할만한 곳이라는데 의미를 부여하면 족하지 싶다. 왼쪽에 약간 보이는 다리는 중간쯤 가면 흔들림이 커지는데 고요한 휴양림에서 그나마 운동감을 느낄 수 있는 소도구랄까.

가뭄에 물이 없는 요즘치고는 제법 많은 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어제 온 비의 영향인 듯하다.  제대로 물이 흐른다면 꽤 장관일 것 같다. 계곡 자체의 경사가 제법 되어서 물의 속도는 꽤 빠른 편이다. 아이들을 동반할 경우에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겠다.

투명하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맑은 물. 이 정도로 맑은 물을 본 기억이 거의 없을 정도인데.. 꽤 오래 전 청평사에 갔을 때 계곡에 발을 담그고 논 적이 있었는데 아마 그 이후 처음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만큼 계곡을 돌아다니지 않은 탓도 있긴 하겠지만..

그냥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온몸이 으슬으슬해질 정도로 차가운 물과 바람. 자연 자체에서 느껴지는 바람인지라 몸 속까지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오래 있기는 정말 어려웠다. 피서라는 말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는 없었다.

자연 안에 들어가면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지 싶다. 시간이 갈 수록 인간 자신의 편의를 위해 자연을 훼손하지만... 그래도 자연은 묵묵히 인간을 감싸 안고 있다. 비록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그저 어머니처럼 아무 이유도 조건도 없이 안아주는 것이 자연이다..

초행길이고 네비가 구춘천가도로 길을 안내해 시간이 조금 더 걸린 편이었다. 거리는 생각보다 멀다. 서울 노원역 기준으로 2시간이 조금 넘게 걸리는데 주말에는 시간이 좀 더 걸리지 싶다. 펜션 비슷한 숙소도 있고 야영을 위한 장소들도 제법 잘 갖춰두고 있어 가족 캠핑으로 방문하기에도 괜찮아 보였다.

다만 집다리골 휴양림 자체를 빼면 주변에 접근하기 용이한 다른 관광지가 가깝지 않은 점은 단점이라 할 수 있겠는데 휴양림에서 진득하게 쉰다고만 생각하면 큰 무리는 없다. 


Panasonic LX-5


무더운 날에 한강을 걷는 것은 썩 기분내키는 일은 아니다. 딱히 해를 피할 곳도 마땅치 않기 때문인데 그래도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돌아보면 평소에 보지 못 했던 사소함들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어 폭주행위를 금지하는 플래카드를 비웃는 비둘기떼라던가...


사람이 물에 빠지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배워볼 수도 있다. 부실해 보이기는 하지만 저것을 던지면 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


아무렇게나 서 있는 전봇대들은 이제는 그 기능을 모두 다 해 쓸쓸한 흔적의 하나로만 기억되고...


그 틈새는 지나가는 이들이 몰래 버린 시간의 찌꺼기들로 점점 차 오른다.


낡음이란 내쳐지는 것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녹이 슬고 제 기능을 하지 못 하게 되면 기억에서도 잊히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신세가 되고 만다. 이것은 비단 물건에만 한정된 일은 아닐 것이다.


비둘기들은 어느 장소, 어느 시간을 막론하고 존재하는데 가끔은 이 녀석들이 시간과 공간 모두를 지배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난 시간을 뒤돌아볼 때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조연이 이 녀석들이기 때문이다.


Contax Aria, Carl Zeiss 35mm Distagon f/2.8, Ilford XP2, LS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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