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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09 21:52 - Snowroad snowroad

무정함에 대한 보고서. 여름

무정. 한자로 '無情'이다. 뜻풀이를 보자면 '남의 사정에 아랑곳하지 않음.' 이라는 의미가 있다.

다른 표현을 빌려보자면 '삭막'이라는 단어가 이 '무정'과 일맥상통한다.

요즘의 우리네 삶이 정이 없고 삭막해진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디지털'이 미친 영향이 압도적이지 않을까. '편리'를 위해 끝을 모르고 발전하고 있는 기술의 뾰족함에 아날로그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의 몸과 마음이 이리저리 찟기고 있는 모습이다. 집 밖으로 나가 몇 걸음만 걸으면 고개를 푹 숙인 채 스마트폰 속의 세상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모습들이 더 이상 어색하거나 낯설지 않다

스스로 세상과 벽을 만들어 가고 있는 셈이다. 누구도 스마트폰 속에 빠져들라고 강요한 적이 없는데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들 거북목이 되어 거리를 떠 돈다. 디지털이라는 거창해보이는 단어에 빠진 유령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영화일 뿐이지'라며 가볍게 넘겨버린 데몰리션맨의 세계가 현실 속에서 벌어질 날도 얼마 남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두려운 것은 그런 세상이 바로 눈 앞의 현실로 펼쳐져도 우리는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스캔한 필름들을 뒤적여본다. 한 장 한 장 마운트 되어 박스 안에 들어있는 아날로그 세상을 형광등에 비춰본다. 내개 남은 얼마되지 않는 슬라이드들은 그렇게 방 한 구석에서 먼지에 덮여 가고 있지만 난 이것들을 버릴 생각은 없다. 고장난 턴테이블 위에 낡은 LP판을 올려보는 어리석음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여름의 한복판으로 시계바늘이 움직인다. 가만히 있어도 등 뒤로 땀이 흐르는 계절이다. 

여름이니 어쩌겠어? 라고 생각하는 외에 달리 방법은 없어 보인다.

어제 서점에서 한참을 들여다본 실존주의 몇몇 문장이 여전히 두통을 불러오는 밤이다.

담배를 끊은 지 한 달이 되어 간다. 엄밀하게 말하면 연초를 끊은 것이지만...

2014년 여름은 이렇게 흘러간다.


Nikon F5, 135mm f/2 DC, Soft filter, LS-40



  1. 2014.07.09 22:18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nowheart.tistory.com BlogIcon Snowroad snowroad 2014.07.19 22:37 신고

      디지털은 결국 사람의 영혼마저 앚아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태생이 아날로그인 인간이 온전히 디지털에 녹아들 수 없는 까닭인데..
      그럼에도 혹시나 사람마저 디지털화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드는 요즘이네요

  2. 2014.07.10 09:06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nowheart.tistory.com BlogIcon Snowroad snowroad 2014.07.19 22:38 신고

      서울의 무정함은 뭐랄까요.. 사람들의 무표정에서 일단 시작하는 거 같아요. 다들 어디론가 바쁘게 움직이죠.. 길가에 잠시 멈추어 서게 되면 나 혼자 정지된 것 같은 느낌.. 그런 것들이 도시의 삭막함이 아닐까 싶어요

  3. Favicon of http://photopark.tistory.com BlogIcon skypark박상순 2014.07.10 10:32 신고

    아나로그 시대를 그리워 하면서도, 점점 디지털로 빠저들고 있는
    현실이 절로 느껴지는 요즘 입니다.
    금연을 시작하셨군요. 저는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데...
    더위에 건강 잘 챙기세요.^^

    • Favicon of http://snowheart.tistory.com BlogIcon Snowroad snowroad 2014.07.19 22:39 신고

      금연은 어설프지만 일단 전자담배로 건너왔네요. 다른 것은 둘째 치고 담배 냄새 안나서 좋네요. ^^ 요즘은 담배연기 보면 피해다니고 그러는데 예전의 제가 그런 대상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 하기도 합니다.

  4. Favicon of http://tangbisuda.tistory.com BlogIcon 롤랑존 2014.07.10 11:22 신고

    아고 덥습니다. 날씨가 이러니 짜증도 더 심해지고 무심한 마음이 저절로 생기는 요즘입니다. 최근에 읽은 책도 디지털의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그리고 프로그래밍된 언어와 관련되었는데요, 읽으면서 아이 생각이 나더군요. 앞으로 크면 클수록 생각하는 방식이 우리랑 정말 다르겠구나 싶었습니다.

    • Favicon of http://snowheart.tistory.com BlogIcon Snowroad snowroad 2014.07.19 22:40 신고

      네 요즘의 아이들은 우리네 세대와는 분명 다르겠지요. 그런데 그 다름이 이제까지보다 더 빠른 변화랄까요. 예전에는 10년에 걸쳐 변하던 것들이 요즘은 1년도 안 되어 너무 빠르게 변한다는 느낌이 드네요

  5. Favicon of http://mindeater.tistory.com BlogIcon MindEater™ 2014.07.10 15:43 신고

    정말이지.. 점심먹으로 가서 다들 말없이 고개 쳐밖고 스맛폰만 만지작 거리는 걸 볼때면 가관입니다...휴~

    • Favicon of http://snowheart.tistory.com BlogIcon Snowroad snowroad 2014.07.19 22:41 신고

      요즘 길 걷다보면 고개 숙이고 폰들여다보는 사람들 피해 다니느라 신경이 좀 쓰이긴 하더군요. 사고도 많이 난다는데.. 기술이 사람에게 늘 좋은 것만은 아닌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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